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류관(스데반) Στέφανος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첫 순교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과부의 구제를 위하여 특별히 세워진 사람이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당하여 심문당하였다.
그는 돌에 맞아 죽기 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인자 예수의 영광을 본다고 외쳤다.
스데반은 그의 이름처럼 순교자의 영광을 보여준 것이다.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의 뜻은 왕관(diadem), 화환(wreath), 웰계관(crown)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18번 나오고, 동사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 to crown)는 3번 나온다(딤후 2:5; 히 2:7, 9).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는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나,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승자에게 주는 면류관(월계관, wreath, laurel)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은유적으로는 고난 후에 주어지는 보상적인 선물과 영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는 동사 στέφω(스테포, 둘러싸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석, 꽃, 나뭇가지로 둥글게 둘러싼 화환이나 왕관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 헬라어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제의행위를 하는 제사장이 머리에 쓰거나, 제물이나 제단에 올려놓음으로 신들의 축복을 받으려 하였다.

신탁의 예언자들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머리에 쓰고서 예언을 하였다.
왕은 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며, 왕관은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며 신의 보호를 받는 존재임을 과시하였다.

밀의종교에서는 초신자가 스테파노스를 쓰고 입교식에 참여하였다.
경기나 경주의 승자(victor)에게 올리브관이나, 전쟁의 승자에게 월계관(laurel wreath)으로 명예를 높여 주었다.
고대의 축제나 심포지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행사이기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기쁨과 축복의 표시로 화환을 머리에 썼다.

70인경(LXX)은 히브리어 동사 아타르(עטר)를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라고 번역하였는데(시 5:12; 65:12; 102:4), 하나님의 복과 보호로 인생을 둘러싼다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시 103:4).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 עֲטָרָה(아타라)으로 비유하였다(사 62:3; 겔 16:12).
70인경은 עֲטָרָה(아타라)를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로 번역하며, 왕관의 의미를 명예와 보상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분명히 사용하였다(욥 19:9; 렘 13:18; 잠 12:4; 16:31; 17:6)

신구약 중간시대에 역사의 종말과 내세의 보상을 기대하는 묵시주의 문학이 출현하면서, 미래적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되고, 믿는 자나 순교자가 받게 될 내세의 영광과 보상을 보좌와 면류관으로 표현하였다(에녹서 등).

헬레니스트 유대인들은 마음과 지식의 훈련을 통하여 감정과 정욕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경주의 승자에게 주는 월계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도덕적 종교적 삶을 강조하였다(Philo).

신구약 중간시대의 묵시문학이나 이성주의적 헬레니스트의 영향을 받은 사도 바울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그리스도인이 받을 내세의 영광과 보상에 비유하였다.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후 5:4) 등의 표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세에 받을 영광과 보상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강조하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인내를 요구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은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금면류관을 쓰고 있다(계 4:4).
이런 성도의 영광과 대조되면서 심판 받을 사탄과 로마제국도 왕관을 쓰고 있다.
붉은 용(사탄)은 일곱 개의 머리에 7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계 12:3)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열 뿔에도 10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13:1)을, 그들의 하수인 황충들도 금면류관들(스테파노이 στέφανοι, 9:7)을 머리에 쓰고 있다.

영적 대적자들의 영광과 권세는 결국 패배하는 것이고, 예수를 잉태한 여인의 존재(교회)는 태양을 둘러 걸치고, 달을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을 쓰고(계 12:1) 환란과 박해를 이겨낸다.

인자 예수는 금면류관을 쓰고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지금 심판을 준비중이다(계 14:14).
마지막 날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싸우시는 데, 머리에 많은 관들(디아데마타 διαδήματα)을 쓰시고 승리자가 되실 것이다(계 19:12).

바울은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썩어지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을 목표하며 지금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분명히 하였다(빌 3:14). 그런데 바울은 내세의 보상과 영광인 면류관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가 이미 자신의 면류관임을 선포하였다(빌 4:1; 살전 2:19). 예수와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는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맛보는 면류관은 영광이지만 고난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잊지 않고 예수가 쓰신 가시 면류관을 기록하고 있다(마 27:29; 막 15:17; 요 19:2). 조롱과 멸시, 고통의 면류관인 것이다. 예수의 제 2 성육신인 교회는 지금 고난의 가시면류관을 쓰고 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와 복음의 길을 막는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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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소개된 다섯 가지 면류관


1. 의의 면류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면류관이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 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 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8)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린다.
그 소망을 가짐으로써 불경건을 버리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딛2:12-14)

2. 생명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 시험을 견뎌내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 사람, 혹은 순교를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만이 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즉 죽기까지 신실한 사람이 받는다는 것이다.

3. 썩지 않을 면류관

모든 일에 억제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 즉 몸의 정욕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9:25-27)

여기서 버림 받는다는 것은 구원을 잃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건강관리에 소홀히 하여(지나친 과식이나 운동부족 같은) 몸이 병들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몸에 나쁜 습관들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으려면 죄로 기우는 육신의 욕구를 자제하고(고전 9:25)
하나님을 성경대로 정확히 섬기며(고전 9:26)
중도에 건강을 잃고 사역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운동선수처럼 몸을 억제하여 복종해야 한다.(고전 9:27)

4. 자랑의 면류관

복음을 전해서 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구령자가 받는 면류관이다(잠 11:3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 이는 너희가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기 때문이라.』(살전 2:19-20)

『그러므로 나의 참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서 이처럼 굳게 서라.』(빌 4:1)

- 자랑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5. 영광의 면류관

신실하게 사역한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며 본이 되는 목사여야만 한다.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거짓 목사들은 이것을 결코 받을 수 없다.(롬 16:18)

『내가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동참하게 될 자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 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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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면류관)에 대하여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첫 순교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과부의 구제를 위하여 특별히 세워진 사람이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당하여 심문당하였다.
그는 돌에 맞아 죽기 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인자 예수의 영광을 본다고 외쳤다.

스데반은 그의 이름처럼 순교자의 영광을 보여준 것이다.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의 뜻은 왕관(diadem), 화환(wreath), 웰계관(crown)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18번 나오고, 동사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 to crown)는 3번 나온다(딤후 2:5, 히 2:7, 9).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는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나,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승자에게 주는 면류관(월계관, wreath, laurel)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은유적으로는 고난 후에 주어지는 보상적인 선물과 영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는 동사 στέφω(스테포, 둘러싸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석, 꽃, 나뭇가지로 둥글게 둘러싼 화환이나 왕관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 헬라어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제의행위를 하는 제사장이 머리에 쓰거나, 제물이나 제단에 올려놓음으로 신들의 축복을 받으려 하였다.

신탁의 예언자들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머리에 쓰고서 예언을 하였다.

왕은 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며, 왕관은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며 신의 보호를 받는 존재임을 과시하였다.

밀의종교에서는 초신자가 스테파노스를 쓰고 입교식에 참여하였다.

경기나 경주의 승자(victor)에게 올리브관이나, 전쟁의 승자에게 월계관(laurel wreath)으로 명예를 높여 주었다.

고대의 축제나 심포지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행사이기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기쁨과 축복의 표시로 화환을 머리에 썼다.

70인경(LXX)은 히브리어 동사 아타르(עטר)를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라고 번역하였는데(시 5:12; 65:12; 102:4), 하나님의 복과 보호로 인생을 둘러싼다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시 103:4).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 עֲטָרָה(아타라)으로 비유하였다(사 62:3; 겔 16:12).
70인경은 עֲטָרָה(아타라)를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로 번역하며, 왕관의 의미를 명예와 보상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분명히 사용하였다(욥 19:9; 렘 13:18; 잠 12:4; 16:31; 17:6)

신구약 중간시대에 역사의 종말과 내세의 보상을 기대하는 묵시주의 문학이 출현하면서, 미래적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되고, 믿는 자나 순교자가 받게 될 내세의 영광과 보상을 보좌와 면류관으로 표현하였다(에녹서 등).

헬레니스트 유대인들은 마음과 지식의 훈련을 통하여 감정과 정욕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경주의 승자에게 주는 월계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도덕적 종교적 삶을 강조하였다(Philo).

신구약 중간시대의 묵시문학이나 이성주의적 헬레니스트의 영향을 받은 사도 바울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그리스도인이 받을 내세의 영광과 보상에 비유하였다.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후 5:4) 등의 표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세에 받을 영광과 보상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강조하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인내를 요구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은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금면류관을 쓰고 있다(계 4:4).
이런 성도의 영광과 대조되면서 심판 받을 사탄과 로마제국도 왕관을 쓰고 있다.
붉은 용(사탄)은 일곱 개의 머리에 7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계 12:3)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열 뿔에도 10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13:1)을, 그들의 하수인 황충들도 금면류관들(스테파노이 στέφανοι, 9:7)을 머리에 쓰고 있다. 영적 대적자들의 영광과 권세는 결국 패배하는 것이고, 예수를 잉태한 여인의 존재(교회)는 태양을 둘러 걸치고, 달을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을 쓰고(계 12:1) 환란과 박해를 이겨낸다.

인자 예수는 금면류관을 쓰고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지금 심판을 준비중이다(계 14:14).
마지막 날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싸우시는 데, 머리에 많은 관들(디아데마타 διαδήματα)을 쓰시고 승리자가 되실 것이다(계 19:12).

바울은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썩어지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을 목표하며 지금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분명히 하였다(빌 3:14).
그런데 바울은 내세의 보상과 영광인 면류관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가 이미 자신의 면류관임을 선포하였다(빌 4:1; 살전 2:19).
예수와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는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맛보는 면류관은 영광이지만 고난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잊지 않고 예수가 쓰신 가시 면류관을 기록하고 있다(마 27:29; 막 15:17; 요 19:2). 조롱과 멸시, 고통의 면류관인 것이다.
예수의 제 2 성육신인 교회는 지금 고난의 가시면류관을 쓰고 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와 복음의 길을 막는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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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스테파노스를 주리라!
스테파노즈(stevfanoz)

신약성서에는 “면류관”을 뜻하는 두 종류의 헬라어 단어가 나타난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두 단어가 동일하게 ‘면류관’으로 번역되지만,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살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동하는 그 달고 오묘한 맛의 신비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구별된 헬라어 원어처럼 번역에서도 서로 구별 되어야 마땅하다.

첫째는 ‘디아데마’(diavhma, 12:3, 13:1, 19:12)

디아데마는 요한계시록에서만 세 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로부터 영어의 ‘diadem’(왕관)이 파생되었다.
원래 디아데마는 “둘레를 동여매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페르시아의 왕들이 터어번(turban: 인도 등에서 남자가 머리에 감는 두건)이나 티아라(tiara: 옛 페르시아 사람의 두건) 위에 묶어서 사용했던 흰색으로 표시된 파란 리본띠를 가리킨 말이었다.

이것은 왕의 머리에 사용되는 장식품이었기 때문에 왕권이나 권력을 상징했다.
때때로 하나 이상의 디아데마(왕관)가 동시에 씌워지곤 했다.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가 안디옥에 승리의 개선을 했을 때 그는 그의 머리 위에 두 디아데마를 썼는데, 한 디아데마는 아시아에 대한 그의 주권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다른 디아데마는 이집트에 대한 그의 왕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마카비상 11:13).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은 머리 위에 많은 디아데마(19:12)를, 사탄은 일곱 디아데마(12:3)를, 적그리스도는 열 개의 디아데마(13:1)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디아데마는 성도들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 권세를 소유하신 예수님이나 어둠의 권세를 가진 사탄 또한 적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둘째는 ‘스테파노스’(stevfanoz, 신약성서에 25번 등장)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도 운동경기자들에게 주는 면류관이 있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을 한 승리자들, 즉 골인지점을 제일 먼저 통과한 달리기 주자와 원반이나 창을 가장 멀리 던진 선수, 그리고 상대방을 제압한 레슬링선수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테파노스는 승리의 표상이었고, 가치 있는 명예의 상징이었으며, 축제와 기쁨의 상징이었다.

이 면류관은 올리브, 월계수, 셀러리, 솔잎 등을 그 가지와 함께 엮어 만든 관이었다.
이것이 교회의 언어로 변천되어서 스테파노스는 구원의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시험을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그리고 의의 면류관(딤후 4:8),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기쁨의 면류관(빌 4:1)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최초 그리스도교 순교자의 이름인 스데반 역시 이 스테파노스에서 유래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또 하나의 면류관은 바로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씌운 ‘가시 스테파노스’인 것이다(마 27:29, 막 15:17, 요 19:2, 5).
그의 면류관은 외관상 패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이미 사탄을 이기신 주님을 위하여 예비된 승리자의 면류관이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인 안회(顔回, BC 521-481)를 가리키며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며 좁고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시름겨워하거늘, 안회는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구나’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단표누항(簞瓢陋巷)이다.

이 말의 뜻은 누추한 거리에서 먹는 대바구니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소박한 시골 살림 또는 청빈한 선비의 살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단표누항의 삶이었고, 그 절정은 가시면류관이었다.
이처럼 면류관은 인간이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예수님처럼 신앙의 근원적 비약을 이루게 될 때 부여받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칫 그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신앙의 도약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면류관이 신앙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면류관은 신앙의 자발성, 곧 예수 따르미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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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차 우리가 주님 앞에서 받을 면류관은 어떤 종류들이 있는지 살펴본다.

 

1. 썩지 않는 면류관(고린도전서 9:24-25)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썩지 않는 면류관은 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절제하며 집중하며 복음을 전한 성도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2. 기쁨의 면류관(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

기쁨의 면류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 영혼구령의 열매를 맺었을 때 받는 면류관이다.


3. 의의 면류관(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의의 면류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지킨 성도가 받는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도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



① 선한 싸움

② 의의 면류관

그러면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의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선한 싸움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 곧 선한 싸움이다.

그러면 ‘믿음의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약2:14-26에서 말씀하는 ‘행함’ 즉 믿음의 행함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곧 믿음으로 힘써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믿음에 힘써야(엡4:3, 벧후1:5, 벧후1:10, 유1:3)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함’과 ‘율법의 행위(롬3:20)’는 다르다. ‘율법의 행위’는 곧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막10:19)’는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다만 죄를 깨닫음(롬3:20)이다.

2. 의의 면류관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곧 ①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는(요15:26) 것이며, 그리고 ②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눅4:18) 것이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은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다.

(결론)

문1: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힘써 사는 것이다.

문2: ‘의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답: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의의 면류관이다.




4. 영광의 면류관(베드로전서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영광의 면류관은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한 목사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삶을 산 목자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하셨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이 크게 2가지이다.

① 양 무리의 본

②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그러면 ‘양 무리의 본’은 무엇인가?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양 무리의 본

(요1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하셨다. 그러므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목자로서 양 무리의 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약2:14-26에서 말씀하는 ‘행함’ 즉 믿음의 행함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믿음에 힘써야(엡4:3, 벧후1:5, 벧후1:10, 유1:3)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함’과 ‘율법의 행위(롬3:20)’는 다르다. ‘율법의 행위’는 곧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막10:19)’는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죄를 깨닫음(롬3:20)이다.

2.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셨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 곧 성도의 영광이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은 무엇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는 무엇인가?

1)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이것이 곧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결론)

문1: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무엇인가?

답: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문2: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무엇인가?

답: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것이다.

영광의 면류관(예레미애 13: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5. 생명의 면류관(요한계시록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충성한 성도들이 받는다.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길에서 환란을 만나도 끝까지 충성하는 충성된 성도가 받는 면류관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이 크게 2가지이다.

① 시험

② 생명의 면류관

그러면 ‘시험’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시험

(약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 시험이다.

