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하늘과 새 땅


새 하늘과 새 땅(新天地)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 모두 4회 나온다.(이사야 65:17, 66:12, 베드로후서 3:13, 요한계시록 21:1)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Behold, I will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former things will not be remembered, nor will they come to mind.


이사야 66:2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For this is what the LORD says: "I will extend peace to her like a river, and the wealth of nations like a flooding stream; you will nurse and be carried on her arm and dandled on her knees.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을 바라보도다.
But in keeping with his promise we are looking forward to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the home of righteousness.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Then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longer any sea.


이사야 65:17
요한계시록 21:1

이사야 65:1

כִּֽי־ הִנְנִ֥י בֹורֵ֛א שָׁמַ֥יִם חֲדָשִׁ֖ים וָאָ֣רֶץ חֲדָשָׁ֑ה וְלֹ֤א תִזָּכַ֙רְנָה֙ הָרִ֣אשֹׁנֹ֔ות וְלֹ֥א תַעֲלֶ֖ינָה עַל־ לֵֽב׃ 

(음역) 키-히네 보레 샤마임 하다쉼 봐예레츠. 하다샤 베ㄹ로 티짜카르나 하리쇼노트 베ㄹ로 타알레나 (알-렙...)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사역)

요한계시록 21:1 

Καὶ εἶδον οὐρανὸν καινὸν καὶ γῆν καινήν· ὁ γὰρ πρῶτος οὐρανὸς καὶ ἡ πρώτη γῆ ἀπῆλθαν, καὶ ἡ θάλασσα οὐκ ἔστιν ἔτι.

(음역) 카이 에이돈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 호 가르 프로토스 우라노스 카이 헤 프로테 게 아펠ㅌ한, 카이 헤 ㅌ할라사 우크 에스틴 에티. 


이사야 65장과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차이  

두 성구는 표면상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에서는 '내가'(하나님이) 창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전의 땅과 하늘은 기억나거나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땅은 새로 창조하시기보다 이미 어디엔가 존재해온 것이 새로 나타나 있는 것을 기자(사도 요한)가 비로소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비록 기존해왔지만, 낡은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다! 
태초에 창조된 첫(옛) 하늘과 첫 땅(즉 창세기에서 기록된 천지 창조 때의)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 첫 것이 사라진 뒤에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따라서 이사야 65장의 새 하늘, 새 땅과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은 명칭만 같을 뿐, 적어도 개념상 어렴풋이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본문을 계속 읽어가면, 그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예샤야후서 65장의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죽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0절이 그렇게 말해 준다.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와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한 채 죽는 노인이 없다고 했으니, 바꿔 말하면 넉넉히 살다 죽는 사람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불사는 아니라
는 말이다.

거기서는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불러준다고 하니까, 백 살 넘어 죽는 사람은 있다는 얘기가 되고, 백 살이 채 못 되어 죽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니, 바꿔 말하면 저주를 받았든 어떻든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그런 조기사망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받아야지, 상징적으로 받으면 안 된다!

바로 그 점이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의 모든 것은 수적 개념을 초월하여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새 예루살렘의 정체’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은 과연 새 예루살렘이 마지막에 나아가게 될 천국을 그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부’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종말에 누릴 축복을 그리고 있는가에 있다.

‘계시록’의 의미인 ‘밝혀진 또는 열린’ 등의 개념과 대조적으로 아직도 요한계시록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설고 감춰진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런 익숙지 않음이 때로 불안한 세상에 편승해 ‘연약한 자들’을 유혹하는 이단의 잘못된 해석에 희생 제물이 되기도 한다. 때로 지나친 문자주의적 해석에 근거한 나머지 중동 지역의 국지전을 ‘아마겟돈 전쟁’으로 예견하는 정도까지 이르러 결과적으로 종말론에 대한 회의를 낳게 만들기도 한다.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이해도 이런 안개 속에 싸여 있는 듯한 분위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듯 보인다. 새 예루살렘은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마지막 환상에 속하는 부분(21:1~22:5)이다. 사람들은 「내가 본 천국」 등의 책이 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고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이해는 본문의 가르침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 부정확한 성경 해석이 근거 없는 ‘믿음’으로 이끌며 그 믿음이 확산될 경우에 매우 위험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생각해 볼 때, 올바른 성경 해석에 근거한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새 예루살렘에 대한 해석과 함께 그 안에 담겨 있는 가르침이 현대 교회를 향해 주는 메시지를 논하기 전에, 이 부분이 안고 있는 두 가지 이슈를 간략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마지막 때에 주어지는 ‘새로운 세상’의 정체에 관한 질문이다. 요점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속성이 ‘갱신된 세상’(renewed world)인가 아니면 ‘새롭게 창조된 세상’(replaced world)인지에 관한 논쟁이다. 현재 세상과 연결하는 견해는 연속성(continuity)에 무게를 두고 있다면, 다른 견해는 비연속성(discontinuity)에 무게를 두고 있다.

둘째, ‘새 예루살렘의 정체’에 관한 것으로 논쟁의 핵심은 과연 새 예루살렘이 천국을 그리고 있는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신부’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종말에 누릴 축복을 그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더해 어느 한 쪽으로 치중하기보다 새 예루살렘에 관한 묘사에 두 가지 요소를 모두 갖고 있다는 또 다른 주장도 있다.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21:1~22:5)

이 부분을 해석하기 위해 ‘문맥’의 중요성과 함께 비유적 또는 상징적 표현의 당위성을 이해해야 한다. 문맥에 대해선 근접한 문맥과 넓은 문맥을 모두 염두에 둬야 한다. 먼저 근접한 문맥으로, 17장 1절에서 22장 5절까지 소위 ‘두 도시’(바벨론과 새 예루살렘)의 이야기로 알려진 부분을 살펴봐야 한다. 다음에 넓은 문맥으로, 요한계시록의 시작에서 이 부분에 이르기까지의 전개와 나아가 구약과 신약의 다른 부분에서 발전해 온 새 창조와 새 예루살렘을 고려해야 한다.

비유적 또는 상징적 표현의 당위성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과 연관해 생각할 때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의 대부분의 내용은 ‘초월적 현실’(transcendental reality)을 다루고 있다. 특히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모든 것들의 완성이라는 면에서, 또 초월성이라는 면에서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 초월적 현실을 묘사하기 위해 ‘비유와 상징적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마치 문명의 이기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정글 속사람들에게 전자 오븐이나 휴대전화기를 설명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갖고 있는 언어와 경험의 경계가 표현의 한계를 결정하게 되듯이 말이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21장 18절과 21절에 나오는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라든가, ‘더 이상 바다가 없는 가운데(21:1) 존재하는 샘’(21:6)이라든가, ‘강’(22:1) 등은 상징적 또는 비유적 해석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물론 저자 요한은 이 책의 독자들에게 친숙한 상징과 모델들을 구약과 신약의 가르침에서 찾고 있으며 그것을 기초로 자신만의 요소들을 더해 자신이 본 초월적인 현실을 전하고 있다.

(1) 새 창조(21:1~8)

먼저 이 단락이 속한 문맥에 관해 간략하게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단락은 음녀 바벨론의 멸망(17:1~19:10)과 신부로 표현된 새 예루살렘의 축복(21:9~22:5) 사이에 놓여 있는 ‘종말의 종말’을 구성하는 연속의 사건들(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아마겟돈 전쟁, 천년왕국, 마지막 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19:11~21:9)의 마지막 장면이다. 이 부분을 통해 악의 세력의 철저한 제거 과정을 보여주고 있을 뿐 아니라, 인간이 거하는 땅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늘이 서로 연결돼 둘이 하나가 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에 더해 21장 9절부터 시작되는 새 예루살렘에 관한 두 가지 커다란 요소를 소개함으로써 동시에 새로운 단락(21:9~22:5)의 서론 부분 역할도 감당하고 있다.

본문에서 중요한 점은 모든 것들이 새롭게 된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분명하게 보여준 악을 철저히 멸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에 더해 더 이상 악이 거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질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이미 구약에서 ‘새 창조’에 관한 약속(사 65:17~18)의 성취일 뿐 아니라, 피조물들이 썩어짐의 종노릇에서 해방(롬 8:21)되는 순간이다. 특별히 저자 요한은 21장 1절에서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는 표현을 더함으로써 짐승이 나온 곳(13:1)이고 죽은 사람들의 장소(20:13)이며 세상의 우상 숭배적 상업 활동의 무대(18:10~19)일 뿐 아니라, 세 부분으로 나눠진 옛 세상의 일부(8:8~9, 14:7)의 부재를 통해 악의 부재와 그 악이 편만했던 옛 세상의 지나감을 강조한다.

저자는 새로운 세상을 언급한 후 초점을 새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있다. 마치 새 예루살렘이 새로운 세상의 축소판(microcosm)인 양 새 예루살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묘사한다. 구약의 약속인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이 되고(사 2:1~5, 18:7) 하나님께서 그곳에서 세상을 다스리신다(사 24:23). 또 에덴동산과 같은 곳(겔 36:35)이고 백성들과 함께 영원히 거할 곳(겔 37:26~27)이며, 생명의 물이 예루살렘에서 흘러나올 것(슥 14:8) 등 선지서 속의 시온과 예루살렘에 관한 수많은 기대와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고 있다. 새 예루살렘을 보면 어떤 세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으며, 어떤 축복을 누릴 것인지 소망할 수 있게 만든다. 
새 예루살렘은 두 가지 커다란 특징으로 소개되고 있다. 3절에서 말씀하듯,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과 4절에서 말씀하듯, 세상에서 경험하고 있는 인간의 모든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 전혀 다른 현실을 그려주고 있다. 이 두 가지에 대해 다음 단락(9~27)이 3절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그 다음 단락(22:1~5)이 4절 말씀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계 22:1~5)

새로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새롭게 된다(5절). 그렇다고 모든 것들이 현재 세상과 연속성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입을 ‘영광의 몸’(빌 3:21)은 현재 우리의 몸과 다르지만, 둘 사이에 연속성이 배제되지 않은 새로움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참고 눅 24:39, 롬 8:11). 반면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과 영원히 거할 처소인 새로운 세상의 ‘새로움’은 위의 경우와 조금 다르다. 다시 말해, ‘이미 새로워진 하나님의 백성’(고후 5:17)과 ‘새 하늘과 새 땅’ 간의 ‘새로움’에 차이가 있다. 새로운 세상은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이 함께 거할 곳이기에 옛 세상과의 연속성을 배제해 버린다.

그곳은 특별하기에 아무나 들어가지 못하고 현재의 삶에 근거해 결정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반복해 말하고 있듯이, 오직 세상의 유혹과 핍박을 ‘이기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힘이나 스스로의 의로 들어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12장 11절 등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이긴 자들’이 들어간다. 요한계시록이 교회를 향해 씌어졌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말씀에서 담고 있는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8절에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의 목록이 나온다. 여기에는 세상의 유혹과 핍박에 이기지 못하고 세상과 타협하며, 그런 행동을 하거나 거짓 교리를 전하는 이단들이 포함된다.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의 문제들과 연결해 생각할 때 이해가 된다. 열매를 찾아볼 수 없는 자,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며 따르는 자, 세상과 타협함으로써 세상과 구분 되지 않는 자 등 간단히 말해 ‘알맹이 없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향해 경고하고있는 것이다.

(2) 지성소로서 새 예루살렘(21:9~27)

새 예루살렘이 2절의 ‘신부와 같이’라는 직유적 표현에서 9절의 ‘신부’라는 은유적 표현으로 바뀐다. 하지만 여기에 근거해 새 예루살렘이 신부이고 신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에 새 예루살렘의 정체가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특히 15장 2절(‘유리 바다 같은 것’에서 ‘유리 바다’로)이나 21장 11절(‘벽옥같이’)과 18절(‘벽옥’) 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의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는 예들은 위의 결론을 지지하고 있다.

결국 문법적으로 다른 두 표현일지라도 기능면에서 차이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차이를 단순히 저자 요한의 스타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새 예루살렘에 관한 묘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저자 요한은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며 새 예루살렘의 두 주인공인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그리고 있다는 근거는 다음에서 볼 수 있듯이, 새 예루살렘에 관한 묘사 자체에 있다.

새 예루살렘이 지성소라는 사실을 전개해 나가는데 있어서 저자 요한은 세 가지 요소에 초점을 맞춰 외부에서 중심으로 이동하듯이 소개하고 있다. 먼저 11~14절에서 외부적 아름다움에 초점을 맞춘 후 16~17절에서 외적인 구조에 관해 표현하고, 마지막으로 새 예루살렘의 핵심적이고 중심적인 요소에 대해 22~23절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구성 요소들의 아름다움을 묘사하고 있다.

그런 묘사의 특징을 들자면, 열둘이라는 숫자의 만연함이라고 할 수 있다. 열두 문과 열두 지파의 이름(12절), 성벽의 열두 기초석 및 그들에 기록된 열두 사도들의 이름 (14절), 열두 진주문(21절) 등을 포함해 성벽의 가로 세로 길이가 12,000(=12x103) 스다이온에, 성벽의 두께는 144(=12x12) 규빗이라고 말하고 있다. 열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숫자다. 새 예루살렘의 묘사에서 열둘이라는 숫자의 강조는 그곳에 들어가는 새로운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정체에 관해 구약의 공동체와 신약의 공동체를 모두 언급하기보다 예수님의 피로써 구원 받은(예 1:5, 5:9, 7:14), 그리고 그분의 피로써 사탄을 이긴(12:11) 사람들을 언급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사도들의 가르침에 기초를 둔 하나님의 백성들을 상징하는 영적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다.

구조를 논하며 발견할 수 있는 사실은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한 정육면체 모양의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의 모델(왕상 6:20, 대하 3:8)을 근거로 해서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 독특한 점이 있다면, 거대한 크기(한 면이 2,400㎞인 정육면체)에 비해 성벽의 두께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144큐빗(약 65m)으로 표현돼 있다는 것이다. 서로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을 보며 숫자 자체에 문자적 의미를 부여하기보다, 오히려 그 숫자에 포함된 하나님 백성들의 상징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나아가 규모의 거대함에 더해 정육면체 형태의 지성소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결국 마지막 세상의 모습으로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과 영원히 거할 지성소 중의 지성소로 묘사되고 있다.

예루살렘 성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보석을 통해 특징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곳의 길은 이 땅의 금의 모습이 아니라 ‘유리 같은 정금’이며, 성벽과 기초석과 문은 온갖 보석으로 치장이 돼 있다. 물론 보석의 일부(벽옥, 홍보석, 녹보석)는 하늘의 보좌를 논하며(4:3) 등장했던 것들이다. 그러나 여기에 나와 있는 다른 보석들은 헬라어에서 실제로 어떤 보석을 의도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열된 보석들과 동일한 리스트를 다른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결국 보석들에 관한 결론을 외부에서 찾기보다 책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별히 음녀 바벨론을 논하며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다’(17:4. cf. 18:4)는 표현과 의도된 대조를 놓쳐선 안 된다. 스스로 온갖 악행과 불의로 얻은 것들로 치장한 음녀 바벨론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인한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지닌 새 예루살렘의 대조를 그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적 특성을 언급함에서 새 예루살렘은 ‘성전’이 없는 성이라고 말하고 있다(22절). 물론 여기서 말하려는 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예루살렘 성 안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성전의 부재를 의미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은 성과 성전의 구분을 없애 버린, 성 자체가 성전이며 지성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흥미로운 표현을 쓰고 있다. 하나님과 어린양이 새 예루살렘에서 ‘성전’이라는 것이다(22절). 마치 ‘새 예루살렘’이 단순히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의 공동체를 나타내고 있듯이, ‘성전’도 단순히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백성들의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존재로 나타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상호 관계뿐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믿는 사람들의 모든 소망함의 성취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

(3) 새로운 에덴으로서 새 예루살렘(22:1~5)

바로 앞 단락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중심으로 표현된 새 예루살렘을 그리고 있다면, 이 단락에선 그들이 거하는 장소에 초점을 맞춘 새 예루살렘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새 예루살렘의 중심이 보좌이며 그와 함께 언급된 생명나무의 존재다. 보좌의 중심됨은 4장에 그려진 하늘의 성전을 통해 이미 볼 수 있었던 것으로 새 예루살렘의 중심에도 하나님의 보좌가 있다. 그런데 그 보좌는 더 이상 하나님의 것만이 아니라 어린양의 것이며(3절), 생명수가 흘러나오는 원천이며(1절), 다시는 저주가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3절).

연이어 보여주는 것은 정원이라는 문자적 의미를 지닌 파라다이스의 모습을 지닌 새 예루살렘이다. 그 정원에선 다른 나무보다 생명나무가 중심이 되고 그곳에 거하는 거민 들이라면 인종에 관계없이 누구나 소성함을 얻으며 누구나 접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에덴의 회복이 아니라 그 이상이 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곳에서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 자가 없는 이 세상과 달리(출 33:20), 하나님의 얼굴을 목도하며 살게 된다. 또 하나님께서 에덴을 지으시고 의도하셨던 뜻을 온전히 이루며 살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어린양을 온전히 섬기며(3절) 그곳에서 다스리게 된다(5절). 물론 여기서 무엇을 다스릴지에 관해서는 말해 주고 있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을 논하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요한계시록 저자의 의도를 고려해 볼 때, 이런 생략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창세기에 기록된 처음 창조의 세상을 볼 때, 새롭게 창조될 세상에서 다스릴 대상이 있을 것으로 추측하는 일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사람을 만드시고 명령하시며 기대하신 일이었다. 이런 다스림은 천년 왕국(어떤 견해를 갖고 있든지 상관없이) 동안의 통치(20:6)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통치’라는 특성을 갖는다(5절). 다시 말해 단순히 에덴의 회복을 뛰어넘는 것이며, 나아가 에덴에서의 원래 목적(예배)이 이뤄지는 곳임과 동시에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다스림을 통해 온전히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곳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현대 교회를 향해 새 예루살렘이 주는 메시지

새 예루살렘의 도래는 요한계시록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그 순간을 가르치고 고대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온전히 성취되는 순간일 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바람과 소망의 온전한 완성이기도 하다. 새롭게 만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변화된’ 백성들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며, 다시 얻은 에덴동산이 아닌 그 이상의 파라다이스에서 하나님과 어린양을 예배하며 허락하신 것을 영원히 다스리는 역할을 감당하며 살게 된다. 현재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하늘 나라에 국한된 성전이, 마지막 때에는 지성소로 그리고 파라다이스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새 예루살렘이다. 이런 가르침이 현대 교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를 생각해 보자.

현대 사회를 논하며 사회를 주관하고 있는 두 개의 정신 사조로 흔히 물질주의(materialism)와 자아도취(narcissism)를 지목한다. 교회조차 알게 모르게 이런 사조에 밀려 표류하고 있는 것이 현대 교회와 크리스천들을 평가하는 사람들의 지적이기도 하다. 만약 그들의 평가가 사실이라면 요한계시록의 메시지, 그 중에서도 새 예루살렘에 관한 가르침이 주는 메시지는 매우 명료하다.

첫째, 물질주의의 위험과 함께 물질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고 있다. 물질주의와 연결돼 있는 것이 물량주의이고 물량주의와 연결돼 있는 것이 외적 성장주의이며, 성장주의와 연결돼 있는 것이 세상적 개념의 성공제일주의이다. 이런 것들을 향한 새 예루살렘이 주는 메시지는 세상에서의 가치가 천국에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의 연속성을 가지는 ‘사람’인가를 묻고 있으며, 동시에 우리가 추구하는 것 자체가 다음 세상과의 연속성이 없는 ‘물질’인가의 근본적 질문을 하며 평가하도록 만들고 있다.

현재의 시각으로 아무리 가치가 있는 것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모두 없어질 것이며, 또한 그곳에 절대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추구하는 일은 궁극적으로 무의미해지고 만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눅 16:9)는 가르침을 주신다. 물질이 아니라 사람의 소중함을 강조하시는 메시지다. 「내가 본 천국」에서 주장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상의 온갖 보화를 통해 묘사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써 나타나는 영광의 결과이지, 결코 천국의 모습과 동일시될 수 없다. 오히려 그 외적인 아름다움이 천국을 사모하는 이유가 된다면, 물질주의에 젖은 우리의 모습을 방증(傍證)하는 것이 분명하며 이에 더욱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둘째, 자아도취의 위험함을 깨닫도록 요구하고 있다. 자아도취와 함께 나타나는 현상으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있다. 주기도문을 보아도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 정체성이 정해지는 개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새 예루살렘의 묘사를 보며 다시 깨달아야 하는 것은, 믿는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뿐 아니라 인간들 사이에 존재하는 온전한 교제의 완성된 모습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기독교는 개인 종교가 아니라 공동체 종교이며, 연속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믿는 사람들 모두 함께 새 예루살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의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라는 말씀처럼, 세상에 존재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바라봐야 한다. 이런 관계는 단순히 교회 안에서 성도들간의 관계에 국한된 것일 뿐 아니라 교회와 교회 간의 관계를 돌아보게 만든다. 예수님께서도 우리 사이에 하나됨을 위해 기도하시며 그 하나됨의 목적이 전도와 선교에 있음(요 17:21, 23)을 말씀하신다. 따라서 협력하며 동역하는 모습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성도들 간에 또는 지역 교회들 간에 존재하는 갈등과 반목은 온전한 교제가 이뤄지는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통해 회복을 향한 노력으로 변화돼야 한다.

