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성 바벨론이여(요한계시록 17, 18, 19장)



성경에 등장하는 3개의 바벨론
- 요한계시록의 바벨론

성경에서 바벨론이 주연급으로 등장하는 곳 : 창세기, 다니엘, 요한계시록


창세기에서의 바벨탑 사건은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자신들의 방법대로, 바벨론의 가르침대로 구원을 받고자 하였다.

다니엘서에서는 느부갓네살의 금신상은 바벨론의 영원한 지배와 느부갓네살의 교만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받은 계시를 바꾸어 사람들에게 우상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이런 내용을 살펴볼 때 성경에서 "바벨론"이라는 것은 한 나라이기도 하고, 한 도성이기도 하였으나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교만, 거짓, 오류"가 섞인 것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위에서 말한 "바벨론"의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마지막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게 "이 바벨론에서 나올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그럼 요한계시록에서 말하고 있는 "바벨론" 그것은 어떤 거짓이 섞여있는 것일까요?
또한 그것은 무엇일까요?

이것을 알아야 우린, 성경 말씀의 경고를 받아들여 "바벨론"에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바벨론"은 참으로 많이 등장하지만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바벨론의 결말과 정체에 대해 잘 기록되어 있어 요한계시록 17장의 성경 말씀으로 바벨론의 정체와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
요한계시록 17:1~4

요한계시록 17장에 등장하는 '일곱 대접'은 '일곱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바벨론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곱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사는 그 바벨론에서 나와 그 재앙을 이 음녀와 함께 받지 말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또 이 음녀의 모습을 보면 "자주빛과 붉은빛 옷을 입고 각종 금과 보석 진주"로 옷을 입고 있으며 손에는 금잔을 가졌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금잔 안에는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차 있다고 적혀있습니다.
성경에는 음녀가 들고 있는 그 금잔 안에는 음행의 포도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음행의 포도주로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함께 음행하게 만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음행의 포도주로 취하게 하여 더불어 음행하였다고 기록된 대로 이 큰 음녀는 그의 기만적인(잘못된) 가르침으로 세상 나라와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제대로 분별하거나 판단하지 못하게 만들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 큰 음녀와 그의 기만적인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요한계시록 17:5)

​여자의 이마에는 "큰 바벨론"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므로 음녀는 곧 바벨론이라고 설명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보면 여자는 '하나님의 백성, 교회'를 상징하는 단어로 사용하였습니다.

순결한 처녀를 하나님의 참된 백성, 순수한 진리를 가지고 있는 교회라고 상징하였던 것처럼 음행하는 여자는 그 반대로 타락한 교회, 거짓 복음을 가지고 있는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참고 / 성경 말씀
에스겔 23:2~21 절 - 하나님의 백성, 북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를 두 여인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호세아 2장 2절에서는 이스라엘을 '나의 아내'라고 표현한 구절

또, 호세아 3:1절에서 이스라엘을 '여인'이라고 표현한 구절을 참고하시면

성경 말씀에서 "여인"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또는 교회, 진리를 가진 교회를 상징하는 단어로 쓰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음행의 포도주로 표현된 이 음녀의 가르침!

창세기와 다니엘에서의 바벨론의 특징을 기억하신다면,

바벨탑과 느부갓네살의 금신상 모두 "진리와 거짓을 섞어"사람들을 가르쳤다는

공통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럼 이 음녀(거짓 교회)가 가지고 있는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1807년도에 영국에서 태어나 개혁 장로교회 목사가 되어 크게 부흥을 일으킨 알렉산더 히슬롭(Alexander Hislop) 목사가 쓴 두 바벨론(Two Babylon)이라는 책은 현재 로마 교회인 천주교회가 옛날 바벨론 제국의 이교 신앙을 전수하여 내려온

제2의 바벨론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모든 종교의 시작은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근세기에 있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집단 가운데 하나인 카톨릭의 역사는 바로 이 바벨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입니다.

