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증인(요한계시록 11:3)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두 증인은 "엘리야"와 "에녹" 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던 인물은 엘리야와 에녹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사람은 죽어야 하늘로 올라갈 수 있지만 살아서 올라갔던 사람이 두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엘리야와 에녹이 다시 내려와서 순교 당하므로 계시록의 예언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두 증인을 "엘리야" "에녹" 이라고 분명하게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후대 신학자들은 "모세" "엘리야"라고 해석합니다.
그 이유는 마태복음 17장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대화할 때 등장했던 인물이 "모세"와 "엘리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산 사건에 등장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상징하는 율법서를 대표하는 모세와 선지서를 대표하는 엘리야를 상징합니다.
따라서 성경 전체의 맥락에서 두 증인은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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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두 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성경의 기록 / 7구절
1. 다니엘 7:25 / 한 때, 두 때, 반 때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 다니엘 12:7 / 한 때, 두 때, 반 때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쪽에 있는 자가 자기의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원히 살아 계시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되 반드시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지기까지이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3. 요한계시록 11:2 / 마흔두 달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4. 요한계시록 11:3 / 일천이백육십 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5. 요한계시록 12: 6 / 일천이백육십 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6. 요한계시록 12:14 / 한 때, 두 때, 반 때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7. 요한계시록 13: 5 / 마흔두 달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 한 때는 한 해를 의미 : 12달 × 30일 = 360일
* 두 때는 두 해를 의미 : 24달 × 30일 = 720일
* 반 때는 반 년을 의미 : 6달 × 30일 = 180일
42달 : 1260일
누가 무식한 이치로 사람을 혼동케 하느냐?
욥기 38:2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욥기 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 : 머리가 일곱 개
요한계시록 13: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7: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적 그리스도의 나라(미래의 나라)
후 3년 반에 나타날 나라
* 신천지에서 데려간 교인들 : 30만명
전도관,
다니엘
짐승이란 구약에 나타난 제국을 짐승이라고 한다.
머리는 금이요 바벨론이요 사자요 느부갓네살
가슴은 은이요 메대 파사요 곰이요 고레스
배는 놋이요 헬라요 표범이요 알렉산더
두 다리는 동로마요 철이요 큰짐승
다섯은 무엇인가?
다섯은 제국을 말한다.
짐승 = 제국
애급, 앗수르,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 다섯은 망하였다.
하나는 지금 있다 / 로마
마지막 짐승은 일곱째인데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그기간은 잠간 동안 왕 노릇한다.
마지막 짐승으로 적그리스도의 나라라고 한다.
바벨론 - 금
메대 파사 - 은
헬라 - 놋
로마 - 철
두 증인 : 모세와 엘리야
초대교회 교부 문서에서 / 두 증인 - 에녹, 엘리야
이후에 모세와 엘리야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선악과 사건 이후에 모든 인간은 다 죽어야 한다.
예수도 죽지 않았다.
에녹과 엘리야는 살아 있는 모습으로 승천
후 3년 반 시대에 다시 내려와서 죽어야 두 증인이 죽어야 한다.
에녹과 엘리야는 후 3년 반에 내려와서 순교 당할 것이다.
1장 / 밧모섬에서 서론 배경
2-3장 / 교회
칭찬, 책망, 권면, 약속(천년 왕국)
4장 / 하늘에서 본 환상
5장 - 보좌로부터 만물이 나타났다.
보좌로부터 섭리가 이루어진다.
* 욥기 / 종들의 죽음, 자녀들의 죽음, - 사탄의 청구에 의하여
천상회의가 열렸다. 하나님의 아들들(천사장) + 사탄(쫓겨나기 전에) 타락 전 루시엘 - 타락 후 루시퍼
단계별로 지상에서 이루어진다.
지상의 역사가 하늘 보좌에서 이미 설계되었고 설계된 대로 진행된다(칼빈주의, 예정)
계시록 5장에서 각본이 짜여 졌다.
앞으로도 각본대로 진행될 것이다.
37장 땅의 기초를 놓을 때 천사장(하나님의 아들들)
두루 다니다 왔다(베드로전서
천사 위의 천사 (루시엘) 50가지의 명칭 타락 후 -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사탄 / 복을 주었기 때문에 잘 섬긴다.
하나님 / 잘 섬겼기 때문에 복을 주신다.