셋째, 천국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사람은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본다고 한다. 「내가 본 천국」과 같은 책에서 ‘신비로운 경험’에 근거해 주장하는 천국의 모습을 들어 보면, 천국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이 얼마나 절실한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히 가르치며 그것에 근거한 바른 믿음을 갖고 살아갈 때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을 할 수 있다. 이 땅에서 가치 있는 것들로 가득한 곳이 천국이라기보다, 세상의 가치로선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 곳이 새 예루살렘임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온전히 회복된 에덴 이상의 지성소적 파라다이스로 인간의 모든 필요와 소망이 채워지는 곳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온전히 성취되는 곳임을 기억해야 한다.

넷째, 진정한 예배의 회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하고 있다. 에베소서 2장 21~22절을 보면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교회가 이미 성전이라면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새 예루살렘을 경험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현재의 교회와 새 예루살렘간의 연속성은 가장 강하게 나타나 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보면서 예배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의 궁극적 축복이기에 현재의 예배를 하나님 중심으로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현대 교회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틀에서 사람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누가 예배의 중심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돌아보며 예배를 통해 마치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으로의 초대 및 만남이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교회에서 신앙 훈련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교인이 아니라 ‘이기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단순히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제자로서 삶을 살 수 있는 이기는 자들로 만들기 위해 부단한 훈련과 점검을 해야 한다. 특히 ‘성도들의 옳은 행실’(19:8) 등을 강조하는 요한계시록을 염두에 두고 한국 교회를 향한 외부에서 들려오는 최근의 비판적 평가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변화의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음녀 바벨론의 특성들로 만연된 세상에 둘러싸여 많은 도전과 시험 속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이끌리며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을 향한 도전이 새 예루살렘이 주는 메시지이다. 

오직 행함있는 믿음으로

어느 곳에 있더라도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우리의 사는 모습 속에 드러나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다. 새 예루살렘이 현대 교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리 모두를 향해 이기는 사람들이 될 것을 도전하고 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는 말씀을 순간마다 기억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이기는 자들’의 대열에 설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의 모든 것은 새롭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것이 현재 세상과의 연속성이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몸과는 다르나 연속성이 배제되지 않은 새로움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성전’은 단순히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의 백성들의 공동체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존재로 나타나 있다. 모든 이들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믿는 이들의 모든 소망함의 성취된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은 이기는 자들, 곧 그리스도의 참 된 제자가 되는 것이다. 사진은 초대교회의 하나인 사데교회의 유적과 어느 지하교회의 입구 모습.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또 다른 성경 속의 말씀을 통해 균형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 시대이다. 새 예루살렘이 우리 교회를 향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우리 모두를 향해 이기는 자들이 될 것을 도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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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새 하늘과 새 땅'

-이사야 65장과 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은 신구약 성경에 모두 4회 나온다. 예샤야후(이사야)서 65장 17절과 66장 22절, 페트로B서(벧후) 3장 13절, 요한계시록 21장 1절 등이다. 이 가운데 예샤야후 66'22와 페트로B 3'13은 각각 따로 특기할 만한, 또는 서로 대조할 만한 어떤 뚜렷한 차이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예샤 65'17과 요계 21'1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보인다. 한 번 비교해 보자.

먼저 예샤야후서 65장에 나타나는 해당 부분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겠다:

예샤야후 65'1

כִּֽי־ הִנְנִ֥י בֹורֵ֛א שָׁמַ֥יִם חֲדָשִׁ֖ים וָאָ֣רֶץ חֲדָשָׁ֑ה וְלֹ֤א תִזָּכַ֙רְנָה֙ הָרִ֣אשֹׁנֹ֔ות וְלֹ֥א תַעֲלֶ֖ינָה עַל־ לֵֽב׃ 

(음역) 키-히네 보레 샤마임 하다쉼 봐예레츠. 하다샤 베ㄹ로 티짜카르나 하리쇼노트 베ㄹ로 타알레나 (알-렙...)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사역)

다음은 계시록 21'1의 그리스어 원문이다.

Καὶ εἶδον οὐρανὸν καινὸν καὶ γῆν καινήν· ὁ γὰρ πρῶτος οὐρανὸς καὶ ἡ πρώτη γῆ ἀπῆλθαν, καὶ ἡ θάλασσα οὐκ ἔστιν ἔτι.

(음역) 카이 에이돈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 호 가르 프로토스 우라노스 카이 헤 프로테 게 아펠ㅌ한, 카이 헤 ㅌ할라사 우크 에스틴 에티.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첫 하늘과 첫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있지 않았다."

둘의 큰 차이

위 두 성구는 표면상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전자는 '내가'(하나님이) 창조하신다고 밝히셨다. 그래서 이전의 땅과 하늘은 기억나거나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거기 비해 후자인 이 계시록의 새 하늘과 땅은 새로 창조하시기보다 이미 어디엔가 존재해온 것이 새로 나타나 있는 것을 기자(사도 요한)가 비로소 바라보고 있다. 비록 기존해왔지만, 낡은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다! 태초에 창조된 첫(옛) 하늘과 첫 땅(즉 창세기에서 기록된 천지 창조 때의)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 첫 것이 사라진 뒤에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예샤 65장의 새 하늘, 새 땅과 요계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은 명칭만 같을 뿐, 적어도 개념상 어렴풋이 서로 다른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본문을 계속 읽어 나가다보면, 둘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예샤야후서 65장의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죽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20절이 그렇게 말해 준다.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와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한 채 죽는 노인이 없다고 했으니, 바꿔 말하면 넉넉히 살다 죽는 사람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불사는 아니라
는 말이다.

거기서는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불러준다고 하니까, 백 살 넘어 죽는 사람은 있다는 얘기가 되고, 백 살이 채 못 되어 죽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니, 바꿔 말하면 저주를 받았든 어떻든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그런 조기사망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받아야지, 상징적으로 받으면 안 된다!

바로 그 점이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의 모든 것은 수적 개념을 초월하여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하고 누리기 

다음으로 예샤야후서(65'21,22)의 이 새 하늘 새 땅의 거주자들은 자기가 살 집을 짓고 살고, 포도나무 등 과실수를 심어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지상사회에서 당했던 것처럼 자신이 지은 집과 거둔 농산물을 남에게 뺏기거나 넘겨주게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처지는 옛 하늘, 옛 땅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겪던 일이다(참고: 전도서 2'18,21; 6'2).

이 거주자들의 수명은 나무의 수명과도 같이 길고, 자신이 일한 대로 길이길이 누릴 것이라고 했다. 즉(23절) 헛수고를 하거나 앗기지 않은 채, 하나님의 복된 이들로서 또한 그 후예로서 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점들이 옛 하늘 아래, 옛 땅에서 살던 삶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들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계시록 20장에 나타난 천년왕국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예샤야후 65장의 새 하늘, 새 땅과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은 분명히 서로 구분되지만, 전자의 새 하늘 새 땅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과 같다는 점을 말이다.

이 왕국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다는 말씀이 이를 입증해 준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해온 나무의 수명은 무려 약 5000년이나 된다(강털소나무-Bristlecone pine tree가 그렇다. https://en.wikipedia.org/wiki/Bristlecone_pine )! 반 만 년 동안 지구촌의 삶을 지켜 봐 왔다는 얘기다. 그처럼, 사람이 1000년을 산다는 것이 이 천년왕국에서는 거의 평균적인 이야기다.

천년왕국에서의 수명

돌이켜 보자. 인류 초기 시대에 인류의 조상들의 수명은 거의 1000년씩이었다. 첫 사람 아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큰 죄를 짓고도 무려 930세를 살았다. 특히 아담에게 (순교자인 둘째 아들 아벨 대신) 주신 착한 아들 셑(셋)의 후손 중 머투쉘라(므두셀라)는 인류의 최장수자로서 969세를 누렸다!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아무튼 당시 인류의 수명이 보통 800~950년 안팎이었다(참고: 창세기 5'3~32). 지구촌 홍수 당시 방주를 지은 의인인 노아 역시 950세를 향유(享有)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명백한 사실은 천년왕국은 어디까지나 천년왕국이지, 만년왕국이거나 무한하고 영원한 왕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한하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인류의 최장수명은 1000세를 넘을 수 없다. 길어봤자 천 살이다.

과연 이 천년왕국의 행복한 시민들은 누구이며 천 년동안 무엇을 할까? 그들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 말씀 때문에 목벰을 당한 영혼들, 그리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크리스토(그리스도)님과 함께 천 년 간 통치를 하게 된다. 이들의 삶은 곧 첫째 부활에 속한다. 이들은 또 하나님과 크리스토님의 사제(제사장)들로서 천 년 간 온통 즐거움과 기쁨으로 섬기게 된다! 

반면,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죽은 나머지 사람들은 천 년이 다 차기까지 살지 못하고 있다. 즉 심판 때까지 부활이 없는 것이다. 

천년왕국 시민들에게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마귀의 유혹이 없고 따라서 죄 없는 삶을 누린다는 점이다. 그 지긋지긋한 죄 말이다. 어찌 그게 가능할까? 천 년 동안 사탄은 무저갱(無底坑)에 던져져 갇혀 있다가, 천 년이 다 차고 나면 잠시 놓여나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서 싸움을 붙이게 된다. 이들은 성도들의 진영과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지만,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다 태워져 버리고, 마귀는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진다. 사탄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거기 함께 하여 길이길이 괴로움을 받게 된다.

그 후엔 심판의 부활이 전개된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영들은 심판을 받아 사망 및 쉐올(Sheol)과 함께 불 못에 던져진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궁극적인 영원한 새 하늘 새 땅

그러나 거룩한 이들은 최후의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샬렘에서 길이 영복(永福)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계시록 21-22장 참조). 할렐루야!

간이 지배하고 지배받는 헌 하늘, 헌 땅의 유한한 곳이 아니라, 정말 하늘의 무한하고 영원한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는 생명수 강물이 있고, 그 좌우 강가에 자라면서 열매를 맺어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들이 있고, 다시는 저주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궁극적인 새 하늘 새 땅에는 밤도 없고, 등불과 햇빛도 필요가 없다! 그 하늘 성엔 어린양의 피에 자기 겉옷을 빤 복된 성도들만 들어가며, 개들과 점술가들, 음행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쟁이들은 들어가지 못한다(요계 22'14-15).



이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의 발산으로 창조됐고, 그 천지만물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과, 하나님의 능력과, 하나님의 지혜를 나타내고 있었으며, 그 하나님의 영광 앞에 순복하며, 그 하나님의 영광을 자랑하고, 찬양하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상태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해 힘을 쌓아서, 다른 존재들을 밟아 버리는, 그런 상태로 떨어져 버린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그것을 재통일! 에나케팔라이오! 재통일하시기로 하신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발산적인 그 영광을, 효과적인 영광으로 충만히 드러내고, 그 분께 순종하며, 그분을 자랑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상태로, 회복시키기로 한 거란 말이죠. 그게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인 거예요.

그래서 이사야서에 보면, 그렇게 회복된, 새 하늘과 새 땅의 그 하모니를, 아이가 독사 굴에 손을 넣고도 물리지 않고,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공존하고, 이렇게 표현을 한 거예요. 다시 회복되는 거란 말이죠. 그게 그 통일이!

그런데 그 만물이 인간의 타락으로 또 저주를 받으면 안 되죠? 원래 그렇게 만들어 놨는데, 인간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이게 확 왜곡되어 버린 거 아닙니까? 이제는 인간이 타락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하나님께서, 절대 타락할 수 없는 인간을 새롭게 창조해 내시기로 한 거예요. 그게 이제 구원인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인격 안에서, 이제 하나님이 얼마나 크신 분이며, 우리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여러분의 이성(理性) 안에서 가르치시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래서 여러분이 이제는, 이 이성(理性)을 갖고 배워서, ‘나는 이제 절대 타락하면 안 돼! 타락하면 이렇게 엄청난 고통 속으로 또 들어가는 거니까, 나는 절대 타락하면 안 돼!’라는 것을, 이 땅에서 배우고 올라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걸 하나도 안 하고, 그냥 자기 소원이나 들어달라고 그러고, 문제나 해결해 달라고 그러고, 기적이나 일으켜 달라고 그러니까, 이게 어찌 기독교이겠느냐? 제가 그렇게 통분하는 거예요. 오히려 그런 것들은, 여러분의 거룩을 막는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은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창조해내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거예요. 그리고는 어떤 한 무리를 창조해내셔서,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렇게 새롭게 통일이 되어서, 하나로 통일이 되어서, 하나님만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그 충만하신 영광을 반사해내는, 그런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교회 안에서 상징적으로 이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 보면, ‘교회가 예수님을 머리로 한 몸으로 묶였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게 태초의 천지만물이었다니깐요. 그걸 하나님께 구원받은 교회들이, 이 땅에서 상징적으로 모형으로 보여주고 오라! 그러는 거예요.

그런데 왜 그렇게 싸우냐 말이에요? 도대체!! 뭘 하다가는 거냐 말이에요? 우리가 뭘 하다가? 기독교가 그 거라니깐요 에나케팔라이오! 재통일된,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이 땅에서 보여주고 가는 거예요. 모형으로! 그래서 자꾸 죽는 거예요. 진짜 교회들은, 자꾸 죽는 거예요. 자꾸 낮아지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거 열심히 연습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들은, 이제 하나님이, 하나님이 아닌,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그런 타락한 옛 하늘과 옛 땅의 질서와 원리에서 벗어나서, 자신이 낮추어지고, 자신이 비워지며,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하나님나라의 질서와 원리 안에서, 살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애초에 의도된 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그러한 존재들을 생육시키고 번성케 하는 거예요. 여러분이 방법과 수단으로 쓰이는 거예요. 그래,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많이 이제 나타나야 돼요. 그게 아담에게 주어졌던, 애초의 목적이었단 말입니다. 우리가 그리로 돌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이 거룩하게 사시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런데 은이빨, 금이빨로 만들고 앉아 있고, 거품 물고 쓰러지게 하고, 이게 뭐냐 말이에요? 도대체!! 그게 어디서 나온 기독교냐 말이에요? 도대체 그게!! ‘아픈 데 손 얹으세요! 주님이 병 낫게 해주실 거예요.’ 그게 여러분의 거룩과, 이 창조의 목적으로 만물이 돌아가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 병 안 낫게 해주면, ‘하나님 미워!’ 그럴 거예요? 그 사망조차도 극복이 안 된 거예요. 지금 자기의 숨이 끊어지는 걸, 아직도 괴로워하고 무서워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하나님나라의 질서와 원리 안에서 살게 되는 그 곳을, 우리가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이사야서 43장 7절 보세요.

(이사야 43:7)

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여러분을 왜 만들었다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만들었다니깐요. 그러니까 기고만장하지 마시란 말이에요. 너무 건방떨지 마시란 말이에요. 우리는 그냥 하나님만을 위해서 사는 거예요. 그분을 알면,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영생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아들을 아는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영생이!

그러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너무 모르니까, 겁 없이 자꾸 뭘 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 앞에서! ‘이거 줘! 저거 줘! 안 주면 미워할 거야!’ 이게 기독교가 되어 버린 거예요. 에베소서 1장 11절 보세요.

(에베소서 1:11-12)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나오죠? 이게 효과적 영광이란 말이에요. 여러분을 구원하신 건, 여러분을 행복하고, 잘 먹고 잘 살게 만들어 주려고가 아니라, 원래 태초에 지어진 대로, 여러분이 하나님의 그 영광을 받아, 반사할 수 있는 그런 자로 만드는 거예요. 찬송하는 자로 만드는 것! 그게 목적이란 말입니다. 그게 안 나오면, 회개하라는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 1장 14절 보세요.

(에베소서 1:14)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 구속하신 이유가 뭐라고요? 그에 영광을 찬미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은 이 땅에서, 그의 영광을 찬미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그렇게 차곡차곡 지어져 가는 거예요. 지어져 가는 거예요. 그게 ‘성화(聖化)’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갈라디아서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하는 거예요. 사랑과 온유와, 희락과 화평과 절제, 긍휼, 자비 이런 것들이 여러분에게서 나오는 거! 그게 찬양이라니깐요 그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거라니깐요. 발산적 영광에 반응해서, 효과적 영광을 내놓는 거! 이것이 찬양인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인의 삶인 거예요. 여러분!

진짜 그 하나님을 알고, 우리의 신분을 진짜 우리가 안다면, 우리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열심히 공부하자는 거예요. 열심히 배우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그래서 이 땅에 것에서 눈을 돌리자는 거예요. 하늘의 것으로!

어떤 사람이 풀빵을 팔고 있었는데, 아주 잘 됐어요. 그런데 그 옆에, 똑같은 풀빵 장수가 또 왔어! 그런데 얘는, 나보다 한 개씩 더 주고, 맛도 더 좋아요. 그래서 손님들이 전부 그리로 몰려갔어요. 어떻게 됐겠습니까? 멱살 잡고 싸웠죠. ‘골목이 여기 하나야? 왜 하필 여기 와서, 여기 와서 풀빵을 팔아?’ 상대방이 뭐라 그랬겠어요? ‘이 골목이 네 꺼야?’ 그래서 결국 결판을 못 짓고, ‘그냥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열심히 일해서, 공정한 경쟁을 하자!’ 그렇게 결론을 맺었어요.

그리고 잘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또 왔어! 풀빵 장수가! 그래 간판을 딱 걸고 왔는데, ‘우리 풀빵은 저 두 집 풀빵과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빠다도 미제만 쓰고, 밀가루도 국산만 쓰고, 앙꼬도 두 배씩 넣어줍니다.’ 이렇게 써놓은 거예요. 열 받죠? 그래서 셋이 인제 멱살 잡고 싸웠어요.

그런데 갑자기 검은색 세단이, 승용차가 딱 골목을 들어오더니, 그중에 한 사람에게, ‘청와대에서 나왔습니다. 당신이 다음 주부로, 우리나라에 국무총리로 임명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했다고 쳐보세요. 이거 실제 있었던 일 아니에요. (하하하) 제가 이야기하면 전부 사실로 믿어서! 제가 이런 걸 생각해 내느라고 머리가 빠져요. 그 사람이 그 이야기를 듣고, ‘그래, 그건 그 거고, 잠깐만 있어봐! 내가 이 풀빵 장수들을 요절을 내고 난 다음에, 그 다음에 내가 그 이야기 들을게.’ 그러겠습니까?

이제는, 자기의 품위를 지켜야 하는 존재가 된 거예요. 국무총리가 됐다 말입니다. 그 사람은? 곧 손을 털겠죠. ‘아! 창피하게 이게 무슨 꼴이야? 딴 사람들 앞에서! 국무총리인데! 얘! 너 이리로 와봐! 이 풀빵 리아카 너 가져! 이 연탄불 이거 너 가져! 그리고 싸우지들 좀 마. 그리고 싸우지 마.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그렇게 싸우니?’ 그럴 거란 말이죠, 그죠?

그런데 여러분은,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곳을 보는 분들이라면서요? 여러분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왕노릇 하시는 분들이라며요?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딸들이라면서요? 그런데 여전히 풀빵 리아커 갖고 싸우고 있는 거예요. 지금요! 그러니까 ‘내가 다시 올 때에, 그 땅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는 거예요. 주님이! ‘내가 믿음을 보겠느냐?’ 그러는 거예요.

여러분이 보기에도 믿음이 있습니까? 이 땅에! 뭔 믿음이 이래요? 여전히 풀빵 리아커 갖고 싸우고 있는 이게, 믿음이란 말입니까? 아니에요. 여러분! 우리는, 정말 살아야 할 삶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 자신이 새로운 창조물이 됐다면, 이제 그 하나님의 발산적 영광을 받아, 충만하게 받아! 어떻게 받아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잖아요? 그죠? 받아서, 그 영광을 밝히 드러내는 거예요. 그리고 원래의 창조의 목적대로, 다른 자들이 그 하나님의 원래의 창조목적으로 돌아가도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도록, 기여하는 삶을 사시는 거예요. 이 땅에서! 그걸 성화라고 하는 것이고, 그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게 기독교인 것입니다.

여러분! 새 하늘과 새 땅에, 정말 들어가고 싶으세요? 오늘부터 그 나라의 삶을 사십시오. 그래야 들어갈 수 있어요. 기도하겠습니다.


죽은 자들이 일어나야 합니다.
누가복음 7장 11-17절에 보면 예수께서 나인이란 성에 지나가시다 한 죽은자를 메고 나오는 것을 보시고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매 죽었던 자가 일어앉고 말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5절에는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영적으로 죽은 자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서 일어나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발해야 할 빛

본문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말라기 4장2절에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라" 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1장 78-79절에는 "돋는 해가 우리에게 임하여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9절에는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에는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상 말씀들을 종합해 보면 본문에 네 빛이 이르렀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의의 태양으로 세상에 내려 오셔서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복음의 빛, 의의 빛, 선한 빛, 사랑의 빛을 비취시고 빛이신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한 성도들도 그스도와 같은 빛을 발해야 한다는 말씀인줄 압니다.