그러면 ‘자기 욕심’은 무엇인가?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곧 자기 욕심이다.

그리하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다.

2. 생명의 면류관

(요일5:10-1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있는 증거는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다.

2)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결론)

문1: ‘시험’은 무엇인가?

답: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문2: ‘생명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의 자기 안에 있는 증거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생명의 면류관이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영화로운 면류관(잠언 4: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5. 금 면류관

시편 21장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요한계시록 4장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6. 은 면류관

스가랴 6장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7. 지식의 면류관

잠언 14장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8. 재물의 면류관

(물질을 가난한자와 하나님의 영광을위해 사용하는 자)

잠언 14장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9. 보석 면류관

사무엘하 12장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한 금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스가랴 9장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10. 꽃 면류관(화관)

이사야 28장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이사야 61장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1. 가시 면류관(고난)

마태복음 27장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12. 기쁨의 면류관

고린도전서 9장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3. 썩을 면류관

고린도전서 9장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4. 교만의 면류관

이사야 28장

1.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출처:http://m.blog.daum.net/_blog/_m/articleView.do?blogid=0ue09&articleno=343

[면류관을 받기위한 영분별]

[고린도전서 3장]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그냥 열심히 한다고 받는것이 아니며,

자기 열심(인본주의)로 해서 받는것도 아니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받을 수 있습니다.

경쟁심과 욕심에 이끌려서 하는것도 받지 못하기에 사역보다 내적 치유가 먼저 이기에 남을 용서하고 회개가 이루어 져야합니다.

분별이 필요할 때는 조급한 마음으로 행하기 보다 시간을 갖고

내 마음의 동기와 목적을 분별하고 하나님께로 오지 않은 생각은 내려놓고 예배가(말씀,기도,찬양) 먼저 회복 되는데 집중 해야 합니다.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불법으로 행하는 것도 올바르지 못하기에 받지 못하며,

오직 하나님의 법(공의와 정의)대로 행할 때에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불법을 미워하시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으르고 나태해도 받지 못하며,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행할 때 받을 수 있습니다.

[개털 면류관]

참고로 1987년도에 박현 전도사님의 천국 간증 테이프(기독교 서점에서 구입)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자기멋대로 신앙생활 하다가 겨우 천국에 같더니 받을 면류관이 없어서 개털 면류관을 받은 성도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히 개털면류관을 쓰고 있어야 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일까요~??!!

깊이 생각해 봐야할것 같습니다.





7가지 면류관의 종류 (스데반집사 이름:헬라어 스테파노스 면류관 뜻)이다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왕관,화관. 스테파노스는 스테포(στεφω: 둘러싸다) )유래 했다.

스테파노스는 운동 경기들에서 승리한 사람이 쓰는 월계관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었으며,
'승리,축제,예배,공무나 명예,왕권이나 왕의 방문'을 의미한 용어로 사용되었다.
스테파노스,즉 면류관은 '기쁨,슬픔,탁월'을 표현하며,밀폐된 면류관은 마술에 사용되기도 했다.


1.썩지 않는 면류관: 절제하며 살아가는 존절한 성도에게 주시려고 기다리신다.

ἄφθαρτος 아프달토스:멸망하지 않는,부패하지 않는,불멸의,죽지 않는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ἄφθαρτος 아프달토스:멸망하지 않는, 부패하지 않는, 불멸의, 죽지 않는

부정접두사 α와 프데이로(φθειρω)유래-부패하지 않는,불멸의, 죽지 않는,망하지 않는'을 의미


경주에서 이기는 자)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절제하며 집중하며 복음을 전한 성도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영원하지 않다.
  
요일 2:17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명에도 권력도 부요함도 다 지나간다.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마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꽃들이 한 계절이 가기 전에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세상 것들은 시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고전9: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 의의 면류관 :사명 완수와 주님 나타나기를 기다림 속에 살기를 기다리 신다.

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쉬네:의로움,의/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디카이오스(δικαιος의로운)유래,의로운 사람의 덕, 자질, 상태를 나타낸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지킨 성도가 받는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도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
사도바울은 딤후 4:8에서 그는 자신이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만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될 사람들이 더 있음을 가르쳐주는데 같은 절
하반 절에서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생명의 면류관 : 시험을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기를 기다리 신다.

ζωη 조에:생명/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 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생명의 면류관은 두 종류의 사람이 받습니다.


첫째, 시험을 참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많은 사단의 시험이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시험에
들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어떤 유혹 중에도 인내하는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둘째,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을 위하여 감옥에 가도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위하여 죽는 일이 있어도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충성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길에서 환란을 만나도 끝까지 충성하는 충성된성도가 받는면류관이다
작은 일에 충성(마25:21), 맡은 일에 충성(고전4:2), 재물에 충성(눅6;11),
남의 것에 충성(눅6;12), 하나님의 집에 충성(히3:2), 그리고 죽도록 충성(계2:10)이다.

4.영광의 면류관 : 주의 몸 된 교회를 잘 돌아보고 이 면류관을 받기를 기다리 신다.

ἀμαράντινος 아마란티노스:시들지 않는/  δόξα 독사:광채,영광,영화,명성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σοι 소이:너에게/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시들지 아니하는(아마란토스 ἀμαράντος  시들지 않는)유래-아마란트  꽃으로 이루어진'을 의미한다. 

이 꽃은 시들거나 마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우는 꽃으로, 잡아 뜯었을 때 물로 축이면 되살아난다

영광의 면류관은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한 목사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삶을 산 목자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이 말씀은 목회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 당시 목회자들은 세상 영광을 다 버리고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었다.

이 말씀은 세상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가능한 말씀이라고 본다.

 

목회자도 목회를 하는데 자신의 야망과 명성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목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그 목사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직장생활 하는 사람도,
공부하는 학생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의 야망과 명성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은 없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 때문에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은 없다.
반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사람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묵묵히 일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벧전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금 면 류 관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를 기다리 신다.

χρυσεος 크뤼세오스:금으로 된,금의/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6.자랑의 면류관:많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이 면류관을 받는 성도를 기다리 신다.

καυχήσις 카우케시스:자랑하기/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  

σοι 소이:너에게/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7.기쁨의 면류관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한 후 이 면류관을 받기를 기다리 신다.

χαρά 카라:기쁨,즐거움/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카우카오마이: καυχαομαι 자랑하다 에서 유래했으며,자랑하기, 자랑거리'를 의미한다.

기쁨의 면류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 영혼구령의 열매를 맺었을 때 받는면류관이다.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내가 전도한 영혼, 내가 세운 영혼을 말한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사도바울은 빌4:1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말하고 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다.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해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세울 때보다 더 부흥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을 통해서 구원 얻은 성도들이었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기뻐할 것이다.

면류관의 종류10가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면류관의 종류가 성경에는 약 9종류가 있다.

 

1. 의의 면류관 (딤후 4:8)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심.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2. 승리의 면류관 (계 3:10~11)신앙생활의 승리자들(이기는 자들)
계 3:10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 생명의 면류관 (약 1:12, 계 2:10)시험을 참는 자들,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4. 인자와 긍휼의 면류관 (시103:4)구속받은 자들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기쁨의 면류관 (빌4:1)전도한 자들 (열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6. 썪지 않을 면류관 (고전9:25)모든 일에 절제한 자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7. 자랑의 면류관 (빌4:1)전도한 자들 (열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8. 영광의 면류관 (밷전5:4)시들지 않는 면류관 (고난 받되 끝까지 견딜 자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9. 금 면류관 (계4:4)금은 왕권을 상징 (하나님 영광 참여할 자)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누구든지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해 면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가게 되는 것이다.

 

아홉 개의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해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써야할 면류관이 하나 있다.
성경 속에 있는 열 번째 면류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쓰셨던 가시 면류관이다.

요한복음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The soldiers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put it on his head. They clothed him in a purple robe.

가시 면류관 [ἀκανθα 아칸다: 가시 /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왕관, 화관  

우리 죄 그리고 나의 죄때문에 대신 쓰신 가시 면류관이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고 면류관을 쓸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내 주장대로 내 맘대로 살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규칙대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도,
즐거운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이기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면류관을 들고 서서 우리의 모든 환란 고통을 견딜수 있도록 도우시고 지원하시며
응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승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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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자료









큰 성 바벨론이여(요한계시록 17, 18, 19장)



성경에 등장하는 3개의 바벨론
-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성경에서 바벨론이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곳 : 창세기, 다니엘, 요한계시록


창세기에서의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자신들의 방법대로, 바벨론의 가르침대로 구원을 받고자 하였다.

다니엘서에서는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은 바벨론의 영원한 지배와 느부갓네살의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바꾸어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살펴볼 때 성경에서 "바벨론"이라는 것은 한 나라이기도 하고, 한 도성이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교만, 거짓, 오류"가 섞인 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벨론"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게 "이 바벨론에서 나올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바벨론" 그것은 어떤 거짓이 섞여있는 것일까요?
또한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아야 우린, 성경 말씀의 경고를 받아들여 "바벨론"에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참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바벨론의 결말과 정체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어 요한계시록 17장의 성경 말씀으로 바벨론의 정체와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요한계시록 17:1~4

요한계시록 17장에 등장하는 '일곱 대접'은 '일곱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바벨론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곱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그 바벨론에서 나와 그 재앙을 이 음녀와 함께 받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음녀의 모습을 보면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각종 금과 보석 진주"로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금잔을 가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금잔 안에는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성경에는 음녀가 들고 있는 그 금잔 안에는 음행의 포도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행의 포도주로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함께 음행하게 만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음행의 포도주로 취하게 하여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기록된 대로 이 큰 음녀는 그의 기만적인(잘못된) 가르침으로 세상 나라와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제대로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큰 음녀와 그의 기만적인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 17:5)

​여자의 이마에는 "큰 바벨론"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음녀는 곧 바벨론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순결한 처녀를 하나님의 참된 백성, 순수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상징하였던 것처럼 음행하는 여자는 그 반대로 타락한 교회, 거짓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참고 / 성경 말씀
에스겔 23:2~21 절 - 하나님의 백성, 북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두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호세아 2장 2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나의 아내'라고 표현한 구절

또, 호세아 3:1절에서 이스라엘을 '여인'이라고 표현한 구절을 참고하시면

성경 말씀에서 "여인"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또는 교회, 진리를 가진 교회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행의 포도주로 표현된 이 음녀의 가르침!

창세기와 다니엘에서의 바벨론의 특징을 기억하신다면,

바벨탑과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모두 "진리와 거짓을 섞어"사람들을 가르쳤다는

공통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럼 이 음녀(거짓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1807년도에 영국에서 태어나 개혁 장로교회 목사가 되어 크게 부흥을 일으킨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 목사가 쓴 두 바벨론(Two Babylon)이라는 책은 현재 로마 교회인 천주교회가 옛날 바벨론 제국의 이교 신앙을 전수하여 내려온

제2의 바벨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종교의 시작은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근세기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집단 가운데 하나인 카톨릭의 역사는 바로 이 바벨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순수한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들 가운데 있는 여러 교리와 모든 의식과 형태들은 바벨론에서 유래된 것임을 증명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 경배 사상은 이미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 어머니와 아기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며,

각종 명절과 절기들(크리스마스, 부활절), 각종 교리와 계율, 의식과 의례들도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바벨론으로부터 파생된 각국의 우상숭배 사상으로부터 들여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만의 독특한 성직 계급에 있어서도 이방 사제제도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카톨릭은 단순한 종교집단이 아닌 바벨론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모아놓은 집단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가르쳐지고 있는 바벨론의 가르침

(우리를 영적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

그럼, 바벨론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니므롯 시대 때부터 있던 가르침들입니다.

세미라미스의 거짓말-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는 니므롯보다 더욱 악한 여자였습니다.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서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죽은 다음에 남편의 영혼이 태양 속으로 들어가서 태양신이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영혼불멸 사상의 시작)

그때부터 태양신을 섬기는 바벨론의 바알신의 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니므롯이 죽은 상태에서 세미라미스가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미라미스는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태어난 사내아이는 니므롯이 자신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 환생한 존재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니므롯을 신으로 받들었던 백성은 니므롯의 환생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 세미라미스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미라미스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담무스라고 부르는데 담무스는 니므롯이 환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신으로 불렸습니다. 담무스가 환생한 니므롯이기 때문에 세미라미스는 자기 아들인 담무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신과 어머니 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 신과 아들 신에 대한 이야기는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부활절의 시작 - 담무스를 애곡하는 일..

그런데 담무스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죽게 됩니다. 세미라미스는 슬퍼한 나머지 전설을 만들었는데 아들 담무스의 영이 지하세계로 들어갔는데 담무스를 위해 애도하며 슬피 울면 매년 봄에 다시 부활해서 살아난다고 가르쳤습니다.

담무스가 부활하여 세미라미스를 만나면 농작물과 초장을 푸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국가적 의식이 되었습니다. 매년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이후에 오는 첫 일요일을 담무스 신의 부활절날로 지켰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 몰래 스며들어오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변했습니다.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Easter는 예수님의 부활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담무스의 어머니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런 여신의 이름들 중 Eostre, Oster, Ishtar 등이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Easter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바벨론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카톨릭 교회!

거짓과 오류인 이교의 교리를 혼합하여 성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교리를 요한계시록은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라고 말합니다.

기원후 300년경에 로마는 정치적인 통합 수단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이교도들과 그리스도교들의 화합을 꾀하고 정치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교의 교리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들로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일요일 예배, 영원지옥설, 영혼불멸설,부활절, 크리스마스 등등

잘못된 가르침과 문화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복음의 진리가

잘못된 이교의 가르침으로 인해

인간의 행함으로 얻어야 하는 힘든 교리로 대체되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제물이나 제사를 통하여 달랠 수 있는

무섭고 두려운 이교 신의 이미지로 대체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중보자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두려운 신으로 잘못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은 아직도 개신교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요한계시록 17장의 천사의 말씀처럼 영적으로"음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에 나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우리는 이제 잘못된, 섞인,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순수하고 진리인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그 큰 음녀가 받을 재앙을 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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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바벨론이란 무엇인가?

 

 

 

 성경 요한 계시록에는 이 지구의 마지막 시대가 가까움을 알려주는 큰 징조의 하나인 “바벨론”행보에 대한 예언이 나와 있다.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구의 마지막 역사에서 바벨론이 취할 행보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과 바벨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시대인가?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구 역사를 마치시는 하나님의 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남은 백성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번 호 신앙기사를 함께 연구하여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 생애의 빛 편집실 -

 

 성경에는 이 세상 역사 마지막 시점에 나타날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과 그 백성들이 행할 사업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 그 예언은 요한 계시록 18장 1절~5절에 있는데, 그 예언을 보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할 사명은 바벨론의 정체와 그 음모를 밝혀 내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오라고 불러 모으는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바벨론이란 무엇이며, 그 음모는 무엇인가? 함께 연구하여 보자.


 요한계시록 18:1-5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1. 다른 천사는 누구인가?

 이 성경 구절에는“다른 천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다른 천사”라는 표현을 보면 그 전 장들(chapters)에서 기별을 전하고 경고하는 천사들이 계속 나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랍어로 “천사(angel)”는 “angelon”으로서 “기별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천사는 진짜 하늘의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한테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하고, 경고하며 외치는, 기별을 가진 사람들의 상징이다. 요한 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그러므로 이 천사들은 기별자들, 곧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진리와 성경말씀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성령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상징한다.

