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7. 마라나타(고전 16:22, 계 22:20)


휴거(携擧, Rapture)  데살로니가전서 4:17

1. 한자 - 휴거(携擧) 이끌 휴(携), 또는 들 휴(携). 들 거(擧)
2. 영어 - rapture
3. 라틴어 - raptu

4. 헬라어 - έκσταση

성경에는 휴거라는 용어가 없습니다.
휴거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은 누구이며 어떤 배경에서 사용하였는가?

휴거(携擧. Rapture)란 불가타 성서<데살로니가전서>에서 'Rapiemur'라는 구절에서 따온 단어이다.
개신교의 졸말론 중 하나로 예수가 재림하여 공중에 임할 때 선택받은 사람들이 천국으로 올라가 그와 만난다는 것.

데살로니가전서 4:17

개역개정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새번역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
그 다음에 우리 살아남아 있는 사람들이 그와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주와 함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 끌어올려(726) 하르파조(harpazōἁρπάζω

1. 취하다.  2. 훔치다. 3. 데려가다
발음 [ harpazō ]
어원 / 미래 ἁρπάσω, 제1부정과거 ἥρπα- σα, 제1부정과거수동태 ἡρπάσθην, 제2부정 과거수동태 ἡρπάγην, 제2미래수동태 ἁρπαγήσομαι, 138의 파생어에서 유래

뜻풀이부

I. 취하다, 잡아채다.
 1. 훔치다, 끌어가다, 잡아가다, 마 12:29, 요 10:12.
 2. 데려가다, 빼앗다, 빼앗아 가다, 잡아 채다.
  a.  강제로 ~하다, 마 13:19, 요 6:15, 10:28, 구해내다, 유 1:23. 체포하는 것, 행 23:10.
  b. 저항할 수 없도록 ~하다, 행 8:39, [수동으로] 마 11:12, 고후 12:2, 계 12:5.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끌어내다(유 1:23), 빼앗다(마 11:12, 요 10: 28, 행 23:10), 물어 가다(요 10:12), 이끌다(행 8:39), 이끌려 가다(고후 12:2, 4), 끌어 올리다(살전 4:17), 억지로 붙들다(요 6:15), 끌어 내다(유 23), 올려가다(계 12:5)


구름 속으로 - '구름'은 들림받은 성도들을 운송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현시(顯現時) 늘 동반되었던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은 구름 속에서 비쳐졌다가 다시 구름속으로 사라졌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강림하셨을 때 시내 산에 빽빽한 구름이 있었으며(출 19:16), 모세가 계시를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출 24:15-18)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임하였을 때구름이 회막을 덮었었다(출 40:34).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하셨을때(막 9:7)와 승천하실 때(행 1:9) 구름이 등장했었다.

공중에서 - 본절의 '공중'에 대해서는 두가지 개념이 있다. 즉 '아래 공중'(*,아에르)과 '윗 공중'(*, 아이데르)이 있는데, 본절에 쓰여진 '공중'은 전자이다. 신약성경에서 '공중'은 사단의 거처로 인식되었다(엡 2:2). 따라서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성도를 만나는 것은 그의 완전한 주권(主權)의 회복을 나타낸다고 한다(Morris).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 '영접하게'의 헬라어 '아판테신'(*)는 헬레니즘 시대에 고위 공직자가 시(市)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때, 시민들이 마중 나가서 호위하고 들어오는 행위를 가리켰다. 기원전 49년에 율리우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이탈리아를 경유해 올 때, 시세로(Cicero)는 본 단어를 사용하여 그를 영접한 모습을 묘사하였다. 신약성경에서는 마 25:6에서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것을 표현할 때 본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행 28:15에서 교인들이 바울을 맞이할 때 본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동안 우리 주위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휴거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봅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휴거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요한계시록 1장은 서로의 내용이며 2장과 3장은 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특정한 시대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곱교회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에베소교회 - 사도시대
서머나교회 - 속사도시대
버가모교회 - 로마 국교시대
두아디라교회 - 중세 암흑시대
사데교회 -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교회 - 선교시대
라오디게아교회 - 종말시대(평신도들의 소리가 커져가는 시대)

세대주의자들은 이렇게 일곱교회를 교회시대의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한 후에 계시록 4장은 교회가 휴거된 상태라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계시록 1:10에서 요한의 첫 번째 환상을 소개합니다(계 1:10-3:22).

