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강해 자료(시작일 02-07-2024 / 수


요한계시록 강해 #. 1

요한계시록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문제 제기)
이단 교회에서는 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립니다.
그 좋은 예가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1일 자정에 예수님께 공중 재림을 한다고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진 후에 다시 어떻게 주장합니까?
영적인 것으로 영적으로 주님은 공중 재림 하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 여파가 또다시 계시록을 사용하여 교회와 신앙을 흔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서신서)라고 합니다.
밧모섬에서 환상으로 계시를 받은 계시록을 편지로 일곱 교회에 보낼 때 당시 교회와 성도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로마 정부의 가혹한 핍박과 탄압이 극에 달한 때에 구약을 인용하여 초대교회 성도들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습니다.
요한일서와 이서 그리고 삼서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을 빛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

      샬롬(shâlôwm) שָׁלוֹם
      - 평화, 일치, 조화, 친교, 안전함, 온전함, 안전한, 온전한

    마라나타(Maranatha) מרנא תא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


카타콤(catacomb) : 지하묘지, 동굴 




*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다니엘 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하나님의 심판(11, 12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예시된다.

인자 같은 이(케바르 에나쉬. כְּבַר אֱנָשׁ)(1247. 바르,  606 에나쉬
- '벤 아담'()과 동일어인 이 말이 구약에서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에 쓰여진 용례는 이곳밖에는 없다.
곧 본 구절의 '인자'는 '구름을 타고'(계 1:7)란 말과 결합해 메시야적 호칭으로 쓰여졌는 바,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 구절을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인정하신 바 있다(마 24:30; 26:64; 막 13:26).
이에 따라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임하셨고 그의 재림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자는 전우주적 통치적(권세와 영광과 나라)을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탁은 그의 흠없음(사 53:9)과 속죄 사역(사 53:5, 6), 그리고 부활을 통한 인류의 심판자의 자격을 입증하셨던(행 17:31; 롬 2:16) 사실에 의거한 것이다.

one like the son of
1247. 바르(bar) בַּר 스트롱번호 1247

1. 아들. 2. 손자
발음 [ bar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4회 사용

뜻풀이부

1. 명사, 남성 아들, 잠 31:2, 시 2:12
2. 명사, 남성 손자, 스 5:1.


man
606. 에나쉬( ’ĕnâsh) אֱנָשׁ 스트롱번호 606
발음 [ ’ĕnâsh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5회 사용

참고 정보 / 문법설명
582와 동일, 강조형 אָנָשָׁא, 단 2:38, אֱנָשָׁא, 단 5:21, אֱנוֹשָׁא, 단 4:13, 복수, בְּנֵי אֱנָשָׁא, 단 4:14, 사람, 사람들, 단 4:29, 30.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 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 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스가랴 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ναί )는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אָמֵן )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Greijdanus, Morris, Mounce).

אָמֵן 스트롱번호 543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뜻풀이부

1. 형용사 확고한, 성실한[비유적으로 사용될 경우].
2. 부사 참으로, 진실로.
3. 부사 아멘, 렘 28:6, 시 41:14(13).


* 그러하리라(나이)  ναί 스트롱번호 3483

1. 예.   2. 옳습니다. 3. 맞습니다
발음 [ nai ]

* 아멘  ἀμήν 스트롱번호 281

1. ‘굳건한’. 2. 고전 14:16. 3. 마 5:18
발음 [ amēn ]
어원 / 히브리어 543에서 유래

* 히브리어 543. אָמֵן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재림(再臨) / 두 재, 임할 림


 1. 다시 옴
 2. 기독교(基督敎)에서 때가 이르면 다시 인간(人間)을 심판(審判)하러 예수(Jesus)가 이 세상(世上)에 나타난다고 하는 말.

* 인터넷 한글 성경에서 "재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단 한 구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강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39구절로 나타났다.
  (구약에서는 23회, 신약에서는 16회)

강림(降臨) / 내릴 강, 임할 림

 1. 신(神)이 하늘에서 속세(俗世)로 내려옴.