 

2.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리고 이 천사는 큰 권세를 가졌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말의 뜻, “큰 권세를 가졌”다는 뜻은, 이 천사가 아주 놀라운 일을 성취한다는 의미인데, 천사가 내려와서 하는 일의 엄청난 힘(power)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천사)이 하는 일은 아주 흥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불러 모으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진리)과 진리를 따라 살고자 원하는 사람은 그 권세에 다 굴복하고 순종해서 따르게 된다는 뜻으로 “큰 권세를 가졌”다고 표현되었다.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1.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졌다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 임하여 멸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이란 말은 영적인 것으로 상징된 이야기이다. 이것은 영적인 바벨론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국가 큰 성 바벨론은 이미 옛날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구약에 등장하는 고대의 국가의 이름이다. 특별히 다니엘서에는 이스라엘 청년이었던 다니엘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활약하는 이야기와 바벨론 나라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2. 영적인 바벨론

 A. 성경에는 바벨이란 말이 처음 쓰여진 곳: 성경 창세기 10장과 11장에는 처음으로 “바벨”과 “바벨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은 “니므롯”이란 장수였다. 노아 홍수 후 사람들은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않으리라는 무지개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주권에 도전하는 뜻으로 니므롯의 명령을 따라 바벨탑을 쌓았다. 인간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지도권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바벨론”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한다는 뜻을 가진 말과 근원적으로 동의어이다.

 

 B. 또한 히브리 어에서“바벨”이란 단어는“혼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600년 전에 존재하던 바벨론이라는 도시는 배교와 혼잡 같은 많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적인 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였고, 여러국가를 통일하고 다스리던 바벨론에는 여러가지 종교가 혼합된 형태의 거짓 종교들이 성행했다. 그 옛날부터 “바벨론”은 모든 거짓종교의 어미가 되었으며, 그들의 종교는 그들이 행하는 어떤“행위”에 따라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만들어 놓았고(그리하여 이방신의 분노를 달래려고 제사를 드림), 거룩하지 못한 것과 혼잡과 권력의 집중이 다스리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바벨론”은 혼돈과 혼잡으로 연상할 수 있다.

 

 C. 또한 여기서 나오는 바벨론이 영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이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바로 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 계시록 18장에“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계시록 19장에는 재림의 광경이 나옴) 그것은 옛날 고대 바벨론 국가가 아니고 영적인 바벨론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D. 그러면 이 바벨론은 누구,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옛날에 바벨론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들어갔을 때,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거룩한 기명들, 곧 은 금 기명들과 촛대 등을 다 가지고 바벨론으로 돌아와, 그 거룩한 기명들을 그들의 태양의 신전인 마르둑 신전에 가져다가 놓았다. 그리고 유대인 가운데서 귀중한 사람들과 다니엘과 그 세 친구 같은 사람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잡아 갔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 때에 이 바벨론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리어는지는데,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 곧 하나님의 교회(백성)가 바벨론에 잡혀가 이방 신을 섬기는 잘못된 오류에 매여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진리가 아닌, 오류를 가지고 있는 가짜 신의 신전, 국가에 교회가 잡혀 가있다는 뜻이며, 그런 곳에 끌려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쓰는 기구들이 다 거기에 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또한 거기에 있다. 즉, 오류와 진리가 뒤섞여서 있는 타락한 마지막 시대 교회의 참상을 가리켜서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3)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앞서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친 이유는 바벨론이 귀신과 악령의 처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이 뜻은 무엇인가? 요즈음 교회의 현실을 보면,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기적과 이적과 치유와 방언의 은사 등이 넘쳐 난다. 하지만, 진정한 성령의 역사 -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으로 변화시키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기 위하여 준비하도록 하는) - 는 교회 안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대신 생애의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구원받았다고 말하며, 방언이나 기적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나 성품이나 생애는 마귀를 닮은 교인들이 교회에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만일 잘못된 진리와 복음,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믿으면 그속에 마귀가 틈타기 때문에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영의 역사가 교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를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것은 깨끗하고 순결하게 하는 영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은 우리를 성결케 한다”고 말한다. 곧, 영어로는 “The spirit of holiness and purity”, 순결함과 거룩게 하시는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안에 예수를 믿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매일 싸우고, 속이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과시하고, 권력다툼이나 한다면 그런 곳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이겠는가?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게 만든다. 또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세상과 분리되게 만든다. 이것이 성령이며, 이런 것이 성령의 거룩한 역사이다. 이런 거룩한 역사가 없는 교회에는 무슨 영이 있을까?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더러운 영이 모였다고 표현하였으며, 그런것이 바로 오늘날의 타락한 교회이다(타락한 교회에 대하여는 제 2부에 더 자세히 언급할 것임). 또한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는 표현은 무엇일까? 가증한 새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가증한 새가 있는데, 그것은 매, 독수리와 까마귀 같은 것들로서, 죽은 시체를 뜯어 먹는 새들이다.

 

 만일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싸움을 하고 파가 갈라지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남을 모함하고 난리를 피우면, 그것이 바로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된다. 진리 때문에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진리는 오류와 싸워야한다. 옛날에 예수님도 진리를 위해 싸우셨다. 그러나 그것 말고 사람들끼리 험담하고, 욕하고, 자랑하고, 인간적인 소욕 때문에 싸우는 것은 가증한 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4)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이것은 잘못된 타락한 교회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 때문에 세상이 취하고, 만국이 취한 것을 말한다. (제 3부에서 취하게 하는 포도주에서 음행의 포도주에 대하여 자세히 다룰 것임)



2부: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의 정체와 음녀는 무엇인가?

 

 

 바벨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계시록 17장에 나온다. 여기서 바벨론은 이마에“큰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기록된“음녀”로 표상되어 나오는데, 과연 음녀로 표상된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인지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한다.


 1). 바벨론과 음녀는 누구인가?

1. 음녀의 모습

 요한계시록 17:1~4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먼저, 1절에서 일곱 대접은 일곱 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재앙이 내릴 것이다. 누구 한데 일곱 재앙이 올 것인가? 그것은 바로 바벨론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곱 재앙들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다. 계시록 17장 1절 하단에 큰 음녀가 나온다. 그리고 이 음녀가 하는 일에 대하여도 나온다. 과연 이것이 영적으로 무슨 뜻인가?

 

 성경의 표현을 보면, 이 음녀의 모습은 참 화려하다. 이 음녀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금잔 속에는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리고 음녀는 이것으로 사람들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든다. 음행의 포도주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셨을 때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은 물동이에 가득 들은 물을 포도즙으로 만드셨다. 여기서 물이 포도즙이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포도즙이 상하면 포도주가 된다. 포도즙은 우리가 마시면 시원하고 생명력을 주지만, 포도주는 우리를 취하게 하고, 앞을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지게 한다. 교회에서 생명의 포도즙이신 예수님을 주어야 할 텐데, 상한 포도즙을 주어 사람을 비틀거리게 하고,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거짓 오류가 섞인)를 주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타락한 교회를 일컬어서 성경은 바벨론 이라 한다.

 

2. 음녀는 누구인가?

 음녀의 정체를 더 알아보기 위하여 5절과 6절을 읽어보자.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위의 성경절을 보면, 음녀의 이마에는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이 음녀의 이름은 바로“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음녀와 바벨론은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음녀”란 여자를 가리키는데, 음녀란 음부, 곧 품행이 방정하지 않은, 정조가 없이 타락한 여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계시록에는 교회를 여자로 표현한고 있다. 순결한 처녀는 하나님의 정결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타락한 교회는 음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녀는 누구란 말인가?

 

 위의 성경구절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음녀를 설명하는 많은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음녀는 큰 바벨론, 즉 모든 혼잡 - 많은 거짓 오류 - 의 집합체인 타락한 교회일 뿐 아니라, 음녀의 어미이므로, 타락한 교회들의 우두머리인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그녀에게 딸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의 성경절(5절)을 통해 우리는 바벨론의 시초가 된 어미가 있고 바벨론을 따라가는 딸들이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주체세력이 있고 따라가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또 6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 한 여자, 음녀가 있는데,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있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 의미 그대로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흘리고 핍박한, 타락한 교회라는 것이다. 이 사실로 보아 음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주의 말씀을 똑바로 믿고, 성경진리대로 믿는 사람들을 많이 잡아다가 죽이고, 순교자를 수천만 명을 낸 교회가 있었다. 이 여자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게 되었고, 이를 따르는 교회들은 타락한 교회, 곧 바벨론 교회가 되었다.

 

 예수님의 증인들과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그 피에 취한 교회세력은 6000년 인류역사상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데, 그 세력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법왕권, 곧 교황권이다. 이렇게 밖에는 이 성경구절을 도무지 해석할 길이 없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을 처음 듣는다면 좀 이상하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음녀의 특징들은 항상 천주교회에 들어맞는다. 물론 천주교에는 많은 신실하고 좋은 교인들이 있고 그들 모두를 음녀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음녀나 바벨론이란 지칭은 그 조직과 그 조직이 세운 여러가지의 교리를 말하는 것이지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고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고의 배경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는 바이며, 이 조직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은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들과 맞지않음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음녀”의 징조와 신분이 이 권력과 꼭 들어맞는 것 또한 그 이유가 된다.

 

 음녀가 교황권이라는 것에 대한 더 자세한 증명을 해보자면, 5절 하단을 보면 된다.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천주교는 자신 스스로를 어머니 교회라고 부른다. 추기경(지금은 교황이 된) 렛싱거는 전 세계 감독들에게 보내는 교서에 쓰기를; “한가지 분명하게 해야할 사실은 단 하나의 거룩한 교회인 천주교는 다른 사도 교회들과 자매가 아니다. 천주교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9. 4. 2000). 이런 천주교회의 선포는 성경 계시록 17:5에 나오는 예언을 확인시키도록 공헌한다.

 

 2). 취하게 하는 포도주란 무엇인가?

계시록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A 성경은“음녀”와 “큰 성 바벨론”이 자신의 성경적이지 않은 교리로 온 세상을 취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교의 교리와 혼합되고, 거짓 오류가 뒤섞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교리를 성경은“취하게 하는 포도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 후 300년경에 로마는 정치적인 통합 수단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이교도와 그리스도인들의 화합을 꾀하고 정치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이유로 인해 많은 이교의 교리들이 그리스도교에 도입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복음의 진리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힘든 교리로 대체되었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제물이나 제사를 통하여나 달랠 수 있는 두렵고 무서운 이교의 신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인간 중보자인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두렵기만 한 신으로... 천주교는 성경에 없는 많은 교리들을 그리스도 교회 안에 소개했는데, 그 교리들은 아직도 개신교 안에, 그리고 기독교인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B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시록 17:2. 성경에서 “음행”을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에스겔 23장27~30절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겔 23:30)는 구절을 보아 영적으로 음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놓고서 거짓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해 취하게 만든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왕들과 백성들이 음행을 했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진리를 주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성경절들을 연구해 보자.

 

 * 렘 13: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하나님의 교회가 작은 산 위에서 음행을 했다. 옛날의 유대 지방에 가면 작은 산이 있는데, 거기에서 산당을 세워 놓고 우상 숭배를 했었다.


 * 미가 1:7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잠깐 여기서 요즈음 현대 기독교인들의 우상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요즈음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 자녀, 재물, 명예, 쾌락, 자존심 등등 - 은 무엇이든지, 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애정을 빼앗아 가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영적인 현대의 우상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이 참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고 제 갈 길을 모른 채 비틀거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리와 복음이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음행의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C 옛날 바벨론 왕이 귀인과 찬치를 베풀었었다. 그 때,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하여 온, 하나님 앞에 쓰이던 거룩한 금은 기명을 가지고 와서 술을 부어서 마시게 했다. 금의 기명은 성전에서 쓰는 것인데 그 안에 포도주,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들어 있었다. 이 말은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러나 가르침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거짓 복음, 오류가 섞인 교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형편을 가리켜서 바벨론이라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귀가 믿는 사람을 다 순교시켰는데, 그것이 잘 되질 않아 요즘에는 사람들을 잘못된 교리를 믿게 하여 멸망 받게 만들고 있다.

 

 * 렘 51: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옛날에 바벨론에서 가르치는 태양숭배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것을 받아들여 전부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방신전을 짓게 되었다. 다 취하게 되었다. 이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잘못된 오류를 믿는 것은 음행을 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 이사야 28:7,8,13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7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8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13절)

 

 그러므로 포도주에 취하지 않으려면, 위의 13절 말씀처럼, 성경 한 곳만 살피지 말고 전체 성경을 살펴보고, 여기서 얻고 저기서 얻고, 성경 전체에서 문맥을 보고 거기서 진리를 발견하라 라는 말이다.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4부: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요한 계시록 17장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가 성경 예언상 어느 시점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계시록 17장과 계시록 13장을 연결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1)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계 17:1~3).

계시록 17장 3절을 보면, 여자, 곧 음녀가 무엇을 타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음녀가 과연 무엇을 타고 있는가? 이 여자는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타고 있는 짐승의 몸에는 참람된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뿔이 있다.

 

 1. 여자(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 상징의 의미

 왜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는가? 만일 독자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성경예언을 공부한 독자라면, 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으므로 “짐승을 타고 있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짐승은 국가, 왕, 또는 세력을 상징한다. 또한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상징한다.

 

짐승 = 국가, 왕, 세력 음녀 = 타락한 교회

 

 그래서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다라는 의미는, 타락한 종교(교회)가 왕이나 국가의 세력과 연합했다라는 뜻이다. 즉, 타락한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타락한 교회가 국가의 힘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여자(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 상징의 의미

 계시록 17장 1절에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의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성경은 영적 바벨론을 상징할 때 많은 물위에 앉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계시록 17:15절에 그 해석이 잘 나와 있다. “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물 = 백성, 무리, 열국, 방언들

 

 그러므로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상징은, 이 음녀, 곧, 타락한 교회인 큰 바벨론이 많은 백성들과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숫자가 많고 인기가 있는 교회이다. 그것이 바벨론, 곧 음녀이다.

 

 3. 짐승의 몸에 있는 참람된 이름들은 무엇인가?

 계시록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참람된”이란 뜻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참람되다”라고 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일이다. 또한 자신이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일이 된다. 만일, 이 지상의 어떤 교회나 인간이 죄인들의 죄를 용서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란된 것이다. 즉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참란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로마 천주교회의 교황의 공식 명칭이 Vicarius Filii Dei 인데, 그 명칭의 뜻인즉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뜻으로서 이 지구상 교회에 군림하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라는 뜻이다. 교황은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정체는?

 계시록 17장 7절에 나오는 짐승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것은 우리가 과연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 가리켜주는 중요한 예언이다.

 

 계시록 17장 7,8절 “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계시록 17:9~13“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이 짐승은 일곱 머리를 가졌는데,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무저갱으로부터 또 다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되어 있으며, 이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인데, 죽었다가 또 다시 부활해서 올라왔다가 또 죽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는 곧 교황권이다. 생명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교황권에 절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짐승의 표의 환란에 대한 표현이다.


 계시록 17:10,11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기서 다섯 왕이란,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그리고 교황 로마를 말하는 것인데, 성령이 계시 가운데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가서, 음녀의 정체을 밝혀 주던 시점이 바로 이 다섯왕들이 망하고 없어진 그 시점부터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점의 상태로 데려가서 마지막 시대에 전개될 바벨론의 세력의 흥망 성쇄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면 더 자세한 힌트를 얻게 되는데, 요한이 광야로 데려감을 받았을 때에(중세기 핍박의 시기를 의미함)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다고 하였음으로 중세기의 교황권의 핍박의 시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데려 감을 당했다는 뜻이 된다.