6장 - 인
흰말, 붉은말, 검은말, 청황색말
144,000은 유대인의 수라고 한다.
12지파가 현재 팔레스타인에 모두 모였다.
전 3년 반은 큰 환난을 없다. 다만 재앙이 임할 뿐이다.
후 3년 반은 음녀가 등장한다(바티칸, 거대한 음녀)
양처럼 생긴 짐승이 말은 용처럼 한다.
두 짐승은 WCC, 카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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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장에 나오는 두 증인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1:3-4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
요한계시록의 저자가 구약의 배경을 적용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계시 속의 다른 많은 상징들과 마찬가지로
11장의 두 증인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위의 본문이 나온 구약의 배경은 스가랴 4장으로, 선지자가 꼭대기에 주발과 일곱
등잔이 있는 순금등대를 보았는데 일곱 관이 주발에서부터 등잔으로 연결돼 있다.
두 감람나무가 등대의 좌우에 서 있는데, 이
나무들이 중앙의 주발에 기름을 공급하고 다시 주발에서 일곱 등잔으로 기름이 공급된다.
스가랴에 나온 등대 :
스가랴의 이상은 요한계시록 11장에 몇 가지 방법으로 조정되어 사용되었다.
스가랴 4:2에는 등대가 하나 있는 대신 요한계시록
11:4에는 두 개가 있고, 두 등대와 두 감람나무는 모두 두 증인을 나타낸다.
스가랴 4장에서 선지자는 수행하는 천사에게 두
감람나무가 무엇을 나타내는지 물었고, 천사는 “기름 발린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대답했다(14절).
“기름 발린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기름의 아들들”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들 곧 특별한 기능을 위해 성별된
자들을 의미한다.
이 특별한 기능이 무엇인지는, 선지자가 등대와 두 감람나무가 누구를 나타내는지 물었을 때 천사가 준 첫 번째
대답(4절)에 비추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6절)는 말을 들었다.
다시 말하면, 두
감람나무에서 나오는 기름에 의하여 빛을 발하는 등대는 인간의 힘이나 능력에 반대되는 하나님의 영의 능력을 통해 위탁 받은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의 종들을 준비시키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한다.
유다 총독 스룹바벨은 그의 사명을 이루기 위해 인간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곧 선지자의 계시를 통해 그에게 전달된 능력 곧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능력에 의지하였다.
요한계시록의 두 증인은 구약과 신약임 :
스가랴의 이상에는 하나의 등대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냈다. 그러나 요한이 이상을 받은
시대에는 두 개의 등대가 나타난다. 등대가 하나가 아니고 둘인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두 등대는 기름을 공급하는 두 감람나무와
동일하게 여겨지므로 이 둘은 하나로 연결돼 있다. 이런 흥미 있는 특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푸는 열쇠는 상당 부분 넓은 문맥 곧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두 증인에 관한 요한의 신학과 연관돼 있다. 요한은 신명기 19:15에 표현된 성경적 원칙을 따르고 있다.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이 원칙은 바울(고후 13:1; 딤전 5:19; 히 10:28)뿐 아니라 예수님(마 18:16)에 의해서도 적용되었다.
요한계시록 전반을 통하여 요한이 인용하는 두 증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이다. 이 두 증인은 요한이 받은 계시의
내용으로 요한계시록 1:2에 처음 나온다. 1:9에서 요한이 “형제요 예수의[예수 안에 있는]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밧모 섬에 있게 된 것
이 두 증인 때문이었다고 진술하는데, 이는 이 두 증인이 예수와 관계된 것이므로 그가 이 둘을 위해 기꺼이 환란을 당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전달된 계시를 나타내고, 예수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비추어 구약의 계시를
보충하고 확실하게 밝히는 예수님 및 신약의 사도와 선지자들을 나타낸다. 진리를 증거하는 이 두 증인은 요한계시록 11장에서 하나의
단위로 함께 나온다. 이들이 죽임을 당한 것을 말할 때(8절), 본문이 9절 하단에서 헬라어로 복수인 “시체들”로 되돌아가기
전에 8절과 9절 상단에서 단수인 “시체”를 사용했는데, 이는 이 두 증인이 하나의 단위로 여겨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두 증인의 활동:
한 쪽 증인의 모든 특징은 다른 쪽 증인과 같고, 한쪽 증인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다른 쪽 증인에게도 일어난다. 이들은 베옷을
입고 1,260일 동안 예언한 선지자(11:3, 6, 10)로, 여기서 베옷은 어둠(계 6:12; 사 50:3), 애통과 슬픔(겔
27:31; 욜 1:8, 13), 곤란과 책벌과 능욕(왕하 19:1, 2), 겸비와 회개(대하 21:16, 17; 마
11:21) 등을 상징한다. 앞 절(11:2)과의 시간상의 평행은 같은 시기 동안에 거룩한 성이 짓밟힌 것에 대한 애곡과 슬픔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게다가, 이 두 증인이 빛을 내는 기능을 가진 두 등대이므로(참조 시 119:130; 요 1:9), 베옷은
베옷으로 가리는 것처럼 빛을 어둡게 하는 것을 나타낼 수 있다. 그들이 예언한 것에 대한 반응 곧 그들이 죽임을 당하고 그들이
죽은 것을 기뻐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베옷은 그들의 기별이 거절당함으로써 곤란과 책벌과 능욕을 겪고 있었음을 나타낼 수 있다.