첫번째 환상 /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두번째 환상 / 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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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나타", "마라나 타", "마란 아타"의 뜻과 기원








환난 전 & 환난 중 휴거의 성경적 문제점

데살로니가전서 4:16-17(공동번역)

16.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10

3.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하고 말할 것입니다.
5. 그들은 아득한 옛날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땅이 물에서 나왔고 또 물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6.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베드로후서 3장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때에 구원 받은 성도들은 승천하고 그 즉시 온 세상이 불로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게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베드로후서 3장이 두번째 재림을 말한다면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같은 말을 할 리가 없다.
즉, 재림 이후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의 대환난 기간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3장과 12장~14장을 근거로 휴거를 받는자들의 특징과 마지막 때 한 이레(7년)동안 언제 휴거가 있을지 알 수 있다.

2011년 휴거설 / 2011년 5월 21일 - 헤롤드 켐핑의 주장


2011년 5월 21일 심판설은 미국 켈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패밀리 라디오'의 설립자 해롤드 캠핑(89)이 주장했다.
캠핑은 자신이 성서를 분석한 결과 21일 오후 6시에 지진계로 측정 불가능한 지구 최악의 지진이 날짜변경선을 기점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며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고, 진실한 믿음을 가진 신도 2억 명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153일 동안 공포와 혼돈이 이어지다 10월 21일 인류는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그의 '종말의 날' 시나리오다.
캠핑이 주장한 심판의 날 시작일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종말을 준비했다.

헤럴드 경제 기사

그의 추종자인 로버트 피츠패트릭은 평생 모은 재산 14만 달러뉴욕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 심판의 날을 광고하는 데 모두 사용했다고 하니 세상에 어느 정도 이슈거리를 만든 셈이다.

일단 본인 말에 따르면 지진은 국제 날짜변경선, 정확히는 뉴질랜드에서 오후 6시 경에 일어나 이후 각 나라의 6시에 맞춰 발생할 것이라 예언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

캠핑은 1994년 9월 6일에 이미 멸망한다는 예언을 한 전과가 있었으며, 이후 5월 21일 휴거를 주장한 헤럴드 캠핑은 진짜 휴거는 10월 21일이라며 둘러댔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이후 캠핑은 예언이 빗나간 데에 충격을 받아, 뇌졸중을 일으켜 결국 2013년 12월 15일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애당초 사기가 목적이었던 이장림 목사와는 달리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예언을 굳게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중문화

<휴거>라는 제목의 유명한 개신교 소설이 있다. 어니스트 W. 앵글리라는 미국인 개신교 목사의 작품으로, 1950년대를 배경으로 내용은 위에 설명된 휴거를 시작으로 휴거 후 7년간 대환난과 사탄(적그리스도)의 득세 → 요한묵시록의 실현 → 예수 재림까지를 다룬다.
이 책이 당시 아직 이단에 빠지지 않고 정통 감리교에 남아 있었던 이장림 목사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고, 1980년대~90년대에는 개신교계에 교단을 가리지 않고 휴거에 대한 열풍을 가져와서 결국 1992년 휴거 대소동으로 이어졌다.

뒤에는 만화로도 출판되었을 정도.
내용은 위에 설명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종말 교리를 그대로 소설로 썼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노인에서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휴거였다는 내용.
이후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대로의 종말이 닥쳐오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당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고 죄악에 빠져 최후의 심판 때 지옥불의 고통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냥 객관적으로는 널리고 널린 기독교 간증 신앙 소설이라고 보면 읽을 만한데, 전반적인 소설 수준은 낮고 잔혹한 면도 많다.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1992년 휴거 대소동 당시 포교 용도로 이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사이비 종교로 이끌었다.

2000년대에도 여러 번 나올 정도였는데 80년대에 저예산 영화로 나왔다. 한국에서 한국어 더빙도 되어 예배당에서 상영도 하고, 비디오로도 나왔으며, 유튜브에도 올라왔는데, 엄청난 저예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휴거를 소재로 한 또다른 작품으로는 레프트 비하인드가 있다. 앞에 설명한 작품들보다 선정성은 드물고 잘 짜여진 B급 액션 스릴러물이다. 마지막편은 특이하게도 아마게돈으로 인해 선이 승리했지만 천년후에 잠시 놓이게 된 사탄과 구원받은 자 가운데서 반대파가 다시 신에게 도전해서 전쟁이 나고 에게 영원히 발린게 된 후[6] 새하늘 새땅과 함께 영원한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는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한국에서도 외전[7]포함하여 제12권 영광의 재림편을 끝으로 총 13권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문제는 진짜 완결인 제13권 Kingdom Come: The Final Victory을 빼먹은 것...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착각[8]했거나 또는 판권문제나 기타사정으로 13권을 출간시키지 못하고 결국 12권에서 완결을 냈을 가능성도 있다.[9]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비디오용 영화도 있는데, 현대에 휴거가 일어날 경우 발생할 혼란을 묘사하고 있다.[10] 이걸 리메이크해 2014년에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레프트 비하인드: 휴거의 시작도 있는데 흥행과 비평에서 쫄딱 망했다. 골든 라즈베리 최악 감독상 후보에 오를 정도. 이거 감독인 빅 암스트롱은 터미네이터 2 조감독이었고 돌프 룬드그렌 주연 영화 '조슈아 트리'를 감독했으나 망한 바 있다.

