24장로(요한계시록 4:1-11)
사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24장로가 누구냐에 대한 해답은 그리 쉽게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명확한 답이 성경에 계시된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계시의 흐름에 따라 성경적인 추리로서 해석할 수 밖에 없는데 그런 방법으로 해석한다 해도 역시 해석의 어려움이 따릅니다.
먼저 계 4장, 5장에는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 보좌에는 하나님과 심판을 위임 맡으신 어린양, 그리고 네 생물과 24장로의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심판주의 명령에 의해 그 명령을 시행하는 천사들의 등장입니다.
이처럼 계시록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 볼 때 구원 받은 성도들이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에 개입하는 경우는 예수님의 재림 시, 하늘군대로 아마겟돈에 내려오는 144000의 흰말 탄 순교성도들 외는 없습니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24장로의 정체를 추리해 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24란 수효는 구약적인 하나님의 백성들과 신약적인 교회를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전체적인 백성들을 통털어 나나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생명책에 녹명된 성도).
종말에 있을 심판은 인류의 최종적인 심판이며 구원에 있어서도 최종적인 구원의 사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4장로들은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며 하늘에서 이들의 구원의 사역을 주관하고 있는 영물들일 것입니다.
24장로들을 구원 받은 성도들의 대표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지금 하늘에 올라가 있는 성도들은 그들의 구원이 완성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구원의 완성을 소망 중에 바라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구원의 완성은 부활하여 신령한 몸으로 변하여 온전한
천국의 생활을 이루는 그 시기에 성취됩니다.
이런 처지에 있는 하늘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보좌에서 그들을 위해 마련한 보좌에 앉아서
하나님의 종말적인 심판사역에 관여할 것이란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늘의 상급 역시 백보좌 심판 시에 결정된다고 볼 수 있으므로 24장로들이 앉아 있는 보좌의 자리가 위대한 생애를 살아간 성도의 상급의 자리로 보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하늘의 격이 높은 천사와 같은 신분의 영물 중에 속한 존재들이며 이들에 의해 교회가 주관되고 상급의 등급이
매겨지며 심판과 환난에서의 보호에 대한 모든 하나님의 섭리를 집행하고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 합당한 해석일 것이라고
여겨집니다(계7:11-17).
물론 이들에게 장로란 이름이 부쳐진 이유는 모르지만 24장로들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모든 구원의 사역과 섭리를 집행하는 영물들이라면 그들에게 장로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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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에서 어린양께 경배하고 찬양하고 있는 24장로들은 대체 누구인가?(요한계시록 4:6~11)
- A.D.95~96년경 사도요한이 밧모섬에 보았던 환상 속에서 천상에 있는 존재들에는 어떠어떠한 것들이 있습니까?
사도요한이 환상 중에 보았던 천상의 존재들은 크게 4종류로 나타나 있습니다.
1. 네
생물들
2. 24장로들
3. 천천만만의 천사들
4. 피조물
이들 중에서 네 생물들은 천사(스랍이나 그룹천사)와
비슷하지만 모든 창조물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얼굴은 4가지입니다. 이들은 모두 창조물의
원형으로서, 어떤 것은 길짐승(야수)의 우두머리로서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고, 또 어떤 것은 집짐승 중에서 가장 힘센 자는
송아지의 모습을 하고 있고 사람(인간)의 모습과 마지막으로 날아가는 독수리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천상에는 또한
24장로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24장로들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이들은 천사들일까요 아니면 사람들일까요?
천상에 있는 존재들 가운데 24장로들은 대체 누구일까요?
오늘날까지 신학자들 중에는
24장로들을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는 하늘의 천사들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런데 진짜 그럴까요? 우선, 그들의 모습을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약간 떨어진 곳에서 뒤쪽에서 좌우로 12개씩의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있습니다. 둘째, 이들은 흰 세마포옷을 입고 있으며, 머리에는 금면류관(승리관)을 쓰고 있습니다(계4:4). 이들도 네 생물들이나
천사들처럼 하나님의 찬양하고 있습니다. 셋째, 그런데 천상의 존재들 가운데 맨 처음으로 일찍 죽임을 당한 어린양께 경배드렸던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계5:8,14). 이들이 드리고 있는 찬양의 내용을 잠깐 살펴보면, 이들이 사용하는 노랫말의 주어는 네
생물들이나 혹은 천사들이 드리는 찬양의 주어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모두 하나님 및 어린양을
제2인칭(당신)으로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네 생물들이나 천사들은 하나님 및 어린양을 제3인칭(그분)으로만 말합니다.
