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히 될 일 12 / 06 / 2023(수)


12-06-2023(수) 요한계시록 제2강

속히 될 일(요한계시록 1:1, 22:6)

속히(타코스. tachŏs)  τάχος, ους, τό  스트롱번호 5034


1. 속력.  2. 곧.  3. 오래지 않아
발음 [ tachŏs ]
어원  / 5036과 동일어에서 유래
뜻풀이부
1. [명사] 속력, 빠름, 신속.
2. [부사] a. 곧, 속히, 당장에, 행 12:7, 22:18.
               b. 오래지 않아, 곧 얼마 안 있어, 눅 18:8, 행 25:4, 롬 16:20.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The angel said to me, "These words are trustworthy and true. The Lord, the God of the spirits of the prophets, sent his angel to show his servants the things that must soon take place."   

* 속히 될 일(What must soon take place) - 곧 일어날 일

속담에 ‘구슬이 세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처럼 단편적인 지식과 정보를 하나로 연결해야만 바르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두 주일에 소개했던 설교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요한계시록은 오직 예수로만 읽어야 합니다.

프리즘(Prism)은 빛을 굴절 분산시키는 광학도구를 사용하여 햇빛을 통과시키면 프리즘을 통과한 햇빛은 무지개 색으로 분해되어 영롱하게 나타납니다.
이제까지 우리가 들었던 성경에 관한 모든 단편적인 정보들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라는 렌즈로 통과시켜 주님 오실 그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2015-03


 Prism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일까?

요한계시록은 계시의 말씀입니다. - 계시서(啓示書)
계시란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계획이란 비밀을 알려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언의 말씀입니다. - 예언서(豫言書)
예언이란 어떤 어려움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주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믿음을 끝까지 지켜주고 보호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의 말씀입니다. -  서신서(書信書)

편지는 직접 찾아가서 전할 수 없는 내용을 글로 적어 보낼 수 있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계시하였고 예언하셨던 말씀을 글로 적어 보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히 될 일’이란 무엇일까?

요한계시록을 읽고 이해하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는 먼저 요한계시록의 범위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범위를 성경 전체로 확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성경의 교훈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19절에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속히 될 일이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서 “속히”라는 단어가 요한계시록과 성경에서 사용된 말씀을 살펴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속히”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 수가 본문을 포함하여 8구절로 소개됩니다(1:1, 2:16, 3:11, 11:14, 22:6, 22:7, 22:12, 22:20).

1:1, 속히 될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16, 속히 임하여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3:11, 속히 임하리니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1:14, 속히 이르는도다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22:6, 속히 될 일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22:7, 속히 오리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12, 속히 오리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22:20, 속히 오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의 구조

1장 : 서론
2-3장 :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
4-5장 : 하늘 보좌
6-16장 : 일곱 인, 일곱 나파르 일곱 대접
 12-14장 : 붉은 용,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슴
17-18장 : 큰 음녀, 바벨론
19장 : 백마 탄 예수, 어린 양 혼인 잔치,  용의 세력에 대한 승리
20장 : 천년 동안 왕 노릇, 곡과 마곡의 잔쟁,  흰보좌 심판(백보좌 심판)
21-22장 : 새 하늘과 새 땅(신천지),  거룩한 성 예루살렘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모든 구절들을 살펴야 합니다.
그러나 제한된 시간 때문에 설교의 주제에 합당한 구절들을 살펴보면 ‘속히 될 일’이란 22장 6절에서 “속히 되어질 일” 이라고 소개합니다.
이어서 “속히 될 일” 이란 3장 11절, 22장 7절과 12절 그리고 20절에서 “속히 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히 될 일”은 “속히 오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가 대략 기원 후 96년이라고 합니다.
2천 년 전에 속히 될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속히 될 일 즉 주님의 재림이 아직도 실현되지 않은 것을 어떻게 이해할까요?

시간(時間)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해서 시간 개념으로 해석하면 ‘빠르다’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속히 이루어질 일이라고 이해하기 때문에 당장 오늘 아니면 내일 아니면 내 생전에 오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목격했던 제자들은 그들이 살아있을 동안에 주님이 오실 것으로 믿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면서 제자들은 그들이 만났던 주님에 대한 증거를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려고 복음서를 시작으로 신약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만일 주님이 제자들 생전에 오셨다면 성경이 기록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실 주님이 오시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베드로후서 3장 8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다르다는 식으로 설명합니다. 
이와 같은 해석은 인위적인 방법이므로 본래의 의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도행전 1:6∼7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장소(場所) 개념(槪念)

속히 될 일에 대한 해석을 시간적으로 해석하면 반드시 오실 장소에 대한 궁금증이 극대화되기 때문에 ‘어디에’ 오실 것을 찾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특별한 장소를 마치 계시를 통해 받은 것처럼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과천, 피지 섬, 브라질, 계룡산과 같은 곳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인물(人物)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을 시간과 장소로 해석하면 그 다음에는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1992년 시한부종말론의 이장림,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지상낙원 피지 섬으로 집단 이주시키는 사례(은혜로교회 신옥주), 
두 증인 중 한 사람이라며 영원불멸의 교주(전도관 박태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것이므로 교인들은 전 재산을 정리해서 브라질에 마련한 4천만평의 땅으로 집단 이주하여 마지막 때를 준비하라는 교회도 있습니다.

영적(靈的) 개념(槪念)

속히 될 일이란 시간과 공간과 인물 중심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묵시문학의 특징인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영적 세계에서는 시간 개념과 장소 개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속히’라는 말은 ‘확실히’ ‘틀림없이’ 라는 속뜻으로 ‘반드시 될 일’이라고 해석해야 합니다.

“속히” 라는 의미를 ‘문자적’으로 또는 ‘인위적’인 방법으로 해석하면 본질에서 벗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묵시문학의 특성을 전제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묵시문학에서 “속히” 라는 의미는 “확실히” 또는 “틀림없이” 라는 뜻으로 “속히 될 일”이란 “반드시 일어날 일”이란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속히 될 일’이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이므로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2천년이 지나도 오시지 않았기에 아마 오시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속히 오리라는 말씀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반드시 실현 될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전개 이야기)
미국 여성 최초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펄벅 여사는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어느 해 중국에 극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 그녀가 살던 마을에 백인 선교사의 가족들이 우리 마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신이 분노하여 가뭄이 계속 된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 소문은 점점 분노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어느 날 밤에 마을 사람들이 삽, 곡괭이, 쇠스랑 등 농기구를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온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외국 출장 중이라 집에는 어머니와 어린 펄벅밖에 없어서 아무런 대책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찻잔을 모두 꺼내 차를 준비하고 케이크와 과일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을 초대한 것처럼 대문과 집안의 모든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린 펄벅에게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하시고 어머니는 바느질감을 잡았습니다.

얼마 뒤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대문이 굳게 잠기고 집안은 깜깜할 것이라고 여기고 횃불을 들고 펄벅의 집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대문이 열려있어 마당으로 들어섰더니 모든 방문이 열려 있고 방마다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또한 방마다 차와 케이크 그리고 과일이 차려진 것을 보고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멈칫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정중하게 마을 분들을 맞이하며 “어서 오십시오. 정말 잘 오셨습니다.
방으로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씩 드시면서 말씀하십시오.”
그 말을 듣고 더 어리둥절 하는데 그들 중 어느 한 사람이 횃불을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가자 다른 사람들도 그를 뒤따라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구석에서 놀고 있는 아이와 어머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더니 차를 마시고 케이크와 과일을 먹고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습니다.
훗날 어머니는 어른이 된 펄 벅 여사에게 그날 밤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고 합니다.

“그날 밤 조금이라도 도망칠 방법이 있었다면 도망치다가 잡혀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살벌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다른 골목에서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인지라 모든 것을 각오하고 그런 용기를 내어 보았단다.”

그리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용기는 절망에서 생긴다.”
이 말은 펄 벅 여사가 절망적인 순간에 항상 떠올리는 말이 되었다고 합니다.

속히 될 일속히 오리라는 약속으로 반드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아직 주님께서 다시 오시지 않았다는 것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주님의 사랑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 속히 오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직 오시지 않으셨을까요?
그 이유는 주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속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 급히(ταχύ) 사화하라 - 속히(ταχύ) 사화하라 

(현대인 성경) 타협하라
(공동번역) 화해하여라
(새번역) 화해하도록 하여라

‘사화하다’(유노온, 능동형)는 상처를 준 사람이 먼저 해야 할 일입니다. 
사화(사과)는 상처를 준 사람이 해야 하고, 화해는 상처를 받은 사람이 해야 합니다. 사화와 화해가 이루어진 것을 합의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8:7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 빨리(ταχύ) 가서 - 속히(ταχύ)  가서  

성도들이 속히 해야 할 일은 부활의 소식을 빨리 가서 알려야 합니다. 
종말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부활의 소식을 빨리 알리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적인 종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만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지라도 여전히 유대인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부활의 소식을 전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함께 나누며 주님 오실 그 날을 함께 준비할 수 있는 믿음으로 무장해야 하겠습니다.

속히 될 일이란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이라는 사건입니다. 주님이 속히 오신다고 하셨기 때문에 속히 오실 때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까?

20:15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21:27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이름은 등과 기름을 예비하는 사람입니다.
등과 기름을 예비하기 위해서 속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우리 주위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 것으로 구원받은 것으로 신앙생활의 감격이 없고 감사가 없다면 교회에 다닌다는 것뿐이지 신앙의 즐거움을 누리지 못하는 부족한 것이 있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생명책에 기록된 이름을 자랑하며 즐거워 할 것입니다.

아쉬운 것은 요한계시록을 가르치거나 설교하는 사람들이 “속히 될 일”에 대한 주제를 현실 세계에서 나타는 현상과 징조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시대의 징조와 현상은 잘 몰라도 등과 기름을 예비한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주님을 영접할 수 있다는 비유의 가르침과 같이 “속히 될 일”을 말씀하신 감추어진 은혜를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속히 될 일”이란 용어가 요한계시록에서 두 번 사용된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1:1, 속히 될 일
22:6, 속히 되어질 일

속히 될 일 또는 속히 되어질 일은 무엇인가?

3:11,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7,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12, 속히 오리니(I am coming soon!)  
22:20, 속히 오리라(I am coming soon.) 


속히 될 일은 속히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때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를 기준으로 대략 2천

년 전의 예언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언한 내용이 아직도 성취되지 않았다면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정말 그 예언을 믿고 기다리고 있을까요? 인간의 평균 수명이 80 또는 90이라고 한다면 속히 오실 것이란 예언을 믿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속히 오리라고 예언하셨을까요?

미래에 나타날 현상과 징조들을 알려고 할 것이 아니라 짧은 인생을 살면서 반드시 속히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적인 삶은 무엇일까요? 속히 라는 단어가 사용된 성경에 소개된 말씀을 찾아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시험을 치룬 줄 압니다. 시험 일자가 발표되면 모든 학생들이 시험공부를 합니다. 시험 일자가 중요합니까? 시험을 잘 치룰 수 있는 공부가 중요합니까? 시험이 목적이 아니라 시험을 통하여 학생들의 실력을 향상시키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속히 될 일은 반드시 오실 것을 의미합니다. 반드시 오실 주님은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기다리는 것보다 다시 오실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합니다.

속히 오시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에게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입니까? 하고 질문했을 때 부활의 주님께서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속히 오실 주님의 때와 기한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는 성령을 받고 증인의 삶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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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속히 될 일

'반드시'
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이'는 예언적 필연성을 내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섭리대로 일이 확실히 성취될 것을 나타낸다(Loh-meyer).

'속히 될 일'은 하나님의 계시가 미래에 성취될 사건임을 암시한다(4:1; 22:6; 단 2:28, 29, 45, Johnson).

'속히'(엔 타케이)는 본서에 7회나 반복되어 사용되었다(1:1, 2:16; 3:11; 11:14; 22:7,12 ,20)
1. 시간적 성취의 관점으로 해석한다(Vincent, Hengstenbe-rg)
2. 종말론적 임박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계시의 성취의 진행과 확실성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Alford, Johnson, Morris, Mounce).
* 반드시 될 일을 의미한다.

'엔 타케이'는 예기치 못한 때에 갑자기 성취되는 것을 나타낸다.
즉 '엔 타케이'는 인간의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측면에서의 시간적 개념으로(벧후3:8) 하나님의 갑작스런 개입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계시의 성취와 그 확실성을 나타낸다.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본문은 계시의 전달 경로를 나타낸다.
1. 하나님
2. 예수 그리스도
3.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계시의 전달자이며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천사를 통해 자신의 종인 요한에게 전하셨으며, 그 종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전하였다.

여기서 세 번이나 언급되는 '그'(아우투)는 '그리스도'를 지칭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가 본문의 주 동사인 '에세마넨'(지시하신 것이라')의 주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모든 계시의 근원이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께 계시를 전달받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종들, 천사, 그리고 종 요한에게 전달하고 계심을 나타낸다.

한편, '그 천사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아 투 앙겔루 아우투'는 '그 천사를 통해'라는 의미로 천사의 매개적 역할을 나타내며(22:6, 16), '그 종 요한에게'의 헬라어 '토 둘로 아우투 요안네'는 수단이나 기구를 나타내는 여격이 사용되어 요한이 계시 전달의 인간적 수단으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본서의 계시는 하나님의 섭리에서 기원하여 참됨 중보자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천사와 인간적 도구로 말미암아 수신자들에게 전달된다(Sweet, Moffatt, Ironside).  

속히에 대한 키아즘 구조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3: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1: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22: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22: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디모데후서 4:9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ταχεως  / 인간의 시간적 개념 <빨리>    

 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ταχει  / 하나님의 시간적 개념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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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ταχύ — “속히, 신속하게”

ταχύ
발음: 타퀴(tachy)
기본형: ταχύς (tachys) = 빠른, 신속한

문법적으로는 형용사 ταχύς의 중성 단수 주격/대격형이지만, 신약에서는 부사적으로 사용되어 **“속히, 신속하게, 빨리”**라는 뜻을 나타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내가 속히 오리라”**에서 사용됩니다.

Ἔρχομαι ταχύ
Erchomai tachy
“내가 속히 오리라.”

여기서

  • ἔρχομαι = 내가 온다/오고 있다
  • ταχύ = 속히, 신속히

따라서 **ταχύ는 ‘어떤 행동이 얼마나 신속하게 일어나는가’**를 강조합니다.

대표적인 구절:

요한계시록 3:11

Ἔρχομαι ταχύ
“내가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7

Ἰδοὺ ἔρχομαι ταχύ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12, 20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2. τάχει — “속히, 곧, 짧은 시간 안에”

τάχει
발음: 타케이(táchei)
기본형: τάχος (tachos) = 속도, 신속함, 빠름

문법적으로는

τάχος → τάχει

**명사 τάχος의 여격 단수(dative singular)**입니다.

직역하면 **“신속함으로 / 빠르게”**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헬라어에서는 ἐν τάχει라는 관용적 표현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ἐν τάχει
en tachei
“속히, 곧, 짧은 시간 안에”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1:1:

ἃ δεῖ γενέσθαι ἐν τάχει
ha dei genesthai en tachei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여기서

  • ἐν = ~안에, ~으로
  • τάχει = 신속함, 빠름
  • ἐν τάχει = 신속함 가운데 → 속히, 곧

3. ταχύ와 τάχει의 핵심 차이

구분 ταχύ τάχει
기본형 ταχύς τάχος
품사 형용사 → 부사적 사용 명사
형태 중성 단수 여격 단수
기본 의미 빠른, 신속한 속도, 신속함
부사적 의미 속히, 빨리 속히, 곧
대표 표현 ἔρχομαι ταχύ ἐν τάχει
강조점 행동의 신속성 사건이 신속하게 일어남

쉽게 구별하면

ταχύ = “빨리”
어떻게 오는가?
→ “속히 온다.”

ἐν τάχει = “속히/곧”
언제 또는 어떤 시간적 범위 안에서 일어나는가?
→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난다.”


4. 요한계시록 1:1과 22:20을 연결하면

요한계시록은 처음과 마지막에서 이 두 표현을 연결합니다.

처음 — 1:1

ἃ δεῖ γενέσθαι ἐν τάχει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여기서는 ἐν τάχει가 사용됩니다.

마지막 — 22:20

Ναί, ἔρχομαι ταχύ.

“그러하다 내가 속히 오리라.”

