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로 클라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 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네로(Nero)는 로마 제국의 제5대 황제(37년12월 15일 ~ 68년6월 9일, 재위 54년10월 13일 ~ 68년6월 9일)이자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다. 본래 이름은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Lucius Domitius Ahenobarbus)이며, 황제가 되어 네로 클라우디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게르마니쿠스(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로 개칭하였다. 클라우디우스의 외종손이자 양자이며 칼리굴라의 외조카이다.
네로
서기37년 가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의 아들로 태어났다. 네로의 어머니는 아우구스투스의 증손녀이자 게르마니쿠스의 딸인 율리아 아그리피나이다. 그의 출생 당시 로마 제국은 외삼촌인 칼리굴라의 집권기였는데,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사망하였다. 서기 49년 어머니인 아그리피나가 숙부(네로의 외종조부)이자 당시 로마 제국 황제였던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하였고, 네로는 클라우디우스의 양자가 되었다.
네로는 서기54년 양부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세 살 차이의 의붓동생 브리타니쿠스[1]를 제치고 황제로 취임하였다. 집권 전반기 그는 철학자이자 정치가인 세네카와 근위군단 장교 부루스의 보좌를 받아 선정을 베풀었다. 또한, "로마의 신이 황제에게 로마 문화를 발전시키라는 명령을 했다."라는 신념에 따라 로마의 문화와 건축을 발전시켰다. 네로는 자신을 예술가의 지도자로 생각하여 시, 노래, 건축 등 예술을 지원했는데, 지금도 네로 시대 당시 지어진 화려한 건축물이 남아 있다. 그가 폭군으로 낙인 찍힌 것은 로마 대화재 당시 민심 수습책으로 신흥 종교였던 기독교에 책임을 덮어 씌우고 기독교도를 학살하여 기독교의 뿌리 깊은 원한을 산 이유가 크다.
그러나 55년 의붓동생인 브리타니쿠스를 독살(이는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소행이라는 주장도 있다)하였고, 59년에는 정치적으로 간섭해 온 어머니 아그리피나를, 62년에는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하였다.
↑브리타니쿠스는 클라우디우스와 그의 세 번째 아내이자 첫 번째 황후인 메살리나(22년 - 48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성공회사제이자 신약성서학자인 박태식 신부에 따르면, 네로 황제 당시 화재는 서기 64년에 9일간 일어났다. 로마 시내 14개 구역 중 10개 구역에 일어난 대형 화재였다. 정부의 구호활동에도 불구하고 로마 제국 체제의 안위를 흔들 수 있는 네로 황제 방화설이 수그러들지 않자, 집권세력은 당시 "사악한 미신", "로마 제국에 의해 처형된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는 공격을 받고 있었던 기독교도들을 사회혼란 해결의 희생양으로 삼아 탄압하고 화형으로 살해하였다. 《타르수스의 바오로》/박태식 지음/바오로딸.
↑사도행전에 따르면 네로 황제 전에도 기독교는 헤롯 왕실과 산헤드린 의회에 의해 순교자가 발생하는 탄압을 받았다. 즉, 네로를 최초의 기독교 박해자라고 하는 것은 로마 제국 황제 중 최초라는 뜻으로 중세 역사가들이 기술했다고 여겨진다. 다만, 네로 이전에도 티베리우스가 유대교도와 기독교도에 황제를 신으로 모시는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하고 거부하는 이들을 박해했다. 칼리굴라는 이스라엘 성전에 자신의 신상을 세우라고 명령하고 거부하는 이들을 박해했다. 네로의 양아버지 클라우디우스는 로마에서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고, 외래미신을 믿는다는 죄목을 붙여 기독교도를 박해했다.
도미티아누스 (51년10월 24일 - 96년9월 18일)는 로마 제국의 열 한 번째 황제이다. 그는 전임 황제자들이었던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이자, 티투스의 동생이었으며, 플라비우스 왕조의 마지막 황제이기도 하다. 재위 기간 그의 권위주의적 성격 방식의 통치는 도미티아누스로 인해 권력이 급격하게 제한당한 원로원과 극도의 불화에 빠트렸다.
도미티아누스는 아버지와 형의 재위 기간에 크고 작은 형식적 역할을 맡았다. 형이 죽은 후, 도미티아누스는 친위대의 지지로 황제로 선포되었다. 그의 15년간의 통치 기간은 티베리우스 재위 기간 이래로 가장 긴 기간이었다.[1]
생애
형제와의 경쟁
도미티아누스는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와 어머니 플라비아 도미틸라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베스파시아누스는 제9대 로마 황제이었다. 그는 프린켑스 유벤투티스의 지위를 가졌고, 베스파시아누스 생전에 6차례나 집정관을 지냈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없는 11세 연상인 형 티투스의
뒤를 이을 황제감으로 인정받았다. 79년 6월 베스파시아누스가 죽은 뒤 그때까지 티투스가 누렸던 것과 똑같은 지위, 특히
호민관의 권력과 일부 임페리움을 누리고 싶어했으나 이를 허락받지 못해 결국 형과 적대하게 되었으며 이 때문에 훗날 형의 죽음에도
어느 정도 관여한 듯하다. 황제가 된 뒤에는 귀족들의 미움을 받았다. 트라야누스 시대의 역사가들인 타키투스와 소 플리니우스에게서
받은 혹평을 그대로 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는 분명 잔인하고 허세를 부렸기 때문에 평판이 좋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군사적·행정적인 역량을 갖추고 있어 로마와 속주(屬州)의 행정관들을 강력히 통제했으며 이는 수에토니우스의 칭송을 받기까지 했다.
군사정책
그의 군사·외교 정책도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었다. 도미티아누스는 집권초 브리튼 섬과 게르만 지방으로의 진격을 시행했고 국경인 라인-도나우 강변에 리메스(요새
방벽)를 건설했다. 그러나 스코틀랜드를 미처 합병시키기도 전에 도나우 강 지역에서 큰 전쟁이 일어나 로마는 2개의
레기온(군단)과 많은 군사를 잃었다. 이것은 타키투스도 지적했듯이 당시 군지휘관들이 태만하고 성급했기 때문이었지만 로마에서는
도미티아누스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그는 84년에 군인 봉급을 1/3 정도 올려주는 등 현명하게 처신해 군대 내에서 인기를
그대로 유지했다.
우상화
진짜 문제는 그 자신의 법률상 지위와 의전행사에서의 위상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자주 콘술직을 맡았으며, 85년에는 종신 감찰관이 되어 원로원
의원과 장군들의 행동을 통제했다. 원로원에서는 개선식 의상을 입고 있었다. 고대 그리스 경기를 본떠 4년마다 1번씩 개최한
경기를 주재할 때는 그리스풍의 옷과 금관을 착용했으며 동료 심판들은 여러 신들로 둘러싸인 도미티아누스의 초상이 새겨져 있는 관을
써야 했다. 토미티아누스 황제는 로마제국에 대한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자신을 '주님이자 하느님'(dominus et
deus)이라고 부르게 해서 심한 공격을 받았으며,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주님이자 하느님이라는 기독교의 케뤼그마에 반대되는 도미티아누스의 황제 우상화에 반대하여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았다.
철권통치
84년에 사촌 플라비우스 사비누스를 처형시킨 것은 다른 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는 않았지만 87년에 일어난 일반적인 소요의 전초였다. 89년 1월 1일에는 상 게르마니아 총독 안토니우스 사투르니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는 하 게르마니아 주둔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황제는 수많은 사람들을 처형했고 나중에는 원로원 의원을 종종 반역죄로 고발했다. 따라서 93년부터 96년은 사상 유례없는 공포정치의 시기로 여겨지게 되었다.
암살
결국 도미티아누스는 96년9월 18일에 근위대장 2명과 여러 궁정관리, 아내 도미티아 롱기나의 음모로 살해당했다. 그 뒤 곧 제위를 이은 네르바 역시 음모에 가담한 것이 분명하다. 원로원은 그의 죽음을 기뻐하며 생전에 남긴 모든 업적을 지워버리는 '기록말살형'에 처했음에도 군대는 이에 반발해 이듬해에 책임자들을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첫째 부활(the first resurrection) & 둘째 사망(the second death)
성경에는 첫째 부활(계 20:5-6)과 둘째 사망(계 2:11. 20:6, 14. 21:8)에 대한 것만 증거합니다. 그런데 왜 둘째 부활과 첫째 사망이란 용어가 자주 사용될까요?
그 이유는 이미 성경에서 첫째 부활이란 표현을 하였기 때문에 그 반대의 현상 "첫째 사망"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첫째 부활"이란 용어를 사용한 두 구절 요한계시록 20:5-6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The rest of the dead did not come to life until the thousand years were ended.) This is the first resurrection. Blessed and holy are those who have part in the first
resurrection. The second death has no power over them, but they will be
priests of God and of Christ and will reign with him for a thousand
years.
그렇다면 '첫째 사망"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첫째 사망'이란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이미 죽어야 할 운명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을 말합니다.
창세기 2:17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로마서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둘째 사망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둘째 사망이란 원죄로 말미암아 첫번째 사망으로 태어난 존재가 심판의 날에 영원한 형벌의 죽음에 이르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복음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히브리서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경에서 "둘째 사망" 이란 용어를 사용한 4구절
요한계시록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결론 /
첫째 부활이란 성도들의 부활을 말합니다(마태복음 27:50-5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을 때 무덤 문이 열리며 많은 성도들도 함께 부활했습니다.
마태복음 27:50-53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첫째 부활이란 이긴 자의 부활을 말합니다(요한계시록 2:11)
요한계시록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릇 하리라.
(The rest of the dead did not come to life until the thousand years were ended.) This is the first resurrection. Blessed and holy are those who have part in the first
resurrection. The second death has no power over them, but they will be
priests of God and of Christ and will reign with him for a thousand
years.
질문
첫째 부활은 무엇인가요? 둘째 부활은 무엇인가요?
답변
다니엘 12:2은 인류가 마주하게 될 두 가지의 전혀 다른 운명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모든 사람들은 죽음으로부터 부활하겠지만, 모두 동일한 운명을 마주하게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의인과 악인에게 있을 서로 다른 부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4-6은 “첫째 부활”을 얘기하고 있으며,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둘째 사망(불못, 요한계시록 20:14)은 이들을 다스릴 권세가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첫째 부활은 모든 믿는
자들의 부활로써,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의인들이 부활” (누가복음 14:14) 과 “생명의 부활” (요한복음 5:29)과
일치합니다.
