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대한 "선입견(先入見, Prejudice)"과 "오해(誤解, Misunderstanding)"를 버려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Victory of Jesus Christ)"를 말씀한다.
요한계시록은 "신비주의(神秘主義, Mysticism)"와 "신비(神秘, Mystery)"를 구분해야 한다.
신비주의는 알 수 없기 때문에 포기하거나 또는 어떤 사람의 해석에 의지하여 믿으려는 것
이와 같은 자세가 이단들을 일으켰다.
요한복음 16:12-13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13.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진리의 성령이 오셨는가?
아니면 아직 오시지 않았는가?
진리의 성령은 이미 오셨다.
1. 예수 그리스도
2. 오순절 성령 강림
신비는 알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주실 것을 믿고 나가는 것
이와 같은 자세는 계시를 통하여 깨닫게 하신다.
요한계시록 1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2.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것 같더라
17. 내가 볼때에 그 발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9.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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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의 공중 재림의 사건
언제(시기)에 촛점을 맞추면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사례 / 서울 시내 버스에 666번 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어느 교인이 목적지만을 생각하고 버스에 올라탔을 때 마침 그 버스의 번호가 666이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교인은 운전기에게 버스를 세워달라고 강요하므로 버스 안의 승객들이 놀랐다고 한다.
계시록에 사용된 상징적인 용어가 영적으로 두려움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사례 / 뉴욕에서 롱아일랜드로 가다보면 건물 번호가 666이라고 크게 적힌 것을 볼 수 있다.
미국인들은 어느 누구도 그 수에 대해서 신비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유독 한국인들 특히 계시록을 좋아하는 특정한 교인들에게는 마치 그 건물이 악마의 빌딩처럼 생각한다.
요한계시록의 세 가지 촛점
1. 종말
2. 새 하늘 새 땅 새 사람
3. 새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계시(아포칼립시스, ἀποκάλυψις )
아포 : 벗긴다
칼립시스 : 감춘 것
다니엘 2:28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
요한계시록 1: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다니엘 2:44이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해석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이비 이단이 사람들을 미혹하고, 더 나아가 잘못된 종말론에 빠져 반사회적이고
비밀스러운 종파가 되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요한계시록 7장과 14장에 나타난 ‘십사만 사천’이라는 숫자에 현혹되어,
‘인 맞음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요한계시록을 학습하고 과거시험 보듯이 시험보는 신천지 교인들의 모습이 우습기도 하지만,
요한계시록 말씀이 얼마나 그들을 세뇌하였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요한계시록이라는 책 제목은 계시록 1:1이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계시 혹은 묵시라는 말은 헬라어 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에서 온 말이다.
구약 헬라어 성경에는 명사 ἀποκάλυψις (아포칼립시스)는 전혀 나오지 않고, 다만 외경 집회서에 단 한 번 나온다.
하지만 동사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는
빈번하게 등장한다.
노아가 방주 뚜껑을 열었다(창 8:13)
율법이 금하는 하체를 드러내다(성적 방종)를 지칭하는데 이
헬라어가 쓰였다(출 20:26; 레 18:6, 8, 9; 20:11; 신 27:20).
언급하다(룻 4:4), 드러내다(삿
5:2), 나타나다(삼하 3:7) 등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이런 일반적 뜻과 함께, 신적 계시나 현현에 대해서 히브리어
גלה(가라)의 번역어로서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가 사용되었다(삼하 9:15).
하나님의 비밀스러운 계시가 드러나다의 의미로서 이 단어는 ‘묵시록’ 장르에 속하는 다니엘서에 등장한다.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ἀπεκαλύφθη ,
revealed 부정과거 수동태),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리라”(2:19)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ἀποκαλύπτω), 어두운 데에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2:22).
다니엘서는
ἀποκαλύπτω(아포칼립토)라는 용어를 하나님의 신적이고 비밀스러운 계시행위에 적용하여 특별히 사용한다.
다니엘서 7장부터
나타나는 환상들은 신구약 중간시대에 있었던 헬라 왕조의 유대교 박해상황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말의 희망을 전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은 로마제국에 의한 기독교신앙의 핍박 상황에서 역사의 종말을 계시록의 저자가 성도들에게 위로와
소망으로 전하고 있다.
이런 종류의 묵시문학은 신구약 중간시대나 기독교 신앙 박해 시대에서 저자 미상의 책들로 많이 출현하였다.
요한계시록에서
동사 아포칼립토(ἀποκαλύπτω)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다만 명사 ἀποκάλυψις(아포칼립시스)가 1:1에 나타날
뿐이다.
환상과 관련된 계시(아포칼립시스)가 나오는 다니엘서나 요한계시록은 박해의 상황을 전제하고 있고, 특별히 순교자를
칭송하며, 신앙의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한다.
순교자는 궁창의 별처럼 빛나고(단 12:3), 주님과 함께 천년 통치하는 첫째
부활의 참여자가 된다(계 20:6).
이 책들은 미래적 사건이나 종말의 때를 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지 않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종말의 때, 혹은 메시아의 나라의 시기를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분명한 거부와 부정을 강조하고 있다(눅
19:11; 행 1:7).
요한계시록을 ‘때와 시기’에 관한 책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오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인, 나팔,
대접의 환상 시리즈는 이미 선포된 예수의 종말 예언(막 13장)에 대한 반복과 강화일 뿐이며,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선지자
전승’에 속한 종으로서(계 22:9), 재앙과 종말, 회복과 구원에 대한 구약성경의 이야기와 선지서의 예언에 나오는 이미지와
상징을 사용하여, 자신이 처한 로마제국 상황에 적용하고 해석할 뿐이다.
때와 시기를 특정하는 시한부 종말론으로 해석할 수 없는
책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숫자는 결코 문자적 의미가 없고 상징적일 뿐이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신적 권위로 로마와 황제를 우상숭배하는 시대적 조류에 반응하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대해 칭찬과 책망을
하고 있다.
밧모 섬에 유배당하여 주의 날에 교회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선지자 요한은(계1:10), 환상 가운데 보게 되는
하늘의 예배에 울려 퍼지는 승전가를 듣기도 하고 종말의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계시는 편지형식으로 교회에 전해지고,
애굽의 군사들이 홍해에 수장된 후에 모세가 승리의 노래를 부른 것처럼, 모세의 노래는 이제 어린 양 예수의 노래가 되고, 교회의 새
노래, 즉 승전가가 된다(계 15:3).
요한계시록은 결코 ‘때와 시기'에 대한 묵시가 아니다.
애굽과 바벨론처럼 로마제국도
하나님의 역사 앞에 무너지는 제국이 될 것이며, 종말은 땅을 망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되고, 성도들에게는 구원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전하는 책이다.
모든 사이비 이단의 요한계시록의 묵시해석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말을 사용할 때(갈 1:12),
그 계시(ἀποκάλυψις )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지칭한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이 그의 아들 예수를 이방에 전하도록 그에게 계시로
나타나셨다(ἀποκαλύπτω, 갈 1:16) 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되고(롬 1:17), 믿음의 때를
계시한다(갈 3:23)고 선포한다.
계시라는 용어에서 그리스도의 다시 나타나심과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라는 묵시적 종말을
이야기하지만(고전 1:7; 살후 1:7),
바울에게서 계시는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 자체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계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주려는 계시인 것이다.
‘때와 시기’에 대한 계시는 없다.
주님의 말씀처럼, ‘너희가 알 바가 아니다’(행 1:7).
때와 시기의 묵시를 말하면 다 가짜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에 대한 기독인의 느낌
1. 잘 알 수 없는 내용이다
2. 설교자들의 설교 본문으로 부분적으로만 인용한다
3. 이해가 잘못 되었다
칼빈 : 주석을 집필하지 않았다.
칼빈이 마치 계시록을 이해하지 못하여 주석을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계시록에 대한 설교와 해석이 너무 다양하므로 칼빈까지 가담하여 더 어렵게 하지 않으려고 의도하였다.
요한계시록은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성령께서 기록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너무 많은 설교와 해석들 때문에 혼란을 초래하였기 때문이다.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 아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의 특징
1. 계시의 책 - 묵시의 책
2. 예언의 책 - 미래의 책
하나님의 심판과 승리를 미리 보여주므로 주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경고의 메시지가 된다.
반면에 믿는 자들에게는 오늘의 고통과 핍박을 능히 이길 수 있도록 격려한다.
3. 환상의 책 - 그림의 책
왜 그림으로 말씀을 주셨을까?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환희를 언어와 글자로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림으로 보여주셨다.
(예) 뉴욕이 얼마나 큰가?
맨하튼에서부터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뉴욕주에 해당한다.
(예) 서울 / 5톤 트럭으로 쓰레기가 2000대 분량으로 쏟아지는 도시
(예) 로마 제국에게 메시지의 의미를 감추려는 의도
묵시문학이란?
다메섹 도상에서 본 환상은 묵시문학에서 소개된 것
구약의 묵시문학 / 다니엘, 에스겔, 스가랴 등
예언의 책으로 이사야 예레미야 소선지서 등
계시와 예언의 차이
계시는 종말에 나타나는 것(종말 징조)
예언은 종말에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의하여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를 말씀한다(과정).
종말이란?
십자가 사건에서부터 다시 오시는 날까지의 전체의 시간
역사의 끝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종말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고 하겠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분은 누구있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만이 종말의 시간을 바르게 이해 할 수 있다.
안식교와 유대교의 경우 2천 년 전의 십자가 사건의 죽음은 예수가 아니다.
기독교의 경우 이미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다시 오실 예수(재림)
다니엘 8:1나 다니엘에게 처음에 나타난 이상 후 벨사살왕 삼년에 다시 이상이 나타나니라.다니엘 11:45그가 장막 궁전을 바다와 영화롭고 거룩한 산 사이에 베풀 것이나 그의 끝이 이르리니 도와줄 자가 없으리라.다니엘 12:1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요한계시록 5:5-6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 어린 양이란 죽임을 당한 어린 양 즉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분을 가리킨다.
성경의 첫번째 책은 창세기(Genesis)
마지막 책은 요한계시록(Revelation)
성경의 정경화 작업에서 이렇게 순서를 배열한 까닭은 무엇일까?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이 처음과 마지막 순서인 이유
창세기는 창조의 시작과 믿음의 역사의 시작에 대해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신 이야기에서 시작해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그 자손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의 시작을 연결지어 가르쳐 줍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 66권 중 가장 마지막에 배열했는데, 그 이유는 세상과 역사의 종말에 대해 기록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 요한계시록의 핵심주제
요한계시록은 역사의 종말 후에 새 하늘과 새 땅(新天地)이 도래할 것과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할 저 천국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려면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음도 알려 줍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초림) 하나님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는데, 마지막 때에 심판주로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재림)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종말과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는 예수님의 재림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기에 앞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공통적으로 느끼는 마음은 첫째, 요한계시록은 난해한 구절이 많아서 이해하기에 매우 어렵다는 것입니다. (난해성) 둘째, 요한계시록은 내용이 매우 복잡하다는 것입니다. (복잡성) 셋째, 요한계시록은 상징적인 요소가 많아서 무슨 내용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상징성)
◆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공부해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해 잘 알고 싶어하는 갈망이 있으나, 해석에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들이 있으므로, 대부분의 교회들은 요한계시록에 대해 자세히 가르쳐 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점을 이용하여 이단들은 요한계시록 연구에 몰두하여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그들은 어렵고 복잡한 내용을 문자적으로 단순하게 자기들의 입맛대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단에 미혹 당하지 않으려면 진리의 내용을 제대로 정확하게 배워야만 합니다.
◆ A(알파)와 Ω(오메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할 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역사에는 시작(A)과 끝(Ω)이 있다는 것입니다.
A(알파)는 영어 알파벳의 맨 첫 글자인 A(에이)에 해당하는 헬라어이고, Ω(오메가)는 영어 알파벳의 맨 끝 글자인 Z(제트)에 해당하는 헬라어입니다. 'A(알파)와 Ω(오메가)'라는 것은 '처음과 나중'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함으로써 A(알파)와 Ω(오메가)이신 하나님은 역사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 출처 : 두산백과)
◆ 사도 요한의 저서들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요한(요한은 자신을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자'라고 표현함)이 기록한 성경은 요한복음, 요한 1서, 요한 2서, 요한 3서, 요한계시록 등 모두 5권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 관하여 쓴 책이고, 요한 1,2,3서는 '사랑'에 관하여 쓴 책이며, 요한계시록은 종말과 주의 재림 및 천국에 대한 '소망'에 관하여 쓴 책입니다.
사도 요한이 인생을 오랫동안 살면서 깨달은 결론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형제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요한 1,2,3서의 주제이자, 성경 전체의 주제인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인생 말년에 밧모섬에 있을 때 하나님이 요한에게 보여 주신 계시에 관해 기록한 책입니다. (9절)
요한이 밧모섬에 있었다는 것은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요한은 왜 밧모섬에 유배되어야 했을까?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 보아야 합니다.
◆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
예수님의 사후, 제자들이 복음을 전파하던 초대교회시대는 역사적으로 1C(1세기)에 해당되는 시기로, 로마의 10대 황제가 전 세계를 지배할 때입니다.
즉, 초대교회시대이던 1세기는 교회가 환난과 박해를 심하게 당하던 로마시대였던 것입니다.
그 중 특히, 네로 황제와 도미티안 황제에 의해 기독교는 심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므로, 로마의 황제숭배사상에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를 가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한 것은 기독교를 가장 심하게 박해했던 도미티안 황제때의 일입니다.
로마 황제의 박해가 심하다 보니, 요한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신 것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못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은 로마 황제를 가리키지만, 로마 황제가 알아듣지 못하도록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 계시의 의미와 내용
'계시(啓示)'란 '가려졌던 것을 열어서 보여 준다'는 의미입니다. '요한계시록'이라 함은 하나님이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을 요한이 기록했다 하여 붙여진 제목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천주교에서는 Apocalypse of St. John이라 하고, 개신교에서는 Revelation of St. John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명에 따라 요한이 기록한 계시의 내용은 요한이 본 것(과거), 지금 있는 것(현재), 장차 될 일(미래)입니다. (19절)
즉, 요한계시록에는 미래(종말)에 관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함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 현재, 미래의 시제가 뒤죽박죽 뒤섞여 있기 때문에 내용이 복잡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알면, 쉽게 분간할 수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의 구조
요한계시록의 1장은 서론 부분이며, 2~3장은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며, 4~22장은 장래의 일(대환난과 주의 재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과거의 일(사건)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가 1C 당시 로마로부터 박해를 당하던 모습입니다.

당시 밧모섬 주변에 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오늘날의 터키 지역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지도)
그런데, 놀랍게도 1세기때의 일곱 교회의 모습이 오늘날 현대 교회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장래의 일이란 현재 환난과 박해를 당하는 것처럼, 장차 주님의 재림때에도 큰 환난과 박해가 있을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4~18장에는 마지막 때 일어날 세 가지 대환난(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에 관한 내용이 나오고, 19~22장에는 장차 다시 오실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재림 이전에 교회에 큰 환난이 있을 것이며, 그 환난은 점점 강도가 심해질 것이지만(4~18장),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새 하늘과 새 땅을 완전한 승리와 더불어 주실 것이므로,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9~22장)
그러므로, ♥우리는 소망 가운데 예수님이 오심을 고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 라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 요한계시록의 개요
① 요한계시록의 저자 : 사도 요한
② 요한계시록의 기록시기 : 로마시대(로마 황제에게 기독교가 박해를 받던 1세기경)
③ 요한계시록의 기록장소 : 밧모섬
④ 요한계시록(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수신인 :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과 로마 황제로부터 환난과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
◆ 요한계시록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방법
① 과거주의적 해석 : 1세기때 일곱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므로, 과거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② 미래주의적 해석 : 장차 종말과 주님의 재림때 일어날 일이므로, 미래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③ 역사주의적 해석 : 과거 초대교회때부터 미래의 종말의 때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에서 이해해야 하므로, 역사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④ 이상주의적 해석 : 상징적, 신비적, 영적인 내용이므로, 이상적인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메시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메시지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①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영생복락과 새 하늘과 새 땅(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져야 한다.)