여기서는 ταχύ가 사용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즉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

1:1 — ἐν τάχει
속히 일어날 일

22:20 — ταχύ
내가 속히 오리라

22:20 — ἔρχου
오시옵소서

중요한 신학적 포인트

ἐν τάχειταχύ 모두 단순히 “시간이 짧다”라는 뜻만으로 제한해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문맥에서는 종말의 사건이 하나님의 결정에 따라 확실하고 신속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특히 “속히”를 헬라어 하나만 가지고 “반드시 몇 년 안에”라는 식으로 시간표를 계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문맥상 핵심은 그 사건의 확실성, 임박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긴박한 기대입니다.




“속히 오리라”와 “마라나타”는 모두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초대교회의 신앙 고백이지만, 
문법적으로는 서로 매우 다른 표현입니다.  

 “속히 오리라” — ἔρχομαι ταχύ

요한계시록 22:20  /   Ναί, ἔρχομαι ταχύ.
                                  Nai, erchomai tachy
                                  “그러하다, 내가 속히 오리라.”

문법 분석

헬라어 형태 의미
Ναί 부사 참으로, 그렇다, 확실히
ἔρχομαι 현재 중간태/수동태 형태, 직설법, 1인칭 단수 내가 온다 / 내가 오고 있다
ταχύ 형용사 ταχύς의 중성형, 부사적 용법 속히, 신속하게

특히 중요한 것은 ἔρχομαι입니다. 
ἔρχομαι는 현재형이지만 미래적 의미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내가 온다, 속히.”라는 느낌이며, 자연스럽게 “내가 속히 오리라.”로 번역합니다. 

 “마라나타” — Μαράνα θά

  고린도전서 16:22의 마지막 부분 :  Μαράνα θά.

  한국어로 흔히 “마라나타”라고 읽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헬라어 단어가 아닙니다. 
  아람어(Aramaic) 계열의 표현을 헬라어 문장 안에 그대로 음역한 것
입니다. 
  즉,  Μαράνα θά → Μαράναθά → 마라나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라나타의 구성

가장 일반적인 분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מָרַן + אֲתָא

מָרַן אֲתָא
Marān ’ăthā  
“우리 주께서 오셨다 / 우리 주께서 오신다”

여기서 :  מָרַן — Maran  “우리 주”

  • מָר (mar) = 주, 주인
  • ־ן = “우리의”라는 1인칭 복수 소유 형태

따라서  מָרַן = 우리 주 

אֲתָא — ’atha

아람어 동사 אתא에서 온 형태로, “오다”라는 의미입니다.

문맥과 문법적 분석에 따라 “오셨다 / 오신다 / 오라”와 관련된 여러 해석이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마라나타의 정확한 형태론적 해석에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중요한 다른 분석 : מָרַנָא תָא

또 하나의 중요한 분석은 :  
מָרַנָא תָא
Maranā thā

즉,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호격적 기도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에서는 :  מָרַנָא = 우리 주여 
                          תָּא / תָא = 오라가 되어,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22:20의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와 매우 가까워집니다. 

 “마라나타”의 두 가지 주요 해석

  따라서 마라나타는 크게 두 방향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태 분석      의미
מָרַן אֲתָא      “우리 주께서 오신다 / 오셨다”
מָרַנָא תָא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특히 초대교회의 예배와 종말론적 기도라는 문맥에서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의미가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속히 오리라”와 “마라나타”의 결정적인 차이

두 표현을 비교하면 아주 아름다운 구조가 나타납니다.  

예수님의 말씀  /   ἔρχομαι ταχύ  Erchomai tachy “내가 속히 오리라.” 
예수님의 약속  /
 
교회의 응답  /  Μαράνα θά  Maranatha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교회의 기도  /  
즉,  예수님 : “내가 속히 오리라.”
      교회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이것이 요한계시록 22:20에서 실제로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 22:20의 놀라운 구조

전체를 보면 :  Ναί, ἔρχομαι ταχύ.
                      “그러하다, 내가 속히 오리라.”

이에 대한 요한의 응답 :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여기서 ἔρχομαιἔρχου가 서로 대응합니다. 

예수 /  ἔρχομαι = “내가 온다”
교회 /  ἔρχου = “오십시오 / 오시옵소서”

ἔρχου는 동사 ἔρχομαι현재 중간태 명령법 2인칭 단수입니다.

따라서 :  ἔρχομαι → 내가 온다
               ἔρχου → 오라 / 오시옵소서 라는 놀라운 대화 구조가 됩니다.  

 “마라나타”와 “마라나타적 신앙”

이를 신학적으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

  Ἔρχομαι ταχύ — “내가 속히 오리라.”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Μαράνα θά — “마라나타. 

 주님의 약속 → 교회의 응답 →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 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마지막은 이 긴장을 아름답게 남겨 놓습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따라서 “마라나타”는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라, 초대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드린 
 종말론적 신앙고백· 기도
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마라나타(Maranatha)는 초대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과 기도를 압축적으로 표현한 
아람어 계열의 신앙고백입니다.  

표기

구분 표기 발음
아람어 מָרַנָא תָּא 또는 ܡܪܢ ܐܬܐ 계열         마라나타
헬라어 음역             Μαράνα θά         마라나타
영어             Maranatha     머러내서/마라나타
한국어               마라나타

신약성경에서는 고린도전서 16:22에 헬라어 본문 안에 아람어 표현을 음역한 Μαράνα θά가 그대로 등장합니다.  

Εἴ τις οὐ φιλεῖ τὸν κύριον, ἤτω ἀνάθεμα. Μαράνα θά.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마라나타.”

 마라나타의 문법적 분석 
 מָרַנָא תָּא (māranā thā)를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합니다.

 ① מָרַן — māran  

 “우리 주”

  • מָרַן (māran) = 우리의 주, 우리 주님
  • מָר (mar) = 주(主), 주님
  • -ן (-an) = “우리의/우리”를 나타내는 요소로 이해  

② תָּא — tā / thā

“오다” 또는 “오십시오”

아람어 동사 אתא (ʾtʾ), “오다”에서 나온 형태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מָרַנָא תָּא
                              Māranā thā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주께서 오신다”라는 의미도 가능한가?

여기서 중요한 문법적 논점이 있습니다. 
Maranatha는 고대 아람어에서 형태를 어떻게 분절하느냐에 따라

 A. 마라나 타 Mārānā thā 
     “우리 주여, 오십시오!” 
라는 기도·간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B. 마란 아타 Māran ʾathā 
     “우리 주께서 오신다 / 오셨다.” 
라는 선언· 고백으로 이해하는 견해도 있습니다.

따라서 마라나타는 초대교회에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재림 간구와 
“우리 주께서 오신다.” 라는 재림 신앙의 고백이라는 두 방향으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다만 고린도전서 16:22의 문맥에서는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기도적 의미가 특히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성경에서 어디에 사용되는가?

  고린도전서 16:22  
  Μαράνα θά.  “마라나타.”

바울은 서신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 아람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고린도교회가 헬라어를 사용하는 교회였음에도 아람어 계열의 신앙고백을 그대로 보존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초대교회의 매우 오래된 신앙 표현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과 마라나타의 관계

마라나타라는 단어 자체가 요한계시록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신앙적 내용은 요한계시록의 마지막과 정확하게 연결됩니다.

 
요한계시록 22:20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리고 성도는 이렇게 응답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헬라어 :  Ἀμήν· ἔρχου, κύριε Ἰησοῦ. 
              Amēn; erchou, kyrie Iēsou.

  • Ἀμήν — 아멘
  • ἔρχου — 오라, 오십시오
  • κύριε — 주여
  • Ἰησοῦ — 예수여

즉,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입니다.

이 표현은 사실상 마라나타의 헬라어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마라나타”와 “속히 오리라”의 관계

두 표현을 나란히 놓으면 매우 아름다운 구조가 나타납니다.

표현 주체 방향 의미
“내가 속히 오리라” 예수 그리스도     예수 → 교회                  재림의 약속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교회     교회 → 예수                  재림의 간구
“마라나타”  초대교회     교회 → 주님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신앙고백

그래서 요한계시록 22:20은 
  예수 :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교회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약속과 응답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라나타의 신학적 의미

마라나타는 단순히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미래 예언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세 가지 신앙이 들어 있습니다.

예수는 “주”이시다.
   → Maran — 우리의 주

예수는 다시 오신다.
  → thā / ἔρχου — 오시다

교회는 그 오심을 기다린다.
  →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따라서 마라나타 = 주님의 재림을 믿고, 기다리고, 간구하는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마라나타(Maranatha)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교회의 간구이자 신앙고백이며, 
요한계시록 22:20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깊이 연결됩니다.

특히 앞서 살펴보신 “반드시 속히 될 일” → “속히 오리라” → “마라나타”**를 연결하면,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적 메시지를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 22장(한글 개역 성경)


요한계시록 1장 - 22장(본문) 한글개역 성경

요한계시록의 구조

1장 : 서론
2-3장 : 일곱교회를 향한 말씀
4-5장 : 하늘 보좌
6-16장 :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12-14장 /  붉은 용,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땅에서 올라온 짐승
  15-16장 / 일곱 재앙 일곱 대접
17-18장 : 큰 음녀, 바벨론
19장 : 백마 탄 예수, 어린 양 혼인 잔치,  용의 세력에 대한 승리
20장 : 천년 동안 왕 노릇, 곡과 마곡의 잔쟁,  흰보좌 심판(백보좌 심판)
21-22장 : 새 하늘과 새 땅(신천지),  거룩한 성 예루살렘

프롤로그 (요한계시록 1장 1-8절)
서론 (요한계시록 110: 성령에 감동되어)

  1:9~20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환상

  2~3장 부활하신 예수께서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일곱 메시지

-구약의 패턴 활용

본론 (요한계시록 42: 성령에 감동되어)

  4~5장 : 하늘 환상(6~16장에 대한 기초를 마련)

  6~16장 : 세상을 향한 심판과 교회의 구속

결론(이중적 결론)

  첫째 결론 (요한계시록 173: 성령에 감동되어)

  17:1~19:10 바벨론의 멸망

  19:10~20:15 두 짐승/ 용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

  19:1~21:8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

둘째 결론 (요한계시록 2110: 성령에 감동되어)

  21:9~22:9 새 예루살렘의 영광

  21:2, 9~10 그리스도의 신부, 어린 양의 아내

에필로그 22:6~21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Ἀ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
발음 : 아포칼립시스 이오안누
직역 : “요한의 계시”

  • Ἀποκάλυψις (apokalypsis, 아포칼립시스)
    • 뜻: 계시, 폭로, 드러냄, 베일을 벗김
    • ἀπό = ~로부터, ~에서 벗어나
    • καλύπτω = 덮다, 가리다
    • 따라서 ἀποκάλυψις는 “가려져 있던 것을 벗겨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Ἰωάννου (Iōannou, 이오안누)
    • Ἰωάννης(요한)의 속격
    • “요한의”라는 뜻입니다.

2. 성경 본문의 첫 단어

요한계시록 1:1은 헬라어로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아포칼립시스  이에수 크리스투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가 속격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의미가 함께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그러므로 책의 제목을 단순히 “요한계시록”이라고 부르지만, 
성경 자체가 강조하는 중심은 “요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3. 핵심 구조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διὰ τοῦ ἀγγέλου αὐτοῦ
→ 그의 천사를 통하여

τῷ δούλῳ αὐτοῦ Ἰωάννῃ
→ 그의 종 요한에게

즉,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하나님의 종들

이라는 전달 구조로 나타납니다.

특히 Ἀποκάλυψις는 “미래를 미리 알려 주는 책”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가 핵심입니다.


"요한계시록"이란 책명(冊名)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계시(啓示. 아포칼룹시스)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다만 그것을 기록한 것으로 계시를 전달하는 중간 매체 역활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그 계시를 이해한 장본인(張本人)으로 제목을 정한다면 "요한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복음서 책명(冊名)도 마찬가지라고 하겠습니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전한 예수의 복음"
마가복음은 "마가가 전한 예수의 복음"
누가복음은 "누가가 전한 예수의 복음"
요한복음은 "요한이 전한 예수의 복음" 이렇게 책명(冊名) 정한다면 복음서를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계시(啓示. Revelation. 아포칼룹시스)는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낸 사건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계시를 특별계시라고 합니다.
반면에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안에 하나님의 ‘모습'이 감추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연과학도 관심을 갖고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계시의 본질로 여깁니다.

"속히(타코스. tachŏs)  τάχος"는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1. 헬라어 원문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ἣν ἔδωκεν αὐτῷ ὁ Θεός,
δεῖξαι τοῖς δούλοις αὐτοῦ,
ἃ δεῖ γενέσθαι ἐν τάχει,
καὶ ἐσήμανεν ἀποστείλας διὰ τοῦ ἀγγέλου αὐτοῦ
τῷ δούλῳ αὐτοῦ Ἰωάννῃ.

핵심적으로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곧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셔서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보이게 하신 것인데, 그의 천사를 보내어 그의 종 요한에게 그것을 알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ἀποκάλυψις (apokalypsis) = 감추어진 것을 벗김, 드러냄, 계시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계시”가 인간이 하나님께 올라가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감추어진 것을 열어 보여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Ἰησοῦ Χριστοῦ는 문법적으로 두 방향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2.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

요한계시록 1:1의 문맥에서는 둘 다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하는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 입니다.

계시의 전달 구조

이 한 절에는 놀라운 5단계 전달 구조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종들

본문의 동사를 중심으로 보면 

하나님이 주시고  →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내시고  → 천사를 보내시고  → 요한에게 지시하시고  → 종들에게 보여 주십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요한 개인의 묵상이나 상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계시의 전달입니다. 

 “반드시” — δεῖ

δεῖ (dei)  = 반드시 해야 한다 /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δεῖ Storng number 1163 
Pronunciation  [ dĕi ] 
Etymology / 부정사 δεῖν, 가정법 δέῃ, 미완료 ἔδει, 비인칭동사 1210의 현재능동3인칭단수, δεόν의 능동태분사에서 유래    
  •  I. 반드시 ~ 해야 한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필연적인 계획과 섭리를 나타냅니다.

본문의 ἃ δεῖ γενέσθαι는 “반드시 일어나야 할 것들”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종말 사건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반드시 성취될 일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속히” — ἐν τάχει

ἐν τάχει (en tachei) = 속히, 신속하게, 지체 없이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속히”라는 말이 반드시 “요한이 본 직후 몇 년 안에”라는 뜻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의 종말론적 문맥에서는 사건이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신속하게 진행될 것, 그리고 언제 임할지 모르는 주님의 재림을 깨어 기다려야 한다는 긴박성을 포함합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도 같은 긴박성이 반복됩니다. 

“내가 속히 오리라.” — 요한계시록 22:12, 20

그러므로 “반드시”는 확실성, “속히”는 긴박성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종들에게” — τοῖς δούλοις αὐτοῦ

δοῦλος (doulos)
= 종, 노예, 주인에게 속한 사람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종”**이라고 부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사람은 단순히 미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

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종말의 암호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 주는 책입니다. 

“보이시려고” — δεῖξαι

δείκνυμι (deiknymi) = 보여 주다, 나타내다, 가리켜 보이다

본문의 δεῖξαι는 “보여 주기 위하여”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요한계시록이 단순히 말로 설명되는 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봅니다.

 촛대 → 인자 같은 이 → 보좌 → 어린양 → 인 → 나팔 → 대접 → 용 → 짐승 → 새 하늘과 새 땅

즉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상징과 환상을 통하여 보여 주시는 계시입니다. 

요한계시록 1:1의 핵심 구조

한 절을 구조적으로 정리하면 이렇게 됩니다.

하나님   주심 → 예수 그리스도  계시하심 → 천사  전달함 → 요한  기록함 → 하나님의 종들   듣고 보고 → 반드시 속히 될 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감

 핵심 메시지  
요한계시록은 미래를 맞히기 위한 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 백성에게 반드시 이루어질 일을 보여 주시고, 그 백성으로 하여금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게 하시는 책입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시작해서 “내가 속히 오리라”로 끝나는 것(계 22:20)을 연결하면, 
요한계시록 전체의 중심은 종말의 사건 자체가 아니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더욱 분명해집니다.


요한계시록의 헬라어 명칭은 Ἀ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입니다.

1. 헬라어 표기

Ἀποκάλυψις Ἰωάννου
발음: 아포칼립시스 이오안누
직역: “요한의 계시”

  • Ἀποκάλυψις (apokalypsis, 아포칼립시스)
    • 뜻: 계시, 폭로, 드러냄, 베일을 벗김
    • ἀπό = ~로부터, ~에서 벗어나
    • καλύπτω = 덮다, 가리다
    • 따라서 ἀποκάλυψις는 “가려져 있던 것을 벗겨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Ἰωάννου (Iōannou, 이오안누)
    • Ἰωάννης(요한)의 속격
    • “요한의”라는 뜻입니다.