① 복음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4절에 "이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고 했고 6절에는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상 말씀이 복음의 빛을 증명합니다.
복음이라 하면 기쁜 소식을 말하는데 이 기쁜 소식은 빛에 속합니다. 그러기에 기쁜 소식이 있어 마음이 기쁠 때에 얼굴이 밝아지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빛으로 오셨으므로 천국 복음을 전하러 가시는 곳 마다 병든 자의 고침이 되시고 약한 자의 강함이 되시며 고통하는 자에게 평안을 주시고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을 쫓으시고 슬픈 자에게 위로가 되시고 죽은 자의 부활이 되셨으니 (마4:21-24 , 요 11:43-44) 이것이 바로 사람을 기쁘게 하는 복음의 빛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도 이러한 기쁜 일들이 나타나게 될 때 복음의 빛을 발하는 것이 됩니다.

② 의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잠언 4장 8절에 "의인의 길은 돋는 햇빛 같이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3절에는 "그 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의인들의 생활은 빛을 발하게 되는데 켜서 비취는 정도의 작은 빛이 아니고 온 세계를 비취는 해와 같은 큰 빛으로서 넓게 그리고 멀리 발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 의인 세 사람은 노아,다니엘, 욥 (겔 14:14) 입니다. 그 의인들의 생활은 과연 넓고 멀리 비취었으니 그들의 사적은 성경에 담겨 온 세계에 알려질 뿐만 아니라 수 천년을 두고 전해 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정의로운 생활을 할 때 빛을 발하게 됩니다.

③ 선한 빛을 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4-16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고 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아 성도의 착한 행실이 빛을 발하는 것이 되는데 이 착한 행실이란 남을 괴롭게 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되 마음과 말과 몸과 물질로 도와 주는 행활입니다. 이러한 생활로 빛을 발한 사람은 누가복음 10장 33-36절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 인입니다. 지금도 성들은 선한 생활로 빛을 발해야 합니다.

④ 사랑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8-10절에 "다시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 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데 있는 자요 그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는 자이니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과 같이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 동시 사랑의 종교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절에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랑은 세상적이요 정욕적인 사랑 즉 댓가를 바라고 하는 조건적인 사랑을 말함이 아니요 다만 예수님을 본받아 댓가를 바라지 아니하고 희생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사도는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는 정도였습니다.(행 20:24) 이것이 바로 愛人 如己의 사랑이었습니다.
역대 성인들 즉 성푸랜시스, 썬다싱, 슈바이쳐 등도 애인 여기의 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빛을 발한 자들입니다.
우리 기독교의 특별한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는데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고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20절에는 바울 사도가 원수를 사랑하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하면 그 머리에 숯불을 놓는 것 같으리라" 고했습니다.
이러한 특별한 사랑을 실천한 것으로 빛을 발한 자들은 다윗과 한국에 손양원 목사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주어 졌는데도 죽이지 않고 증거물을 보이는 것으로 회개하게 하였고 (삼상 24:1-19) 세계의 자랑 거리가 되는 사랑의 원자탄의 주인공 손양원 목사님을 보라 ! 자기의 사랑하는 혈육인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원수로 대하지 않고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아들로 받아드리지 안했던가 이렇게 원수를 사랑하는 특별한 사랑의 실천으로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고로 우리 성도들은 자는 잠에서, 병든 자는 병에서 , 죽은 자는 죽음에서 일어나 복음의 빛, 의의 빛, 선의 빛, 사랑의 빛을 발하되 제일 먼저 가정에 발하여 가정의 반목, 질시, 불행을 몰아내고 생명과 평화만이 넘치는 즐겁고 밝은 가정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사회에 발하여 사회의 시기, 질투, 음난, 도적, 살인, 사기, 횡령, 강도, 절도, 우상숭배 등을 몰아내고 밝은 사회를 만들 때 하늘의 뜻이 땅 위에 이루어지는 사랑의 나라 즉 천국의 모형을 보여 온 세계에 이 빛을 발하게 될 때에 여름 밤에 전기 불 빛을 보고 봉접이 수 없이 날아오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 것입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일어나 빛을 발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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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9일(토) 이사야 63-66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새 하늘과 새 땅(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Behold, I will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former things will not be remembered, nor will they come to mind.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용어가 신구약 성경에서 사용된 것은 4구절입니다.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Behold, I will create new heavens and a new earth. The former things will not be remembered, nor will they come to mind.

이사야 66:2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As the new heavens and the new earth that I make will endure before me," declares the LORD, "so will your name and descendants endure.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을 바라보도다.
But in keeping with his promise we are looking forward to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the home of righteousness.


요한계시록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Then I saw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for the first heaven and the first earth had passed away, and there was no longer any sea.

4구절 중에서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하는 구절은 이사야 65:17요한계시록 21:1입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66:22베드로후서 3:13은 뚜렷한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사야 65:17과 요한계시록 21:1에서는 분명한 차이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개의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주제를 정하고 살펴보겠습니다(이사야 65:17, 요한계시록 21:1).

두 구절의 차이를 찾기 위하여 원문을 소개합니다.

이사야 65:1   

כִּֽי־ הִנְנִ֥י בֹורֵ֛א שָׁמַ֥יִם חֲדָשִׁ֖ים וָאָ֣רֶץ חֲדָשָׁ֑ה וְלֹ֤א תִזָּכַ֙רְנָה֙ הָרִ֣אשֹׁנֹ֔ות וְלֹ֥א תַעֲלֶ֖ינָה עַל־ לֵֽב׃ 

(음역) 키-히네 보레 샤마임 하다쉼 봐예레츠. 하다샤 베ㄹ로 티짜카르나 하리쇼노트 베ㄹ로 타알레나 (알-렙...)

(사역)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않을 것이다."(사역)

요한계시록 21:1   

Καὶ εἶδον οὐρανὸν καινὸν καὶ γῆν καινήν· ὁ γὰρ πρῶτος οὐρανὸς καὶ ἡ πρώτη γῆ ἀπῆλθαν, καὶ ἡ θάλασσα οὐκ ἔστιν ἔτι.

(음역) 카이 에이돈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 호 가르 프로토스 우라노스 카이 헤 프로테 게 아펠ㅌ한, 카이 헤 ㅌ할라사 우크 에스틴 에티. 

(사역)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첫 하늘과 첫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있지 않았다."

이사야 65:1과 요한계시록 21:1의 차이

구약 이사야서 65:1에서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샤마임 하다쉼 봐 예레츠>

새한글 성경 / 
(하나님)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전 것들은 기억나지도 않고 마음에 떠오르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약 요한계시록 21:1에서는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우라논 카이논 카이 겐 카이넨>

새한글 성경 / 또 나는 보았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었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사라져 버리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다도 더는 없습니다. 

구약 이사야서 65:1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고 하셨습니다.
신약 요한계시록 21:1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고 합니다.

두 구절에서 차이가 무엇입니까?
창조한다과 보았다라는 동사에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서의 새 하늘 새 땅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미 만들어진(창조 된)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것을 말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에서의 차이

두 성구는 표면상 아주 비슷하거나 거의 같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내가'(하나님이) 창조하신다고 밝히셨다. 
그래서 이전의 땅과 하늘은 기억나거나 생각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땅은 새로 창조하시기보다 이미 어디엔가 존재해온 것이 새로 나타나 있는 것을 기자(사도 요한)가 비로소 바라보고 있다. 

비록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지만 옛 하늘과 옛 땅이 아니다. 
태초에 창조된 첫(옛) 하늘과 첫 땅(즉 창세기에서 기록된 천지 창조 때의)과는 전혀 다른 것으로, 이 첫 것이 사라진 뒤에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 65장의 새 하늘, 새 땅과 요한계시록 21장의 새 하늘, 새 땅은 명칭만 같을 뿐, 적어도 개념상 서로 다른 것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본문을 계속 읽어 나가다보면, 둘의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이사야 65장의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죽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다(이사야 65:20).

"거기는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

새한글 성경 / 거기에서는 며칠밖에 못 사는 젖먹이가 더는 없을 것이다. 자기 살날을 다 채우지 못하는 노인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100세에 죽는 사람을 소년이라 하고, 100세에 이르지 못하고 죽는 사람은 저주받았다 할 것이다.

20절이 그렇게 말해 준다.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와 제 명대로 다 살지 못한 채 죽는 노인이 없다고 했으니, 바꿔 말하면 넉넉히 살다 죽는 사람들은 있다는 얘기가 된다. 즉 불사는 아니라는 말이다.

거기서는 백 살에 죽는 사람을 '젊은이'라고 불러준다고 하니까, 백 살 넘어 죽는 사람은 있다는 얘기가 되고, 백 살이 채 못 되어 죽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할 것이니, 바꿔 말하면 저주를 받았든 어떻든 이 새 하늘 새 땅에서는 그런 조기사망자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받아야지, 상징적으로 받으면 안 됩니다. 

바로 그 점이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의 모든 것은 수적 개념을 초월하여 무한하고 영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하고 누리기 

이사야 65:21-22 /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 
                             그들의 건축한데 타인이 거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의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


이 새 하늘 새 땅의 거주자들은 자기가 살 집을 짓고 살고, 포도나무 등 과실수를 심어 그 열매를 먹을 것이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평소 지상사회에서 당했던 것처럼 자신이 지은 집과 거둔 농산물을 남에게 뺏기거나 넘겨주게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처지는 옛 하늘, 옛 땅에서 수시로 벌어지고 겪던 일이다(참고 / 전도서 2:18, 21. 6:2).

전도서 2:18, 21
내가 아래서 나의 수고한 모든 수고를 한하였노니 이는 내 뒤를 이을 자에게 끼치게 됨이라.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 

전도서 6:2
어떤 사람은 그 심령의 모든 소원에 부족함이 없어 재물과 부요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 능히 누리게 하심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다른 사람이 누리나니 이것도 헛되어 악한 병이로다.

이 거주자들의 수명은 나무의 수명과도 같이 길고, 자신이 일한 대로 길이길이 누릴 것이라고 했다. 
즉(23절) 헛수고를 하거나 앗기지 않은 채, 하나님의 복된 이들로서 또한 그 후예로서 대대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런 점들이 옛 하늘 아래, 옛 땅에서 살던 삶과 결정적으로 다른 것들이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한가? 
그것은 바로 계시록 20장에 나타난 천년왕국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혼동하지 말기 바란다. 
이사야 65장의 새 하늘, 새 땅과 계시록의 새 하늘 새 땅은 분명히 서로 구분되지만, 전자의 새 하늘 새 땅은 계시록 20장의 천년왕국과 같다는 점을 말이다.

이 왕국에서는 사람의 수명이 나무의 수명과 같다는 말씀이 이를 입증해 준다. 
세계에서 가장 장수해온 나무의 수명은 무려 약 5000년이나 된다(강털소나무-Bristlecone pine tree가 그렇다. 
https://en.wikipedia.org/wiki/Bristlecone_pine 

반 만 년 동안 지구촌의 삶을 지켜 봐 왔다는 얘기다. 
그처럼, 사람이 1000년을 산다는 것이 이 천년왕국에서는 거의 평균적인 이야기다.

천년왕국에서의 수명

돌이켜 보자. 인류 초기 시대에 인류의 조상들의 수명은 거의 1000년씩이었다. 첫 사람 아담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큰 죄를 짓고도 무려 930세를 살았다. 특히 아담에게 (순교자인 둘째 아들 아벨 대신) 주신 착한 아들 셑(셋)의 후손 중 머투쉘라(므두셀라)는 인류의 최장수자로서 969세를 누렸다! 현대인의 상상을 초월하지 않는가? 아무튼 당시 인류의 수명이 보통 800~950년 안팎이었다(참고: 창세기 5'3~32). 지구촌 홍수 당시 방주를 지은 의인인 노아 역시 950세를 향유(享有)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명백한 사실은 천년왕국은 어디까지나 천년왕국이지, 만년왕국이거나 무한하고 영원한 왕국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유한하다. 그러므로 이곳에서의 인류의 최장수명은 1000세를 넘을 수 없다. 길어봤자 천 살이다.

과연 이 천년왕국의 행복한 시민들은 누구이며 천 년동안 무엇을 할까? 그들은 예수님을 증언하고 하나님 말씀 때문에 목벰을 당한 영혼들, 그리고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고 이마와 손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바로 이들이 크리스토(그리스도)님과 함께 천 년 간 통치를 하게 된다. 이들의 삶은 곧 첫째 부활에 속한다. 이들은 또 하나님과 크리스토님의 사제(제사장)들로서 천 년 간 온통 즐거움과 기쁨으로 섬기게 된다! 

반면, 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죽은 나머지 사람들은 천 년이 다 차기까지 살지 못하고 있다. 즉 심판 때까지 부활이 없는 것이다. 

천년왕국 시민들에게 한 가지 더 좋은 것은 마귀의 유혹이 없고 따라서 죄 없는 삶을 누린다는 점이다. 그 지긋지긋한 죄 말이다. 어찌 그게 가능할까? 천 년 동안 사탄은 무저갱(無底坑)에 던져져 갇혀 있다가, 천 년이 다 차고 나면 잠시 놓여나와,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서 싸움을 붙이게 된다. 이들은 성도들의 진영과 주님이 사랑하시는 성을 포위하지만, 결국 하늘에서 내려온 불로 다 태워져 버리고, 마귀는 불과 유황의 못에 던져진다. 사탄의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도 거기 함께 하여 길이길이 괴로움을 받게 된다.

그 후엔 심판의 부활이 전개된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영들은 심판을 받아 사망 및 쉐올(Sheol)과 함께 불 못에 던져진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궁극적인 영원한 새 하늘 새 땅

그러나 거룩한 이들은 최후의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샬렘에서 길이 영복(永福)을 누리며 살아가게 된다(계시록 21-22장 참조). 

간이 지배하고 지배받는 헌 하늘, 헌 땅의 유한한 곳이 아니라, 정말 하늘의 무한하고 영원한 곳이기 때문이다. 
거기는 생명수 강물이 있고, 그 좌우 강가에 자라면서 열매를 맺어 만국을 치료하는 생명나무들이 있고, 다시는 저주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궁극적인 새 하늘 새 땅에는 밤도 없고, 등불과 햇빛도 필요가 없다. 
그 하늘 성엔 어린양의 피에 자기 겉옷을 빤 복된 성도들만 들어가며, 개들과 점술가들, 음행자들, 살인자들, 우상숭배자들, 거짓말쟁이들은 들어가지 못한다(요한계시록 2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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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늘과 새땅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이 천국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자세한 그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종말의 사건들 이후에 지금의 하늘과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신자들의 영원히 처소는 새 땅이 될 것입니다. 
새 땅은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입니다. 
바로 이 새 땅에 새로운 예루살렘, 즉, 하늘의 도성이 자리를 잡게 될 것입니다. 
이 새로운 땅 위에 진주 문들과 금 길이 있게 될 것입니다.

천국(새 땅)은 우리가 영광스럽게 된 육체를 가지고 거하게 될 물리적인 장소입니다(고전 15:35-58). 
“구름 속”에 있는 천국의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공중을 떠다니게 되는 영들이 될 것”이라는 사상 또한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경험하게 될 천국은 우리가 거하게 될 새롭고 완전한 행성일 것입니다. 
새 땅에는 죄, 악, 질병, 고통, 죽음이 없을 것입니다. 
새 땅은 지금의 지구와 비슷하든지, 아니면 아마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가 재창조되어 죄의 저주가 없는 새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새 하늘은 어떻습니까? 
고대의 사고에서는, ‘천국’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역뿐만 아니라 하늘과 우주를 지칭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21장 1절이 새 하늘을 언급할 때, 그것은 온 우주(새 땅, 새 하늘, 새 우주)가 새로 창조될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즉, 하나님의 하늘 역시 물리적이든 영적이든,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에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도록 재창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새 하늘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가능할 지 모르지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천국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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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1장 : 새 하늘과 새 땅

관찰 : 본문 읽기 (요한계시록 21:1-27)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다룹니다. 이는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과 영원한 왕국을 상징합니다.

1. 새 하늘과 새 땅 (21:1-8)

  1.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21:1-2)
    •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거처 (21:3-4)
    •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 모든 눈물을 그들의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3. 새 하늘과 새 땅의 완성 (21:5-6)
    •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기록하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라 하시고.
    •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내가 목마른 자에게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리니.
  4. 성도들의 상급과 불신자들의 운명 (21:7-8)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2. 새 예루살렘의 환상 (21:9-27)

  1. 신부의 모습 (21:9-11)
    •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광채가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2. 성의 성벽과 문 (21:12-14)
    • 크고 높은 성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지기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에 이름이 쓰여 있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 그 성에 성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3. 성의 크기와 재료 (21:15-21)
    •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측량하니 만 이천 스타디온이요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같더라.
    • 그 성벽을 측량하매 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측량 곧 천사의 측량이라.
    • 그 성벽은 벽옥으로 되어 있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황옥수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수정이라.
    •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각 문마다 한 진주요. 그 성의 길은 정금이니 맑은 유리 같더라.
  4.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21:22-27)
    • 성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그 성은 해나 달의 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 성문들은 낮에 도무지 닫히지 아니하리니 거기에는 밤이 없음이라.
    •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주요 구절 / 요한계시록 21:3-4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들의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해석 / 새 하늘과 새 땅의 의미

1. 새 하늘과 새 땅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1. 새로운 시작 :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2. 하나님의 장막 :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완전한 회복 : 사망과 슬픔이 없고, 모든 것이 새롭게 됩니다.

2. 새 예루살렘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백성들의 영원한 거처를 상징합니다.

  1. 하나님의 영광 :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합니다.
  2. 완전한 성 : 성의 크기와 재료는 완전함과 영광을 나타냅니다.
  3. 성전이 없음 : 하나님과 어린 양이 직접 성전이 됩니다.
  4. 영원한 빛 : 하나님의 영광이 그 성을 비추어 밤이 없습니다.

3. 성도들의 상급과 불신자들의 운명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상급을 주시고, 불신자들에게는 심판을 내리십니다.

  1. 성도의 상급 : 이기는 자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며, 그의 아들이 됩니다.
  2. 불신자의 심판 : 불신자들은 불못에 던져져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적용 / 새 하늘과 새 땅의 교훈을 실천하기

1.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기대하기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기대하며 그의 나라를 소망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임재 소망 :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기대하며 그의 영광을 소망해야 합니다.
  2. 영원한 삶 소망 : 우리는 영원한 삶을 소망하며 하나님과 함께 거할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2. 성도로서의 삶을 실천하기

우리는 성도로서의 삶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1. 성도의 삶 : 우리는 성도로서의 삶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2. 옳은 행실 : 우리는 옳은 행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경외하기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경외하며 그의 공의를 인정해야 합니다.

  1. 심판의 두려움 :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그의 공의를 인정해야 합니다.
  2. 공의의 찬양 :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며 그의 심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결론

요한계시록 21장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과 영원한 왕국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기대하며 그의 나라를 소망하고, 성도로서의 삶을 실천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을 경외하며 그의 공의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본이 되시며, 그의 가르침을 통해 우리의 삶을 조정하고 성장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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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1-8)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다: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전 1:9-10). 매우 공감되는 말이다. 새 것은 금세 헌 것이 되고, 삶은 이미 있던 것의 재탕, 이미 한 일의 연속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5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약속하셨다(벧전 1:4). 

미국 CCM 밴드 머시미의 리더 바트 밀라드는 “아이 캔 온리 이매진”이란 잘 알려진 노래로 하나님과 함께할 천국을 단지 상상할 뿐이라고 고백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한 세상을 단지 상상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성경의 마지막 계시를 통하여 우리가 바라는 천국의 윤곽을 보여주시고, 우리가 사모하는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볼 수 있게 하셨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믿음을 견고하게 하시기를 구한다. 천국을 더욱 사모하도록, 그래서 세상에 미련을 두게 만드는 온갖 유혹과 시험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하시기를 바란다.

1. 새 하늘과 새 땅의 특징(1-4절)

먼저,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천국의 수도인 새 예루살렘 도성에 관한 성경의 기록은 모두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요한이 직접 본 장면, 직접 들은 음성에 따른 것이다(“또 내가…보니”, “또 내가 보매”, “내가 들으니”, 1, 2, 3절). 세상엔 천국을 보고 들었다는 수많은 거짓 증언이 존재하고 인기를 끌지만, 정작 진실로 천국을 보고 들은 사도의 유일한 증언에 주목하는 자는 드물다. 온전히 신뢰할 수 있고 바랄 수 있는 천국의 비밀이 여기 있다.

천국의 구체적인 특징은 9절부터 다음 장 5절까지 묘사된다. 이를 요약한 본문에서 발견할 수 있는 천국의 주요한 특징은 바로 ‘새롭다’는 것이다. 하늘, 땅, 예루살렘 등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그런데 새롭게 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① 완전히 창조한다 : 

창조를 ’정화’로 보는 사람이 있다. 
타락한 피조세계를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고치시는 것이다(불). 또 다른 해석은 ‘새 창조’이다. 옛 세계를 완전히 제거하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것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new)”의 의미는 ‘가치나 매력에서 우월하다’, ‘옛것보다 낫다’로,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진 상태, 새롭게 창조된 세상에 바다해와 달이 없는 것을 볼때(23절),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실 것이다. 기존과 유사성을 갖지만, 완전히 다른 질서와 체계를 가진다.