②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한다. (비록, 환난이 있더라도 바로 믿는 사람들은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③ 영적 싸움에 대한 결단을 해야 한다. (악한 마귀가 환난과 어려움을 주지만, 영적 싸움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믿음의 전신갑주(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영적 무장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란? 하나님의 성도들이 마귀.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반드시 착용해야 할 거룩한 의복으로서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의 신,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구성되어 있다. (에베소서 6:11~17 참고)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공부함으로써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과 예수님을 통한 최후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영적으로 무장하여 오늘도 믿음생활을 잘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고대하며...
요한계시록을 천주교에서는 '요한묵시록(Apocalypse of St. Joh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렇다면, 계시와 묵시의 차이는 무엇일까?
◆ 계시(啓示)와 묵시(默示)의 차이
'계시(啓示)'와 '묵시(默示)'는 같은 어원에서 나온 단어들입니다. 두 단어의 어원은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 라는 헬라어로서, '감추인 것을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여기에서 파생된 영어단어인 '아포칼립스(apocaypse)'의 뜻은 계시(계시록), 묵시(묵시록)입니다.
계시와 묵시 모두 '감춰진 것을 열어서 보여 주는 것'이라는 의미는 같습니다. 그러나, 두 단어의 쓰임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계시는 감춰져 있던 하나님의 비밀한 뜻을 성령을 통해 열어 보여 준 것이고, 묵시는 종말, 대환난 등 격변기에 장차 나타날 일들에 대해 예언한 것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쉬울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이 요한에게 계시로 보여 주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 묵시문학이란?
박해와 환난, 심판과 종말 등 대격변기에 나타날 일들에 대해 꿈과 환상으로 본 것을 쓴 문학 쟝르를 '묵시문학'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도 '묵시문학' 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일반적인 묵시문학과는 구별되는 '성경적 묵시문학'입니다.
말라기 이후 약 400년간의 암흑기에 유대민족에게는 유대 묵시문학이 유행했습니다.
누군가 영웅이 출현하여 오랜 세월 동안 지속된 암흑시대를 속히 종결짓기를 바라는 집단심리가 반영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묵시문학은 새 시대와 새 인물을 열망하는 격변기의 문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묵시문학의 특징은 종말과 심판, 대재앙 등에 관하여 강렬하고 충격적인 이미지로 묘사하며 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므로, 내용이 난해하고 복잡해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요한계시록 속에 나타난 상징성과 복잡성과 난해성은 묵시문학의 요소입니다.
이러한 요소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내용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입니다. 내용이 복잡하고 어렵다 보니, 요한계시록은 읽기에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먼저 핵심주제를 파악한 후, 어려운 부분은 나중에 읽도록 빼 두고, 전체적인 큰 덩어리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의 핵심주제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박해와 대환난, 대재앙이 있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예수님의 재림이 있으며, 예수님의 승리와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하면 우리들은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하며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대한 소망과 승리에 대한 확신으로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고 (마라나타) 영적 싸움에 대한 결의를 함으로써 현실 속의 모든 환난을 이겨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와 사이비, 이단들의 악용
요한계시록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은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두려워합니다. 장차 다가올 종말때 대재앙과 대환난과 심판의 모습이 무섭게 묘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일곱 교회와 환난과 박해를 받던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글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고 나면, 소망을 갖게 되고 믿음이 더 좋아지고 든든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므로, 비록 대환난이 오더라도 예수님이 다시 세상에 오신 이후 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때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이비와 이단은 사람들에게 겁을 주어 구원의 확신을 흔들리게 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도록 요한계시록을 악용하고 있습니다.
또, 사이비와 이단은 자기 입장에서만 단편적으로 치우쳐 성경을 (특히 요한계시록을) 해석합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을 해석할 때는 한쪽 관점에 치우치지 말고, 전체적인 관점에서 통합적이고 종합적인 시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모든 성경을 해석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일곱 교회에 주신 메시지는 과거 1세기 때의 일곱 교회들뿐 아니라, 오늘날의 교회들에게 주시는 메시지로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객관적으로 성경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도표를 활용하여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 좋습니다.

위의 도표에서와 같이 요한계시록의 구조는 크게 4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요한계시록의 구조 (복습)
1. 서론 (1장)
1) 시제 : 과거 (요한이 본 것)
2) 내용 : 계시를 주시는 예수님
3) 핵심주제 : ♥천국에 대한 소망, 승리에 대한 확신, 환난의 극복과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 대한 결의
2.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2~3장)
1) 시제 : 현재 (지금 있는 일)
2) 내용 :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
3) 핵심주제 : 일곱 교회의 장.단점 분석과 이상적인 교회상 제시 (오늘날의 교회의 모습에 적용)
3. 말세의 대환난 (4~18장) ㅡ 복잡하고 어려운 부분
1) 시제 : 미래 (장차 될 일)
2) 내용 :
① 하늘의 심판 보좌 (4장)
② 일곱 인 재앙 (5장~8장 4절)ㅡ 3대 재앙 (주요계시)
③ 일곱 나팔 재앙 (8장 5절~11장)ㅡ3대 재앙 (주요계시)
④ 대심판 예고 (12~14장)
⑤ 일곱 대접 재앙 (15~18장)ㅡ3대 재앙 (주요계시)
★ 3대 7중 재앙
① 3대 재앙이란?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
② 3대 7중 재앙이란? 3대 재앙이 각각 7단계를 거쳐 나타나는데, 점점 재앙의 강도가 세진다.
★ 주요계시와 삽입계시
① 주요계시 : 3대 재앙 (일곱 인 재앙, 일곱 나팔 재앙, 일곱 대접 재앙)
② 삽입계시 : 3대 재앙에 각각 3개씩 삽입되는 계시
ⓐ 여섯 인과 일곱 인 사이 (7장)
ⓑ 여섯 나팔과 일곱 나팔 사이 (10장~11장 13절)
ⓒ 나팔 후 대접 사이 (12~14장)
㉮ 삽입계시들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 그러나, 삽입계시는 핵심이 아니므로, 집착할 필요는 없다.
㉰ ♥이단들은 복잡하고 난해한 삽입계시를 집중공략하고 자기 맘대로 해석하여 사람들을 미혹한다.
(예를 들어, 14만 4천과 12뿔에 대한 억지의미 부여 등...)
③ 핵심주제 :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일어나는 사건들
4. 종말 (19~22장)
① 시제 : 미래 (장차 될 일)
② 내용 : ♥재림과 대심판,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 승리와 영광 중 왕노릇
③ 핵심주제 : 새 하늘과 새 땅
◆ 요한계시록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
♥먼저, 1~3장을 읽고 19~22장을 읽은 후, 맨 마지막에 4~18장을 읽는다.
① 1~3장은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한 서론 부분과 일곱 교회의 모습에 관한 내용이다.
② 19~22장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영원한 저 천국(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수님과 함께 왕노릇 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③ 4~18장은 대환난에 관한 부분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이다.
(특히, 중간 중간에 삽입되는 삽입계시는 매우 복잡하지만, 핵심은 아니므로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요한계시록의 대주제는 환난이 있더라도 주님이 오셔서 승리를 주시므로, 잘 견뎌야 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약 한달간 계속되는 요한계시록 강해를 통해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버리고, 제대로 잘 배워서 소망 가운데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며, 종말을 잘 준비하며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천국 도래에 대한 소망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며, 환난과 핍박이 와도 인내하고 영적 싸움에서 이기기를 결단하게 하는 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우리가 교회생활(믿음생활)을 잘 하면 마지막에 주님이 천국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중간에 심판을 통해 알곡과 쭉정이를 가리게 되는데, 이 때 대환난의 모습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한 마디로 교회와 천국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천국은 우리가 소망하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이고, 교회는 현실 속에서 이루어 가는 하나님 나라의 모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영원한 저 천국을 사모하면서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이 땅의 교회에서 천국을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그리스도의 명령》
1. 복이 있는 자가 되어라.
2. 예수님을 바로 알라.
3. 사명을 알라. (사명에 충실하라.)
그리스도의 명령
예수님이 사도 요한에게 명령하신 말씀은 곧 우리들에게도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세 가지로 살펴 보도록 합니다.
1. 복이 있는 자가 되어라. (1~3)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1)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2)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3) "
예수님이 밧모섬에 갇혀 있던 사도 요한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을 계시로 보여 주시고, " 본 것을 글로 기록하라. " 고 명령하셨습니다. (계시의 주체는 예수님이심) (1절)
그래서, 예수님이 보여 주시고 말씀하신 계시들을 요한이 글로 기록한 것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요한은 주님이 말씀하신 것들과 보여 주신 것들을 그대로 기록(말씀하신 것, 본 것만 기록)하였습니다. (2절)
(만일, 주님이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쓰고, 보여 주시지 않은 것을 쓴다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요한에게 명령하신 것은 곧, 우리들에게도 명령하신 말씀입니다.
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3절)
신앙생활은 머리로만(생각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체험을 해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땐 육신의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 신령한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공부하면서 신령한 것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열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영안이 열리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저 이야기는 아무개가 들어야 할 소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들어야 할 소리'임을 깨닫게 됨.)
따라서, ♥열린 눈, 듣는 귀, 깨닫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서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땐 열린 눈, 들을 귀, 깨닫는 마음을 가지고 읽어야 합니다.
열린 것이 중요합니다. 열리지 않고 닫힌 사람에게는 아무리 보여 주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열려 있어야 합니다. 눈과 귀와 마음이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 (로마서 10:17)
♥성경말씀을 읽을 때 성령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므로, 설교를 듣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내게 주시는 음성으로 듣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복이 있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눈), 듣고(귀), 지켜야(행동) 합니다.
2. 예수님을 바로 알라. (4~18)
"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4)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5) "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쓰여진 글입니다. (4절)
4절과 5절은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의 인삿말에 해당됩니다.
요한은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안부인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예수님)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미래에도 계시는 분이십니다.
'일곱 영'(4절)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경에서 일곱(7)은 완전수를 뜻합니다.)
'충성된 증인'(5절)은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 '먼저 나셨다'는 것은 '으뜸', '큰 자'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온 땅의 왕보다 뛰어나신 주권을 가지신 '주권자'라는 뜻입니다. (시편 89편 27절과 골로새서 1장 18절을 참고)
" 내가 또 그를 장자로 삼고 세상 왕들에게 지존자가 되게 하며 " (시편 89:27)
"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천하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 (골로새서 1:18)
" ...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5)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6)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7) "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주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제사장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6절)
주님이 재림하실 땐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며,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우리가 다 알게) 오실 것입니다. (7절)
그러므로, 사이비와 이단의 교주들처럼 우리가 모르게 오는 재림주라면 모두 가짜입니다.
"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 (8)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과거, 현재, 미래의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8절)
"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9),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10)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11) "
사도 요한이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아 밧모섬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어느 날, 예수님이 요한에게 성령을 통해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9~10절)
예수님은 요한에게 지금 보는 것을 글로 써서 일곱 교회에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1절)
◆ 소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들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12),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13),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14),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15),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6) "
요한이 '주님의 음성을 듣고 몸을 돌이켰다' (12절)는 의미 속에 영적인 교훈이 숨어 있습니다.
내가 바라보는 쪽에서만 보면 예수님이 안 보입니다. 눈 앞의 세상만 보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돌아서야(회개해야)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신령하고 복된 것을 볼 수 있도록, 돌이킬 줄 아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해 만나 본 예수님의 모습을 마치 그림을 그려내듯 자세하게 묘사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2~16절)
요한은 환상 중에 본 예수님의 모습을 상징적인 표현법을 사용하여 강렬한 이미지로 묘사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묵시문학'이므로, 묵시문학의 표현기법인 상징적 표현과 강렬한 회화적 묘사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사도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객관적으로 정형화된 모습이라기 보다는 요한의 주관적인 시각에 의한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나 환상 중에, 혹은 기도 중에 예수님의 모습을 볼 수는 있지만, 보여지는 예수님의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본 예수님의 모습을 객관화시켜서 고정적인 이미지로 만들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만나는 특별한 체험은 개인적이며 주관적인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일곱 금 촛대'(12절)는 교회를 뜻하고, '일곱 별'(16절)은 주의 사자를 뜻합니다.
"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17),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8) "
요한은 환상 중에 예수님을 뵙고 두려워서 마치 죽은 자처럼 엎드러졌습니다. (17절)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예수님은 " 나는 알파와 오메가이며, 영원히 살아계신 하나님이다. " 말씀하셨습니다. (18절)
♥주님은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우리들에게도 영원히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 비하(卑下)와 승귀(昇貴)의 예수님
예수님은 높고 높은 하나님이 성육신 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분으로, 초라한 마굿간에서 탄생하시고, 고난과 함께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것을 ♥'비하(卑下)' 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으며,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종말때 심판주로 다시 오실 땐 (재림) 높고 높은 영광의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것을 ♥'승귀(昇貴)' 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요한에게 자신에 대해 보여 주시고 설명하시면서 요한을 격려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바로 알라고...
♥예수님을 바로 믿으려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영광 중에 오실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영광스러운 모습의 주님은 영광과 권세로써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타파하러 오시는 예수님이십니다. (18절)
그 주님이 오시면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왕노릇 하며 살아가게 된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주님을 믿으면 우리도 사망. 권세를 이길 수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위협도 주님의 권세로써 이길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할렐루야~!!!
3. 사명을 알라. (19~20) ㅡ 사명에 충실하라.
"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9)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20) "
'네가 본 것'은 바로 1장에서 주님이 보여 주신 일곱 별과 일곱 금 촛대 환상(과거의 일)을 뜻하고,
'지금 있는 일'은 2~3장에 기록된 일곱 교회들의 모습(현재의 일ㅡ그 당시 관점에서)을 뜻하며,
'장차 될 일'은 4~22장에 기록된 대환난과 주님의 재림과 심판, 종말과 신천신지의 도래 사건(미래의 일)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사도 요한에게 이것들을 기록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19~20절) (요한계시록의 탄생 경위)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를 뜻합니다. (12절, 20절)
단지 7개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숫자 '7'은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일곱 별의 비밀'(20절)에 대해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주의 사자' 를 뜻합니다. (16절, 20절)
우리는 일반적으로 '주의 사자'를 '목회자'로만 알고 있지만, '주님께서 쓰시는 주의 일꾼'을 통틀어 지칭하는 말입니다. 즉, ♥주의 사자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참되게 헌신하는 사람, '사명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에는 일곱 별의 참된 주의 사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들 각자 각자가 ♥하나님이 나를 '주의 사자'로 세우셨다는 '사명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별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한마음 성도들은 한마음 교회의 빛나는 별이 되어야 합니다.
귀한 일곱 별 중의 한 사람, 사명자로서 별과 같이 빛나는 참된 일꾼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우리들에게 하신 명령대로...