2. 성경 본문의 첫 단어

요한계시록 1:1은 헬라어로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아포칼립시스 이에수 크리스투)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속격(屬格, Genitive)이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두 가지 의미가 함께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계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계시

그러므로 책의 제목을 단순히 “요한계시록”이라고 부르지만, 성경 자체가 강조하는 중심은 **“요한”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헬라어 문법에서 속격(屬格, Genitive)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속격을 단순히 “~의”라고 번역하면 의미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속격(Genitive)이란?

헬라어 속격은 명사·대명사의 격(case) 가운데 하나로, 기본적으로 소유·관계·기원·부분·성격 등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τοῦ Ἰησοῦ 토우 이에수 = “예수의”

여기서 Ἰησοῦ가 속격입니다.  
τὸ αἷμα τοῦ Ἰησοῦ
“예수의 피”

하지만 속격은 단순한 소유격만이 아닙니다.  

속격의 대표적인 8가지 용법

용법 의미
① 소유 속격 ~의 τὸ βιβλίον τοῦ Ἰωάννου = 요한의 책
② 관계 속격 ~와 관련된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 하나님의 사랑
③ 기원/출처 ~로부터 온 δῶρον τοῦ θεοῦ = 하나님께로부터 온 선물
④ 부분 속격 ~의 일부 εἷς τῶν μαθητῶν = 제자들 중 하나
⑤ 내용 속격 ~을 내용으로 하는 ἡ ἐλπίς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 복음에 대한 소망
⑥ 성격/특징 ~의 성격을 가진 ἄνθρωπος τοῦ θεοῦ = 하나님의 사람
⑦ 목적 속격 ~하기 위한 ἡ ἐπιθυμία τοῦ πλούτου = 부를 향한 욕망
⑧ 주격/목적격적 속격 문맥에 따라 주체 또는 대상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마지막 항목이 특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ἡ ἀγάπη τοῦ θεοῦ  
직역하면,  “하나님의 사랑” 
그런데 속격 τοῦ θεοῦ가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따라 두 가지가 가능합니다.  

1. 주격적 속격(Subjective Genitive)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것. 
 하나님이 사랑하심 즉,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는 사랑

2. 목적격적 속격(Objective Genitive) 

 하나님을 향하여 사람이 가지는 사랑. 
 하나님을 사랑함 즉, “하나님의 사랑” =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따라서 속격 하나만 보고 번역을 결정할 수 없고 문맥을 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예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바울서신에서 유명한 표현이 있습니다. 
πίστ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직역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 
여기서 Ἰησοῦ Χριστοῦ가 속격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1. 주격적 속격 -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믿음 / 신실하심
2.
 목적격적 속격 -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그래서 이것은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의 칭의론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문법적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의”도 마찬가지입니다

δικαιοσύνη θεοῦ = “하나님의 의” 
여기서 θεοῦ는 속격입니다. 
가능한 의미는,  하나님께 속한 의.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  하나님의 의로운 성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따라서 속격 = 무조건 ‘~의’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속격을 해석할 때 가장 중요한 질문 
헬라어 속격을 만나면 다음 순서로 질문하면 좋습니다.

1. 누구의 것인가? →  소유
2.
 누구와 관계되는가? → 관계
3.
 어디에서 오는가? → 출처 / 기원
4. 
전체 중 어느 부분인가? → 부분
5.
 무엇을 내용으로 하는가? → 내용
6.
 누가 행동하는가? → 주격적 속격
7.
 행동의 대상은 누구인가? → 목적격적 속격 
이렇게 문맥을 분석해야 합니다. 

특히 성경에서 중요한 “속격의 핵심” 
헬라어 속격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속격은 단순한 소유를 나타내는 격이 아니라, 두 명사 사이의 ‘관계’를 규정하는 격이다. 
그래서 τοῦ θεοῦ(하나님의)라는 표현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이 소유하신 것인가?”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인가?”
“하나님과 관계된 것인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인가?”
“하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인가?”를 물어야 정확한 해석이 가능합니다. 



3. 핵심 구조

Ἀποκάλυψ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διὰ τοῦ ἀγγέλου αὐτοῦ
→ 그의 천사를 통하여

τῷ δούλῳ αὐτοῦ Ἰωάννῃ
→ 그의 종 요한에게

즉,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하나님의 종들 이라는 전달 구조로 나타납니다. 
특히 Ἀποκάλυψις는 “미래를 미리 알려 주는 책”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져 있던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의미가 핵심입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요한은 증언자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헬라어 증언은 순교와 같은 단어입니다.
자기가 본 것을 증언한다는 말은 순교자와 같은 각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법정에서 거짓으로 증언하는 사람은 법적 처벌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라는 표현에서 그 증거의 어근도 μάρτυς(witness, martyr)입니다.

요한이 증언하는 내용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증거, 또는 증인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요한의 이런 소명은 오늘 우리가 받은 소명이기도 합니다.
어떤 삶을 살아가든지 그 중심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말씀(로고스)이라는 사실을 순교자의 태도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태도라는 말은 어떤 사실에 자기의 전체 운명을 건다는 뜻입니다.


μάρτυς, μάρτυρος, ὁ 스트롱번호 3144

1. 증거.  2. 마 18:16.  3. 롬 1:9
발음 [ martüs ]
어원 / 불확실한 유사어에서 유래
뜻풀이부


I. 증거, 증인
 1. [문자적으로, 법적 의미에서] 마18:16, 막14:63, 행7:58, 고후13:1.
 2. [비유적으로]
  a. [하나님이나 그리스도가 증인이 되시는 경우] 롬1:9, 빌1:8, 살전2:5,10.
  b. [사람의 눈이나 귀로 듣고 보고 증언 하는 것] 살전2:10, 딤전6:12, 딤후2:2.
  c. [하나님의 메시지에 대한] 증인, 계11:3.
3. 순교자, 행22:20, 계2:13, 17:6.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  증인(마 18:16, 막14:63, 눅24:48).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구약의 선지자들은 미래 일을 점쟁이처럼 내다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근거해서 역사를 해석하고 판단하며 방향을 제시하는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요한도 그 선지자들과 비슷한 일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제국 안에서 사는 그리스도인의 처지를 묵시적 역사관으로 해석한 문서입니다.

‘복’이 있다는 저 표현은 마 5장에 나오는 ‘팔복’의 그 ‘마카리오스’입니다.
단어의 어미 변화는 다르긴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삶의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할 때 벌어지는 특별한 사건입니다.
그 복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참된 평화와 안식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죽음까지도 너끈히 극복할 것입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죽음의 세력에 의해서 제한받지 않으시는 분이시니까요.

요한은 여기서 ‘때’(카이로스)가 가까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가리킵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때는 곧 우리에게 복된 순간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카이로스를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요?
그래서 복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매우 중요한 표현이 소개됩니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하나님입니다.
‘장차 오실 이’라고 했으므로 재림할 예수를 가리키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아는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모두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존재를 우리는 직접 경험할 수는 없습니다.

공룡은 과거에만 해당하고 현재와 미래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미래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됩니다.
하나님에게는, 더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에게‘만’ 모든 시간이 ‘현재’라고 말입니다.
이런 표현은 관념적이어서 어딘가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시간에 절대적으로 제한받기에 시간을 초월한다는 게 무엇인지를 실감하기 어렵습니다.
다음의 한 가지 사실만 기억해두십시오.
현대 물리학은 시간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시간도 피조물입니다.
그 시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당연히 그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분’이라고 말해도 되고, 말해야 합니다. ‘장차 오실 분’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실체가 미래에 드러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조금 까다로운, 또는 모호한 설명이지요?

다만 하나님 안에서 제가 영생한다는 사실만은 실제로 믿고 삽니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 안에 들어간다는 게 무엇인지를 열심히 공부하는 중입니다.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우리는 보통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은 ‘땅의 임금들의 머리’라고 합니다. 교회의 머리라고 할 때의 그 머리와 임금들의 머리라고 할 때의 그 머리는 물론 의미가 다릅니다. 교회의 머리라고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인 사이의 유기적 관계라고 한다면, 임금들의 머리라고 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 임금들을 압도한다는 뜻입니다. 세상 임금들, 그러니까 정치 권력자나 경제 권력자들은 정치와 돈에 매달리는 사람들에게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자본이 신으로 섬김받는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그 힘들이 막강하긴 합니다. 그래봤자 잠시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임금이십니다. 죄에서 해방한다는 말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구원해야 한다는 욕망과 강요로부터의 자유를 가리킵니다. 수영할 때 자기 스스로 물에 뜨는 게 아니라 물이 자기를 떠받치듯이 말입니다. ‘그의 피’는 예수 십자가 죽음을 가리킵니다. 예수의 죽음이 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는지를 이론으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아는 게 중요합니다.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그의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그의 하나님’이라고 하든지,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하면 되는데, 굳이 ‘아버지’를 덧붙였습니다. 아람어로는 ‘아빠’라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유대인들은 아주 어색하게 여겼을 겁니다. 모르긴 몰라도 구약성경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표현한 구절은 찾기 힘들 겁니다. 드물게는 있을 수도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시기에 그분에게 이름을 붙이면 안 됩니다. 그분의 형상을 만들어도 안 됩니다. 이름이나 형상은 우리의 인식 범주 안으로 하나님을 끌어들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하나님을 아주 가까이 있는 ‘아버지’로 인식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하나님은 무조건 멀리 계시고 초월적이시고 엄격하신 존재가 아닙니다. 실제로 육신의 아버지처럼 친근하면서 신뢰할만한 존재입니다. 예수로 인해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인식하고 경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무조건 받아주시는 선하신 분이십니다.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어주는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걱정하지 않겠지요. 문제는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을 선하시고 사랑이 충만한 아버지로 경험하면서 사느냐에 달렸습니다.



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볼지어다.’로 시작하는 문장이군요. 예수가 구름 타고 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를 문자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적인 문장입니다. 구름은 두 가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는 예수의 오심이 공개적이라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오심에 권능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유대교 권력자들과 로마 정치 권력자들이 공개적으로 십자가에 처형한 예수로 그들이 오히려 완전히 패배당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아무도 이를 막을 수 없고, 그 누구의 눈도 가릴 수 없습니다. 그 순간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구름 뒤에 감춰졌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온다는 사실만은 분명합니다. 아직 아무 소식이 없으니까 영원히 오지 않을지 모른다는 말은 어리석은 말입니다. 시간의 신비를 모르기에 그런 말을 합니다. 어떤 결정적인 사건이 벌어지면 그 이전에 있던 모든 일은 힘을 완전히 잃기 때문입니다. 이런 요한의 믿음을 이어받는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은 최후의 승리를 내다보고 악한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보다 더 잘 알려진 성경 구절은 흔치 않습니다. 그리스어 알파벳의 첫 자가 알파이고, 마지막 자가 오메가입니다. 알파는 빅뱅 이전을 가리키고, 오메가는 우주의 마지막 이후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알파는 비밀입니다. 오메가도 여전히 모릅니다. 비유적으로, 지금 개인으로서 우리가 어머니 자궁 속을 기억하지 못하고, 죽음 이후 무덤 속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거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 어떤 표상 방식으로도 분명하게 포착할 수 없는 저 아득한 시간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알파까지 가려면 얼마나 돌아가야 하고, 오메가로 가려면 얼마나 더 나아가야 할는지요. 우리의 하나님은 시간 너머이시고, 시간 자체이시고, 시간의 안과 밖이시고, 시간의 주체이십니다. 그래서 요한은 4절에 이어서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라는 표현을 다시 씁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한순간의 인생을 살지만 실제로는 영생을 사는 겁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실제로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다 보니 ‘믿는다’라는 게 참으로 엄청난 사건임이 틀림없군요.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라는 표현이 옳습니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요한은 독자들을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형제입니다. 피를 나눈 형제는 아니나 피보다 더 귀한 신앙 안에서 형제입니다. 이를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바실레이아)와 참음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로 번역한 바실레이아는 통치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보통은 하나님의 나라, 또는 하늘나라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예수의 나라, 즉 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요한 자신이 예수의 운명에 동참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예수를 전하다가 밧모 섬에 갇힌 신세가 되었습니다. 섬에 강제로 유배를 당한 건지 아니면 스스로 피한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유배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쨌든지 요한은 증언자입니다. 순교자이기도 합니다. 증언자로 살려면 순교자 정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금도 손해 보는 걸 못 참는 현대인에게는 참으로 거리가 먼 이야기입니다. 매 주일 설교(증언)하는 목사부터 순교 정신을 최소한 흉내라고 내야겠습니다.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밧모 섬에 본 환상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10절부터 본격적으로 그 내용이 나옵니다. ‘주의 날’은 연월일로 특정할 수 있는 날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영적인 경험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성령에 감동되어’라는 표현은 성경에 자주 나옵니다. 교회 생활에서도 종종 쓰입니다. 단순히 심리적인 작용이 아니라 인격적인 영에 의해서 휩싸이는 경험을 가리킵니다. 인간 심리 문제는 심리학이 다룰 수 있으나 성령 경험은 심리학이 다루지 못합니다. 성령 경험이 심리적으로 나타날 수는 있으나 그 작용의 원인이 인간 내부가 아니라 외부인 하나님에게서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인격적인 존재로 경험할 때 우리는 성령에 감동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령에 감동된다면 악령에 감동될 수도 있습니다. 이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악령이라고 해도 무조건 폭력적이고 파괴적이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주 그럴듯해 보일 수 있습니다. 다만 성령을 따르지 않습니다. 악을 노골적으로 행한다기보다는 선하지 않게 압박하는 힘이 악령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 5:16절 이하에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선한 척하면서 육체를 따르는 일들이 우리에게 자주 일어납니다. 악령의 활동입니다. 뒤돌아보면 저에게도 그런 일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성령의 도우심이라는 말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사용해야겠습니다.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일곱 교회 이름이 여기 나옵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일곱 교회는 지금의 투르키예 서쪽에 위치합니다. 당시에는 그리스 문화권이었습니다. 저 일곱 교회 중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교회는 에베소 교회입니다. 나머지 교회는 제 기억에 여기 요한계시록에만 나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된 시기가 대략 기원후 100년 어간이니까 바울이 활동하던 시대와는 크게 차이가 납니다. 요한계시록 시대의 그 교회들은 신앙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었을 겁니다. 예수 재림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로마 체제는 점점 더 강력해졌고, 유대교는 율법 종교로서의 정체성을 더 확고하게 다져갈 때였습니다. 고립무원에 떨어지는 심정이었겠지요. 지금의 ‘가나안 교인들’처럼 교회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 식어서 많은 이들이 교회를 떠났을 겁니다.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생각하면 짠합니다. 요한은 지금 그들을 한편으로 격려하고, 다른 한편으로 책망하려고 22장에 이르는 긴 글을 쓰는 겁니다.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요한은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10절) 들었다고 합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몸을 돌렸습니다. 정말 중요한 순간입니다. 일단 그런 소리를 듣는 일 자체가 드뭅니다. 여러분은 영혼을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소리라고 해서 모두가 들을만한 가치가 있는 소리는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영혼을 소란하게 만드는 소리가 흔합니다. 잡담도 있고요. 그런 잡담으로 시간을 보낸 다음에는 어딘가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모두가 그쪽을 향해서 몸을 돌리지 않습니다. 급하게 어딘가를 향해서 달려가는 사람은 돌리고 싶어도 돌릴 수 없습니다. 대개는 일상에 마음을 빼앗기기에 특별한 소리라는 느낌이 들어도 그쪽으로 몸을 돌리지 않습니다. 몸을 돌린다는 말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선다는 뜻입니다. 그게 복음서에 나주 나오는 회개(메타노이아)가 가리키는 의미입니다. 귀를 막고 돌아서지 않는 일이 몇 번 반복하다가 언젠가부터는 소리가 아예 들리지 않을 겁니다. 영혼이 녹슬고 경직되는 겁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거와 같습니다.