첫째 부활은 여러 단계로 이뤄집니다. - 첫째 부활은 이긴 자들의 부활이라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첫 열매”, 고린도전서 15:20), 그 분을 믿는 모든
자들의 부활을 위한 길을 닦으셨습니다. 첫째 부활로, 예루살렘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습니다(마태복음 27:51-53).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또한,
앞으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데살로니가전서 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대환난 말기에 있을
순교자들의 부활(요한계시록 20:4-5)이 첫째 부활에 포함됩니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요한계시록 20:12-13에 의하면 둘째 부활은 불못에 던져지기 전 크고 흰 보좌 앞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을 악인들이 그
대상입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따라서, 둘째 부활은 모든 믿지 않는 자들의 부활이며 둘째 사망과 연결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르치셨던 “심판의
부활” (요한복음 5:29)과 일치합니다.
무천년주의는 혼란스럽게도 거듭남과 첫째부활을 혼동합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은 이미 첫째부활에 참여한 자들로 보며, 거듭남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부활은 부활입니다. 부활은 거듭남이 아닙니다.
첫째부활은 재림과 함께 오직 성도들에게만 주어집니다. 첫째부활에 참여하지 못한 악인들은 둘째 사망에 참여하는데 바로 불못입니다. 악인들은 의인들의 부활 후에 그들만의 부활에 참여하기에 <둘째부활>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2. 둘째 부활
간혹 어떤 자들은 성도들 사이에도 부활의 시간적 간격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성도들만 첫째부활에 참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는 자들은 둘째부활에 다시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모두 첫째부활 때에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만일 성도들 가운데 첫째부활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거룩하지 않으며 복을 받지 못함을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 20:6 또한 첫째부활에 참여하지 못하면 누구든지 불못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각각 차례대로 (부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 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고전15:23-24)
3. 첫째사망
이런 용어는 나오지 않지만 원죄를 지닌 채 태어난 모든 사람은 첫째 사망에 이릅니다. 그러므로 첫째사망은 하나님과 단절된 이 땅의 상태를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듭났을 때 첫째사망으로부터 해방됩니다. 누구든지 첫째사망의 상태로 죽으면 둘째사망 즉 악인의 부활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불못에 던져지며 영원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계 20:6).
*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계 20:15)
4. 둘째 사망
악인들 가운데 죽은 자들이 부활하여 불못에 던져지는 사건을 <둘째사망>이라 부릅니다(계 20:15). 악인들이라 함은 불신자들뿐만 아니라 믿다가 타락하여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 자들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진실한 성도들은 결코 둘째사망의 해를 받지 않습니다.
첫째부활과 둘째부활은 부활의 시간적 간격을 지시하며, 성도들과 악인들의 부활 사이의 간격을 의미합니다. 첫째사망과 둘째사망은 모든 사람이 첫째사망의 상태로 태어났지만 거듭남을 통해 성도들은 해방되고, 악인들은 거듭나지 못함으로 둘째사망에게까지 이릅니다.
1. 둘째 사망, 사람은 두 번 죽는가? 2. 부활은 영적인 부활인가? 육적인 부활인가? 3. 불신자도 부활하는가? 4. 둘째부활이란 무엇이며 언제 부활하는가? 5. 왜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에 간극을 두었을까? 6. 영체(영의 몸)와 부활한 육체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구분
대상
견해
결과
첫째 사망
신자 + 불신자
육체적인 죽음
음부,천국,지옥
둘째 사망
불신자
영원한 형벌
불못
첫째 부활
순교자
7년환란전과 7년환란후 2번에 걸쳐 부활한다
공중휴거시 7년환란후 짐승에게 순교한 자들
천년간 왕노릇
둘째 부활
일반성도와
불신자들
천년왕국에 부활한다
일반성도는 새하늘과 새 땅에
불신자는 불못에 들어간다
1. 둘째 사망, 사람은 두 번 죽는가?
첫째 사망
간극
둘째 사망
육체적 죽음
천년 왕국
불못
사람이 두 번 죽을 수는 없다
그런데 성경은 두 번 사망을 언급하고 있다
첫번째 사망은 육체적 죽음이고 둘째 사망은 영적 죽음인데 이는 영원한 불못 형벌에 처하는 것을 의미한다
불못에 들어가는 둘째 사망은 특별히 죄가 큰 사람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 즉 예수님을 믿지 않은 모든 불신자에게 임하는 징벌이다
이들은 예수님을 통해 죄를 용서받지 못했다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계20:13~15)
2. 부활은 영적인 부활인가? 육적인 부활인가?
무천년설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부활이 영적인 부활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주장의 근거로 부활을 의미하는 헬라어 단어 아니스타시스가 신약성경에 42회 나타나는데
이는 죽은 자 가운데서 육체적으로 되살아남을 가리키지만
영적인 부활을 의미하는 단어가 별도로 없고
육체적 죽음 이후에 누리는 영적인 삶 즉 중간상태의 삶을 묘사하는데 어쩔 수 없이 아니스타스를 사용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여러 이유로 설득력이 없다
첫째, 부활의 첫열매가 되신 예수님의 부활을 보면 명백한 육체적 부활이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드시기도 하시고 공간을 초월하여 나타나시기도 하였다
영은 뼈와 살이 없으나 "보라 나는 있느니라" 말씀하시면서 육체적인 부활임을 증명하셨다
둘째, 사도요한은 성도의 부활이 그리스도의 부활과 같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롬6:5)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15:20)
부활은 육체적인 것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썩지않는 새로운 형태의 육체다
3. 불신자도 부활하는가?
의인이나 악인이나, 천국에 들어가는 신자나 불못에 들어가는 불신자나 모두 사람은 다 부활한다
그러나 육체의 몸은 영원성이 없기 때문에 부활의 몸은 현재 육체와는 다른 제3의 창조체이다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심판의 과정을 통해 불못에 들어간다
불못은 사탄과 타락한 천사, 짐승과 거짓선지자들도 들어가는 장소로
한시적인 징벌이 아니라 영원한 징벌임을 감안할때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9)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사도행전 24:15)
4. 둘째부활이란 무엇이며 언제 부활하는가?
첫째 부활
간극
둘째 부활
순교자
천년 왕국
일반성도와 불신자
첫째부활은 순교자의 부활로 두 부류의 순교자들이 있다
교회시대의 순교자들과 7년환란 때 짐승에게 죽임을 당한 순교자들이 있다
부활은 두 단계로 일어난다
교회시대의 순교자들은 7년환란 전, 공중강림의 휴거가 일어날 때 부활한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은 예수님의 지상재림때 부활한다
순교자의 부활을 모두 첫째 부활이라 말한다
즉 첫째부활은 천년왕국 전에, 둘째부활은 천년왕국후에 일어난다
둘째부활은 성경에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천년왕국후에 순교자들을 제외한 일반신자와 불신자들이 부활한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 년이 차기까지 살지(부활) 못하더라(계 20:5)
5. 왜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 사이에 간극을 두었을까?
첫째부활과 둘째부활 사이에는 1000년의 격차가 있다. 간극이 있는 이유는 순교자들에게 특별한 배려(상급)를 주기 위함인데 천년 왕국의 기간동안 부활한 순교자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의 역활과 왕의 신분으로 활동한다.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교회시대 순교자들)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부활해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계20:4~5).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계 22:6)
6. 영체(영의 몸)와 부활한 육체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한가?
하나님 나라에 거주하는 천사들은 모두 영체들이다. 이들은 낳은 존재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창조한 존재들이다 예수님께서 영체로 존재하시다가 부활한 육체를 가지고 계신 것을 보면 부활한 육체가 결코 영체보다 못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세 종류의 존재 ; 육체, 영체, 부활체
육체가 제1의 창조물이라면 영체는 제2의 창조물, 부활체는 제3의 창조물이다. 이중에서 제3의 창조물이 가장 우월한 존재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영체로도 충분히 영광스런 존재인데 영과 육체의 복합체인 제3의 창조물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인간이 육체로 있었던 기억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까한다
예를 들어 영으로 음식을 먹는 것과 육으로 음식을 먹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부활체는 영체와 육체의 장점을 가진 복합체로 천사보다 우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신약성경뿐 아니라 성경전체에 대한 결론이며, 하나님의 궁극적인 구속경륜의 대장정의 막을 내리는 순간입니다.
요한이 쓴 계시록입니다 없다면 성경은 미완성의 책이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여정(신앙, 역사)의 종착역이 표시되지 않은 지도를 들고 길을 나서는 여행객과 같습니다.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계시록은 큰 고난에 대한 위안과 승리의 확신을 주는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 요한계시록 배경
사도 요한은 주후 70년 경에 에베소의 목회 사역을 이어받았는데,
그 주변에 있는 교회들, 즉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로마 황제 네로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으나 베드로가 약속한 “불시험“은 아직 시작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도미티아누스가 황제가 되자(주후 81-96년) 박해는 맹렬해졌다. 도미티아누스는 역사의 어떤 페이지에서도 볼 수 없는 냉혹한 살인마였다.
그는 “황제 숭배“를 장려하였으며,
그의 포고문은 “우리의 주시요 하나님이신 도미티아누스가 명령하노니...“라는 말로 시작되었다.
그에게 말하는 모든 사람은 그를 “주시요 하나님“이라고 인사해야 했다.
그는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을 다루는 데 있어서 혹독하였으며, 요한을 밧모섬에 유배시킨 것도 그의 명령이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바위 섬으로서 길이가 16km였고 너비는 약 10km였다.
로마는 죄수들이 광산에서 노역했던 그 곳에 유배 주둔지를 두었다.
요한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립된 이 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이루고 있는 환상들을 받았으며,
본 서는 주후 95년 경에 기록되었다.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이 책은 단순히 예언적 계획에 관한 계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입니다.
1장에서는 그리스도는
부활하신 제사장이자 왕으로서 2-3장에서는 교회를 진단하시는 분으로서, 4-5장에서는 창조의 권리 증서를 받으시는 분으로,
6-19장에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며 영광 중에 다시 오시는 분으로서 20-22장에서는 영광과 능력 가운데 통치하시는 분으로서 나타납니다.
*공개적이다-
“계시“라는 말은 “베일을 벗긴다“는 뜻입니다. 다니엘은 그의 책을 인봉하라는 말을 들었으나(단 12:4),
요한은 “인봉하지 말라“는 말을 듣습니다(22:10). 계시록은 어려운 예언을 모아 놓은 책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해서,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사단과 죄와 세상의 체제에 대해 최종적으로 승리하실 것에 대하여 합리적이고도 질서있게 벗겨가는 책입니다.
*상징적이다-
“하나님이...