열린 눈, 들을 귀, 깨닫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실천하는 복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바로 믿도록 예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내 사명을 바로 알아서 일곱 별, 일곱 주의 사자 역할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교회의 부족함을 채울 줄 아는 사람이 되어 나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수고하는 귀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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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장은 요한계시록의 서론입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22:6-21절은 계시록의 결론입니다. 서론과 결론의 내용을 보면 비슷한 내용이 많습니다. 이 장에서 계시록 1장을 다루고 다음 장에는 계시록의 결론을 다루려고 합니다.
첫째로 요한계시록의 상징성에 대한 문제
많은
목사님들이나 성도들이 계시록에 대해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계시록은 이해하기에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모르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알면 계시록도 이해하기 쉽습니다. 또 계시록은 추상적이고 상징적이라서 어렵다는 것입니다.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것이 많기는 하지만 추상이나 상징성도 이해가 가능합니다. 계시록 1:1에서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라 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계시록을 기록할 때에 구약의 선지서나 신약의 서신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고
기록한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본 것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2절에서도 자기의 본 것( 1, 11절)을 '다 증거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이 무엇을 보았다고 합니까? 그것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비추어서 생각해 볼 때에
요한계시록은 1세기 사람인 사도요한이 21세기 문명을 환상으로 보았다는 것입니다. 문명이라 하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과학, 역사, 기후, 전쟁을 총망라해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1세기 사람이 21세기 문명을 보았는데 그것을 책에 글로
기록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1세기 문명 안에 사는 사람이 21세기 문명을 보고 어떻게 그것을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21세기
문명을 보았지만 1세기 사람이니까 1세기 식으로 기록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요한이 21세기 문명 기기인 기차를 보았다고
합시다. 이것을 기술해야 합니다. 기차는 빨리 달립니다. 그 당시에 빨리 달리는 것은 말입니다. 그런데 그 빨리 달리는 기차가
철로 만들어졌고 철길을 따라 움직이는 21세기 문명을 보고 1세기 식으로 기록하기를, 철마가 철길 위로 달린다고 기술했습니다.
그렇게 기록된 요한계시록을 21세기의 성도들이 볼 때에 추상적이다 상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에 추상적이라고 생각되거던 이것이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
좋은 예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사야 60:8에, '저 구름같이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스라엘 땅으로 오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살았던 이사야가 환상으로 비행기를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는 하늘을 나는 것은 구름과 새들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를 타고 구름 사이로 날아오는 사람들을 27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어떻게 묘사해야 했겠습니까? 저 구름 같이 저
비둘기들이 그 보금자리로 날아가는 것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냐라고 묘사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을 비행기가 없었던 150년 전에
살았던 성도들이 볼 때에 이 구절은 추상적이다, 상징적이다라고 생각했겠지요. 그러나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것이 비행기를
타고 본토로 돌아 오는 사람들을 이렇게 묘사했구나하고 디코딩(DECODING)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차가 생기기 전인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에 살았던 성도들이 이 계시록을 볼 때에 기차에 대한 계시록의 진술인 철마가 철길을
달린다는 말이 추상적이요 상징적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철마가 철길을 달린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우리 성도들은 그것이 추상적인 것이 아니고 기차를 1세기 식으로 그렇게 표현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기차를 보고 또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이해는 점진적인 것입니다. 2천년 전의 성도들이 계시록을
30퍼센트 이해했다면 6세기의 사람들은 40퍼센트, 150년 전의 성도들은 이 계시록을 60퍼센트 정도 이해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성도들은 90퍼센트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안 풀리는 부분이 조금 남았습니다. 예를 들면 계시록
10:4말씀에서 일곱 우레가 발할 때에 요한이 그것을 기록하려고 했을 때에 주님이 그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요한계시록 주석가들이나 목사님들이 3-17세기에 요한계시록을 주석한 책을 참조하는 것은 좋지만 그런 책들은 그 세기까지 밝혀진 정도로만 참조하셔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요한계시록의 저자와 계시록을 주신 목적
‘1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1.
요한계시록의 저자는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1절에 보면 원 저자는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알리시려고 천사를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했습니다. 성부하나님이 성자 하나님께
드리고 성자하나님은 천사에게 주어 환상으로 사도요한에게 전달하고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기록하여 주의 종들에게와 성도들에게
전달하신 것입니다. 이 요한계시록은 원 저자 네분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달된 너무나 중요하고 중요한 책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2. 이 책을 하나님이 우리 성도들에게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들과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여기 읽는
자들이란 유대인 회당에 가면 인도자가 두루마리 책을 읽고 그 구절을 해석해 줍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지도자가 읽고 설명하는 것을
귀로 듣습니다. 여기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란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말하며 듣는 자들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고 읽고 듣는
자들이 읽고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예언의 말씀대로 행하고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복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 여기에 예언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이 예언의 말씀을 어떻게 지켜 행합니까?
그것은
계시록의 말씀을 읽고 듣고 배우면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을 깨닫고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거듭나지
않은 자들은 거듭나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은 확신을 가지고, 성경과 기도로 경건한 생활을 하며 죽기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성도들이 될 때에 이 사람은 행복자인 것입니다.
4. 이 요한계시록은 묵시록을 편지로 보낸 것입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6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 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7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8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10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11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이
계시록을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7 교회들에게 편지 형태로 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에 소아시아 지역에 교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7 교회에만 편지를 쓴 것은 이 7교회들이 그 당시 전 교회들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일곱이라는 숫자는
하나님께서 칠일 동안 창조하셨다는 그 일곱과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절대적 완성을 상징하는 완전
수요 전체를 나타내는 수입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이 서신은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모든 교회에게 보내는 서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곱교회는 1세기 교회에도 해당되고 21세기의 교회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일곱 패턴의
교회들입니다. 그 당시는 물론 이거니와 교회의 전체 역사를 통해서 이런 일곱 성격의 교회들이 있다는 말입니다. 에베소 같은 첫
사랑을 잃은 교회, 서머나와 같은 박해받는 교회, 필라델피아 같은 전도, 선교하는 교회, 라오디게아 같은 세속적이요 재물에 눈이
멀은 타락한 말세 교회 등등입니다.
셋째로 계시록을 주신 주님의 모습
‘12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4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15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6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17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18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9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20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 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1.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
그
당시 교회들은 로마정부에 의해 핍박과 박해를 받고 있을 때입니다. 이 계시록이 성도들이 세상에서는 핍박을 당하나 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서 죽기까지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과 용기와 위로를 주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서 재림의 주님이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 아멘'했습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박해와 죽임을 당하나 구름타고 오시는 주님을
맞이 하고 다 부활하게 될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여기서 구름 타고 오시는 주님을
'각인의
눈이 그를 본다'고 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초림하실 때는 소수의 사람들이 탄생을 목격했지만
주님이 공중강림하실 때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했습니다. 이 구절이
이해가 안됩니다. 이 말씀은 스가랴서 12:10의 내용과 같습니다. '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들의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했습니다.
2.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해 통곡하리니'했습니다.
스가랴서
12:12이하에서도 유대인들과 세상 사람들이 회개의 통곡을 하는 것을 봅니다. 계시록 1:7에서도 땅에 있는 모든 족속들이 그를
인하여 통곡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공중강림하실 때에 구름타고 오셔서 성도들의 몸을 부활시키시고 살아 있는 자들을 순식간에
변화시켜 하늘로 데려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자신들은 들림 받지 못한 데 대해 통곡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 중에
불신자들은 자신들이 당할 심판을 생각하고 통곡할 것이요 들림받지 못하고 남은 신자들은 들림받지 못했음을 통곡할 것이요,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대인들은 그 때야 회개하며 통곡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에 한 로마 병사가(요19:34)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를 찌른자들'로
복수로 표현되었습니다. 계시록 1:7과 스가랴서 12:10에서 그를 찌를 자들도 보리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천년 전에
예수님을 찌른 자들이 어찌 재림의 주님을 본다고 할 수 있느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찌른 자가 단수가 아니라 복수인 것을
깨닫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 병사로 하여금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도록한 배후 세력인 로마 관원들과 유대 관원들까지 염두에 둔
표현입니다. 더 나아가 주의 제자들을 박해하던 유대인들과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 현재의 모든 유대인들도 역시 주를 찌른
자들에 포함됩니다. 또한 주님께서 모든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사 그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로마 병정에게 옆구리를
찔렸다면 주님의 찔림은 우리 모든 인간들의 죄악을 위한 것이므로 광범위하게는 우리 자신들도 그 찌른 자에 포함됩니다.
셋째로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의 모습
사도요한은
교회 전승에 의하면 로마의 제 10대 황제 (AD 81- AD 95)인 도미티아누스가 사도요한을 끓는 기름가마에 넣어 죽이려고
했지만 사도 요한이 죽지 않자 밧모섬으로 귀양을 보냈는데 그 때가 거의 100살 가까운 나이였다고 합니다. 주후 95년에 11대
황제인 넬바가 황제가 되면서 풀려 났었는데 밧모섬의 유배는 AD95- AD 96년의 약 1년 사이의 기간이었습니다.
사도요한은
어느 주일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는데 주님께서 요한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나팔소리 같이 큰 음성이 뒤에서 들렸는데 그 주님을 보기
위해 뒤를 돌아 봤습니다. 교회를 상징하는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시는 주님을 목격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장차 될 일을 보여
주시면서 그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교회에 보내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에게 나타나신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그런 모습이 아니라 천상에 계시는 주님의 모습이었습니다.
1. 그 주님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차림은 대제사장의 옷 차림과 같습니다(출28:4, 8, 레위기 16:4). 또한 왕의 차림과도 같습니다(사6:1). 이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의 대제사장과 왕으로서 존귀와 위엄을 지니고 계신 분임을 묘사합니다. 사도요한은 환상 중에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의 대제사장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본 것입니다(단10:5,6).
2.
또한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같으며(단 7:9))했습니다. 양털 같고 눈과 같은 흰 머리털은 영생, 지혜,
성결을 상징합니다. 왜냐하면 흰 머리는 노인을 상징하는데 노인은 지내온 인생의 긴 연륜 만큼이나 지혜와 경험을 축적하고 있으며,
희다는 것은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지혜로우시며 성결하시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다니엘 7:9에, '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했습니다. 책들이 펴 놓였더라’는 말씀은 계시록 20:12의 말씀과
같습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3.
또한 '눈은 불꽃같고' 다니엘서 10:6에서 언급된 메시야에 대한 묘사인 '그눈은 횃불같고' 라는 말을 반영한 것입니다.
여기서 눈이 불꽃 같다는 것은 사물의 본질과 인간의 마음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 통찰력과 냉엄한 공의를
나타냅니다. 사실 모든 인간의 불꽃 같이 밝은 그리스도의 눈 앞에서 아무 것도 숨길 수 없으며 그 가운데서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지
않아 죄악의 더러움으로 얼룩진 자들은 모두 소멸되고 말 것입니다.
다니엘
10:4-6, '첫째 달 이십사일에 내가 힛데겔이라 하는 큰 강 가에 있었는데 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6 또 그의 몸은 황옥 같고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그의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의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4.
또한 '주님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서 10:6에 의거한 표현입니다. 발은 몸을 지탱하는
기본적인 힘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견고하여 장차 그 원수를 짓밟을 때에 영광된
승리를 성취할 것임을 보여 줍니다. 장차 심판의 주로 오시는 주님의 발은 세상을 딛고 원수를 심판하실 영광과 권능의 발인
것입니다.
5. 또한 '그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같다'고 했습니다. 에스겔서 43:2에 의하면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의 음성을 표현할 때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많은
물은 거대한 홍수가 엄습할 때 나는 소리로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권능과 위엄을 나타냅니다. 주님의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다는
것은 주님의 권능이 불가항력이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의 주님의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에서 주님의
호령이 이와같을 것입니다.
6. 또한
오른 손에는 일곱 별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오른 손은 능력과 힘을 상징합니다 (출 15:6, 시 45:4, 겔21:22)
. 그러므로 주님의 오른 손은 주님의 절대적인 권능를 징합니다. 일곱 별은 교회의 사자들 곧 우주적 교회를 지키는 하늘의
천사들을 지칭합니다. 주님은 천사 들을 세워 자신의 교회를 지키고 그 천사들은 주님의 권능의 오른 손 안에 온전히 사로잡혀 그
오른 손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사자(앙겔로서)는 일반적으로 천사를 의미하나 때로 인간을
의미할 때도 있습니다(눅7:27, 9:52).그래서 혹자는 본문의 사자가 요한이 일곱교회에 본서를 전달하기 위해 보낸 사자이거나
혹은 아니면 당시 그곳 교회의 감독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묵시문학에서는 이것이 인간을 지칭하는 예가
없으며, 본서에서도 67회 사용되고 있으나 모두 하늘의 천사들을 지칭하고 있다는 점에 비추어 볼 때에 본문의 사자는 교회를 지키는
하늘의 천사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7.
또한 주님의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이런 말씀은 신약과 구약성경에 자주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살아 운동력이 있는 말씀을 의미합니다. 계시록 19:15의 입에서 예리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그들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계시록 19:21의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검에 죽으매 모든 새가 그들의 살로
배불리더라 했습니다.
8. 또한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17:2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이것은 하나님 영광 되고 거룩하며 진실되고 사랑이 넘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9.
또한 주님은 처음이요 나중이며, 전에는 죽었지만 이제 세세토록살아 계시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신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음부는 헬라어로는 하데스요,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 합니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는 선한 사람, 악한 사람의 구별 없이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가는 곳으로 묘사되었습니다(왕상 2:2, 9, 욥 3:13, 30:23, 시 89:48, 사14:9, 겔
32:28) 그러나 이러한 음부개념은 점차 발전하여 불신자의 영이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간기 처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음부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낙원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영혼들이 몸의 부활을 하기 전까지 거하는 사후의 중간기 처소를 의미합니다.
구약시대는 누가복음 16장의 죽어 음부에 간 홍포부자가 눈을 들어 아브라함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습니다. 그러나 홍포부자는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을 받았고 구원받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앉겨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셔서 음부에 내려
가셔서 선한 자들의 처소를 음부에서 낙원으로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사망은 죽은 자의 몸이 묻히는 장소를 말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마태복음 10:28말씀에서,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했습니다. 세상 권력자들이 성도들의 몸은 죽일 수 있지만 영혼은 죽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몸을 죽이는 세상 권력자들을 무서워하여 박해 때문에 신앙을 변질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기까지 믿음에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믿음은 양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몸은 언젠가 죽게 되어 있습니다.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의 권력자보다 더 두려워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몸도 멸하시고 영혼도 멸하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나중에 성도들을 죽였던 세상 권력자들과 사탄과 그 무리들을 지옥에 멸하시기 위해 지옥문을 여는 열쇠를
가지신 분이라는 말씀입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단순한 우리 구주가 아니라 우주적 교회 공동체의 머리로서 무한한 권능과 권한을 가지고 만유를 다스리시며 종국에는 자기
백성의 집합체인 교회가 승리하도록 역사하시는 전능자시라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사도요한에게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인간
세상에서 박해받고 순교하는 성도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살아 계시며 영광과 권능을 가지신 분으로서 때가 되면
성도들을 박해하던 모든 자들을 심판하실 것을 보여 주심으로 박해와 핍박에도 굴하지 말고 끝가지 인내하며 죽기까지 승리하도록 그
당시 성도들을 격려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뿐만
아니라 초대 교회 박해 뿐만 아니라 교회 역사상 사탄은 끊임 없이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여 왔는데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은
나그넷 길인데 나그네 길을 행할 때에 몰아 닥치는 환난과 핍박과 박해에도 참고 인내하여 세상을 심판하려 오실 주님을 바라보고
신뢰하여 죽기까지 충성할 것을 우리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보다 더 극심한 환난 가운데서도 승리한 초대교회
신앙선배들을 생각하며 우리의 승리를 온전하게 보증하시는 전능자이시며, 구주되시고 심판주되시는 주님을 신뢰하면서 마지막까지
승리하기를 원하셔서 주님의 이런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원어 / 영어 분석 1(계1:1-10)
요한계시록은 묵시로 주어진 계시임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한 자의적인 해석으로 수많은 이단의 병폐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계 22:7)”라는 말씀처럼 이 책을 사모하고 가까이해야 하는 주의 성도들에게는 금기의 말씀이 돼 버렸습니다.