② 완전히 아름답다 : 

천국의 거룩한 성의 이름은 새 예루살렘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해 지으신 거룩한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은 죄로 인해 바벨론, 로마에게 차례로 함락당하고, 천년 왕국 때 이 땅에 재건되었다가, 영원한 천국에서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영원히 세워진다. 요한은 그 모습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라고 말했다. 크고 웅장하고 견고하고 아름답고 정결한 성으로 영원히 있을 것이다(21:9-22:5). 

③ 완전히 선하다 : 

바다는 하나님 백성을 실족시키는 악의 무리가 출몰하는 곳으로 생각되었던 장소다(계 13:1, 짐승). 하나님은 악의 세력을 모두 불못에 영원히 가두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출몰지 자체를 없애버리신다. 악이 발현할 수도 없고, 악을 발견할 수도 없는 선한 세상을 창조하신다. 선한 세상은 죄도 없고 죄의 결과도 찾아볼 수 없다. 처음 하늘과 땅은 죄로 인해 저주받아 고통과 슬픔과 질병과 사망을 낳았다. 하지만, 새롭게 창조하실 세상엔 다시는 사망, 애통하는 것, 곡하는 것, 아픈 것이 있지 않을 것이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다(4절).

④ 완전히 친밀하다 :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는 ‘새로움’은 선하고 아름다운 만물의 새로움이지만, 그리스도인이 가장 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바라봐야 할 ‘새로움’은 하나님과 우리의 완전히 친밀한 관계에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운 광경에 사로잡힌 요한에게 또렷이 들린 하나님의 말씀, 보좌에서큰 음성이 이를 말해줬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3절). 

천국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곳이다. 
과거 하나님은 자기 백성 이스라엘과 광야 장막에서 함께 거하셨다. 
지금 하나님은 자기 백성 교회와 성령으로 함께 거하신다. 
그러나 천국에서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친밀함으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실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20).

사실 하나님 없이는 천국도 없다.
하나님이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5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나님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시고 하늘에서 내려보내 주신다(2절: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영원히 심판하시고 그동안 선을 위해 수고하며 흘렸던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신다(4절). 천국은 바로 이 하나님께서 현현으로 자기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 백성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이 누리시는 친밀함을 영원히 공유하시는 선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살면서 아쉬운 것이 있을 때만 천국을 생각한다. 집이 없을 때, 아름다운 처소를 바라고, 아프고 슬플 때, 고통과 슬픔이 없는 천국을 생각한다. 괴로울 때 위로와 안식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죄로 넘어질 때, 악에서 완전히 해방될 것을 기대한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다른 종교 신자들도 바라는 것들이 아닌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 11:1). 당신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새롭게 하실 무언가인가? 아니면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 그분 자체인가?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싶어 천국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다윗처럼 자기 영혼에게 하나님만 바랄 것을 요구하라.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시 62:5).

2. 새 하늘과 새 땅의 임금(5-6절)

영원한 세상에서 무엇이 새롭게 되는지 살펴봤다면 이제 누가 새롭게 하는지 살펴볼 차례다. 앞서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을 준비하시고 때가 됐을 때 내려주신다고 했다.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분도 하나님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고 다스리시는 임금으로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

먼저, 그분은 보좌에 앉으셨다(보좌에 앉으신 이, 5절). 보좌는 다스리고 통치하고 심판하는 모든 권세가 있는 왕의 자리다. 그분은 이미 모든 악을 심판하셨고, 이제는 자기 백성과 함께 만물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실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주체시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라고 선포하셨다. 거기에다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확증하셨다. 반드시 계획하신 그대로 이루신다는 분명한 열심과 의지가 표명된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기록하라”고 명령하심으로 변하지 않는 그분의 계획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공증하셨다. 

만물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은 성경의 마지막 책에서 처음 드러난 것이 아니다. 본문이 기록되기 800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이렇게 예언하셨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너희는 내가 창조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사 65:17-18). 그러면서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뜻을 이루리라’ 하였노라”라고 하셨다(사 46:10).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신다는 말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주관하신다는 말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강조하는 말씀이다. 본문에서는 이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라고 표현했다(6절). 역사의 시작과 끝, 그 안에 있는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엡 1:11). 그분이 새 하늘과 새 땅에 관하여 “이루었도다”라고 선언하셨다(직설법 완료). 사람이 하는 일은 아무리 오랜 계획과 많은 노력과 막강한 자원으로 시작해도 쉽게 변경되고 지체되고 폐기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겠다고 선포하신 계획은 이미 완료된 것처럼 정하신 때와 정하신 방식대로 한 치의 오류 없이 성취된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으면서도 종말을 불신하는 사람이 있다. 베드로는 말세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을 조롱하며 정욕대로 사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경고했다(벧후 3). 그들은 말씀하신 그대로 천지가 창조되었음을 믿고(창 1), 말씀대로 홍수가 나서 땅이 심판받았음을 믿고(창 6), 지금 보고 있는 하늘과 땅이 말씀으로 붙들려 있다는 것을 믿었지만(히 1:3), 그 말씀대로 처음 만물이 불태워지고 새로운 만물이 창조될 것을 믿지는 않았다.

당신은 믿는가? 하늘과 땅에 관한 하나님의 계획을 진실로 믿는 자는 곧 불타버릴 곳에 삶을 투자하지 않는다. 새롭고 영원한 곳에 삶을 투자한다. 썩고 더럽혀지고 쇠하게 될 유업을 바라지 않는다. 영원하고 변함이 없는 유업을 바란다. 당신도 그러한가?

3. 새 하늘과 새 땅의 백성(7-8절)

마지막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을 받게 될 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계시록은 하나님 반대편에 선 자들, 마귀를 따르는 자들,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 회개하지 않을 때 심판받을 것이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는 자의 최종 운명이 둘째 사망이라고 가르쳤다. 

본문에서는 그들을 가리켜 두려워하는 자들, 믿지 아니하는 자들, 흉악한 자들, 살인자들, 음행하는 자들, 점술가들, 우상 숭배자들,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라 했다(8절). 

두려워하는 자들”은 환난과 핍박 등 믿음을 시험하는 일을 만나면 두려워 자기 안위를 위해서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를 가리킨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어떤 사실을 불신하는 자가 아니라 신실하지 않은 자를 의미한다. 여러 가지 유혹에 빠져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을 깨는 자다. 
흉악한 자들”은 ‘가증한 자들’을 말하며 뒤에 나오는 우상 숭배자들과 같이 하나님 아닌 다른 대상을 경배하는 자들인데, 특별히 여기와 로마서에서만 사용되는 동사가 사용되어 황제 숭배를 허용한 자들과 관련이 있다. 
점술가들” 또한 하나님의 뜻이 아닌 미신적인 뜻을 좇는다는 면에서 일종의 우상숭배자와 같다. 
살인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들이고(특별히 대환난 기간에), “음행하는 자들”과 “거짓말하는…자들”은 육신의 정욕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한 마디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질 사람들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만 믿는 일에 불충한 자들, 하나님의 뜻을 기뻐하지 않고, 충성스럽게 따르지 않는 이들이다. 

반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상속으로 받는 백성은 “이기는 자”다(7절). 그들은 하나님만 사랑하고, 바라고, 믿는 일에 반하는 모든 것과 치열하게 싸워 이기는 자다. 그들은 땅의 지체를 죽이고(골 3:5), 마귀를 대적하고(약 4:7),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다(요일 2:15). 육신의 정욕에 질 때도 있지만,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시고 기뻐하시는 뜻대로 살기 위해 싸운다. 그들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을 열렬히 사랑하여 목마른 자다. 그런 자들에게 주님은 생명수 샘물을 값없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6절). 

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성도에게 편지하면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렇게 소망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요일 3:2). 우리는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보기 원한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참모습을 본 자들이 그곳에 초막을 짓고 영원히 살기 원했던 것처럼, 그분의 영광스러운 참모습을 보면 우리는 영원히 매료되어 기쁨과 만족을 얻고 친밀한 사랑을 나눌 것이다. 요한은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새 하늘과 새 땅의 소망이 당신의 삶을 지금 깨끗하게 하는가? 당신은 누구를 사모하고 무엇을 바라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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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하늘과 새 땅, 새 땅(new earth)은 왜 필요할까?

🌍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 땅은 왜 필요할까?

천국, 낙원, 셋째 하늘은 서로 다른 장소일까요? 아니면 같은 곳을 가리키는 표현일까요? 

천국(heaven)은 여러 개의 다른 장소라기보다는, 상급에 따라 배치와 위치가 달라지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렇기에 천국, 낙원, 셋째 하늘은 본질적으로 같은 장소이며, 영광과 권세에 따라 중심과 변두리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즉, 최상위 상급을 받은 자들은 중심부에 거주하고, 상급이 적은 자들은 변두리에서 거주하게 됩니다.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이르시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계 21:5)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계 21:1)

새 하늘과 새 땅,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며 상상초월하는 신세계입니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가 종료되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여십니다.

  • 현재의 천국(heaven): 죽은 성도의 영혼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 새 하늘(new heaven): 부활한 몸을 입고 들어가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궁극적으로 들어갈 새 하늘이 있다면, 굳이 새 땅은 왜 필요할까요?

왜 새 땅이 필요한가?

현재의 땅은 인간이 천국과 지옥을 선택할 수 있는 시험의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선택과 심판이 끝난 이후에는 다시 땅이 필요하지 않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새 하늘과 함께 새 땅도 창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창조의 회복과 완성

하나님은 처음부터 하늘만이 아닌 땅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은 그 모델입니다. 비록 인간의 죄로 인해 땅은 타락했지만, 하나님은 이 땅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회복을 계획하셨습니다.

새 땅은 이 창조의 완성이며 회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단지 영혼만 있는 존재가 아니라 몸과 영혼이 통합된 존재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구원의 최종 모습은 영혼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부활한 몸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2️⃣ 왕 같은 제사장들의 통치 영역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상급에 따라 권을 받은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세토록 왕 노릇 할 것이며, 각기 행성이나 영역을 맡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눅 19:17)

"다시 밤이 없겠고...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5)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계 5:10)

이 말씀들에서 알 수 있듯, 하나님은 왕이 다스릴 실질적인 영역을 주십니다. 그 공간이 바로 *새 땅*입니다.

3️⃣ 새 예루살렘성과 천국의 본부

"또 내가 보니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2)

새 예루살렘성은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거주하는 영원한 천국의 본부이자 행성들을 통제하는 중심 도시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영적인 상징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사하여 내려온 실제적 공간입니다.
하늘과 땅이 완전히 하나로 통합되는 것, 그것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4️⃣ 우주적 통치 질서

계시록은 이렇게 말합니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이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리라" (계 21:24)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가겠고" (계 21:26)

각 나라의 왕들, 곧 행성과 은하를 맡은 자들이 새 예루살렘을 출입하며 통치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처음 우주에도 셀 수 없는 행성과 은하가 존재했듯, 새 하늘과 새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자는 은하계를, 어떤 자는 행성 여러 개를, 또 어떤 자는 도시나 지역을 맡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상급과 충성의 결과입니다.

5️⃣ 부활의 영광과 영원한 차이

바울은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 후,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 13:44)

천국은 평등하지만, 동일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구원받지만, 모두가 왕은 아닙니다.

일반 백성으로 살 수 있음도 영광이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자들은 그에 걸맞은 왕권과 기업과 영역을 받게 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단순히 새로운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의 완성, 왕권의 실현, 하늘과 땅의 연합, 구속받은 자들의 영광스러운 삶의 터전입니다. 
그곳은 영생을 보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영혼으로만 끝내지 않으시고, 부활한 몸으로, 실제 공간에서, 주와 함께 왕 노릇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땅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케네스 헤겐 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1. 계시록(1-22장)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계시록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듯이(계 1:10), 해석 또한 성령의 조명하심을 따라 진행되어야 한다. 해석이란 기록자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경의 영감과 무오를 든든한 기초로 삼아야 한다.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계시록 해석이 어려웠던 이유는 성경을 떠났기 때문이다. 세상적인 방법들과 도구들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순한 진리를 망각할 때 우리 영혼의 갈증은 증폭되고, 소중한 보화를 인식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지속된다. 신구약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동일하시다. 오직 성경 안에서 계시록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면, 보화를 발견할 수 있다. 1. 계시록의 중요성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세 가지 사실에 대하여 증인이 되어야 한다..

1 장 재림에 대한 계시

재림에 대한 계시 (1:1-20) 1.계시의 시작과 전달 계시가 주어진 순서는, 하나님 → 예수님 → 천사(사자) →요한으로 진행된다. 계시의 주체 즉 계시의 설계자가 바로 성부 하나님이시다. 계시록에서 성부가 하시는 일의 중요성을 간과하면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성부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재림을 위한 모든 일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계시록을 읽고 연구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다(1). 그리스도의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이 계시가 주어진 것이다. 종들은 또한 계시를 모든 교회에 증거해야 한다(계 22:16). 2. 재림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의 모습(4) - “장차 올 자 ” 지금까지 계시록 해석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전혀 다루지 않았고, 또한 그 일이 매우 중요..

2장 일곱 교회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일곱 교회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속에는 일정한 틀이 존재한다. 편지의 서두에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난다(계 1:13-20). 각 교회들의 현재적인 형편과 고난들을 마치 현장에 있는 성도들처럼 보고 있으며, 성도와 한 몸으로서 그 고통을 느끼고 있다. -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행 9:4-5) 교회들은 수고한 일에 칭찬을 받고, 진리를 벗어난 일들은 엄한 책망을 받는다. 다시 회복되기를 원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모든 교회가 다 이기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이기는 자에게 주실 상급을 여러 모양으로 표현하고, 주님의 재림 때..

3 장 일곱 교회 -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일곱 교회 -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 5. 사데 교회(3:1-6) 1) 인사와 책망(1-3) 부활하신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마 28:18). 그 권세는 예수 이름을 모든 이름보다 높이셨고,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 앞에 꿇게 하셨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게 한다. 오직 예수님을 통하여서만,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나아가게 한다(빌 2:9-11). 이러한 일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구약성경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언급한다. 예수님도 성령을 ‘하나님의 일곱 영’으로 말씀하고 있다(1, 계 5:6). 성령의 소유(근원)가 모두 성부 하나님이다. 현재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 아버지께서 아들되신 예수..

4 장 하늘의 보좌

하늘의 보좌(4:1-11) 1. 하늘 보좌 4장부터 요한은 ‘이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1) 보게 된다. 이러한 일들을 보게 되는 것은 성령의 감동 즉 성령의 역사로(2) 인한 것이다. 요한은 성령의 감동을 통해서 하늘 보좌를 보았다. 하나님의 보좌의 모습을 여러 가지 보석들로 묘사하고 있다(4). 에스겔 선지자 역시 보좌의 형상을 여러 보석들과 무지개 모양의 영광으로 묘사한다.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각각의 보좌 위에서 면류관을 쓰고 있다(4). 이들이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들의 대표로 보거나 천사들 중의 한 계급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십사 장로들은 네 생물과 더불어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존재들이다. 특별히 요한이 울고 있을 때(계 5:4) 요한을 위로하며, 예..

5 장 일곱인으로 봉한 책과 어린양

일곱인으로 봉한 책과 어린양(5:1-14) 1. 심판의 법정 요한이 4장에서 보았던 하늘 보좌에서 심판이 집행된다. 노아 홍수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 좌정했다. 또한 재림의 때까지 계속해서 왕으로 좌정하실 것을, 엄중히 경고하고 있다. - 여호와께서 홍수 때에 좌정하셨음이여, 여호와께서 영원하도록 왕으로 좌정하시도다(시 29:10)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는 일곱 인으로 봉한 두루마리가 있다. 그 두루마리는 특이하게도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을 왕으로 믿지 않는 자들을 향한 심판 재앙을 담고 있다. 안팎으로 씌어졌다는 것은 그 양이 방대하고, 심판이 완벽하게 수행하도록 잘 준비되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 두루마리가 펼쳐지면 심판이 시행된다. 2. 어린양 예수님의 권세 장로 중 하나가 ..

6장 여섯 인 재앙

여섯 인 재앙 (6:1-17) ★ 일곱 인 재앙은 실제적으로 모든 심판 재앙을 내포하고 있으며, 장차 실행될 재앙들을 보여준다. 심판 재앙들에 관한 해석은 철저하게 심판의 원리에 충실해야 하며, 그 원리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 재앙은 하나님께서 ‘일반 은총의 부분적 제거’에 의해 일어난다. 또한 네 가지 인 재앙은 세계적이며 매우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이것은 모든 재난의 시작이다 (마 24:8, 막 13:8). 재 앙 일반 은총의 ‘부분적’ 거두심 흰 말 탄자 미 혹 이성과 도덕적 판단능력 제거(유 1:10) 붉은 말 탄자 미움과 살인 허락을 받고 화평을 제거함(계 6:4) 검은 말 탄자 경제적 파탄 경제적 은총제거(행 14:17) 청황색 말 탄자 전쟁과 사망 권..

7장 인치심과 큰 환란

인치심과 큰 환란(7:1-17) 7장은 두 가지 큰 사건을 다루고 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들과, 큰 환란에서 나오는 흰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인 맞은 자들과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전체적인 흐름뿐만 아니라, 이후에 펼쳐지는 심판 재앙에 대한 틀을 잡을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1. 14만 4천 -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의 정체성 7장의 하나님의 인 맞은 자들과 흰 옷 입은 수많은 무리들에 대한 이야기는, 6장에서 일어나는 심판 재앙의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나타난다. 무시무시한 심판 재앙으로 악인들은 고난을 당하는데, 그 때 우리 성도들 어찌 될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다. -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7) 여기에 대하여..

8 장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

일곱째 인과 나팔 재앙(8:1-13) 일곱째 인을 떼심으로 재앙이 시작되기 전, 왜 재앙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한다. 핍박받는 성도들의 기도 응답 때문이다. 성도의 기도가 천사의 손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드려진다. 드려진 기도는 성도의 신음이고, 탄식이며, 피흘림이다. 많은 핍박속에서 은총을 구하는 기도가 바로 하나님의 심판 재앙의 원인이 된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신음소리를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출 2:24) 6장에서 우리는 첫 번째 인부터 네 번째 인까지는 ‘재앙의 시작’을 알린다. 다섯 번 째 인 재앙은 순교자들의 외침이다. 이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면서 기다리라 한다. 그리고 반드..

9 장 5-6째 나팔 재앙 - 첫째 화, 둘째 화

5-6째 나팔 재앙(9:1-21) - 첫째 화, 둘째 화 1. 다섯째 나팔(1-11) - 첫째 화 다섯째 나팔은 또 다른 표현으로 ‘첫째 화(禍)’이다. ‘화’(禍)는 ‘재앙’(災殃)이다. 왜 5-7째 나팔 재앙을, 세 개의 화로 구별했을까? 다른 재앙들과 비교하여 볼 때, 재앙의 대상이 자연이 아닌 사람들이며 심히 큰 고통을 수반한다. 세 가지 화 재앙은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화 재앙들은 큰 고통이 수반된 반면에, 회개할 기회를 주는 하나님의 자비가 담긴 재앙들이다. 1)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1-2)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었을 때 요한은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를 보았다.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은 바로 ‘천사’이다. 그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 땅..

10 장 힘 센 천사가 알려준 재림의 시간

힘 센 천사가 알려준 재림의 시간(10:1-11) 둘째 화가 끝난 후 곧바로 셋째 화가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는데 힘센 천사가 등장한다. 11장에는 두 증인이 등장하고, 12장에는 사탄, 13장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 14장에는 14만 4천이 등장한다. 15장에는 극한 어려움 속에서 휴거되는 성도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마침내 16장에 도달해서야 남겨진 악인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린다. 왜 둘째 화가 끝난 후 셋째 화 사이에 이런 많은 사건들이 존재해야 하는가? 분명하게 둘째 화와 셋째 화 사이는 매우 짧다고 언급하지 않는가? -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quickly) 이르는도다(계 11:14) 10-15장까지는 왜 셋째 화가 오게 되는지에 대한 설명이다. 셋째 화 즉 재림을 통한..

11장 두증인의 사역으로 이스라엘이 돌아옴

두증인/ 일곱째 나팔(11:1-19) 1. 두 증인의 등장 10장에 등장하는 힘센 천사가 계속해서 두 증인에 대해 언급한다. 두 증인의 이야기는 재림의 징조 가운데 하나가 성취됨을 알려준다. 15장까지 여러 단편적인 이야기들 역시 동일한 의미를 전달한다. 전통적으로 두 증인이 교회를 상징한다든지, 또는 종말에 일할 추수꾼들이라는 견해들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해석들은 본문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혼동을 초래한다. 본문으로 되돌아가면 두 증인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찾을 수 있다. ➀ 그들은 이 땅의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다(4) -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처럼 실제적인 인물 ➁ 그들은 예언자이다(6) ➂ 그들은 짐승(적그리스도)과 싸운다(7) ➃ 그들은 짐승에게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한다(8) ➄..