24장로들의 찬양의 예를 들어보면, 24장로들은 "보좌에 앉으신 이"를 향하여 "당신은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만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계4:11)"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5:9~10에 보면,
이들은 어린양에게 "당신은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것의 인봉을 떼시기에 합당하십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일찍 죽임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라고 찬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구약과 신약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대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이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사람들)의 대표자인 것입니다. 특히 이들의 숫자가 24인 것은, 이들이 구약의 12지파로 이루어진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이요, 신약의 12사도들로 이루어진 신약의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누가 더 크냐 하는 논쟁에 같이
있었을 때에 예께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눅22:28~30). 직역해보면, "그런데 너희는 나의 시험들 안에서 나와
함께 계속 머물러 있는 채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내 아버지게서 왕국을 내게 배정했던 것처럼 나도 너희에게 배정한다. 이는
너희가 내 왕국안에 있는 내 식탁 위에서 먹고 있으며 마시고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너희가 [장차] 보좌들 위에 앉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들을 심판하고 있으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사도들)은 시험 중에도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머물러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장차 [천국에서] 보좌들에 앉을 것이며, 예수님과 더불어 심판자로 참여할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20:4에 보면, 정말 이들은 보좌들에 앉아있고, 이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들이 주어지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24장로들 중의 적어도 12명의 사람들은 신약의 12사도들(참고로, 가룟유다 대신에 바울이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나머지 12명은 구약의 12지파의 족장들이었던 야곱의 12아들이라는
것을 계7장의 인침사건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인침받은 자의 숫자와 이름이
나오는데, 12지파의 족장들의 이름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로서는 르우벤, 유다, 요셉, 베냐민 등이 24보좌에
앉아 있을 것이고, 신약의 성도로서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빌립 등이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거기에 앉아있는
것은 신구약의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표하는 자들인 것이지, 이들이 천국에서 다른 이들보다 더 높다는 뜻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결국 이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천상에 있는 24장로들은 구약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지파의 족장들과 신약에서 구원받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12제자들(가룟유다 대신에 바울로 추정)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하나님의 보좌 뒤편에서 좀 떨어져서 양쪽으로 각각
12보좌에 앉아 있습니다.
그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 찬양하고 경배했습니다. 왜 그들은 어린양에게
엎드리며 찬양을 합니까? 이들 12사도들(정확히는 11사도들)은 이 세상에 있을 때에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만져보았으며, 함께 3년반의 공생애를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활후에 보니 예수님은 무소부재하고 동시존재가 가능한 전능한
하나님이셨습니다. 특히 사도요한이 천상에 올라가 보 그곳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었고 거기에 어린양되신 예수께서 앉아계셨습니다.
사도요한은 제외한 나머지 제자들이 처음에는 약간 흔들리는 모습도 있었으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들은 완전히 새롭게
되었고, 모두가 다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전 세계에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순교를 하여 천국에 들어갔고, 천국의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는 12보좌에 지금도 앉아 심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끝까지 그리고 목숨을 바치면서도 주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핍박과 고난과 역경 중에도 이들은 항상 주님곁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천국에 들어와 24명의 장로들처럼 천국에서 제사장과 왕노릇을 하려면, 시험중일 지라도 주님을 떠나가지 않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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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두 종류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는 지상의 교회
다른 하나는 천상의 교회
교회를 하나님 나라라고 한다면 지상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있고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이루어가고 있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이미 완성된 나라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 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문제가 많고 불완전한 교회였습니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이 그렇습니다.
반면 요한 계시록 4, 5장은 이미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곳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 완전한 성전입니다.
더 이상 문제가 없고, 아픔이 없고, 슬픔과 죽음이 없는 완성된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 열린문을 통하여 보좌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4:2-3).
그리고 이십사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 제일 가까운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광스러운 존재들이었습니다.
이십사 장로는 누구일까요?
요한 계시록의 풀기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이십사 장로들에게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적인 존재들이라는 견해가 있지만 이십사 장로는 천사들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요한계시록 5:11에서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다고 하여 장로들과 천사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요하계시록 5:9~10에서는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양 앞에 노래하며 말하기를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우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으로 보건대 여기 이십사 장로는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서 뽑힌 대표자들입니다.
실은 하늘 성전에서 제사장적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4에서 그들은 한결같이 [보좌]에 앉아 [흰 옷]을 입었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면류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찬양하였습니다.