보내어 지시하신“(1:1)이란 말은 이 책이 그 멧세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징표와 상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제시합니다.
어떤것들은 설명되어 있고(1:20/4:5/5:8/12:9) 어떤 것들은 설명되어 있지 않으며(4:4/11:30
어떤 것들은 구약과 관련되어 설명됩니다(2:7/2:17/2:27-28).
이러한 신령한 상징은 이 책을 받아 들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명확했겠으나 그들의 로마 박해자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상징들은 실제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를 들자면, 국기란 그러한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1장 12-16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모습은 문자 그대로의 뜻은 아니지만, 각각의 이러한 상징들이 신령한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 근거하고 있다-
이 책은 구약 성경들을 계속해서 참고하지 않고는 연구할 수 없는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의 404구절 중에서 278구절은 구약에 대한 관련 구절을 포함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구약에 대한 관련 구절이나 암시가 500개도 넘는다고 집계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시편, 다니엘, 스가랴,
창세기,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요엘 등이 가장 빈번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숫자로 나타낸다-
성경의 어떤 다른 책에서도 이처럼 상징적인 숫자를 많이 사용한 곳이 없습니다. 이 책에는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일곱 촛대 등 일곱이란 숫자가 계속 나옵니다. 또한 일천 이백 육십(한 때와 두 때와 반 때, 마흔 두달,
11:2-3/12:6/13:5)이라는 숫자와 십 사만 사천의 인맞은 이스라엘자손, 열두별(12:1), 열두 문(21:12),
열두 기초석(21:14) 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주적이다- 요한계시록은 온 세상을 다루고 있습니다! 요한은 열국, 백성, 무리를 봅니다다(10:11/11:9/17:15 등). 이 책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자기 백성을 위한 새로운 세상의 창조에 대한 요약입니다.
*장엄하다-
이 책은 “보좌의 책“이며, 4장으로부터 마지막 장까지 왕과 그의 통치에 관하여 읽게 됩니다. 보좌라는 말이 44회, 왕,
왕국 또는 통치라는 말이 37회, 능력과 권위는 40회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늘 보좌에서 다스리시며 우주의 절대 주권자이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동정적이다- 이 책 전체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과 땅에 있는 백성에 대한 하늘의 동전을 봅니다.
• 요한계시록 기록 시기
가. 이 사항은 저자 및 해석적 관점과 긴밀한 관련을 가집니다. 나. 가능한 시기 1. 전통적으로 제시되는 저작시기는 도미티안의 통치기간(주후 81-96 년)인데, 그 이유는 이 기간이 박해에 대한 내적 증거에 들어맞기 때문입니다 ㄱ. 이레니우스(유세비우스가 인용한 내용에 의하면)는 이단에 대항하여, 5.30.3 에서 “이것(이 박해)이 매우 오래전에 일어난 것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세대인 도미티안의 통치기간이 마쳐질 무렵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합니다 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ㄷ.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 ㄹ.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 교회사, iii.23.1 ㅁ. 빅토리누스, 묵시, x.11 ㅂ. 제롬
2. 제 3 세기에 속하는 저자인 에피파니우스는 하엘, 51.12, 32 에서 클라우디우스의 통치기간(주후 41-54 년) 동안 요한이 밧모에 갇혀 있다가 풀려난 후 이 책을 기록했다고 말합니다.
3. 다른 이들은 이 책이 네로의 통치기간(주후 54-68 년)에 기록되었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ㄱ. 황제 숭배로 인한 박해의 분명한 증거 ㄴ. 히브리어로 가이사 네로라고 썼을 때 그의 이름이 짐승의 수인 666 에 정확히 일치함 ㄷ. 만일 ‘요한계시록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가리킨다고 말하면서 그 계시록의 예언이 이미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의 말이 정확하다면, 예언인 이 책은 반드시 주후 70 년 이전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 요한계시록 수신자
가. 1:4 에 비추어 볼 때 원래의 수신자들은 로마 제국의 아시아도에 있는 일곱 교회였습니다. 이 교회들은 이 서신을 지닌 자가 여행했을 경로와 관련을 가집니다.
나. 요한계시록의 메시지는 타락한 세계의 조직체로부터 박해를 받는 모든 교회와 신자들과 특별히 관련이 있습니다.
다. 신약의 마지막 책인 이 책은 모든 시대에 속한 모든 신자들에게 예언이 완성됨에 대하여 말합니다.
• 로마의 교회핍박
가.
법적으로 로마의 보호를 받은 유대교에서 분리됨으로써 지역교회가 박해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분리는 주후 70 년대에 공식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얌니아에서 온 랍비들은 당시에 각 지역에 있는 회당에 속한 구성원에게 나사렛 예수를 저주하는 내용인 맹세의 선언을
하도록 강요했습니다.
나. 로마의 자료는 네로(주후 54-68 년)부터 도미티안(주후 81-96 년) 통치시기에 황제숭배가 교회와 커다란 갈등에 놓여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한편, 제국 전체에 걸친 공식적인 박해에 대하여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계시록의 내용은 로마제국의 동쪽에 있는 여러 도에서 행해진 과열된 황제숭배의 양상을 반영합니다.
• 요한계시록 해석을 위한 조언
해석가가 구속의 주제에 우선순위를 두는 일이 중요하다.
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개인과 공동체와 우주적 구원을 이루셨다.
나. 하나님의 구속은 영적이며 물질적인 면을 가진다. 교회가 구원받았지만 안전하지는 않다! 어느 날 교회는 안전하게 될 것이다!
다.
하나님은 ‘타락하여 반역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인류’를 여전히 사랑하고 계시다. 인과 나팔들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진노는
구속을 위한 것이다(참조, 9:20-21; 14:6-7; 16:9,11; 21:6b-7; 22:17).
라.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 뿐 아니라 타락한 피조물까지 회복시키신다(참조, 롬 8:18-25). 모든 종류의 악이 제거될 것이다!
잃어버려진 인류를 향해 복음으로 접근하시는 하나님의 반복적인 시도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성품을 잘 드러낸다. 대접의 심판은 완강하게 반항하는 악함의 결과이지 하나님께서 사랑이 없으심의 결과가 아니다.
악한
사람들이 거듭하여 회개하기를 거부하기에 하나님께서 그 악에 대해 심판을 행하시며 그것을 격리시키실 뿐이다. 여러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타락하고 화해될 수 없는 인류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정당화 시킨다! 이 책은 복음적인 초청으로 끝맺는다(참조,
22:17).
라. 이 책이 재림시 일어날 일들과 그 때와 방법을 시간적 도표로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결코
안된다. 이 책은 종종 서양 역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비밀”스러운 내용으로 종종 해석되었다(일곱 교회를 일곱 시대로 봄). 각
세대가 그 시기들을 묵시적 상징으로 이해했다; 각 사람이 상당히 잘못되었다.
•요한계시록 개요
* 핵심 구절 :1:19
1. 너 본 것/1장 왕이요 제사장으로서 영화롭게 된 그리스도에 대한 요한의 환상
2. 이제 있는 일/2-3장 일곱 교회들은 오늘날 교회의 영적 상황을 드러내는 것으로, 사도 시대로부터 휴거될 때까지의 교회 역사를 예언적으로 묘사한다.
3. 장차될 일/4-22장
교회의 휴거/ 4-5장 요한이 들림받음-어린 양이 그의 하늘 보좌에 앉으신다. 7년 대환란/ 6-13장 (1)환란의 전반부/6-9장 적그리스도의 발흥-유대인과 그의 언약-열방에 임하는 무서운 심판-인맞은 144,000명의 유대인-하나님의 두 증인들의 전파-본토로 돌아온 이스라엘
(2)환란의 중반부/10-14장 더이상 지체하지 않으리라! 적그리스도가 자기의 언약을 파함-성전이 이방인에게 점령됨-두 증인이 살해당하나 되살아남-사단이 하늘에서 내던져짐-짐승이 자기의 무서움을 나타냄
(3)환란의 후반부/15-19장 마지막 일곱 재앙-바벨론의 멸망-아마겟돈 전쟁-그리스도께서 땅으로 돌아오심
I. 취하다, 잡아채다. 1. 훔치다, 끌어가다, 잡아가다, 마 12:29, 요 10:12. 2. 데려가다, 빼앗다, 빼앗아 가다, 잡아 채다. a. 강제로 ~하다, 마 13:19, 요 6:15, 10:28, 구해내다, 유 1:23. 체포하는 것, 행 23:10. b. 저항할 수 없도록 ~하다, 행 8:39, [수동으로] 마 11:12, 고후 12:2, 계 12:5.
연관 단어 / 관련 성경
끌어내다(유 1:23), 빼앗다(마 11:12, 요 10:
28, 행 23:10), 물어 가다(요 10:12), 이끌다(행 8:39), 이끌려 가다(고후 12:2, 4), 끌어
올리다(살전 4:17), 억지로 붙들다(요 6:15), 끌어 내다(유 23), 올려가다(계 12:5)
구름 속으로 - '구름'은 들림받은 성도들을 운송하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현현시(顯現時) 늘 동반되었던 것이다.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은 구름 속에서 비쳐졌다가 다시 구름속으로 사라졌었다. 예컨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시기 위해 강림하셨을 때 시내 산에 빽빽한 구름이 있었으며(출 19:16), 모세가 계시를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갔을 때(출 24:15-18)와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임하였을 때구름이 회막을 덮었었다(출 40:34).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하셨을때(막 9:7)와 승천하실 때(행 1:9) 구름이 등장했었다.
공중에서 - 본절의 '공중'에 대해서는 두가지 개념이 있다. 즉 '아래 공중'(*,아에르)과 '윗 공중'(*, 아이데르)이 있는데, 본절에 쓰여진 '공중'은 전자이다. 신약성경에서 '공중'은 사단의 거처로 인식되었다(엡 2:2). 따라서 혹자는 그리스도께서 공중에서 성도를 만나는 것은 그의 완전한 주권(主權)의 회복을 나타낸다고 한다(Morris).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 '영접하게'의 헬라어 '아판테신'(*)는 헬레니즘 시대에 고위 공직자가 시(市)를 공식적으로 방문할 때, 시민들이 마중 나가서 호위하고 들어오는 행위를 가리켰다. 기원전 49년에 율리우스 시이저(Julius Caesar)가 이탈리아를 경유해 올 때, 시세로(Cicero)는 본 단어를 사용하여 그를 영접한 모습을 묘사하였다. 신약성경에서는 마 25:6에서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것을 표현할 때 본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행 28:15에서 교인들이 바울을 맞이할 때 본단어가 사용되었다.