"강림"이란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이고 "재림"은 두번째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이 두번째 다시 오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표현이나 또 목사님들의 설교에 강림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재림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의 초림과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입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도 강림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림이라 하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일로 이해하게 되며 또 그렇게 받아드립니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성경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란 말로 표현하였으며 이 같은 주님의 강림은 주님이 이 세상에 두번째 나타나시는 일, 즉 재림이 되시기 때문에 강림이란 이 낱말은 주님의 두번째 나타나시는 사건을 의미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라고 표현하나 "재림"이라고 표현하나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개역 성경에서 "강림"이라고 번역된 말은 모두 헬라어 "파루시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보통 "주의 강림"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파루시아"라는 말은 "출현, 임재, 나타남, 현존, 도래"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주의 강림이란 말은 "주님께서 나타나심(오심)"을 의미합니다.

παρουσία, ας, ἡ 스트롱번호 3952

1. 현존.  2. 오심.  3. 고후 7:6, 7
발음 [ parŏusia ]
어원  / 3918의 현재분사에서 유래

뜻풀이부

1. 현존, 임재, 고후 10:10.
2. 오심, 강림, 내림.
  a. [인간에 대해서] 고후 7:6, 7, 빌 1:26.
  b. [특수한 전문 술어로서 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에 임하시는 일을 가리킴] 재림, 마 24:3, 살전 4:15, 약 5:7.
  c. [적그리스도의 출현] 살후 2:9.


* 그러나 때로 다른 성경(표준새번역-고전 15:23, 벧후 1:16)성경에서 이 말은 "재림"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을 주님의 첫 번째 강림으로 보고, 마지막에 오시는 것을 주님의 두 번째 강림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의 강림과, 주의 재림은 그 의미가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같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새번역)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새번역)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권능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예수님의 재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바울의 종말론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면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입니다.

​교회시대 - 공중강림(휴거) - 7년 환난 - 지상재림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여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를 볼 때 공중재림은 공중강림이라 불러야 맞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를 읽어 보면 주의 강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강림과 재림은 구분되어 불러야 할 것입니다.
대게 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재림이라는 단어 보다 강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데살로니가전서1:1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데살로니가전서2:19)"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3:13)"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4:1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5:23)"

데살로니가전서는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5장까지 예수님의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입니다.

강림과 재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강림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은 예수께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이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시어 믿는 자들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을 성도들에게는 휴거가 되은 것입니다.

휴거는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중강림은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믿는 자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외에는 볼 수 없습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임하실 때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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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부, 성령, 성자를 우리는 삼위일체로 고백을 합니다.
사도요한만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도 이런 내용으로 인사말을 합니다.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일하심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복음 때문에 인하여 흩어진 나그네들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소식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서는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차례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말을 다른 말로는 송영이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찬송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서신에서 이런 삼위일체의 내용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교회에는 은혜와 평강의 소식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일하심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자들은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 말씀을 믿게 된 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기쁨의 소식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핍박 중에 이런 인사는 은혜와 평강이 주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이 설렘이 됩니다.

설렘이라고 하니 어떤 정리전문가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할 때에 설렘이 없는 물건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면 오늘 읽은 말씀으로도 충분히 감사가 되고 설렘이 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겁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고후 4:18).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났기에 위에 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골 3:1~5).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4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알파와 오메가와 전능한 자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란 처음과 끝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6과 22:13절에서도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란 이 역사 속에서만 있는 말입니다.
영원에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에서 영원의 세계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입니다(시 90:2).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라는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유 1:25).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차 오실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입니까? 성령 하나님입니까? 성자 하나님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인사말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다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타락한 이후의 인간이라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만 모여도 의견의 일치가 안 됩니다.
일치가 되는 경우는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때에 잠시 일치가 됩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 한 편을 들어버리면 한 때 같은 편이었던 자가 또 원수가 됩니다.
이런 우리가 삼위일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신을 말합니다.
그런 신을 크게 대별해 보면 내재론 적인 신과 초월적인 신이 있습니다.
만유에 내재하는 신이라면 범신론이 됩니다.
초월적이라고만 하면 세상과 관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만이 관계하시고 소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내재하시고 초월하십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은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안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 속에 ‘내주’하시며, 동시에 성령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밖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신다(송영의 삼위일체론 69P).”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따로 일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일하십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4절과 8절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그 하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그 분은 사람들에게 찔리신 그 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4절과 8절의 표현은 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손에 찔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은 지금 영광 중에 계십니다.