이런 묘사는 예언의 말씀이 효과적이고 힘 있게 전파되지 못한 때를 말하고 있다. 이는 흔히 종교암흑시대 곧 1,260일 또는
42달이라는 예언적 기간으로 대표되는 시기의 특징이었다(계 11:2, 3; 참조 12:6, 14; 13:5; 단 7:25; 12!
:7).[1]
두 증인을 이해함:
요한계시록 11:5∼8에 주어진 단서들을 살펴보면 두 증인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누구든지 두 증인에게 해를 끼치려
하면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그 대적들을 삼킨다고 5절은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선지자 엘리야를 가리킨다고 보지만,
예레미야 5:14을 언급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 그들의 입에서 대적들을 삼키는 불처럼 나온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것과 평행을 이루는
요한계시록의 상징에서 예수님이 입에서 좌우에 날 선 검이 나오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는데(1:16), 그분이 그 검으로 만국을 칠
것이다(19:15, 21). 이 검은 하나님의 말씀(히 4:2), 곧 그분의 입에 있는 예수의 증거(계 19:13에서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불림)를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입에 있는 이 검 곧 말씀이 세상을 심판할 것이다.
두 증인의 권세:
요한계시록 11:6은 두 증인이 구약 선지자들 중에 가장 큰 자인 모세 및 엘리야와 같은 권세를 가진 것으로 묘사한다. 이들도
엘리야처럼 하늘을 막아 자신들이 예언하는 동안에 비가 내리지 않도록 하는 권세가 있으며, 모세처럼 강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그들이
원할 때면 언제든지 온갖 재앙으로 땅을 칠 수 있는 권세가 있다. 이런 상징적 언어의 사용은 이 두 증인이 실제 모세나
엘리야임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들이 고대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들과 같은 권세를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이 베옷을 입고
예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권세가 약함을 비추는 말은 전혀 없다. 외적 환경이 이 예언의 말씀의 성격이나 권위를
바꾸지 못했다.
두 증인의 죽음:
요한계시록 11:7에 의하면, 두 증인이 그들의 증거를 마쳤을 때, 다시 말해서 그들이 예언한 1,260년 기간이 다해갈 때
무저갱으로부터 나온 짐승(참조 17:8)이 그들을 공격하여 짓밟고 죽였다. 5절에 비추어 볼 때 이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왜냐하면
5절은 두 증인을 죽이는 자는 누구든지 그들의 입에서 나온 불로 죽임을 당할 것(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받음)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운명은 요한계시록 20:7∼15이 계속하여 말하는 대로 두 증인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에게 닥칠 일이다. 사단과
모든 악인들은 흰 보좌 앞 심판대에 선 후에 불 못에서 태워질 것이다.