카톨릭은 순수한 기독교라고 말할 수 없으며, 그들 가운데 있는 여러 교리와 모든 의식과 형태들은 바벨론에서 유래된 것임을 증명합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 경배 사상은 이미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 어머니와 아기사상에서 유래된 것이며,

각종 명절과 절기들(크리스마스, 부활절), 각종 교리와 계율, 의식과 의례들도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닌 바벨론으로부터 파생된 각국의 우상숭배 사상으로부터 들여왔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만의 독특한 성직 계급에 있어서도 이방 사제제도들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카톨릭은 단순한 종교집단이 아닌 바벨론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 전 세계의 모든 종교를 모아놓은 집단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가르쳐지고 있는 바벨론의 가르침

(우리를 영적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

그럼, 바벨론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이 가르침은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니므롯 시대 때부터 있던 가르침들입니다.

세미라미스의 거짓말-

니므롯에게는 세미라미스라는 아내가 있었는데 그녀는 니므롯보다 더욱 악한 여자였습니다.

남편 니므롯이 죽고 나서 세미라미스는 니므롯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그녀는 자기 남편이 죽은 다음에 남편의 영혼이 태양 속으로 들어가서 태양신이 되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영혼불멸 사상의 시작)

그때부터 태양신을 섬기는 바벨론의 바알신의 종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 니므롯이 죽은 상태에서 세미라미스가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나라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바뀔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세미라미스는 당황하지 않았고 오히려 당당하게 태어난 사내아이는 니므롯이 자신의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 환생한 존재라고 사람들을 속입니다.

니므롯을 신으로 받들었던 백성은 니므롯의 환생이라는 말에 속아 넘어가서 세미라미스의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세미라미스의 몸에서 태어난 아이는 담무스라고 부르는데 담무스는 니므롯이 환생한 존재이기 때문에 태어나면서 신으로 불렸습니다. 담무스가 환생한 니므롯이기 때문에 세미라미스는 자기 아들인 담무스와 결혼했습니다.

그리하여 아들 신과 어머니 신이 등장하게 됩니다. 어머니 신과 아들 신에 대한 이야기는 온 세상으로 퍼져나갔고 수많은 사람을 현혹시켜 왔습니다.

부활절의 시작 - 담무스를 애곡하는 일..

그런데 담무스가 사냥을 나갔다가 멧돼지에게 죽게 됩니다. 세미라미스는 슬퍼한 나머지 전설을 만들었는데 아들 담무스의 영이 지하세계로 들어갔는데 담무스를 위해 애도하며 슬피 울면 매년 봄에 다시 부활해서 살아난다고 가르쳤습니다.

담무스가 부활하여 세미라미스를 만나면 농작물과 초장을 푸르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거짓말은 국가적 의식이 되었습니다. 매년 춘분이 지나고, 첫 보름달이 뜬 이후에 오는 첫 일요일을 담무스 신의 부활절날로 지켰습니다.

이것이 기독교 안에 몰래 스며들어오더니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로 변했습니다.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Easter는 예수님의 부활과 전혀 상관없는 단어입니다.

담무스의 어머니이면서 그의 아내가 된 세미라미스는 월신으로 알려졌고 '하늘의 여왕'(렘 7:18; 44:17-25)이라 불렸으며, 여러 고대 국가에서 에오스트레(Eostre), 오스테라(Ostera), 아스다롯(삿 2:13), 아스타르테, 다이아나(아데미, 행 19:24), 시벨레, 비너스, 마리아, 이쉬타르(Ishtar)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런 여신의 이름들 중 Eostre, Oster, Ishtar 등이 부활절을 가리키는 영어단어 Easter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이런 바벨론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카톨릭 교회!

거짓과 오류인 이교의 교리를 혼합하여 성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교리를 요한계시록은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라고 말합니다.

기원후 300년경에 로마는 정치적인 통합 수단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이교도들과 그리스도교들의 화합을 꾀하고 정치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이교의 교리들을 그리스도교의 교리들로 도입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일요일 예배, 영원지옥설, 영혼불멸설,부활절, 크리스마스 등등

잘못된 가르침과 문화들이 기독교의 가르침이 되었습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복음의 진리가

잘못된 이교의 가르침으로 인해

인간의 행함으로 얻어야 하는 힘든 교리로 대체되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제물이나 제사를 통하여 달랠 수 있는

무섭고 두려운 이교 신의 이미지로 대체되었습니다.