그동안 우리 주위에서 자주 거론되었던 휴거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 봅시다.
예를 들면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은 세대주의자들에 의해서 교회가 휴거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을 자세하게 관찰하면 요한계시록 1장은 서로의 내용이며 2장과 3장은 아시아의 일곱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문제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특정한 시대라고 해석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일곱교회를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에베소교회 - 사도시대 서머나교회 - 속사도시대 버가모교회 - 로마 국교시대 두아디라교회 - 중세 암흑시대 사데교회 - 종교개혁시대 빌라델비아교회 - 선교시대 라오디게아교회 - 종말시대(평신도들의 소리가 커져가는 시대)
세대주의자들은 이렇게 일곱교회를 교회시대의 일곱 시대로 구분하여 설명한 후에 계시록 4장은 교회가 휴거된 상태라고 가르칩니다. 문제는 계시록 1:10에서 요한의 첫 번째 환상을 소개합니다(계 1:10-3:22).
첫번째 환상 / 요한계시록 1:10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두번째 환상 / 요한계시록 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16.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17.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3-10
3.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하고 말할 것입니다. 5. 그들은 아득한 옛날에 하느님의 말씀으로 하늘과 땅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땅이 물에서 나왔고 또 물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6. 그리고 물에 잠겨서 옛날의 세계는 멸망해 버렸습니다. 7. 사실 하늘과 땅은 지금도 하느님의 같은 말씀에 의해서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과 땅은 하느님을 배반하는 자들이 멸망당할 심판의 날까지만 보존되었다가 불에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8.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어떤 이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미루신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서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게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10. 그러나 주님의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올 것입니다. 그 날에 하늘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사라지고 천체는 타서 녹아버리고 땅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은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과 베드로후서 3장은 언제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첫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그 때에 구원 받은 성도들은 승천하고
그 즉시 온 세상이 불로 완전히 멸망할 것이라는 게 성경이 말하는 바이다.
베드로후서 3장이 두번째 재림을 말한다면 사람들이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같은 말을 할 리가 없다. 즉, 재림 이후에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의 대환난 기간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3장과 12장~14장을 근거로 휴거를 받는자들의 특징과 마지막 때 한 이레(7년)동안 언제 휴거가 있을지 알 수 있다.
2011년 휴거설 / 2011년 5월 21일 - 헤롤드 켐핑의 주장
2011년 5월 21일 심판설은 미국 켈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 본부를 둔 '패밀리 라디오'의 설립자 해롤드 캠핑(89)이 주장했다. 캠핑은 자신이 성서를 분석한 결과 21일
오후 6시에 지진계로 측정 불가능한 지구 최악의 지진이 날짜변경선을 기점으로 지구를 한바퀴 돌며 전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이고, 진실한 믿음을 가진 신도 2억 명이 하늘로 들려 올라가는 휴거가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후 153일 동안 공포와
혼돈이 이어지다 10월 21일 인류는 마침내 종말을 맞이한다는 것이 그의 '종말의 날' 시나리오다. 캠핑이 주장한 심판의 날
시작일이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종말을 준비했다. 헤럴드 경제 기사 그의 추종자인 로버트 피츠패트릭은 평생 모은 재산 14만 달러를 뉴욕의 지하철과 버스 정류장에 심판의 날을 광고하는 데 모두 사용했다고 하니 세상에 어느 정도 이슈거리를 만든 셈이다.
일단 본인 말에 따르면 지진은 국제 날짜변경선, 정확히는 뉴질랜드에서 오후 6시 경에 일어나 이후 각 나라의 6시에 맞춰 발생할 것이라 예언했지만... 당연히 아무런 일도 없었다.
캠핑은 1994년 9월 6일에 이미 멸망한다는 예언을 한 전과가 있었으며, 이후 5월 21일 휴거를 주장한 헤럴드 캠핑은 진짜 휴거는 10월 21일이라며 둘러댔다는 기사가 나기도 했다.
이후 캠핑은 예언이 빗나간 데에 충격을 받아, 뇌졸중을 일으켜 결국 2013년 12월 15일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애당초 사기가 목적이었던 이장림 목사와는 달리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예언을 굳게 믿고 있었던 모양이다.
대중문화
<휴거>라는
제목의 유명한 개신교 소설이 있다. 어니스트 W. 앵글리라는 미국인 개신교 목사의 작품으로, 1950년대를 배경으로 내용은 위에
설명된 휴거를 시작으로 휴거 후 7년간 대환난과 사탄(적그리스도)의 득세 → 요한묵시록의 실현 → 예수 재림까지를 다룬다. 이 책이 당시 아직 이단에 빠지지 않고 정통 감리교에 남아 있었던 이장림 목사에 의해 번역되어 나왔고, 1980년대~90년대에는 개신교계에 교단을 가리지 않고 휴거에 대한 열풍을 가져와서 결국 1992년 휴거 대소동으로
이어졌다.
뒤에는 만화로도 출판되었을 정도. 내용은 위에 설명한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 종말 교리를 그대로 소설로 썼는데, 어느
월요일 아침 사람들이 일어나 보니 노인에서 갓난아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명의 사람들이 하늘로 올라가 없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휴거였다는 내용. 이후 지상에 남은 사람들에게는 복음서와 요한 묵시록에 기록된 대로의 종말이 닥쳐오고, 그 와중에 어떤 사람들은
신앙을 지켜 적그리스도에게 순교당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고 죄악에 빠져 최후의 심판 때 지옥불의 고통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그냥 객관적으로는 널리고 널린 기독교 간증 신앙 소설이라고 보면 읽을 만한데, 전반적인 소설 수준은 낮고 잔혹한 면도 많다.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1992년 휴거 대소동 당시 포교 용도로 이용되어 많은 사람들을 사이비 종교로 이끌었다.
2000년대에도 여러 번 나올 정도였는데 80년대에 저예산 영화로 나왔다. 한국에서 한국어 더빙도 되어 예배당에서 상영도 하고, 비디오로도 나왔으며, 유튜브에도 올라왔는데, 엄청난 저예산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휴거를 소재로 한 또다른 작품으로는 레프트 비하인드가 있다. 앞에 설명한 작품들보다 선정성은 드물고 잘 짜여진 B급 액션 스릴러물이다. 마지막편은 특이하게도 아마게돈으로 인해 선이 승리했지만 천년후에 잠시 놓이게 된 사탄과 구원받은 자 가운데서 반대파가 다시 신에게 도전해서 전쟁이 나고 신에게 영원히 발린게 된 후[6] 새하늘 새땅과 함께 영원한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는것으로 끝을 맺게 된다. 한국에서도 외전[7]포함하여 제12권 영광의 재림편을 끝으로 총 13권으로 출간이 되었는데 문제는 진짜 완결인 제13권 Kingdom Come: The Final Victory을 빼먹은 것... 아무래도 출판사에서 착각[8]했거나 또는 판권문제나 기타사정으로 13권을 출간시키지 못하고 결국 12권에서 완결을 냈을 가능성도 있다.[9]
동명의 소설이 원작인 비디오용 영화도 있는데, 현대에 휴거가 일어날 경우 발생할 혼란을 묘사하고 있다.[10] 이걸 리메이크해 2014년에 개봉한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레프트 비하인드: 휴거의 시작도 있는데 흥행과 비평에서 쫄딱 망했다.골든 라즈베리 최악 감독상 후보에 오를 정도. 이거 감독인 빅 암스트롱은 터미네이터 2 조감독이었고 돌프 룬드그렌 주연 영화 '조슈아 트리'를 감독했으나 망한 바 있다.
그리고
재기드 얼라이언스 류의 턴제 시뮬레이션 게임 레프트 비하인드: 이터널 포스가 2006년에 출시됐는데 이 내용이 엄청난 문제가
되기도 했다. 기독교 저항군이 적그리스도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고 비신자는 죽이는(!) 내용인데,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폭력성과 광신을 여지없이 보여주는 똥겜'이라며 비아냥받았다.
그 외에도 휴거를 소재로 한 영화로 밤의 도둑들[11][12] 시리즈가 있다. 저예산티가 많이 나는 작품이지만 4편이나 제작된 작품. 위에 서술된 사건 전후로 교회에서 비디오로 상영되었다. 내용이야 세계가 혼란에 빠지면서 적그리스도가 세계 대통령이 되고, 그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길로틴으로 처형당한다는 흔하디 흔한 휴거 내용인데, 저예산의 압박에도 의외로 무섭다.
사이비 종교인 왈, "(전략)파멸이 오기 전에, 종말의 네 기수가
달려 나오기 전에, 핵 미사일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쏟아져 내리기 전에, 휴거가 있을 것입니다. 휴거가 무엇이냐? 형제자매
여러분, 휴거가 오면 진정한 신앙인들은 모두 공중에 들려 올라갈 것입니다. 갑자기 완전하고 깨끗한 몸으로 공중에 떠 있게 되는
겁니다. 공중에 뜬 채, 파멸의 시대가 도래하는 세상을 굽어보겠지요. 오로지 믿는 자만이 구원받으리니, 오로지 여러분들만이 다시
태어나 고통과 죽음과 공포와 불길을 피할 것입니다.(후략)"
이에 지나가던(?) 천사
왈, "(전략)...누가 그렇게 시간이 남아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골라다가 공중에 띄워서 아래 지상에서 불타고 마르고
방사능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비웃게 해주겠느냐는 거예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에 대한 당신 생각이 그렇다면 내가 좀
부언(附言)해도 좋겠지요."
게임 바이오쇼크의 주 무대가 되는 수중 도시인 랩처도 저 Rapture로 쓴다. 도시 자체가 이상향을 목표로 만들어졌으며, 초기에 소수의 사람만 은밀하게 랩처로 이주시켰다는 점이 여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영화디스 이즈 디 엔드도 휴거를 다뤘다. 하지만 다룬 건 맞는데, 내용이 아주 병맛이어서 도리어 개신교 계열에서는 휴거를 모욕했다며 깠다. 심지어 우리나라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나온다. 애초에 제작자 중 세스 로건이 있는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휴거뿐만이 아니라 죄다 정신나간 코미디 영화다. 자기 희생 등의 선행만 좀 하면 휴거를 해주는데다, 휴거의 빛이 악마를 막아주기까지 한다. 문제는 마지막의 대악마 때는 이것 때문에 거세되거나 휴거의 환희에 욕 좀 했다고 휴거가 취소되는 등...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4집 <SOUL COOKE>에 휴거를 소재로 한 노래( 15번 트랙 <RAPTURE>)가 수록되어 있다. 나얼이 불렀는데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의 성향이 반영된 노래인 듯.