1일=1년 원칙에 따르면,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해 큰 성의 거리에 놓여 있던 기간인 3일 반(계 11:9)은 3년 반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7절의 짐승이 특히 반종교적 편견을 가졌다는 점에서 프랑스 제1 공화국 정부(1792∼1804년)를 나타낸다고 이해하는 재림교인들은 무신론이 극에 달했던 프랑스 혁명 역사 중에서 짧은 기간 동안에 이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본다. 이 기간은 파리에서 종교를 폐지하라는 법령이 발령된 1793년 11월 10일부터 프랑스 정부가 종교행위에 대한 금령을 해제한 것으로 여겨지는 1797년 6월 17일까지로 산정될 수 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 7권, 803). |
요한계시록 11:8은 상징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불린 큰 성 곧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의 거리에 두 증인의 시체(헬라어로 단수)가 놓여 있다고 말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두 개의 성 곧 큰 성과 거룩한 성이 있다. 큰 성은 큰 음녀라고 묘사돼 있고, 거룩한 성은 어린 양의 신부라 불린다. 앞의 성은 보통 바벨론이라 불리고, 뒤의 성은 새 예루살렘이라 불린다. 요한계시록의 여기서 처음으로 언급되는 큰 성은 상징적으로 소돔과 애굽으로 불린다. 소돔은 번영, 방종, 오만방자, 사악, 부도덕, 영적 무관심, 불친절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겔 16:49, 50; 벧후 2:6∼8; 유 7절). 애굽은 우월감, 오만방자, 압제, 하늘의 하나님을 거절함, 바로를 포함한 많은 피조물 숭배 등으로 악명이 높았다(출 5:2; 렘 43:12, 13; 46:8, 25; 겔 20:7; 23:3, 8, 27; 29:3; 30:13; 32:12; 욜 3:19; 미 6:4). 큰 성은 하나님께 반역을 자행하고 그분의 증인들을 압제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멸시를 당한다.
두 증인의 부활 :
본문은 큰 성이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계 11:8)이라고 말함으로써 두 증인이 살아 있을 때처럼 죽을 때도
저들의 주님을 따른다고 말한다.
두 증인이 충성되고 진실한 증인이신 저들의 주님의 발자국을 따른 다른 길들을 언급하는 나머지
구절에서 이런 사실이 강화된다.
그들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죽을 때도 세상에 의해 멸시를 당한다(계 11:9, 10).
그들은 3일 반 후에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받는데, 세상은 놀라서 구경한다(11절).
그들은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대적들 앞에서 영광스럽게 된다(12절).
그들의 부활 후에 큰 지진이 뒤따르므로 대적들이 놀라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일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13절).
역사적으로 말해서, 두 증인의 죽음 및 부활은 프랑스 대혁명 때 무신론이 극에 달하고 종교가
폐지되었을 때(1793년 11월 10일),
그리고 3년 반 후에(1797년 6월 17일) 프랑스 정부가 종교 행위에 대한 금령을
해제하고 19세기 초 여러 나라에서 성서공회가 설립되었을 때 성취되었다.
결론 :
두 증인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과 예수의 증거 곧 구약과 신약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실 때
성령을 통하여 남겨두신 증인들이다.
이들은 마치 예수님처럼 곧은 증거로 인해 죽임을 당하지만, 부활하여 구름을 타고 승천함으로써
그들의 대적 앞에서 영광스럽게 된 그분의 발자국을 따른 선지자들로 묘사된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요한과 그의
형제들처럼 그리스도를 위해 증인이 된 자들은 모두 예수의 경험 곧 부활, 승천 그리고 대적들 앞에서 받는 영광뿐 아니라 증거로
인하여 당하는 순교의 경험에도 동참할 각오를 해야 함을 뜻한다(계 1:2, 9; 6:9; 12:11, 17; 14:12;
17:6; 19:10; 20:4; 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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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다 모아도 인구가 얼마되지 않지만 전 세계적으로 중요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들은 각 분야에서 뛰어나며
노벨상을 휩쓸어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노벨 경제학상의 65%, 물리학상 의 32%, 의학상의 23%, 화학상의
11% 그리고 문학상의 7%는 유대인들에게 수여되었다.
유대인들은 무서운 고난과 박해를 당하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뛰어난 사람들을
배출하는가 하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연구 과제가 되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그렇게 탁월한 것은 그들의 종교적
가정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중 에서도 유대인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성경을 읽는 것이 그들을 그렇게 뛰어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대인 어머니는 아이들의 침대에서 성경을 읽어주며 하루를 마감한다.
그것이 아이들로 하여금 큰 꿈을 갖게 하고 건실한
삶을 살게 하며 언어에도 남다른 능력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이야말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책이며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그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마침내 하나님의 말씀과 성도들이 최후의 승리를 거둘 것을 예언하고 있다.
1. 천사는 요한에게 무엇을 측량하라고 하였는가?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계 11:1).
천사가 성전을 측량하라고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었다고 하였다.
요단강 계곡에서 자라는 이스라엘의 갈대는 길고 똑바로 크기
때문에 길이를 재는 자로 쓰기에 알맞았다.