 계 17:5-7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그러므로 교황권의 중세기 핍박의 기간이 끝나가는 무렵에 서서 요한은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은 망하였고, 다시 말해서, 바벨론과 페르샤, 헬라, 로마, 교황로마 등의 다섯 세력은 이미 망하였고 하나는(여섯째 왕) 지금있고 또 하나는(일곱째 왕) 아직 나라를 얻지 못했는데, 얻게 되면 그 세력을 잠간동안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다섯 왕이 지나간 이후에 현재 여섯째 왕의 시기를 바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섯번째 왕은 누구일까? 로마 교황권이 1260년 동안 핍박을 하다가 그가 죽었을 당시에 이 지구상에 1798년도를 전후로 해서 그쯤에 올라왔던 나라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 세력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3 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복합적인 짐승으로 교황권이 등장하는데 이 교황권이 죽게되는 상처를 받게 될 때에(1798년도에 불란서의 세력에 의하여 교황권이 몰락하는 시점) 다른 한 세력이 바다가 아닌 땅으로부터 올라 온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교황권이 바로 다섯번째의 왕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올라오는 이 새끼 양 같은 세력이야 말로 그 다음을 잇는 여섯번째 왕의 세력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성경에서 새끼 양은 누구를 상징하는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가지고 올라온 세력이다. 즉 유럽의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온 청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세력은 바로 미국일 수 밖에 없다. 땅에서 올라 왔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상징된 바다가 아닌 인적이 드문 황야 같은 땅을 발견하여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힌트인 것이다.

왜 두 뿔이 있다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의 뿔인 독재주의가 아니고 종교와 국가가 분리 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 즉 종교와 국가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국가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미국이 기독교의 정신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지마는, 결국에는 천주교 국가처럼 되어 버리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양처럼 올라왔지만 용처럼 말하게 된다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마지막 때에 성도들을 죽이려고 따라온 사단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먼저 나온 짐승인 교황권과 협력하여 마지막 성도들을 핍박하는 법을 만들게 되는 세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다.

 

 계시록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교황권은 1798년도에 죽게되는 상처를 받았지만 예언을 따라 곧 낫게 되었다. 바로 이 교황권의 세력에게 온 세상이 경배하도록 촉구하며 짐승의 우상을 세워주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러므로 6째 왕은 미국이다.

 

 그렇다면 일곱째 왕은 누구인가? 7째 왕은 세계연합을 말한다. 이 일곱째 왕과 열뿔 세력에 대한 표현이 똑같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계 17:10,12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일곱째 왕이 이르면 잠깐동안 그 세력을 유지 할 것이요, 열뿔도 일시 동안만 세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곱째 왕의 세력과 열뿔의 세력은 같은 세력임을 알려 주는 언어들이다. 미국의 세력이 결국은 세계 연합인 유엔의 힘을 북돋아서 온 세계가, 로마 나라가 열뿔로 갈라졌었던 것처럼 (그러나 로마 나라 당시의 분열은 아닌 것이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하기 때문에 미래에 이르러 오는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각 나라로 갈라져 있던 국가들이 “유엔”이라는 이름 하에 다시 연합하여 한 세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곱번째 왕이요, 이 연합 세력은 교황, 즉 다시 부활하여 올라오는 여덟번째 왕인 교황권에게 과거 중세기 때와 같은 세력과 권세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여덟번째 왕은 지나간 일곱 왕들 가운데 하나였었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올라오는 세력이라고 예언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세력은 마지막 시대에 그 힘이 다시 부활된 교황권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왕인 세계연합은 교황권을 지지하고 있다.

 

 계 17: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나 교황권은 나중에 또 망하게 될 것이다.

 

 계 17:16,17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일곱째 왕들 즉 세계연합이 결국에가서는 지금까지 교황권에게 속임을 당해 왔다는 사실과 오류들에 농락당하여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분노하여 교황권의 기만을 벗기고 태워 죽여 버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 예언을 설명하고 있다.

 

 계시록 17장 끝절인 18절은“또 내가 본바 여자는 땅에 임금들을 다스리는 성(도시)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바티칸은 한 작은 성(도시)으로서 세계의 왕들과 나라들을 다스려 온 세력인 것을 알 수 가 있다. 그러므로 로마 교황이야 말로 계시록 17장이 예언하여 주고 있는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바벨론 - 음녀의 어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는가?

 

 계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지금 우리는, 미국이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였고 세계 연합이 교황과 연합하여 잠깐 동안 그들의 권세를 누리기 시작하려고 하는 즈음에 와 있다. 지금 우리는 여섯째 왕인 미국의 세력을 지나 7째 왕인 세계 연합의 세력이 도래 하려고 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하나님의 남은 교회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죽이려 하는 사단의 최후의 분노의 시대가 이르러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짐승의 표의 환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성도들과 싸우는 것 보다는 그들의 주님이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싸우는 것이 될 것이다.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다니엘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지금은 세상의 인기있는 종교를 따라 갈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대로 살아야 할 시기이다. 지금은 정말 죄와 세속에서 벗어나 정결케 함을 입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택함을 받고 진실하게 끝까지 주님을 따라 사는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지금 이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넓은 길을 따라 쉽게 살아 가려고 방종할 때가 아니요, 참된 진리대로, 주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대로 따라 살아야 할 때이다.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5부:남은 백성이 되는 길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7장에 바벨론에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신 후,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 심판과 재앙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길을 제시하시며 호소하고 계시는 것을 위의 성경구절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초청은 다름이 아니고, “거기(바벨론)”서 나오라는 초청이다. 그(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사랑의 호소이다.

 

1) 구약시대의 바벨론

 예레미야 51:5~9
5절“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 
6절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예레미야 51장에 나와있는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은 그대로 빌려서 계시록 17장과 18장에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라고 하고 있다. 계시록에 나와있는 예언은 구약에 나와 있는 말을 전부 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계시록에 있는 영적인 상징을 이해하게 된다. 옛날에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이 영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7절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위의 성경절을 읽어보면, 구약에도 바벨론은 포도주로 열방을 취하게 한다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으로도 이 바벨론 때문에 세상이 취한다. 바벨론 때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교의 잘못된 가르침과 오류가 세상에 퍼졌다.

 

 렘 51:10-13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화살을 갈며 방패를 굳게 잡으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로다.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람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

 

 위의 성경절에서 이 바벨론에 대해 설명하기를,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라고 했는데, 계시록 17장도 “많은 물위에 앉아 있는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위에 앉아 있는 여인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옛날에 바벨론 성이 아름다웠다. 그 밑에 유브라데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예언으로 볼 때 마지막 시대의 여섯째 재앙을 보면 “유브라데스 강이 마르매 동방으로 부터는 왕들이 오는 길을 예비하더라”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그대로 옛날 역사를 가져다 상징적으로, 영적으로 전세계적으로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1000명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일곱 금 촛대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는 귀한 그릇들을 가져다가 포도주를 부어 마시며 연회를 베풀고 취했을 때, 한 손이 나타나서 벽에 글을 썼다. 그 글에 의미는 “달아보니 부족하다”, “내가 네 나라를 페르시아에게 주리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에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을 마르게 하여 그 바벨론 성을 함락하였다. 이것이 성경에 “유브라데스 강이 마른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레스 왕, 곧 동방에서 온 이 왕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그 안에 포로 잡혀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서 성전을 지으라라고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냈다. 이것은 오늘 날의 바벨론 같은 교회들의 무리 가운데 사로 잡혀있는 주의 백성들을 주님께서 오셔서 해방 시킬 것을 상징한다.

 

2)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천사

 계시록 18장 1절에는 그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만드는 “천사’가 등장한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이 천사는 힘센 음성으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1부에서 공부했듯이 “천사”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진짜 천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와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 곧 “기별자”들이다. 이 천사는 바벨론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또 바벨론의 음모 - 모든 사람들을 “음행의 포도주”, 곧 “바벨론의 취하는 포도주”인 거짓복음으로 취하게 만들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하려는 음모 - 를 알아 내어, 그 비밀을 알리고 세상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원해내려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이 천사들은 마지막 때, 곧 이 세상과 바벨론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기 바로 전, 아직도 참된 복음을 모르고 바벨론에 묶여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들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외칠 증인들을 지금 찾고 계신 것이다.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고, 이 세상을 향하여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그 가운데서 나오라고 외칠, 하나님의 증인인 천사들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 남은 백성이 되는 조건

1.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기독교 안에는 거짓 복음이 침투하여 “십자가에서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칭의”만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값싼 복음이 활개를 치고 있다. 매일 우리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감화하시어 우리를 죄 짓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 또한 자아의 완전한 굴복과 거듭남, 그리고 새 생명으로 매일 부활하여 사는 “성화”의 생활을 강조하지 않는 반쪽의 복음은 위험한 것이며,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올바른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이끈다. 이 거짓 복음의 원조는 “바벨론”인 것을 우리는 앞에서 배워 알고 있다.

 

 성경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계 14:12)이다. 그런데,계명을 지키려면 예수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계명은 우리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 가지셨던 믿음, 곧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되어 사신 믿음을 가져야 지킬 수 있다.

 

 계명을 지킨다는 뜻은, 자아가 완전히 죽고 온전히 거듭난 상태를 매일 유지하는 성화의 생애를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매일 성령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며, 또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이 쓰여지는 새언약의 경험,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애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완전한 종교 개혁을 통해 회복된 “완전한 복음”을 알 필요가 있고, 그 완전한 복음을 알므로 그 온전한 진리로 성화되는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증인이 될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그리고 매 순간 우리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를 통해, 자신의 타락된 본성에 따르지 않고 죄를 이기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그리고 자기를 구원하시려고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므로 죄를 이기는 것이 생애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람들, 마음이 완전히 거듭난 사람들, 곧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2. 바벨론의 관습과 사상에서 나온 사람들이어야 한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칠 사람들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구속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구속이란 흑암의 학교, 이 세상에서 배운 세속적인 정신과 관습과 생활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하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먼저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것은 곧 사도 바울의 경험이 우리의 매일의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자신을 예수그리스도께 완전히 바친 사람들은 하루의 매 순간들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인데, 곧 그분의 마음으로 느끼고, 그분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성품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사랑스럽고 거룩한 성품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성품의 성숙과 장성에는 단계가 있지만 말이다. 예수님과 함께 24시간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입는것, 사는 환경, 생활 방식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인 유대관계를 가지며, 특히 자녀들을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즈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점점 하나님의 성품으로 꼴지워져 가고, 흑암의 권세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이 점점 더 악하게 꼴지워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하고 있는가? 시대의 징조를 바라보며 영적으로 깨어나, 세상을 버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바벨론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내릴 심판을 피하도록, 그리하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칠 수 있는 하나님의 용감한 군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되어 가고 있는가?

 

 머지 않아 온 세상을 환하게 할 큰 성령의 운동(계 18:1)이 있을 것인데, 모든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나아가 바벨론의 정체와 음모를 밝히며,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 그 죄에 참예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외칠 것이다. 그것을 큰 소리 외침, 늦은비 성령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그 일은 짐승의 표의 환란과 핍박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무장된 하나님의 증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 세상과 우주에 증거할 것이다.

 

 지금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모든 바벨론의 습관들을 버리고 개혁할 때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남은 백성이 되도록 하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그 사랑이 우리로 바벨론을 향하여 크게 외칠 하나님의 용감한 군사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그 외침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증인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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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종말론, 기독론, 교회론


요한계시록 - 종말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

종말론(終末論, ἔσχατος, eschatology)
인류의 역사에서 최종적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우주의 마지막에 대한 신학적 이론.


마태복음 24:14-15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서 24장에서는 예수가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통해 상세하게 나타나 있으며,
조직신학의 한 부분으로 개인의 죽음과 인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부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다시 재림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종말론의 중심이다.

구약에서 내세사상(來世思想)은 신약처럼 충분하게 계시되지 않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세레우코스가(家) 통치시대에 이르러 강압적인 헬레니즘화 정책으로 신전조차 그리스 사람들의 약탈 대상이 되는 등 역경에 처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르시아와 그리스로부터 온 사상의 영향으로 부활·천사·사탄 등의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면서 욥기 전도서 등에 보이는 회의사상(懷疑思想)과 페시미즘(비관주의, pessimism) 시편에 나오는 여러 탄식의 노래, 처세술을 가르친 잠언 등의 지혜문학(智慧文學)과 함께 종말사상(終末思想)이 등장하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불우한 처지에 놓이게 된 유태교도의 현실에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 내세사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현세에 대한 신의 최후의 심판이 내리고 유태의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 하느님이 지배하는 세계가 오리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메시아관(觀)은 실제에 있어 메시아 운동으로 나타나서 반(反) 그리스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다.
기원전 168년에 마카비가(家)의 반 그리스 전쟁이 일어나 기원전 141년에 독립을 이루고 하스몬 왕조가 성립되었으나 히르카누스(재위 BC 135 ~ BC 104)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체를 면치 못하고 기원전 63년 로마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메시아 운동은 종종 일어났으나 기원후 66년에 있었던 반란은 로마에 의하여 진압되고 이때에 예루살렘의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로 분산되었다.

종말론이 예언한 연도

2032년 종말론

  • 화성 충돌설 : 세차 운동의 의해 화성이 가까워 지면서 달과 충돌한다는 설

2060년경 종말론

  • 아이작 뉴턴의 예언을 해석해보면 종말의 해는 2060년

2100년 종말론

  • 해수면이 올라와서 지구가 물에 잠겨서 종말한다는 내용
역사적 전천년주의(Historical Pre Millenialism)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Dispensational Millenialism)
무천년주의(Amillenialism)
후천년주의(Post Millenialism)

천년왕국(Millenial Kingdom)을 어떻게 이해 하는가?

문자적으로 천년 왕국을 믿는 것 : 역사적 전 천년주의,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자들이 신봉한다.
- 문자적 해석
- 지상 재림 후 천년이 실재한다.

- 들림의 시기에 따라
환난 전 들림(휴거) 7년 환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공중 재림에 의한 것(Pre tribulation)
환난 중반 들림(휴거) 전 3년 반 끝나고(Mid tribulation)
환난 후 들림(휴거) 7년 환난 후(Post  tribulation)

상징적, 영적, 은유적으로 천년 왕국을 믿는 것 : 긴 시대 및 긴 기간 /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자들이 신봉한다.
- 영적, 은유적
- 초림 후 이미 천년 왕국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계속적으로 긴 세월이 된다.

- 7년 환난이 없다고 주장한다.
- 세상 끝날 때를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동시에 성취된다.
-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은 불못으로 던져진다(요한복음 5:29, 요한계시록  20:11-12)

요한복음 5:29


요한계시록  20:11-12
  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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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시(啓示)
아포칼룹시스(ἀποκάλυψις)
602.
ἀποκάλυψις, εως, ἡ

1. 드러냄,  2. 누가 2:32,  3. 갈라디아서 1:12
발음 /  아포칼룹시스(apŏkalüp- sis)
어원 / 60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빛, 비췸(눅 2:32), 계시(고전 14:6, 고후 12:7, 갈 1:12, 엡 3:3), 나타냄(롬 16:25, 벧전 4:13)
신약 성경 / 18회 사용

* 601. ἀποκαλύπτω

1. 드러내다,  2. 폭로하다,  3. ἀ. τινί τι: ~을 ~에게 계시하다
발음 / 아포칼룹토( apŏkalüptō)
어원 / 미래 ἀποκαλύψω,  제1부정과거 ἀ- πεκάλυψα,  제1부정과거 수동태 ἀπε- καλύφθην,
미래수동태 ἀποκαλυφ- θήσομαι, 575와 2572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드러나다(마 10:26, 눅 12:2), 나타내다(마 11:25, 고전 3:13, 갈 1:16), 나타나다(눅 17:30, 롬 1:17, 살후 2:6),
    드러내다(눅 2:35), 계시를 받다(눅 10:22), 알게 하다(마 16:17), 보이다 (고전 2:10), 계시되다(갈 3:23)
  • 신약 성경 /  26회 사용
  • 언제 봉하셨을까?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대략 2,500년 동안 다니엘서를 봉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열어 볼 길이 없었다.