요한은 자신에게 말하는 이가 누군지를 알아보려고 몸을, 또는 머리를 돌렸습니다. 그의 운명에서 어떤 특별한 일이 일어난 겁니다. 요한의 눈에 먼저 들어온 형태는 일곱 금 촛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자주 나옵니다. 4절에는 일곱 영이 나옵니다. 일곱 교회도 나오고요.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가리키겠지요. 20절을 참고하십시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요한계시록을 누구나 똑같이 생각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에 대한 묘사로 읽으면 곤란합니다. 기자들이 쓴 신문 보도가 아닙니다. 단테의 『신곡』과 비슷합니다. 단테는 거기서 여러 가지 상징 용어를 통해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묘사합니다. 단테는 요한보다 문학적인 상상력이 훨씬 더 풍부하고 요한은 극히 절제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단테가 요한계시록을 읽고 영감을 받지 않았는지요. 단테와 요한은 위대한 시인이자 철학자이자 신학자이고 영성가입니다. 그런 글을 읽을 때 문자 너머에, 그리고 그 심연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그걸 다 볼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요한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자’라고 말하지 않고 인자 ‘같은 이’(ὅμοιον)라고 말한 이유는 궁극적인 대상을 직접 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아무도 궁극적인 대상을 마주할 수 없습니다. 현대 과학이 우주를 연구하지만, 우주 자체를 마주하는 건 아닙니다. 먼 우주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양자의 세계도 그 실체를 알지 못합니다. 예수께서도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만 설명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라는 뜻의 인자(人子)는 세상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보내실 심판자입니다. 후기 유대교에서 나온 묵시적 개념입니다. 일종의 메시아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심판하고 구원할 자가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렇게 발전한 겁니다. 그리스도교회는 그 인자를 예수 그리스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십자가에 처형당해 무덤에 묻혔으나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인자 같은 이’입니다. 그가 다시 오실 때 생명이 완성될 것입니다. 요한은 생명이 완성될 그런 순간을 갈망하는 마음으로 ‘인자 같은 이’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거룩한 갈망이 있는지요. 아니면 대충 재미있게 살면 그만인지요.


13절에서 인자 같은 이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묘사되었습니다. 14절에서 그의 머리털 색깔이 눈처럼 희고, 눈이 불꽃 같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이런 형상을 그려볼 수 있기는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은 지금 인자를 직접 본 게 아니라 ‘인자 같은 이’를 간접으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접으로 보았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눈으로 겨울나무를 보듯이 ‘인자 같은 이’를 본 게 아닙니다. 시인의 영혼으로 겨울나무를 보듯이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요한계시록을 읽도록 노력해보십시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모두 영적인 시인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미처 못 보는 세계를 본 사람들이니까요. 세상은 그렇게 심층적이고 시원적입니다. 저는 2018년 2월4일 설교에서 차창룡 시인의 “겨울나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여기 다시 옮깁니다.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3절에서 인자 같은 이는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고 묘사되었습니다. 14절에서 그의 머리털 색깔이 눈처럼 희고, 눈이 불꽃 같다고 묘사되었습니다. 억지로라도 이런 형상을 그려볼 수 있기는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요한은 지금 인자를 직접 본 게 아니라 ‘인자 같은 이’를 간접으로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간접으로 보았다는 말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우리가 눈으로 겨울나무를 보듯이 ‘인자 같은 이’를 본 게 아닙니다. 시인의 영혼으로 겨울나무를 보듯이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의 눈으로 요한계시록을 읽도록 노력해보십시오. 구약의 선지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은 모두 영적인 시인들입니다. 다른 사람이 미처 못 보는 세계를 본 사람들이니까요. 세상은 그렇게 심층적이고 시원적입니다. 저는 2018년 2월4일 설교에서 차창룡 시인의 “겨울나무”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여기 다시 옮깁니다.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인자 같은 이’에 대한 요한의 묘사가 이어집니다. 그의 발은 너무 단단해서 빛을 발하는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영혼을 정화하는 맑은 물소리와 같다고 합니다. 인자 같은 이에게 실제로 발이 있는 건 아니겠지요. 그가 우리 귀에 들리는 음성으로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요한은 지금 어떤 절대적인 경험을 당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서 표현하는 중입니다. 단순한 상상력이 아니라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은 정도로 분명한 경험입니다.

현대인들은 절대적인 경험을 무시하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과학의 논리에 딱 떨어지는 것만을 진리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게 계몽주의가 만들어낸 한계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합니다. 과학 실증주의의 인과론적 논리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일부터 모른 척하는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자본을 숭배하는 자본주의가 완벽하게 지배하는 21세기에는 절대 세계에 대한 거룩한 상상력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안에, 내가 그리스도 안에!’라는 바울의 진술을 자연과학의 인과율이나 천박한 자본 논리로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요한이 경험하는 절대적인 세계에서 아무런 울림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영혼이 빈곤한 겁니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인자 같은 이’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다고 합니다. 일곱 별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를 지키는 천사별이라 할 수 있어요. 고대인에게 별은 신비 중의 신비였습니다. 점성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 탄생 이야기에 나오는 동방 박사들이 곧 점성술사들입니다. 당시 점성술은 첨단 과학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는 옛날 사람들보다 별에 관해서 훨씬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태양도 우주의 많은 별과 비슷한 별입니다. 태양에서 또 하나의 태양이라 할 수 있는 별까지의 거리가 대략 2.5광년이라고 합니다. 엄청난 거리입니다. 그런 별들이 은하계에서 1천만~2천만 개나 됩니다. 그런 은하계가 또 수천만 개나 된다고 합니다. 상상할 수 없는 숫자이고, 크기입니다. 성경 시대 사람들이 하늘의 별에 관한 지식이 부족했다고 해서 무시하면 곤란합니다. 그 모든 우주의 비밀을 여전히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이나 우리나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인자 같은 이’의 입 좌우에서 날카로워서 잘 드는 검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게 메타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걸 실제 형상으로 본다면 괴물이 연상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서 필요 없는 부분을 날선 검으로 제거하여 건강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 사실을 겉으로만 아는 사람이 있고, 실제로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로 느끼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이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일종의 종교 동아리 모임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런 방식으로라도 교회에 소속되는 게 좋기는 하나, 바람직한 모습은 전혀 아닙니다.





17.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요한은 ‘인자 같은 이’ 앞에서 죽은 자 같이 되어 엎드렸다고 합니다. 앞에서 묘사된 그런 형상을 직접 본다면 누구라도 마치 외계인을 본 것처럼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을 겁니다. 사실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도 충격을 받을만한 형상은 많습니다. 거미줄에 앉아있는 거미는 신기하고 예쁘게 보이지만, 거미가 인간과 같은 크기로 변했다고 상상해보십시오. 개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크기의 개미를 우리가 본다면 오금이 저릴 겁니다. 요한은 지금 이상한 형상 자체를 말하려는 게 아니라 신적 경험을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경험은 본질에서 두려움이고, 엎드림이고, 충격입니다. 모세가 호렙산에서 신을 벗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려면 일단 익숙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책상, 컴퓨터, 커피, 가족, 교회 등등, 이런 익숙한 것들이 아닌 어떤 세계를 표상하고 경험하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지하던 모든 대상이 의지할 수 없는 대상이라는 사실도 절감해야 합니다. 그게 쉽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면서 익숙한 것에서만 삶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아이들은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세계를 경험합니다. 인형과 대화할 줄 압니다. 이불 속의 어둠에서 어떤 존재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으면서 완전히 익숙한 것들에 매달려 삽니다. 티브이 드라마와 홈쇼핑과 주식과 통장과 스마트폰에 매몰됩니다. 좋은 쪽으로는 가족과 친구에게 매몰됩니다. 죽은 자처럼 ‘인자 같은 이’ 앞에 엎드리는 경험이 없습니다. 이게 구원일까요? 참되고 영원한 삶일까요?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인자 같은 이’이신 예수께서는 전에 죽은 적이 있으나 이제는 ‘세세토록’ 살아 있는 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실감하기 까다로운 표현입니다. 직관적으로는 예수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문제는 부활의 현실(reality of resurrection)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이 복잡한 문제를 여기서 길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일단 ‘살아 있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를 살피면 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체는 죽어 끝장나는 것으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죽음으로 끝장나지 않을 때, 또는 죽음에 갇혀있지 않을 때 우리는 ‘살아 있다.’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그런 존재가 되었다고 본문이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가 그에게 주어졌다고 말한 겁니다. 음부(하데스)는 죽은 자들이 가는 곳을 가리킵니다. 지옥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사망과 음부는 ‘살아 있는 자’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사망과 음부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인자 같은 이’가 갖고 있다는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죽음의 세력에서 벗어났다는 뜻입니다. 가장 기초적인 그리스도교 교리로 바꾸면 죄와 죽음에서의 해방입니다. 더 간단하게 바꾸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구원 교리를 요한은 묵시적 언어로 표현했습니다. 그는 초기 그리스도교 저술가 중에서 가장 특이한 문장을 구사한 저술가인 셈입니다. 바울처럼 로마 문명에 딱 어울리게 표현하든지 요한처럼 후기 유대교의 묵시사상에 딱 어울리게 표현하든지는 둘째고, 중요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발생한 복음을 제대로 해석하고 드러내는 일이겠지요. 두 사람 모두 우리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소중한 저술가임이 틀림없습니다.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요한은 이제 세 차원의 일을 기록할 계획입니다. 이미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이 그것입니다. 이런 삼중 구조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계 1:4, 8)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요한은 교회 전승을 통해서 내려온 예수의 공생애를 알고 있었을 겁니다. 구전도 있고, 문서 전승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상당한 정도로 인정받는 전승들입니다. 예수의 공생애에서 일어난 일을 압축하면 복음 선포입니다. 예수 자신이 복음입니다. 그 복음 선포는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요한은 지금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회람 방식으로 글을 쓰지만 마게도냐와 아가야 지역, 그리고 이탈리아 로마 지역 소식도 알았을 겁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 소식도 알았겠지요. 복음은 과거라는 역사에 뿌리를 내렸으니 지금 현재 실행되는 성령의 활동입니다.

요한은 궁극적인 미래를 내다봅니다. 그 미래도 예수로 인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이 대목이 약간 까다롭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궁극적인 미래를 어떻게 볼 수 있다는 말인지요. 요한이 ‘본 것’과 지금 일어나는 일을 분명하게 안다면 장차의 일도 내다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일은 과거나 현재의 일과 똑같은 방식으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묵시적인 방식으로 글을 쓰는 중입니다. 미래에 대한 그의 묵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틀린다거나 틀리지 않는다는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머지않아서 남북한이 통일을 이룰 것으로 생각합니다. 여기서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은 믿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희망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통일이 안 되더라도 저의 이런 믿음이 잘못되었다거나 희망이 망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제자들에게 ‘살아 있는 자’로 나타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올 것이라는 요한의 묵시를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요한은 이제 그 놀라운 일을 기록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가 그 명령에 순종했기에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 중에서 아주 특이한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런 명령을 받은 요한의 영혼이 얼마나 강렬하게 약동했을지를 생각하면 성경의 감탄사인 ‘보라.’와 ‘아멘’을 저도 외칠 수밖에 없습니다.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인자 같은 이’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개의 별을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자(앙겔로스)는 천사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일곱 교회를 지켜주는 천사로 봐도 됩니다. 요한은 교회를 지켜주는 특별한 존재가 있다고 본 겁니다. 천사가 무조건 지켜줄 수는 없습니다. 교회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할 때만 천사가 지켜줄 수 있겠지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입니다. 13절에서 요한은 이미 일곱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아주 신비하고 이상한 모습으로 머물렀다고 짚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함께하신다는 뜻입니다. 당시 교회 지도자들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생각이 훗날 회의를 통해서 교리로 결정됩니다. 바울의 편지에 그런 관점이 분명하게 나옵니다. 교회는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머리입니다. 모든 지체는 머리를 중심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습니다. 손과 발이 서로 배척하면 몸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한 지체가 아프면 모든 지체가 아픕니다. 잘난 지체도 없고, 못난 지체도 없습니다. 약한 지체가 더 소중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요한은 2장과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향해서 칭찬할 것은 칭찬하고 책망할 일은 따끔하게 책망합니다. 우리를 향한 죽비로 생각하고 그 말씀을 천천히 따라가 봅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2장



칭찬만 들었던 교회 

 1. 빌라델비아교회

 - 작은 능력으로 주의 명령을 지킨 것,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

 2. 서머나교회

책망만 들었던 교회

 1. 사데교회
 2. 라오디게아교회

칭찬과 책망을 겸하여 들었던 교회

 1. 에베소교회
 2. 버가모교회
 3. 두아디라교회


요한계시록 2장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찌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줄 알찌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3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8.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요한계시록 4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세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네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9.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

1.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7.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8. 책을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들이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하리로다 하더라

11.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요한계시록 6

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되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7.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9.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12. 내가 보니 여섯째 인을 떼실 때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총담 같이 검어지고 온 달이 피 같이 되며

13.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선 과실이 떨어지는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14.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매

15.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16.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17.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7

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2.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4. 내가 인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맞은 자들이 십 사만 사천이니

5. 유다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요 르우벤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갓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6. 아셀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납달리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므낫세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7. 시므온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레위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잇사갈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8. 스불론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요셉 지파 중에 일만 이천이요 베냐민 지파 중에 인맞은 자가 일만 이천이라

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13.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17.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요한계시록 8

1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2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6일곱 나팔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예비하더라 7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서 사위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서 사위고 각종 푸른 풀도 타서 사위더라
8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지우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9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어지더라 10세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샘에 떨어지니 11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12네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침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췸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13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 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9

1.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저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저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풀무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인하여 어두워지며

3. 또 황충이 연기 가운데로부터 땅 위에 나오매 저희가 땅에 있는 전갈의 권세와 같은 권세를 받았더라

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5.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6. 그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얻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저희를 피하리로다

7. 황충들의 모양은 전쟁을 위하여 예비한 말들 같고 그 머리에 금 같은 면류관 비슷한 것을 썼으며 그 얼굴은 사람의 얼굴 같고

8. 또 여자의 머리털 같은 머리털이 있고 그 이는 사자의 이 같으며

9. 또 철흉갑 같은 흉갑이 있고 그 날개들의 소리는 병거와 많은 말들이 전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소리 같으며

10. 또 전갈과 같은 꼬리와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에는 다섯달 동안 사람들을 해하는 권세가 있더라

11. 저희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히브리 음으로 이름은 아바돈이요 헬라 음으로 이름은 아볼루온이더라

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13.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14.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

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예비한 자들이더라

16. 마병대의 수는 이만만이니 내가 그들의 수를 들었노라

17. 이같이 이상한 가운데 그 말들과 그 탄 자들을 보니 불빛과 자주빛과 유황빛 흉갑이 있고 또 말들의 머리는 사자 머리 같고 그 입에서는 불과 연기와 유황이 나오더라

18. 이 세 재앙 곧 저희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을 인하여 사람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하니라

19. 이 말들의 힘은 그 입과 그 꼬리에 있으니 그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

20. 이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그 손으로 행하는 일을 회개치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21.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요한계시록 10

1. 내가 또 보니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 오는데 그 머리 위에 무지개가 있고 그 얼굴은 해 같고 그 발은 불기둥 같으며

2. 그 손에 펴 놓인 작은 책을 들고 그 오른발은 바다를 밟고 왼발은 땅을 밟고

3. 사자의 부르짖는것 같이 큰 소리로 외치니 외칠 때에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발하더라

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발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

5. 내가 본바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가 하늘을 향하여 오른손을 들고

6. 세세토록 살아계신 자 곧 하늘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땅과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이며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물건을 창조하신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지체하지 아니하리니

7.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 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1

1.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제단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2.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달 동안 짓밟으리라

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4.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두 촛대

5.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찌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터인즉

8. 저희 시체가 큰 성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9.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10.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

11.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가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12.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

13.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세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 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2

1.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2.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4.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5.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6.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 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찐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 갔음이라 하더라

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계시록 13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찌어다

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로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13.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14.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6.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17.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

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육백 육십 륙이니라



요한계시록 14

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 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6.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세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14.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졌더라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한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9.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요한계시록 15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5. 또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며

6. 일곱 재앙을 가진 일곱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맑고 빛난 세마포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7.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8.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을 인하여 성전에 연기가 차게 되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요한계시록 16

1. 또 내가 들으니 성전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일곱 천사에게 말하되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일곱 대접을 땅에 쏟으라 하더라

2. 첫째가 가서 그 대접을 땅에 쏟으매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더라

3.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으매 바다가 곧 죽은 자의 피 같이 되니 바다 가운데 모든 생물이 죽더라

4. 세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으매 피가 되더라

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6. 저희가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저희로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8. 네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으매 해가 권세를 받아 불로 사람들을 태우니

9.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10. 또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으니 그 나라가 곧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11.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고 저희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더라

12. 또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13.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14.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16.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17.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18.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19.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20.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

21.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요한계시록 17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 또 네가 본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8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6. 그가 준 그대로 그에게 주고 그의 행위대로 갑절을 갚아주고 그의 섞은 잔에도 갑절이나 섞어 그에게 주라

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으며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 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14. 바벨론아 네 영혼의 탐하던 과실이 네게서 떠났으며 맛 있는 것들과 빛난 것들이 다 없어졌으니 사람들이 결코 이것들을 다시 보지 못하리로다

15. 바벨론을 인하여 치부한 이 상품의 상고들이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울고 애통하여

16.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이여 세마포와 자주와 붉은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7. 그러한 부가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각 선장과 각처를 다니는 선객들과 선인들과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이 멀리 서서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19. 티끌을 자기 머리에 뿌리고 울고 애통하여 외쳐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이 큰 성이여 바다에서 배 부리는 모든 자들이 너의 보배로운 상품을 인하여 치부하였더니 일시간에 망하였도다

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21. 이에 한 힘센 천사가 큰 맷돌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져 가로되 큰 성 바벨론이 이같이 몹시 떨어져 결코 다시 보이지 아니하리로다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9

1.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3. 두번째 가로되 할렐루야 하더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4. 또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엎드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아멘 할렐루야 하니

5.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

6.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8.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9.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10.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17.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18.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19. 또 내가 보매 그 짐승과 땅의 임금들과 그 군대들이 모여 그 말 탄 자와 그의 군대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키다가

20.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채로 유황불 붙는 못에 던지우고

21.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 고기로 배불리우더라


요한계시록 20

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5.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7.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1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1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리니

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9.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15.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17.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 사십 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18.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19.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세째는 옥수요 네째는 녹보석이요

20.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 한째는 청옥이요 열 둘째는 자정이라

21. 그 열 두 문은 열 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22. 성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24.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25.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26.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2

1.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3.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4.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18.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20.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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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알파와 오메가(1:8, 21:6, 22:13)

처음과 나중(1:17, 2:8, 21:6, 22:13)

시작과 끝(22:13)

장차 올 자, 전능한 자(1:8)

전능한 자(1:8)

1. 창세기 17:1
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창세기35:11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3. 창세기 48:3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한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 복을 허락하여.