천사는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고 하였다.
600여년 전에
에스겔도 이상 속에서 어떤 사람이 성전의 각 부분을 측량하는 것을 보았다(겔 40:3~43:12). 이 측량은 대속죄일에 있었다.
그리고 세 가지 것을 측량하였는데, 바로 성전(겔 40:3~43:12)과 제단(겔 43:13~17)과 사람들(겔
44:1~48:35)이었다.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의 장면도 구약 성경에 나오는 에스겔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것이다. 에스겔의
이상은 예루살렘 성전의 재건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1장 1~2절이 예루살렘 성전을 자세히 살피라는 말 씀은 물론
아니다. 요한이 계시를 볼 당시에는 예루살렘의 성전 건물은 이미 파괴되어(A.`D. 70) 세상에 없었기 때문이다.
2. 얼마나 오랫동안 이방인들은 거룩한 성을 짓밟을 것인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을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계 11:2).
요한은 “성전 밖 마당은 척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는 말을 들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 밖 마당은 성전의 구조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뜰이었다. 이방인들은 여기까지밖에 들어갈 수 없었다. 따라서 이방인들은 심판하지도 말고 혹은 인치지도 말고 그냥 두라는 말씀이 된다.
재림 전 심판은 구원 얻을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것이다. 이방인들은 원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곳의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있는 이방인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참된 이스라엘은 되지 못하여 이교의 습관을 그대로 몸에 지니고 있는 사람들이다. 바로 그들이 마흔두 달 동안이나 하나님의 거룩한 성, 즉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들을 박해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렇다면 성전 마당에 거하면서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이나 짓밟을 존재는 도대체 누구일 것인가?
우선 성경 예언에서 마흔두 달이 어떤 기간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마흔두 달, 1260일, 한 때 두 때 반 때에 대한 일곱 번의 성경상 기록
1. 다니엘서 7장 25절 :한 때, 두 때, 반 때
2. 다니엘서 12장 7절 :한 때, 두 때, 반 때
3. 요한계시록 11장 2절 :마흔두 달
4. 요한계시록 11장 3절 :일천이백육십 일
5. 요한계시록 12장 6절 :일천이백육십 일
6. 요한계시록 12장 14절 :한 때, 두 때, 반 때
7. 요한계시록 13장 5절 :마흔두 달
* 한 때는 한 해를 의미 :12달 × 30일 = 360일
* 두 때는 두 해를 의미 :24달 × 30일 = 720일
* 반 때는 반 년을 의미 : 6달 × 30일 = 180일
42달 = 1260일
그렇다면 1260년이라는 긴 기간 동안 성도들을 괴롭히며 짓밟은 존재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우리는 몇 가지를 추측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존재는 한 사람일 리가 없다. 한 사람이 그렇게 긴 기간 동안 성도를 핍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이 존재는
분명히 역사에 등장하 는 세력이어야 한다. 1260년이란 기간은 긴 기간이기 때문에 숨어서 그 일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로, 성전 밖 마당에 있으면서 그 일을 하였으니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종교적인 세력일 것이고 그렇게 긴 기간동안 핍박을 할
수 있었으니 정치적인 권력도 가진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 세력을 역사에서 찾아낼 수 있다. 1260년(A.D.
538~1798)동안이나 계속된 중세의 긴 암흑시대
동안 누가 세상의 권력보다 더 강한 힘을 행사하며 성도들을 파문하고 종교 재판에 회부하고 화형대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는가?
그것은 중세 로마 교황권의 부정적인 측면이었다. 요한 바오로2세도 로마 교황권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사죄한
일이 있다. 오죽하면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암흑시대라고 부르겠는가? 1260년동안 성도들을 짓밟을 이 세력의 정체와 성격에
대하여는 요한계시 록 13장에 자세히 다시 언급되기 때문에 13장에서 다시 연구하기로 한다.
3. 두 증인은 무엇이며 그들은 1260년 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일을 예언하리라 이는 이 땅의 주 앞에 섰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니”(계 11:3-4).
성도들이 1260년 동안 시달림을 받을 때 굵은 베옷을 입고 예언한 두 증인은 누구일까?
본문은 두 증인이 이 땅에서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밝혔다.
두 감람나무와 촛대는 구약 성경 스가랴 4장에 나오는 장면이다.