    기원전 600년 경에 다니엘에게 계시하시기를 이 예언을 봉함하라고 하셨다.

    종교개혁의 주체자들이었던 칼빈, 루터가 요한계시록의 주석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봉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봉함한 것을 언제 열어야 하는가?
    마지막 때 까지 - 예수님의 재림의 때

    사도 요한을 통하여(AD 95년) 계시하신 것이다.

    언제 예정하셨는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신비 - 영세 전부터(로마서 16:25, 디도서 1:2)

    로마서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세상에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에베소서 1:4, 베드로전서 1:20)

    에베소서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베드로전서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기독론

    요한계시록 1:8


    요한계시록 2:1

    요한계시록 2:8



    요한계시록 21:9


    요한계시록 21:22-23

    요한계시록 21:6


    요한계시록 22:13


    요한계시록 22:20




    교회론

    요한계시록 22:16





    요한계시록 강해 자료(시작일 02-07-2024 / 수


    요한계시록 강해 #. 1

    요한계시록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문제 제기)
    이단 교회에서는 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립니다.
    그 좋은 예가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1일 자정에 예수님께 공중 재림을 한다고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진 후에 다시 어떻게 주장합니까?
    영적인 것으로 영적으로 주님은 공중 재림 하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 여파가 또다시 계시록을 사용하여 교회와 신앙을 흔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서신서)라고 합니다.
    밧모섬에서 환상으로 계시를 받은 계시록을 편지로 일곱 교회에 보낼 때 당시 교회와 성도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로마 정부의 가혹한 핍박과 탄압이 극에 달한 때에 구약을 인용하여 초대교회 성도들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습니다.
    요한일서와 이서 그리고 삼서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을 빛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

          샬롬(shâlôwm) שָׁלוֹם
          - 평화, 일치, 조화, 친교, 안전함, 온전함, 안전한, 온전한

        마라나타(Maranatha) מרנא תא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


    카타콤(catacomb) : 지하묘지, 동굴 




    *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다니엘 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하나님의 심판(11, 12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예시된다.

    인자 같은 이(케바르 에나쉬. כְּבַר אֱנָשׁ)(1247. 바르,  606 에나쉬
    - '벤 아담'()과 동일어인 이 말이 구약에서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에 쓰여진 용례는 이곳밖에는 없다.
    곧 본 구절의 '인자'는 '구름을 타고'(계 1:7)란 말과 결합해 메시야적 호칭으로 쓰여졌는 바,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 구절을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인정하신 바 있다(마 24:30; 26:64; 막 13:26).
    이에 따라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임하셨고 그의 재림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자는 전우주적 통치적(권세와 영광과 나라)을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탁은 그의 흠없음(사 53:9)과 속죄 사역(사 53:5, 6), 그리고 부활을 통한 인류의 심판자의 자격을 입증하셨던(행 17:31; 롬 2:16) 사실에 의거한 것이다.

    one like the son of
    1247. 바르(bar) בַּר 스트롱번호 1247

    1. 아들. 2. 손자
    발음 [ bar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4회 사용

    뜻풀이부

    1. 명사, 남성 아들, 잠 31:2, 시 2:12
    2. 명사, 남성 손자, 스 5:1.


    man
    606. 에나쉬( ’ĕnâsh) אֱנָשׁ 스트롱번호 606
    발음 [ ’ĕnâsh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5회 사용

    참고 정보 / 문법설명
    582와 동일, 강조형 אָנָשָׁא, 단 2:38, אֱנָשָׁא, 단 5:21, אֱנוֹשָׁא, 단 4:13, 복수, בְּנֵי אֱנָשָׁא, 단 4:14, 사람, 사람들, 단 4:29, 30.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 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 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스가랴 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ναί )는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אָמֵן )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Greijdanus, Morris, Mounce).

    אָמֵן 스트롱번호 543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뜻풀이부

    1. 형용사 확고한, 성실한[비유적으로 사용될 경우].
    2. 부사 참으로, 진실로.
    3. 부사 아멘, 렘 28:6, 시 41:14(13).


    * 그러하리라(나이)  ναί 스트롱번호 3483

    1. 예.   2. 옳습니다. 3. 맞습니다
    발음 [ nai ]

    * 아멘  ἀμήν 스트롱번호 281

    1. ‘굳건한’. 2. 고전 14:16. 3. 마 5:18
    발음 [ amēn ]
    어원 / 히브리어 543에서 유래

    * 히브리어 543. אָמֵן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재림(再臨) / 두 재, 임할 림


     1. 다시 옴
     2. 기독교(基督敎)에서 때가 이르면 다시 인간(人間)을 심판(審判)하러 예수(Jesus)가 이 세상(世上)에 나타난다고 하는 말.

    * 인터넷 한글 성경에서 "재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단 한 구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강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39구절로 나타났다.
      (구약에서는 23회, 신약에서는 16회)

    강림(降臨) / 내릴 강, 임할 림

     1. 신(神)이 하늘에서 속세(俗世)로 내려옴.

    "강림"이란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이고 "재림"은 두번째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이 두번째 다시 오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표현이나 또 목사님들의 설교에 강림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재림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의 초림과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입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도 강림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림이라 하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일로 이해하게 되며 또 그렇게 받아드립니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성경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란 말로 표현하였으며 이 같은 주님의 강림은 주님이 이 세상에 두번째 나타나시는 일, 즉 재림이 되시기 때문에 강림이란 이 낱말은 주님의 두번째 나타나시는 사건을 의미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라고 표현하나 "재림"이라고 표현하나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개역 성경에서 "강림"이라고 번역된 말은 모두 헬라어 "파루시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보통 "주의 강림"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파루시아"라는 말은 "출현, 임재, 나타남, 현존, 도래"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주의 강림이란 말은 "주님께서 나타나심(오심)"을 의미합니다.

    παρουσία, ας, ἡ 스트롱번호 3952

    1. 현존.  2. 오심.  3. 고후 7:6, 7
    발음 [ parŏusia ]
    어원  / 3918의 현재분사에서 유래

    뜻풀이부

    1. 현존, 임재, 고후 10:10.
    2. 오심, 강림, 내림.
      a. [인간에 대해서] 고후 7:6, 7, 빌 1:26.
      b. [특수한 전문 술어로서 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에 임하시는 일을 가리킴] 재림, 마 24:3, 살전 4:15, 약 5:7.
      c. [적그리스도의 출현] 살후 2:9.


    * 그러나 때로 다른 성경(표준새번역-고전 15:23, 벧후 1:16)성경에서 이 말은 "재림"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을 주님의 첫 번째 강림으로 보고, 마지막에 오시는 것을 주님의 두 번째 강림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의 강림과, 주의 재림은 그 의미가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같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새번역)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새번역)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권능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예수님의 재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바울의 종말론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면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입니다.

    ​교회시대 - 공중강림(휴거) - 7년 환난 - 지상재림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여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를 볼 때 공중재림은 공중강림이라 불러야 맞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를 읽어 보면 주의 강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강림과 재림은 구분되어 불러야 할 것입니다.
    대게 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재림이라는 단어 보다 강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데살로니가전서1:1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데살로니가전서2:19)"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3:13)"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4:1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5:23)"

    데살로니가전서는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5장까지 예수님의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입니다.

    강림과 재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강림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은 예수께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이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시어 믿는 자들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을 성도들에게는 휴거가 되은 것입니다.

    휴거는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중강림은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믿는 자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외에는 볼 수 없습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임하실 때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부, 성령, 성자를 우리는 삼위일체로 고백을 합니다.
    사도요한만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도 이런 내용으로 인사말을 합니다.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일하심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복음 때문에 인하여 흩어진 나그네들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소식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서는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차례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말을 다른 말로는 송영이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찬송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서신에서 이런 삼위일체의 내용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교회에는 은혜와 평강의 소식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일하심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자들은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 말씀을 믿게 된 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기쁨의 소식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핍박 중에 이런 인사는 은혜와 평강이 주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이 설렘이 됩니다.

    설렘이라고 하니 어떤 정리전문가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할 때에 설렘이 없는 물건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면 오늘 읽은 말씀으로도 충분히 감사가 되고 설렘이 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겁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고후 4:18).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났기에 위에 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골 3:1~5).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4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알파와 오메가와 전능한 자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란 처음과 끝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6과 22:13절에서도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란 이 역사 속에서만 있는 말입니다.
    영원에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에서 영원의 세계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입니다(시 90:2).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라는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유 1:25).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차 오실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입니까? 성령 하나님입니까? 성자 하나님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인사말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다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타락한 이후의 인간이라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만 모여도 의견의 일치가 안 됩니다.
    일치가 되는 경우는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때에 잠시 일치가 됩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 한 편을 들어버리면 한 때 같은 편이었던 자가 또 원수가 됩니다.
    이런 우리가 삼위일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신을 말합니다.
    그런 신을 크게 대별해 보면 내재론 적인 신과 초월적인 신이 있습니다.
    만유에 내재하는 신이라면 범신론이 됩니다.
    초월적이라고만 하면 세상과 관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만이 관계하시고 소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내재하시고 초월하십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은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안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 속에 ‘내주’하시며, 동시에 성령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밖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신다(송영의 삼위일체론 69P).”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따로 일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일하십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4절과 8절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그 하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그 분은 사람들에게 찔리신 그 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4절과 8절의 표현은 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손에 찔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은 지금 영광 중에 계십니다.

    우선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각인의 눈이 그를 찌른다는 말씀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계시록의 거의 모든 내용이 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내산에 오심도 강림이며 이 땅에 아기로 오심도 강림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보내신다는 성령님의 오심도 강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이 역사를 마감하시면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도 강림이지만 구별하기 위하여 재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에도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앞으로도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중에 이 환상을 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인가 같은 이가 하나님께 인도되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이 되고 재림으로 완성이 됩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만들어내는 나라가 아니라 그 아들의 피로 세우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피로 자기 백성을 해방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겁니다(계1:4~6).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도요한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도 핍박을 받고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습니다. 요한 자신도 지금 밧모섬에 유배 중에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내용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로 무엇을 승리하셨는지 밝히 보여주심으로 지금 환난과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으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는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를 가리는 모습으로 구름가운데 임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구름이 하늘에 있는 구름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4:15~18절입니다.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시는데 그곳은 구름이 가리고 있습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과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구름이 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견디지 못합니다(출19장).

    마태복음 17:1~8절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장면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장면과 겹쳐집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들어서 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한 말씀입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선지자 엘리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나타나실 때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경계를 정하라고 합니다. 경계를 뚫고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시내산의 강림을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셨다고 하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사도행전 1:8~11절입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정명석이라는 이단의 교주를 추종하는 어떤 사람이 그가 구름을 타고 온자라고 합니다. 성추행으로 감옥살이 하고 작년인가 나온 사람인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니 구름을 해석하기를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말을 합니다. 히브리서 12:1절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란 히브리서 11장에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단 교주 주변에 구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그가 재림의 주라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집단 모임을 보면 교주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중앙 집중화 합니다. 히틀러의 집회나 북한의 집회나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 이단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주님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보는 하늘의 구름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찾아보니 빽빽한 구름으로 불과 연기로 표현하며 빛나는 구름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그 영광의 나타남 속에서 각인이 그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장의 말씀처럼 재림 하실 것이지만 그 전에 성령의 강림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의 보증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갔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봅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다니엘서와 출애굽기와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분을 각인이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펴봐야 합니다.

    스가랴 12: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오늘 본문 7절과 스가랴 본문의 차이점을 보아야합니다. 스가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초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서 마음에 찔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찔리신 그 예수를 보고서 애통을 하는데 독자를 잃고 애통하듯이 애통한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묵시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입니다. 구약의 모든 믿는 자들은 십자가로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 곧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가 선포되었을 때에 그들은 애곡함이 마땅합니다(벧전3:19).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자는 로마 병사 한명입니다. 그런데 그 찌른 자들도 본다는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이 됩니다. 대제사장도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합니다(마26:64~68, 막14:62~65).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으려고 가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시에 누가 애곡을 하겠습니까? 그를 찌른 자들이란 땅에 있는 모든 족속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란 하늘에 속한 자들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말만 듣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신 분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듣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의 땅의 말이 들립니까? 하늘의 말이 들립니까?

    요한복음 3:31~36절입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십자가 지신 그 아들의 말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 자는 진노가 임하는데 이들이 바로 땅에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54절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그 주님께서 재림하셔 자기 백성을 하늘로 이끌어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입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2)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곧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만 오셨고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죽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들이 부활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또는 부활이 지나갔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심지어 고린도교회에서는 부활이 없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 안에서 자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주께 붙은 자들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휴거되어 항상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휴거되어 7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대 환난이 있고 그곳에서 순교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 환난이 끝난 후에 공중에 휴거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천년왕국이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해석을 합니다.
    시간과 공간도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질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가 자기 뜻을 다 이루시고 마감하실 때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이 불리고 주님의 재림의 순간은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성경의 기록이 본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수평적인 차례대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시간을 빼 버리면 수직으로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수평적 순서가 아니라 수직적으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일어난 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지고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은 이미 묵시적으로 그리스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 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순서상 먼저 나타나는 것이며 그 때에 땅에서 살아있는 예수 믿는 자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에 이끌려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자들 곧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그 찌른 자를 보고 애곡하는 겁니다.
    이때 애곡하는 자들은 믿지 않은 모든 자들이 애곡합니다.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를 거리끼고 어리석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 분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이 드러나기에 믿는 자들은 구름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가서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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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그럼 예수재림 두 번?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은 모든 믿는 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주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성경구절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구절이 아마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하)일 것이다.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전 16:22)란 용어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의미로 잘 알려졌다.

    문제는 일부 이단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분류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 일어난다는 말이다.
    어떤 이단측에서는 ‘공중재림과 지상강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재림과 강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재림 두 번’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헬라어까지 사용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지만 용어상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구분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렇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먼저 공중에 재림하여 7년을 머물게 된다고 한다.
    그 때의 공중의 장소를 대기권 시작점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이 그곳으로 끌어올려(흔히 ‘휴거’라고 말한다)가 예수님을 맞이한다고 한다.
    예수님과 함께 7년을 공중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때 지상에서는 소위 ‘7년 대환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인들은 지상에 남겨지게 된다.
    그들은 7년 대환란의 극심한 고통의 때를 참고 견디어야 한다.
    7년 후 예수님의 지상재림 때까지다.
    배도하면 끝장이다.

    지난 1992년 한국사회는 시한부종말설로 몸살을 앓았다.
    ‘92년 10월 28일 예수재림’설 때문이다.
    이 때 대부분의 시한부종말설의 기본 스토리(story)가 위와 같은 내용이다.
    당시 시한부종말론자들은 ‘미련하게 7년 대환란을 겪지 말고, 10월 28일 재림을 믿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과연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일까?
    소위 ‘이중재림’을 주장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이다.
    그 구절이 이중재림을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개역개정).




    위 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음을 가지고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짐을 당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NASB 성경도 크게 다르지 않게 기록해 놓았다.
    의역에 좀 더 많이 기울어진 공동번역이나 그 중간적인 번역 원칙을 가지고 있는 NIV도 비슷하다. 참고해 보면 아래와 같다.