휴거에 대한 주제를 설명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신학적 고찰
신학적 고찰이란 "휴거가 언제 일어날 것인가?"에 관심을 갖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마지막 때에 나타날 7년 대환난이 일어났을 때 환난 전에 휴거한다. 아니면 환난 후에 휴거한다. 이런 논쟁을 합니다. 또는 대환난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휴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론도 있습니다.
둘째는 실천적 논쟁
실천적 논쟁이란 어떤 신학적인 주제라도 예수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휴거라는 주제를 이야기 할 때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아니면 환난 전에 휴거하든지 휴거라는 것을 예수 안에서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입니다.
휴거가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환난 전이냐 아니면 환난 후인가 이런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으면 휴거라는 사건이 일어날지라도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짐승의 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둘째, 주 예수를 믿으면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다. 셋째, 짐승의 표가 우월합니까? 예수 구원이 우월합니까? 당연히 예수 구원이 짐승의 표보다 더 우월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것이 휴거에 대한 실천적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이해를 신학적인 논재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실천적 신앙을 갖고 접근하려고 합니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가 장기화 되면서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징조라고 하며 휴거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휴거에 대한 주제가 급부상하는 배경은 사회적인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한국의 경우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 이장림목사가 주장하던 공중으로 들려올라간다는 가르침에 따라 많은 성도들이
흰옷을 입고 한곳에 모여 찬송을 부르며 공중으로 올라가려고 기다렸지만 결국 잘못된 가르침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배경에서 나타난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첫째는 걸프 전쟁
1991년에 발발한 걸프전쟁을 CNN 등을 통해 생중계되면서 세계적인 전쟁이 발발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둘째는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1999년 세상 멸망설이 널리 퍼졌기 때문에 걸프 전쟁과 더불어 사람들은 점점 더 불안감을 갖고 살았습니다. 7년
대환난이 있다고 한하면 1999년 세상 멸망설이란 불란서의 예언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라 1999년에서 7년을 빼면
1992년이 됩니다. 이렇게 교묘하게 짜맞추기 방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므로 신앙의 질서를 흔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마침 감리교 목사이었던 이장림목사가 미국에서 발행된 휴거라는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므로 휴가에 대한 열풍이 불어닥쳤습니다.
요즈음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서 사회적 거리 유지와 일상생활의 비정상적인 생활이 계속되므로 또다시 마지막 징조가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갖게 되므로 휴거라는 주제로 자주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학적인 고찰보다는 실천적인 고찰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데살로니가전서 4:17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성경에는 "휴거"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휴거라는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그 근거를 정확하게 살펴야 합니다.
휴거라는 단어는 라틴어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장 17절에서 "끌어올려"에 해당하는 “라베무르(Rapiemur)”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라베무르"의 뜻은 "잡다, 낚다, 잡아채다, 납치하다”는 뜻입니다.
"라베무르(끌어 올려)"라는 단어에 대한 분석
1. 한글 성경 : 끌어 올려
데살로니가전서 4: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携擧)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2. 헬라어 성경 : 하르파조(ἁρπάζω) "하르파조(ἁρπάζω. harpazó. 726)"를 영어로 “to snach away” 라고 하며 그 의미는 “낚아챈다, 빼앗는다”는 뜻입니다(to seize, catch up, snatch away)
3. 영어 성경 : 랩처(Rapture) - NIV ; be caught up - KJV ; be caught up - NASB ; be caught up
“랩처(Rapture)”의 뜻은 “환희(delight), 열중, 넋을 잃음”입니다. 따라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간다는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끌어 올려(하르파조, ἁρπάζω)" 라는 의미를 살펴본 결과는 "공중으로 끌어 올려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악한 세력의 손에 끌려 갈 수 없다."라는 의미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휴거라는 것에 열광할 이유가 없습니다.
요한복음 6:15 - 붙들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요한복음 10:28 - 빼앗다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12 - 물어 가다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헤치느니라(물어 가고) 라는 말씀에서 “늑탈하고” 또는 "물어 가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문법적 의미
* 끌어올려 - 수동태(Caught up)
“갑작스럽게 잡아서 옮기다.” “강한 힘을 가지고 강하게 빼앗아 가다”, “재빠르게 자기에게 끌어들이다”
* 데려감을 당하고 (마 24:40∼41, 눅 17:34-35) - 수동태(Taken away)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오늘의 주제가 휴거이므로 휴거에 대한 믿음이라고 범위를 좁혀 놓고 소개하겠습니다.
휴거에 대한 믿음이란 "오직 예수"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휴거 안에 예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휴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666표에 적용하면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 666표 안에 예수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라고 하면 1.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 2. 666표를 받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 3. 예수를 믿는 것이 구원의 근거가 아니라 666표가 구원의 근거가 되므로 이러한 가르침을 비성경적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들어가는 것만이 구원의 진리라고 하겠습니다.
구약에서는 여호수아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노라!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의 신앙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16-17,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도입 이야기)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 오겠다고 약속하셨다. 날이 어두워졌으나 아버지가 돌아오시지 않았다. 아들은 현관을 바라보며 "왜 아버지가 안 오시지?" 하고 말할 때 마침 어머니가 "왜 아버지를 기다리느냐?" "아버지가 장난감을 사오기로 약속하셨다!"
아들이 아버지를 기다릴 때 아버지를 기다리는 것인가? 아니면 장난감을 기다리는 것인가? 아들의 입장에서 장난감이 분명하다.
(전개) 다시 오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신앙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여호수아 24:14b, 여호와만 섬기라. 여호수아 24:15b,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로마서 1:16-17,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린도전서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마라나타", "마라나 타", "마란 아타"의 뜻과 기원
마라나타(Maranatha, 아람어: מרנא תא: maranâ thâ' 또는 מרן אתא: maran 'athâ' , 그리스: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2개의 아람어가 합쳐진 공식인데 신약성경에 2회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마라나타(מרנא תא, maranâ thâ))"라고 하는 용어는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에 두 번 나온다. 이것은 본래는 아람어로 기도문에 쓰인 것으로 헬라어로 표기한 것이다. 이
용어는 초기 기독교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디다케(가르침이라는 뜻)"의 예식문(10:14)에서도 발견되며,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우리 주여 오소서(Our Lord(10:14) come 혹은 Our Lord has come)"라는 의미이다.
Maranatha (either מרנא תא: maranâ thâ' or מרן אתא: maran 'athâ' ) is a two-word Aramaic formula occurring only once in the New Testament (see Aramaic of Jesus) and also in the Didache, which is part of the Apostolic Fathers' collection. It is transliterated into Greek letters rather than translated
and, given the nature of early manuscripts, the lexical difficulty lies
in determining just which two Aramaic words comprise the single Greek
expression, found at the end of Paul's First Epistle to the Corinthians (1 Cor 16:22).
마라나타(either מרנא תא: maranâ thâ' or מרן אתא: maran 'athâ'마라나 타 혹은 마란 아타)는 두 단어의 아람어식 어구로는 ( 예수님의 아람어를 참조하라) 신약 성경에서 그리고 디다케에서 단 한 번 사용된 것을 ‘사도의 아버지’ 수집(collection) 일부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초기 원고의 성격, 두 단어의 아람어가 단 하나의 그리스어 표현을 포함하는 결정에 어휘의 어려움이 있어 그리스어로 번역되어지기보다 그리스 문자로 바뀌어(음역되어) 졌고 , 고린도전서 16: 22절 바울 서신의 끝머리에 표현되었음을 찾을 수 있다.(고전 16: 22)
If one chooses to split the two words as מרנא תא
(maranâ thâ), a vocative concept with an imperative verb, then it can
be translated as a command to the Lord to come. on the other hand, if
one decides that the two words מרן אתא
(maran 'athâ), a possessive "Our Lord" and a perfect/preterite verb
"has come," are actually more warranted, then it would be seen as a
credal expression. This interpretation, "Our Lord has come," is
supported by what appears to be an equivalent of this in the early creed
acclamation found in the biblical books of Romans 10:9 and 1
Corinthians 12:3, "Jesus is Lord."
만약, 누군가 두 단어로 (마라나 타) 띄어 쓰도록 선택한다면, 필수 명령형 동사 호격 개념으로는 “주여 오시옵소서”로 번역할 수 있다. 다른 한 편, 누군가 소유격으로 번역하고저 할 때는 “우리의 주님”이 가능하며 완료형/과거 동사의 표현은 ”Has come, 오셨다”가 사실상 더 보장되는데 오래전 신조(교의)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고, 이 번역은 성경 로마서 10:9과 고전 12:3에 나타나는 "예수는 주시라"는 교회사에서 일찍이 신조(교의) 승인(허락)을 토대로 이 해석 방법의 타당성을 지원받기도 한다.
In
general, the recent interpretation has been to select the command
option ("Come, Lord!"), changing older decisions to follow the preterite
option ("Our Lord has come") as found in the ancient Aramaic Peshitta,
in the Latin Clementine Vulgate, in the Greek Byzantine texts, Textus
Receptus, critical Greek texts like Westcott and Hort, Tischendorf,
Cambridge, etc., and in the English translations like the King James
Version, the Finnish Raamattu, etc. one reason the change from the
previous scholarly view has occurred is that the P46 papyrus (ca. A.D.
200) divides it as μαρανα θα ("marana tha").일반적으로,
최근의 해석은 고대 아람어 페쉬타에서, 라틴 크레멘타인 벌기트 성경에서, 그리스 비잔틴 텍스트들에서 발견되어진 것처럼 “우리
주님이 오셨다”의 이전 결정을 변경, “오소서, 주님!” 명령형으로 선택했다. 그리스 비잔틴 교재들, 까다로운 웨스트코트와 같은
그리스 텍스트들과 호르트, 라틴 클레멘타인 벌기트 성경, 호르트비스첸도르프, 캐임브리지 등등, 그리고 킹 제임스 버젼과 같은 영어
번역들, 핀란드 라아마투 등등에서 이전 학자들의 견해를 바꾼 단 하나의 이유는 중요한 그리스어 교재 학술 보기 P46 파피루스
(ca. A.D. 200) 같은 곳에 “마라나 타”로 띄어 분리하는 일이 나타났던 것이다.