우리는 보통 보좌와 면류관은 오직 주님에게 속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보좌와 면류관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기도입니다.
계시록 2장 3장에 일곱 교회 이기는 자에게 주어지는‘보좌’, ‘흰 옷’, ‘면류관’ 이란 축복의 말씀을 봅니다.
이러한 축복의 말씀은 천사들에게 속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24장로 입니까?
지상의 성소 봉사에 대제사장을 돕던 제사장들이 24반열로 나뉘어 반차를 따라 섬겼듯이 하늘 성소에서도 예수그리스도를 조력하는 24장로가 있어 찬송과 경배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구속의 은혜를 감사하여 승리의 상징인 면류관을 벗어 던지며 밤낮으로 찬송합니다.
이십사 장로는 왕과 제사장으로서 장차 세상을 심판할 성도를 대표하고 있으며 지금 하늘에서 진행 되고 있는 심판 자리에서 배심판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 이십사 보좌에 앉겠습니까?
제자들 사이에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있었을 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22:25-3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방인의 임금들은 그들을 주관하며 그 집권자들은 은인이라 칭함을 받으나
너희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큰 자는 젊은 자와 같고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내 아버지께서 나라를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맡겨
너희로 내 나라에 있어 내 상에서 먹고 마시며 또는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하려 하노라.
“다스리는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 지니라 ”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는 섬기기를 즐겨합니다.
아무런 대가도 누구의 칭찬도 바라지 않고 기쁨으로 섬깁니다.
이십사 보좌에 앉을 자격의 사람은 “흰옷을 입고 다니리니”하십니다.
[계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지금은 물질만능 황금숭배의 세상입니다. 이러한 물질제일주의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고 바르게 정직하게 서로를 사랑하며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이라야 합니다. 과거에 없을 때에는 서로를 돌아보고 인정이 있고 나누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풍요가 넘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해지고 돈 몇푼에 사람을 죽이고 빼앗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선거철이 되면 교회를 찾아갑니다. 정치가들 가운데 기독교인이 적지 않지만 그들은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지도 않고 기독교 정신에 따른 정치를 하지도 아니합니다. 정작 그들의 마음은 오직 권력을 차지하는 데 있습니다.
○ 많은 연예인, 체육인, 예술인들이 기독교인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재능을 통하여 자신의 구하는 것은 자신의 이름, 자신의 영광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세속에 물들지 않은 사람,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십사 보좌에 앉을 장로의 반열에 들 자격의 사람은 “면류관을 얻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우선 면류관은 주의 일에 수고한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부자청년이 돌아가고 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시는 말씀입니다.
[마태 19: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벧전 5:2]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면류관은 믿음의 싸움을 끝까지 마친 인내의 사람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계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전에 우리는 늘 실수가 많은 존재, 죄와 유혹에 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그리스도를 덧입어 흰 옷을 입어 우리 모두는 구원에 합당한 천상의 귀한 존재, 사랑받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주를 위한 수고에 힘을 다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금관은 변치 않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승리자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마지막까지 믿음을 견지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믿음으로 승리한 자녀에게 주님이 예비하신 자리가 이십사 장로가 앉은 보좌의 자리입니다.
하늘의 이십사 보좌는 하나님의 보좌 가장 가까이 있는 천사가 부러워하는 자리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이십사 장로들은 누구인가요?
요한계시록 4:4은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고 말씀합니다.요한계시록은 어디에서도 이십사 장로들이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교회를 대표할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천사일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 어디에도 천사가 다스리거나, 보좌에 앉은 경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반복적으로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하고 다스린다고 언급했습니다(요한계시록 2:26-27, 5:10, 20:4, 마태복음 19:28, 누가복음 22:30).
게다가, 여기서 “장로”로 번역된 헬라어는 천사를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 적이 한 번도 없고, 특별히 교회를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성숙한 나이의 남성에게만 사용되었습니다.
장로라는 단어로 나이를 먹지 않는 천사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이십사 장로들의 옷차림 또한 그들이 남성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천사는 흰 색으로 나타나는 반면, 흰 옷은 구원의 순간에 우리에게 입혀지는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것으로, 주로 믿는 자들과 관련하여 언급됩니다(요한계시록 3:5, 18, 19:8).
장로들이 쓴 금관 또한 이들이 천사가 아니라 남성임을 나타냅니다.