또한 사람이 중보자 마리아를 통하지 않으면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두려운 신으로 잘못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가르침들은 아직도 개신교 안에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요한계시록 17장의 천사의 말씀처럼 영적으로"음행"하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에 나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8: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우리는 이제 잘못된, 섞인, 음행하게 하는 포도주를 버리고 순수하고 진리인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그 큰 음녀가 받을 재앙을 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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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바벨론이란 무엇인가?

 

 

 

 성경 요한 계시록에는 이 지구의 마지막 시대가 가까움을 알려주는 큰 징조의 하나인 “바벨론”행보에 대한 예언이 나와 있다.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구의 마지막 역사에서 바벨론이 취할 행보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그리스도인들과 바벨론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또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시대인가? 과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지구 역사를 마치시는 하나님의 사업에서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가? 그리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남은 백성이 되는 길은 무엇인가? 이번 호 신앙기사를 함께 연구하여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 생애의 빛 편집실 -

 

 성경에는 이 세상 역사 마지막 시점에 나타날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과 그 백성들이 행할 사업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다. 그 예언은 요한 계시록 18장 1절~5절에 있는데, 그 예언을 보면, 마지막에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이 할 사명은 바벨론의 정체와 그 음모를 밝혀 내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나오라고 불러 모으는 일인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바벨론이란 무엇이며, 그 음모는 무엇인가? 함께 연구하여 보자.


 요한계시록 18:1-5

1)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1. 다른 천사는 누구인가?

 이 성경 구절에는“다른 천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다른 천사”라는 표현을 보면 그 전 장들(chapters)에서 기별을 전하고 경고하는 천사들이 계속 나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희랍어로 “천사(angel)”는 “angelon”으로서 “기별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천사는 진짜 하늘의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있는 사람들한테 복음을 전하고, 진리를 전하고, 경고하며 외치는, 기별을 가진 사람들의 상징이다. 요한 계시록은 상징의 책이다. 그러므로 이 천사들은 기별자들, 곧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고 진리와 성경말씀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성령께서 쓰시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상징한다.

 

2.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리고 이 천사는 큰 권세를 가졌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말의 뜻, “큰 권세를 가졌”다는 뜻은, 이 천사가 아주 놀라운 일을 성취한다는 의미인데, 천사가 내려와서 하는 일의 엄청난 힘(power)을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천사)이 하는 일은 아주 흥미있는 일이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남은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불러 모으는 일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분의 말씀(진리)과 진리를 따라 살고자 원하는 사람은 그 권세에 다 굴복하고 순종해서 따르게 된다는 뜻으로 “큰 권세를 가졌”다고 표현되었다.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1.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무너졌다는 말은 바벨론에 대한 하늘의 심판이 임하여 멸망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큰 성 바벨론”이란 말은 영적인 것으로 상징된 이야기이다. 이것은 영적인 바벨론이라는 말이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국가 큰 성 바벨론은 이미 옛날에 무너졌기 때문이다. 바벨론은 구약에 등장하는 고대의 국가의 이름이다. 특별히 다니엘서에는 이스라엘 청년이었던 다니엘이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활약하는 이야기와 바벨론 나라에 대하여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2. 영적인 바벨론

 A. 성경에는 바벨이란 말이 처음 쓰여진 곳: 성경 창세기 10장과 11장에는 처음으로 “바벨”과 “바벨탑”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은 “니므롯”이란 장수였다. 노아 홍수 후 사람들은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멸하시지 않으리라는 무지개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과 주권에 도전하는 뜻으로 니므롯의 명령을 따라 바벨탑을 쌓았다. 인간은 하나님께만 속해 있는 지도권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바벨론”이란 단어는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한다는 뜻을 가진 말과 근원적으로 동의어이다.