우선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각인의 눈이 그를 찌른다는 말씀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계시록의 거의 모든 내용이 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내산에 오심도 강림이며 이 땅에 아기로 오심도 강림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보내신다는 성령님의 오심도 강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이 역사를 마감하시면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도 강림이지만 구별하기 위하여 재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에도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앞으로도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중에 이 환상을 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인가 같은 이가 하나님께 인도되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이 되고 재림으로 완성이 됩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만들어내는 나라가 아니라 그 아들의 피로 세우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피로 자기 백성을 해방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겁니다(계1:4~6).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도요한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도 핍박을 받고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습니다. 요한 자신도 지금 밧모섬에 유배 중에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내용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로 무엇을 승리하셨는지 밝히 보여주심으로 지금 환난과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으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는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를 가리는 모습으로 구름가운데 임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구름이 하늘에 있는 구름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4:15~18절입니다.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시는데 그곳은 구름이 가리고 있습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과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구름이 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견디지 못합니다(출19장).

마태복음 17:1~8절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장면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장면과 겹쳐집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들어서 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한 말씀입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선지자 엘리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나타나실 때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경계를 정하라고 합니다. 경계를 뚫고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시내산의 강림을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셨다고 하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사도행전 1:8~11절입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정명석이라는 이단의 교주를 추종하는 어떤 사람이 그가 구름을 타고 온자라고 합니다. 성추행으로 감옥살이 하고 작년인가 나온 사람인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니 구름을 해석하기를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말을 합니다. 히브리서 12:1절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란 히브리서 11장에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단 교주 주변에 구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그가 재림의 주라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집단 모임을 보면 교주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중앙 집중화 합니다. 히틀러의 집회나 북한의 집회나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 이단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주님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보는 하늘의 구름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찾아보니 빽빽한 구름으로 불과 연기로 표현하며 빛나는 구름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그 영광의 나타남 속에서 각인이 그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장의 말씀처럼 재림 하실 것이지만 그 전에 성령의 강림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의 보증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갔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봅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다니엘서와 출애굽기와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분을 각인이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펴봐야 합니다.

스가랴 12: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오늘 본문 7절과 스가랴 본문의 차이점을 보아야합니다. 스가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초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서 마음에 찔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찔리신 그 예수를 보고서 애통을 하는데 독자를 잃고 애통하듯이 애통한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묵시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입니다. 구약의 모든 믿는 자들은 십자가로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 곧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가 선포되었을 때에 그들은 애곡함이 마땅합니다(벧전3:19).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자는 로마 병사 한명입니다. 그런데 그 찌른 자들도 본다는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이 됩니다. 대제사장도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합니다(마26:64~68, 막14:62~65).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으려고 가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시에 누가 애곡을 하겠습니까? 그를 찌른 자들이란 땅에 있는 모든 족속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란 하늘에 속한 자들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말만 듣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신 분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듣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의 땅의 말이 들립니까? 하늘의 말이 들립니까?

요한복음 3:31~36절입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십자가 지신 그 아들의 말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 자는 진노가 임하는데 이들이 바로 땅에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54절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그 주님께서 재림하셔 자기 백성을 하늘로 이끌어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입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2)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곧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만 오셨고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죽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들이 부활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또는 부활이 지나갔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심지어 고린도교회에서는 부활이 없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 안에서 자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주께 붙은 자들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휴거되어 항상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휴거되어 7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대 환난이 있고 그곳에서 순교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 환난이 끝난 후에 공중에 휴거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천년왕국이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해석을 합니다.
시간과 공간도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질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가 자기 뜻을 다 이루시고 마감하실 때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이 불리고 주님의 재림의 순간은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성경의 기록이 본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수평적인 차례대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시간을 빼 버리면 수직으로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수평적 순서가 아니라 수직적으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일어난 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지고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은 이미 묵시적으로 그리스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 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순서상 먼저 나타나는 것이며 그 때에 땅에서 살아있는 예수 믿는 자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에 이끌려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자들 곧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그 찌른 자를 보고 애곡하는 겁니다.
이때 애곡하는 자들은 믿지 않은 모든 자들이 애곡합니다.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를 거리끼고 어리석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 분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이 드러나기에 믿는 자들은 구름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가서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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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재림과 지상재림’, 그럼 예수재림 두 번?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은 모든 믿는 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주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성경구절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구절이 아마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하)일 것이다.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전 16:22)란 용어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의미로 잘 알려졌다.