스가랴가 두
감람나무의 뜻을 묻자 천사는“이는 기름 발리운 자 둘이니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셔 섰는 자”라고 알려준다.
두 증인은 사람들이
아님이 분명하다.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가 1260일을 1260년
동안 성도들이 박해를 당한 기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한 두 증인은 사람일 리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이 1260년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굵은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슬픔과 회개를 나타낸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박해 기간 동안 성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세상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회개를 호소해 온 어떤 것일 것이다.
두 증인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했는데 감람나무와 촛대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둘 다 불을 밝히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원천이 되고 촛대는 그 기름으로 불을 밝힌다.
그렇다면 두 증인은 1260년의 암흑 기간 동안에
감람나무와 촛대처럼 계속해서 불을 밝히는 기름을 대주는 동시에 또 불을 밝혀 빛을 비추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어두움을
밝혀주는 등이 되고 빛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이“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 처럼 하나님의 말씀인 신구약성경은 어두운 중세의 박해시절 그 어두움을 비추는 등이요 빛이었던 것이다.
두 증인이라고 한 것이 신구약 성경을 잘 상징하고 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라고 노래했으며 예수께서는“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 5:39)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 말씀, 즉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이라고 보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 성도들이 고난을 당하는 중세의 암흑 시대 동안 성경 말씀은 그들과 함께 슬퍼했으며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증인이었으며 어두움을 밝히는 등불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 다음 절을 보면 더 명확해진다.
4. 두 증인을 해하려 하는 자는 어떻게 되는가? 또 그들에게는 어떤 권세가 있었는가?
“만일 누구든지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할지니 누구든지 해하려 하면 반드시 이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저희가 권세를 가지고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하고 또 권세를 가지고 물을 변하여 피 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계 11:5~6).
저희를 “해하고자 한즉 저희 입에서 불이 나서 그 원수를 소멸”한다 는 것과“ 하늘을 닫아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 오지 못하게” 한다는 표현은 엘리야의 기사들을 연상시킨다.
엘리야가 기도한즉 이스라엘에 삼 년 반 동안이나 비가오지 않았으며(약 5:17), 엘리야를 죽이려 하던 군사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불이 그들을 소멸하였다(왕하 1:10). 물이 변하여 피가 되게 한다는 것은 모세가 나일강물이 피가 되게 했던 애굽의 재앙을 생각나게 한다. 실제로 모세와 엘리야는 증인으로서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말씀을 나눈 일도 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모세나 엘리야를 감람나무나 촛대로 부른 일은 없다. 또 그들은 사람이기 때문에 1260년의 긴 기간
동안 증인이 될 수도 없었다. 비가 오지 않거나 물이 피로 변하는 재앙이 임한 것은 그들이 모세나 엘리야 같은“사람”을 거절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전하는“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두 증인은 어떤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과 믿음의 조상들은 구약의 증인에 포함되며 신약의 모든 성도들은 신약의 증인들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신구약
성경이 해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로 재앙을 내린 일 이 있었는가? 요한계시록 22장 18절은“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할 것”이라고 하였다. 하나님 여 호와는 그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소멸하는 불이시”(신
4:24)다.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려 하는 시도는 실패하였고 재앙을 가져왔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불순종하면 재앙을 피할 수 없다. 우리가 편리한 대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5. 두 증인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가?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저희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니라 백성들과 족속과 방언과 나라 중에서 사람들이 그 시체를 사흘 반 동안을 목도하며 무덤에 장사하지 못하게 하리로다 이 두 선지자가 땅에 거하는 자들을 괴롭게 한 고로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여 서로 예물을 보내리라 하더라”(계 11:7~10).
하나님의 말씀이 1260년의 증거를 마칠때 쯤,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즉 사단의 세력이 성경을 핍박하여 죽은 것처럼
만들 것이다. 성경이 그렇게 박해를 당한 장소를 큰 성이라 했다. 그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과 반대되는 개념이며 바벨론
성이다(계 18:2).
그 당시에 실제적인 바벨론이나 베벨론으로 불리던 로마는 이미 없었으므로 큰 성은 바벨론처럼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박해한 나라 나 집단을 의미할 것이다.
이곳은 또한 영적인 소돔 혹은 애굽으로 불리는 곳이었다. 소돔은 타락의 온상을 대표하는 이름이며 애굽은 하나님을 무시하고 부인하는 무신론을 대 표한다. 이런 곳이야말로 예수께서 영적으로 못 박히신 곳이다.