성경의
결말이 담긴 요한계시록을 분석하는 이 작업이 마지막 때를 살고 있는 주를 믿는 성도들에게 복이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본절에 “계시”로 번역한 헬라어 '아포칼룹시스(apŏkalüp- sis. ἀποκάλυψις)'
'apokalupsis(아파칼룹시스)’는 신약에 총 18번 나오는데 ‘덮여 있는 것을 벗겨내 보여주다’란 뜻입니다.
이 단어는 주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쓰이기에 누가복음 2장 32절의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에서 ‘비추는’은 ‘계시’로 번역했어야 합니다.
즉, 누가복음 2장 32절은 “이방을 위한(eis) 계시(apokalupsis)의 빛이며(kai) 당신의(sou)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이 단어가 쓰인 18개의 구절을 모두 읽어보기 원하는 분들은 단어를 누르면 됩니다. https://biblehub.com/greek/602.htm).
Strong's Concordance
apokalupsis: an uncovering
Original Word: ἀποκάλυψις, εως, ἡ
Part of Speech: Noun, Feminine
Transliteration: apokalupsis
Phonetic Spelling: (ap-ok-al'-oop-sis)
Definition: an uncovering
Usage: an unveiling, uncovering, revealing, revelation.
HELPS Word-studies
Cognate: 602 apokálypsis – properly, uncovering (unveiling). See 601 (apokalyptō).
602 /apokálypsis ("revelation, unveiling") is principally used of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the Word), especially a particular (spiritual) manifestation of Christ (His will) previously unknown to the extent (because "veiled, covered").
NAS Exhaustive Concordance
Word Origin
from
apokaluptóDefinition
an uncovering
NASB Translation
revealed (1), revealing (1), revelation (14), revelations (2).
Thayer's Greek Lexicon
STRONGS NT 602: ἀποκάλυψις
ἀποκάλυψις, ἀποκαλύψεως, ἡ (ἀποκαλύπτω, which see), an uncovering;
1. properly, a laying bare, making naked (1 Samuel 20:30).
2. tropically, in N. T. and ecclesiastical language (see end), a. a disclosure of truth, instruction,
concerning divine things before unknown — especially those relating to
the Christian salvation — given to the soul by God himself, or by the
ascended Christ, especially through the operation of the Holy Spirit (1 Corinthians 2:10), and so to be distinguished from other methods of instruction; hence, κατά ἀποκάλυψιν γνωρίζεσθαι, Ephesians 3:3. πνεῦμα ἀποκαλύψεως, a spirit received from God disclosing what and how great are the benefits of salvation, Ephesians 1:17, cf. Ephesians 1:18. with the genitive of the object, τοῦ μυστηρίου, Romans 16:25. with the genitive of the subjunctive, κυρίου,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2 Corinthians 12:1 (revelations by ecstasies and visions, (so 2 Corinthians 12:7)); Galatians 1:12; Revelation 1:1 (revelation of future things relating to the consummation of the divine kingdom); κατ' ἀποκάλυψιν, Galatians 2:2; λαλήσω ... ἐν ἀποκαλύψει, to speak on the ground of (others, in the form of) a revelation, agreeably to a revelation received, 1 Corinthians 14:6; equivalent to ἀποκεκαλυμμενον, in the phrase ἀποκάλυψιν ἔχειν, 1 Corinthians 14:26.
b. equivalent to τό ἀποκαλύπτεσθαι as used of events by which things or states or persons hitherto withdrawn from view are made visible to all, manifestation, appearance, cf. ἀποκαλύπτω, 2, d. and e.: φῶς εἰς ἀποκάλυψιν ἐθνῶν,
a light to appear to the Gentiles (others render 'a light for a
revelation (of divine truth) to the Gentiles,' and so refer the use to
a. above), Luke 2:32; ἀποκαλύψεως δικαιοκρισίας Θεοῦ, Romans 2:5; τῶν υἱῶν τοῦ Θεοῦ, the event in which it will appear who and what the sons of God are, by the glory received from God at the last day, Romans 8:19; τῆς δόξης τοῦ Χριστοῦ, of the glory clothed with which he will return from heaven, 1 Peter 4:13; of this return itself the phrase is used, ἀποκαλύψει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2 Thessalonians 1:7; 1 Corinthians 1:7; 1 Peter 1:7, 13. (Among Greek writings, Plutarch uses the word once, Cat. maj. c. 20, of the denudation of the body (also in Paul. Aemil. 14 α. ὑδάτων; in Quomodo adul. ab amic. 32 α. ἁμαρτίας; cf. Sir. 11:27 Sir. 22:22 etc. See Trench, § xciv. and references under the word ἀποκαλύπτω, at the end).)
Strong's Exhaustive Concordance
appearing, coming, manifestation, revelation.
From apokalupto; disclosure -- appearing, coming, lighten, manifestation, be revealed, revelation.
see GREEK apokalupto
Forms and Transliterations
αποκαλύψει
αποκαλυψεις αποκαλύψεις ἀποκαλύψεις αποκαλυψεων αποκαλύψεων ἀποκαλύψεων
αποκαλυψεως αποκαλύψεως ἀποκαλύψεως αποκαλυψιν αποκάλυψιν ἀποκάλυψιν
ΑΠΟΚΑΛΥΨΙΣ αποκάλυψις ἀποκάλυψις apokalupseis apokalupseon apokalupseōn
apokalupseos apokalupseōs apokalupsin APOKALUPsIS apokalypseis
apokalýpseis apokalypseon apokalypseōn apokalýpseon apokalýpseōn
apokalypseos apokalypseōs apokalýpseos apokalýpseōs apokalypsin
apokálypsin APOKALYPSIS
Links
Interlinear Greek •
Interlinear Hebrew •
Strong's Numbers •
Englishman's Greek Concordance •
Englishman's Hebrew Concordance •
Parallel Texts
Englishman's Concordance
Luke 2:32 N-AFSGRK: φῶς εἰς
ἀποκάλυψιν ἐθνῶν καὶ
NAS: A LIGHT OF REVELATION TO THE GENTILES,
KJV: A light to lighten the Gentiles, and
INT: a light for revelation of [the] Gentiles and
Romans 2:5 N-GFS
GRK: ὀργῆς καὶ ἀποκαλύψεως δικαιοκρισίας τοῦ
NAS: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KJV: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INT: of wrath and revelation of righteous judgement
Romans 8:19 N-AFS
GRK: κτίσεως τὴν ἀποκάλυψιν τῶν υἱῶν
NAS: waits eagerly for the revealing of the sons
KJV: waiteth for the manifestation of the sons
INT: creation the revelation of the sons
Romans 16:25 N-AFS
GRK: Χριστοῦ κατὰ ἀποκάλυψιν μυστηρίου χρόνοις
NAS: according to the revelation of the mystery
KJV: according to the revelation of the mystery,
INT: Christ according to a revelation of [the] mystery in times
1 Corinthians 1:7 N-AFS
GRK: ἀπεκδεχομένους τὴν ἀποκάλυψιν τοῦ κυρίου
NAS: awaiting eagerly the revelation of our Lord
KJV: waiting for the coming of our
INT: awaiting the revelation of the Lord
1 Corinthians 14:6 N-DFS
GRK: ἢ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ἢ ἐν
NAS: by way of revelation or
KJV: either by revelation, or by
INT: either in revelation or in
1 Corinthians 14:26 N-AFS
GRK: διδαχὴν ἔχει ἀποκάλυψιν ἔχει γλῶσσαν
NAS: has a revelation, has
KJV: hath a revelation, hath
INT: a teaching has a revelation has a tongue
2 Corinthians 12:1 N-AFP
GRK: ὀπτασίας καὶ ἀποκαλύψεις Κυρίου
NAS: on to visions and revelations of the Lord.
KJV: visions and revelations of the Lord.
INT: visions and revelations of [the] Lord
2 Corinthians 12:7 N-GFP
GRK: ὑπερβολῇ τῶν ἀποκαλύψεων διὸ ἵνα
NAS: Because of the surpassing greatness of the revelations, for this reason,
KJV: through the abundance of the revelations, there was given
INT: surpassingness of the revelations therefore that
Galatians 1:12 N-GFS
GRK: ἀλλὰ δι' ἀποκαλύψεω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NAS: it, but [I received it] through a revelation of Jesus
KJV: by the revelation of Jesus
INT: but by a revelation of Jesus Christ
Galatians 2:2 N-AFS
GRK: δὲ κατὰ ἀποκάλυψιν καὶ ἀνεθέμην
NAS: It was because of a revelation that I went
KJV: by revelation, and
INT: moreover according to revelation and laid before
Ephesians 1:17 N-GFS
GRK: σοφίας καὶ ἀποκαλύψεως ἐν ἐπιγνώσει
NAS: of wisdom and of revelation in the knowledge
KJV: and revelation in
INT: of wisdom and revelation in [the] knowledge
Ephesians 3:3 N-AFS
GRK: ὅτι κατὰ ἀποκάλυψιν ἐγνωρίσθη μοι
NAS: that by revelation there was made known
KJV: by revelation he made known
INT: that by revelation he made known to me
2 Thessalonians 1:7 N-DFS
GRK: ἐν τῇ ἀποκαλύψει τοῦ κυρίου
NAS: Jesus will be revealed from heaven
KJV: Jesus shall be revealed from
INT: at the revelation of the Lord
1 Peter 1:7 N-DFS
GRK: τιμὴν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NAS: and honor at the revelation of Jesus
KJV: at the appearing of Jesus
INT: honor in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1 Peter 1:13 N-DFS
GRK: χάριν ἐν ἀποκαλύψει Ἰησοῦ Χριστοῦ
NAS: to be brought to you at the revelation of Jesus
KJV: at the revelation of Jesus
INT: grace at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1 Peter 4:13 N-DFS
GRK: ἐν τῇ ἀποκαλύψει τῆς δόξης
NAS: that also at the revelation of His glory
KJV: glory shall be revealed, ye may be glad
INT: in the revelation of the glory
Revelation 1:1 N-NFS
GRK: ΑΠΟΚΑΛΥΨΙΣ ΙΗΣΟΥ ΧΡΙΣΤΟΥ
NAS: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KJV: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INT: Revelation of Jesus Christ
Strong's Greek 602
18 Occurrencesἀποκαλύψει — 5 Occ.ἀποκαλύψεις — 1 Occ.ἀποκαλύψεων — 1 Occ.ἀποκαλύψεως — 3 Occ.ἀποκάλυψιν — 7 Occ.ΑΠΟΚΑΛΥΨΙΣ — 1 Occ.이 단어는 ‘벗겨내다, 드러내다, 계시하다’란 뜻의 ‘apokaluptó(아파칼룹토)’란 헬라어 어원에서 나왔으며 이 어원은 신약에 총 26번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The revelaltion of Jesus Christ)”란 표현은 본절을 포함해서 킹제임스 영어성경에 총 3번 나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3이란 숫자의 의미
오늘은 ‘부활, 영적 완전함, 혹은 어떤 것의 완성’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수 3에 대해 적으려고 합니다. 3은 7과 함께
성경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하나님의 완전수이며 4개의(3, 7, 10, 12) 완전수 중 가장 첫 번째 숫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은 ‘삼위일체’의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의 독립적인 3분이시며 한 분이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오직
그분께만 있는 3가지 특성이 있는데, ‘전능’, ‘전지’, ‘무소 부재(편재)’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걸 하실 수 있고,
하나님만이 모든 걸 아시며, 또 모든 곳에 계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빚어진 우리도 영과 혼과 육, 3부분으로 만들어져 있으며(영혼육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생각, 말, 행동이란 3가지 영역으로 일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도 삼차원인데, 공간이 만들어지기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숫자가 3이기도 합니다. 지구를 비추는 태양도
3가지 특성이 있는데, 햇빛은 ‘빨강, 초록, 파랑’의 원색이며, “빛, 에너지,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자연도 ‘동물,
식물, 광물’로 나뉘며 물체는 ‘고체, 액체, 기체’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시간도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며 완성되는데, 주
하나님은 “전에도 계셨고(과거) 이제도 계시고(현재) 장차 오실 이(미래)”시기에(계1:8, 4:8) 영원히 계십니다.
3이란 숫자는 성경에서 중요한 숫자 중 하나이며 따라서 자주 등장하기에 일일이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약속의 땅을
정탐하러 갔던 사람들이 가져왔던 3가지 산물인 포도와 무화과, 그리고 석류(민 13:23)는 하나님 약속의 풍성함과 완전함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3개월간 모세를 숨겨 키우고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후 3개월간 침례 요한의
엄마인 엘리사벳과 지내다 돌아옵니다. 신명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갖고 계신 3가지 직분이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형제들 가운데서
택하사 일으키실 왕(신 17:15), 제사장(신18:3-5), 그리고 선지자(신18:15)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갔을 때 도피성을 둘 것을 명령하시는데,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 동쪽 땅에 3개의
도피성을 구별해서 지정했고(신 4:41-43),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땅을 3구역으로 나눠 3개의 도피성을 구별해서
두라고 명령했습니다(신19:2-3). 그리고 혹시 여호와께서 너희의 지경을 넓혀 말씀하신 땅을 다 주실 경우, 3개의 도피성을 더
구별하라고(신19:8-9) 했기에, 도피성의 수는 최대 9개(3+3+3, 3X3)입니다. 다니엘은 하루 3번씩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했으며(단 6:10), 3번의 7일(21일)을 슬퍼하며 금식했습니다(단 10:2). 이사야서 6장 3절에서 스랍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3번에 걸쳐 찬양하고 요한계시록에서 4 생물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를 3번 외치며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주 하나님께 올립니다(계 4:8-9).
예루살렘에서 태어나셨던 예수님은 ‘금, 몰약, 유향’ 3가지의 선물을 받으셨으며, 12살이 되셨을 때 부모가 예루살렘에서
3일간 잃어버리지만, 성전에서 다시 찾습니다(눅 2:46).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단에 시험받으실 때도 3단계로 받으셨는데, 돌을
떡으로 만들라, 성에서 뛰어내리라, 내게 절하고 세상 왕국들을 받으라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 가운데 3번에 걸쳐 하늘로부터 직접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십니다. 첫 번째는 요단강에서 침례(세례)를 받고 나오실 때였고(마 3:17; 막 1:11; 눅
3:22), 두 번째는 변화산에서 3명의 제자 앞에서 변용하셨을 때였고(마 17:15; 막 9:7; 눅 9:35), 세 번째는
십자가 선상에서였습니다(요 12:28). 그런데 이런 기록이 성경에 총 7번 나온다는 사실을 이번에 발견하게 됐습니다. 이처럼
3과 7은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번번이 발견하게 되는데, 여호와의 7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호와의 7절기는 ‘유교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칠칠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초막절)’인데 크게는 ‘무교절, 오순절(칠칠절), 장막절(초막절)’
3절기로 묶기도 합니다. 봄절기인 ‘유교절, 무교절, 초실절’이 무교절을 지키는 일주일 안팎으로 오기 때문이고, 가을절기인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이 대략 3주 안에 다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들은 일 년에 3번
여호와를 뵈러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으로 올라올 것을 명령하십니다(출 23:14-17; 신 16:16).