문제는 일부 이단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분류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 일어난다는 말이다.
어떤 이단측에서는 ‘공중재림과 지상강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재림과 강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재림 두 번’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헬라어까지 사용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지만 용어상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구분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렇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먼저 공중에 재림하여 7년을 머물게 된다고 한다.
그 때의 공중의 장소를 대기권 시작점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이 그곳으로 끌어올려(흔히 ‘휴거’라고 말한다)가 예수님을 맞이한다고 한다.
예수님과 함께 7년을 공중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때 지상에서는 소위 ‘7년 대환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인들은 지상에 남겨지게 된다.
그들은 7년 대환란의 극심한 고통의 때를 참고 견디어야 한다.
7년 후 예수님의 지상재림 때까지다.
배도하면 끝장이다.

지난 1992년 한국사회는 시한부종말설로 몸살을 앓았다.
‘92년 10월 28일 예수재림’설 때문이다.
이 때 대부분의 시한부종말설의 기본 스토리(story)가 위와 같은 내용이다.
당시 시한부종말론자들은 ‘미련하게 7년 대환란을 겪지 말고, 10월 28일 재림을 믿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과연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일까?
소위 ‘이중재림’을 주장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이다.
그 구절이 이중재림을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개역개정).




위 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음을 가지고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짐을 당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NASB 성경도 크게 다르지 않게 기록해 놓았다.
의역에 좀 더 많이 기울어진 공동번역이나 그 중간적인 번역 원칙을 가지고 있는 NIV도 비슷하다. 참고해 보면 아래와 같다.

“For the Lord Himself will descend from heaven with a shout,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 Then we who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thus we shall always be with the Lord”(살전 4:16~17, NASB).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살전 4:16~17, 공동번역).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살전 4:16~17, NIV).

문제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말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곳에서 7년 동안 머무른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만약 위 성경구절(특히 밑줄 친 부분)에 ‘공중 머무름’의 의미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그 다음 문장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하).

영문 표현을 보면 ‘always’나 ‘forever’가 들어있다. 계속해서 또는 영원히 그 공중에서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공중에서 ‘항상’, ‘언제나’,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는 것은 다른 성경구절들의 내용과 상충된다.

공중재림을 입증하려고 몇몇 성경구절을 더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1:11과 요 14:3이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개역성경).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위 두 구절이 공중재림, 특히 공중 머무름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을 언급하고 있는 사도행전 1:11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공중에서 7년 동안 머물다가 감을 본 것이라 해야 한다. 그래야 ‘본 그대로 오시시라’는 구절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14:3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마련할 처소가 공중에서 7년간 머무를 장소라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과연 위 두 구절을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가.

살전 4:16~17은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즉 이중재림을 말해주는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이는 같은 성경인 살전 5:2의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이라는 내용과 어긋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골 3:4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예수님 재림 때 그의 자녀들이 ‘모두 함께’ 영광 안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구절과 연결을 지을 수 있다.

이필찬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이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본문(살전 4:16-17)에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은 후 어느 일정 기간 동안 공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이필찬,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인의 삶 - <그 말씀> 2000년 8월호, 도서출판 두란노, p.87).



 

다시 말해 예수님이 재림할 때 그의 자녀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은 맞지만, 그곳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영접한 후에 곧바로 이 땅으로 강림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도적과 같이 이른다’(살전 5:2)는 것과 ‘모두 함께 영접’(골 3:4)한다는 구절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F.F 부르스는 살전 4:16~17의 강조점을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4:17 하)에 두었다(F.F 부르스, 데살로니가전후서 - <WBC>, 솔로몬, 2000, 194).
‘공중’이라는 의미가 그 구절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다.
‘함께 있음’을 축복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이라 강조했다.
즉, 이중재림이라는 없는 의미를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존 스토트도 ‘공중’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존 스토트,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 - BST 시리즈, IVP, 2007, p. 140).

예수님의 재림은 이중적인 게 아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살전 4:16-17 역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 1:7과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모든 이들이 그 사건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뿐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중 소망의 표현이다.
어느 것 하나도 이중재림을 의미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