The NRSV
of 1 Cor 16:22 translates the expression as: "Our Lord, come!" but
notes that it could also be translated as: "Our Lord has come"; the NIV translates: "Come, O Lord"; the NAB notes:
고전 16:22을 “NRSV"에는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로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 메모는 역시 "우리 주께서 임하셨다”로 번역될 수도 있고; NIV 에는 "오시옵소서, 오 주여”로 번역되었다; NAB 메모:
"As understood here ("O Lord, come!"), it is a prayer for the early return of Christ. If the Aramaic words are divided differently (Maran atha, "Our Lord has come"), it becomes a credal declaration. The former interpretation is supported by what appears to be a Greek equivalent of this acclamation in Book of Revelation 22:20 "Amen. Come, Lord Jesus!""
“여기서 (“O Lord, come”)로 이해되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속히 있으시기를 구하는 하나의 기도문이다. 만약 아람어식 단어를 다른 형태로 나누면 "우리 주님이 오셨다(임재하셨다)”이며, 이것은 신조(교의)로 선포되었다. 이전의 번역은 그리스 어의 계시록 22: 20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동등한 타당성을 지원받는다.
The
1985 New Jerusalem Bible translates 1 Cor 16:22, "If there is anyone
who does not love the Lord, a curse on such a one. Maran atha." In the
context of First Corinthians, understanding the Greek "maranatha" as
Aramaic "Maran atha" in the preterits sense would provide substantiation
for the preceding anathema. That is, one who does not love the Lord is
accursed because our Lord has ascended and come unto his throne (e.g.,
Dan 7:13) and wields power to implement such a curse. It would also
substantiate the following prayer for grace from the ascended Lord
Jesus, who has come to his throne and then sends the Holy Spirit.
1985년
새 예루살렘 성경은 고전 16:22을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Maran atha"로
번역한다. 고린도전서의 문맥으로 보아서, 과거의 판단력 안에서 그리스 사람들은 "maranatha"를 아람어 "Maran
atha"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앞에 말한 저주에 대한 입증을 제공할 것이다. 즉 주님의 승천과 그의 보좌 (단 7: 13)를
구현하는 것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에게 무서운 저주를 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묘한 힘이 있다. 그것은 또한 그의 왕위와
승천하신 주 예수로부터 오는 은혜와 임하실 그분의 보좌, 그리고 거룩한 성령을 보내어 주실 것을 구하는 기도이기도 하다.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첫 순교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과부의
구제를 위하여 특별히 세워진 사람이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당하여 심문당하였다. 그는 돌에 맞아 죽기 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인자 예수의 영광을 본다고 외쳤다. 스데반은 그의 이름처럼 순교자의 영광을 보여준 것이다.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의 뜻은 왕관(diadem), 화환(wreath), 웰계관(crown)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18번 나오고, 동사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 to crown)는 3번 나온다(딤후 2:5; 히
2:7, 9).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는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나,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승자에게 주는
면류관(월계관, wreath, laurel)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은유적으로는 고난 후에 주어지는 보상적인 선물과 영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는 동사 στέφω(스테포, 둘러싸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석, 꽃, 나뭇가지로 둥글게 둘러싼 화환이나
왕관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 헬라어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제의행위를 하는 제사장이 머리에 쓰거나, 제물이나 제단에 올려놓음으로 신들의 축복을 받으려 하였다.
신탁의 예언자들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머리에 쓰고서 예언을 하였다. 왕은 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며, 왕관은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며 신의 보호를 받는 존재임을 과시하였다.
밀의종교에서는 초신자가 스테파노스를 쓰고
입교식에 참여하였다. 경기나 경주의 승자(victor)에게 올리브관이나, 전쟁의 승자에게 월계관(laurel wreath)으로
명예를 높여 주었다. 고대의 축제나 심포지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행사이기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기쁨과 축복의
표시로 화환을 머리에 썼다.
70인경(LXX)은
히브리어 동사 아타르(עטר)를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라고 번역하였는데(시 5:12; 65:12; 102:4), 하나님의
복과 보호로 인생을 둘러싼다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시 103:4).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
עֲטָרָה(아타라)으로 비유하였다(사 62:3; 겔 16:12). 70인경은 עֲטָרָה(아타라)를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로 번역하며, 왕관의 의미를 명예와 보상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분명히 사용하였다(욥 19:9; 렘
13:18; 잠 12:4; 16:31; 17:6)
신구약
중간시대에 역사의 종말과 내세의 보상을 기대하는 묵시주의 문학이 출현하면서, 미래적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되고, 믿는 자나
순교자가 받게 될 내세의 영광과 보상을 보좌와 면류관으로 표현하였다(에녹서 등).
헬레니스트 유대인들은 마음과 지식의 훈련을
통하여 감정과 정욕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경주의 승자에게 주는 월계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도덕적 종교적 삶을
강조하였다(Philo).
신구약 중간시대의 묵시문학이나 이성주의적 헬레니스트의 영향을 받은 사도 바울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그리스도인이 받을 내세의 영광과 보상에 비유하였다.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후 5:4) 등의 표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세에 받을 영광과 보상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강조하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인내를 요구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은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금면류관을 쓰고 있다(계 4:4). 이런 성도의 영광과
대조되면서 심판 받을 사탄과 로마제국도 왕관을 쓰고 있다. 붉은 용(사탄)은 일곱 개의 머리에 7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계 12:3)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열 뿔에도 10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13:1)을, 그들의
하수인 황충들도 금면류관들(스테파노이 στέφανοι, 9:7)을 머리에 쓰고 있다.
영적 대적자들의 영광과 권세는 결국
패배하는 것이고, 예수를 잉태한 여인의 존재(교회)는 태양을 둘러 걸치고, 달을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을 쓰고(계 12:1) 환란과 박해를 이겨낸다.
인자 예수는 금면류관을 쓰고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지금
심판을 준비중이다(계 14:14). 마지막 날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싸우시는 데, 머리에 많은
관들(디아데마타 διαδήματα)을 쓰시고 승리자가 되실 것이다(계 19:12).
바울은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썩어지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을 목표하며 지금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분명히 하였다(빌
3:14). 그런데 바울은 내세의 보상과 영광인 면류관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가 이미 자신의 면류관임을
선포하였다(빌 4:1; 살전 2:19). 예수와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는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맛보는 면류관은 영광이지만 고난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잊지 않고 예수가 쓰신 가시 면류관을 기록하고
있다(마 27:29; 막 15:17; 요 19:2). 조롱과 멸시, 고통의 면류관인 것이다. 예수의 제 2 성육신인 교회는 지금
고난의 가시면류관을 쓰고 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와 복음의 길을 막는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이 되어야 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성경에 소개된 다섯 가지 면류관
1. 의의 면류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면류관이다.
『이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 되어 있어 의로운 재판관이신 주께서 그날에 그것을 내게 주실 것이며 또 나 뿐만 아니라 그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주실 것이라.』(딤후 4:8)
『반드시 내가 속히 오리라 하시니라.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 의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린다. 그 소망을 가짐으로써 불경건을 버리고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한다.(딛2:12-14)
2. 생명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은 순교자, 시험을 견뎌내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
『너는
고난받게 될 일들을 전혀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서 시련을 당하게 하리니 그러면 너희가
열흘 동안 환란을 받으리라.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계 2:10)
『시험을 견뎌 내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는 그가 시련을 거친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약 1:12)
- 생명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도 내놓는 사람, 혹은 순교를 직접 당하지 않더라도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만이 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다. 즉 죽기까지 신실한 사람이 받는다는 것이다.
3. 썩지 않을 면류관
모든 일에 억제하는 사람이 받을 수 있다. 즉 몸의 정욕들을 억제하는 것이다.
『이기려고
애쓰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일에 자제하나니 이제 그들은 썩어질 면류관을 받으려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고자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9:25-27)
여기서 버림 받는다는 것은 구원을 잃는다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자신이 건강관리에
소홀히 하여(지나친 과식이나 운동부족 같은) 몸이 병들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사역을 할 수 없게 된다. 즉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몸에 나쁜 습관들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 썩지 않을 면류관을 받으려면 죄로 기우는 육신의 욕구를 자제하고(고전 9:25) 하나님을 성경대로 정확히 섬기며(고전 9:26) 중도에 건강을 잃고 사역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운동선수처럼 몸을 억제하여 복종해야 한다.(고전 9:27)
4. 자랑의 면류관
복음을 전해서 혼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구령자가 받는 면류관이다(잠 11:3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오실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있을 너희가 아니겠느냐? 이는 너희가 우리의 영광과 기쁨이기 때문이라.』(살전 2:19-20)
『그러므로 나의 참으로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주 안에서 이처럼 굳게 서라.』(빌 4:1)
- 자랑의 면류관을 받으려면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한다.
5. 영광의 면류관
신실하게 사역한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신실하며 본이 되는 목사여야만 한다. 자기들의 배를 불리는 거짓 목사들은 이것을 결코 받을 수 없다.(롬 16:18)
『내가
너희 가운데 있는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도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며, 또한 장차 나타나게 될 영광에 동참하게 될
자라. 너희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고 돌보되 마지못하여 하지 말고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익을 위하여 하지 말고
준비된 마음으로 하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자들을 지배하려 하지 말고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
너희가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리라.』(벧전 5:1-4)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 시대의 첫 순교자는 예루살렘 교회의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이었던 스데반이었다. 사도행전 6장에서 헬라파 과부의 구제를 위하여 특별히 세워진 사람이었는데, 복음을 전하다가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당하여 심문당하였다. 그는 돌에 맞아 죽기 전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과 인자 예수의 영광을 본다고 외쳤다.
스데반은 그의 이름처럼 순교자의 영광을 보여준 것이다.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의 뜻은 왕관(diadem),
화환(wreath), 웰계관(crown)을 뜻하는 말이다. 신약성경에서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18번 나오고, 동사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 to crown)는 3번 나온다(딤후 2:5, 히 2:7, 9).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는
보석으로 장식된 왕관이나, 경기나 전쟁에서 승리한 승자에게 주는 면류관(월계관, wreath, laurel)을 뜻하는 말이다.
또한 은유적으로는 고난 후에 주어지는 보상적인 선물과 영광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이 단어는 동사 στέφω(스테포,
둘러싸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석, 꽃, 나뭇가지로 둥글게 둘러싼 화환이나 왕관을 뜻하는 말이다.
고대 헬라어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는 제의행위를 하는 제사장이 머리에 쓰거나, 제물이나 제단에 올려놓음으로 신들의 축복을
받으려 하였다.
신탁의 예언자들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머리에 쓰고서 예언을 하였다.
왕은 관을 머리에 쓰는 것으로
위엄과 영광을 나타내며, 왕관은 신에게 속한 것이라고 말하며 신의 보호를 받는 존재임을 과시하였다.
밀의종교에서는 초신자가
스테파노스를 쓰고 입교식에 참여하였다.