12 장 붉은 용과 여자의 싸움

붉은 용과 여자의 싸움(12:1-17) 1. 세 개의 구조로 된 이야기 12장에는 세 개의 구조로 된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 큰 영광을 입은 여자가 남자 아이를 낳는 모습 속에서 아이를 죽이려는 붉은 용이 등장한다. 남자 아이는 하나님께 가고, 아이를 낳은 여자는 광야로 가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둘째, 하늘의 전쟁으로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과 그 추종자들 간의 싸움이다. 이 싸움은 하늘로 올라간 아이 즉 예수님의 구원사역의 완성으로 일어났다. 셋째, 붉은 용 즉 사탄이 마지막 기승을 부리면서, 성도들과 싸우고 있다. 2. 여자가 낳은 아들과 붉은 용의 싸움(1-6) 1) 아들 = 예수 그리스도 여자가 낳은 아들은 누구인가? 그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이다(5). 철장으로 장차 세상을..

13장 바다와 땅에서 나온 짐승

바다와 땅에서 나온 짐승(13:1-18) ★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들 - 사탄(12장) - 적그리스도(13:1-10) - 거짓 선지자(13:11-18) - 음녀(17-18장) 1.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성경 본문들 적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이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관련구절들을 잘 활용하면 더 깊고 세밀한 것들을 관찰 할 수 있다. 적그리스도 관련 본문 단 7:1-28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활동, 심판 계 13:1-10 적그리스도에 대한 정체성 단 11:28-45 안티오크 에피파네스 4세와 적그리스도의 연관성 계 13:11-18 거짓선지자와 협력관계 단 12:1-13 적그리스도로 인한 성도의 극심한 고난 계 16:12-16 세상의 왕들을 미혹하여 전쟁을 준비 살후 2:1-12 종말에 나타날 적그리스도 - 불법의 ..

14장 성도의 인내

성도의 인내(14:1-20) 1. 14만 4천(1-5) 1) 짐승의 핍박 속에서 순교 당한 성도들 짐승과 거짓 선지자에 의해 죽임당한 성도들이 예수님과 함께 시온 산에 서 있다(1). 이 시온 산은 어디인가?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의 성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이다. - 그러나 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도성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천만 천사와 (히 12:22) 십사만 사천은 이미 지상에서 싸움을 마친 자들이다. ‘이긴자’에게 주어지는 영광을 이미 취하고 있다. 십사만 사천의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1) -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3:12) 2) 십..

15장 모세의 노래 = 어린양의 노래

모세의 노래 = 어린양의 노래(15:1-8) 1. 일곱 번째 나팔 재앙은 곧 일곱 대접 재앙(1, 5-8)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릴 때(마지막 나팔),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일곱 대접 재앙이 등장하면서 큰 혼동이 오게 된다. 일곱 대접 재앙(16장)이 마치 일곱 나팔 재앙들처럼 여러 가지 재앙들이 등장하면서, 재림이 또 다시 지연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 결론적으로 일곱 대접 재앙은 일곱 번째 나팔이 울릴 때 주님이 재림하여 성도들이 휴거한 후 지상에 쏟아진다. 2. 일곱 번째 나팔 소리가 울러 날 때(2-4) 1)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2) 도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십사만 사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매우 당황하게 된다. 우리는 ..

16장 일곱 대접 재앙들

일곱 대접 재앙들(16:1-21) 1. 16장 서두에 생략되어진 것들 1) 일곱째 나팔(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이 생략됨 일곱째 나팔 소리가 울린 것은 11:15절이다. 그러나 그 때는 아무 재앙도 나타나지 않았다. 단지 나팔 소리로 인한 결과만 기록되어 있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고 할 때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다(계 10:7).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예수님이 재림하며, 성도들의 변화가 일어난다(고전 15:51-52). 16장에 와서 실질적인 재앙들이 일어나지만, 서두에서는 일곱째 나팔 소리 울림이 생략되어 있다. 일곱 대접 재앙들이 등장하여서 그 재앙들이 일곱째 나팔 재앙의 실체임을 알려준다. 일곱 대접 재앙들이 재림 후에 일어난 것을 확증하는 구절이 5절이다. 물을 차지한..

17장 큰 음녀

큰 음녀(17:1-18) ★ 음녀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 드러나다가(계14:8, 16:17-21), 구체적으로 17,18장에서 정체를 드러나며 완전한 파멸로 끝을 맺는다. 1. 큰 음녀는 누구인가? 1) 적그리스도를 태동시키는 음녀 란 를 말한다. 남편이 있는 여자가, 언약을 배반하고 다른 남자에게 가는 것이다. 음녀란 용어는 오직 언약백성에게만 사용이 가능하다. 신약에서는 주님을 잘 알고 섬기다가, 다른 교훈이나 이단, 타종교로 전환하는 자를 음녀라고 부른다 (약 4:4; 잠 2:16). - 무릇 주를 멀리하는 자는 망하리니, 음녀같이 주를 떠난 자를, 주께서 다 멸하셨나이다(시 73:27) - 그는(음녀) 젊은 시절의 짝을 버리며, 그의 라(잠 2:17) 음녀는 세계를 다스리는 막강한 집단이다. 음녀..

18 장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

큰 음녀 바벨론의 멸망(18:1-24) 17장에 이어 18장 역시 음녀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이다. 음녀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인가? 17장에 화려했던 음녀는 18장에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면서 음녀의 심판이 가까이 왔음을 암시한다. 음녀의 심판 받음은 그 화려함만큼 비참하게 막을 내린다. 1. 천사들의 임무와 성격(1) 천사들이 하는 일의 성격은, 그 천사를 표현하고 있는 이름이나 행동 속에 나타난다. 음녀를 심판하고자 하는 큰 권세를 가진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다. 천사에 대한 다양한 표현들이 있다. 이름이 사망이며(계 6:8), 땅에 떨어졌고(계 9:1), 파괴자이며(계 9:11), 결박되었고(계 9:14), 예리한 낫(계 14:17)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 천사들이 해야 할 임무를..

19장 어린양의 혼인잔치와 재림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 재림(19:1-21) 16장에서 재림 하신 예수님이 적그리스도와 그 추종세력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고 짐승에게 경배하던 자들에게 대접 재앙들을 쏟으셨다. 19장은 16장에서 생략되었던 이야기들을 다시 나누고 있다. 음녀를 심판함으로서 성도들의 핏 값을 보상하셨고 혼인잔치를 예비하며 성도들을 초청하신다. 또한 재림하실 때의 영광과 땅에 남겨진 악인들에 대한 처절한 심판을 다시 언급한다. 넓게 조명하면 19-20장은 재림 하시는 예수님이 세상의 군왕들과 사탄, 악한 천사들, 부활한 악인들을 심판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부분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하고 있다. - 그 날에 여호와께서 높은 데에서 높은 군대를 벌하시며, 땅에서 땅의 왕들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죄수가 깊은 옥에 모임 같이 모..

20장 천년왕국과 백 보좌 심판

천년왕국과 백 보좌 심판(20:1-15) ★ 20장은 네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탄의 결박(1-3)과,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 예수님과 천년동안 왕 노릇하는 것(4-6), 사탄의 만국 미혹과 패망(7-10), 백 보좌 심판(11-15)이다. 1. 사탄의 결박(1-3)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심판이 집행되고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이다. 그리고 이들에게 미혹당해서 전쟁에 참여했던, 온 천하의 왕들과 군대들이다. 이들에 대한 심판이 19장에서 엄격하게 집행되었다. 심판받는 대상 가운데, 마지막 남은 사탄은 어찌되는가? 붉은 용으로 표현된 사탄이 심판 받는 것은, 재림 후의 최대 관심사중 하나이다(계 12:3,9).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가 오면서, 타락한 천사들과 사탄, 땅..

21장 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성

새 하늘과 새 땅 & 새 예루살렘 성(21:1-22:5) 21장 이후는, 재림 후 성도들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확고한 이해가 필요하다. 견고한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고, 간절한 소망은 어려움을 뚫고 나가는 힘을 공급한다. -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1. 새 하늘과 새 땅(21:1-8) 1) 새 하늘과 새 땅은 언제 나타나는가? 새 하늘과 새 땅이 나타나는 시점은 언제인가? 역사적 전천년주의나 세대주의는, 천년왕국 이후에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재림 후 중간단계로 천년왕국을, 또 하나의 지구로 표현하고 있다. 현존 지구..

22장 예언의 말씀에 대한 엄격한 준수

예언의 말씀에 대한 엄격한 준수(22:6-21) ★ 22장 6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주어진 예언의 말씀을 통하여 새롭게 깨어날 자들도 있지만, 에서처럼 소홀이 여길 자들이 있음을 암시한다. 예언의 말씀에 대한 현재적 반응은 상반된 결과를 가져온다. 그것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영원토록 왕 노릇 할 것인지, 아니면 성 밖에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것인지를 결정한다(단 12:2) 1. 누가 복 있는 자인가?(6-10) 1) 복 있는 자는 말씀을 지키는 자 선지자들의 예언은 ‘반드시’, 그리고 ‘속히’ 이루어진다. 이러한 긴박함 속에서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들어야 한다. 계시록을 시작하면서는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선포한다(계 1:3). 결론적으로, 이 세 가지..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
Anti-Christ

언어
          명칭
그리스어
    Αντίχριστος
라틴어 
   Antichristus
가톨릭 번역
  가(假)그리스도
그리스도의 그리스도의 적

 
그리스도의 적대자
적그리스도
Antichrist


적그리스도, 그리스도의 적(Ἀντίχριστος 안티크리스토스, אנטיכריסט, Antichrist, anti-Christ) 
가그리스도(假그리스도)는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 그리스도(메시아)를 사칭하는 악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적그리스도
라고도 한다.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을 통틀어 요한일서와 요한이서에서 총 5회 발견되는데, 복수형으로는 1회, 단수형으로는 4회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메시아)라고 믿는 예수가 재림 때에 가장 강력한 거짓 메시아인 그리스도의 적과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전해진다. 
버나드 매긴에 의하면,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자 인류를 위한 이상적인 모델인 것처럼 그의 적수는 강력한 악의 인물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슬람교 종말론에서도 아랍어로 이싸로 알려진 예수의 재림 전, 인류를 기만하기 위한 거짓 메시아(المسيح الدجال)가 나타날 것이라고 말한다.

일부 비율법주의 중세 유대교 종말론에서도 비슷하게(풍자적으로) 메시아에 맞서는 종말의 때에 왕으로 등극하여 이스라엘을 몹시 괴롭힌 후에 정복당하게 될 동정녀의 아들 아르밀루스가 언급된다. 
전통적인 유대교 사상에는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지만, 중세 디아스포라 시절에는 메시아 시대에 악에 대한 최후의 승리의 상징으로서 필연적으로 파멸될 존재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적그리스도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지구 역사의 마지막 때, 마지막 세대, 마지막 기간에 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적그리스도는 누구이며 또는 무엇인가?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 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적그리스도란 낱말의 헬라어 원어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을 대적하는,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예수님의 행하시는 일을 대적한다는 의미이고 또 다른 하나는 예수님을 대신하는, 다시 말하면 어떤 사람이나 세력이 예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 또는 예수님을 모방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은 특별한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언급함과 더불어 이미 초대 교회 시대에 많은 적그리스도가 존재하였음을 말씀하고 계신다. 요일 2:19, 26 "저희[적그리스도]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면 적그리스도란 참된 신자들에게서 떨어져 나가 마치 그리스도인인 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 이심을 거절하는 미혹하는 사람들이었다. 요일 2: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는 무신론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하여 싸우는 이교도들이 아니다. 그들은 복음을 외치되 거짓 복음을 가르치는 자들이다. 그것은 '다른 복음'이다. 고후 11:4, 13-15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하는 일에 대하여 교회에 경고한다. 마 7:15, 21-23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더욱이 예수님은 세상의 마지막 때인 재림이 임박한 시기 동안 있게될 그리스도의 재림까지도 연출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집요한 미혹에 대해 경고하신다. 마 24:4-5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기를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 24:24-25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장차 올 적그리스도'라 묘사된 적그리스도의 이적이 베풀어질 것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3-4 
"누가 아무렇게나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 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이 적그리스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겠으며 우리는 그를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데살로니가후서 2:8-10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신약성경에 그리스도의 적이 언급되어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다. 이 용어는 요한 1서의 안티크리스토스(antikhristos)에서 유래한 것이다.[4] 비슷한 용어인 프세우도크리스토스(pseudokhristos, 거짓 메시아) 또한 신약성경에서 처음 발견되는 용어로, 가령 요세푸스는 다수의 거짓 메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5] 안티크리스토스의 개념은 기원전 500년~서기 50년 사이 유대인 문헌에 전혀 나와있지 않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그리스도의 적이 온다고 여러분이 들은 그대로, 지금 많은 그리스도의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요한 1서 2,18).

“누가 거짓말쟁이입니까?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아버지와 아드님을 부인하는 자가 곧 그리스도의 적입니다.”(요한 1서 2,22).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은 모두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입니다. 그 영이 오리라고 여러분이 전에 들었는데, 이제 이미 세상에 와 있습니다.”(요한 1서 4,3).

“속이는 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왔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는 속이는 자며 그리스도의 적입니다.”(요한 2서 1,7).

종래 기독교에서는 적그리스도를 어떤 특정한 인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이해하였다. 예컨대 종교개혁 시대에 교황과 루터가 서로를 적그리스도라고 비방하면서 교회에 가르침과 반대되는 짓을 일삼는 사람을 특정하는 용어로 쓰였다.말하자면 그리스도에 대적하는 악한 무리의 총체라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속사도 교부의 한사람인 폴리가르포는 필리비 교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거짓된 교리로 교회 공동체에서 설교하는 무리가 적그리스도입니다.'라고 하였는데, 폴리가르포는 어떤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적그리스도라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집단을 가리켜 적그리스도라고 하였다.

기독교가 종교개혁으로 분열되었을 때 로마 가톨릭 교회와 개혁교회 진영에서는 서로를 '적그리스도' 아니면 '가그리스도'로 정죄하는 일을 저질렀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가톨릭 교회와 개혁교회에서 서로를 근거없이 비방하는 것을 삼가면서, 서로의 수장을 적그리스도라고 비방하는 것을 삼가게 되었다.

  1. “KJV Search Results for Antichrists”. The Blue Letter Bible. 2014년 2월 13일에 확인함.
  2. “KJV Search Results for Antichrist”. The Blue Letter Bible. 2014년 2월 13일에 확인함.
  3. Jewish Encyclopedia: Armilus:
  4. William Horbury, Messianism Among Jews and Christians: Biblical and Historical Studies 2003 Page 333 "Against this background it can be seen that the technical Greek term antichristos, although it is known only from Christian … Antichristos first occurs in the Johannine epistles, and it is not used by other Greek Jewish or early Christian writings ..."
  5. The Gospel of Peace: A Scriptural Message for Today's World - Page 70 Ulrich Mauser - 1992 "From Josephus's writings we collect, first of all, without much critical comment, some statements showing the close affinity of the … nowhere in his extensive accounts of the Jewish–Roman war uses the word "pseudo-Christ" (pseudochristos)."



요한일서 2:18-29      

‘적그리스도’는 요한의 서신에만 등장하는 독특한 단어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여 세상을 미혹할 이 적그리스도를 사도 바울은 ‘불법한 자’(살후 2:8), 멸망의 아들(살후 2:3)로 설명하고 있고,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계 13:1)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인 다니엘 9장 26, 27절에서는 적그리스도를 마지막 때에 성전에다 자신의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올 ‘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적그리스도라는 단어가 헬라어에는 αντιχριστος라고 영어에서는 이를 직역해서 적그리스도를 antichrist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αντιχριστος에서 χριστος가 그리스도(christ)라는 뜻이고, 앞에 붙은 αντι라는 단어는 ‘대적한다(against, opposite)’는 뜻과 함께 ‘대신한다(instead)’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즉,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인 동시에, 가짜 그리스도로서 그리스도를 대신하려는 자라는 것을 αντιχριστος라는 단어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는 겁니다.

손자병법에 보면 지피지기백전불태[知彼知己百戰不殆]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이길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는 적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마지막 때에 등장하여 세상을 미혹할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와 함께 교회 역사 속에서 등장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antichrists)을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런 대적들에 대해서 알아야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대해서 알아야 비로소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저도 7년 째 블로그를 통해 이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알리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목사가 왜 일루미나티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느냐?” 라고 물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에게 저는 “적그리스도를 옹립하려는 일루미나티에 대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모르면 영적 싸움에서 이길 수 없기에 목사가 앞장서서 이를 알리는 것”이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여하튼 오늘 본문에는 이런 적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나오고 있는데, 오늘은 이 말씀들을 살펴보면서, 영적 싸움에 임하는 우리의 각오를 새롭게 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1.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마지막 때의 징조입니다(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곧 마지막 때가 이르렀다는 확실한 징표라는 말씀입니다. 18절 앞부분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는 the antichrist라고 해서 단수형으로 되어 있는데, 뒷부분에서 언급하는 ‘많은 적그리스도(many antichrists)’는 헬라어 원문에는 ‘안티크리스토이 폴로이’라고 해서 복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하고 있는 7년 대 환난 때에 등장할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 뿐 아니라, 교회 역사 속에서 등장했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세력들 모두를 적그리스도(antichrists)라고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사도 요한이 이 서신을 쓸 당시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바로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어지는 설명에서 나오는 것처럼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부인했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요이 1:7)이었습니다.

이런 영지주의자들의 신앙을 이어 받은 것이 바로 지금의 프리메이슨, 예수회, 일루미나티, 유태자본가들로 일컬어지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인데, 이들은 수 백 년 동안 은밀히 역사의 흑막에서 활동하며 이 땅에 적그리스도(호루스)가 통치할 자신들의 나라(NWO)를 세우기 위해 준비를 해오고 있습니다. 오랜 동안 역사의 흑막에서 활동하던 이들이 최근 공개적인 활동을 시작한 것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징조이기도 한 것입니다. ‘많은 적그리스도(many antichrists)’가 아니라 요한계시록에서 예언하고 있는 ‘그 적그리스도(the antichrist)’가 출현할 때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2. 우리에게서 나갔으니(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이는 초대 교회 안에서 은밀히 자신의 정체를 숨기며 성도들을 미혹하다가 결국 교회 밖으로 나가 자신들의 세력을 형성한 적그리스도 바로 영지주의자들을 지적한 말씀입니다. 영지주의자들 뿐 아니라 역사 속에서 등장했던 많은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기독교 혹은 유대교에서 파생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와 바벨론 종교를 결합한 로마 카톨릭,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를 짬뽕하여 만들어진 이슬람이 대표적인 적그리스도의 세력이라 할 수 있는데, 현대판 영지주의자라 할 수 있는 일루미나티들과 바벨론 종교와 합쳐진 로마 카톨릭 그리고 이슬람 모두 참된 믿음의 성도들을 말살시키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 안에서 활동하다가 나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 뿐 아니라, 지금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탈을 쓰고 은밀히 활동하면서 실제로는 적그리스도를 이롭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목사, 신학자, 혹은 기독교 언론이란 이름을 가지고 오히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종교통합과 동성애 합법화에 앞장서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한국교회를 극우적인 이데올로기로 물들여 세상이 교회를 공격할 빌미를 주고 있는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이 있습니다. 이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을 분별하여 물리치지 않으면 교회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3.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하십니다(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그리스도인의 무기가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적그리스도의 무기는 거짓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뱀의 형상으로 나타나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창 3:5)는 거짓말로 미혹하여 선악과를 먹게 한 것처럼, 지금도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그럴 듯한 거짓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진리를 떠나 죄의 길로 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일루미나티들은 하나님이 가증하게 여기시는 동성애를 인권이라 속이고 있고, 로마 카톨릭은 종교 통합을 인류의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선택인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 안에 칩을 이식한 채 컴퓨터의 통제를 받는 노예와 같은 삶을 살게 될 적그리스도의 나라(NWO)도 마치 유토피아와 같은 세상인 것처럼 속이고 있습니다. 또 극우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를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속여 순진한 성도들을 태극기 정치 집회에 동원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그 옛날 아담과 하와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는 것은 그런 거짓말이 너무나 그럴듯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그 거짓말에 미혹되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아담과 하와와 같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미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신 것처럼 이 거짓을 분별하여 물리치기 위해선 우리가 먼저 말씀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진리를 알 때 비로소 적그리스도의 거짓을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4.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이라 하십니다(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또 다른 특징은 저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고, 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것이라 하십니다. ‘부인하다’는 단어가 헬라어로는 ‘아르누메노스’라고 되어 있는데 ‘부인하다, 거절하다, 배반하다, 버리다’는 뜻을 가진 단어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deny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로 볼 때 예수님을 3년 동안이나 따라다니다가 배반하여 버리고 간 가룟 유다는 적그리스도를 예표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등장할 적그리스도도 가룟 유다처럼 처음에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인 것처럼 가면을 쓰고 활동을 하다가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하튼 예수를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 할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먼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적그리스도라 하십니다. ‘그리스도’란 히브리어로 ‘메시아’를 의미하는 단어로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에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세울 때 특별히 기름을 부어 세웠기에 메시아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고백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다스리는 왕이 되시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대제사장이 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보여주신 선지자가 되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가 되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자들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세력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라 하십니다. 앞서도 살펴본 것처럼 ‘부인하다’ ‘아르누메노스(deny)’는 거절하고 버린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거절하는 자가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서도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하셨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세상 죄를 대속하신 그 아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분의 통치를 거절하는 자가 어리석은 자요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가 아버지와 그 아들을 부인하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의 통치자 즉, 그리스도로 군림하고 싶은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이 헛된 욕심 때문에 그 옛날 루시퍼가 하나님을 대적하다 심판을 받은 것처럼(사 14:12) 적그리스도도 아버지와 그 아들을 부인하고 대적하다가 심판을 받고 불 못에 던져질 것입니다(계 19:20).