그리고 재기드 얼라이언스 류의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 레프트 비하인드: 이터널 포스가 2006년에 출시됐는데 이 내용이 엄청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 저항군이 적그리스도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비신자는 죽이는(!) 내용인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성과 광신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똥겜'이라며 비아냥받았다.

만화 배틀 포프의 배경이 휴거가 일어난 세상이다.

그 외에도 휴거를 소재로 한 영화로 밤의 도둑들[11][12] 시리즈가 있다. 저예산티가 많이 나는 작품이지만 4편이나 제작된 작품. 위에 서술된 사건 전후로 교회에서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내용이야 세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적그리스도가 세계 대통령이 되고, 그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길로틴으로 처형당한다는 흔하디 흔한 휴거 내용인데, 저예산의 압박에도 의외로 무섭다.

아래는 소설 멋진 징조들의 한 장면이다.
사이비 종교인 왈, "(전략)파멸이 오기 전에, 종말의 네 기수가 달려 나오기 전에, 핵 미사일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쏟아져 내리기 전에, 휴거가 있을 것입니다. 휴거가 무엇이냐? 형제자매 여러분, 휴거가 오면 진정한 신앙인들은 모두 공중에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갑자기 완전하고 깨끗한 몸으로 공중에 떠 있게 되는 겁니다. 공중에 뜬 채, 파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세상을 굽어보겠지요. 오로지 믿는 자만이 구원받으리니, 오로지 여러분들만이 다시 태어나 고통과 죽음과 공포와 불길을 피할 것입니다.(후략)"

이에 지나가던(?) 천사 왈, "(전략)...누가 그렇게 시간이 남아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골라다가 공중에 띄워서 아래 지상에서 불타고 마르고 방사능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비웃게 해주겠느냐는 거예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에 대한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좀 부언(附言)해도 좋겠지요."
게임 바이오쇼크의 주 무대가 되는 수중 도시인 랩처도 저 Rapture로 쓴다. 도시 자체가 이상향을 목표로 만들어졌으며, 초기에 소수의 사람만 은밀하게 랩처로 이주시켰다는 점이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과 관련이 있는 어드벤처 게임인 Everybody's Gone to the Rapture가 존재한다.

한국에도 휴거라는 영화가 있기는 하지만 휴거에 관한 내용은 잠시 나올 뿐, 사이비 종교에 빠진 딸을 구하는 부모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해당 영화를 제작한 감독은 결국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버렸다...

미국 영화 디스 이즈 디 엔드도 휴거를 다뤘다. 하지만 다룬 건 맞는데, 내용이 아주 병맛이어서 도리어 개신교 계열에서는 휴거를 모욕했다며 깠다. 심지어 우리나라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나온다. 애초에 제작자 중 세스 로건이 있는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휴거뿐만이 아니라 죄다 정신나간 코미디 영화다. 자기 희생 등의 선행만 좀 하면 휴거를 해주는데다, 휴거의 빛이 악마를 막아주기까지 한다. 문제는 마지막의 대악마 때는 이것 때문에 거세되거나 휴거의 환희에 욕 좀 했다고 휴거가 취소되는 등...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4집 <SOUL COOKE>에 휴거를 소재로 한 노래( 15번 트랙 <RAPTURE>)가 수록되어 있다. 나얼이 불렀는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의 성향이 반영된 노래인 듯.



휴거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 고찰

신학적 고찰이란 "휴거가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때에 나타날 7년 대환난이 일어났을 때 환난 전에 휴거한다.
아니면 환난 후에 휴거한다.
이런 논쟁을 합니다.
또는 대환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휴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둘째는 실천적 논쟁