    “For the Lord Himself will descend from heaven with a shout,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 Then we who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thus we shall always be with the Lord”(살전 4:16~17, NASB).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살전 4:16~17, 공동번역).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살전 4:16~17, NIV).

    문제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말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곳에서 7년 동안 머무른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만약 위 성경구절(특히 밑줄 친 부분)에 ‘공중 머무름’의 의미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그 다음 문장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하).

    영문 표현을 보면 ‘always’나 ‘forever’가 들어있다. 계속해서 또는 영원히 그 공중에서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공중에서 ‘항상’, ‘언제나’,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는 것은 다른 성경구절들의 내용과 상충된다.

    공중재림을 입증하려고 몇몇 성경구절을 더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1:11과 요 14:3이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개역성경).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위 두 구절이 공중재림, 특히 공중 머무름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을 언급하고 있는 사도행전 1:11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공중에서 7년 동안 머물다가 감을 본 것이라 해야 한다. 그래야 ‘본 그대로 오시시라’는 구절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14:3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마련할 처소가 공중에서 7년간 머무를 장소라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과연 위 두 구절을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가.

    살전 4:16~17은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즉 이중재림을 말해주는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이는 같은 성경인 살전 5:2의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이라는 내용과 어긋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골 3:4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예수님 재림 때 그의 자녀들이 ‘모두 함께’ 영광 안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구절과 연결을 지을 수 있다.

    이필찬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이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본문(살전 4:16-17)에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은 후 어느 일정 기간 동안 공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이필찬,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인의 삶 - <그 말씀> 2000년 8월호, 도서출판 두란노, p.87).



     

    다시 말해 예수님이 재림할 때 그의 자녀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은 맞지만, 그곳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영접한 후에 곧바로 이 땅으로 강림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도적과 같이 이른다’(살전 5:2)는 것과 ‘모두 함께 영접’(골 3:4)한다는 구절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F.F 부르스는 살전 4:16~17의 강조점을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4:17 하)에 두었다(F.F 부르스, 데살로니가전후서 - <WBC>, 솔로몬, 2000, 194).
    ‘공중’이라는 의미가 그 구절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다.
    ‘함께 있음’을 축복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이라 강조했다.
    즉, 이중재림이라는 없는 의미를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존 스토트도 ‘공중’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존 스토트,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 - BST 시리즈, IVP, 2007, p. 140).

    예수님의 재림은 이중적인 게 아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살전 4:16-17 역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 1:7과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모든 이들이 그 사건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뿐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중 소망의 표현이다.
    어느 것 하나도 이중재림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곱 영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4구절) 1:4, 3:1, 4:5, 5:6
    요한계시록 1: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이 말씀에 나온 ‘일곱 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 ‘성령’을 일곱 영이라고 지칭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성령이 하나가 아닌 일곱으로 표시될 수 있었을까?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성령이 일곱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경우를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사 11:2).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여호와의 영’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의 영(호크마)’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 요구되는 덕목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를 피하는 방면으로 이끄신다.

    둘째, ‘통찰의 영(삐나)’은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릇되고 악한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행하게 하신다. 

    셋째, ‘모략의 영(에차)’은 주로 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지혜를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해주는 참모 역할이다.

    넷째, ‘용기의 영(킵보르)’은 용맹한 장수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한다. 죄와 사명의 권세 아래 있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지식의 영(따아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선하시며 은혜로우신 뜻을 행하게 하신다. 예를 들면 의와 공평을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여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아르아)’은 자기를 세운 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의미한다. 이 정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려고 애쓴다. 

    일곱째, ‘여호와의 영’인 ‘루아흐’는 태초에 여호와께서 불어넣으신 호흡을 의미할 때 쓰였으나, 여기에서는 여호와께서 메시아로 하여금 구원사역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주시는 영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일곱 영’은 이사야에서 언급된 ‘일곱 측면의 영’을 살펴볼 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다방면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 안에서 완전한 능력과 섭리적 보호로 함께하신다.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경험할 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다. 그 가운데 성령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의도된 상징의 방식으로 한 분이신 성령을 일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의도된 상징적 형상이나 숫자를 사용해서 성삼위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의 속성과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성령을 상징했다(마 3:16).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실 때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때 ‘불의 혀’가 성령을 상징했다(행 2:3). 만약 그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120명이었다면 거기에는 120개 성령의 화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을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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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일곱 영이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요한계시록 1:4, 3:1, 4:5, 5:6에서 언급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독단적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4은 일곱 영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다고 언급합니다. 요한계시록 3:1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진”다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 4:5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켜진 일곱 개의 등불과 연결시킵니다. 요한계시록 5:6은 일곱 영을 어린 양의 “일곱 눈”과 동일시하고, 이들이 “온 땅에 보내심을 받[았다]”고 진술합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에는 최소 세 가지 가능한 해석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성령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성경, 특히 요한계시록은 완벽성과 완전함을 언급하는 데 숫자 7을 사용합니다. 만일 “일곱 영”의 “일곱”이 그와 같은 의미라면,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각기 다른 영들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성령의 완벽하심과 완전하심을 언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견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 일곱의 천사들, 스랍 (seraphim)이나 그룹 (cherubim) 등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수많은 천사들의 묘사와도 일치합니다 (요한계시록 4:6-9; 5:6-14; 19:4-5).

    세 번째 가능한 해석은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라고 말씀하는 이사야 11:2에 근거합니다.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일곱 영을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 지 - 총 - 지 -주 - 재 -모

    (1) 주님의 영,
    (2) 지혜의 영,
    (3) 총명의 영,
    (4) 모략의 영,
    (5) 재능의 영,
    (6) 지식의 영,
    (7) 주님을 경외하는 영

    성경은 일곱 영들이 구체적으로 누구 혹은 무엇인지 말씀하지 않지만, 첫번째 해석, 즉 일곱 영이 성령이라는 견해가 가장 타당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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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영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이라는 특별한 계념을 부여한다고 했죠? 그래서 전체 교회를, 굳이 일곱 교회라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동원해서, 묘사를 하는 것이라고, 우리를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체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에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고, 완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앞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성부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또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우리는 금방 보좌 앞에 일곱 영은, 성령(聖靈)이라는 것을 미루어 추측을 할 수가 있죠?

    그러니까 일단 일곱이라는 숫자는 덮어 두세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일곱 영이,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곱 영은, 어떤 메시지를 갖고 있기에, 그들이 은혜와 평강을 금방 떠올리게 되었는지, 성경에서 한 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계시록 5장 6절로 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합니다. ‘일곱 영은, 일곱 눈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일곱 눈은 구약에 어디에서 보셨죠? 스가랴서 4장 2절로 가겠습니다.

    (스가랴 4:2-10)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지금 스가랴가 환상을 보고 있는데, 일곱 촛대, 일곱 등잔이 있고, 그 옆에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감람나무에서, 금 기름이 계속 흘러 나와서, 그 촛대를 밝히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스가랴가 ‘이 환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묻습니다. 5절부터 보겠습니다.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며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스가랴가 ‘이 환상이 도대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보니까, 천사가, 그 장면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대답을 해 줍니다.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 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전에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시작이 미미하다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라는 뜻입니다. ‘일이 안 될 것 같으냐?’ 이런 뜻이죠?)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으로 보고 기뻐하리라

    10절에 보시면,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다.’라고 나오죠? 계시록 5장 6절에는 일곱 눈은 뭐라 그랬습니까?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했죠? 그리고 스가랴서 4장 6절에 보면, ‘그 일을 행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의 신이다.’라고 하죠? 그러니까 일곱 영은,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 전체교회를 일곱 교회라고 계시록은 묘사하고 있어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에게 보내진, 온전하신, 완전하신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일곱 교회에게 보내지는 성령님을, ‘일곱 영이다.’라고 표현을 해 놓은 것입니다.

    자, 이 이야기는 스가랴가 본 환상(幻像)입니다. 스가랴에는 총 일곱 개의 환상이 나오는데요, 그중 5번째 환상입니다. 이 스가랴서 4장은 아주 어려운 본문으로 알려져 있죠? 그래서 이 스가랴서 4장만 가지고도, 1년을 설교를 하는 것을 제가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여러분들에게 아주 짧은 시간에, 제가 요약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이 환상은 하늘의 성전(聖殿)! 즉 하나님나라를 묘사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천상에 하나님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기도 하는, 그런 장면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떻게 묘사되는고 하니, 순금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로, 감람나무에서 계속 금 기름이 흘러 들어, 그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는 장면이에요. 이 장면을 여러분이 머리에 잘 떠올리고 계세요. 오늘 설교의 핵심입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죠? 천사는, ‘그것은 이런 거야!’라고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러면서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能)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 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라고 이렇게 설명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가죠? 그러니까 이 장면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의 모습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쉬운 말로 하면, 참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참 교회의 모습! 에베소서에서 우리가 배웠죠? 우리는 성전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잖아요? 그렇게 성령으로 지어져 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스가랴서 환상에서는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조금만 더 인내심을 가지고 따라와 주세요.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은 누굽니까? 제가 새가족양육반에서는 설명을 해 드렸죠?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죠? 그리고 BC 538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재건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보냅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 보낼 때, 1차 포로귀환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사람이, 스룹바벨이에요. 성전을 재건하는 임무를 띠고, 이스라엘로 귀환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스룹바벨입니다.

    여호와긴이라는 사람이 있죠? 바벨론 포로 때 잡혀간,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열왕기하가 여호야긴의 석방으로 끝이나죠? 바로 그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그래서 그는 왕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성전을 재건을 하는 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 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는데요, 당시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서,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재건을 방해를 하고 있었습니다. BC 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했죠? 그리고 앗수르가 혼합정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앗수르로 데리고 갔고, 앗수르 사람들과 이방인들을, 이스라엘 땅에 심어 놓았죠? 그래서 피가 섞였습니다. 그래서 남 유대사람들은 그들을 가리켜서, ‘사마리아 인이다. 개만도 못한 사마리아 인이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금 남유대가 포로귀환을 하고 성전을 재건한다고 하니까, 이 북이스라엘 사마리아 사람들이, 자기들도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니까, 그 성전재건을 돕겠다하고 나셨다고요. 그랬더니 남유대에서, ‘너희 같은 더러운 자들은, 성전재건에 참여할 수 없다.’하고 거절을 했다고요. 그래서 이 북이스라엘 사람들! 사마리아 사람들이 열이 받아서, 그 성전재건을 오히려 방해를 했습니다. 성전 재건하는 현장에다가, 시체를 갖다 뿌려놓고 그랬다고요.

    그리고 요한복음에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리심 산에다가 자기들 마음대로 성전을 지었어요. 그리고 거기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 성전을 짓는데, 벽돌이 모자라고, 또 땅에 문제가 있고 해서, 계속해서 이 성전재건이 지연되고 있을 때예요. 그래서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될 수 있을까? 이 성전이 정말 재건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고 있었다고요. 그때에 스가랴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하고 환상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BC 516년에 완성이 되죠? 역사적으로도요!

    자 이런 역사적 배경을 머릿속에 넣어두시고 같이 가시자구요? 성경에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죠? 스가랴나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성전 재건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성경이 그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묘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사람을 죽이고 새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는, 여러분의 구원의 모습! 그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안에 성전을 짓겠다!’ 그렇게 말씀하시죠? 바로 그 구원의 모습을, 새 창조의 모습을, 이 성전 재건의 모습에서 우리는, 읽어 낼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어떤 방해가 있어도,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고야 만다는 것을, 읽어내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장면이에요. 오직 성령으로 될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그 일은 이루어지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스가랴서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인,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인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환상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게 어떻게 은혜와 평강에 메시지가 되는지! 10절에서 분명 이 일곱 촛대를 가리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다.’라고 이야기하죠? 성령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1장 20절에서는, 일곱 촛대를 다르게 묘사를 하고 있어요. 계시록 1장 20절로 가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라고 이야기해요.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죠? 바로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이, 일곱 촛대라는 이야깁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서는, 얼른 피상적으로 보면, 일곱 촛대는 성령이라고 이야기 하는 것 같죠? 이렇게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도 표현이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기에 이렇게 표현이 되고 있는 것이죠? 눈치 빠르신 분들은 금방 이해를 하실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완성하셨죠?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올라가서, 어떤 일을 하셨습니까? 성령을 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래서 교회를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죠? 성령이 오셔야, 교회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과 교회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요한복음 15장 26절로 가보겠습니다.

    (요한복음 15:26)

    26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예수께서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씀하시죠? 그 성령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탄생되는 것입니다. 지금 스가랴서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그리고 하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금 기름이 공급되고 있죠? 그 기름은, 성령님이시라고요. 그래서 그 금 기름!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탄생되고, 성령님으로 유지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시므로 탄생이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照明)과 인도(引導)와 충만을 받아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시하는 것이죠?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거든요. 여러분은 이미 불이 붙은 교회라고요.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빛을 발하면서 살게 되는 것이라고요.

    교회라는 것은 이렇게,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되는 것이죠?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이 되고 빛을 발하게 되는, 교회(敎會)라고 이렇게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누누이 설명해드린, 그리스도와의 연합! 유니온 크라이스트(Union Christ)를 떠올리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그럼 성경에 등장하는 그 촛대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한 번 살펴보자구요. 출애굽기 25장 31절로 가겠습니다.

    (출애굽기 25:31-40)

    31 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그 밑판과 줄기와 잔과 꽃 밭침과 꽃을 한 덩이로 연하게 하고

    32 가지 여섯을 등대 곁에서 나오게 하되 그 세 가지는 이편으로 나오고 그 세 가지는 저편으로 나오게 하며

    33 이편 가지에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밭침과 꽃이 있게 하고 저편 가지에도 살구꽃 형상의 잔 셋과 꽃밭침과 꽃이 있게 하여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같게 할지며

    34 등대 줄기에는 살구꽃 형상에 잔 넷과 꽃 밭침과 꽃이 있게 하고

    35 등대에서 나온 여섯 가지를 위하여 꽃받침이 있게 하되 두 가지 아래 한 꽃밭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 받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며 또 두 가지 아래 한 꽃 밭침이 있어 줄기와 연하게 하고

    36 그 꽃받침과 가지를 줄기와 연하게 하여 전부를 정금으로 쳐 만들고

    37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38 그 불집게와 불똥 그릇도 정금으로 만들지니

    39 등대와 이 모든 기구를 정금 한 달란트로 만들되

    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식양대로 할지니라

    네, 이렇게 등대를 비롯한 성막 전체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산으로 데리고 가셔서, 모세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나라의 모형이라고요. 모세가 하늘나라를 보니까, 그 하늘나라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어떤 빛을 발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거예요. 그것을 촛대로 묘사를 해 놓은 것인데요, 성막에 놓일 촛대를 만드는데,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어요.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는 것은, 당시 금은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촛대는 지성소 앞에 성소에 위치하고 있어요. 하나님의 보좌 앞이죠? 그렇게 만들어진 촛대에, 불을 밝혀서, 1년 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명령하고 계십니다. 왜 그 촛대에 불이 꺼지면 안 된다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실까요? 레위기 24장 1절로 가겠습니다.

    (레위기 24:1-4)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감람을 찧어낸 순결한 기름을 태우기 위하여 네게로 가져오게 하고 끊이지 말고 등잔불을 켤지며 (절대 꺼뜨리지 말라는 거예요. 감람을 찌어낸 순결한 기름으로 그 불을 밝히는 것이죠? 스가랴의 환상과 흡사합니다. 그죠?)