5.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1, 27).

그렇다면 이제는 거짓을 무기로 삼아 세상을 미혹하여 왕 노릇하려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을 어떻게 분별하여 물리칠 것인가? 이에 대해 사도 요한은 두 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21절에서 사도 요한은 “진리를 알아야 한다.”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하십니다.

위폐 감별사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드리는 것이 바로 진폐를 보고 연구하는 것이라 합니다. 진폐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으면 어떤 위폐를 가져와도 이를 쉽게 구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의 거짓을 물리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리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알 때, 사탄의 거짓을 쉽게 분별하고 물리칠 수 있는 겁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호 4:6)는 말씀처럼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이단에 빠지고 이데올로기에 흔들리는 겁니다.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 6:3)하십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리스도를 알고, 진리 되신 말씀을 알아야 비로소 적그리스도의 거짓을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적그리스도를 물리치는 두 번째 방법으로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27)하십니다. 여기서 ‘거하다(abide)’에 해당되는 헬라어 ‘메이네이’는 직설법 현재형으로 되어 있는데, 헬라어 문법으로 직설법 현재형은 영어로는 현재형 뿐 아니라 현재 진행형을 함께 포함하고 있는 동사입니다. 그러기에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는 말씀은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 안에 늘 거하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늘 말씀 안에 거하고 주님이 가르치신 말씀이 언제나 절대적인 기준(canon)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다가 내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헛된 세상 철학이나 이데올로기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이처럼 항상 말씀 안에 거할 때 비로소 갖가지 거짓말로 미혹하는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많은 자들이 거짓을 무기로 삼아 할 수만 있다면 믿는 자들도 미혹하려고 하는 지금이 바로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임박한 마지막 때입니다. 끝까지 말씀 안에 거하며 진리 되신 말씀으로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언급된 "적그리스도"는 어떤 인물인가? 특징과 해석

적그리스도란 누구인가? 성경적 해석과 예언 속 모습

성경에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면 적그리스도(Antichrist)가 등장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캐릭터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또한, 오늘날 살아 있는 어떤 특정 인물이 적그리스도일 가능성이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성경적 해석을 기반으로 적그리스도의 특징을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해석을 살펴보겠습니다.

Dispensational Charts by Clarence Larkin

1️⃣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성경적 의미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성경에서 직접 언급됩니다.

특히 **요한일서(1 John)와 요한계시록(Revelation)**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 성경 속 적그리스도 관련 구절

  1. 요한일서 2:18 - "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나니 이로써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 Little children, it is the last time: and as ye have heard that antichrist shall come, even now are there many antichrists; whereby we know that it is the last time.
  2. 요한계시록 13:1-8 - " 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1내가 바다의 모래 위에 서서 보니 바다에서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한 짐승이 일어나더라. 그의 뿔들 위에는 열 개의 관이 있고 그의 머리들 위에는 신성모독하는 이름이 있더라. 
  2. And I stood upon the sand of the sea, and saw a beast rise up out of the sea, having seven heads and ten horns, and upon his horns ten crowns, and upon his heads the name of blasphemy.
  3.  
  4. 2내가 본 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의 발은 곰의 발 같으며 그의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권능과 자기의 자리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5. And the beast which I saw was like unto a leopard, and his feet were as [the feet] of a bear, and his mouth as the mouth of a lion: and the dragon gave him his power, and his seat, and great authority.
  6.  
  7. 3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중의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는데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매 온 세상이 놀라며 그 짐승을 따르더라.
  8. And I saw one of his heads as it were wounded to death; and his deadly wound was healed: and all the world wondered after the beast.
  9.  
  10. 4그들이 그 짐승에게 권능을 준 용에게 경배하고 또 그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그와 전쟁을 하겠느냐? 하더라. 
  11. And they worshipped the dragon which gave power unto the beast: and they worshipped the beast, saying, Who [is] like unto the beast? who is able to make war with him?
  12.  
  13. 5또 용이 그에게 큰 것들을 말하며 신성모독하는 입을 주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지속할 권능을 주매 
  14. And there was given unto him a mouth speaking great things and blasphemies; and power was given unto him to continue forty [and] two months.
  15.  
  16. 6그가 입을 벌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모독하되 그분의 이름과 그분의 성막과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모독하더라.
  17. And he opened his mouth in blasphemy against God, to blaspheme his name, and his tabernacle, and them that dwell in heaven.
  18.  
  19. 7또 그가 성도들과 전쟁하여 그들을 이기는 것을 허락받고 모든 족속과 언어와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능을 받았으므로
  20. And it was given unto him to make war with the saints, and to overcome them: and power was given him over all kindreds, and tongues, and nations.
  21.  
  22. 8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 곧 세상의 창건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자들이 그에게 경배하리라.
  23. And all that dwell upon the earth shall worship him, whose names are not written in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slain from the foundation of the world.

👉 성경 속 적그리스도는 단순한 한 인물이 아니라, 여러 시대에 걸쳐 등장하는 개념으로 설명됩니다.
👉 마지막 때에는 "한 강력한 적그리스도"가 등장하여 세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예언됩니다.


2️⃣ 적그리스도의 주요 특징 (성경적 해석)

적그리스도가 어떤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파악하려면 성경에서 말하는 그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 성경 속 적그리스도의 특징

1) 강력한 정치적 지도자 – "모든 나라와 백성 위에 군림할 것" (계시록 13:7)
2)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 –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경배받으려 함" (데살로니가후서 2:4)
3) 거짓 기적과 속임수 사용 – "큰 이적을 행하며 사람들을 미혹함" (계시록 13:13-14)
4) 경제적 통제 – "그의 표를 받지 않으면 매매를 할 수 없게 함" (계시록 13:16-17)
5) 세계 정부를 지배 – "모든 민족과 언어를 다스릴 것" (다니엘 7:23)

즉, 적그리스도는 단순한 악인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로 묘사됩니다.

3️⃣ 현재 생존하는 인물 중 적그리스도가 있을까?

💡 가끔 일부 목회자나 신학자들이 특정 지도자를 "적그리스도"로 지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적으로 나폴레옹, 히틀러, 스탈린, 마오쩌둥 같은 독재자들이 적그리스도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거론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일론 머스크, 클라우스 슈밥(WEF 회장), 조 바이든, 블라디미르 푸틴 등 일부 강력한 정치·경제적 인물들이 적그리스도의 가능성이 있는 인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적으로 볼 때, 현재 생존하는 지도자들 중 누군가를 확정적으로 적그리스도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왜냐하면?
✔ 성경은 적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 적그리스도는 단순한 독재자가 아니라 전 세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신처럼 숭배받는 존재가 될 것입니다.
✔ 현재까지 등장한 어떤 인물도 성경이 말하는 적그리스도의 모든 특징을 완전히 충족시키지는 않습니다.

👉 따라서, "현재 생존하는 누군가가 적그리스도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4️⃣ 적그리스도는 언제 등장할까?

📌 성경에 따르면, 적그리스도는 "대환난(Great Tribulation)" 시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입니다.

📖 데살로니가후서 2:3-4
아무도 어떤 방법으로든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먼저 떨어져 나가는 일이 일어나고 저 죄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드러나지 아니하면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라. Let no man deceive you by any means: for [that day shall not come], except there come a falling away first, and that man of sin be revealed, the son of perdition;

그는 대적하는 자요, 또 [하나님]이라 불리거나 혹은 경배 받는 모든 것 위로 자기를 높이는 자로서 [하나님]처럼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가 [하나님]인 것을 스스로 보이느니라.

Who opposeth and exalteth himself above all that is called God, or that is worshipped; so that he as God sitteth in the temple of God, shewing himself that he is God.

."

📌 즉, 적그리스도의 등장은 예수님의 지상재림 직전의 "대환난"과 관련이 깊습니다.
📌 많은 신학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휴거(Rapture) 이후 적그리스도가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5️⃣ 결론 : 적그리스도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적 해석을 기반으로 적그리스도를 이해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요?

1.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기보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믿음을 지켜야 한다.
2.  특정 인물을 적그리스도라고 섣불리 단정하지 않고, 성경적 기준에 따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3.  하나님을 믿고 신앙을 굳건히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성경이 가르치는 바는 "적그리스도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보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올바른 신앙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성경 속 적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날 세계 정세를 보며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적그리스도

적그리스도(Anti-christ)란 말 그대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를 뜻합니다(요한1서 2:22, 요한2서 1:7). 적그리스도는 성경에 예언된 악한 존재로서, 사단의 능력을 받아 온갖 표적과 거짓이적 등을 행하고 진리를 무너뜨리며 세상을 미혹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까지 그에게 속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24)

적그리스도의 모습

사도 바울은 적그리스도를 가리켜 ‘멸망의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데살로니가후서 2:3). 듣기만 해도 섬뜩해지는 단어인지라 그 모습 또한 흉측하고 악독한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과연 적그리스도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고린도후서 11:14~15)

사단으로 불리는 적그리스도는 의외의 곳에, 의외의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을 받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천사로 가장했으니 말입니다. 이럴 때 적그리스도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

적그리스도는 불법한 자, 벨리알(Belial) 등으로 불립니다(데살로니가후서 2:8, 고린도후서 6:15). 그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거짓말’입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다니엘 7:25)

적그리스도는 그럴듯한 말, 즉 거짓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듣기에 좋고 만족스럽지만 실상은 우리의 구원을 방해하는, 아주 무서운 말인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는 사단의 말 중 하나는 “착하게 사는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사람이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예수님께서 굳이 이 땅에 오지 않으셔도 얼마든지 구원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4:6)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물론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수차례 ‘선(善)’과 ‘의(義)’를 강조하셨습니다(마태복음 5:16, 20, 마가복음 10:18~21). 천국에 가고 싶다면 선과 의를 행하고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방법을 통해 구원을 약속하셨는지 알아보고 그 일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요한복음 6:54)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 잔(포도주)을 가지사 ···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세워주신 약속, 유월절을 지켰을 때 구원을 얻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유월절은 325년 니케아 공의회(Councils of Nicaea)에서 폐지되었습니다. 구원의 길이 사라진 것입니다. 재림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입니다.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히브리서 9:28)

“착하게 사는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 타당해 보이더라도 이는 구원의 도를 어그러뜨리고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헷갈리게 하는, 적그리스도의 가르침일 뿐입니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을 이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말에 불과합니다.

사람의 인정(人情)을 내세운 적그리스도의 말에 더 이상 속지 마시고, “두 번째 오시리라.” 하신 예언대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유월절을 알려주신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을 깨달아 구원의 길을 찾으시고 영원한 천국에 입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적대시하는 대상을 뜻하며 특정한 시대의 특정 인물이나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시공간에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선포한 복음을 적대하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현대에는 반기독교 성향의 인간 전체를 싸잡아 적그리스도의 졸개라고 표현하기도 하며 한 기독교 종파에서 다른 기독교 종파나 이교도, 기타 세력을 적그리스도로 칭하여 공격하기도 한다. 
주로 근본주의 계열 개신교 교파에서 타 개신교 교파나 종파를 공격할 때 종종 쓰는 표현이다.

우리 말로는 거짓 그리스도, 가짜 그리스도, 반그리스도 등으로 쓰기도 하며, 영어로는 antichrist라는 개념적 단어 외에 문장 중에서 "against Christ" 또는 "instead of Christ"로써 서술한다.

이름 맨 앞글자인 '적'은 상술하듯이 본래는 대적할 적이다. 
적대자의 적(敵. 원수 적)에서 따온 것이지만 '적'자가 다른 단어 앞에 붙은 경우 붉을 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붉은 색의 (가짜) 그리스도로 오해하기도 한다. 
이는 요한의 묵시록에서 후술할 거짓 예언자와 종말의 짐승들을 묘사하는 서술에서 붉은 색이 상징적으로 자주 거론되기 때문도 있다. 묵시록의 붉은 용이나 바빌론의 탕녀가 대표적인 예시다.

악마와 더불어 사람들이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 첨부하자면, 기독교의 교리상, 적그리스도 또한 주님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다. 따라서 강한 예정론을 따르는 입장에 따르면 아이러니하게도 적그리스도의 존재와 궐기 및 그들이 가진 권세와 힘 또한 필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주님의 의도에 의해 허락되고 주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 더 나아가 주님과 기독교를 적대하며, 필요에 따라 사칭하고 악용하고 조롱하지만, 결국 그러한 행위 자체가 주님에 의해 작정된 것이며, '주님과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피조물 인간'이 이런 능력과 악의를 가진 적그리스도에 대항하여 이겨내는(혹은 이겨내야 한다는) 구도가 된다.

따라서 적그리스도는 기독교인들의 강한 신앙 및 결집을 촉구하는 한편, 자신을 섬기는 어린양을 보호하기 위해 지상의 강한 권세와 힘을 가진 적그리스도를 강력한 힘으로 찍어 쳐내는[4] 주님의 절대적 권능을 부각시키는 성경 내의 신학적 장치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주님께서 주님을 부정하는 적을 스스로 창조하신 상황이 되므로, 적그리스도와 관련된 성경 내 서술 및 논리 또한 악의 문제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결과가 되었다.

모든 기독교가 이런 강한 예정론을 따르지는 않는데, 적그리스도가 된 타락한 존재들은 결국 주님을 배반하려는 자유의지의 결과로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애초에 죄를 짓게 하려고 피조물을 창조하시지는 않았다는 입장이며, 이런 관점은 창세기 6장 6절의 주님이 사람을 지으심을 한탄하셨다는 구절에 잘 나타난다.

요한묵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두 번째 짐승, 통칭 거짓 예언자(False Prophet)를 칭한다. 사실 까놓고 말해 대중 매체 등에서 적그리스도란 단어가 나오면 필히 이 존재를 가리키는 것. 위에서 길게 언급한 신학적 해석은 잘 언급도 되지 않는다.

11 나는 또 땅에서 다른 짐승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짐승은 어린양처럼 뿔이 둘이었는데 용처럼 말을 하였습니다.
12 그리고 첫째 짐승의 모든 권한을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행사하여, 치명상이 나은 그 첫째 짐승에게 온 땅과 땅의 주민들이 경배하게 만들었습니다.
13 둘째 짐승은 또한 큰 표징들을 일으켰는데,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게도 하였습니다.
14 이렇게 첫째 짐승이 보는 앞에서 일으키도록 허락된 표징들을 가지고 땅의 주민들을 속였습니다. 그러면서 땅의 주민들에게, 칼을 맞고도 살아난 그 짐승의 상을 세우라고 말하였습니다.
15 둘째 짐승에게는 첫째 짐승의 상에 숨을 불어넣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짐승의 상이 말을 하기도 하고, 자기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16 또 낮은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할 것 없이 모두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였습니다.
17 그리하여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로 표가 찍힌 사람 말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8 여기에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 있습니다. 지각이 있는 사람은 그 짐승을 숫자로 풀이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그 숫자는 육백육십육입니다.


요한묵시록에 나타나는 이 두 번째 짐승은 하늘에 불이 흐르게 하는 이적을 시작으로 많은 이적을 보이며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한다. 정확히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척 하여서, 즉 부활하는 것 처럼 치명상을 입고 죽은 것 같이 보이다가 멀쩡하게 나은 모습을 보인 후, 첫 번째 짐승에게 큰 권세를 받은 후에 미혹한다고 적혀 있다. 그를 상징하는 숫자가 바로 666. 그를 따르는 인간들에게도 이 666의 낙인을 찍는다.

이 두 번째 짐승은 위의 예장합동 총회 보고서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 군사적 독재자'를 가리킨다. 이 짐승은 그리스도인 척 하며 사기를 친다는 것이 특징이다. 성경에 따르면 그리스도를 가장하여 구세주로 여겨지지만 이 사기에 넘어가면 지옥행 편도 직행 고속 익스프레스 열차표를 받게 된다고 한다.

즉, 세간에서 부르는 적그리스도는 세대주의 종말론 세계관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게 좋다. 복수가 아닌 단수의 인물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세상을 휘어잡다가 악마적으로 돌변한다는 내용이 나오면...거의 이 바탕이라고 보면 된다.

가톨릭 대사전에서도 가그리스도(적그리스도)에 대한 설명은 개신교 측과 큰 차이가 없다.

가(假)그리스도는 복합적 내용을 지닌 단어이다. 구약시대 말기에는 하느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참된 예배를 못하게 하는 자, 혹은 하느님의 반대세력을 지칭하는 용어였으며, 신약성서에서는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를 반대해서 나타나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사탄의 시종배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1요한 2:18, 4:3). 이들은 결국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분쇄될 반(反)그리스도 세력으로 서술되고 있다(2데살 2:3-12). 교회사를 통해서 볼 때 신학자들의 공통되는 견해는 없다. 중세기까지는 하나의 구체적이고 역사적 인물로 보았으며, 이런 정신적 유산에서 종교개혁 당시에는 교파들 간에 서로 가그리스도라고 비난하고 증오에 찬 모욕을 주었다. ''현대에 와서는 이러한 태도와 사상이 비(非)그리스도적임을 공동으로 인정하고 있다.그러나 한 가지 불변적 진리는, 인류 역사 안에 악의 세력이 존속하여 인간의 구원을 방해하고 있고, 그 세력이 인간들과 사건들을 통해서 여러 가지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항상 이 위협적 악의 세력과 투쟁해야 하고, 또 믿음을 위협하는 유혹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그리스도는 현대 사회 에도 존재한다. (崔昌武)[11]


《가톨릭 대사전》 <가그리스도> 항목

[1] 구번역 서간성서[2] 새번역[3] 거짓 메시아[4] 묵시록의 붉은 용이 대표적이다. 묵시록의 붉은 용 또한 절대적인 힘과 권세, 권능을 가진 만악의 근원인데, 그런 존재조차 주님이 나설 것도 없이 주님과 그리스도를 보좌하는 미카엘 선에서 정리되었다.[5] 이것이 번역 오류라는 말이 있다. 랑게의 「성경 주석」(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s, 126면)에서는 “이 표현으로 영적 제언, 가짜 예언, 예언자의 말이라는 뜻을 전달하려 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고 빈센트의 「신약 단어 연구」(Word Studies in the New Testament)는 여기서 사용한 영이라는 표현이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하느님의 계시의 권위를 주장하는 개개인의 예언적인 말”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하지 않는 영이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게 아니라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예언하는 사람이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말이 된다. 즉 거짓 예언자가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말.[6] 실제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 당시, 러시아 정교회 사제들은 조국을 침략한 나폴레옹을 가리켜 적그리스도라고 불렀다.[7] 국내 개신교도들 중에서는 적그리스도의 적을 ‘붉을 적’ 자로 생각해서 적그리스도가 붉은색을 상징으로 쓰는 공산주의를 의미한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어쨌든 공산주의도 적그리스도 후보로 지목받았다.[8] 단, 일부 장로회 교단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목하는 해당 부분을 삭제한 판본을 사용하기도 한다. 종교 개혁이 무르익어가면서 개혁적인 사상을 가진 자들을 무자비한 종교재판과 그로 인한 끔찍한 고문으로 죽였기에 종교개혁가들의 입장에서는 교황이야말로 적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었다.[9] 위의 요한 1서 2,18 참고[10] 위의 요한 1서 4,3 참고[11] 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광주대교구 교구장[12] 히틀러, 무솔리니, 프랑코, 피노체트, 바티스타, 소모사 등등...사례가 매우 많다.[13] 신체적인 정보를 저장하고 IoT 등 인터넷기술이 발달하여 자료를 외부로 전송시키지만, 위치추적 등의 사생활 침해 및 과도한 통제를 받을 위험성이 있다.[14] 사실 이쪽은 90년대 말에 세기말 종말론이 한창 회자되던 시기 이미 짐승의 표라 보는 의견이 존재하고 있었다.따지고 보면 베리칩 떡밥의 원조격.[15]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예수는 이슬람에서도 25명의 위대한 예언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질 정도로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16] 정확히는 하디스에서 "적그리스도가 페르시아의 이스파한에서 7만명의 유대인 부하들의 추종을 받으며 발흥한다."고 나온다. 이슬람 도래 당시 이스파한은 사산 왕조에서 가장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던 곳이다.[17] 많은 무슬림들이 이스라엘을 혐오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또한 유대교는 아브라함 계통 종교 중에서 유일하게 예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종교라는 점도 있다.[18] 인큐버스서큐버스의 자식이라는 식의 내용이 가장 흔히 보인다.[19] 진짜 메시아일수도 있지만 그의 목적은 각 국가의 미군들을 철수시키는 등의 방식으로 전세계를 혼돈에 빠트리는 것이다.[20] '기어다니는 혼돈'이라 불리는 등 크툴루 신화니알라토텝의 오마주도 있다.[21] 애초에 정체가 사탄이니...[22] 불교의 제석천의 모티브도 가지고 있지만, 작중에서는 신적인 불사의 존재이며 다양한 분야의 종교인들과 그를 아는 민간인들도 그를 존경하지만 실상은 자신의 카리스마 및 가르침을 통해 거대한 종교세력을 휘어잡고 무고한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점에서 적그리스도적 성격을 가진다.[23] 김제석을 신적인 존재로 볼 때, 김제석의 적으로서 태어난 그것은 김제석에게 있어 적그리스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짐승과 같은 외형 또한 그 근거. 물론 결과적으로 이야기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전자와 달리 후자는 컨셉만 따온 경우.[24] 게리를 비롯한 이교도 집단이 '불경한 안식일'이라는 의식을 통해 불러내고자 했다.[25] 디아블로 코믹스 증오의 새벽에 따르면 메피스토는 이 사람의 육체를 차지한 후 성역 각지를 돌아다니며 기적을 일으키고 회복마법을 써서 병자를 치유하며 빈민들에게 빵을 놔눠주면서 구원자 행세를 해서 사람들이 아카라트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성역을 구원하신다고 찬양하는데 속에 들어있는 게 지옥의 대악마다. 이쪽 세계관의 자카룸 경전에도 요한계시록처럼 거짓 선지자를 경계하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서 일부는 그를 의심하며 '거짓 선지자니 믿으면 안된다'고 말하기도 한다.[26] 클로저스 세계관의 루시펠, 이세하 부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들로 추측된다.[27] 워해머 판타지와 에이지 오브 지그마에서의 지그마 헬든해머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지만 워해머 판타지의 제국 및 에이지 오브 지그마의 자유민들 시점에서의 지그마 헬든해머는 현실의 기독교도 시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포지션도 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28] 워해머 40,000의 인류제국황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티브로 한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는데다 작 중에서 무신론자였고 반종교주의자였지만 인류제국의 신민들이 황제를 숭배하고 인류의 구심점이자 구세주로 본다는 점을 감안하면 워해머 40,000의 인류 제국 시점에서의 황제는 현실의 기독교도 시점에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포지션도 겸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요한계시록의 키아즘 구조(Chiasm)



요한계시록의 키아즘 구조(Chiasm)

요한계시록은 매우 독특한 문학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키아즘 구조(Chiasm Structure)

키아즘 구조는 고대 히브리 문학에서 자주 사용된 방식으로, 대칭적인 형태로 사건이 배열되는 구조를 의미한다.