실천적 논쟁이란 어떤 신학적인 주제라도 예수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휴거라는 주제를 이야기 할 때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아니면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휴거라는 것을 예수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휴거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환난 전이냐 아니면 환난 후인가 이런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면 휴거라는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짐승의 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주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셋째, 짐승의 표가 우월합니까? 예수 구원이 우월합니까?
당연히 예수 구원이 짐승의 표보다 더 우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 휴거에 대한 실천적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이해를 신학적인 논재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실천적 신앙을 갖고 접근하려고 합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 되면서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징조라고 하며 휴거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휴거에 대한 주제가 급부상하는 배경은 사회적인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가 주장하던 공중으로 들려올라간다는 가르침에 따라 많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한곳에 모여 찬송을 부르며 공중으로 올라가려고 기다렸지만 결국 잘못된 가르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걸프 전쟁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쟁을 CNN 등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세계적인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1999년 세상 멸망설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걸프 전쟁과 더불어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한하면 1999년 세상 멸망설이란 불란서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라 1999년에서 7년을 빼면 1992년이 됩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짜맞추기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므로 신앙의 질서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마침 감리교 목사이었던 이장림목사가 미국에서 발행된 휴거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므로 휴가에 대한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사회적 거리 유지와 일상생활의 비정상적인 생활이 계속되므로 또다시 마지막 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되므로 휴거라는 주제로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고찰보다는 실천적인 고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4:17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에는 "휴거"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휴거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근거를 정확하게 살펴야 합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라틴어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서 "끌어올려"에 해당하는 “라베무르(Rapiemur)”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라베무르"의 뜻은 "잡다, 낚다, 잡아채다, 납치하다”는 뜻입니다.

"라베무르(끌어 올려)"라는 단어에 대한 분석

1. 한글 성경 : 끌어 올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2. 헬라어 성경 : 하르파조(ἁρπάζω)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3. 영어 성경 : 랩처(Rapture)
- NIV ; be caught up
- KJV ; be caught up
- NASB ;  be caught up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4. 한문 성경 : 휴거(携擧, Rapture) 

휴거(携擧)”라는 한자는 “이끌 휴(携)” “들 거(擧)” 라는 훈으로 “이끌려 들려지다”라는 뜻입니다.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도 제 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문법적 의미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오늘의 주제가 휴거이므로 휴거에 대한 믿음이라고 범위를 좁혀 놓고 소개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믿음이란 "오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휴거 안에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휴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666표에 적용하면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666표 안에 예수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고 하면
1.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2.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3.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666표가 구원의 근거가 되므로 이러한 가르침을 비성경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수아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도입 이야기)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 오겠다고 약속하셨다.
날이 어두워졌으나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들은 현관을 바라보며 "왜 아버지가 안 오시지?" 하고 말할 때
마침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기다리느냐?"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오기로 약속하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릴 때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감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들의 입장에서 장난감이 분명하다.

(전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로마서 1:16-17,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마라나타", "마라나 타", "마란 아타"의 뜻과 기원


마라나타(Maranatha, 아람어: מרנא תא: maranâ thâ'  또는 מרן אתא: maran 'athâ' , 그리스: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2개의 아람어가 합쳐진 공식인데 신약성경에 2회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마라나타(מרנא תא, maranâ thâ))"라고 하는 용어는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에 두 번 나온다.
이것은 본래는 아람어로 기도문에 쓰인 것으로 헬라어로 표기한 것이다.
이 용어는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디다케(가르침이라는 뜻)"의 예식문(10:14)에서도 발견되며,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우리 주여 오소서(Our Lord(10:14) come 혹은 Our Lord has come)"라는 의미이다.

Maranatha (either מרנא תא: maranâ thâ' or מרן אתא: maran 'athâ' ) is a two-word Aramaic formula occurring only once in the New Testament (see Aramaic of Jesus) and also in the Didache, which is part of the Apostolic Fathers' collection. It is transliterated into Greek letters rather than translated and, given the nature of early manuscripts, the lexical difficulty lies in determining just which two Aramaic words comprise the single Greek expression, found at the end of Paul's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 Cor 16:22).

마라나타(either מרנא תא: maranâ thâ' or מרן אתא: maran 'athâ'  마라나 타 혹은 마란 아타)는 두 단어의 아람어식 어구로는 ( 예수님의 아람어를 참조하라) 신약 성경에서 그리고 디다케에서 단 한 번 사용된 것을 ‘사도의 아버지’ 수집(collection) 일부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초기 원고의 성격, 두 단어의 아람어가 단 하나의 그리스어 표현을 포함하는 결정에 어휘의 어려움이 있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지기보다 그리스 문자로 바뀌어(음역되어) 졌고 , 고린도전서 16: 22절 바울 서신의 끝머리에 표현되었음을 찾을 수 있다.(고전 16: 22)

If one chooses to split the two words as מרנא תא (maranâ thâ), a vocative concept with an imperative verb, then it can be translated as a command to the Lord to come. on the other hand, if one decides that the two words מרן אתא (maran 'athâ), a possessive "Our Lord" and a perfect/preterite verb "has come," are actually more warranted, then it would be seen as a credal expression. This interpretation, "Our Lord has come," is supported by what appears to be an equivalent of this in the early creed acclamation found in the biblical books of Romans 10:9 and 1 Corinthians 12:3, "Jesus is Lord."