    3 아론은 회막 안 증거궤 장 밖에서 저녁부터 아침까지 여호와 앞에 항상 등잔불을 정리할지니 (아론더러, 대 제사장인 아론더러, 항상 등잔불을 정리하라고 합니다. 불이 꺼지지 않게요.) 너희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라

    4 그가 여호와 앞에서, 순결한 등대 위의 등잔들을 끊이지 않고 정리할지니라

    그럽니다.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시죠? 제사장들은 바로 그 일을 했던 거예요. 왜 성막에, 성전에, 제사장들이 그렇게 많아야 하느냐? 바로 이런 일들을 했다고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서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스가랴의 환상과 동일하죠?

    그러나 그 옛 성전! 성막에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습니다. 그런데 스가랴에서의 환상은, 감람나무에서 직접 금 기름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라고요. 옛 언약에서는, 우리가 끊임없이 무엇을 해야 합니다. 그렇죠? 새 언약에서는,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있어요. 우리가 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를 나타내는 거죠?

    성막(聖幕)은 완성된 하나님나라의 모형(模型)입니다. 그 성막 안에 촛대라는 것은, 그 하나님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서, 빛을 발하는 어떤 무리가 있다는 거예요. 그 무리가 교회(敎會)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 빛을 발하고 있어요.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성령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죠? 그래서 교회는, 일단 불이 붙여지면, 영원히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꺼질 수가 없다는 것이죠! 당시 유대인들은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구약에 능통한 사람들이였으니까요!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금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그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가 설명을 해준, 그 환상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이라고요.

    어떤 말입니까?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이야기를 떠올렸을 거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삶을,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맞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이렇게 소심하게, 불성실하게, 겁쟁이처럼 살 수는 없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지!’라고 결단(決斷)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라고요.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삶이, 그 빛이, 비춰지고 있습니까? 그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다고요. 여러분의 심지에, 그 불이 붙어 있습니까? 빛이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여러분은 가짜입니다. 고린도후서 3장 17절로 가겠습니다.

    (고린도후서 3:17-18)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다’는 구절의 ‘보다’는, ‘카토티조마임’입니다. 이 말은,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카토티조마임’의 이 시제는, 현재형이거든요! 헬라의 현재형은 뭐라 그랬죠? 계속 진행되는 것을 표현하는, 진행형을 나타내는 거라 그랬죠? 우리는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 내는 촛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로 갑니다.

    (마태복음 5:14-16)

    14 너희는 세상에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내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고 (여기서 ‘말’은 호스(horse)가 아니라, 한 말, 두 말, 이렇게 말(斗)을 재는 그 ‘말’이에요.)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그래요. 너희는 빛을 발하면서 살아야 되는 존재다. 그 빛을 발하는 삶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그래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어떻게 돌립니까?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오직 빛을 드러내는 여러분의 삶인 것입니다. 요한1서 1장 5절로 가겠습니다.

    (요한1서 1:5-7)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래요. 빛 가운데서 행하면, 빛이신 하나님처럼 빛 가운데 행하면, 너희는 교회다! 아니면? 가짜라는 것이죠. 에베소서 5장 8절로 가겠습니다.

    (에베소서 5:8-9)

    8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이 되라!’가 아니에요, ‘빛이다!’라고 이야기한다고요. 그러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9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하죠?

    소요리 문답 1번! 우리 인생의 목적이 뭐라고 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이죠?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빛을 발하며 사는 거예요.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여러분! 부자가 되어서, ‘야!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이 도우신다.’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간증하고 다니면, 그게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삶일까요? 그럼 예수를 믿지 않는 빌게이츠는, 지금 누구한테 영광을 돌리는 겁니까?

    아니면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우리 자녀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요? ‘예수를 잘 믿으니까, 저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구나!’ 그러면 하버드와 MIT와 예일에 있는 수많은 불교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뭐예요? 이 땅에 빛으로 오셔서, 빛의 삶을 살다가 가신 분이 계시잖아요? 그 삶을 좇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 삶을 닮아 가면 되는 거예요. 그 삶을 흉내 내면 되는 것이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세요.

    (요한복음 8:12)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에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께서 직접 당신을 가리켜, ‘나는 세상에 빛이다!’ 그러신다고요. 그리고 ‘나를 따르는 자는, 절대 어두움에 행하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세요. 요한복음 12장 46절로 가겠습니다.

    (요한복음 12:46)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

    그 빛이 왜 왔다고요? 우리를 빛으로 만들기 위해서! 빛을 비추게 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불을 붙여서, 빛을 나타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어두움에서 건져 내서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그 빛이 이 땅에 오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빛이셨다고요. 교회는 그 빛을 그대로 흉내 내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분이 어떻게 살다 가셨나요? 부자로, 권세를 누리면서 ,떵떵거리며 살다가셨나요? 아니에요. 힘들고 어렵지만, 그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다 가셨다니깐요. 요한복음 14장 9절 보세요.

    (요한복음 14:9)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라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죠? 그 말은, 시편에 나오는, ‘아멘!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것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옳습니다! 맞습니다!’라고 고백하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아멘! 아멘!’하고 말씀을 시작하시는 것은, 예수님은 하늘에서 보신 것과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을 그대로, ‘아멘! 아멘!’ 하면서 살다 가셨다는 거예요. 살아내고 가셨다는 거예요. 우리도 똑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증인(證人)들이라고요. 그것이 교회에 존재 목적이라고요.

    교회는 이 땅에서 수천만 불짜리 건물 짓고, 사람들 모아서 대단한 일 하는 게 아니에요.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면서, 우리의 삶으로, 하나님을 증거하는 거예요. 진정한 부흥이라는 것은, 교회에 맴버들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참 그리스도인으로 지어져 가는 것을, 부흥이라고 하는 것이지, 사람들 많이 모으고, 건물 큰거 사는 게 부흥이 아니라고요. 참된 리바이벌(revival)은, 우리가, 이 처치 멤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 빛을 발하는 그 하나님의 자녀로, 잘 지어져 가는 것을, ‘부흥이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박국서에서 배웠잖아요?

    부흥(復興)이 뭐였습니까? ‘주여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소서’라는 그 부흥이 뭐였습니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우리에게 불필요하고 악한 것들은, 오셔서, 어서 오셔서, 완전히 박살내주옵소서!’ 그게 부흥 아니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이 있네! 아니,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 아니, 도대체 누구를 닮은 것일까? 저들이 믿는 하나님은, 누구기에 저들이 저렇게 사는 것일까?’라는 평가를 드러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렇게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만사형통(萬事亨通)! 일사천리(一瀉千里)! 여유만만! 또 뭐 있어요? 화기애애! 그런 것만 있겠습니까? 여러분! 거기에는 핍박(逼迫)과, 고난(苦難)이 따르게 마련이라고요. 여러분!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뭡니까? 설교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게 뭐예요? 스피드입니까? 뭡니까?

    우리는 이 땅에 눈 두고 사는 사람들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이 땅을 나그네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우리는 이 땅에다가 아방궁 짓고, 기둥박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저 새 하늘과 새 땅에 있는 것이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크게 부흥하고 번영을 누리면서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 땅의 삶에다가 금칠을 하려고 하시냐구요?

    이 요한계시록을 받아서 읽던, 초대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을 먹고 있었고, 자신감을 잃고 있었고, 자폭하고 싶을 만큼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고요. 그들이 요한 계시록을 받았습니다. 누군가가 앞에서 이 요한계시록을, 감격에 복받쳐, 읽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듣다가, 그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 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감격한 거예요. 그들은 교회가 교회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눈으로 되는 게 아니라, 성령에 힘으로 되는 것을, 깨달았을 거라고요. ‘아!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시겠구나! 그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 옆에 있는 그 감람나무로부터, 금 기름이 계속해서 공급이 되어서, 그 촛대에 불이 꺼지지 않듯이,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교회는 성령으로 탄생되고 성령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그 새 하늘과 새 땅에 끌고 가시겠구나!’ 하고 평강을 얻었던 거예요. 안도의 숨을 쉬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평강(平康)인 것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평강은, 아무 일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에요. 전쟁이 없는 그런 상태가 아니에요. 전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확신! 고통 속에서도 반짝이는, 어떤 소망! 공격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오고 있는데, 내 안에 흔들리지 않는 그 소망 때문에, 내가 기뻐하고, 내가 흔들릴 수 없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평강인 것입니다.

    인터넷에, 군대에서 고참들의 횡포를 견대지 못하고, 자살을 한 어떤 병사의 기사 아래에, 이런 다른 이등병의 편지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똑 같은 상황에 있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자살을 했고, 어떤 사람은 이런 편지를 썼습니다.

    어머니! 저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밥도 이제 먹을 만하고, 잠을 못자는 것도 이제 견딜 만합니다. 그동안 제가 얼마나 게으르고, 저만 생각하며 살았는지, 절실히 느끼고 배웁니다.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 얼차려를 주고, 행패를 부리는 고참들을 보면서, 교회에서 배웠던 인간에 죄성(罪性)을 배웁니다. 그리고 결심해 봅니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그러나 자신이 없습니다. 저도 힘을 얻게 되면, 얼마든지 약자를 깔볼 수 있는 죄인이니까요. 힘에 벅찬 유격훈련을 받으면서, 제 몸이 얼마나 허약한지 깨달았습니다. 이 허약한 몸으로, 그동안 얼마나 객기를 부리며 살았었는지, 참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힘이 들지만, 배우는 보람이 있네요. 힘이 들어 무너져 버리고 싶을 때마다, 어머니의 얼굴만 떠올립니다. 제가 그렇게 무너지면, 어머니가 실망하실 테니까요. 삶이 힘드니까, 어머니가 더욱 보고 싶습니다. 지금 저는 제대할 날만을 기다립니다. 제대할 때까지 많이 배우고, 바른 사람이 되어, 돌아가겠습니다. 제대하면 꼭 어머니께 효도하겠습니다. 그 생각만 하면, 어머니와 함께 할 그 생각만 하면, 마음이 이렇게 기쁩니다.

    네 똑같은 상황이에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도저히 못 견디겠다 하고, 목숨을 끊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아니야! 이 상황은 나에게 꼭 필요한 거니까 내가 여기서 많이 배우고 사람 되어서 나는 돌아갈 거야! 나는 여기서 뭔가 배우고 돌아가야 해!’ 하고 다른 반응을 보였다고요. 핍박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공격이 끊어지지 않았어요. 고참들의 횡포가 끊어지지 않았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속에, 그에게는 소망이 있었다고요. 이제 나에게는 곧 제대할 날이 다가올 것이고, 제대를 하면 나를 두 팔 벌려 맞이해주실 그 어머니가 있다는 거예요. 그 어머니와, 영원해 행복하게 살 그날을 소망하면서, 지금 나는 뭔가 배워서, 어머니가 기뻐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가겠다는 거예요. 그게 평강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왜 교회를 이 땅에 던져 놓으신 것입니까? 교회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지어져 가는 거예요. 하늘나라에선 필요 없는, 그러한 악한 것들! 추한 것들! 다 잘라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과 경건을 연습하고 훈련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게 기독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훈련하기 위해서, 때로는 우리에게 훈련교관을 붙이신다고요. 말도 안 되는 억지! 분 냄! 짜증! 핍박! 횡포! 그런 것으로 우리를 괴롭히게 한다고요. 그러면 우리는 배우는 거예요. 거기서 인내와, 사랑과, 용서와, 온유를 배우는 것입니다. ‘어쩌다 내 삶에, 저런 웬수가 나타나서, 나를 이렇게 괴롭히는가?’로 가지 마시구요. ‘아! 하나님께서 나에게 지금 뭔가를 가르치고 계시는 구나!’로 가시란 말이에요.

    이 자리에는 분명 가해자의 위치에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하하하) 그 분들은 기도하세요. 여러분은 지금 죽으시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회개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자녀로 만들기 위해서 들어서 썼던, 수많은 민족과 사람들을 보세요. 형체도 없이 사라졌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만 관심 있어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답게 만들기 위해서, 잠시 들어서 썼다가, 그들은 완전히 멸망시켜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 회개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이유 없는 핍박과 고난을 받으시면, 기뻐하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이 지금 세심한 관심과, 세심한 배려로, 여러분을 만들고 계시는 거예요. 핍박을 당하시는 여러분! 오히려 기뻐하십시오! 자기 한 몸 편하기 위해, 남을 괴롭히는 사람들! 핍박을 가하고 있는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죽으시면 안 됩니다. 회개하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견디기 힘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그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은 좌절에 빠진 분들! 혹시 계십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은, 이미 성령님께서, 테이크 오버(take over)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시라고요.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실까요?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서, 그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하나님도 지옥에 따라 오셔야 돼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지옥에 못 가요. 우리의 신분은 그렇게 안전한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힘든 상황을 허락하셨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들은, 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 데, 필요한 것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그걸 놓치시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걸 아는 우리가, 어찌 평안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보좌 앞에 일곱 영!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巡禮者)들입니다. 나그네들입니다. 여러분! 그 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시다고요. ‘이겨라! 이겨라! 이겨라! 내 새끼들아!’ 감람나무에서는 지금도 계속 금 기름이 흘러나오고 있다고요. 우리는 불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힘내십시오.

    초대교회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보좌 앞에 일곱 영’이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게 평강을 얻었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에도,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을 해 냈듯이, 하나님나라는 반드시, 속히, 완성이 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힘내십시오! 다시 한 번 꼭 마음에 세기세요.

    하나님은 완성된 하늘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시다고요. 두려워 마세요! 평강을 찾으십시오! 은혜와 평강! 그것은 여러분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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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계 1:4~5).

    이 말씀에 나온 ‘일곱 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삼위일체의 한 위격이신 ‘성령’을 일곱 영이라고 지칭하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떻게 성령이 하나가 아닌 일곱으로 표시될 수 있었을까? 

    성령이 일곱으로 나타나는 최초의 경우를 구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 곧 지혜와 통찰의 영, 모략과 용기의 영,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그에게 머물 것이다”(사 11:2).

    여호와의 영, 지혜의 영, 통찰의 영, 모략의 영, 용기의 영, 지식의 영,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 이렇게 일곱 가지 측면을 말하고 있다. 성경에서 일곱이란 하나님의 완전하신 ‘1’의 숫자이다(창 2:2~3). 

    ‘여호와의 영’이 가진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혜의 영(호크마)’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망라해 요구되는 덕목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죄를 피하는 방면으로 이끄신다.

    둘째, ‘통찰의 영(삐나)’은 바르게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그릇되고 악한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바르게 보고 이해하며 그분의 뜻을 온전히 깨닫고 그분의 뜻하신 바대로 행하게 하신다. 

    셋째, ‘모략의 영(에차)’은 주로 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지혜를 정책 결정자에게 제공해주는 참모 역할이다.

    넷째, ‘용기의 영(킵보르)’은 용맹한 장수가 가지고 있는 강한 힘을 의미한다. 죄와 사명의 권세 아래 있는 사탄의 권세를 파하는 능력이다.

    다섯째, ‘지식의 영(따아트)’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의 선하시며 은혜로우신 뜻을 행하게 하신다. 예를 들면 의와 공평을 행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하며, 불의를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다.

    여섯째,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아르아)’은 자기를 세운 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의미한다. 이 정신은 여호와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기쁘시게 하려고 애쓴다. 

    일곱째, ‘여호와의 영’인 ‘루아흐’는 태초에 여호와께서 불어넣으신 호흡을 의미할 때 쓰였으나, 여기에서는 여호와께서 메시아로 하여금 구원사역을 감당하도록 그에게 주시는 영으로 나타난다.