창조 셋째 날 하나님은 땅을 물 위로 올라오게(드러나게) 하시는데(창 1:9), 이것은 주님의 부활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공생애 기간 죽음에서 3명의 사람을 부활시키신(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 나사로)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십니다(요 14:6). 예수님은 표적을 찾는 바리새인들에게 요나의 표적 즉,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영어로는 3
days and 3 nights:낮 세 번과 밤 세 번) 땅속에 있을 것’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3번 기도하신 후
빌라도에게 넘겨져 재판받으셨고 제3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막 15:25) 온 땅에 총 3시간의(제6시에서 9시까지) 어둠이
임합니다(막 15:33-34).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는 3개의 언어로(히브리어, 라틴어, 헬라어)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란 명칭이 적혔었는데, 이는 십자가의 속죄가 모든 나라, 백성, 방언을 위한 것임을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요 19:20).
예수님 좌우에 2명의 죄인이 십자가에 박혔었기에 골고다 언덕엔 3개의 십자가가 있었고(요 19:18), 주님은 장사한 지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고전 15:4). 이런 주님에 대해 땅에서 증거하는 3가지는 “영과 물과 피”이며(요일 5:8) 주님은
‘아버지와 내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기’를 3번에 걸쳐 기도하십니다(요 17:11-23). 이런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3가지 덕은 ‘믿음, 소망, 사랑’입니다.
어떤 것의 ‘완성, 성취, 완벽, 완전’을 의미하는 3의 역할은 성경 곳곳에 드러나는 진리입니다. 베드로가 인간의 연약함과
허황함을 예수님을 3번 부인하는 것으로 성취했다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는 당부를 3번 하심으로 완전한 하나님의
사역자로 회복시키십니다. 3년 동안 열매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는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완전한 실패를 보여주셨고(눅
13:7) 베드로에게 부정한 짐승을 먹으라는 환상을 3번 보여주는 것으로 이방인 구원을 향한 완벽한 뜻을 나타내셨습니다.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하는 죄의 유혹과 시험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3단계로 오며 멸망은 ‘가인의 길, 발람의
어그러진 길, 고라의 패역(유 1:11)’ 3길을 따라 완성됩니다. 사단은 하나님을 모방하는 자로 요한계시록에 보면 삼위일체를
흉내내어 용, 짐승, 거짓 선지자로 등장합니다(계 13장). 요한계시록에는 다섯 번째 나팔에서 시작해서 일곱 번째 나팔로 마치는
3개의 화가 나오는데(계8:13; 9:12; 11:14), 이 3구절에 ‘화’란 단어가 7번 나오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의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 연기, 유황” 3 재앙으로 사람의 삼분의 일이
죽습니다(계9:15-18). 또한 개구리 같은 3 더러운 영이 용, 짐승,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는데 그들은 귀신의 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해 사람들을 모읍니다(계16:13-14). 이에 맞춰 하나님의 3천사도 3가지 촉구와
경고를 합니다(계14:6-16). 첫 번째 천사는 땅에 거주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을 경배할 것을 촉구하고 두 번째는 바벨론의 멸망을
선포하며 세 번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는 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을 경고합니다. 바벨론은 “사망, 애통함, 흉년”
3가지의 재앙으로 멸망하는데(계18:8) 다니엘서에서는 ‘세고(메네), 달아보고(데겔), 나뉘어(베레스)’ 멸망당합니다(단
5:26-28). 요한계시록 18장 9절에서 17절까지 바벨론의 멸망을 애통해하는 3부류의 사람들(땅의 왕들, 땅의 상인들,
바다의 선원들)이 나오는데 이들은 6으로(숫자 6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눠 적혀있습니다(9절:왕들, 11절:상인들, 17절: 모든 선장, 선객들, 선원들, 바다에서 일하는 자들).
다시 말하지만 어떤 것의 완성을 의미하는 3은 거룩하게 분리된 성경의 인물들 속에서도 자주 발견되는 진리입니다. 노아와 3
아들(창 6:10), 욥의 3 딸(욥 1:2, 42:13)과 3 친구(욥 2:11)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3과 7의
관계를 볼 수 있는 게 욥에겐 7 아들이 있었기에 자녀가 총 10이 됩니다(충만을 뜻하는 완전수 10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욥은 특이하게도 하나님의 완전수 3, 7, 10이 자녀의 수에도 다 들어가 있어 얼마나 충만한 복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던 사람인지가 잘 드러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3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마
22:32). 이스라엘은 세상(에굽)과 거룩히 구분되기 위해 광야로 3일 길을 가서 하나님께 제사(예배) 드립니다(출 5:3).
하나님은 사무엘을 3번에 걸쳐 부르시는(삼상 3:8) 것으로 그를 선지자, 제사장, 그리고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느부가넷살 왕에
의해 7배나 뜨겁게 만든 풀무불에 던져진 3 사람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입니다(단 3:19, 23). 에스겔서에 나오는 3명의
의인은 노아, 다니엘, 욥(겔 14:14)입니다.
‘하나님의 친구(벗)’로 3번(대하 20:7; 사 41:8; 약 2:23) 일컬음 받는 아브라함의 삶에도 3이란 숫자가 자주
등장합니다. 아브라함이 맞이했던 3명의 손님(창 18:2), 그들을 섬기기 위해 사라가 준비한 3스아의 고운 가루(창
18:6), 그리고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모리아산까지 갔던 3일의 길이 그렇습니다(창 22:3). 또한
아브라함이 여호와와 언약을 맺을 때 준비한 5가지의 헌물은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였습니다(은혜의 수 5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준비한 헌물이 5와 3의 숫자로 이뤄졌듯이, 모세의 성막은 숫자 5와 깊은 연관이 있었고 성전은
숫자 3입니다. 모세의 성막이나 성전 모두 ‘지성소, 성소, 성막뜰’ 3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솔로몬의 성전은 3층의
방들로 둘러싸여 있었고(왕상 6:6), 에스겔의 성전은 3면이 30개의 3층 방들로 둘러싸여 있습니다(겔 41:5-6). 노아의
방주도 3층이었으며(창 6:16) 사도 바울은 삼천층에 올라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봤습니다(고후 12:1-2). 솔로몬의
성전에서 놋을 부어 만든 바다는 둘레가 30 규빗이었고 12마리의 소가 받치고 있었는데 북서남동으로 3마리씩 놓여있었습니다(왕상
7:23, 25). 이처럼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은 정사각형인데 각 면에 3개의 문이 있어 총 12문이
있습니다(계21:13).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3명의 죽었던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첫 번째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외아들이 살아납니다(왕상
17:9-24). 엘리야는 죽은 아이의 몸에 자기 몸을 3번 펴서 엎드려 살려냅니다. 3은 부활의 숫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에녹처럼 하늘로 옮기시는데, 그의 승천을 본 사람들이 혹시 땅 어딘가에 그가 떨어진 것은 아닌지 3일을 찾은 후에
포기합니다(왕하 2:17). 두 번째는 엘리사에 의해 수넴 여인의 아이가 살아납니다. 이때 엘리사는 아이의 입에 자기 입을,
아이의 눈에 자기 눈을, 그리고 아이의 손에 자기 손을 얹고 아이 몸에 엎드립니다. 이렇게 3단계를 걸쳐 살아난 아이는 7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뜹니다. 여기서도 3과 7의 관계를 볼 수 있습니다(왕하 4:34-35). 세 번째는 엘리사의 묘실에 던져졌던
시신이 엘리사의 뼈에 닿자 회생해서 일어났던 경우입니다(왕하 13:21).
이렇게 부활의 사건은 엘리야와 엘리사에 의해 3번, 그리고 예수님에 의해 3번 일어나는데, 제7번째 부활인 인자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령의 완전한 부활’로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죽음에서 부활시키고 영원히 살게 하는 능력의 부활입니다. 그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을 일컫는 ‘그리스도인’이란 단어는 성경에 3번(행 11:26, 26:28; 벧전 4:16) 나오며
계시록에 나오는 두 증인도 3일 반 만에 부활합니다(계 11:11). 그리고 신약은 3의 3배수(3X3X3)인 27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나머지 두 구절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1-12)”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8-13)”
베드로전서 1장 13절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로 번역된 부분이 직역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안에(en apokalypsei Iēsou Christou)”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쓰인 3구절을 살펴볼 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복된 소식’이며 ‘구원’이며 ‘은혜’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증거’로 번역한 ‘marturia(마르투리아)’는
‘증언, 증거, 증인’의 뜻을 모두 담고 있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testimony(테스티모니)’입니다. 본절의
‘testimony of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증언)’은 요한계시록에서만 3번 등장합니다(계1:2, 9,
12:17). 그리고 “testimony of Jesus(예수의 증언/증거)”란 표현이 두번 나오는데, 이 표현까지 합치면 총
5번이 됩니다(계1:2, 9, 12:17; 계19:10(2)). 요한계시록 19장 10절을 읽어보면 “예수의 증거/증언”이
무엇인지가 명확히 정의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증거)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증거)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예수의 증거는 다름 아닌 예언의 영입니다. “예언의 영(spirit of prophecy)”은 유일하게 요한계시록 19장
10절에서 1번 나옵니다.
본절 번역에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했다’라고 되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마치 요한이 ‘다 본 것’처럼 느껴집니다. 원어로는 ‘자기가 본만큼(hosa eiden) 증언했다’입니다. 어감이 확실히 다릅니다. 요한조차도 다 보았고 다 아는 게 아니라, 그가 본 것만큼 증언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본절의 의미는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의 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증언)를 내가 본 것만큼 다 증언(증거)하였노라“란 것입니다.
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이란 번역의 직역은 ‘그 안에 기록된 것’입니다.
‘복이 있나니’에서 ‘복’은 ‘makarios(마카리오스)’인데 신약에 놀랍게도 총 50번 나옵니다(성령과 완전한 속량 및 자유를 뜻하는 5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복되다, 행복하다’란 의미의 ‘makarios(마카리오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는 걸 의미하기에 ‘복’과 ‘믿음’은 연결선상에 있습니다(롬 4:5-7,
14:22-23; 계 14:12, 13). 글자를 누르면 50개구절을 모두 볼 수 있는데 다 한번도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과 기쁨으로 쓰이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본절의 ‘때’는 ‘kairos(카이로스)’,
즉 ‘시간, 계절’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영어로는 ‘time’입니다. ‘적합한 시기, 적절한 때, 기회, 시간’을 의미하며 신약에
총 86번 등장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미리 정해진 때’를 의미하는데 본절에 ‘때가 가까움이라’는 표현이 ‘마지막
때, 말세, 주님의 재림’을 말할 거라고 충분히 유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아닌 성경의 정의를 알기 위해 성경에서
‘때가(kairos) 가깝다(engys)’란 표현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신약에 총 5번(은혜와 율법의 수 5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왔습니다. 이 5개의 구절을 읽다 보면, 내 말이 아닌 성경이 말씀하시는 ‘때가 가깝다’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첫 구절은 마태복음 21장 34절입니다. “열매 거둘 때가 가까우매 그 열매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이 구절은 예수님이 드신 비유에 나오는 구절인데, 한 포도원 주인이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에 갔다가 열매 거둘 때가 가까워서
그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는 장면에서 나옵니다. 그렇기에 때가 가깝다는 것은 결실 즉, 열매를 하나님께 보여줘야
할 때를 말합니다.
두 번째 구절은 누가복음 21장 8절입니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이 구절로 우리는 미혹하는 자들이 많을 때,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그리할 때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내가 예수다” “내가 하나님이다”라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했던 때가 또 있었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 구절은 로마서 13장 11절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때가 가깝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가깝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러니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거나 음란하거나 호색하거나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고 촉구합니다. 왜요? 구원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나를 영원히 속량하신 주님을 만나
영원토록 함께 거할 날이 가깝기 때문입니다.
넷째 구절은 본절이고 다섯째 구절은 요한계시록 22:10절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때가 가깝다’는 말로 1장을 열고 ‘때가 가깝다’는 말로 22장을 닫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어지는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계 22:11-13)”
즉 성경이 정의하는 “때가 가깝다”는 것은 ‘결산과 구원과 자신이 행한 대로 보상받을 때가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와서 미혹하는 무리가 많을 때이며 불의하고 더러운 자들과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들이
극명하게 나뉘는 때입니다.
따라서 본절의 의미를 풀어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은 영원한 속량과 자유의 행복을 누리리니 결산과 구원과 자신이 행한 대로 보상받을 때가 가까움이라“.
4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와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아시아’란 단어는 성경에 총 18번 나옵니다. 1절의 ‘apokalupsis(아파칼룹시스)’도 18번 나온 것을 볼 때 숫자 18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도 곧 써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곱 교회’에서 ‘일곱’은 성경에 나오는 중요한 숫자 중 하나입니다. 이런 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교회’는 ‘집회, 회중’을 뜻하는 헬라어 ‘ekklésia(에클레이시아)’를
번역한 것입니다. 의미는 ‘called out from’ 즉, 어떤 것이나 어떤 곳에서 불러내다, 또는 분리해내다란 뜻입니다. 또
‘called out to’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즉, 어떤 것을 하도록, 혹은 어떤 곳으로 불러내다, 또는 분리해냈다란
뜻입니다. 이 ‘ekklésia(에클레이시아)’란 단어를 영어는 ‘church’라고 번역하는데, ‘church’는 ‘주께 속한’이란 의미의 헬라어 ‘kyriakos(큐리아코스)’에서 온 것입니다.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성경에서 그 단어를 찾아보는 작업을 자주 하기에 예전에 ‘church’를 영어킹제임스에서
찾아봤을 때 총 111구절 나온다는 걸 발견했던 적이 있습니다. ‘church’는 신약에서만 나오는 단어이지만 그렇다고 신약
성도들만 ‘교회’는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구약의 성도들과 신약의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둘을 나누기만 하고, 그 나눠진
것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뿌리는 보지 못한다면 온전한 하나님의 증거를 보지 못한다는 것이기에 결코 유익하지 않습니다. 믿음을
다루고 있는 히브리서 11장에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증거합니까? 아벨의 때부터 내려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열거하다가 11장을 다음
40절의 내용으로 마무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음이니 우리가 없이는 그들이 완성되지(완전하게
되지) 않도록 하려 하심이라(직역)” 그러니까 창세 이후 하나님을 향한 찬란한 믿음으로 살다 간 성도들을 신약의 성도들이 없이는
완성되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은혜를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바울도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될 신약의 교회에 대해 로마서 11장 11절에서 31절까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구절들을 모두 가져오면 너무 길어서 개역개정으로 요약하지만 직접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구원이
이방인에게 흐르게 함이라. 참감람나무 가지 얼마가 꺾여서 돌감람나무인 너희들이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너희가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고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이스라엘도 믿지 아니하는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으며 돌감람나무인 너희들도 접붙임을 받았는데 하물며 원가지인 사람들이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시리라.”
하나님은 구약과 신약이 분리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분리되어, 성경이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나뉜 후에 다시 각 나라
족속 방언으로 번역되어 구약의 ‘회중’은 신약의 ‘교회(church)’가 아니라고 주장할 사람들이 있을 것도 미리 아셨습니다.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을 남겨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하나님이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리라
하던 자가 곧 이 모세라 시내 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살아 있는 말씀을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행 7:37-38)”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시킨 이스라엘 회중을 헬라어로 쓰면 도로 ‘ekklésia(에클레이시아)’입니다. 따라서 영어로 번역하면 ‘church’ 즉 교회가 됩니다.