만약, 누군가 두 단어로 (마라나 타) 띄어 쓰도록 선택한다면, 필수 명령형 동사 호격 개념으로는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누군가 소유격으로 번역하고저 할 때는 “우리의 주님”이 가능하며 완료형/과거 동사의 표현은 ”Has come, 오셨다”가 사실상 더 보장되는데 오래전 신조(교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번역은 성경 로마서 10:9과 고전 12:3에 나타나는 "예수는 주시라"는 교회사에서 일찍이 신조(교의) 승인(허락)을 토대로 이 해석 방법의 타당성을 지원받기도 한다.  

In general, the recent interpretation has been to select the command option ("Come, Lord!"), changing older decisions to follow the preterite option ("Our Lord has come") as found in the ancient Aramaic Peshitta, in the Latin Clementine Vulgate, in the Greek Byzantine texts, Textus Receptus, critical Greek
texts like Westcott and Hort, Tischendorf, Cambridge, etc., and in the English translations like the King James Version, the Finnish Raamattu, etc. one reason the change from the previous scholarly view has occurred is that the P46 papyrus (ca. A.D. 200) divides it as μαρανα θα ("marana tha").일반적으로, 최근의 해석은 고대 아람어 페쉬타에서, 라틴 크레멘타인 벌기트 성경에서, 그리스 비잔틴 텍스트들에서 발견되어진 것처럼 “우리 주님이 오셨다”의 이전 결정을 변경, “오소서, 주님!” 명령형으로 선택했다. 그리스 비잔틴 교재들, 까다로운 웨스트코트와 같은 그리스 텍스트들과 호르트, 라틴 클레멘타인 벌기트 성경, 호르트비스첸도르프, 캐임브리지 등등, 그리고 킹 제임스 버젼과 같은 영어 번역들, 핀란드 라아마투 등등에서 이전 학자들의 견해를 바꾼 단 하나의 이유는 중요한 그리스어 교재 학술 보기 P46 파피루스 (ca. A.D. 200) 같은 곳에 “마라나 타”로 띄어 분리하는 일이 나타났던 것이다.

The NRSV of 1 Cor 16:22 translates the expression as: "Our Lord, come!" but notes that it could also be translated as: "Our Lord has come"; the NIV translates: "Come, O Lord"; the NAB notes:

고전 16:22을 “NRSV"에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메모는 역시 "우리 주께서 임하셨다”로 번역될 수도 있고; NIV 에는 "오시옵소서, 오 주여”로 번역되었다; NAB 메모:

"As understood here ("O Lord, come!"), it is a prayer for the early return of Christ. If the Aramaic words are divided differently (Maran atha, "Our Lord has come"), it becomes a credal declaration. The former interpretation is supported by what appears to be a Greek equivalent of this acclamation in Book of Revelation 22:20 "Amen. Come, Lord Jesus!""

“여기서 (“O Lord, come”)로 이해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속히 있으시기를 구하는 하나의 기도문이다. 만약 아람어식 단어를 다른 형태로 나누면 "우리 주님이 오셨다(임재하셨다)”이며, 이것은 신조(교의)로 선포되었다. 이전의 번역은 그리스 어의 계시록 22: 20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동등한 타당성을 지원받는다.                  

The 1985 New Jerusalem Bible translates 1 Cor 16:22, "If there is anyone who does not love the Lord, a curse on such a one. Maran atha." In the context of First Corinthians, understanding the Greek "maranatha" as Aramaic "Maran atha" in the preterits sense would provide substantiation for the preceding anathema. That is, one who does not love the Lord is accursed because our Lord has ascended and come unto his throne (e.g., Dan 7:13) and wields power to implement such a curse. It would also substantiate the following prayer for grace from the ascended Lord Jesus, who has come to his throne and then sends the Holy Spirit.

1985년 새 예루살렘 성경은 고전 16:22을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Maran atha"로 번역한다.
고린도전서의 문맥으로 보아서, 과거의 판단력 안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maranatha"를 아람어 "Maran atha"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앞에 말한 저주에 대한 입증을 제공할 것이다.
즉 주님의 승천과 그의 보좌 (단 7: 13)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무서운 저주를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왕위와 승천하신 주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와 임하실 그분의 보좌, 그리고 거룩한 성령을 보내어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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