4. 민수기 24:4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5. 민수기 24:16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6. 여호수아 22:22
전능하신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께 패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는 오늘날 우리를 구원치 마시옵소서.

7. 욥기 6:14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8. 시편 50:1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9. 요한계시록 1: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시(아포칼립시스, ἀποκάλυψις )


계시(아포칼룹시스, ἀποκάλυψις )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이비 이단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더 나아가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 반사회적이고 비밀스러운 종파가 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타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인 맞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학습하고 과거시험 보듯이 시험보는 신천지 교인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요한계시록 말씀이 얼마나 그들을 세뇌하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책 제목은 계시록 1:1이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계시 혹은 묵시라는 말은 헬라어 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에서 온 말이다.

구약 헬라어 성경에는 명사 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는 전혀 나오지 않고, 다만 외경 집회서에 단 한 번 나온다.
하지만 동사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었다(창 8:13),
율법이 금하는 하체를 드러내다(성적 방종)를 지칭하는데 이 헬라어가 쓰였다(출 20:26; 레 18:6, 8, 9; 20:11; 신 27:20). 
언급하다(룻 4:4), 드러내다(삿 5:2), 나타나다(삼하 3:7)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일반적 뜻과 함께, 신적 계시나 현현에 대해서 히브리어 גלה(가라)의 번역어로서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가 사용되었다(삼하 9:15).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시가 드러나다의 의미로서 이 단어는 ‘묵시록’ 장르에 속하는 다니엘서에 등장한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ἀπεκαλύφθη , revealed 부정과거 수동태),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라”(2:19)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ἀποκαλύπτω),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2:22).

다니엘서는 ἀποκαλύπτω(아포칼립토)라는 용어를 하나님의 신적이고 비밀스러운 계시행위에 적용하여 특별히 사용한다.
다니엘서 7장부터 나타나는 환상들은 신구약 중간시대에 있었던 헬라 왕조의 유대교 박해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말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에 의한 기독교신앙의 핍박 상황에서 역사의 종말을 계시록의 저자가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묵시문학은 신구약 중간시대나 기독교 신앙 박해 시대에서 저자 미상의 책들로 많이 출현하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동사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다만 명사 ἀποκάλυψις(아포칼립시스)가 1:1에 나타날 뿐이다.

환상과 관련된 계시(아포칼립시스)가 나오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은 박해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고, 특별히 순교자를 칭송하며, 신앙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순교자는 궁창의 별처럼 빛나고(단 12:3), 주님과 함께 천년 통치하는 첫째 부활의 참여자가 된다(계 20:6).

이 책들은 미래적 사건이나 종말의 때를 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종말의 때, 혹은 메시아의 나라의 시기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분명한 거부와 부정을 강조하고 있다(눅 19:11; 행 1:7).

요한계시록을 ‘때와 시기’에 관한 책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 나팔, 대접의 환상 시리즈는 이미 선포된 예수의 종말 예언(막 13장)에 대한 반복과 강화일 뿐이며,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선지자 전승’에 속한 종으로서(계 22:9), 재앙과 종말, 회복과 구원에 대한 구약성경의 이야기와 선지서의 예언에 나오는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신이 처한 로마제국 상황에 적용하고 해석할 뿐이다.

때와 시기를 특정하는 시한부 종말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책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숫자는 결코 문자적 의미가 없고 상징적일 뿐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신적 권위로 로마와 황제를 우상숭배하는 시대적 조류에 반응하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해 칭찬과 책망을 하고 있다.

밧모 섬에 유배당하여 주의 날에 교회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선지자 요한은(계1:10),  환상 가운데 보게 되는 하늘의 예배에 울려 퍼지는 승전가를 듣기도 하고 종말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편지형식으로 교회에 전해지고, 애굽의 군사들이 홍해에 수장된 후에 모세가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 모세의 노래는 이제 어린 양 예수의 노래가 되고, 교회의 새 노래, 즉 승전가가 된다(계 15:3).

요한계시록은 결코 ‘때와 시기'에 대한 묵시가 아니다.
애굽과 바벨론처럼 로마제국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 무너지는 제국이 될 것이며, 종말은 땅을 망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되고, 성도들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는 책이다.
모든 사이비 이단의 요한계시록의 묵시해석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을 사용할 때(갈 1:12),
그 계시(ἀποκάλυψις )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이방에 전하도록 그에게 계시로 나타나셨다(ἀποκαλύπτω, 갈 1:16) 고 말한다.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고(롬 1:17), 믿음의 때를 계시한다(갈 3:23)고 선포한다.

계시라는 용어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나타나심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묵시적 종말을 이야기하지만(고전 1:7; 살후 1:7)바울에게서 계시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주려는 계시인 것이다.

‘때와 시기’에 대한 계시는 없다.
주님의 말씀처럼,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행 1:7). 
때와 시기의 묵시를 말하면 다 가짜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405구절 중 구약 인용 구절 278구절 / Beale의 수치


요한계시록 405구절 중에서 구약에서 인용한 구절의 수는

요한계시록의 405구절 가운데 구약과 연결되는 구절은 상당히 많습니다. 
다만 “구약에서 직접 인용한 구절”과 “구약을 암시·반영한 구절”을 구별해야 합니다.

핵심 수치

구분 수치
            요한계시록 전체                  405절(일반적으로 404절로 세기도 함)
구약을 암시·참조하는 계시록의 절                                  약 278절
구약 관련 암시·참조 횟수                         약 500~550회 이상
구약의 서로 다른 본문을 연결한 수                 연구자에 따라 약 250개 전후
           구약의 직접 인용                 엄밀한 의미에서는 거의 없음

특히 한 연구에서는 404절 중 278절이 구약을 암시하거나 참조한다고 집계합니다.
또 다른 자료는 계시록에 직접적인 구약 인용은 없고, 약 550개의 구약 암시·참조가 278절에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따라서 설교나 성경공부에서는 이렇게 정리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요한계시록 405구절 가운데 약 278구절이 구약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구약에 대한 암시와 참조는 약 500회 이상이다.” 
즉, 요한계시록의 약 2/3 이상이 구약의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이 사용되는 구약은 다니엘, 이사야, 에스겔, 스가랴, 시편, 출애굽기 등입니다. 
예를 들어 계시록 1장의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 7장, “흰 머리털”은 다니엘 7장, “촛대”는 출애굽기의 성막 전통 등과 연결됩니다.

일반적인 성경 장·절 구분에서는 요한계시록이 22장 404절입니다. 
그런데 일부 헬라어 본문 통계에서는 405절로 계산하는 체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405절은 그 본문 체계를 사용하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장절 기준은 404절입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구약 관련 절”의 숫자는 연구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G. K. Beale 계열의 연구에서는 404절 가운데 278절(약 68.8%)이 구약을 직·간접적으로 참조하거나 암시한다고 봅니다. 
또 약 500개의 구약 암시가 있다고 봅니다.

아래 표는 제가 확인할 수 있는 공개된 구약 암시·언어적 평행 목록을 기준으로, 각 계시록 절과 대응되는 구약 본문을 장별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목록은 보수적으로 잡은 목록이어서 명시적으로 확인되는 절은 235절입니다. 따라서 이것을 278절과 혼동하면 안 됩니다. 278절은 더 넓은 문학적·주제적 암시까지 포함하는 연구 기준입니다. 공개된 목록 자체도 계시록이 구약을 500회 이상 암시한다고 설명합니다. 

요한계시록 각 절과 구약 대응표

1장

계시록 구약 대응
1:1                         단 2:28-29
1:4                          사 11:2
1:5                 창 49:11; 시 89:27
1:6                  출 19:6; 사 61:6
1:7             단 7:13; 슥 12:10-14
1:8                       사 41:4
1:12                 출 25:37; 37:23
1:13                  단 7:13; 10:5,16
1:14                      단 7:9; 10:6
1:15               겔 1:7,24; 43:2; 단 10:6
1:16                 삿 5:31; 사 49:2
1:17       사 41:4; 44:6; 48:12; 단 8:17-18; 10:9-19
1:18                   욥 3:17; 호 13:14

13절


2장

계시록 구약 대응
2:4 렘 2:2
2:7 창 2:9; 3:22-24; 잠 11:30; 13:12; 겔 31:8
2:12 사 49:2
2:14 민 25:1-3
2:17 출 16:33-34; 사 62:2; 65:15
2:18 단 10:6
2:20 왕상 16:31-32; 왕하 9:7,22
2:23 시 7:9; 26:2; 28:4; 렘 11:20; 17:10
2:27 시 2:7-9; 사 30:14; 렘 19:11

9절


3장

계시록 구약 대응
3:4 전 9:8
3:5 출 32:32-33
3:7 사 22:22
3:9 사 43:4; 49:23; 60:14
3:12 사 62:2; 겔 48:35
3:14 창 49:3; 신 21:17
3:18 사 55:1
3:19 잠 3:12

8절


4장

계시록 구약 대응
4:1 겔 1:1
4:2 사 6:1; 겔 1:26-28; 단 7:9
4:3 겔 1:26,28; 10:1
4:5 출 19:16; 25:37; 사 11:2; 겔 1:13
4:6 겔 1:5,18,22,26; 10:1,12
4:7 겔 1:10; 10:14
4:8 사 6:2-3; 겔 1:18; 10:12
4:9 신 32:40; 단 4:34; 6:26; 12:7
4:11 창 1:1

9절


5장

계시록 구약 대응
5:1 겔 2:9-10; 단 12:4
5:5 창 49:9-10; 사 11:1,10
5:6 사 11:2; 슥 3:8-9; 4:10
5:8 시 111:2
5:9 시 40:3; 98:1; 144:9; 149:1; 사 42:10; 단 5:19
5:10 출 19:6; 사 61:6
5:11 단 7:10

7절


6장

계시록 구약 대응
6:2 슥 1:8; 6:3
6:4 슥 1:8; 6:2
6:5 슥 6:2
6:8 렘 15:2-3; 24:10; 29:17; 겔 14:21; 호 13:14; 슥 6:3
6:12 사 50:3; 욜 2:10
6:13 사 34:4
6:14 사 34:4; 나 1:5
6:15 시 48:4-6; 사 2:10-12,19
6:16 호 10:8
6:17 시 76:7; 렘 30:7; 나 1:6; 습 1:14-18; 말 3:2

10절


7장

계시록 구약 대응
7:1 사 11:2; 렘 49:36; 겔 7:2; 37:9; 단 7:2; 슥 6:5
7:3 겔 9:4-6
7:4 창 49:1-28
7:9 레 23:40
7:10 시 3:8
7:14 창 49:11
7:15 레 26:11
7:16 시 121:5-6; 사 49:10
7:17 시 23:1-2; 겔 34:23

9절


8장

계시록 구약 대응
8:3 시 141:2
8:4 시 141:2
8:5 겔 10:2; 출 19:16
8:6 출 19:16
8:7 출 9:23-24; 시 18:13; 사 28:2
8:8 출 7:17-19
8:10 사 14:12
8:11 렘 9:15; 23:15
8:12 사 13:10

9절


9장

계시록 구약 대응
9:1 사 14:12-14
9:2 창 19:28; 출 19:18
9:3 출 10:12-15
9:4 겔 9:4
9:6 욥 3:21
9:8 욜 1:6
9:9 욜 2:5
9:11 욥 26:6; 28:22; 31:12; 시 88:11; 잠 15:11
9:14 창 15:18; 신 1:7; 수 1:4

9절


10장

계시록 구약 대응
10:1 겔 1:26-28
10:4 단 8:26; 12:4-9
10:5 신 32:40; 단 12:7
10:6 창 1:1; 신 32:40; 느 9:6; 단 12:17
10:7 암 3:7
10:9 렘 15:16; 겔 2:8-3:3
10:11 겔 37:4,9

7절


11장

계시록 구약 대응
11:1 겔 40:3-4; 슥 2:1-2
11:2 겔 40:17-20
11:4 슥 4:1-3,11-14
11:5 민 16:35; 왕하 1:10-12
11:6 출 7:19-25; 왕상 17:1
11:7 출 7:3,7,8,21
11:8 사 1:9-10; 3:9; 렘 23:14; 겔 16:49; 23:3,8,19,27
11:9 시 79:2-3
11:11 겔 37:9-10
11:15 출 15:18; 단 2:44-45; 7:13-14,27
11:18 시 2:1-3; 46:6; 115:13

11절


12장

계시록 구약 대응
12:1 창 37:9-11
12:2 사 26:17; 66:7; 미 4:9-10
12:3 사 27:1; 단 7:7,20,24
12:4 단 8:10
12:5 시 2:8-9; 사 66:7
12:7 단 10:13,21; 12:1
12:9 창 3:1; 욥 1:6; 2:1; 슥 3:1
12:10 욥 1:9-11; 2:4-5; 슥 3:1
12:14 출 19:4; 신 32:11; 사 40:31; 단 7:25; 12:7; 호 2:14-15
12:15 호 15:10
12:17 창 3:15

11절


13장

계시록 구약 대응
13:1 단 7:3,7,8
13:2 단 7:4-6,8
13:3 단 7:8
13:4 단 8:24
13:5 단 7:8,11,20,25; 11:36
13:7 단 7:21
13:8 단 12:1
13:10 렘 15:2; 43:11
13:11 단 8:3
13:13 왕상 18:9-12

10절


14장

계시록 구약 대응
14:1 시 2:6; 겔 9:4
14:2 겔 1:24; 43:2
14:3 시 144:9
14:7 출 20:11
14:8 사 21:9; 렘 51:7-8
14:10 창 19:24; 시 75:8; 사 51:17
14:11 사 34:10; 66:24
14:14 단 7:13
14:18 욜 3:13
14:19 사 63:1-6
14:20 욜 3:13

11절


15장

계시록 구약 대응
15:1 레 26:21
15:3 출 15:1-18; 신 31:30-32:44; 시 92:5; 111:2; 139:14
15:4 시 86:9; 사 66:23; 렘 10:7
15:5 출 38:21
15:6 레 26:21
15:7 렘 25:15
15:8 출 40:34-35; 레 26:21; 왕상 8:10-11; 대하 5:13-14; 사 6:1-4

7절


16장

계시록 구약 대응
16:1 시 79:6; 렘 10:25; 겔 22:31
16:2 출 9:9-11; 신 28:35
16:3 출 7:17-25
16:4 출 7:17-21; 시 78:44
16:5 시 145:17
16:6 사 49:26
16:7 시 19:9; 145:17
16:10 출 10:21-23
16:12 사 11:15-16; 41:2,25; 46:11; 렘 51:36
16:13 출 8:6
16:14 왕상 22:21-23
16:16 삿 5:19; 왕하 23:29-30; 대하 35:22; 슥 12:11
16:19 렘 25:15
16:21 출 9:18-25

14절


17장

계시록 구약 대응
17:1 렘 51:13; 나 3:4
17:2 사 23:17
17:3 단 7:7
17:4 렘 51:7; 겔 28:13
17:8 출 32:32-33; 단 12:1
17:12 단 7:24-25
17:16 레 21:9

7절


18장

계시록 구약 대응
18:1 겔 43:2
18:2 사 21:9; 34:13-15; 렘 50:30; 51:37
18:3 렘 51:7
18:4 사 52:11; 렘 50:8; 51:6,45
18:5 렘 41:9
18:6 시 137:8; 렘 50:15,29
18:7 사 47:7-8; 습 2:15
18:8 사 47:9; 렘 50:31-32
18:9 겔 26:16-18; 27:26-31; 렘 50:46
18:10 사 13:1
18:11
18:12 겔 27:12-25
18:13
18:14
18:15
18:16
18:17
18:18
18:19
18:20 렘 51:48
18:21 렘 51:63-64
18:22 사 24:8; 렘 25:10; 겔 26:13
18:23 렘 7:34; 16:9; 25:10; 나 3:4

주의: 이 목록에서 18:9-19는 겔 26–27장의 두로 심판 묘사 전체와 연결된 단위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따라서 18:9-19를 각각 독립적으로 “한 개의 구약 인용”이라고 세어서는 안 됩니다.