천사들에게는 면류관이 약속된 적이 한 번도 없으며, 성경에서 천사들이 왕관을 쓴 것도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관”으로 번역된 단어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셨듯이 성공적으로 경주를 다 마치고 승리를 얻은 사람들이 쓰는 이긴 자의 면류관을 언급하는 것입니다(요한계시록 2:10, 디모데후서 4:8, 야고보서 1:12).
어떤 사람들은 이십사 장로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계시가 보여진 당시에 이스라엘 온 백성은 아직 구원받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장로들은 고난의 성인들을 대표할 수 없습니다.
요한이 계시를 본 당시 그러한 성인들은 아직 개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타당한 결론은 장로들이 구원의 찬양을 부르는 환희에 찬 교회를 대표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8-10).
이십사 장로들은 승리의 면류관을 썼으며, 구원자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거처에 다다랐습니다(요한복음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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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주신 "계시"입니다.
계시란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을 뜻하고, 이 계시는 비밀과는 구별이 됩니다.
비밀은 누구든지 그 사실을 알아내면 다 알 수 있겠지만 계시는 보거나
들어도 알 수 없게 되는데, 그 이유는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의 "24 장로"의 해석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해석에서 모두가 흔쾌히 수긍하는 보편적 확정적 영적진리는 없고, 학자마다 그 주석이 다 다르며, 서로 누가 옳은지
온전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라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며
요한계시록의 "24 장로"에 대한 의미와 뜻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계시록은 요한에게 보여진 환상들을 기록하였기 때문에 특성상 문자적, 사실적, 시간적 방법으로 해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향한 계시록기록의 의미와 뜻을 가장 잘 이해하기위하여 개괄적인 해석 방법(Recapitulation)을 사용하여, 구약성경의 의미를 신약성경에서 더욱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밝히 나타내고 있는 계시의 말씀을, 복음적인 관점(그리스도의 렌즈)으로 접근하여 성경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성막을 시내 산에 처음 세움(출애굽기 40:2)
모세가 성막을 만들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은 후, 성막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인간의 방법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만들어진
거룩한 장막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 소위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갔고,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그
성막을 관리하며(민 4장) 성막의 성결과 봉헌의 "직무"(출 40장)를 감당했습니다.
이 성막의 실체는 하늘에 있었으며(하늘의 참
성막, 히 8:1-2) 그때 그 구약의 성막(성전)은 단지 모형에 불과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지상교회와 천상교회로 구분되며,
머리되신 예수님과 그의 몸이 된 교회의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율법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받기
보다는 신약성경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바와 같이 "천사"를 통하여 율법을 받았음을 말씀하고 있으며(행7:38, 갈 3:19) 이
율법을 받았던 것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통치하시는지를 보여주셨고,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자 그 율법을 주셨던
것입니다(롬 7:7-9).
실체는 하늘에, 모형은 지상에
히브리서 8:1-5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하늘에서 예수님은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고 그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가 예수님이시며, 또 그곳을 주께서 세우셨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믿는 성도(교회)를 위해서 일하고 계십니다. 구약에서 천사를 통해 하늘의 실체를 보여 주신 것이며, 하늘의 모형 된 그 구약의 성막을 통해서 거룩한 관을 쓴(레8:7) 제사장들이 "제사(예배)의 직무"를 감당하게 됩니다. 그 성막에서 24명의 제사장들이 "이와 같은 직무에 따라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 아론을 도왔으니 이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규례더라" (대상24:19).
구약에서 천상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부분으로서, 왕상22:19-21 "내가 보니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이 그의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욥1:6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이 외에도 이사야6:1-3 의 천사들과, 이사야24:23 "그 때에 달이 수치를 당하고 해가 부끄러워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그 "장로"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임이라".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들", "장로"는 천사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신약에서 하나님 보좌 주위에 나타나 있는 천사들의 무리 중에는 특별히 "24장로들" 이라 불리는 특별한 위치의 천사의 무리들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모든 정사와 권세를 주관하시며 사탄도 역시 하나님의 주관아래 있음도 알 수 있습니다.
천사들의 직무는 무엇인가?