 

 B. 또한 히브리 어에서“바벨”이란 단어는“혼잡”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600년 전에 존재하던 바벨론이라는 도시는 배교와 혼잡 같은 많은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 “세계적인 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였고, 여러국가를 통일하고 다스리던 바벨론에는 여러가지 종교가 혼합된 형태의 거짓 종교들이 성행했다. 그 옛날부터 “바벨론”은 모든 거짓종교의 어미가 되었으며, 그들의 종교는 그들이 행하는 어떤“행위”에 따라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만들어 놓았고(그리하여 이방신의 분노를 달래려고 제사를 드림), 거룩하지 못한 것과 혼잡과 권력의 집중이 다스리는 세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바벨론”은 혼돈과 혼잡으로 연상할 수 있다.

 

 C. 또한 여기서 나오는 바벨론이 영적인 의미로 쓰여진 것이 확실한 증거는: 예수님께서 오시기 바로 직전에 일어날 사건을 묘사한 계시록 18장에“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계시록 19장에는 재림의 광경이 나옴) 그것은 옛날 고대 바벨론 국가가 아니고 영적인 바벨론이라는 것이 확실하다.

 

 D. 그러면 이 바벨론은 누구,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옛날에 바벨론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침공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간 것을 성경을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예루살렘을 침공해 들어갔을 때, 그는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소에 있는 거룩한 기명들, 곧 은 금 기명들과 촛대 등을 다 가지고 바벨론으로 돌아와, 그 거룩한 기명들을 그들의 태양의 신전인 마르둑 신전에 가져다가 놓았다. 그리고 유대인 가운데서 귀중한 사람들과 다니엘과 그 세 친구 같은 사람들을 바벨론의 포로로 잡아 갔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시대 때에 이 바벨론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교회라고 불리어는지는데,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 곧 하나님의 교회(백성)가 바벨론에 잡혀가 이방 신을 섬기는 잘못된 오류에 매여있는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교회가 진리가 아닌, 오류를 가지고 있는 가짜 신의 신전, 국가에 교회가 잡혀 가있다는 뜻이며, 그런 곳에 끌려가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에 쓰는 기구들이 다 거기에 가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도 또한 거기에 있다. 즉, 오류와 진리가 뒤섞여서 있는 타락한 마지막 시대 교회의 참상을 가리켜서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이다.

 

3)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앞서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친 이유는 바벨론이 귀신과 악령의 처소가 되었기 때문이다. 영적으로 이 뜻은 무엇인가? 요즈음 교회의 현실을 보면, 교인들이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기적과 이적과 치유와 방언의 은사 등이 넘쳐 난다. 하지만, 진정한 성령의 역사 - 죄를 깨닫게 하고, 회개하게 하고, 거듭나게 하고,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으로 변화시키고,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곧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기 위하여 준비하도록 하는) - 는 교회 안에서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대신 생애의 아무런 변화 없이 그냥 구원받았다고 말하며, 방언이나 기적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나 성품이나 생애는 마귀를 닮은 교인들이 교회에 많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지만, 만일 잘못된 진리와 복음, 그리고 잘못된 믿음으로 믿으면 그속에 마귀가 틈타기 때문에 사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영의 역사가 교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이를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것은 깨끗하고 순결하게 하는 영이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성령은 우리를 성결케 한다”고 말한다. 곧, 영어로는 “The spirit of holiness and purity”, 순결함과 거룩게 하시는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안에 예수를 믿고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매일 싸우고, 속이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과시하고, 권력다툼이나 한다면 그런 곳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이겠는가?

 

 성령은 우리를 거룩하고 순결하고 깨끗하게 만든다. 또한 성품을 변화시키고, 세상과 분리되게 만든다. 이것이 성령이며, 이런 것이 성령의 거룩한 역사이다. 이런 거룩한 역사가 없는 교회에는 무슨 영이 있을까? 성경은 그것을 가리켜 더러운 영이 모였다고 표현하였으며, 그런것이 바로 오늘날의 타락한 교회이다(타락한 교회에 대하여는 제 2부에 더 자세히 언급할 것임). 또한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라는 표현은 무엇일까? 가증한 새가 무엇인가? 성경에 보면 가증한 새가 있는데, 그것은 매, 독수리와 까마귀 같은 것들로서, 죽은 시체를 뜯어 먹는 새들이다.