19장

계시록 구약 대응
19:2 신 32:43; 시 119:137; 렘 51:48
19:3 사 34:9-10; 렘 51:48
19:5 시 22:23; 134:1; 135:1
19:6 시 93:1; 97:1; 겔 1:24; 43:2; 단 10:6
19:11 시 18:10; 45:3-4; 사 11:4-5; 겔 1:1
19:13 사 63:3
19:15 시 2:8-9; 사 11:4; 63:3-6
19:16 신 10:17
19:17 사 34:6-7; 겔 39:17
19:18 사 34:6-7; 겔 39:18
19:19 시 2:2; 욜 3:9-11
19:20 사 30:33; 단 7:11
19:21 겔 39:19-20

13절


20장

계시록 구약 대응
20:2 창 3:1,13-14; 사 24:21-22
20:4 단 7:9,22,27; 12:2
20:5 사 26:14
20:6 출 19:6; 사 26:19
20:8 겔 38:2; 39:1,6
20:9 신 23:14; 왕하 1:9-12; 겔 38:22; 39:6
20:11 단 2:35
20:12 출 32:32-33; 시 62:12; 69:28; 단 7:10
20:15 출 32:32-33; 단 12:1

9절


21장

계시록 구약 대응
21:1 사 65:17; 66:22
21:3 레 26:11-12; 겔 37:27
21:4 사 25:8; 35:10; 51:11; 65:19
21:9 레 26:21
21:10 겔 40:2
21:11 사 60:1-2; 겔 43:2
21:12 겔 48:31-34
21:13 겔 48:31-34
21:15 겔 40:3,5
21:19 출 28:17-20; 사 54:11-12
21:20 출 28:17-20; 사 54:11-12
21:23 사 60:19-20
21:24 사 60:3-5,16
21:25 사 60:11; 슥 14:7
21:26 사 60:5,16
21:27 사 52:1; 겔 44:9; 슥 14:21

16절


22장

계시록 구약 대응
22:1 시 46:4; 겔 47:1; 슥 14:8
22:2 창 2:9; 3:22-24; 겔 47:12
22:3 창 3:17-19; 슥 14:11
22:4 시 17:15; 겔 9:4
22:5 사 60:19; 단 7:18,22,27; 슥 14:7
22:10 단 8:26; 12:4,9
22:11 겔 3:27; 단 12:10
22:12 시 62:12; 사 40:10; 62:11
22:13 사 44:6
22:14 창 2:9; 3:22-24; 잠 11:30
22:15 신 23:18
22:18 신 4:2; 12:32
22:19 신 29:19-20

13절


집계

위의 명시적으로 열거된 구약 대응표를 기준으로 계시록의 각 절을 중복 없이 세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약 대응 절 수
1 13
2 9
3 8
4 9
5 7
6 10
7 9
8 9
9 9
10 7
11 11
12 11
13 10
14 11
15 7
16 14
17 7
18 23*
19 13
20 9
21 16
22 13
합계 235절

* 18장의 23절은 18:9-19를 개별 절로 확장하여 센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구약 관련 절은 235절이다”라는 뜻은 아닙니다. 
연구자마다 “구약 암시”의 범위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장 중요한 두 숫자

① 보수적인 명시적 평행·참조 목록:
약 235절

② Beale의 넓은 구약 암시 기준:
404절 중 278절 = 약 68.8%

Beale의 수치에 따르면 404절 가운데 278절이 구약과 연결됩니다. 이는 단순히 구약 성구를 직접 인용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어·문구·이미지·상징·주제·문학적 구조까지 포함한 구약 암시입니다.

또한 연구에 따라 계시록에는 500개 이상의 구약 인용·암시가 있으며, 특히 이사야·에스겔·다니엘·스가랴의 영향이 매우 강합니다. 한 연구는 구약 39권 가운데 28권이 계시록에 인용 또는 암시된다고 집계합니다. 

설교용으로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직접 인용하는 책이라기보다 구약의 언어와 상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해석하는 책이다. 보수적으로 확인되는 구약 평행만 해도 약 235절이며, Beale의 넓은 기준으로는 404절 가운데 278절, 즉 약 69%가 구약과 연결된다.”


일곱 영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4구절) 1:4, 3:1, 4:5, 5:6
요한계시록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이 말씀에 나온 ‘일곱 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 ‘성령’을 일곱 영이라고 지칭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성령이 하나가 아닌 일곱으로 표시될 수 있었을까?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성령이 일곱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경우를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사 11:2).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여호와의 영’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의 영(호크마)’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 요구되는 덕목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를 피하는 방면으로 이끄신다.

둘째, ‘통찰의 영(삐나)’은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릇되고 악한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행하게 하신다. 

셋째, ‘모략의 영(에차)’은 주로 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지혜를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해주는 참모 역할이다.

넷째, ‘용기의 영(킵보르)’은 용맹한 장수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한다. 죄와 사명의 권세 아래 있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지식의 영(따아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선하시며 은혜로우신 뜻을 행하게 하신다. 예를 들면 의와 공평을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여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아르아)’은 자기를 세운 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의미한다. 이 정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려고 애쓴다. 

일곱째, ‘여호와의 영’인 ‘루아흐’는 태초에 여호와께서 불어넣으신 호흡을 의미할 때 쓰였으나, 여기에서는 여호와께서 메시아로 하여금 구원사역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주시는 영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일곱 영’은 이사야에서 언급된 ‘일곱 측면의 영’을 살펴볼 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다방면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 안에서 완전한 능력과 섭리적 보호로 함께하신다.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경험할 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다. 그 가운데 성령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의도된 상징의 방식으로 한 분이신 성령을 일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의도된 상징적 형상이나 숫자를 사용해서 성삼위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의 속성과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성령을 상징했다(마 3:16).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실 때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때 ‘불의 혀’가 성령을 상징했다(행 2:3). 만약 그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120명이었다면 거기에는 120개 성령의 화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을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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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곱 영”이 처음 등장하는 곳

요한계시록 1: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헬라어는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ta hepta pneumata / 타 헵타 프뉴마타 
= “그 일곱 영들”

  • τὰ — 정관사, 중성 복수
  • ἑπτὰ — 일곱
  • πνεύματα — 영들, πνεῦμα의 복수형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곱 종류의 서로 다른 성령”이라는 뜻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2. 일곱 영이 등장하는 주요 구절

구절 표현
계 1:4 보좌 앞의 일곱 영
계 3:1 하나님의 일곱 영
계 4:5 보좌 앞에서 타는 일곱 등불 = 하나님의 일곱 영
계 5:6 어린양의 일곱 뿔과 일곱 눈 = 하나님의 일곱 영

특히 계시록 4:5가 매우 중요합니다.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따라서 계시록에서는 일곱 영 ↔ 일곱 등불이라는 연결이 명확합니다. 

3. 왜 “일곱”인가?

성경에서 7(ἑπτά)은 자주 완전함, 충만함, 완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일곱 영”을 성령의 일곱 개체라고 이해하기보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지시는 완전하고 충만한 역사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4. 이사야 11:2와 연결하는 해석

기독교 전통에서는 “일곱 영”을 이사야 11:2와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 모략과 재능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기에서 다음과 같이 일곱으로 세기도 합니다.

  1. 여호와의 영
  2. 지혜의 영
  3. 총명의 영
  4. 모략의 영
  5. 재능의 영
  6. 지식의 영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다만 이것은 이사야 11:2가 직접 “일곱 영”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일곱 영 = 이사야 11:2의 일곱 항목”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전통적인 해석으로 구분하는 것이 좋습니다. 

5. 요한계시록 전체 구조에서 보면

특히 계시록 5:6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여기서는  일곱 뿔 → 완전한 권세,  일곱 눈 → 완전한 통찰· 감찰, 일곱 영 →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 이라는 상징적 구조가 나타납니다.

특히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이라는 표현은 성령의 보편적이고 완전한 사역을 강조합니다. 

핵심 정리 / 일곱 영 = 일곱 개의 성령이 아니라, 한 성령의 완전하고 충만한 사역을 나타내는 계시록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절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1:4의 구조도 매우 중요합니다.

성부 → 일곱 영 → 예수 그리스도

즉, 요한계시록의 서론부터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암시하는 구조가 나타납니다. 
다만 “일곱 영”을 곧바로 삼위일체의 제3위 성령과 동일한 방식으로만 설명하기보다는, 성령의 충만한 임재와 사역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균형 잡힌 해석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요한계시록 1:4, 3:1, 4:5, 5:6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4은 일곱 영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고 언급합니다. 
요한계시록 3:1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진”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4:5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켜진 일곱 개의 등불과 연결시킵니다. 
요한계시록 5:6은 일곱 영을 어린 양의 “일곱 눈”과 동일시하고, 이들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진술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에는 최소 세 가지 가능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성령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은 완벽성과 완전함을 언급하는 데 숫자 7을 사용합니다. 
만일 “일곱 영”의 “일곱”이 그와 같은 의미라면,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각기 다른 영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완벽하심과 완전하심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일곱의 천사들, 스랍 (seraphim)이나 그룹 (cherubim) 등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천사들의 묘사와도 일치합니다 (요한계시록 4:6-9; 5:6-14; 19:4-5).

세 번째 가능한 해석은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하는 이사야 11:2에 근거합니다.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일곱 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 지 - 총 - 지 -주 - 재 -모

(1) 주님의 영,
(2) 지혜의 영,
(3) 총명의 영,
(4) 모략의 영,
(5) 재능의 영,
(6) 지식의 영,
(7) 주님을 경외하는 영

성경은 일곱 영들이 구체적으로 누구 혹은 무엇인지 말씀하지 않지만, 첫번째 해석, 즉 일곱 영이 성령이라는 견해가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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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영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이라는 특별한 계념을 부여한다고 했죠? 그래서 전체 교회를, 굳이 일곱 교회라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동원해서, 묘사를 하는 것이라고, 우리를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체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에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고, 완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앞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성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또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우리는 금방 보좌 앞에 일곱 영은, 성령(聖靈)이라는 것을 미루어 추측을 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일단 일곱이라는 숫자는 덮어 두세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일곱 영이,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곱 영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기에, 그들이 은혜와 평강을 금방 떠올리게 되었는지, 성경에서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 5장 6절로 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합니다. ‘일곱 영은, 일곱 눈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일곱 눈은 구약에 어디에서 보셨죠? 스가랴서 4장 2절로 가겠습니다.

(스가랴 4:2-10)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지금 스가랴가 환상을 보고 있는데, 일곱 촛대, 일곱 등잔이 있고, 그 옆에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람나무에서, 금 기름이 계속 흘러 나와서, 그 촛대를 밝히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가랴가 ‘이 환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5절부터 보겠습니다.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가 ‘이 환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천사가, 그 장면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대답을 해 줍니다.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 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전에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시작이 미미하다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뜻입니다. ‘일이 안 될 것 같으냐?’ 이런 뜻이죠?)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으로 보고 기뻐하리라

10절에 보시면,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다.’라고 나오죠? 계시록 5장 6절에는 일곱 눈은 뭐라 그랬습니까?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했죠? 그리고 스가랴서 4장 6절에 보면,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의 신이다.’라고 하죠? 그러니까 일곱 영은,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 전체교회를 일곱 교회라고 계시록은 묘사하고 있어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온전하신, 완전하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교회에게 보내지는 성령님을, ‘일곱 영이다.’라고 표현을 해 놓은 것입니다.

자, 이 이야기는 스가랴가 본 환상(幻像)입니다. 스가랴에는 총 일곱 개의 환상이 나오는데요, 그중 5번째 환상입니다. 이 스가랴서 4장은 아주 어려운 본문으로 알려져 있죠? 그래서 이 스가랴서 4장만 가지고도, 1년을 설교를 하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제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환상은 하늘의 성전(聖殿)! 즉 하나님나라를 묘사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천상에 하나님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는고 하니, 순금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로, 감람나무에서 계속 금 기름이 흘러 들어, 그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을 여러분이 머리에 잘 떠올리고 계세요.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죠? 천사는, ‘그것은 이런 거야!’라고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러면서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能)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가죠? 그러니까 이 장면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쉬운 말로 하면, 참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참 교회의 모습!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배웠죠? 우리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잖아요? 그렇게 성령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스가랴서 환상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따라와 주세요.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은 누굽니까? 제가 새가족양육반에서는 설명을 해 드렸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죠? 그리고 BC 538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재건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 보낼 때, 1차 포로귀환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사람이, 스룹바벨이에요. 성전을 재건하는 임무를 띠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스룹바벨입니다.

여호와긴이라는 사람이 있죠? 바벨론 포로 때 잡혀간,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열왕기하가 여호야긴의 석방으로 끝이나죠? 바로 그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전을 재건을 하는 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재건을 방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했죠? 그리고 앗수르가 혼합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데리고 갔고, 앗수르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심어 놓았죠? 그래서 피가 섞였습니다. 그래서 남 유대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서, ‘사마리아 인이다. 개만도 못한 사마리아 인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남유대가 포로귀환을 하고 성전을 재건한다고 하니까, 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들도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니까, 그 성전재건을 돕겠다하고 나셨다고요. 그랬더니 남유대에서, ‘너희 같은 더러운 자들은, 성전재건에 참여할 수 없다.’하고 거절을 했다고요. 그래서 이 북이스라엘 사람들! 사마리아 사람들이 열이 받아서, 그 성전재건을 오히려 방해를 했습니다. 성전 재건하는 현장에다가, 시체를 갖다 뿌려놓고 그랬다고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리심 산에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성전을 지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짓는데, 벽돌이 모자라고, 또 땅에 문제가 있고 해서, 계속해서 이 성전재건이 지연되고 있을 때예요. 그래서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될 수 있을까? 이 성전이 정말 재건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고요. 그때에 스가랴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하고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BC 516년에 완성이 되죠? 역사적으로도요!

자 이런 역사적 배경을 머릿속에 넣어두시고 같이 가시자구요? 성경에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죠? 스가랴나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성전 재건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성경이 그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는, 여러분의 구원의 모습!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안에 성전을 짓겠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바로 그 구원의 모습을, 새 창조의 모습을, 이 성전 재건의 모습에서 우리는,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어떤 방해가 있어도,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고야 만다는 것을, 읽어내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장면이에요. 오직 성령으로 될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 일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스가랴서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인,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인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환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어떻게 은혜와 평강에 메시지가 되는지! 10절에서 분명 이 일곱 촛대를 가리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다.’라고 이야기하죠? 성령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장 20절에서는, 일곱 촛대를 다르게 묘사를 하고 있어요. 계시록 1장 20절로 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라고 이야기해요.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죠? 바로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이, 일곱 촛대라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서는, 얼른 피상적으로 보면, 일곱 촛대는 성령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죠? 이렇게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도 표현이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렇게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이죠? 눈치 빠르신 분들은 금방 이해를 하실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완성하셨죠?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래서 교회를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죠? 성령이 오셔야, 교회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요한복음 15장 26절로 가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26)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탄생되는 것입니다. 지금 스가랴서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금 기름이 공급되고 있죠? 그 기름은, 성령님이시라고요. 그래서 그 금 기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탄생되고, 성령님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시므로 탄생이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照明)과 인도(引導)와 충만을 받아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시하는 것이죠?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거든요. 여러분은 이미 불이 붙은 교회라고요.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빛을 발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라고요.