본절에서 요한은 그 당시에 존재했던 교회 중에서 특별히 일곱 교회에 편지하는데, “일곱 교회”란 표현은 3구절에 걸쳐 4번 나옵니다(계 1:4, 11, 20(2)).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란 표현도 계시록에서만 나오는데 딱 3번 등장합니다(계 1:4, 8, 4:8). 본절외 두 개의 관련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Lord God Almighty)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계 4:8)“
따라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Lord God Almighty’ 즉, 전능하신 주 하나님(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본절에 나오는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아마도 성령이지 않을까 유추할 수 있지만, 이번엔 성경이 정의하는
‘일곱 영’에 대해 알아보려 합니다. 일단 “일곱 영”이란 표현은 성경 전체에서 요한계시록에서만 본절을 포함해 4번 나옵니다(4에
대한 의미는 여길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이에 대한 다른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계 3:1)”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계 4:5)”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요한계시록 말씀을 통해 보면 첫째, “일곱 영”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습니다(계1:4). 둘째,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일곱 영”입니다(계3:1). 셋째,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은 “일곱 등불”입니다. 넷째, “하나님의 일곱 영”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일곱 눈”입니다(계5:6). 특히 이 일곱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일곱 영’이란 표현이 왜 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번 성경에 등장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예전에도
적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떠한 정교한 프로그램으로도 흉내낼 수 없는 숫자나 단어나 그 뜻에서 정확하게 떨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와 번역의 오류에서 오는 것일 뿐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얻은 정보를 갖고 한 단계 더 들어가게 되면,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일곱 영’을 뜻하는 ‘일곱
등불’은 또 무엇인가입니다. 성경에서 ‘등불’을 찾게 되면 총 44구절에 걸쳐 50번 나옵니다(창 15:17; 출
25:37(2), 27:20, 30:7, 30:8, 35:14, 37:23, 39:37(2), 40:4, 40:25; 레
24:2; 24:4; 민 4:9; 8:2(2); 8:3; 삿 7:16; 7:20; 삼상 3:3; 삼후 22:29; 왕상 7:49;
왕상 15:4; 대상 28:15(3); 대하 4:20; 대하 4:21; 대하 13:11; 대하 29:7; 욥 12:5,
41:19; 시 119:105, 132:17; 잠 6:23; 13:9; 20:20; 사 62:1; 겔 1:13; 단 10:6;
슥4:2; 마 25:1, 3, 4, 7, 8; 계 4:5; 8:10). 이 또한 놀라운 것이 50은 은혜와 온전한 속량 및 자유의
완전 수이며 성령의 법을 뜻하기 때문입니다(숫자 5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수년 전에 ‘등불’의 바른 의미를 알고자 성경에서 ‘lamp’가 들어간 44구절을 모두 찾아 읽었었는데 그
과정에서 내린 결론은 ‘등불’은 하나님의 계명 및 언약 즉 성령의 법을 뜻한다는 거였습니다. 몇 구절을 예로 든다면 등불은 창
15:17에 처음 나오는데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반으로 찢긴 헌물의 사체들 사이로 등불과 화로가 지나가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시 119:105절에 ‘주님의 말씀은 내 발의 등불’이라는 다윗의 고백이 나오며 잠언 6:23절엔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명령으로 번역된 단어가 영어로는
‘commandment’ 즉, 계명입니다(이 발견에 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란 표현입니다. 즉, 켜진 등불이란
빛을 발하고 있는 등불이란 의미이기에 잠언 6장 23절에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와 함께 보아야 하며 50이란 수와
곁들여 구약의 율법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신약, 즉 ‘성령의 법’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시록 5장 6절에서 나오는 “일곱 눈”은 무엇인가입니다. “일곱 눈”이란 표현은 신약에 한 번, 구약에 한 번, 딱 두 번 등장합니다(증언, 증인 및 나눔을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그에게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들은 온 땅에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계 5:6)”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거기에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슥 3:9)”
따라서 이 “일곱 눈”은 어린 양에게 있으며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에 있는 것으로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할
것입니다. 구약의 “여호수아”란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라”는 의미로 신약의 헬라어로 표기된 “예수”와 같습니다.
그리고 숫자 7은 성령의 수이면서 안식과 영적 완전함 및 완성을 의미합니다(숫자 7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관련 구절들이 갖는 2와 7과 50의 특성을 포함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의 의미를 풀어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하나님의 일곱 영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땅에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은 성령으로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리라는 완전한 속량의 보증이십니다.”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편지하노니 전능의 주 하나님(Lord God Almighty)과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는 성령,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땅에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고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거하실 완전한 속량의 보혜사와“
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4절에 대한 분석을 부지런히 마친 후 5절을 읽다가 4절에서 분석했던 ‘일곱 영’에 대한 내용이 5절에 단편적으로
담겨 있음을 발견할 때(증인,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과 같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격려를 얻습니다. 본절의
‘해방’은 영어로는 ‘풀려나다’를 뜻하는 ‘release’인데 같은 단어가 희년에(50년) 종들이 풀려나 자유의 몸으로 고향에
돌아갈 때도 쓰입니다.
본절에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란 표현의 ‘먼저 나시고’는 ‘prototokos(프로토토코스)’입니다. 히브리서 원어 연구에서도 몇 번 다뤘었는데 영어로는 ‘first-born’인 이 단어는 ‘처음 난 것’ 즉 ‘장자, 맏이 또는 맏배’인 ‘첫째’를 뜻합니다. 이 ‘prototokos(프로토토코스)’는 성경에 총 8번 나오는데 8은 새로운 시작, 거듭남, 새 창조, 재생 및 부활을 의미하는 숫자입니다(8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본절을 원어 중심으로 직역하면 “죽은 자들의 첫째이자(장자, 맏이) 충성된 증인이시며 땅의 왕들의
으뜸(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다“입니다. 본절에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란 부분은 원어에는 없습니다.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본절에 ‘나라와 제사장’으로 된 부분엔 접속사가 없습니다. 그냥 ‘제사장 나라’ 또는 ‘제사장의 나라’란 의미로 직역하면 ‘제사장(hiereis) 왕국(basileian)으로 삼으셨다’입니다(a kingdom priests). 즉, 제사장들로 이루어진 왕국이란 말입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 본절을 포함해서 총 3번 나옵니다(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머지 두 구절은 다음과 같은데 개역개정 구절에서 해당 부분의 직역을 괄호처리합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제사장 왕국:kingdom of priests)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제사장 왕국:kingdom priests)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계 5:10)”
그렇기 때문에 4절에서 이미 설명했듯이 성경은 이집트에서 불러내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시켰던 이스라엘을 “광야 교회”라고 하신 것입니다(행 7:37-38). 또한 성경은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 2:9)”라고 하시는데, 여기서 “왕 같은 제사장들(basileion hierateuma)’은
‘제사장 신분의 왕족’이란 의미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인물을 들자면 모세와 다윗일 것입니다. 성경이 “여수룬의 왕(신
33:5)”으로 표현하고 있는 모세는 제사장 직분을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이 먹을 수 있는 헌물 중에서도 특별히
‘가슴살’을 취했습니다(출 29:22-25; 레 7:29-34; 8:29; 9:21; 10:14-15). 다윗도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 베로 만든 에봇을 입고 언약궤가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올 때 언약궤를 맨 레위인들 사이에서 노래하며 춤 췄습니다(대상
15:27).
따라서 본절을 직역한 후 의미를 풀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를 하나님 곧 그의 아버지에게 제사장 왕국으로 만드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대대로 있을지어다 아멘“
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구름과 함께(meta)
오시나니’라는 현재진행형입니다. 우리 주님이 구름을 타고(구름과 함께) 오실 것이란 약속은 성경 전체에 총 7번 나옵니다.
‘인자’라는 표현까지 들어가 있는 구절은 5번이고 본절과 살전 4:17절 처럼 ‘인자’라는 표현은 없지만 주님이 구름과 함께
오시는 것에 대한 내용까지 합치면 7번이 됩니다(단 7:13; 마 24:30, 26:64; 막 13:26, 14:62; 살전
4:17; 계1:7). 구약인 다니엘서 7장 13절에 나오는 ‘구름을 타고’란 표현 역시 히브리어로 ‘구름과 함께(עִם:with)’입니다.
‘구름’이란 표현은 성경에 많이 나올 것 같지만 49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신 4:11; 삿 5:4; 삼하
22:12, 23:4; 왕상 18:45; 욥 20:6, 22:14, 26:8, 35:5, 36:28, 36:29, 36:32;
37:16, 37:21, 38:34, 38:37; 시 18:11, 18:12, 36:5, 57:10, 68:34, 77:17,
78:23, 97:2, 104:3, 108:4, 147:8; 잠 3:20, 8:28, 25:14; 전 11:3, 11:4,
12:2; 사 5:6, 14:14; 렘 4:13; 단 7:13; 욜 2:2; 나 1:3; 습 1:15; 슥 10:1; 마
24:30, 26:64; 막 13:26, 14:62; 살전 4:17; 벧후 2:17; 유 1:12; 계 1:7). 그리고
‘7×7=49’란 숫자가 나타내듯이 거의 모든 구절이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증거하는 주요 역할을 합니다.
구절 몇 개만 들어서 구름의 역할을 설명하면 첫째, 하나님의 힘은 구름 안에 있습니다(시 68:34 Ascribe
ye strength unto God: his excellency is over Israel, and his strength is
in the clouds). 둘째, 하나님은 구름을 명하셔서 하늘의 문들을 여십니다(시 78:23 Though he had commanded the clouds from
above, and opened the doors of heaven). 셋째, 하나님은 구름으로 병거(전차) 삼으시고 바람의
날개 위로 다니시는(걸으시는) 분입니다(시 104:3 Who layeth the beams of his chambers in
the waters: who maketh the clouds his chariot: who
walketh upon the wings of the wind). 다섯째, 하나님은 회오리바람으로 올라오시며 구름을 병거(전차)
삼으십니다(렘 4:13 구절의 영어 번역은 마치 회오리바람이 전차인 거처럼 오역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 원어를 살펴 보고 또
시편 104편 3절을 보면 바람을 통해 이동하시며 구름을 전차로[병거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 역시
회오리바람과 함께 병거를(전차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점을 기억하면 될 것 같습니다(왕하 2:1, 11). 나훔의 구절을
보더라도 하나님은 바람으로 길을 내시고 구름을 발밑에 두십니다(나 1:3 The Lord is slow to anger, and
great in power, and will not at all acquit the wicked: the Lord hath his
way in the whirlwind and in the storm, and the clouds are the dust of his feet).
본절에서 ‘찌른’으로 번역된 ‘ekkenteó(에켄테오)’는
두 번 등장하는데 본절과 요한복음 19장 37절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에 대한 구약의 예언을 인용한 구절에 쓰입니다.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요 19:36-37).” 이 예언은 스가랴 12장 10절 말씀에서 온 것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은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이를 각 사람의 눈이 보게 될 것인데, 십자가에서 예수를 옆구리에 찔림 당하게 했던 자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라보고 독자를
위해 애통하듯, 장자를 위해 통곡하듯 할 것이며 땅에 있는 모든 족속도 심판의 증인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애곡하게 될
것‘이란 의미입니다.
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알파와 오메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4번 나옵니다(계1:8; 1:11, 21:6, 22:13). 그리고 원어에는 ‘시작과 끝(archē kai telos)’이란 표현도 있는데 개역개정엔 빠져 있습니다. 이 “시작과 끝(계1:8, 21:6, 22:13)” 그리고 “전에도 있고 지금도 있고 앞으로 올”이란 표현도 요한계시록에서만 각각 3번 나옵니다(계 1:4, 8, 4:8).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란 표현도 계시록에서만 나오는데 딱 3번 등장합니다(계 1:4, 8, 4:8). 본절외 두 개의 관련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Lord God Almighty)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계 4:8)“
따라서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는 ‘Lord God Almighty’ 즉, 전능하신 주 하나님(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능한 자’란 표현은 히브리어로는 ‘שַׁדַּי(샤다이)’이고 헬라어로는 ‘pantokratór(판토크레토어)’입니다.
영어로는 주로 ‘Almighty’로 번역했는데 구약에 48번 신약에 10번 쓰여서 총 58번 나옵니다(해당 구절들을 모두 읽기
원하시는 분들은 글자를 누르면 모든 구절을 볼 수 있습니다). “Almighty”는 창세기 17장 1절에 처음 등장하는데 99세의
노인인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약속하시며 할례의 언약을 주셨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만나 주십니다. ‘Almighty’가
등장하는 구절들을 살펴보면 축복과 번성의 약속으로 만나주실 때도 있고 심판과 진멸의 권능으로 나타나실 때도 있습니다. 욥기에서
제일 많이 등장하는데 31번이나 나옵니다.
따라서 본절은 “주 하나님이(여호와 하나님)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시작과 끝)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요) 전능한 자라”란 의미입니다. 즉, 구절에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란 의미가 증인을
의마하는 두 번 겹쳐 나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라고 되어 있는데, 직역은 ‘예수 안에서(en Iēsou) 환난과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본절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 특히 말씀의 단수형은 성경에 총 49번 나옵니다. 늘 경험하지만 늘 놀라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완전한 말씀입니다. 이 글을 쓰며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을 영어 킹제임스성경에서 찾게 되면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를 나타내는 ‘구름’처럼 49(7×7)번 등장하는 것을 발견했으니 말입니다. 두 번의 7이 상징하듯이, 성령의
완전함을 뜻하는 7의 증인, 7의 증거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처음 쓰인 곳은 삼상 9장 27절로 사무엘이 사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너에게 보여주겠다고 하는 부분입니다. 구약에 4번 나오는데 주로 예언의 말씀이 선지자들에게 임했을 때
쓰였습니다(삼상 9:27; 왕상 12:22; 대상 17:3; 잠 30:5). 이에 비해 신약에 45번 나오는 “word of
God”은 하나님의 예언 및 구약의 말씀으로도 쓰이지만 대부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쓰입니다(막 7:13; 눅 3:2, 4:4,
5:1, 8:11, 21, 11:28; 요 10:35; 행 4:31; 6:2, 7, 8:14, 11:1, 12:24, 13:5,
7, 44, 46; 17:13; 18:11; 19:20; 롬 9:6; 10:17; 고전 14:36; 고후 2:17, 4:2; 엡
6:17; 골 1:25; 살전 2:13(2); 딤전 4:5; 딤후 2:9; 딛 2:5; 히 4:12, 6:5, 11:3,
13:7; 벧전 1:23; 벧후 3:5; 요일 2:14; 계 1:2, 9; 6:9; 19:13; 20:4).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는 직역하면 “예수의 증언”입니다.
따라서 본절을 직역하고 의미에 맞게 해석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의 형제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환난과 왕국과
인내에 동참하는 자인 나 요한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복음과 예수님의 증언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이란 표현은 성경 전체에 29구절에 걸쳐 총 31번 나옵니다. 나오는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26번
나오는 구약에는 모두 엄중한 심판의 날이며 원수들에게 복수하시는 진노의 날입니다(사 2:12, 13:6, 9, 34:8; 렘
46:10; 애 2:22; 겔 13:5, 30:3; 욜1:15, 2:1, 11, 31, 3:14; 암 5:18(2), 20; 옵
1:15; 습 1:7, 8, 14(2), 18, 2:2, 3, 14:1, 말 4:5). 그런데 5번 나오는 신약은 도리어 주를
믿는 성도들의 구원의 날이니 은혜의 숫자 5에 걸맞은 소식입니다(행 2:20; 고전 5:5; 고후 1:14; 살전 5:2; 벧후
3:10).