경기나 경주의 승자(victor)에게 올리브관이나, 전쟁의 승자에게 월계관(laurel
wreath)으로 명예를 높여 주었다.
고대의 축제나 심포지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행사이기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여
기쁨과 축복의 표시로 화환을 머리에 썼다.
70인경(LXX)은
히브리어 동사 아타르(עטר)를 στεφανόω (스테파노오)라고 번역하였는데(시 5:12; 65:12; 102:4), 하나님의
복과 보호로 인생을 둘러싼다는 표현으로 사용하였다(시 103:4).
하나님의 손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왕의 머리에 쓰는 왕관
עֲטָרָה(아타라)으로 비유하였다(사 62:3; 겔 16:12). 70인경은 עֲטָרָה(아타라)를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로 번역하며, 왕관의 의미를 명예와 보상이라는 은유적 의미로 분명히 사용하였다(욥 19:9; 렘
13:18; 잠 12:4; 16:31; 17:6)
신구약
중간시대에 역사의 종말과 내세의 보상을 기대하는 묵시주의 문학이 출현하면서, 미래적 메시야 왕국의 백성이 되고, 믿는 자나
순교자가 받게 될 내세의 영광과 보상을 보좌와 면류관으로 표현하였다(에녹서 등).
헬레니스트 유대인들은 마음과 지식의 훈련을
통하여 감정과 정욕을 이겨내는 사람에게 경주의 승자에게 주는 월계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며 도덕적 종교적 삶을
강조하였다(Philo).
신구약 중간시대의 묵시문학이나 이성주의적 헬레니스트의 영향을 받은 사도 바울은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그리스도인이 받을 내세의 영광과 보상에 비유하였다.
썩어지지 않을 면류관(고전 9:25), 의의
면류관(딤후 4:8),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영광의 면류관(벧후 5:4) 등의 표현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내세에 받을 영광과 보상을 말한다.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를 강조하며, 환란과 핍박 속에서도 성도의 인내를 요구한다.
이스라엘과 교회를 상징하는 이십사 장로들은 24개의 보좌 위에 앉아 금면류관을 쓰고 있다(계 4:4). 이런 성도의 영광과
대조되면서 심판 받을 사탄과 로마제국도 왕관을 쓰고 있다. 붉은 용(사탄)은 일곱 개의 머리에 7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계 12:3)을,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의 열 뿔에도 10개의 왕관(디아데마 διάδημα, 13:1)을, 그들의
하수인 황충들도 금면류관들(스테파노이 στέφανοι, 9:7)을 머리에 쓰고 있다. 영적 대적자들의 영광과 권세는 결국
패배하는 것이고, 예수를 잉태한 여인의 존재(교회)는 태양을 둘러 걸치고, 달을 발 밑에 밟고, 열두 별이 박힌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을 쓰고(계 12:1) 환란과 박해를 이겨낸다.
인자 예수는 금면류관을 쓰고서 예리한 낫을 가지고 지금
심판을 준비중이다(계 14:14). 마지막 날 ‘충신과 진실’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백마를 타고 공의로 싸우시는 데, 머리에 많은
관들(디아데마타 διαδήματα)을 쓰시고 승리자가 되실 것이다(계 19:12).
바울은
내세에 대한 소망으로 ‘썩어지지 아니할 면류관’(고전 9:25)을 목표하며 지금 달려가는 경주자임을 분명히 하였다(빌
3:14). 그런데 바울은 내세의 보상과 영광인 면류관만 생각하지 않고,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가 이미 자신의 면류관임을
선포하였다(빌 4:1; 살전 2:19). 예수와 함께 하는 교회공동체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맛보는
στέφανος(스테파노스)이다.
교회가 세상에서
맛보는 면류관은 영광이지만 고난이 함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서 저자들은 잊지 않고 예수가 쓰신 가시 면류관을 기록하고
있다(마 27:29; 막 15:17; 요 19:2). 조롱과 멸시, 고통의 면류관인 것이다. 예수의 제 2 성육신인 교회는 지금
고난의 가시면류관을 쓰고 가야 한다.
교회는 예수와 복음의 길을 막는 세상의 권세 앞에서도 스데반(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이 되어야 한다.
신약성서에는 “면류관”을 뜻하는 두 종류의 헬라어 단어가 나타난다. 우리말 성경에는 이 두 단어가 동일하게
‘면류관’으로 번역되지만, 그 미묘한 뉘앙스의 차이를 살리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서 역동하는 그 달고 오묘한 맛의 신비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구별된 헬라어 원어처럼 번역에서도 서로 구별 되어야 마땅하다.
첫째는 ‘디아데마’(diavhma, 12:3, 13:1, 19:12)
디아데마는 요한계시록에서만 세 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로부터
영어의 ‘diadem’(왕관)이 파생되었다. 원래 디아데마는 “둘레를 동여매다”라는 의미의 동사에서 유래하는데, 페르시아의
왕들이 터어번(turban: 인도 등에서 남자가 머리에 감는 두건)이나 티아라(tiara: 옛 페르시아 사람의 두건) 위에 묶어서
사용했던 흰색으로 표시된 파란 리본띠를 가리킨 말이었다.
이것은 왕의 머리에 사용되는 장식품이었기 때문에 왕권이나 권력을 상징했다. 때때로 하나 이상의 디아데마(왕관)가 동시에
씌워지곤 했다. 이집트의 왕 프톨레미가 안디옥에 승리의 개선을 했을 때 그는 그의 머리 위에 두 디아데마를 썼는데, 한 디아데마는
아시아에 대한 그의 주권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다른 디아데마는 이집트에 대한 그의 왕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마카비상
11:13).
계시록에서도 예수님은 머리 위에 많은 디아데마(19:12)를, 사탄은 일곱 디아데마(12:3)를, 적그리스도는 열 개의
디아데마(13:1)를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디아데마는 성도들에게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 권세를 소유하신 예수님이나
어둠의 권세를 가진 사탄 또한 적그리스도에게만 사용되는 전문용어이다.
둘째는 ‘스테파노스’(stevfanoz, 신약성서에 25번 등장)
고대
지중해 세계에서도 운동경기자들에게 주는 면류관이 있었다.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을 한 승리자들, 즉 골인지점을 제일 먼저 통과한
달리기 주자와 원반이나 창을 가장 멀리 던진 선수, 그리고 상대방을 제압한 레슬링선수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스테파노스는 승리의 표상이었고, 가치 있는 명예의 상징이었으며, 축제와 기쁨의 상징이었다.
이 면류관은 올리브, 월계수, 셀러리, 솔잎 등을 그 가지와 함께 엮어 만든 관이었다. 이것이 교회의 언어로 변천되어서
스테파노스는 구원의 믿음을 지킨 순교자들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면류관(벧전 5:4), 시험을 견디는 자에게 주어지는 생명의
면류관(약 1:12, 계 2:10), 그리고 의의 면류관(딤후 4:8), 자랑의 면류관(살전 2:19), 기쁨의 면류관(빌
4:1)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최초 그리스도교 순교자의 이름인 스데반 역시 이 스테파노스에서 유래되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는 고난주간에 우리가 되새겨야 할 또 하나의 면류관은 바로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씌운 ‘가시 스테파노스’인 것이다(마 27:29, 막 15:17, 요 19:2, 5). 그의 면류관은 외관상 패배한 것
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이미 사탄을 이기신 주님을 위하여 예비된 승리자의 면류관이었다.
공자는 자신의 제자인 안회(顔回, BC 521-481)를 가리키며 ‘한 대광주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시며 좁고 누추한
거리에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시름겨워하거늘, 안회는 그 속에서도 즐거움을 고치지 않는구나’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여기서
유래한 말이 단표누항(簞瓢陋巷)이다.
이 말의 뜻은 누추한 거리에서 먹는 대바구니의 밥과 표주박의 물이라는 뜻으로, 소박한 시골
살림 또는 청빈한 선비의 살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단표누항의 삶이었고, 그 절정은 가시면류관이었다. 이처럼 면류관은 인간이 어떠한
환경과 상황에서도 예수님처럼 신앙의 근원적 비약을 이루게 될 때 부여받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자칫 그 면류관을 받기 위해서 신앙의 도약을 시도하는 것이라면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면류관이 신앙의
장애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면류관은 신앙의 자발성, 곧 예수 따르미로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받게 되는 보상이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썩지 않는 면류관은 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절제하며 집중하며 복음을 전한 성도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2. 기쁨의 면류관(데살로니가전서 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라.
기쁨의 면류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 영혼구령의 열매를 맺었을 때 받는 면류관이다.
3. 의의 면류관(디모데후서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의의 면류관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지킨 성도가 받는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도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
① 선한 싸움
② 의의 면류관
그러면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의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선한 싸움
(딤전6:12)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하셨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이 곧 선한 싸움이다.
그러면 ‘믿음의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약2:14-26에서 말씀하는 ‘행함’ 즉 믿음의 행함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선한 싸움은 곧 믿음으로 힘써 사는 것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믿음에 힘써야(엡4:3, 벧후1:5, 벧후1:10, 유1:3)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함’과 ‘율법의 행위(롬3:20)’는 다르다. ‘율법의 행위’는 곧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막10:19)’는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다만 죄를 깨닫음(롬3:20)이다.
2. 의의 면류관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하셨다.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곧 ①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시는(요15:26) 것이며, 그리고 ②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시는(눅4:18) 것이다.
그러므로 의의 면류관은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다.
(결론)
문1: ‘선한 싸움’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현실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힘써 사는 것이다.
문2: ‘의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답: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의롭게 된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의의 면류관이다.
4. 영광의 면류관(베드로전서 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영광의 면류관은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한 목사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삶을 산 목자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하셨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이 크게 2가지이다.
① 양 무리의 본
②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그러면 ‘양 무리의 본’은 무엇인가?
그리고 ‘영광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양 무리의 본
(요10:1-5)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하셨다. 그러므로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목자로서 양 무리의 본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는 자는 무엇인가?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약2:14-26에서 말씀하는 ‘행함’ 즉 믿음의 행함이다.
이렇게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보혜사 성령과 주의 성령)을 선물(행2:38, 엡2:8)로 주신다.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음(갈2:16)이다. 그러므로 보배로운 믿음(벧후1:1)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믿음에 힘써야(엡4:3, 벧후1:5, 벧후1:10, 유1:3) 한다.
그러므로 ‘믿음의 행함’과 ‘율법의 행위(롬3:20)’는 다르다. ‘율법의 행위’는 곧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속여 취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막10:19)’는 계명을 지키는 행위이다. 그렇기에 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고 죄를 깨닫음(롬3:20)이다.