 

 만일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싸움을 하고 파가 갈라지고 개인의 이득을 위해 남을 모함하고 난리를 피우면, 그것이 바로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된다. 진리 때문에 싸우는 것은 당연하다. 진리는 오류와 싸워야한다. 옛날에 예수님도 진리를 위해 싸우셨다. 그러나 그것 말고 사람들끼리 험담하고, 욕하고, 자랑하고, 인간적인 소욕 때문에 싸우는 것은 가증한 새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영적으로 타락한 교회를 상징하고 있는 이야기이다.

 

4)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이것은 잘못된 타락한 교회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 때문에 세상이 취하고, 만국이 취한 것을 말한다. (제 3부에서 취하게 하는 포도주에서 음행의 포도주에 대하여 자세히 다룰 것임)



2부: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의 정체와 음녀는 무엇인가?

 

 

 바벨론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계시록 17장에 나온다. 여기서 바벨론은 이마에“큰 바벨론”이라는 이름이 기록된“음녀”로 표상되어 나오는데, 과연 음녀로 표상된 바벨론의 정체는 무엇인지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한다.


 1). 바벨론과 음녀는 누구인가?

1. 음녀의 모습

 요한계시록 17:1~4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먼저, 1절에서 일곱 대접은 일곱 재앙을 말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세상에는 재앙이 내릴 것이다. 누구 한데 일곱 재앙이 올 것인가? 그것은 바로 바벨론에 속한 사람들에게 일곱 재앙들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천사가 바벨론에서 나와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외치는 것이다. 계시록 17장 1절 하단에 큰 음녀가 나온다. 그리고 이 음녀가 하는 일에 대하여도 나온다. 과연 이것이 영적으로 무슨 뜻인가?

 

 성경의 표현을 보면, 이 음녀의 모습은 참 화려하다. 이 음녀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 금잔 속에는 가증한 물건과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 들어 있다. 그리고 음녀는 이것으로 사람들을 마시게 해서 취하게 만든다. 음행의 포도주다. 예수께서 가나의 혼인 잔치에 가셨을 때 처음으로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은 물동이에 가득 들은 물을 포도즙으로 만드셨다. 여기서 물이 포도즙이 된 것을 알 수 있는데, 포도즙이 상하면 포도주가 된다. 포도즙은 우리가 마시면 시원하고 생명력을 주지만, 포도주는 우리를 취하게 하고, 앞을 분별하지 못하고, 넘어지게 한다. 교회에서 생명의 포도즙이신 예수님을 주어야 할 텐데, 상한 포도즙을 주어 사람을 비틀거리게 하고,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거짓 오류가 섞인)를 주고 있다. 잘못된 가르침을 주는 타락한 교회를 일컬어서 성경은 바벨론 이라 한다.

 

2. 음녀는 누구인가?

 음녀의 정체를 더 알아보기 위하여 5절과 6절을 읽어보자.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위의 성경절을 보면, 음녀의 이마에는 이름이 쓰여져 있는데, 이 음녀의 이름은 바로“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으로 보아 이 음녀와 바벨론은 같은 것임이 분명하다. “음녀”란 여자를 가리키는데, 음녀란 음부, 곧 품행이 방정하지 않은, 정조가 없이 타락한 여자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말이다. 계시록에는 교회를 여자로 표현한고 있다. 순결한 처녀는 하나님의 정결한 교회를 말하는 것이고 타락한 교회는 음녀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음녀는 누구란 말인가?

 

 위의 성경구절들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 음녀를 설명하는 많은 특징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그녀를 알아낼 수 있다. 이 음녀는 큰 바벨론, 즉 모든 혼잡 - 많은 거짓 오류 - 의 집합체인 타락한 교회일 뿐 아니라, 음녀의 어미이므로, 타락한 교회들의 우두머리인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그녀에게 딸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위의 성경절(5절)을 통해 우리는 바벨론의 시초가 된 어미가 있고 바벨론을 따라가는 딸들이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다. 주체세력이 있고 따라가는 세력이 있는 것이다.