교회라는 것은 이렇게,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되는 것이죠?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이 되고 빛을 발하게 되는, 교회(敎會)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설명해드린, 그리스도와의 연합!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를 떠올리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등장하는 그 촛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한 번 살펴보자구요. 출애굽기 25장 31절로 가겠습니다.

(출애굽기 25:31-40)

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 밭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밭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밭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34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에 잔 넷과 꽃 밭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밭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 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 밭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네, 이렇게 등대를 비롯한 성막 전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모세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나라의 모형이라고요. 모세가 하늘나라를 보니까, 그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떤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촛대로 묘사를 해 놓은 것인데요, 성막에 놓일 촛대를 만드는데,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어요.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는 것은, 당시 금은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촛대는 지성소 앞에 성소에 위치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보좌 앞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촛대에, 불을 밝혀서, 1년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왜 그 촛대에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실까요? 레위기 24장 1절로 가겠습니다.

(레위기 24:1-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태우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절대 꺼뜨리지 말라는 거예요. 감람을 찌어낸 순결한 기름으로 그 불을 밝히는 것이죠? 스가랴의 환상과 흡사합니다. 그죠?)

3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아론더러, 대 제사장인 아론더러, 항상 등잔불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불이 꺼지지 않게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 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할지니라

그럽니다.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시죠? 제사장들은 바로 그 일을 했던 거예요. 왜 성막에, 성전에, 제사장들이 그렇게 많아야 하느냐? 바로 이런 일들을 했다고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서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스가랴의 환상과 동일하죠?

그러나 그 옛 성전! 성막에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에서의 환상은, 감람나무에서 직접 금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라고요. 옛 언약에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합니다. 그렇죠? 새 언약에서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를 나타내는 거죠?

성막(聖幕)은 완성된 하나님나라의 모형(模型)입니다. 그 성막 안에 촛대라는 것은, 그 하나님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어떤 무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 무리가 교회(敎會)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 빛을 발하고 있어요.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죠? 그래서 교회는, 일단 불이 붙여지면, 영원히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꺼질 수가 없다는 것이죠! 당시 유대인들은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였으니까요!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금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가 설명을 해준, 그 환상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라고요.

어떤 말입니까?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삶을,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맞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이렇게 소심하게, 불성실하게, 겁쟁이처럼 살 수는 없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결단(決斷)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라고요.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이, 그 빛이, 비춰지고 있습니까? 그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다고요. 여러분의 심지에, 그 불이 붙어 있습니까? 빛이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여러분은 가짜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로 가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17-18)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다’는 구절의 ‘보다’는, ‘카토티조마임’입니다. 이 말은,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카토티조마임’의 이 시제는, 현재형이거든요! 헬라의 현재형은 뭐라 그랬죠? 계속 진행되는 것을 표현하는, 진행형을 나타내는 거라 그랬죠?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 내는 촛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로 갑니다.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내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여기서 ‘말’은 호스(horse)가 아니라, 한 말, 두 말, 이렇게 말(斗)을 재는 그 ‘말’이에요.)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래요. 너희는 빛을 발하면서 살아야 되는 존재다. 그 빛을 발하는 삶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어떻게 돌립니까?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오직 빛을 드러내는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5절로 가겠습니다.

(요한1서 1:5-7)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래요. 빛 가운데서 행하면, 빛이신 하나님처럼 빛 가운데 행하면, 너희는 교회다! 아니면? 가짜라는 것이죠. 에베소서 5장 8절로 가겠습니다.

(에베소서 5:8-9)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이 되라!’가 아니에요, ‘빛이다!’라고 이야기한다고요. 그러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하죠?

소요리 문답 1번! 우리 인생의 목적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빛을 발하며 사는 거예요.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여러분! 부자가 되어서, ‘야!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간증하고 다니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일까요? 그럼 예수를 믿지 않는 빌게이츠는, 지금 누구한테 영광을 돌리는 겁니까?

아니면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우리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요? ‘예수를 잘 믿으니까, 저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구나!’ 그러면 하버드와 MIT와 예일에 있는 수많은 불교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뭐예요? 이 땅에 빛으로 오셔서, 빛의 삶을 살다가 가신 분이 계시잖아요? 그 삶을 좇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 삶을 닮아 가면 되는 거예요. 그 삶을 흉내 내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세요.

(요한복음 8:12)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에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께서 직접 당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에 빛이다!’ 그러신다고요. 그리고 ‘나를 따르는 자는, 절대 어두움에 행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12장 46절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12:46)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그 빛이 왜 왔다고요? 우리를 빛으로 만들기 위해서! 빛을 비추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불을 붙여서, 빛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어두움에서 건져 내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 빛이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빛이셨다고요. 교회는 그 빛을 그대로 흉내 내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살다 가셨나요? 부자로, 권세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다가셨나요? 아니에요. 힘들고 어렵지만, 그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다 가셨다니깐요. 요한복음 14장 9절 보세요.

(요한복음 14:9)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죠? 그 말은, 시편에 나오는, ‘아멘!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옳습니다! 맞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아멘! 아멘!’하고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은, 예수님은 하늘에서 보신 것과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아멘! 아멘!’ 하면서 살다 가셨다는 거예요. 살아내고 가셨다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증인(證人)들이라고요. 그것이 교회에 존재 목적이라고요.

교회는 이 땅에서 수천만 불짜리 건물 짓고, 사람들 모아서 대단한 일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면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거예요. 진정한 부흥이라는 것은, 교회에 맴버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지어져 가는 것을, 부흥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람들 많이 모으고, 건물 큰거 사는 게 부흥이 아니라고요. 참된 리바이벌(revival)은, 우리가, 이 처치 멤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는 그 하나님의 자녀로, 잘 지어져 가는 것을, ‘부흥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박국서에서 배웠잖아요?

부흥(復興)이 뭐였습니까? ‘주여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라는 그 부흥이 뭐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불필요하고 악한 것들은, 오셔서, 어서 오셔서, 완전히 박살내주옵소서!’ 그게 부흥 아니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네! 아니,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아니,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일까?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누구기에 저들이 저렇게 사는 것일까?’라는 평가를 드러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만사형통(萬事亨通)! 일사천리(一瀉千里)! 여유만만! 또 뭐 있어요? 화기애애! 그런 것만 있겠습니까? 여러분! 거기에는 핍박(逼迫)과, 고난(苦難)이 따르게 마련이라고요. 여러분!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뭡니까? 설교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게 뭐예요? 스피드입니까? 뭡니까?

우리는 이 땅에 눈 두고 사는 사람들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을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이 땅에다가 아방궁 짓고, 기둥박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저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것이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크게 부흥하고 번영을 누리면서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 땅의 삶에다가 금칠을 하려고 하시냐구요?

이 요한계시록을 받아서 읽던, 초대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을 먹고 있었고, 자신감을 잃고 있었고, 자폭하고 싶을 만큼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고요. 그들이 요한 계시록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앞에서 이 요한계시록을, 감격에 복받쳐, 읽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듣다가, 그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감격한 거예요. 그들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눈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에 힘으로 되는 것을, 깨달았을 거라고요. ‘아!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겠구나! 그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 옆에 있는 그 감람나무로부터, 금 기름이 계속해서 공급이 되어서, 그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듯이,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교회는 성령으로 탄생되고 성령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끌고 가시겠구나!’ 하고 평강을 얻었던 거예요. 안도의 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평강(平康)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아무 일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에요. 전쟁이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에요.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확신! 고통 속에서도 반짝이는, 어떤 소망! 공격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오고 있는데,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그 소망 때문에, 내가 기뻐하고, 내가 흔들릴 수 없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평강인 것입니다.

인터넷에, 군대에서 고참들의 횡포를 견대지 못하고, 자살을 한 어떤 병사의 기사 아래에, 이런 다른 이등병의 편지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똑 같은 상황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살을 했고, 어떤 사람은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이제 먹을 만하고, 잠을 못자는 것도 이제 견딜 만합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게으르고, 저만 생각하며 살았는지, 절실히 느끼고 배웁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얼차려를 주고, 행패를 부리는 고참들을 보면서, 교회에서 배웠던 인간에 죄성(罪性)을 배웁니다. 그리고 결심해 봅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러나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힘을 얻게 되면, 얼마든지 약자를 깔볼 수 있는 죄인이니까요. 힘에 벅찬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제 몸이 얼마나 허약한지 깨달았습니다. 이 허약한 몸으로, 그동안 얼마나 객기를 부리며 살았었는지, 참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힘이 들지만, 배우는 보람이 있네요. 힘이 들어 무너져 버리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만 떠올립니다. 제가 그렇게 무너지면, 어머니가 실망하실 테니까요. 삶이 힘드니까,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제대할 날만을 기다립니다. 제대할 때까지 많이 배우고, 바른 사람이 되어, 돌아가겠습니다. 제대하면 꼭 어머니께 효도하겠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어머니와 함께 할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이렇게 기쁩니다.

네 똑같은 상황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하고, 목숨을 끊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니야! 이 상황은 나에게 꼭 필요한 거니까 내가 여기서 많이 배우고 사람 되어서 나는 돌아갈 거야! 나는 여기서 뭔가 배우고 돌아가야 해!’ 하고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요. 핍박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공격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고참들의 횡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고요. 이제 나에게는 곧 제대할 날이 다가올 것이고, 제대를 하면 나를 두 팔 벌려 맞이해주실 그 어머니가 있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와, 영원해 행복하게 살 그날을 소망하면서, 지금 나는 뭔가 배워서, 어머니가 기뻐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가겠다는 거예요. 그게 평강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교회를 이 땅에 던져 놓으신 것입니까?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거예요. 하늘나라에선 필요 없는, 그러한 악한 것들! 추한 것들! 다 잘라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고 훈련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에게 훈련교관을 붙이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억지! 분 냄! 짜증! 핍박! 횡포! 그런 것으로 우리를 괴롭히게 한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배우는 거예요. 거기서 인내와, 사랑과, 용서와, 온유를 배우는 것입니다. ‘어쩌다 내 삶에, 저런 웬수가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가?’로 가지 마시구요.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뭔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구나!’로 가시란 말이에요.

이 자리에는 분명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하하) 그 분들은 기도하세요. 여러분은 지금 죽으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들어서 썼던, 수많은 민족과 사람들을 보세요. 형체도 없이 사라졌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관심 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기 위해서, 잠시 들어서 썼다가, 그들은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회개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유 없는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면,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지금 세심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로, 여러분을 만들고 계시는 거예요. 핍박을 당하시는 여러분!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자기 한 몸 편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 핍박을 가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죽으시면 안 됩니다.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견디기 힘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은 좌절에 빠진 분들! 혹시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은, 이미 성령님께서, 테이크 오버(take over)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시라고요.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실까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하나님도 지옥에 따라 오셔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지옥에 못 가요. 우리의 신분은 그렇게 안전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든 상황을 허락하셨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들은, 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놓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우리가, 어찌 평안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보좌 앞에 일곱 영!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巡禮者)들입니다. 나그네들입니다. 여러분! 그 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시다고요.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내 새끼들아!’ 감람나무에서는 지금도 계속 금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고요. 우리는 불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힘내십시오.

초대교회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게 평강을 얻었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에도,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을 해 냈듯이, 하나님나라는 반드시, 속히, 완성이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힘내십시오! 다시 한 번 꼭 마음에 세기세요.

하나님은 완성된 하늘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시다고요. 두려워 마세요! 평강을 찾으십시오! 은혜와 평강!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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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이 말씀에 나온 ‘일곱 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 ‘성령’을 일곱 영이라고 지칭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성령이 하나가 아닌 일곱으로 표시될 수 있었을까? 

성령이 일곱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경우를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사 11:2).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여호와의 영’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의 영(호크마)’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 요구되는 덕목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를 피하는 방면으로 이끄신다.

둘째, ‘통찰의 영(삐나)’은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릇되고 악한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행하게 하신다. 

셋째, ‘모략의 영(에차)’은 주로 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지혜를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해주는 참모 역할이다.

넷째, ‘용기의 영(킵보르)’은 용맹한 장수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한다. 죄와 사명의 권세 아래 있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지식의 영(따아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선하시며 은혜로우신 뜻을 행하게 하신다. 예를 들면 의와 공평을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여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아르아)’은 자기를 세운 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의미한다. 이 정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려고 애쓴다. 

일곱째, ‘여호와의 영’인 ‘루아흐’는 태초에 여호와께서 불어넣으신 호흡을 의미할 때 쓰였으나, 여기에서는 여호와께서 메시아로 하여금 구원사역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주시는 영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일곱 영’은 이사야에서 언급된 ‘일곱 측면의 영’을 살펴볼 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다방면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 안에서 완전한 능력과 섭리적 보호로 함께하신다.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경험할 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다. 그 가운데 성령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의도된 상징의 방식으로 한 분이신 성령을 일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의도된 상징적 형상이나 숫자를 사용해서 성삼위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의 속성과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성령을 상징했다(마 3:16).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실 때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때 ‘불의 혀’가 성령을 상징했다(행 2:3). 만약 그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120명이었다면 거기에는 120개 성령의 화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을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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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영 - 일곱 눈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8
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 내려 주시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내려 주시고,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씻어') 주셨고,
6 우리로 나라를 이루셔서,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지난주에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전에도 계셔서 그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셨던 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릴 그 복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제도,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를 감격케 했습니다. 역동적으로 지금 오고 계신다는 것은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완성된 미래에서 오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안전하고 확실한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보좌 앞의 일곱 영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은혜와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일곱 영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이라는 특별한 개념을 부여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전체 교회를 굳이 일곱 교회라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동원해서 묘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앞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성부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우리는 금방 보좌 앞의 일곱 영은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일곱’이라는 숫자는 덮어 두세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일곱 영이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곱 영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계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영은 일곱 눈이라고 합니다. 일곱 눈은 구약의 어디에서 보셨지요? 스가랴 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슥 4:2-10)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10절에 보시면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에 읽으셨던 요한 계시록 5장6절에는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잘 연관 시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읽으신 스가랴서4장의 내용은 스가랴가 본 환상입니다. 스가랴에는 총7개의 환상이 나오는데 그 중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하늘의 성전 즉,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천상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까?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로 감람나무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들어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천사는 ‘그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지 않고,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쉬운 말로 하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지요?. 그리고 BC58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그는 왕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전 재건을 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를 해 오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 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스가랴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고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BC515년에 완성됩니다.

성경에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요? (스가랴나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 짓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므로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스가랴서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인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인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환상을 보겠습니다. 10절에서 분명 이 일곱 촛대를 가리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라고 합니다. 성령입니다. 그런데 계시록1장20절에는 일곱 촛대를 다르게 묘사를 합니다.

(계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이 일곱 촛대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서는 일곱 촛대는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 표현도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지요?

(요 15:26) 26 내가 아버지께 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 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지금 스가랴서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 기름은 성령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심으로 탄생이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과 인도와 충만을 받아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왜 성경이 일곱 촛대를 또 성령으로 묘사를 하는지 아세요?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되고 빛을 발하는 교회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설명해 드린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christ)을 떠올리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출 25:31-40) “31 순금을 두들겨서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의 밑받침과 줄기와 등잔과 꽃받침과 꽃을 하나로 이어놓아라. 32 등잔대의 줄기 양쪽에서 곁가지 여섯 개가 나오게 하였는데, 등잔대 한쪽에서 곁가지 세 개, 또 다른 한쪽에서도 곁가지 세 개를 나오게 하여라. 33 등잔대의 각 곁가지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고, 그 맞은쪽 곁가지도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어라. 등잔대의 줄기에서 나온 곁가지 여섯 개를 모두 이와 같이 만들어라. 34 등잔대 줄기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네 개를 쌓아 놓은 모양으로 만들어라. 35 그리고 등잔대의 맨 위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세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두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맨 아래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여, 여섯 곁가지를 줄기와 연결시켜서 한 덩이를 만들어라. 이렇게 등잔대의 줄기에서 좌우로 곁가지가 나오게 하여라. 36 등잔대 줄기의 꽃받침에 연결된 곁가지들은 모두 순금을 두들겨 만들되, 전체를 하나로 이어놓아라. 37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앞을 밝게 비추도록 하여라. 38 등잔불 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어라.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어라. 40 이 모든 것을,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 그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여러분께서 성경을 통해 익히 확인하신 것처럼 등대를 비롯한 성막 전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성막에 놓일 촛대를 만드는데 촛대를 정금으로 만듭니다.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는 것은 당시 금은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촛대는 지성소 앞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이지요. 그 촛대에 불을 밝혀 1년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 불이 꺼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교회는 그렇게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빛으로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레 24:1-4)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을 켜게 하되, 그 등불을 늘 켜 두어라. 3 아론을 시켜 회막 안 증거궤 앞에 쳐 있는 휘장 바깥에 그 등불을 켜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계속 켜 두게 하여라.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4 아론은 주 앞에서, 순금 등잔대 위에 그 등불을 늘 켜 두어야 한다.”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사장들은 바로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옛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지요. 성막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 성막 안의 촛대라는 것은, 그 하나님 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빛을 발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인데 그 무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시 구약을 줄줄이 꿰고 있던 유대인들은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금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가 설명을 해 준 그 환상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삶을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맞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결단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 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습니다. 여러분의 심지에 불이 붙어있습니까? 빛이 나오고 있나요?