    요한계시록에 나온 ‘일곱 영’은 이사야에서 언급된 ‘일곱 측면의 영’을 살펴볼 때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다방면으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그 안에서 완전한 능력과 섭리적 보호로 함께하신다. 온 인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어졌던 성령이 이제는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거룩한 성도들에게 함께 하신다. 이는 요한계시록의 주제이기도 하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경험할 여러 시련과 환난이 있다. 그 가운데 성령 안에서 성도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를 받고, 세상에서 승리를 경험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의도된 상징의 방식으로 한 분이신 성령을 일곱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는 의도된 상징적 형상이나 숫자를 사용해서 성삼위의 세 번째 인격인 성령의 속성과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를 받을 때 비둘기가 성령을 상징했다(마 3:16).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의 증인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실 때 그들은 방언을 말하게 되었는데, 그때 ‘불의 혀’가 성령을 상징했다(행 2:3). 만약 그 다락방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120명이었다면 거기에는 120개 성령의 화염이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성령이 여러 다른 방식으로 상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을 한 분이신 성령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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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 영 - 일곱 눈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4-8
    4 나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또 장차 오실 그분이 내려 주시고,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이 내려 주시고,
    5 또 신실한 증인이시요 죽은 사람의 첫 열매이시요(또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나신 분이시요') 땅 위의 왕들의 지배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기의 피로 우리의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여(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씻어') 주셨고,
    6 우리로 나라를 이루셔서, 자기의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7 "보아라,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신다. 눈이 있는 사람은 다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사람들도 볼 것이다. 땅 위의 모든 족속이 그분 때문에 가슴을 칠 것이다." 꼭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아멘.
    8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

    지난주에 우리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대해 공부를 했습니다. 전에도 계셔서 그 언약을 성실하게 이행하셨던 그 하나님,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누릴 그 복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우리에게 오고 계신 하나님, 그 하나님이 이제도, 지금도 우리를 이끌고 계신다는 것이 우리를 감격케 했습니다. 역동적으로 지금 오고 계신다는 것은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 완성된 미래에서 오시고 계신 분이십니다. 그렇게 이미 완성된 미래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신분이 얼마나 안전하고 확실한 것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보좌 앞의 일곱 영에 대해서 공부를 하겠습니다. 보좌 앞의 일곱 영으로부터 우리는 어떤 은혜와 평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일곱 영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의 내용은 어떤 것인지 계속해서 공부하겠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일곱이라는 숫자에 전체, 충만, 완전, 완성이라는 특별한 개념을 부여한다고 했지요? 그래서 전체 교회를 굳이 일곱 교회라고 ‘일곱’이라는 숫자를 동원해서 묘사를 하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교회의 뒤에 나오는 일곱 영을 홀로 온전하신 ‘성령’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미루어 추측을 할 수 있습니다. 앞에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라고 성부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나오고 뒤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오는 것을 보아서도 우리는 금방 보좌 앞의 일곱 영은 성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일곱’이라는 숫자는 덮어 두세요. 그러면 어떻게 그 일곱 영이 성령 하나님을 상징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곱 영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인지 성경에서 찾아보겠습니다.

    (계 5:6) “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일곱 영은 일곱 눈이라고 합니다. 일곱 눈은 구약의 어디에서 보셨지요? 스가랴 4장으로 가보겠습니다.

    (슥 4:2-10) “2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주발 같은 것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그 등대 꼭대기 등잔에는 일곱 관이 있고 3 그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그 주발 우편에 있고 하나는 그 좌편에 있나이다 하고 4 내게 말하는 천사에게 물어 가로되 내 주여 이것들이 무엇이니이까 5 내게 말하는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이것들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느냐 내가 대답하되 내 주여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6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8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9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10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

    10절에 보시면 ‘이 일곱 눈은 온 세상을 두루 살피는 여호와의 눈이다’라고 나옵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에 읽으셨던 요한 계시록 5장6절에는 ‘일곱 눈은 온 세상에 보내어진 하나님의 영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둘을 잘 연관 시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께서 지금 읽으신 스가랴서4장의 내용은 스가랴가 본 환상입니다. 스가랴에는 총7개의 환상이 나오는데 그 중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이 환상은 하늘의 성전 즉, 하나님 나라를 묘사하고 있는 환상입니다. 천상의 하나님 나라, 성전을 묘사하면서 그 성전이 지어져 가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떻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까? 등대에 일곱 촛대가 있고 그 양 옆으로 두 그루의 감람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등대로 감람나무에서 계속 기름이 흘러들어 불이 꺼지지 않습니다.

    스가랴가 천사에게 이 환상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천사는 ‘그것은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을 해주지 않고, 네가 보고 있는 그 모습은 ‘힘으로도 되지 않고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신으로(성령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성전을 재건하는 스룹바벨의 이야기로 끌고 갑니다. 그러니까 이 모습은 성령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 성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시기 쉬운 말로 하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이 나오는데 스룹바벨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었지요?. 그리고 BC586년에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성전 재건을 위해 이스라엘을 본국으로 돌려보낼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그는 왕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성전 재건을 하는데 엄청난 방해가 있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BC520년경부터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페르시아의 다리오가 애굽의 충성을 확인하기 위해 군대를 정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불똥이 또 자기들에게 튈까봐 전전긍긍하고 있었고 북이스라엘(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방해를 해 오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스가랴가 ‘정말 성전이 재건 될 수 있을까?’하고 걱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스가랴에게 ‘스룹바벨이 재건을 시작한 성전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하고 환상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성전은 결국 BC515년에 완성됩니다.

    성경에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지요? (스가랴나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 다 성전 재건에 관한 내용입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성전 재건이라는 것은 옛 성전을 무너뜨리고 새 성전을 지으시는,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을 창조하시는 즉, 교회를 탄생시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성전을 무너뜨려라. 내가 사흘 만에 새로 짓겠다’고 하셨지요? 그러므로 이 환상에서 스룹바벨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힘으로도 능으로도 되지 않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으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묘사가 스가랴서 4장의 다섯 번째 환상인 일곱 촛대와 두 감람나무인 것입니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이 환상을 보겠습니다. 10절에서 분명 이 일곱 촛대를 가리켜 온 세상을 두루 살피시는 하나님의 눈이라고 합니다. 성령입니다. 그런데 계시록1장20절에는 일곱 촛대를 다르게 묘사를 합니다.

    (계 1:20)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라고 합니다.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지요? 바로 여러분을 상징하는 것이 일곱 촛대입니다. 그런데 스가랴서에서는 일곱 촛대는 성령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성경에서 일곱 촛대는 성령으로 표현도 되고 교회로도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회와 성령은 어떤 연관이 있길래 이렇게 표현이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탄생시키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 성령께서 교회인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것이 하나님의 성전, 참 교회의 모습이지요?

    (요 15:26) 26 내가 아버지께 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 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 하실 것이요“

    지금 스가랴서의 환상은 예수께서 보내신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기름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그 기름은 성령입니다. 교회는 성령이 오심으로 탄생이 될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과 인도와 충만을 받아 존재하게 된다는 것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그 교회가 천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지금 이 땅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감람나무에서 끊임없이 부어지는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가 맞습니다. 그러나 왜 성경이 일곱 촛대를 또 성령으로 묘사를 하는지 아세요? 교회는 성령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고 유지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교회라는 촛대에 불이 붙어서 그것이 촛대의 역할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불이 붙어야 비로소 촛대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와 성령은 불가분 떨어질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일곱 촛대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탄생되고 빛을 발하는 교회라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누누이 설명해 드린 그리스도와의 연합(union christ)을 떠올리시면 조금 이해가 쉬우실 것입니다.

    (출 25:31-40) “31 순금을 두들겨서 등잔대를 만들어라. 등잔대의 밑받침과 줄기와 등잔과 꽃받침과 꽃을 하나로 이어놓아라. 32 등잔대의 줄기 양쪽에서 곁가지 여섯 개가 나오게 하였는데, 등잔대 한쪽에서 곁가지 세 개, 또 다른 한쪽에서도 곁가지 세 개를 나오게 하여라. 33 등잔대의 각 곁가지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고, 그 맞은쪽 곁가지도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세 개를 연결하여 만들어라. 등잔대의 줄기에서 나온 곁가지 여섯 개를 모두 이와 같이 만들어라. 34 등잔대 줄기는 꽃받침과 꽃잎을 갖춘 감복숭아꽃 모양 잔 네 개를 쌓아 놓은 모양으로 만들어라. 35 그리고 등잔대의 맨 위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세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밑에서 두 번째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고, 그리고 맨 아래에 있는 좌우 두 곁가지가 줄기에서 뻗어날 때에는, 맨 아래에 놓인 꽃받침에서 뻗어나게 하여, 여섯 곁가지를 줄기와 연결시켜서 한 덩이를 만들어라. 이렇게 등잔대의 줄기에서 좌우로 곁가지가 나오게 하여라. 36 등잔대 줄기의 꽃받침에 연결된 곁가지들은 모두 순금을 두들겨 만들되, 전체를 하나로 이어놓아라. 37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서, 그것을 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앞을 밝게 비추도록 하여라. 38 등잔불 집게와 불똥 그릇도 순금으로 만들어라. 39 등잔대와 이 모든 기구를, 순금 한 달란트로 만들어라. 40 이 모든 것을, 내가 이 산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 그대로 만들도록 하여라.”

    여러분께서 성경을 통해 익히 확인하신 것처럼 등대를 비롯한 성막 전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성막에 놓일 촛대를 만드는데 촛대를 정금으로 만듭니다. 촛대를 정금으로 만들라는 것은 당시 금은 빛을 상징하던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촛대는 지성소 앞의 성소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이지요. 그 촛대에 불을 밝혀 1년365일 24시간 불이 꺼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절대 불이 꺼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교회는 그렇게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빛으로 존재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레 24:1-4) “1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올리브를 찧어서 짜낸 깨끗한 기름을 가져다가 등불을 켜게 하되, 그 등불을 늘 켜 두어라. 3 아론을 시켜 회막 안 증거궤 앞에 쳐 있는 휘장 바깥에 그 등불을 켜 두어, 저녁부터 아침까지 주 앞에 계속 켜 두게 하여라. 이것은 너희가 대대로 길이 지켜야 할 규례이다. 4 아론은 주 앞에서, 순금 등잔대 위에 그 등불을 늘 켜 두어야 한다.”

    여기서도 감람유를 끊임없이 촛대에 부어서 불을 꺼뜨리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제사장들은 바로 그런 일을 했던 것입니다. 감람나무에서 기름이 흘러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과 동일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옛 성전에서는 제사장들이 감람나무 기름을 부지런히 날라야 했지요. 성막은 완성된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 성막 안의 촛대라는 것은, 그 하나님 나라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그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받아 빛을 발하는 무리가 있다는 것인데 그 무리가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성령의 기름으로만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영원히 빛을 발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시 구약을 줄줄이 꿰고 있던 유대인들은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스가랴서의 일곱 촛대를 생각했을 것이고 그 일곱 촛대에 부어지는 성령을 상징하는 금 기름으로 촛대에 영원히 불이 꺼지지 않는 스가랴의 환상을 떠올리면서 천사가 설명을 해 준 그 환상의 의미를 되새겼을 것입니다. ‘이는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본연의 삶을 재확인했을 것입니다. ‘맞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는 교회다’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야지’ 하고 결단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교회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계셔서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발하게 하시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정말 여러분의 삶 속에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나오고 있습니까? 그 불은 이미 2000년 전 오순 절 날에 성령이 교회에 오심으로 켜졌습니다. 여러분의 심지에 불이 붙어있습니까? 빛이 나오고 있나요?

    (고후 3:17-18) “17 주님은 영이십니다.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습니다. 18 우리는 모두 너울을 벗어 버리고, 주님의 영광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여기서 ‘주의 영광을 보다’라는 구절의 ‘보다’는 ‘카톱트리조마이’입니다. 이 말은 ‘반영하다, 반사하다, 거울에서처럼 보다’라는 뜻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당연히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해 내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카톱트리조마이’의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이것은 계속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 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빛으로 반사해 내는 촛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 5:14-16)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있는 동네는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됫박 아래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요일 1:5-7) “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것입니다.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서 살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엡 5:8-9)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이었으나, 지금은 주 안에서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사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와 진실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성령으로 거듭난 교회에게 빛을 받은 자로서 빛을 발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빛을 발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라고 합니다. 소 요리 문답1번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했지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교회가 이 땅에서 당연히 해야 할 것이 빛을 발하며 사는 것입니다. 무엇이 빛을 발하는 삶이고 무엇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입니까? 부자 되어서 ‘예수 믿는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께서 도우신다’ 이렇게 간증하고 다니면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요? 그럼 예수를 믿지 않는 빌게이츠는 누구한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까? 좋은 대학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길일까요? 하바드와 MIT의 수많은 불교 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누구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까? 그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 빛을 발하는 교회의 삶은 무엇입니까? 보좌 앞의 촛대가 하나님의 빛을 반사하여 빛을 발하듯이 빛으로 오신 분이 살다 가신 그 빛의 삶을 사는 것이 빛을 발하는 삶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요 8:12) “12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 속에 다니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 12:46)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다. 그것은 나를 믿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어둠 속에 머무르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빛이셨습니다. 교회는 그 빛을 그대로 흉내 내어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어떻게 살다 가셨나요? 삶으로 하나님을 설명하시고 가셨습니다.

    (요 14:9) “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사람이다. 그런데 네가 어떻게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십시오' 한다는 말이냐?”

    우리도 똑같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으로 입으로 하나님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어, 세상에 저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네’ ‘저들은 뭔가 다른 나라 사람들 같다’라는 평가를 들어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나님의 증인으로, 빛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어떻게 만사형통, 일사천리, 여유만만 이겠습니까? 거기에는 핍박과 고난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그 때, 그렇게 빛으로 살다가 힘이 들 때, 먼저 살다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을 기억하는 겁니다.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던 초대 교회 사람들은 엄청난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힘겨운 핍박과 고난에 겁을 먹고 , 자신감을 잃고 있었던 그들이, 이 요한 계시록을 받아서 읽다가 이 ‘보좌 앞에 계신 일곱 영’으로부터 오는 은혜와 평강에 도달했을 때 그들은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힘으로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되는 것임을 깨닫고 ‘우리는 이렇게 약하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이루어 내시겠구나‘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평강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지금 견디기 힘들고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까? 그래서 도저히 더 이상은 못 갈 것 같은 좌절에 빠져 계신 분들 혹시 계십니까? 우리의 삶은 이미 성령님께서 take over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서 사시는 이는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옥으로 데리고 가실까요?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과 연합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지옥에 가면 하나님도 지옥에 따라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그렇게 안전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닥친 모든 상황과 환경과 조건들은 다 우리를 천국으로 데리고 가시는데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아시겠지요? 우리는 보좌 앞의 일곱 영,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으로 향하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그 분이 계속해서 우리를 조명하고 계시고 힘을 주고 계시고 여러분 안에서 여러분을 응원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초대 교회 사람들이 성령 하나님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보좌 앞의 일곱 영이라는 말만 듣고도 그렇게 평강을 얻었다면 여러분도 동일한 평강 안에 거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그 엄청난 방해에도 기어코 새 성전을 완성을 했듯이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속히 완성이 될 것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 일을 하시고 계신데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힘내십시오. 다시 한 번 꼭 마음에 새기세요. 하나님은 완성된 하늘나라의 복을 가지고 우리에게 역동적으로 오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지금 여러분과 성령님으로 함께 하고 계십니다. 두려워 마세요. 평강을 찾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