또한 ‘원수들에게 보복하시는 진노의 날’을 뜻하는 ‘주의 날’이 성경에 총 31번 나온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여호수아 12장에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성해서 쳐죽인 왕들의 이름이 일일이 열거되는데 그 숫자가
정확히 31명이기 때문입니다(수 12:24). 이런 그치지 않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제겐 성경 연구를 지속하는 힘의 원천이
됩니다. 미리 알아서 적는 것도 아니고 어디에서 배워서도 아니고 성경 안에서 단어들을 찾고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기에 더욱 생생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오늘 숫자 31의 의미는 ‘원수 갚음’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성령에 감동되어’는 의역이고 직역은 ‘영 안에 있었다(egenomēn en Pneumati)’입니다.
‘나팔’은 히브리어로 ‘שׁוֹפָר(쇼파)’ 또는 ‘יוֹבֵל(요벨)’인데
숫양의 뿔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9장 13절에 처음 쓰이며 성경 전체에 103구절에 걸쳐 총 115번(구약에 104, 신약에
11) 나옵니다.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 말고 민수기 10장 8절에 처음 등장하는 제사장들만 불 수 있는 은으로 된 나팔은
히브리어로 ‘חֲצֹצְרָה(캇소쳐로)’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두 종류의 나팔이 구별되지만 영어든 한국어든 번역본엔 모두 구분 없이 ‘나팔(trumpet)’로 되어 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 차이와 조명에 대해 적겠습니다.
신약에 쓰인 ‘나팔’은 헬라어로 ‘salpizó(샐피드조)’이며 11번 나옵니다(나눔과 심판을 의미하는 11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신약에 쓰인 나팔의 용도는 구약과는 조금 다릅니다. 나중에 ‘양각 나팔’과 ‘은 나팔’의 차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적을 때 이 부분도 다루기로 하고 지금은 신약에 나온 나팔의 용도만 적겠습니다. 신약에서 나팔은 속된 사람들에 의해
공지사항이나 선전용으로 쓰였습니다(마 6:2). 그 외에는 모두 하나님의 음성과 심판의 신호로 나옵니다(마 24:31; 고전
14:8, 15:52; 살전 4:16; 히 12:19; 계 1:10, 4:1, 8:2, 6, 13; 9:14)
따라서 10절의 의미는 “주의 날에 나는 영안에 있었는데 내 뒤에서 나는 나팔처럼 큰 심판의 소리, 즉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노라“입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음성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11절에 나오는데, 11절부터 20절까지는 다음 편에
적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원어/영어 분석 2(계1:11-20)
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본절은 원어에는 있는데 번역하지 않고 뺀 주요 단어가 여럿 있습니다. 먼저, 요한계시록에서만 총 4번 나오는 ‘알파와 오메가’란 표현입니다(계1:8; 1:11, 21:6, 22:13). 또한 ‘그 처음과 그 마지막(ho prōtos kai ho eschatos)’이란 표현도 빠져 있습니다. 이 표현은 8절에 ‘알파와 오메가’와 같이 나왔던 ‘시작과 끝(archē kai telos)’이란
표현과는 또 다릅니다. ‘시작과 끝(the beginning and the ending)’은 계시록에서만 총 3번
나오며(계1:8, 21:6, 22:13), ‘그 처음과 그 마지막(the first and the last)’이란 표현은
계시록에서만 4번 나옵니다(본절, 계 1:17, 2:8, 22:13). 영어로는 정관사 ‘the’가 ‘시작과 끝’,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에 모두 붙지만 헬라어로는 ‘시작과 끝’엔 붙지 않고 ‘처음과 마지막’에만 붙습니다.
이번에 요한계시록을 쓰며 성경에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는지 찾아보았더니 총 16번이었습니다.
구약에 12번 나왔고 신약엔 정관사가 붙은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 계시록에만 4번 나옵니다. 구약에 12번 등장하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은 모두 왕(9번) 또는 하나님 자신을(3번) 수식한 단어였습니다(대상 29:29; 대하 9:29, 12:15,
16:11, 20:34, 25:26, 26:22, 28:26, 35:27; 사 41:4, 44:6, 48:12). 참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구약에서는 ‘왕 또는 하나님’에게만 쓰였는데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를 뜻하는 12번 등장하기 때문입니다(12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쓰였는데, 세상 및 창조물을 뜻하는 4번 등장하니 말입니다(4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에덴동산에서 흘러나온 한줄기 강은 넷으로 나뉘어 온 땅을 적시며 생물이 번성할 수 있는
물을 공급해 주었습니다(창 2:10).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4 복음서로 나뉘어 영혼육을 살리는 성령의 생수로 이 세상
가운데 흐르고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가 지어졌고(히 1:2) 그분은 모든 만물을 붙들고(이끄시고) 계시며(히
1:3),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되 하늘과 땅에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모든 권세와 만물이 다 그를 위해
창조됐다고 증거합니다(골 1:16).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고 하시는데 흥미롭게도 16은 통상 ‘사랑’을 의미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6에 대해 자세히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연구해서 나름 그 뜻을 적어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하나님의
아이덴티티(identity)”를 의미하는 것처럼 제겐 여겨집니다. 이번에 하나님과 왕에게만 쓰이는 ‘처음과 마지막’이란 표현이
성경에 총 16번 나온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명칭을 성경에서 모두 찾으면 16개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명칭들을 모두 적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 엘로힘(창 2:4-25)”, “아도나이 여호와(창 15:2, 8)”, “여호와 이레(창 22:8-14)”,
“여호와 라파(출 15:26)”, “여호와 닛시(출 17:15)”, “여호와 엘로헤카(출 20:2, 5, 7)”, “여호와
메카디쉬켐(출 31:13; 레 20:8, 21:8)”, “여호와 샬롬(삿 6:24)”, “여호와 치키뉴(렘 23:6)”, “여호와
싸바오스(삼상 1:3 이후로 영어 킹제임스 성경엔 245번 나옴)”, “여호와 삼마(겔 48:35)”, “여호와 엘리온(시
7:17, 47:2, 97:9)”, “여호와 로히(시 23:1)”, “여호와 호시뉴(시 95:6)”, “여호와 엘로히뉴(시
99:5, 8, 9)”, “여호와 엘로하이(슥 14:5)”
본절에 빠져 있는 세 번째 단어는 ‘천사 혹은 메신저’를 뜻하는 ‘aggelos(앵겔로스)’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총 176번이나 나오는데 대부분 ‘하나님의 메신저인 천사’를 뜻합니다. ‘두루마리’로 번역한 ‘biblion(비블리온)’은
파피루스 종이로 둘둘 말린 책을 의미합니다. 성경에 총 34번 쓰였는데 마태복음 19장 7절과 마가복음 10장 4절에서 모세가
너희 아내를 버리려거든 ‘이혼 증서’를 주라고 했던 부분과 요한계시록 6장 14절에 하늘이 두루마리처럼 말려 떠나갔다는 부분에
쓰인 것 외에는 ‘책’으로 번역됐습니다. 요한은 이 책을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내라는 명령을 받는데, 이 일곱 교회는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입니다.
‘에베소’는 성경에 총 17번 등장합니다(부활 승리를 의미하는 숫자 17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에베소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견해는 갈리는데 ‘바람직하다, 호감이 가다, 갖고 싶을 만하다’를 의미하는
‘desirable’이라고도 하고 ‘허용되다’를 의미하는 ‘permitted’라고도 합니다. ‘서머나’는 요한계시록에 두 번
등장하며 뜻은 “몰약”입니다(증인 및 증거를 의미하는 2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몰약(myrrh)”이란 단어도 전체 성경에 16번 나오는데 나오는 구절들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이 깊은 단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버가모’ 역시 요한계시록에서만 두 번 등장하는데 ‘결혼으로 하나 되다’란 의미입니다.
‘두아디라’는 성경에 4번 등장하는데 ‘희생 헌물’이란 뜻이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 일행을 맞아들였던 자색 옷감 장사였던
루디아가 두아디라 출신입니다(행 16:14). ‘사데’도 요한계시록에서만 3번 등장하는데 공교롭게도 이름의 의미도 3가지 견해로
나뉩니다. ‘기쁨의 왕’, ‘남겨진(머무는) 것’, ‘탈출하는 자들’이란 견해입니다. ‘빌아델비아’는 요한계시록에서만 2번
등장하며 이름의 의미는 ‘형제 사랑’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성경에 6번 등장하며 의미는 ‘사람들이 통치하다, 사람들이
심판하다’란 의미입니다(인간의 수 6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빠져 있는 단어들이 여럿 있어서 넣고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그 처음과 그
마지막이라. 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필라델피아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라는 말씀이라“
12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여기 나오는 “촛대”는 구약의 ‘등잔대’와 같은 단어입니다. 킹제임스 영어 성경으로는 “candlestick”,
다른 영어버전으로는 “lampstand”라고 하는데 성경 전체에 총 43구절에 걸쳐 53번 등장합니다(출 25:31(2),
25:32(2), 25:33, 25:34, 25:35, 26:35, 30:27, 31:8, 35:14, 37:17(2),
37:18(2), 37:19, 37:20, 39:37, 40:4, 40:24; 레 24:4; 민 3:31, 4:9, 8:2,
8:3, 8:4(2); 왕상 7:49; 왕후 4:10; 대상 28:15(5); 대하 4:7, 4:20, 13:11; 렘
52:19; 단 5:5; 슥 4:2, 4:11; 마 5:15; 막 4:21; 눅 8:16; 눅 11:33; 히 9:2;
계1:12, 1:13, 1:20(2), 2:1, 2:5, 11:4). 모세의 성막에는 7가지의 등불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한
개였습니다(출 25장). 그랬다가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왼쪽에 5개 오른쪽에 5개 모두 10개의 등잔대가(왕상 7:49)
등장합니다(하나님의 완전수 10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잔대마다 7가지의 등불이 있었으니 70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하나님의 완전수 7과 7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게 요한계시록에 와서는 일곱 교회를 뜻하는 일곱 등잔대로 처음 등장하는 것입니다(계1:20). 일곱 가지로
뻗어나가는 등잔대가 일곱이 있으니 49 등불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알다시피 49란 수는 희년으로 이어지는 50과 깊은 연관이
있는 7번의 안식년을 뜻하는 안식의 완전수이기도 합니다(5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곱 촛대(등잔대)’란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만 4구절에 걸쳐 5번(은혜의 수 5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등장합니다(계1:12, 1:13, 1:20(2), 2:1).
그러니까 요한은 “등 뒤에서 자신에게 말하는 음성을 보려고 몸을 돌이켰는데, 돌이키자 하나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도록 허락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교회인 7등잔대를 본 것“입니다.
13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촛대 사이에’로 번역했지만 직역은 ‘그 촛대들(등잔대들) 가운데(mesō)’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인 일곱 등잔대가 둘러서 있는 그 중심에 인자 같은 분이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출 3:2). 여호와는 시온과 예루살렘 한가운데 계시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로서 그들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고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는 분입니다(습 3:17).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다는 것을(마 18:20) 분명히 말씀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은 거룩함을 입은 형제요 자녀들인
교회의 중심에서(가운데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며 찬송하시는 분이십니다(히 2:10-13).
“인자 같은 이”란 표현은 다니엘서에 2번 요한계시록에 2번 총 4번 나옵니다(단 7:13, 10:16; 본절, 계
14:14). 모든 관련 구절을 읽어보면, 하나님이시면서도 우릴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죄와 사망을 멸하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심판의
주요, 만왕의 왕으로 오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절 외에 관련 구절을 모두 가져오면 다음과
같으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7:13-14)
“이제 내가 마지막 날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이는 이 환상이 오랜 후의 일임이라 하더라그가
이런 말로 내게 이를 때에 내가 곧 얼굴을 땅에 향하고 말문이 막혔더니 인자와 같은 이가 있어 내 입술을 만진지라 내가 곧 입을
열어 내 앞에 서 있는 자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주여 이 환상으로 말미암아 근심이 내게 더하므로 내가 힘이 없어졌나이다(단
10:14-16)”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당신의 낫을 휘둘러
거두소서 땅의 곡식이 다 익어 거둘 때가 이르렀음이니이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땅의 곡식이
거두어지니라(계 14:14-16)”
‘발에 끌리는 옷’은 의역이고, ‘발까지 내려온 긴 옷’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옷은 성경에 왕이나(왕상 22장)
대제사장들이(출 28장) 입었던 ‘robe’을 뜻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왕이며 대제사장이신 분이십니다(히 5장-7장; 딤전
6:15; 계17:14, 19:16).
‘가슴에 금띠를 띠고’에서 ‘띠’로 번역된 ‘zóné(조네이)’는 ‘허리띠’ 즉 ‘belt’를 의미하며 신약에 총 8번 나옵니다(8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허리띠는 우리의 옷을 단정히 잡아주고 성실히 일할 수 있도록 동여매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기에 성경은 왕으로 오실 우리 주님은 공의와 성실로 허리를 동여매는 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신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사 11:1-5)”
따라서 13절은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완전한 교회 가운데 계시더라. 이제 우리의 왕이요 대제사장으로 이 세상을 심판하러 오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는 가슴을
공의와 성실의 순수함(금)으로 동이셨더라“
14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란 표현은 다니엘서 7장 9절에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표현입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단
9:9-10, 13-14)”
‘그의 눈은 불꽃 같고’에서 ‘불꽃’은 헬라어로 ‘phlox(플록스)’인데
신약에 총 7번 나옵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이 불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눅
16:24; 행 7:30; 살후 1:8; 히 1:7; 계1:14, 2:18, 19:12). 때문에 관련구절 중 하나인 사도행전
7장 30절에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이란 의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에굽에게 정하신 준비기간이 다 되었을 때 에굽을 영원한 불못에 멸하시려고 모세에게 심판의 주로 나타나셨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4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서도 우리는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만납니다. 13절에 나오는 ‘인자’는
분명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성자 하나님에 대한 것인데, 14절에서 만나게 되는 그분에 대한 묘사를 다니엘서에 비춰보면 성부
하나님이십니다. 3분의 독립적인 분이면서도 한 분인 하나님을 언젠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알지만,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알듯이 내가 그분을 아는 날이 곧 오기를 소망해 봅니다(고전 13:12).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은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곧 성부 하나님이시며 성자 하나님이시니 심판의 주시라”
15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본절의 ‘풀무불’은 ‘kaminos(카미노스)’인데 ‘용광로(furnace) 혹은 가마(kiln)’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을 알기 위해 본절을 제외한 신약에 4번 쓰인 구절들을 모두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마 13:41-42)”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마 13:49-50)”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보니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있는데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그가 무저갱을 여니 그 구멍에서 큰 화덕의 연기 같은 연기가 올라오매 해와 공기가 그 구멍의 연기로 말미암아 어두워지며(계 9:1-2)”
요한계시록 9장 2절에 ‘화덕’으로 번역한 단어가 도로 ‘kaminos(카미노스)’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모든 구절을 읽어보면, ‘풀무불’은 다름 아닌 심판의 불을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본절에 ‘단련한’으로 번역한 헬라어 ‘pepyrōmenēs(페피로메니스)’는 ‘불타는, 빛나는, 정제된’이란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석’으로 번역된 광물이 무엇인지 찾아보니 영어로는 ‘tin’이었습니다. ‘chalkolibanon(칼콜리바논)’이 어쩌다가 ‘tin’에 해당하는 한국말로 번역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어로는 ‘brass, copper, bronze’ 등으로 쓰이는데, 특히 ‘chalkolibanon(칼콜리바논)’은
‘광택이 나는 놋쇠(fine brass) 또는 구리(fine bronze)’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예전에 성경에 나오는 광물의
뜻을 알고 싶어서 각 광물에 대한 구절을 모두 뽑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때 내린 결론은 ‘놋쇠(brass)’는 ‘죄의
심판’을 의미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그때 얻었던 금, 은, 놋쇠, 철 등에 대한 조명도 관련 구절들과 함께
적어보겠습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에서 ‘많은 물’이란 표현은 성경에 14번 나옵니다(민 24:7; 삼하
22:17; 시 18:16, 29:3, 93:4; 아 8:7; 사 17:13; 렘 51:13; 겔 19:10, 43:2;
계1:15, 14:2, 17:1, 19:6).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많은 물’이란 ‘여러 나라(many
nations)’를 의미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음성은 많은 나라들의 소리와 같았다’란 의미는 마치 오순절 때
성령이 강림하자 제자들이 15나라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행 2:9-11).