그들은 하늘에서 하나님 얼굴을 보고 신적 완전성들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섭리와 구속에 있어서 하나님의 계시를 두루 살피며, 하나님의 임재와 봉사의 축복을 받습니다(마 18:10, 계5:11,벧전1:12). 하나님의 섭리와 사건을 처리하시는 바 도구로 사용(창28:12, 단10:13), 하나님의 백성을 위한 도구로(히1:14, 행12:7, 시91:10-12), 하나님 원수들에 대한 심판을 수행(행12:23, 왕하19:35, 대상21:16), 그리고 마지막 심판 날의 맡은 바 책임(마13:30, 39, 24:3, 살전4:17)을 수행 할 것입니다. 성막(성전)의 제사장들이 직무를 감당하는 것처럼 천상의 천사들도 마찬가지로 그 "직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4장로는 구원받은 성도와 완전히 별개의 내용이다
계 11: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계 14:3 "그들이 보좌 앞과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속량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성경을 살펴보면 24장로는 뚜렷이 성도들과 구별되어 나타나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성경귀절에서 언급된 내용과 같이 "네 생물과 장로"들은 "새 노래"를 배울 수도 없습니다.
살전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만약에 24장로들이 구원받은 성도들의 대표(일반적인 해석)라면, 천사들은 휴거되기 이전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하였으므로 휴거
이후를 말하고 있는 이곳 성경과 또 다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24장로는 계시록 19:4을 마지막으로 계시록 20장의 "새 하늘과 새
땅" 이후에는 더 이상 언급되지 않게 됩니다.
그 이유는 마 19: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예수님의 12제자가 그 "일(직무)"을 맡게 됩니다.
결론(結論)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성막과 성전,
구약의 율법들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그림자였으며(골 2:17),
예수님 자신이 성전(요 2:19)이었으며 계시의 "실체"였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주재(히브리서 2:10)시며, 완성자로서 사탄의 세력은 이미 "하늘에서 떨어져"(눅10:18) 약화되어 있지만,
이
세상에서는 "우는 사자"처럼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실체는 구약에서는 어떤 다른 방법이 아닌, 성막(성전)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나타내셨고,
때가 이르러 성자이신 예수님께서 그 구원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그 구원의 강물은 오늘날 모든
신약 성도들에게까지 이르러 하나님의 성령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성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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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4장을 보면 이십사 장로가 나온다.
우선 이십사 장로에 대해 이단들은 어떻게 해석하는지 살펴보겠다.
어떤 이단은 이십사
장로를 이십사 영으로서, 교회의 행정을 담당하는 24명의 장로라고 해석한다.
네 생물은 심판을 담당하는 무관(武官), 이십사
장로는 행정을 담당하는 문관(文官)이라고 말한다.
또 다른 이단은 이십사 장로를 이렇게 해석한다.
“천국 처소
안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영적인 서열이 있습니다.
그래서 연회나 행사가 있을 때도 서열에 따라 정확하게 진행됩니다.
영적인
서열이 그만큼 앞선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앉습니다.
하나님 보좌 좌우편에는 주님과 성령님의 보좌가 있습니다.
각각
옆으로는 남자들 중 천국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가 위치합니다.
그다음 서열이 옆으로 계속됩니다.
그다음 서열은 이십사 장로인데 모두 남자입니다.
여자의 서열은 남자의 서열과는 따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그중 서열이 앞선 분들이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게 됩니다.”
그들은 이십사 장로가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휴거되면 비로소 이십사 장로가 확정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이단들은 이십사 장로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일까.
그것은
교주의 말에 절대복종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신도들이 교주에게 온전히 충성을 맹세해야 더 높은 영적 서열에 오르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들 안에 이십사 장로가 있다고 하면 요한계시록의 예언이 자기들 안에서만 성취된다는 억지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십사 장로에 대한 정통교회의 올바른 해석은 무엇일까.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계 4:4)
이십사
장로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는 이십사 장로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성경이 말씀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씀하지 않기 때문에 이십사 장로가 누구인가를 굳이 찾아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바꿔봐야 할 것이다.
“이십사 장로들은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이십사는 열둘 더하기 열둘이다.
신구약 성경에서
열둘은 완전수다.
앞의 열둘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열두 지파를 뜻한다.
뒤의 열둘은 신약시대 열두 사도를 의미한다.
야곱의 열두 아들의 자손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형성됐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통해 신약 교회가 만들어졌다.
둘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즉 성도이고, 교회라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숫자 이십사는 신구약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모든 성도, 즉 교회를 상징한다.
이십사가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라면 장로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
장로 역시 교회를 의미한다.
초대교회 당시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 역시 교회의 장로였다.
쉽게 말해 교회의 대표자였다.
장로가 가진 상징성은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
이십사 장로들이 있는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천국이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을 선물로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 천국은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 교회가 들어간다. 요한이 본 천상에 있는 이십사 장로 환상은 영광과 안식을 누리게 될 교회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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