그렇다면 1260년의 박해 시대가 1798년에 끝나니, 그 기간이 끝나갈 무렵에 성경에 나올 만큼 대대적으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성경을 핍박한 세 력이 역사상에 있었는가?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할 만큼 교회와 신앙을 미워하고 박해한 세력과 시대가 있었는가? 분명히 있었다.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이 바로 그것이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이 이 부분을 역사적으로 혹은 실제의 사실로 해석하기를 주저하지만 상징적으 로만 해석할 경우 사흘 반이라는 구체적인 시간이 문제가 된다.
프랑스 혁명은 불과 몇년 동안 계속된 사건에 불과하지만 세계사적으로 교회사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뚜렷한 영향을 남겼다.
그러므로 성경 예언이 이 사건을 취급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프랑스 혁명은 외관상 자유와 평등을 외치며 일어난
무산 계급의 혁명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무신론 사상을 유포시키고 공산주의를 태동하게 한 기틀을 마련해 소련과 동유럽 그리고 중국의
수십억 인구를 공산주의와 무신론의 틀 속에 가두어서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큰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기 전 프랑스는 종교 개혁을 거부하고 부패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다. 성직자들은 귀족 계급이 되어 온갖 사치와 향락를 누렸으며 일반 백성들은 압제에 눌려 신음하고 하루 먹을 빵을 구하기도 어려웠다.
1789년 7월 14일 분노한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면서 혁명은 시작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동안 왕과 교회에 억눌렸던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하여 새로운 달력을 만들어 종교적인 제일들을 모두 없애버렸으며 일주일을 10일
제도로 만들어 예배일도 철폐하였다. 분노한 시민들은 교회를 더럽히고 성직자들을 모독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았다.
혁명 기간에 약 5,000명의 성직자들이 처형을 당했다.
11월 10일에는 이성의 여신을 상징하는 젊은 여인이 선택되어 노틀담 사원에서 경배를 받았다. 프랑스 혁명 의회는 1793년 11월 26일 성경과 종교 행사 금지령을 공식 결의하였다. 그리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이 저희의 죽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는 예언이 슬프게도 성취되었다.
그러나 주일 제도가 철폐되고 성경 읽는 것이 금지되며 하나님 대신 이성의 여신이 받들어지자 프랑스는 최악의 무질서와 혼란에 빠져 들어갔다. 범 죄는 증가하고 국민들의 건강은 땅에 떨어졌고 사회는 공포 분위기에 사로잡혔다. 할 수 없이 프랑스는 삼 년 반 후인 1797년 7월 17일 성경 및 종교행사 금지령을 폐지하였다.
6. 삼일 반이 지난 후 어떤 기적이 일어났는가?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저희 속에 들어가매 저희 발로 일어서니 구경하는 자들이 크게 두려워하더라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함을 저희가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저희 원수들도 구경하더라”(계 11:11~12).
프랑스 혁명 정부는 성경을 금지한 후에 급속도로 사회가 혼란에 빠 지자 할 수 없이 삼 년 반 만에 그 조치를 철회하였다. 그리고 죽은 것처럼 보였던 두 증인은 다시 살아나기 시작하였다.
1798년 2월 15일 프랑스 군인들이 로마의 시스티네(Sistine Chapel) 성당에 난입하여 교황을 유배 보내고
교황이 그곳에서 죽자 538년부터 1260년 동안이나 계속되던 교황의 세력은 드디어 약화되고 성경은 생기를 얻은 것처럼 보급되고
읽혀지기 시작하였다.
때마침 제지업과 인쇄술이 발달하여 성경을 비싸지 않게 출판하게 되었고 1804년에 영국성서공회, 1816년에는 미국 성서공회가 설립되어 성경을 대량으로 보급하기 시작하였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전 세계에 파견되었다. 실로 19세기는 위대한 선교의 시대였다.
성경은 오늘날도 베스트셀러 중의 베스트셀러이다. 신구약 성경은 매년 수백 개의 언어로 출판되며 쪽 복음 성경은 1,00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보급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의 발표에 의하면 한국의 성서공회는 우리나라에서 2005년 1년 동안에 170만 권의 성경을 발행하였고 1,678,259부의 성경을 77개 언어로 제작하여 85개국에 보내고 있다. 실로 엄청난 성경의 부활이다.