 

 또 6절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 한 여자, 음녀가 있는데,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해있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 의미 그대로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예수의 증인들의 피를 흘리고 핍박한, 타락한 교회라는 것이다. 이 사실로 보아 음녀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주의 말씀을 똑바로 믿고, 성경진리대로 믿는 사람들을 많이 잡아다가 죽이고, 순교자를 수천만 명을 낸 교회가 있었다. 이 여자 때문에 교회가 타락하게 되었고, 이를 따르는 교회들은 타락한 교회, 곧 바벨론 교회가 되었다.

 

 예수님의 증인들과 성도들의 피를 흘리고, 그 피에 취한 교회세력은 6000년 인류역사상 가운데 하나밖에 없는데, 그 세력은 바로 로마 가톨릭 교회와 법왕권, 곧 교황권이다. 이렇게 밖에는 이 성경구절을 도무지 해석할 길이 없다. 만일 당신이 이 말을 처음 듣는다면 좀 이상하겠지만, 성경이 말하는 음녀의 특징들은 항상 천주교회에 들어맞는다. 물론 천주교에는 많은 신실하고 좋은 교인들이 있고 그들 모두를 음녀로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음녀나 바벨론이란 지칭은 그 조직과 그 조직이 세운 여러가지의 교리를 말하는 것이지 그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고를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경고의 배경은 인간의 소리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하는 바이며, 이 조직에서 가르치는 가르침은 성경의 명료한 가르침들과 맞지않음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하는 “음녀”의 징조와 신분이 이 권력과 꼭 들어맞는 것 또한 그 이유가 된다.

 

 음녀가 교황권이라는 것에 대한 더 자세한 증명을 해보자면, 5절 하단을 보면 된다.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5). 천주교는 자신 스스로를 어머니 교회라고 부른다. 추기경(지금은 교황이 된) 렛싱거는 전 세계 감독들에게 보내는 교서에 쓰기를; “한가지 분명하게 해야할 사실은 단 하나의 거룩한 교회인 천주교는 다른 사도 교회들과 자매가 아니다. 천주교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다.” (데일리 텔레그래프, 9. 4. 2000). 이런 천주교회의 선포는 성경 계시록 17:5에 나오는 예언을 확인시키도록 공헌한다.

 

 2). 취하게 하는 포도주란 무엇인가?

계시록 17: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A 성경은“음녀”와 “큰 성 바벨론”이 자신의 성경적이지 않은 교리로 온 세상을 취하게 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교의 교리와 혼합되고, 거짓 오류가 뒤섞인,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과 맞지 않는 잘못된 교리를 성경은“취하게 하는 포도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기원 후 300년경에 로마는 정치적인 통합 수단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만들어 이교도와 그리스도인들의 화합을 꾀하고 정치 세력을 확장하였다. 그 이유로 인해 많은 이교의 교리들이 그리스도교에 도입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을 구원하는 단순하고 아름다운 복음의 진리가 인간의 행함으로 구원을 얻는 힘든 교리로 대체되었고, 자비로우신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마치 제물이나 제사를 통하여나 달랠 수 있는 두렵고 무서운 이교의 신의 이미지로 대체되었다. 인간 중보자인 마리아를 통하지 않고서는 가까이 나아갈 수 없는 두렵기만 한 신으로... 천주교는 성경에 없는 많은 교리들을 그리스도 교회 안에 소개했는데, 그 교리들은 아직도 개신교 안에, 그리고 기독교인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 그리스도인들의 구원 문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B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계시록 17:2. 성경에서 “음행”을 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에스겔 23장27~30절을 보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데, “네가 이같이 당할 것은 네가 음란히 이방을 좇고 그 우상들로 더럽혔음이로다”(겔 23:30)는 구절을 보아 영적으로 음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를 놓고서 거짓 진리를 받아 들이는 것이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곧 다른 사람들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해 취하게 만든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옛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이 타락하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에 빠진 것을 왕들과 백성들이 음행을 했다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것은 진리를 주지 않고 진리를 가르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다른 성경절들을 연구해 보자.

 

 * 렘 13: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하고 가증한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하나님의 교회가 작은 산 위에서 음행을 했다. 옛날의 유대 지방에 가면 작은 산이 있는데, 거기에서 산당을 세워 놓고 우상 숭배를 했었다.