요한계시록을 키아즘 구조로 보면, 책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서로 대칭을 이루며, 중심부에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가 위치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시록을 어떤 방식으로 구성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다.

1. 키아즘 구조란?

📌 키아즘(Chiasm) 정의

  • 키아즘 구조는 "X" 모양으로 배열된 문학 구조로, 앞부분과 뒷부분이 서로 대칭을 이루고, 중간이 핵심 메시지가 되는 방식이다.

  •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형태를 가진다.

  • A - B - C - D - C' - B' - A'

  • A와 A'는 서로 연결된 주제를 다룬다.

  • B와 B'도 서로 연결된 내용을 포함한다.

  • C와 C'도 같은 방식이다.

  • 그리고 가장 중심부에 해당하는 D가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다.

📌 키아즘 구조의 특징

1. 대칭적인 반복 → 처음과 끝이 같은 주제를 다룬다.

2. 중앙이 가장 중요 → 중심 부분이 메시지의 핵심이다.

3. 점진적 발전 → 같은 개념이 반복되지만, 점점 더 발전된 형태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은 키아즘 구조를 통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정교하게 배열되었음을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의 키아즘 구조 분석

요한계시록은 다음과 같은 키아즘 구조로 되어 있다.

구조

주제

관련 본문

A

서론: 계시의 기원과 목적

1:1-8

B

일곱 교회에 대한 메시지

1:9-3:22

C

하늘의 보좌와 어린 양의 책

4:1-5:14

D

일곱 인과 심판의 시작

6:1-7:17

E

일곱 나팔과 하나님의 경고

8:1-11:19

F

핵심 중심부: 영적 전쟁과 사탄의 패배

12:1-14:20

E'

일곱 대접과 최종 심판

15:1-16:21

D'

바벨론의 멸망과 최후의 심판

17:1-19:21

C'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20:1-21:8

B'

새 예루살렘과 신부된 교회

21:9-22:5

A'

결론: 주님의 재림과 약속

22:6-21


3. 키아즘 구조에서 핵심이 되는 부분

키아즘 구조에서는 가장 중심에 위치한 부분이 핵심 메시지이다.

요한계시록에서 중심부는 12~14장으로, 여기서 하늘과 땅에서 벌어지는 영적 전쟁과 사탄의 패배가 강조된다.

(1) 계시록 12장 – 용(사탄)과 여자의 싸움

  • 하늘에서 **사탄(용)**이 쫓겨나고, **여자(이스라엘 혹은 교회)**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로,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보여준다.

(2) 계시록 13장 – 적그리스도의 등장

  • 바다에서 나온 짐승(적그리스도)과 땅에서 나온 거짓 선지자가 등장한다.

  • 이는 사탄이 마지막 때에 세상을 지배하려는 계획을 보여준다.

(3) 계시록 14장 – 어린양과 144,000명의 승리

  • 어린양(예수님)이 144,000명과 함께 승리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 이는 사탄이 결국 패배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보호받는다는 희망을 보여준다.

💡 즉, 요한계시록의 가장 중요한 핵심 메시지는 "하나님과 사탄의 최종 전쟁"이며, 결국 하나님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3. 키아즘 구조를 통해 요한계시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키아즘 구조를 이해하면, 요한계시록을 더 체계적으로 볼 수 있다.

(1) 계시록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책이다.

  • 계시록의 앞부분과 뒷부분은 서로 연결되며, 이야기의 흐름이 점진적으로 발전한다.

  • 예를 들어, **일곱 나팔 심판(계 8-11장)**과 **일곱 대접 심판(계 15-16장)**이 서로 대칭을 이루며 점점 더 강력한 심판이 진행된다.

(2) 계시록의 중심은 영적 전쟁이다.

  •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을 "심판의 책"으로만 보지만, 사실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다.

  • 그리고 그 결론은 하나님의 최종 승리이다.

(3) 계시록을 부분적으로 해석하면 오류가 생긴다.

  • 키아즘 구조를 이해하면, 계시록이 단순히 연대기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님을 알 수 있다.

  • 즉, 일부 구절만 떼어내어 해석하면 왜곡될 수 있다.

💡 따라서 계시록을 공부할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구조 속에서 읽어야 한다.


4. 결론 – 요한계시록의 핵심 메시지

요한계시록은 키아즘 구조로 배열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중심부는 영적 전쟁과 사탄의 패배(계 12-14장)이다.

계시록을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전체적인 구조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결국 하나님이 승리하며,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할 것이다.

📖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요한계시록 22:20)

🙏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이제는 계시록을 피하지 말고, 성경 전체의 연결 속에서 바르게 배우고 준비해야 할 때이다!


ls (Revelation 5:11-12)

(7th) Song of the universe (Revelation 5:13-14)

2. 환란의 시기 (Revelation 6-11)

일곱 인

(1st) White horse of earthly conquest and dominion (Revelation 6:1-2)

(2nd) Red horse of slaughter and bloodshed (Revelation 6:3-4)

(3rd) Black horse of commerce and economic crisis (Revelation 6:5-6)

(4th) Pale horse of death (Revelation 6:7-8)

(5th) The little while (Revelation 6:9-11)

(6th) The day of God’s wrath (Revelation 6:12-17)

   ~ The multitudes of saved (Revelation 7:1-17)

(7th) Seventh Seal Broken (Revelation 8:1-5)

일곱 트렘펫과 저주

(1st) Scourge of earth (Revelation 8:6-7)

(2nd) Scourge of sea (Revelation 8:8-9)

(3rd) Scourge of rivers (Revelation 8:10-11)

(4th) Scourge of the heavens (Revelation 8:12)

   ~ Eagle announces three woes (Revelation 8:13)

   ~ The bottomless pit (Revelation 9:1-2)

(5th) 1st woe, Plague of locusts (Revelation 9:3-12)

(6th) 2nd woe, The killing horses (Revelation 9:12-21)

   ~ The little book (Revelation 10:1-11)

   ~ The two witnesses prophesy (Revelation 11:1-6)

   ~ The two witnesses killed (Revelation 11:7-13)

(7th) 3rd woe, God’s wrath and the Eternal Kingdom (Revelation 11:14-19)

3. 짐승의 심판 (Revelation 12-20)

일곱 징조

(1st) A splendid woman gives birth to a man child (Revelation 12:1-4)

(2nd) The dragon appears from the sky (Revelation 12:4)

   ~ The man child's ascension (Revelation 12:5-6)

   ~ The dragon's defeat in heaven (Revelation 12:7-9)

   ~ Heaven's victory song (Revelation 12:10-12)

   ~ The woman's escape (Revelation 12:13-17)

(3rd) The Beast

   ~ Appears from the sea (Revelation 13:1-2)

   ~ Has dragon's authority (Revelation 13:3-10)

(4th) The False prophet

   ~ Appears from the earth (Revelation 13:11)

   ~ Has beast's authority (Revelation 13:12)

   ~ His great deception (Revelation 13:13-14)

   ~ The image he made live (Revelation 13:15)

   ~ The mark of the beast (Revelation 13:16-17)

   ~ The number of the beast (Revelation 13:18)

(5th) The Lamb on Mount Zion (Revelation 14:1-5)

(6th) Three angelic messengers (Revelation 14:6-13)

(7th) The two reapers (Revelation 14:14-20)

일곱 재앙

The heavenly singers (Revelation 15:1-8)

The bowls of God’s wrath (Revelation 16:1-21)

마지막 일곱 환상

(1st) The atrocious woman, Mother of Harlots (Revelation 17:1-6)

   ~ An angel explains (Revelation 17:11-18)

(2nd) Seven songs of woe to "Babylon"

   ~ The angel from heaven (Revelation 18:1-3)

   ~ Second voice from heaven (Revelation 18:4-9)

   ~ Kings of earth (Revelation 18:9-10)

   ~ The merchants (Revelation 18:11-16)

   ~ The sailors (Revelation 18:17-20)

   ~ A mighty angel (Revelation 18:21-24)

   ~ Multitude in heaven (Revelation 19:1-6)

(3rd) The wedding supper announced (Revelation 19:7-10)

(4th) King on a white horse (Revelation 19:11-21)

(5th) The Abyss and thousand years (Revelation 20:1-10)

(6th) The dead are judged (Revelation 20:11-15)

4. 천국의 아름다움 (Revelation 21-22)

(7th) Heaven for the Saved

   ~ New heavens and new earth (Revelation 21:1-8)

   ~ The heavenly city (Revelation 21:9-27)

   ~ The heavenly Eden (Revelation 22:1-5)

맺음말

예수의 마지막 말씀 (Revelation 22:6-21)



요한계시록 1장과 22장의 대칭

너희는 여호와의 책에서 찾아 읽어보라 이것들 가운데서 빠진 것이 하나도 없고 제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령하셨고 그의 영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이사야 34:16)

  • 하나님 [1:1; 22:6] - 계시의 기원
  •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1:2; 22:16] - 계시의 주체
  • 천사를 보내어 [1:1; 22:6] - 계시 전달자
  • 요한이 이름을 밝힌다 [1:1, 2, 4, 9; 22:8] - 계시 기록자
  • 예언의 말씀 [1:3; 22:6, 10, 18, 19] - 계시 내용
  •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 [1:1; 22:6] - 계시 성취 시점
  • 종들 [1:1; 22:6], 교회 [1:4; 22:16] - 계시 수신자
  •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1:3; 22:7] - 축복
  • 때가 가까움이라 [1:3; 22:10] - 계시 성취 시점
  • 은혜가 있을지어다 [1:5; 22:21] - 축복
  • 오시리라 [1:7; 22:7, 12, 20] - 예수의 오심
  • 알파와 오메가 [1:8; 22:13] - 계시 승인자: 성부와 성자 하나님
  • 성령 [1:10; 22:17] - 성신 하나님
  • 별과 천사(사자) [1:16, 20; 22:16] - 계시 목격자
  •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1:17; 22:8] - 요한의 태도1  
요한계시록 1장 요한계시록 22장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계 22:6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지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되어질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계 1: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22: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  [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계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계 22:7, 12, 2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계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계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계 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계 22: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계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계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이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대칭 구조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사탄의 공격

  • 머리말(1:1-10)

  • 지상의 교회(1:10-3:22)
    하나님의 교회가 대적의 공격에 몸부림칩니다
    일곱 교회에 메시지

  • 조사적 심판(4:1-8:1)
    죄없는 우주는 영생을 위한 후보를 모은다
    천국의 법정
    어린 양과 두루마리
    일곱 인
    144,000명 인침
    큰 무리

  • 트럼펫 재앙(8:2-11:19)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가 철회되고,
    사탄이 혼란을 초래하는 것이 허용된다.
    일곱 트럼펫
    일곱 천둥
    성전 측량
    두 증인

  • 사탄의 극적 발현(11:19-13:18)
    사탄 활동의 역사와 미래
    용과 여자
    하늘의 전쟁
    바다와 땅에서 나오는 짐승
    짐승의 표시 666

사탄과 사탄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

  • 하나님의 극적 발현(14:1-20)
    복음의 전세계적 전도, 궁극적 결과
    어린 양과 144,000명
    세 천사의 메시지
    두 추수  

  • 마지막 일곱 재앙(15:1-18:24)
    보호 관찰의 종료
    회개하지 않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재앙
    성전이 닫힘
    마지막 일곱 재앙
    아마겟돈 전쟁
    바벨론 심판  

  • 집행적 심판(19:1-20:15)
    그리스도가 자기 백성을 위해 오신다
    그리스도에게 반역해온 체제와 사람들을 심판한다
    그리스도의 오심
    사탄의 천년 결박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

  • 천상의 교회(21:1-22:5)
    하나님의 교회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서 영광을 얻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 맺음말(22:5-21)


대칭 구조로 본 요한계시록 12장 핵심절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요한계시록 12:11)

A 해를 옷 입은 한 여자(1절)
   B 여자가 아이를 배어(2-5절)
      C 용이 해산하려는 그 아이를 삼키려 한다(4b-5절)
         D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친다(6절)
            E 하늘에 전쟁이 있다(7절)
               F 온 천하를 꾀는 큰 용이 내쫓긴다(9절)
                  G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큰 용을 이겼다(11절)
               F' 하늘은 즐거워하지만, 땅은 화가 있다(12절)
            E' 용이 여자를 박해한다(13절)
         D' 여자는 광야로 도망친다(14절)
      C' 홍수가 여자를 위협하지만 땅이 뱀의 홍수를 삼킨다(15-16절)
   B' 여자의 후손(17절)
A'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17절)


요한계시록과 구약 성경

요한계시록에서는 500개 이상 구약에 대한 암시와 참조를 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암시와 참조가 대부분 요한계시록에서 같은 의미로 사용되지만 일부는 이를 빌려와서 다른 점을 부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려면 구약의 암시와 참조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Revelation 1:1 Daniel 2:28-29
Rev 1:4 Isaiah 11:2
Rev 1:5 Genesis 49:11; Psalm 89:27
Rev 1:6 Exodus 19:6; Isaiah 61:6
Rev 1:7 Daniel 7:13; Zechariah 12:10-14
Rev 1:8 Isaiah 41:4
Rev 1:12 Exodus 25:37; 37:23
Rev 1:13 Daniel 7:13; 10:5, 16
Rev 1:14 Daniel 7:9; 10:6
Rev 1:15 Ezekiel 1:7, 24; 43:2; Daniel 10:6
Rev 1:16 Judges 5:31; Isaiah 49:2
Rev 1:17 Isaiah 41:4; 44:6; 48:12; Daniel 8:17-18;10:9, 10, 12, 15, 19
Rev 1:18 Job 3:17; Hosea 13:14

Revelation 2:4 Jeremiah 2:2
Rev 2:7 Genesis 2:9; 3:22-24; Proverbs 11:30; 13:12; Ezekiel 31:8 (LXX)
Rev 2:12 Isaiah 49:2
Rev 2:14 Numbers 25:1-3
Rev 2:17 Exodus 16:33-34; Isaiah 62:2; 65:15
Rev 2:18 Daniel 10:6
Rev 2:20 I Kings 16:31-32; II Kings 9:7, 22
Rev 2:23 Psalm 7:9; 26:2; 28:4; Jeremiah 11:20; 17:10
Rev 2:27 Psalm 2:7-9; Isaiah 30:14; Jeremiah 19:11

Revelation 3:4 Ecclesiastes 9:8
Rev 3:5 Exodus 32:32-33
Rev 3:7 Isaiah 22:22
Rev 3:9 Isaiah 43:4; 49:23; 60:14
Rev 3:12 Isaiah 62:2; Ezekiel 48:35
Rev 3:14 Genesis 49:3; Deuteronomy 21:17
Rev 3:18 Isaiah 55:1
Rev 3:19 Proverbs 3:12

Revelation 4:1 Ezekiel 1:1
Rev 4:2 Isaiah 6:1; Ezekiel 1:26-28; Daniel 7:9
Rev 4:3 Ezekiel 1:26, 28; 10:1
Rev 4:5 Exodus 19:16; 25:37; Isaiah 11:2; Ezekiel 1:13
Rev 4:6 Ezekiel 1:5, 18, 22, 26; 10:1, 12
Rev 4:7 Ezekiel 1:10, 10:14
Rev 4:8 Isaiah 6:2-3; Ezekiel 1:18; 10:12
Rev 4:9 Deuteronomy 32:40; Daniel 4:34; 6:26; 12:7
Rev 4:11 Genesis 1:1

Revelation 5:1 Ezekiel 2:9-10; Daniel 12:4
Rev 5:5 Genesis 49:9-10; Isaiah 11:1, 10
Rev 5:6 Isaiah 11:2; Zechariah 3:8-9; 4:10
Rev 5:8 Psalm 111:2
Rev 5:9 Psalm 40:3; 98:1; 144:9; 149:1; Isaiah 42:10; Daniel 5:19
Rev 5:10 Exodus 19:6; Isaiah 61:6
Rev 5:11 Daniel 7:10

Revelation 6:2 Zechariah 1:8; 6:3
Rev 6:4 Zechariah 1:8; 6:2
Rev 6:5 Zechariah 6:2
Rev 6:8 Jeremiah 15:2-3; 24:10; 29:17; Ezekiel 14:21; Hosea 13:14; Zechariah 6:3
Rev 6:12 Isaiah 50:3; Joel 2:10
Rev 6:13 Isaiah 34:4
Rev 6:14 Isaiah 34:4; Nahum 1:5
Rev 6:15 Psalm 48:4-6; Isaiah 2:10-12, 19
Rev 6:16 Hosea 10:8
Rev 6:17 Psalm 76:7; Jeremiah 30:7; Nahum 1:6; Zephaniah 1:14-18; Malachi 3:2

Revelation 7:1 Isaiah 11:2; Jeremiah 49:36; Ezekiel 7:2; 37:9; Daniel 7:2; Zechariah 6:5
Rev 7:3 Ezekiel 9:4-6
Rev 7:4 Genesis 49:1-28
Rev 7:9 Leviticus 23:40
Rev 7:10 Psalm 3:8
Rev 7:14 Genesis 49:11
Rev 7:15 Leviticus 26:11
Rev 7:16 Psalm 121:5-6; Isaiah 49:10
Rev 7:17 Psalm 23:1-2; Ezekiel 34:23

Revelation 8:3 Psalm 141:2
Rev 8:4 Psalm 141:2
Rev 8:5 Ezekiel 10:2
Rev 8:5-6 Exodus 19:16
Rev 8:7 Exodus 9:23-24; Psalm 18:13; Isaiah 28:2
Rev 8:8 Exodus 7:17-19
Rev 8:10 Isaiah 14:12
Rev 8:11 Jeremiah 9:15; 23:15
Rev 8:12 Isaiah 13:10

Revelation 9:1 Isaiah 14:12-14
Rev 9:2 Genesis 19:28; Exodus 19:8
Rev 9:3 Exodus 10:12-15
Rev 9:4 Ezekiel 9:4
Rev 9:6 Job 3:21
Rev 9:8 Joel 1:6
Rev 9:9 Joel 2:5
Rev 9:11 Job 26:6; 28:22; 31:12; Psalm 88:11; Proverbs 15:11
Rev 9:14 Genesis 15:18; Deuteronomy 1:7; Joshua 1:4

Revelation 10:1 Ezekiel 1:26-28
Rev 10:4 Daniel 8:26; 12:4-9
Rev 10:5 Deuteronomy 32:40; Daniel 12:7
Rev 10:6 Genesis 1:1; Deuteronomy 32:40; Nehemiah 9:6; Daniel 12:17
Rev 10:7 Amos 3:7
Rev 10:9 Jeremiah 15:16; Ezekiel 2:8-33
Rev 10:11 Ezekiel 37:4, 9