(고후 3:17-18)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다’라는 구절의 ‘보다’는 ‘카톱트리조마이’입니다. 이 말은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톱트리조마이’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 내는 촛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요일 1:5-7)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엡 5:8-9)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합니다. 소 요리 문답1번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부자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이렇게 간증하고 다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그럼 예수를 믿지 않는 빌게이츠는 누구한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요? 하바드와 MIT의 수많은 불교 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무엇입니까? 보좌 앞의 촛대가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듯이 빛으로 오신 분이 살다 가신 그 빛의 삶을 사는 것이 빛을 발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요 8:12) “12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 12:46)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빛이셨습니다. 교회는 그 빛을 그대로 흉내 내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떻게 살다 가셨나요? 삶으로 하나님을 설명하시고 가셨습니다.

(요 14:9)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

우리도 똑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만사형통, 일사천리, 여유만만 이겠습니까? 거기에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때, 그렇게 빛으로 살다가 힘이 들 때, 먼저 살다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는 겁니다.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던 초대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을 먹고 , 자신감을 잃고 있었던 그들이,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다가 이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내시겠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평강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견디기 힘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은 좌절에 빠져 계신 분들 혹시 계십니까? 우리의 삶은 이미 성령님께서 take over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실까요?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하나님도 지옥에 따라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그렇게 안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들은 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데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우리는 보좌 앞의 일곱 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 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게 평강을 얻었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에도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을 했듯이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속히 완성이 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힘내십시오. 다시 한 번 꼭 마음에 새기세요. 하나님은 완성된 하늘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평강을 찾으십시오.




성경에서 “일곱 영”(七靈)은 요한계시록을 중심으로 등장하는 매우 중요한 표현입니다. 특히 성령론과 요한계시록의 상징 구조를 이해할 때 중요합니다.

1. “일곱 영”의 헬라어

요한계시록 1:4:

ἀπὸ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ἃ ἐνώπιον τοῦ θρόνου αὐτοῦ
apo tōn hepta pneumatōn ha enōpion tou thronou autou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부터

핵심 단어는:

  • ἑπτά (hepta) = 일곱
  • πνεῦμα (pneuma) = 영, 성령, 바람
  • 복수형 πνεύματα (pneumata) = 영들

따라서 문자적으로는 “일곱 영들”입니다.


2. 성경에서 “일곱 영”은 어디에 나오는가?

요한계시록에는 특히 세 곳에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성구 표현 특징
계 1:4 보좌 앞의 일곱 영 하나님 보좌 앞
계 3:1 하나님의 일곱 영 예수께서 가지심
계 4:5 보좌 앞의 일곱 등불 일곱 영과 연결
계 5:6 어린양의 일곱 눈 온 땅에 보내심

특히 계시록 4:5은 매우 중요합니다.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그리고 계시록 5:6에서는:

“어린 양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그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따라서 계시록에서는

일곱 영 = 일곱 등불 = 일곱 눈

이라는 상징적 연결이 형성됩니다.


3. 그렇다면 “일곱 영”은 성령이 일곱 분이라는 뜻인가?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일반적인 기독교 삼위일체론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은 성령을 여러 개의 독립된 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곱”은 완전성·충만성을 나타내는 상징적 숫자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따라서 “일곱 영”을

성령의 충만하심, 완전하신 성령의 사역과 임재

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7개의 서로 다른 성령

한 성령의 완전하고 충만한 역사
⭕️

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4. 이사야 11장의 “일곱 영”과 연결되는가?

여기서 중요한 구약의 배경이 있습니다.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표현들이 나옵니다.

  1. 여호와의 영
  2. 지혜의 영
  3. 총명의 영
  4. 모략의 영
  5. 재능의 영
  6. 지식의 영
  7.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그래서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것을 “성령의 일곱 가지 충만한 사역”과 연결하여 설명하기도 합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이사야 11:2 자체가 “일곱 영”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이것을 요한계시록의 “일곱 영”과 동일하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신학적·상징적 연결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5. 가장 중요한 연결 구조

요한계시록을 보면 놀라운 구조가 나타납니다.

계시록 1장

일곱 영

계시록 3장

하나님의 일곱 영

계시록 4장

일곱 등불 = 하나님의 일곱 영

계시록 5장

어린양의 일곱 눈 = 하나님의 일곱 영

즉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영”은 단순히 숫자 7을 가진 영적 존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역사하시며, 어린양을 통하여 온 땅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의 충만함

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6. “일곱 영”과 “일곱 교회”의 관계

이 부분은 특히 중요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의 구조를 보면: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성령 — 일곱 영

일곱 교회

그리고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반복해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의 큰 구조를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보좌 → 일곱 영 → 일곱 교회 → 세상

그리고 일곱 교회 각각에 대한 말씀은 결국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7. “일곱”의 핵심 의미

요한계시록에서 7은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 일곱 교회
  • 일곱 금촛대
  • 일곱 별
  • 일곱 영
  • 일곱 인
  • 일곱 나팔
  • 일곱 대접
  • 일곱 우레

따라서 7 = 하나님의 완전성·충만성이라는 상징적 의미가 요한계시록 전체를 관통합니다.

그러므로 “일곱 영”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이 일곱 분이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께서 가지시는 완전하고 충만한 임재와 사역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계시록에서는 이것이 “일곱 등불”과 “어린양의 일곱 눈”이라는 이미지로 발전합니다.




① svg일곱 영과 이사야 11:2의 관계, ② svg일곱 영·일곱 교회·일곱 별·일곱 촛대의 관계, ③ svg요한계시록 1:4의 삼위일체적 구조를 헬라어 문법까지 포함해서 하나의 도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네. 이 세 주제는 요한계시록 1:4–20을 중심으로 하나의 신학적·문법적 도식으로 묶으면 매우 선명해집니다. 핵심은 이사야 11:2의 ‘일곱’은 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설명하는 배경, 요한계시록의 일곱 영은 성령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계시적 명칭, 그리고 일곱 교회·일곱 촛대·일곱 별은 그 성령의 사역이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관계로 보는 것입니다.

1. 전체 구조

                         하나님
                           │
                           │
              ┌────────────┴────────────┐
              │                         │
           예수 그리스도              성령
              │                         │
              │                   「일곱 영」
              │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                         │
              │                         ▼
              │                   교회 안에서 역사
              │                         │
              │          ┌──────────────┴──────────────┐
              │          │                             │
              ▼          ▼                             ▼
        일곱 교회     일곱 촛대                    일곱 별
       αἱ ἑπτὰ       αἱ ἑπτὰ                     τοὺς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     λυχνίαι                     ἀστέρας
          │             │                            │
          └─────────────┴────────────┬───────────────┘
                                     │
                                     ▼
                              그리스도의 교회

여기에 이사야 11:2를 배경으로 연결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사야 11:2
        │
        ▼
여호와의 영
רוּחַ יְהוָה
        │
        ├─ 지혜의 영
        ├─ 총명의 영
        ├─ 모략의 영
        ├─ 재능의 영
        ├─ 지식의 영
        └─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
                 ▼
       메시아 위에 충만하게 임하는 성령
                 │
                 ▼
        요한계시록의 「일곱 영」

중요한 점: 이사야 11:2의 히브리어 본문은 문법적으로 정확히 “일곱 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רוּחַ(ruaḥ, 영)을 중심으로 지혜·총명·모략·능력·지식·여호와 경외라는 특성이 열거됩니다. 따라서 “이사야 11:2 = 일곱 영”이라고 기계적으로 등치하기보다, 성령의 충만하고 완전한 사역을 나타내는 칠중적 배경으로 이해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2. 이사야 11:2와 요한계시록의 「일곱 영」

이사야 11:2의 핵심 히브리어는:

רוּחַ יְהוָה
Rûaḥ YHWH
“여호와의 영”

그리고 이어서:

  • רוּחַ חָכְמָה — 지혜의 영
  • וּבִינָה — 총명
  • עֵצָה — 모략
  • גְבוּרָה — 능력
  • דַּעַת — 지식
  • יִרְאַת יְהוָה — 여호와를 경외함

으로 묘사됩니다.

따라서 개념적으로는

1 + 6 = 7

이라는 칠중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반면 계 1:4는:

ἀπὸ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ἃ ἐνώπιον τοῦ θρόνου αὐτοῦ

“그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부터”

라고 합니다.

여기서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 τῶν — 정관사, 속격·복수
  • ἑπτὰ — 수사 “일곱”
  • πνευμάτων — πνεῦμα의 속격·복수

입니다.

즉 직역하면:

“그 일곱 영들로부터”

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이 복수형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성령이 일곱 분 존재한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요한계시록의 상징 언어에서 일곱(ἑπτά)은 반복적으로 충만함·완전성·전체성을 나타냅니다.


3. 일곱 영 → 일곱 교회 → 일곱 촛대 → 일곱 별

요한계시록 1장의 구조가 아주 중요합니다.

① 일곱 영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성령의 충만하고 완전한 역사

② 일곱 교회

αἱ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

아시아의 실제 일곱 교회

③ 일곱 촛대

αἱ ἑπτὰ λυχνίαι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금 촛대

④ 일곱 별

τοὺς ἑπτὰ ἀστέρας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

계 1:20에서 예수께서 직접 해석해 주십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따라서 계시록 1장의 상징 관계는:

                 성령
                  │
           「일곱 영」
                  │
                  ▼
            성령의 역사
                  │
                  ▼
             일곱 교회
                  │
          ┌───────┴───────┐
          ▼               ▼
      일곱 촛대          일곱 별
       교회의             교회의
       정체성             사자
          │               │
          └───────┬───────┘
                  ▼
             그리스도의
             통치와 돌보심

4. 특히 중요한 것은 「일곱 촛대」

계 1:12에서 요한은:

ἑπτὰ λυχνίας χρυσᾶς

“일곱 금 촛대”

를 봅니다.

그런데 1:20에서 예수께서:

αἱ ἑπτὰ λυχνίαι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 εἰσίν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직역하면: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

즉,

교회 = 촛대

입니다.

촛대 자체가 빛의 근원은 아닙니다. 빛을 담아 세상에 비추게 하는 그릇입니다.

따라서 계시록의 교회론에서는:

그리스도 → 교회 → 세상

이라는 관계가 나타납니다.


5. 일곱 별은 무엇인가?

계 1:16:

ἐν τῇ δεξιᾷ χειρὶ αὐτοῦ ἀστέρας ἑπτά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

그리고 계 1:20:

οἱ ἑπτὰ ἀστέες ἄγγελοι τῶν ἑπτὰ ἐκκλησιῶν εἰσίν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다.”

여기서 ἄγγελοι는 문자적으로 “사자들, 전달자들”이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따라서 해석에는 두 가지 대표적인 견해가 있습니다.

  1. 천사적 존재
  2. 각 교회의 대표자·지도자적 사자

본문 자체는 단순히 “일곱 교회의 ἄγγελοι”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특정 인간 지도자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그 대표적 사자들을 붙드시고 통치하신다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 신중합니다.


6. 요한계시록 1:4의 삼위일체적 구조

여기가 가장 아름다운 부분입니다.

계 1:4–5:

ἀπὸ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καὶ ἀπὸ τῶν ἑπτὰ πνευμάτων,
καὶ ἀπὸ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구조적으로:

              요한계시록 1:4–5
                     │
       ┌─────────────┼─────────────┐
       │             │             │
       ▼             ▼             ▼
   성부 하나님      성령          성자 예수
       │             │             │
  ὁ ὢν             ἑπτὰ          Ἰησοῦς
  ὁ ἦν             πνεύματα      Χριστός
  ὁ ἐρχόμενος
       │             │             │
       └─────────────┼─────────────┘
                     ▼
                 은혜와 평강

성부

ὁ ὢν καὶ ὁ ἦν καὶ ὁ ἐρχόμενος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이는 출애굽기 3장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와 연결되는 하나님의 존재성을 강하게 연상시킵니다.

성령

τὰ ἑπτὰ πνεύματα

“일곱 영”

여기서는 성령의 충만성과 완전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성자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그리고 이어서 계 1:5에서 예수님을:

ὁ μάρτυς ὁ πιστός
“충성된 증인”

ὁ πρωτότοκος τῶν νεκρῶν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신 이”

ὁ ἄρχων τῶν βασιλέων τῆς γῆς
“땅의 왕들의 통치자”

로 소개합니다.


7. 헬라어 문법상 아주 중요한 특징

계 1:4의 반복되는 전치사는:

ἀπό + 속격

입니다.

즉:

ἀπὸ τοῦ θεοῦ
하나님으로부터

와 같은 구조입니다.

계 1:4–5에서는:

ἀπὸ A
καὶ ἀπὸ B
καὶ ἀπὸ C

라는 병렬 구조가 나타납니다.

ἀπὸ
 │
 ├── A 하나님
 │
 καὶ ἀπὸ
 │
 ├── B 일곱 영
 │
 καὶ ἀπὸ
 │
 └── C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세 근원 모두로부터:

χάρις ὑμῖν καὶ εἰρήνη

“너희에게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이 옵니다.

따라서 문법적으로도 성부–성령–성자라는 삼중적 구조가 매우 뚜렷합니다.


8. 하나의 통합 도식

마지막으로 세 질문을 하나로 합치면 다음과 같습니다.

                    ┌───────────────────┐
                    │    성부 하나님     │
                    │ ὁ ὢν ὁ ἦν         │
                    │ ὁ ἐρχόμενος       │
                    └─────────┬─────────┘
                              │
                              │
             ┌────────────────┴────────────────┐
             │                                 │
             ▼                                 ▼
     ┌───────────────┐                 ┌───────────────┐
     │     성  령      │                 │   예수 그리스도 │
     │ τὰ ἑπτὰ        │                 │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
     │ πνεύματα       │                 │               │
     └───────┬───────┘                 └───────┬───────┘
             │                                 │
             │ 이사야 11:2                     │ 오른손
             │                                 │
             ▼                                 ▼
     성령의 칠중적 충만성                 일곱 별
             │                         τοὺς ἑπτὰ
             │                         ἀστέρας
             │                                 │
             └────────────┬────────────────────┘
                          │
                          ▼
                     일곱 교회
                  αἱ ἑπτὰ ἐκκλησίαι
                          │
                 ┌────────┴────────┐
                 ▼                 ▼
             일곱 촛대           일곱 별
          αἱ ἑπτὰ λυχνίαι      οἱ ἑπτὰ ἀστέες
                 │                 │
                 │                 │
                 ▼                 ▼
             교회의 모습       교회의 사자
                 │                 │
                 └────────┬────────┘
                          ▼
                    그리스도의 교회
                          │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
                     계시록 2–3장

9.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사야 11:2가 메시아 위에 임하는 성령의 충만한 사역을 칠중적으로 묘사한다면, 요한계시록 1:4의 “일곱 영”은 그 성령의 충만성과 완전성을 계시적으로 표현하고, 그 성령께서 일곱 교회 가운데 역사하시며, 일곱 촛대는 그 교회 자체를, 일곱 별은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린 교회의 사자들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계 1:4–5의

“성부 → 일곱 영 → 예수 그리스도”

라는 ἀπό + 속격의 삼중 병렬 구조는 요한계시록의 서두에서 매우 강한 삼위일체적 문맥을 형성합니다.

특히 “일곱 영 → 일곱 교회 →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연결은 계시록 1장과 2–3장을 연결하는 핵심 구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