7. 두 증인을 죽이려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떤 피해를 당했는가?
“그 시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계 11:13).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직접 생기를 얻어 부활했지만 성경을 박해한 프랑스는 커다란 영적 지진을 경험하였다. 그들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주를 잃고 피폐해졌으며 엄청난 무너짐을 경험하였다.
성 십분의 일이란 유럽 열(十) 나라 중의 하나에 해당하는 프랑스를 지칭하는 말일 것이다. 죽은 사람이 칠 천이라는 것은 아마도 혁명 기간 동안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상징적 수라고 생각된다.
이런 격변을 겪고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하나님과 말씀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하나님 없이 벌어지는 참담한 결과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하나 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기 시작하였다.
8. 세 번째 화, 즉 일곱째 나팔을 불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가로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하나님 앞에 자기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이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노릇 하시도다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계 11:14~18).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셋째 화가 시작되 기 전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나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과 그리스도께서 세세토록 왕 노릇하실 것을 찬송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셋째 화가 이 세상 역사의 끝임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 앞 보좌에 앉은 이십사 장로들의 찬양이 시작된다.
그들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최고의 존경을 드린다. 하나님은“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하나님,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는 분”이시다. 늘 함께 나왔던“장차 오실 이”라는 구절이 여기에는 나오지 않는 것을 보아 일곱째 나팔은 분명히 마지막 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은 또한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의 때와 마지막 심판의 때에 있을 일 을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은 다음과 같다.
먼저 이방들이 분노할 것이다. 복음을 거절하며 살아온 그들은 그들에게 내리는 심판과 재앙이 성도들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그들을 핍박하며 죽이려 할 것이다. 전세계적인 분노와 핍박이 성도들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 때 드디어 주의 분노가 이 땅에 내릴 것이다. 오래 참으셨던 은혜의 시기는 끝날 것이다. 이 땅에 내릴 주의 분노는 일곱 재앙 가운데 잘 나타나 있다(계15~16장). 그 때는 죽은 자들도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심판의 때를 가 리키는 말씀이다. 재림하신 후 천 년의 세월이 지난 다음 그리스도와 성도들은 다시 이 땅에 내려온다(계 21장). 그 때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 다부활하여 마지막 심판을 받을 것이다(계 20:7~15).
그 때에 그의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실 것이다. 이제 아름답게 재창조된 이 땅과 새 예루살렘 성이 그들의 거처가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무궁한 기쁨과 영생이 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이 때는 또한“땅을 망 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 이다. 악인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저항을 시도하지만 마침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그들을 소멸하게 된다. 마침내 모든 죄악의 역사는 완전히 끝난다. 우주에는 다시 사랑과 기쁨만이 가득 차게 된다.
9. 하늘 성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가?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계 11:19).
모든 구원의 역사가 마치는 이 때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언약궤가 보이고 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들어 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심지어 자칭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십계명을 등한히 여겼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넷째 계명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 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거룩한 안식일을 일요일로 바꾸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하나의 계명을 어기면 모두 범한 것과 같다는 것(약 2:10)을 그들은 애써 외면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그 모든 불순종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은혜의 시기는 끝나고 이 세상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순종하지 않은 이 세상에 임할 엄숙한 재앙과 심판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감사하는 것은 성전이나 계명이나 심지어는 심판까지도 그 근본 정신은 사랑이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명상할 문제
오늘 우리의 태도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한다. 하나님이 계신 것이 분명한 것처럼, 이 죄악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도 확실하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영감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은 아무리 박해를 당하고 거절을 당해도 언제나 승리한다. 그것은 역사가 증거한다.
그러나 그 성경 말씀을 거절하는 세력이나 개인은 마침내 구원의 길에서 떠나게 된다. 그 운명의 날, 우리가 어느 편에 서 있을 것인지 오늘 결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우리의 생명은 언제 끝날지 모르며 세상의 마지막도 “생각지 않은 때”(마 24:44)에 청천벽력처럼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공부하신 내용에 대한 문제를 풀어 보시겠습니까?
1260년 동안 성도를 핍박할 것이다
두 선지자
3. 무저갱에서 올라와 두 증인을 죽인 세력은 무엇인가?
공산주의의 세력
4. 두 증인의 시체를 사흘 반 동안 목도 했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성경이 삼 년 동안 금지되었다는 말이다
5. 두 증인을 죽이려 했던 곳과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지진처럼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