 * 미가 1:7 “그 새긴 우상을 다 파쇄하고 그 음행의 값을 다 불사르며 그 목상을 다 훼파하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잠깐 여기서 요즈음 현대 기독교인들의 우상은 무엇인가 살펴보자. 요즈음 기독교인들은 마음으로 우상을 섬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 자녀, 재물, 명예, 쾌락, 자존심 등등 - 은 무엇이든지, 또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애정을 빼앗아 가는 모든 것은 무엇이든지 영적인 현대의 우상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이 참 진리인지 깨닫지 못하고 제 갈 길을 모른 채 비틀거리며 방황하고 있다. 진리와 복음이 분명하지 않다. 왜냐하면 음행의 포도주를 마셨기 때문이다.

 

 C 옛날 바벨론 왕이 귀인과 찬치를 베풀었었다. 그 때, 벨사살 왕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취하여 온, 하나님 앞에 쓰이던 거룩한 금은 기명을 가지고 와서 술을 부어서 마시게 했다. 금의 기명은 성전에서 쓰는 것인데 그 안에 포도주, 사람을 취하게 하는 것이 들어 있었다. 이 말은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그러나 가르침은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포도주(거짓 복음, 오류가 섞인 교리)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런 교회의 형편을 가리켜서 바벨론이라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마귀가 믿는 사람을 다 순교시켰는데, 그것이 잘 되질 않아 요즘에는 사람들을 잘못된 교리를 믿게 하여 멸망 받게 만들고 있다.

 

 * 렘 51:7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옛날에 바벨론에서 가르치는 태양숭배와 잘못된 가르침으로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세계가 다 그것을 받아들여 전부다 태양신을 섬기는 이방신전을 짓게 되었다. 다 취하게 되었다. 이것처럼 마지막 시대에도 잘못된 오류를 믿는 것은 음행을 한다고 성경은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 이사야 28:7,8,13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7절)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8절)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13절)

 

 그러므로 포도주에 취하지 않으려면, 위의 13절 말씀처럼, 성경 한 곳만 살피지 말고 전체 성경을 살펴보고, 여기서 얻고 저기서 얻고, 성경 전체에서 문맥을 보고 거기서 진리를 발견하라 라는 말이다.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4부: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요한 계시록 17장을 연구하다 보면 우리가 사는 시대가 성경 예언상 어느 시점인지를 알게 된다. 우리는 과연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 계시록 17장과 계시록 13장을 연결하여 함께 연구해 보자.

 

1) 붉은 빛 짐승을 탄 여자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계 17:1~3).

계시록 17장 3절을 보면, 여자, 곧 음녀가 무엇을 타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음녀가 과연 무엇을 타고 있는가? 이 여자는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다. 그런데 그 여자가 타고 있는 짐승의 몸에는 참람된 이름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뿔이 있다.

 

 1. 여자(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 상징의 의미

 왜 여자가 짐승을 타고 있는가? 만일 독자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성경예언을 공부한 독자라면, 이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있으므로 “짐승을 타고 있다”라는 구절의 의미를 이해할 것이다. 짐승은 국가, 왕, 또는 세력을 상징한다. 또한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상징한다.

 

짐승 = 국가, 왕, 세력 음녀 = 타락한 교회

 

 그래서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다라는 의미는, 타락한 종교(교회)가 왕이나 국가의 세력과 연합했다라는 뜻이다. 즉, 타락한 교회가 국가의 권력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기에서는 타락한 교회가 국가의 힘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 것으로 묘사 되어 있기 때문이다.

 

 2. 여자(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는 상징의 의미

 계시록 17장 1절에 천사가 사도 요한에게 “많은 물 위에 앉은 음녀의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는 구절이 나온다. 성경은 영적 바벨론을 상징할 때 많은 물위에 앉아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계시록 17:15절에 그 해석이 잘 나와 있다. “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물 = 백성, 무리, 열국, 방언들

 

 그러므로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상징은, 이 음녀, 곧, 타락한 교회인 큰 바벨론이 많은 백성들과 사람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교회라는 뜻이다. 숫자가 많고 인기가 있는 교회이다. 그것이 바벨론, 곧 음녀이다.