2.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셨다. 그러므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 곧 성도의 영광이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은 무엇이며, 그리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는 무엇인가?
1)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이것이 곧 온전한 사람을 이루는 것이다.
2)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다.
(결론)
문1: ‘양 무리의 본이 되라’는 무엇인가?
답: 예수 그리스도의 피(대속)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구속)을 힘입어 ❶새 사람으로(골3:10) 죄 짓지 아니하는 자로 살고, ❷하나님의 뜻대로(요6:40)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로 살고, ❸영의 생각으로(롬8:6)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로 사는 것이다.
문2: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는 무엇인가?
답: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영광의 면류관을 얻는 것이다.
영광의 면류관(예레미애 13:18) 너는 왕과 왕후에게 전하기를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
5. 생명의 면류관(요한계시록 2: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환란 가운데서도 끝까지 충성한 성도들이 받는다.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길에서 환란을 만나도 끝까지 충성하는 충성된 성도가 받는 면류관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다. 이 말씀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도리는 다음과 같이 크게 2가지이다.
① 시험
② 생명의 면류관
그러면 ‘시험’은 무엇인가?
그리고 ‘생명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본론)
1. 시험
(약1:13-15)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 시험이다.
그러면 ‘자기 욕심’은 무엇인가?
(요일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하셨다. 그러므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곧 자기 욕심이다.
그리하여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하셨다.
2. 생명의 면류관
(요일5:10-1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있는 증거는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은 무엇인가?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보혜사 성령이 임하셔서 ❶영원토록 함께 계시고(요14:16), ❷모든 것을 가르치시고(요14:26), ❸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요15:26) 하신다. 이것이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이다.
2)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주의 성령이 임하셔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기름을 부으시고 보내사(제사장 직분과 선지자 직분과 왕 직분을 세우사) ❶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육신의 연약한 자<롬5:6, 롬6:19>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롬8:9> 생기 있는 자가 되게), ❷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는 죄인된 자<롬5:8, 롬11:30>를 하나님께 순종하는<롬1:5) 의인이 되게), ❸눌린 자를 자유케(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롬5:10, 롬8:7>를 영의 생각<롬8:6>으로 하나님과 화목 하는 자가 되게) 하신다(눅4:18). 이것이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다.
(결론)
문1: ‘시험’은 무엇인가?
답: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는 것이다.
문2: ‘생명의 면류관’은 무엇인가?
답: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의 자기 안에 있는 증거 곧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것이 곧 생명의 면류관이다.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영화로운 면류관(잠언 4:9)
그가 아름다운 관을 네 머리에 두겠고 영화로운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느니라
5. 금 면류관
시편 21장
3. 주의 아름다운 복으로 저를 영접하시고 정금 면류관을 그 머리에 씌우셨나이다
요한계시록 4장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요한계시록 14장
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예리한 낫을 가졌더라
6. 은 면류관
스가랴 6장
11. 은과 금을 받아 면류관을 만들어 여호사닥의 아들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우고
7. 지식의 면류관
잠언 14장
18.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으로 기업을 삼아도 슬기로운 자는 지식으로 면류관을 삼느니라
8. 재물의 면류관
(물질을 가난한자와 하나님의 영광을위해 사용하는 자)
잠언 14장
24. 지혜로운 자의 재물은 그의 면류관이요 미련한 자의 소유는 다만 미련한 것이니라
9. 보석 면류관
사무엘하 12장
30. 그 왕의 머리에서 보석 있는 면류관을 취하니 그 중량이 한 금 달란트라 다윗이 머리에 쓰니라 다윗이 또 그 성에서 노략한 물건을 무수히 내어오고
스가랴 9장
16. 이 날에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기 백성의 양떼 같이 구원하시리니 그들이 면류관의 보석 같이 여호와의 땅에 빛나리로다
10. 꽃 면류관(화관)
이사야 28장
5.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 남은 백성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
이사야 61장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1. 가시 면류관(고난)
마태복음 27장
29.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12. 기쁨의 면류관
고린도전서 9장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3. 썩을 면류관
고린도전서 9장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14. 교만의 면류관
이사야 28장
1. 취한 자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이여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
부정접두사 α와 프데이로(φθειρω)유래-부패하지 않는,불멸의, 죽지 않는,망하지 않는'을 의미
경주에서 이기는 자)복음 전파를 위해 스스로 절제하며 집중하며 복음을 전한 성도에게 주는 면류관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지나가 버리고 영원하지 않다.
요일 2:17에서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명에도 권력도 부요함도 다 지나간다. 영원하지 않다는 말이다.
마치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꽃들이 한 계절이 가기 전에 시들어버리는 것처럼 세상 것들은 시들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고전9:24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찌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5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2. 의의 면류관 :사명 완수와 주님 나타나기를 기다림 속에 살기를 기다리 신다.
δικαιοσύνη 디카이오쉬네:의로움,의/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디카이오스(δικαιος의로운)유래,의로운 사람의 덕, 자질, 상태를 나타낸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끝까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의 길을 지킨 성도가 받는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도 의의 면류관을 받는다. 사도바울은 딤후 4:8에서 그는 자신이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만이 아니라 의의 면류관을 얻게 될 사람들이 더 있음을 가르쳐주는데 같은 절 하반 절에서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는 사람이 의의 면류관을 쓰게 됩니다.
딤후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3.생명의 면류관 : 시험을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기를 기다리 신다.
ζωη 조에:생명/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 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생명의 면류관은 두 종류의 사람이 받습니다.
첫째, 시험을 참고 승리한 사람입니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 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생활 하다보면 많은 사단의 시험이 있습니다. 어떠한 이유로든 시험에 들면 자신만 손해입니다. 어떤 유혹 중에도 인내하는 사람이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둘째,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입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신앙을 위하여 감옥에 가도 믿음을 지키고, 신앙을 위하여 죽는 일이 있어도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충성의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믿음의 길에서 환란을 만나도 끝까지 충성하는 충성된성도가 받는면류관이다 작은 일에 충성(마25:21), 맡은 일에 충성(고전4:2), 재물에 충성(눅6;11), 남의 것에 충성(눅6;12), 하나님의 집에 충성(히3:2), 그리고 죽도록 충성(계2:10)이다.
시들지 아니하는(아마란토스 ἀμαράντος 시들지 않는)유래-아마란트 꽃으로 이루어진'을 의미한다.
이 꽃은 시들거나 마르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우는 꽃으로, 잡아 뜯었을 때 물로 축이면 되살아난다
영광의 면류관은 목자의 역할을 잘 감당한 목사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성도들에게 본이 되는 경건한 삶을 산 목자들이 받는 면류관이다. 이 말씀은 목회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런데 그 당시 목회자들은 세상 영광을 다 버리고 하늘의 영광을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이었다.
이 말씀은 세상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가능한 말씀이라고 본다.
목회자도 목회를 하는데 자신의 야망과 명성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목회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그 목사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성도도 마찬가지이다. 사업을 하는 사람도, 직장생활 하는 사람도, 공부하는 학생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의 야망과 명성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은 없다.
교회 일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칭찬과 인정 때문에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은 없다. 반대로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다.
사람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묵묵히 일한다면 그 사람은 천국에서 영광의 면류관을 쓰게 될 것이다.
벧전5: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5.금 면 류 관 :믿음의 승리자가 되기를 기다리 신다.
χρυσεος 크뤼세오스:금으로 된,금의/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6.자랑의 면류관:많은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가 이 면류관을 받는 성도를 기다리 신다.
καυχήσις 카우케시스:자랑하기/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
σοι 소이:너에게/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7.기쁨의 면류관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받게 한 후 이 면류관을 받기를 기다리 신다.
χαρά 카라:기쁨,즐거움/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왕관,화관을
σοι 소이:너에게 / διδωμι 디도미:주다,수여,하사하다.
카우카오마이: καυχαομαι 자랑하다 에서 유래했으며,자랑하기, 자랑거리'를 의미한다.
기쁨의 면류관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 영혼구령의 열매를 맺었을 때 받는면류관이다.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은 내가 전도한 영혼, 내가 세운 영혼을 말한다.
살전2: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사도바울은 빌4:1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말하고 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다.
빌립보 교우들은 바울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믿었다. 그리고 바울의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을 전도해서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세울 때보다 더 부흥했다.
바울이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을 통해서 구원 얻은 성도들이었다. 바울은 그들의 영혼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며 기뻐할 것이다.
면류관의 종류10가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준비하시고 예비하신 면류관의 종류가 성경에는 약 9종류가 있다.
1. 의의 면류관 (딤후 4:8)주의 재림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주심.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2. 승리의 면류관 (계 3:10~11)신앙생활의 승리자들(이기는 자들) 계 3:10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 3:11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3. 생명의 면류관 (약 1:12, 계 2:10)시험을 참는 자들, 죽도록 충성하는 자들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4. 인자와 긍휼의 면류관 (시103:4)구속받은 자들
시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기쁨의 면류관 (빌4:1)전도한 자들 (열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6. 썪지 않을 면류관 (고전9:25)모든 일에 절제한 자들
고전 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7. 자랑의 면류관 (빌4:1)전도한 자들 (열매)
빌4:1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8. 영광의 면류관 (밷전5:4)시들지 않는 면류관 (고난 받되 끝까지 견딜 자들)
벧전5: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9. 금 면류관 (계4:4)금은 왕권을 상징 (하나님 영광 참여할 자)
계4: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성도의 이 세상에서의 삶은 하고 싶으면 하고 안 하고 싶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의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누구든지 다가오는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해 면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시는 주님 앞에 가게 되는 것이다.
아홉 개의 면류관을 받아 쓰기 위해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써야할 면류관이 하나 있다. 성경 속에 있는 열 번째 면류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쓰셨던 가시 면류관이다.
요한복음 19:2 군병들이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그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히고. The soldiers twisted together a crown of thorns and put it on his head. They clothed him in a purple robe.
가시 면류관 [ἀκανθα 아칸다: 가시 / Στέφανος 스테파노스: 왕관, 화관
우리 죄 그리고 나의 죄때문에 대신 쓰신 가시 면류관이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가야 한다. 그러면 승리할 수 있고 면류관을 쓸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내 뜻대로 내 주장대로 내 맘대로 살면 면류관을 얻을 수 없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규칙대로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맛있는 음식도, 즐거운 일도, 가고 싶은 곳도, 이기기 위해 모든 일에 절제를 하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면류관을 들고 서서 우리의 모든 환란 고통을 견딜수 있도록 도우시고 지원하시며 응원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오늘도 승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