Revelation 11:1 Ezekiel 40:3-4; Zechariah 2:1-2
Rev 11:2 Ezekiel 40:17-20
Rev 11:4 Zechariah 4:1-3, 11-14
Rev 11:5 Numbers 16:35; II Kings 1:10-12
Rev 11:6 Exodus 7:19-25; I Kings 17:1
Rev 11:7 Exodus 7:3, 7, 8, 21
Rev 11:8 Isaiah 1:9-10; 3:9; Jeremiah 23:14; Ezekiel 16:49; Ezekiel 23:3, 8, 19, 27
Rev 11:9 Psalm 79:2-3
Rev 11:11 Ezekiel 37:9-10
Rev 11:15 Exodus 15:18; Daniel 2:44-45; 7:13-14, 27
Rev 11:18 Psalm 2:1-3; 46:6; 115:13

Revelation 12:1 Genesis 37:9-11
Rev 12:2 Isaiah 26:17; 66:7; Micah 4:9-10
Rev 12:3 Isaiah 27:1; Daniel 7:7, 20, 24
Rev 12:4 Daniel 8:10
Rev 12:5 Psalm 2:8-9; Isaiah 66:7
Rev 12:7 Daniel 10:13, 21; 12:1
Rev 12:9 Genesis 3:1; Job 1:6; 2:1; Zechariah 3:1
Rev 12:10 Job 1:9-11; 2:4-5; Zechariah 3:1
Rev 12:14 Exodus 19:4; Deuteronomy 32:11; Isaiah 40:31; Daniel 7:25; 12:7; Hosea 2:14-15
Rev 12:15 Hosea 15:10
Rev 12:17 Genesis 3:15

Revelation 13:1 Daniel 7:3, 7, 8
Rev 13:2 Daniel 7:4-6, 8
Rev 13:3 Daniel 7:8
Rev 13:4 Daniel 8:24
Rev 13:5 Daniel 7:8, 11, 20, 25; 11:36
Rev 13:7 Daniel 7:21
Rev 13:8 Daniel 12:1
Rev 13:10 Jeremiah 15:2; 43:11
Rev 13:11 Daniel 8:3
Rev 13:13 I Kings 1:9-12

Revelation 14:1 Psalm 2:6; Ezekiel 9:4
Rev 14:2 Ezekiel 1:24; 43:2
Rev 14:3 Psalm 144:9
Rev 14:7 Exodus 20:11
Rev 14:8 Isaiah 21:9; Jeremiah 51:7-8
Rev 14:10 Genesis 19:24; Psalm 75:8; Isaiah 51:17
Rev 14:11 Isaiah 34:10; 66:24
Rev 14:14 Daniel 7:13
Rev 14:18 Joel 3:13
Rev 14:19 Isaiah 63:1-6
Rev 14:20 Joel 3:13

Revelation 15:1 Leviticus 26:21
Rev 15:3 Exodus 15:1-18; Deuteronomy 31:30-32:44; Psalm 92:5; Psalm 111:2; 139:14
Rev 15:4 Psalm 86:9; Isaiah 66:23; Jeremiah 10:7
Rev 15:5 Exodus 38:21
Rev 15:6 Leviticus 26:21
Rev 15:7 Jeremiah 25:15
Rev 15:8 Exodus 40:34-35; Leviticus 26:21; I Kings 8:10-11; II Chronicles 5:13-14; Isaiah 6:1-4

Revelation 16:1 Psalm 79:6; Jeremiah 10:25; Ezekiel 22:31
Rev 16:2 Exodus 9:9-11; Deuteronomy 28:35
Rev 16:3 Exodus 7:17-25
Rev 16:4 Exodus 7:17-21; Psalm 78:44
Rev 16:5 Psalm 145:17
Rev 16:6 Isaiah 49:26
Rev 16:7 Psalm 19:9; 145:17
Rev 16:10 Exodus 10:21-23
Rev 16:12 Isaiah 11:15-16; 41:2, 25; 46:11; Jeremiah 51:36
Rev 16:13 Exodus 8:6
Rev 16:14 I Kings 22:21-23
Rev 16:16 Judges 5:19; II Kings 23:29-30; II Chronicles 35:22; Zechariah 12:11
Rev 16:19 Jeremiah 25:15
Rev 16:21 Exodus 9:18-25

Revelation 17:1 Jeremiah 51:13; Nahum 3:4
Rev 17:2 Isaiah 23:17
Rev 17:3 Daniel 7:7
Rev 17:4 Jeremiah 51:7; Ezekiel 28:13
Rev 17:8 Exodus 32:32-33; Daniel 12:1
Rev 17:12 Daniel 7:24-25
Rev 17:16 Leviticus 21:9

Revelation 18:1 Ezekiel 43:2
Rev 18:2 Isaiah 21:9; 34:13-15; Jeremiah 50:30; 51:37
Rev 18:3 Jeremiah 51:7
Rev 18:4 Isaiah 52:11; Jeremiah 50:8; 51:6, 45
Rev 18:5 Jeremiah 41:9
Rev 18:6 Psalm 137:8; Jeremiah 50:15, 29
Rev 18:7 Isaiah 47:7-8; Zephaniah 2:15
Rev 18:8 Isaiah 47:9; Jeremiah 50:31-32
Rev 18:9-19 Ezekiel 26:16-18; 27:26-31
Rev 18:9 Jeremiah 50:46
Rev 18:10 Isaiah 13:1
Rev 18:12 Ezekiel 27:12-25
Rev 18:20 Jeremiah 51:48
Rev 18:21 Jeremiah 51:63-64
Rev 18:22 Isaiah 24:8; Jeremiah 25:10; Ezekiel 26:13
Rev 18:23 Jeremiah 7:34; 16:9; 25:10; Nahum 3:4

Revelation 19:2 Deuteronomy 32:43; Psalm 119:137; Jeremiah 51:48
Rev 19:3 Isaiah 34:9-10; Jeremiah 51:48
Rev 19:5 Psalm 22:23; 134:1; 135:1
Rev 19:6 Psalm 93:1; 97:1; Ezekiel 1:24; 43:2; Daniel 10:6
Rev 19:11 Psalm 18:10; 45:3-4; Isaiah 11:4-5; Ezekiel 1:1
Rev 19:13 Isaiah 63:3
Rev 19:15 Psalm 2:8-9; Isaiah 11:4; 63:3-6
Rev 19:16 Deuteronomy 10:17
Rev 19:17 Isaiah 34:6-7; Ezekiel 39:17
Rev 19:18 Isaiah 34:6-7; Ezekiel 39:18
Rev 19:19 Psalm 2:2; Joel 3:9-11
Rev 19:20 Isaiah 30:33: Daniel 7:11
Rev 19:21 Ezekiel 39:19-20

Revelation 20:2 Genesis 3:1, 13-14; Isaiah 24:21-22
Rev 20:4 Daniel 7:9, 22, 27; 12:2
Rev 20:5 Isaiah 26:14
Rev 20:6 Exodus 19:6; Isaiah 26:19
Rev 20:8 Ezekiel 38:2; 39:1, 6
Rev 20:9 Deuteronomy 23:14; II Kings 1:9-12; Ezekiel 38:22; 39:6
Rev 20:11 Daniel 2:35
Rev 20:12 Exodus 32:32-33; Psalm 62:12; 69:28; Daniel 7:10
Rev 20:15 Exodus 32:32-33; Daniel 12:1

Revelation 21:1 Isaiah 65:17; 66:22
Rev 21:3 Leviticus 26:11-12; Ezekiel 37:27
Rev 21:4 Isaiah 25:8; 35:10; 51:11; 65:19
Rev 21:9 Leviticus 26:21
Rev 21:10 Ezekiel 40:2
Rev 21:11 Isaiah 60:1-2; Ezekiel 43:2
Rev 21:12-13 Ezekiel 48:31-34
Rev 21:15 Ezekiel 40:3, 5
Rev 21:19-20 Exodus 28:17-20; Isaiah 54:11-12
Rev 21:23 Isaiah 60:19-20
Rev 21:24 Isaiah 60:3-5, 16
Rev 21:25 Isaiah 60:11; Zechariah 14:7
Rev 21:26 Isaiah 60:5, 16
Rev 21:27 Isaiah 52:1; Ezekiel 44:9; Zechariah 14:21

Revelation 22:1 Psalm 46:4; Ezekiel 47:1; Zechariah 14:8
Rev 22:2 Genesis 2:9; 3:22-24; Ezekiel 47:12
Rev 22:3 Genesis 3:17-19; Zechariah 14:11
Rev 22:4 Psalm 17:15; Ezekiel 9:4
Rev 22:5 Isaiah 60:19; Daniel 7:18, 22, 27; Zechariah 14:7
Rev 22:10 Daniel 8:26; 12:4, 9
Rev 22:11 Ezekiel 3:27; Daniel 12:10
Rev 22:12 Psalm 62:12; Isaiah 40:10; 62:11
Rev 22:13 Isaiah 44:6
Rev 22:14 Genesis 2:9; 3:22-24; Proverbs 11:30
Rev 22:15 Deuteronomy 23:18
Rev 22:18-19 Deuteronomy 4:2; 12:32
Rev 22:19 Deuteronomy 29:19-20


요한계시록의 상징

요한계시록은 상징으로 가득합니다. 요한은 등잔대, 별, 동물, 국가, 숫자 등을 사용해서 교회, 천사, 특정 존재, 세력, 인물 등을 대변합니다. 보통 요한계시록의 상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습니다.

계 12:3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왕관이 있는데

  • 분명하게 설명한 상징: 요한은 상징을 직접 설명하고 문서에서 일관되게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요한계시록 12장 3절 붉은 용은 12:9, 20:2에서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계 20:2 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사탄이라 잡아서 천 년 동안 결박하여

  • 간접적으로 설명한 상징: 다른 상징은 요한계시록에서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지 않지만, 요한은 독자가 구약의 지식을 통해 상징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예로 인자 같은 이는 다니엘 7:13; 10:16 등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다니엘 7:13-14)

  • 설명하지 않은 상징: 성경에 비교할 대상이 없는 상징으로 요한은 의미를 전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대의 사람들이 계산해 보면 알 수도 있는 상징입니다. 예로 짐승의 수 666을 들 수 있습니다.

계 13:18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

성구 상징
Rev. 1:13-16 인자 같은 이
Rev. 4:4 24 장로
Rev. 5:1 두루마리, 일곱 인
Rev. 6:1 일곱 인
Rev. 6:2-8 네 말 탄 자
Rev. 6:9-11 순교자
Rev. 6:12-17 여호와의 날
Rev. 7:4 144,000
Rev. 8:1-2 천국의 침묵
Rev. 8:2-12 트럼펫
Rev. 9:1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Rev. 10:1 힘센 천사
Rev. 11:1-11 두 증인
Rev. 12:2 임신한 여자
Rev. 12:3 붉은 용
Rev. 12:14 큰 독수리의 날개
Rev. 13:18 짐승의 표시 666
Rev. 14:8; 16:9; 17:5; 18:2 바벨론
Rev. 16:1 대접
Rev. 17:1 큰 음녀
Rev. 17:9 여자가 앉은 일곱 산
Rev. 20:2-6 천 년
Rev. 20:9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
Rev. 21:2; 3:12 새 예루살렘



요한계시록의 상징 일곱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요한계시록 1:20)

요한계시록은 일곱으로 이루어진 많은 상징이 있습니다.1 이 상징은 창세기에서 하나님의 창조로 시작합니다. 창조 후 칠일에 쉬시면서 이 날을 복되고 거룩하게 하십니다(창 2:2-3). 그래서 칠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충만하고 완전한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상징: 일곱

일곱 교회(1:4) 일곱 영(1:4) 일곱 촛대(1:12) 일곱 별(1:16) 일곱 인(5:1) 일곱 뿔(5:6) 일곱 눈(5:6) 일곱 천사(8:2) 일곱 나팔(8:2) 일곱 우뢰(10:3) 일곱 머리(12:3) 일곱 면류관(12:37) 일곱 재앙(15:1) 일곱 대접(15:7) 일곱 왕(17:10) 일곱 복(계 1:3; 14:13; 16:15; 19:9; 20:6; 22:7, 14) 등 입니다.

구약의 예

일곱째 날, 안식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세기 2:2-3)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애굽기 20:11)

암수 일곱씩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창세기 7:2-3)

일곱 암양 새끼

아브라함: 너는 내 손에서 이 암양 새끼 일곱을 받아 내가 이 우물 판 증거를 삼으라 하고(창세기 21:30)

일곱 암소, 일곱 이삭

요셉: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라(창세기 41:26)

일곱 등잔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결하여 전부를 순금으로 쳐 만들고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출애굽기 25:36, 37)

여호와: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불을 켜기 위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네게로 가져오게 하여 계속해서 등잔불을 켜 둘지며 아론은 회막안 증거궤 휘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이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레위기 24:1-3)

어린 양 일곱 마리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로 속죄제를 드리되(민수기 29:4-5)

일곱 족속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신명기 7:1)

일곱 여호와의 눈

천사: 네가 무엇을 보느냐?
스가랴: 내가 보니 순금 등잔대가 있는데 그 위에는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기름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기름 그릇 위에 있는 등잔을 위해서 일곱 관이 있고 그 등잔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기름 그릇 오른쪽에 있고 하나는 그 왼쪽에 있나이다(스가랴 4:2-3)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사람들이 스룹바벨의 손에 다림줄이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이라 하니라(스가랴 4:10)

신약의 예

일곱 악한 귀신

예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마태복음 12:45)

일곱 광주리

예수: 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제자들: 일곱이니이다(마가복음 8:20)

일곱 번 회개하면, 일곱 번 용서하라

예수: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누가복음 17:4)

일곱 시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요한복음 4:52)

일곱 집사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사도행전 6:3)

일곱 족속

가나안 땅 일곱 족속을 멸하사 그 땅을 기업으로 주시기까지 약 사백오십 년간이라(사도행전 13:19)

일곱 식구

베드로: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베드로후서 2:5)


일곱을 기준으로 나눈 요한계시록 구조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Revelation 1-5)

머리말

The book’s own introduction to itself (Revelation 1:1-7)

First vision —a vision of Christ (Revelation 1:8-20)

일곱 교회

(1st) Ephesus (Revelation 2:1-7)

(2nd) Smyrna (Revelation 2:8-11)

(3rd) Pergamum (Revelation 2:12-17)

(4th) Thyatira (Revelation 2:18-29)

(5th) Sardis (Revelation 3:1-6)

(6th) Philadelphia (Revelation 3:7-13)

(7th) Laodicea (Revelation 3:14-22)

천국의 일곱 장면

(1st) The elders around the throne (Revelation 4:1-5)

(2nd) The four living creatures (Revelation 4:6-11)

(3rd) The sealed scroll (Revelation 5:1-4)

(4th) The worthy Lamb (Revelation 5:5-7)

(5th) Song of the creatures & elders (Revelation 5:8-10)

(6th) Song of the angels (Revelation 5:11-12)

(7th) Song of the universe (Revelation 5:13-14)

2. 환란의 시기 (Revelation 6-11)

일곱 인

(1st) White horse of earthly conquest and dominion (Revelation 6:1-2)

(2nd) Red horse of slaughter and bloodshed (Revelation 6:3-4)

(3rd) Black horse of commerce and economic crisis (Revelation 6:5-6)

(4th) Pale horse of death (Revelation 6:7-8)

(5th) The little while (Revelation 6:9-11)

(6th) The day of God’s wrath (Revelation 6:12-17)

   ~ The multitudes of saved (Revelation 7:1-17)

(7th) Seventh Seal Broken (Revelation 8:1-5)

일곱 트렘펫과 저주

(1st) Scourge of earth (Revelation 8:6-7)

(2nd) Scourge of sea (Revelation 8:8-9)

(3rd) Scourge of rivers (Revelation 8:10-11)

(4th) Scourge of the heavens (Revelation 8:12)

   ~ Eagle announces three woes (Revelation 8:13)

   ~ The bottomless pit (Revelation 9:1-2)

(5th) 1st woe, Plague of locusts (Revelation 9:3-12)

(6th) 2nd woe, The killing horses (Revelation 9:12-21)

   ~ The little book (Revelation 10:1-11)

   ~ The two witnesses prophesy (Revelation 11:1-6)

   ~ The two witnesses killed (Revelation 11:7-13)

(7th) 3rd woe, God’s wrath and the Eternal Kingdom (Revelation 11:14-19)

3. 짐승의 심판 (Revelation 12-20)

일곱 징조

(1st) A splendid woman gives birth to a man child (Revelation 12:1-4)

(2nd) The dragon appears from the sky (Revelation 12:4)

   ~ The man child's ascension (Revelation 12:5-6)

   ~ The dragon's defeat in heaven (Revelation 12:7-9)

   ~ Heaven's victory song (Revelation 12:10-12)

   ~ The woman's escape (Revelation 12:13-17)

(3rd) The Beast

   ~ Appears from the sea (Revelation 13:1-2)

   ~ Has dragon's authority (Revelation 13:3-10)

(4th) The False prophet

   ~ Appears from the earth (Revelation 13:11)

   ~ Has beast's authority (Revelation 13:12)

   ~ His great deception (Revelation 13:13-14)

   ~ The image he made live (Revelation 13:15)

   ~ The mark of the beast (Revelation 13:16-17)

   ~ The number of the beast (Revelation 13:18)

(5th) The Lamb on Mount Zion (Revelation 14:1-5)

(6th) Three angelic messengers (Revelation 14:6-13)

(7th) The two reapers (Revelation 14:14-20)

일곱 재앙

The heavenly singers (Revelation 15:1-8)

The bowls of God’s wrath (Revelation 16:1-21)

마지막 일곱 환상

(1st) The atrocious woman, Mother of Harlots (Revelation 17:1-6)

   ~ An angel explains (Revelation 17:11-18)

(2nd) Seven songs of woe to "Babylon"

   ~ The angel from heaven (Revelation 18:1-3)

   ~ Second voice from heaven (Revelation 18:4-9)

   ~ Kings of earth (Revelation 18:9-10)

   ~ The merchants (Revelation 18:11-16)

   ~ The sailors (Revelation 18:17-20)

   ~ A mighty angel (Revelation 18:21-24)

   ~ Multitude in heaven (Revelation 19:1-6)

(3rd) The wedding supper announced (Revelation 19:7-10)

(4th) King on a white horse (Revelation 19:11-21)

(5th) The Abyss and thousand years (Revelation 20:1-10)

(6th) The dead are judged (Revelation 20:11-15)

4. 천국의 아름다움 (Revelation 21-22)

(7th) Heaven for the Saved

   ~ New heavens and new earth (Revelation 21:1-8)

   ~ The heavenly city (Revelation 21:9-27)

   ~ The heavenly Eden (Revelation 22:1-5)

맺음말

예수의 마지막 말씀 (Revelation 22:6-21)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의미(요한계시록 20:4a)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심판의 의미(요한계시록 20:4a)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이란 단어가 사용된 구절들을 검색한 결과 모두 14구절 입니다.
먼저 각 구절들을 소개합니다.


요한계시록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6:5
내가 들으니 물을 차지한 천사가 가로되 전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요한계시록 16:7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요한계시록 18:8
그러므로 하루 동안에 그 재앙들이 이르리니 곧 사망과 애통과 흉년이라 그가 또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신 주 하나님은 강하신 자이심이니라.
 

  요한계시록 18:10
그 고난을 무서워하여 멀리 서서 가로되 화 있도다 화 있도다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다 하리로다. 
 

  요한계시록 18:20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그에게 하셨음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요한계시록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요한계시록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심판이란 단어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문맥을 살펴야 합니다.
20장 4절에서 보좌에 앉은 자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심판의 권세를 다른 누구에게 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하여 여러 번역을 참조합니다.

(한글개역성경)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현대인의 성경) 나는 또 여러 보좌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공동번역) 나는 또 많은 높은 좌석과 그 위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심판할 권한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새번역) 내가 또 보좌들을 보니, 그 위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한글 번역 성경으로는 심판의 의미가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영어 번역을 참조 합니다.

(NIV) I saw thrones on which were seated those who had been given authority to judge.
(KJV) And I saw thrones, and they sat upon them, and judgment was given unto them:
(NASB) Then I saw thrones, and they sat on them, and judgment was given to them.

영어 성경으로 살펴보면 "심판"이란 단어가 "판단"이란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헬라어 성경에서 사용한 단어들을 정리합니다.

20장 4절 내용 중에 “보좌에 앉은 자들에게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 크리마(κρίμα)(2917) judgment(판단하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선택되었다(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왕 같은 제사장은 세상에서 선과 악을 판단(심판)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판단을 심판으로 번역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6: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 심판하다(κρίνεις) 2919
- 크리노(κρίνω)(2919) to judge, decide 

이때 심판은 판결하여 결정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 심판(κρίμα) 2917. punishment(처벌, 형벌)

따라서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이란 단어가 마지막 심판 날에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는 최후의 심판을 의미하는 형벌이라는 것과 고난의 세상에서 성경적인 판단을 하므로서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