따라서 본절은 “그의 발은 죄를 심판하는 불이며 그의 음성은 여러 나라의 말소리와 같으니“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 15절은 주님께서 발로 용(뱀), 즉 마귀와 원수들을 짓밟으시며 심판하실 채비로 오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시 91:13; 사 63:3). 특히 여기 나오는 주님의 놋쇠 발은 솔로몬의 성전에 있던 두 개의 놋기둥(야긴과
보아스)에 상응합니다(왕상 7:13-21). 솔로몬의 성전은 다름 아닌 주님과 부활한 성도들의 몸에 대한 그림자로 주신 것입니다.
이 조명에 대한 매우 유익한 외부 자료는 링크를 걸어놓았으니 여길 눌러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6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하나님의 ‘오른손’은 구원을 이루시는 능력의 손, 권능의 손을 의미하며 원수를 쳐부수는 승리와 공의의 손이기도
합니다(출 15:6, 15:12; 시 16:11, 17:7, 18:35, 20:6, 21:8, 44:3, 45:4, 60:5,
98:1, 108:6; 사 41:10, 48:13, 62:8).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사자)”라고 20절에 이미 그
의미가 해석되어 있습니다. “좌우에 날선 검”이란 의미는 칼의 양면이 날카롭다는 의미입니다. 대부분의 칼은 칼등이 있고 칼날이
있지만 양면이 다 날이 선 칼을 의미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은 내 입에서 나가는 순간, 내게도 향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설교할 때나 말씀을 묵상할 때 남에게 주는 말씀으로 생각하며 준비할 수 있겠지만 그 말씀은 나를 먼저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 ‘distomos(디스토모스)’란 단어는 신약에 총 3번 나오는데(부활 및 영적 완전함을 의미하는 3에 대해서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본절에 나오는 구절을 제외한 나머지 구절들을 가져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계 2:12)”
즉,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란 의미는 ‘그의 입에서 활력이 있고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말씀이 나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본절에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는 직역 하면 ‘해가 힘있게 빛나는 것 같더라’입니다. “해처럼 빛난다”는
표현은 성경에 총 3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마 13:43, 17:2; 본절). 그런데 특히 마태복음 13장 43절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신 말씀의 전 구절인 13장 41-42절은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알곡과 가라지 비유를 하신 후 그 부분을 설명해 주신 구절인데 공교롭게 본절에 나오는 내용과 그 전 구절인 15절에 나온 내용과 묘하게 맞아떨어집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비교표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라기 4장 1-3절을 통해서도 요한계시록 1장 13-16절에 대한 조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말 4:1-3)” 즉, 이 구절들에서도 용광로 불과 해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장 13-16절의 묵시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마지막 때에 주님께서 완전하게(7) 된 교회의 천사들(의로운 성도들)과
함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세상의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때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는 살아있는 말씀으로 발가벗겨진 것처럼 만물이 그의 눈앞에 드러나게 될 것이며 악인들은 심판의 불에 지푸라기처럼 탈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운 해로 나타나 치유하실 것이며 의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또한 이들이 주님과 함께 악인들을 밟을 것이니 악인들은 이들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을 것입니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7 교회의 천사’ 혹은 ‘7 교회의 사자’가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완전해진 성도들을
의미하는가?’는 다음 구절에도 조명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계 22:8-9)” 여기서 “함께 된 종“은 헬라어로 ‘sundoulos(순둘로스)’이며
‘동료 종들(fellowservants)’이란 뜻으로 신약에 총 10번 나옵니다(마 18:28, 18:29, 18:31,
18:33, 24:49, 골 1:7, 4:7; 계 5:11, 19:10, 22:9).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구약에서도 모세 및 선지자들을 ‘여호와의 종’으로 표현합니다. 즉, 요한에게 이 모든 걸 보여주던 7천사 중 한
명은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책의)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같은 동료 종일 뿐이니 내게 경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한 것입니다.
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죽은 자처럼 주님의 발 앞에 엎드려지는 것은 하나님의 두려운 임재와 영광과 능력 앞에 나타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니엘도 하나님과 주님을 환상 가운데 뵈었을 때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으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단
9:15-19). 에스겔도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과 그룹의 모습을 보았을 때,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하게 됐을 때 번번이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겔 1:28, 3:23, 43:3, 44:4).
저는 천국 간증 같은 건 듣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되어 있는데, 또 다른 간증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12월에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날 거니까 회개해야 한다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는 한 여자가 있는데 그 사람의 기도 안
차는 천국 간증을 한 번 들어보라며 누가 보내줘서 5분 정도 듣고 만 경험이 있습니다. 어떤 교회에서 간증을 한 것인데, 그
사람의 말을 진지하게 들으며 ‘아멘 아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 여성은 자기가 주님을 만나
와인을 마시며 러브샷을 하고 함께 춤을 췄다고 했습니다. 그러더니 주님이 잠수함 같은 걸 타고 자기한테 바닷속 영적 세계를
보여줬다면서 그걸 자세하게 묘사하는 부분에서 더 이상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 듣지 않았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얘길 하는
여자와, 또 그런 얘기를 믿고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미혹되는 사람들이 안타까웠습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었다면 결코 미혹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처음엔 이 여성이 꾸며낸 얘기, 즉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니, 그게 아니라 정말 ‘광명(빛)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고후 11:14)’에게 이끌려 바닷속 환영까지 보고 온
것이구나 싶어지자 섬뜩했습니다. 성경은 사단을 물속에 있는 용(시 74:13, 사 27:1, 겔 29:3)이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성경으로 이 구절들을 찾아보니 다행히 시편과 이사야는 ‘용’으로 제대로 번역했는데, 에스겔 29장 3절은 ‘악어’라고
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 단어도 같은 ‘용’입니다. 이러한 구절들을 처음 읽었을 때 한국 민속 설화에 나오는 바닷속 용궁에 있는
용왕에 대한 얘기가 떠올라 신기했던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할 것(마 24:24)”이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심판하러 오신 주님 앞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
7:22)”라고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향한 주님의 반응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2)”입니다. 7장을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많은 은사나 이적을 행하는 능력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교만하게 하여 더 죄만 짓게 할 뿐입니다(이 부분에 대한 더
자세한 조명은 ‘유리하는 별들‘이란
글에 적어놓았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이 분명하고도
간단명료하게 적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순종을 못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분명 “열매를 통해 그들을 알 것”이라고 하시면서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고,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7장, 12장). 성경에 나오는 열매는 성령의 9가지 열매입니다(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이런 열매는 오직 말씀과 기도로 나의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자기 부인하며
날마다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는 내 안에 사는 신앙의 몸부림과 순종 없이는 맺어지지 않습니다. 지금은, 드러나는 은사 때문에
자기도 속고 남도 속이며 “나는 주께 속한 자다” 할 사람들이 많겠지만, 주님은 열매 맺지 못한 나무는 모두 찍혀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마 7:19; 눅 3:9). 마지막 시대에 온 세상을 시험하러 오는(계 3:10) 미혹으로부터
나를 지켜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마음으로 읽어 영적인 감각을 단련시켜(히 5:14) 분별하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본절의 다른 부분들은(오른손, 그 처음과 그 마지막) 이미 앞에서 설명했기에 넘어갑니다.
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살아 있는 자’란 표현은 ‘ho Zōn(The
Living One)’입니다. 성경에 ‘살아계신 하나님(The Living God)’이란 표현이 몇 번 나오나 찾아봤더니 총
30번이었는데 구약에 15번 신약에 15번 나온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30에 대한 자세한 의미는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세세토록’은 ‘aiōnas(아히오나스) tōn(톤) aiōnōn(아히오논)’으로
‘이 시공간의 시공간’ 즉 ‘세세대대(ages to ages, the ages of the ages)’란 의미입니다. 전에도
썼지만 이 시공간은 주님이 재림하셔서 천 년간 통치하시는 기간이 끝난 후에는 모두 사라지고 영원 세계로 가게 될 것입니다(계
20-22장). ‘음부’로 번역한 ‘hadés(헤이디스)’는 총 10번 나옵니다(완전수 10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관련 구절들을 모두 읽어보면 ‘hadés(헤이디스)’는 죽은자들의 혼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마 11:23, 16:18; 눅 10:15, 16:23; 행 2:27, 2:31; 본절, 계 6:8, 20:13, 20:14). 영어로는 ‘hadés(헤이디스)’와 똑같이 ‘hell’로 번역했지만 ‘geenna(게헨나)’란
단어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신약에 12번 나오는데(마 5:22, 5:29, 5:30, 10:28, 18:9, 23:15,
23:33; 막 9:43, 9:45, 9:47; 눅 12:5; 약 3:6) 모두 읽어보면, 특별히 악인들이 던져지는 마지막 심판의
불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역시 영어로는 ‘hell’로 번역했지만 ‘tartaroó(타르타루)’란 곳이 있는데, 여긴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의 때까지 갇혀있는 어둠의 장소를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벧후 2:4).
따라서 이 3가지 장소를 모두 종합해 보면 ‘hadés(하데스)’란 곳이 심판의 때까지 사람들의 혼이 있는 장소라면(성도들은 예외), ‘tartaroó(타르타루)’는
심판의 때까지 타락한 천사들이 갇혀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천년 왕국이 끝난 후에 있을 백보좌 심판에서 모든 죽은자들이 다시
일어나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 그리고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 및 사망과 지옥까지(hadés:하데스) 모두 불과 유황 못(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모든 불법이 멸하여지는 이 ‘불못’이 바로 ‘게헨나’라고 생각합니다(계 20:9-15). 이 조명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천국과 지옥(무저갱, 음부, 게헨나)의 차이:영혼은 불멸인가?“란 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제목을 누르면 바로 연결됩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분이십니다. 성경 전체에서 열쇠는 8번 밖에(새로운 시작 및 새 창조를 뜻하는 8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길 누르시기 바랍니다) 나오지 않습니다(삿 3:25; 사 22:22; 마 16:19; 눅 11:52; 계 1:18, 3:7, 9:1, 20:1). 그중 본절에 대한 관련 구절들만 몇 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이 구절은 이사야 22장 20-25절의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통치에 대한 예언 중에 있습니다. 이 예언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직접 요한계시록 3장 7절에서 내가 그 예언의 성취임을 밝히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계 3:7-8)”
다윗의 열쇠를 가진 예수 그리스도는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능히 닫을 사람이 없는 열린 문을 두셨을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6장에 말씀하신 것처럼 천국의 열쇠까지 교회에게 주셨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8-19절)”
그렇기에 ‘죽은 자들의 혼’이 심판받는 날까지 있어야 하는 ‘음부(hadés:하데스)’의 권세는 교회를 이기지 못합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으며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의 혼은 ‘음부(hadés:하데스)’에 있는 게 아니라 주님이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도 약속하셨던 것처럼 ‘paradeisos(파라디소스)’즉,
‘하나님의 동산’인 ‘paradise(파라다이스)’에 있습니다. 이 단어는 성경에 3번 나오는데 바울도 혹은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가 아는 어떤 사람도 영안에서 방문했던 곳이기도 합니다(눅 23:43; 고후 12:4; 계 2:7).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로 요한계시록 9장과 20장에서 ‘무저갱’을 열고 또 닫으시는데(계 9:1-11; 계 20:1-3) 이 ‘무저갱’은 도로 타락한 천사들을 가둔 ‘tartaroó(타르타루)’가 아닐까 합니다. 이 무저갱을 열자 마치 ‘kaminos(카미노스:풀무불,
심판의 불)’와 같은 연기가 그 구덩이에서 솟아 올라오는데 주님은 이 무저갱을 열어 갇혀있던 온갖 영적 존재들을 내보내시고(계
9장), 계시록 20장에서는 옛 뱀, 마귀, 사탄이라 불리는 용을 잡아 천 년 동안 그곳에 결박하십니다. 하지만 이 마귀는 천년이
찼을 때 옥에서 풀려나와 다시 반역을 꾀하게 되고 결국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불못에 던져지게 됩니다(계
20:7-10).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나는 죽임을 당했지만 사망과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해 영원히 사는 자라 내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으니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리라.“
19 그러므로 네가 본 것과 지금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말 그대로 “네가 본 것들과(본 일들과) 지금 있는 것들과(지금 있는 일들과) 이후에 있게 될 것들을(이후에 있을 일들을) 적으라“고 하십니다.
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20절은 일곱 별의 의미가 무엇이고 일곱 금 촛대가 무엇인지를 풀어주신 구절입니다. 특별히 ‘일곱 별의 비밀’, 즉
‘일곱 교회의 천사들의(개역개정에 ‘사자’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와 영어로는 ‘angel’입니다) 비밀’이라고 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천사의 몸으로 주님과 영원히 살게 될 것이 곧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주님이 직접
부활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사두개인들에게도 말씀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와서는
7형제가 모두 자식 없이 죽는 바람에 그 형제들과 모두 결혼했던 여자가 있다면 부활 후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냐고
묻습니다. 이들의 황당한 질문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 22:29-30절)”
바울 역시 부활의 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것이 ‘비밀’임을 밝힙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47-53)”
본절에 ‘비밀’로 쓰인 헬라어 ‘mustérion(무스테이리온)’은
영어로는 ‘mystery(미스테리)’입니다. 신약에 총 28번 나오는데(28은 4×7 즉, 세상과 하늘의 곱합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단어가 쓰인 구절들을 일일이 읽어보면 하나님의 왕국, 부활의 몸 및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에 대해 쓰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구절을 읽어보는 것도 매우 유익할 것입니다(마 13:11; 막 4:11; 눅 8:10; 롬 11:25,
16:25; 고전 2:1, 2:7, 4:1, 13:2, 14:2, 15:51; 엡 1:9, 3:3, 3:4, 3:9, 5:32,
6:19; 골 1:26, 1:27, 2:2, 4:3, 살후 2:7; 딤전 3:9, 3:16; 계 1:20).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며(엡 5:25-33) 또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몸이기도 한(엡 4:15-16;
엡 5:23) 이 ‘미스테리’는 비유가 아닌 실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가 남편과 아내 관계이면서도
부부이기에 한 몸이 되는 것을 에베소서 5장 23-33절까지 설명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엡 5:32)”라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삼위일체의 하나님만큼 현재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래야 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미스테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본절은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습니다. “네가 본 것은 공의로 교회와 함께 원수를 쳐부수며 승리로 구원을 이룰 내 능력의 손에 있는 완전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의로운 성도)에 대한 비밀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