 

 3. 짐승의 몸에 있는 참람된 이름들은 무엇인가?

 계시록 17: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참람된”이란 뜻은 무슨 뜻인가?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되다고 하자, 바리새인들이 주님을 “참람되다”라고 하며 죽이려고 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이나 예수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일이다. 또한 자신이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권세가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람된 일이 된다. 만일, 이 지상의 어떤 교회나 인간이 죄인들의 죄를 용서 할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란된 것이다. 즉 자기가 하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참란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흥미있는 사실은 로마 천주교회의 교황의 공식 명칭이 Vicarius Filii Dei 인데, 그 명칭의 뜻인즉 “하나님의 아들의 대리자”라는 뜻으로서 이 지구상 교회에 군림하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자라는 뜻이다. 교황은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2)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정체는?

 계시록 17장 7절에 나오는 짐승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것은 우리가 과연 어느 시점에 살고 있는지 가리켜주는 중요한 예언이다.

 

 계시록 17장 7,8절 “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계시록 17:9~13“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이 짐승은 일곱 머리를 가졌는데, 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나중에 무저갱으로부터 또 다시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라고 되어 있으며, 이 일곱 머리 가운데 하나인데, 죽었다가 또 다시 부활해서 올라왔다가 또 죽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이는 곧 교황권이다. 생명책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다 교황권에 절할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 때에 있을 짐승의 표의 환란에 대한 표현이다.


 계시록 17:10,11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여기서 다섯 왕이란,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 로마, 그리고 교황 로마를 말하는 것인데, 성령이 계시 가운데 요한을 데리고 광야로 가서, 음녀의 정체을 밝혀 주던 시점이 바로 이 다섯왕들이 망하고 없어진 그 시점부터인 것이다. 바로 그러한 시점의 상태로 데려가서 마지막 시대에 전개될 바벨론의 세력의 흥망 성쇄에 대하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면 더 자세한 힌트를 얻게 되는데, 요한이 광야로 데려감을 받았을 때에(중세기 핍박의 시기를 의미함)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취해 있다고 하였음으로 중세기의 교황권의 핍박의 시기가 끝나는 시점으로 데려 감을 당했다는 뜻이 된다.


 계 17:5-7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그러므로 교황권의 중세기 핍박의 기간이 끝나가는 무렵에 서서 요한은 장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섯은 망하였고, 다시 말해서, 바벨론과 페르샤, 헬라, 로마, 교황로마 등의 다섯 세력은 이미 망하였고 하나는(여섯째 왕) 지금있고 또 하나는(일곱째 왕) 아직 나라를 얻지 못했는데, 얻게 되면 그 세력을 잠간동안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다섯 왕이 지나간 이후에 현재 여섯째 왕의 시기를 바라 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여섯번째 왕은 누구일까? 로마 교황권이 1260년 동안 핍박을 하다가 그가 죽었을 당시에 이 지구상에 1798년도를 전후로 해서 그쯤에 올라왔던 나라가 있어야 되는데 그게 누구냐 하는 것이다, 그 세력이 누구냐 하는 것이다.

 

 요한 계시록 13 장에는 바다에서 올라오는 복합적인 짐승으로 교황권이 등장하는데 이 교황권이 죽게되는 상처를 받게 될 때에(1798년도에 불란서의 세력에 의하여 교황권이 몰락하는 시점) 다른 한 세력이 바다가 아닌 땅으로부터 올라 온다고 예언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교황권이 바로 다섯번째의 왕이기 때문에 그 이후에 올라오는 이 새끼 양 같은 세력이야 말로 그 다음을 잇는 여섯번째 왕의 세력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계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성경에서 새끼 양은 누구를 상징하는가? 예수님을 상징한다. 예수님을 상징하는 기독교의 가르침을 가지고 올라온 세력이다. 즉 유럽의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도망온 청교도들에 의하여 세워진 나라이다. 그러므로 이 세력은 바로 미국일 수 밖에 없다. 땅에서 올라 왔다는 표현은,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상징된 바다가 아닌 인적이 드문 황야 같은 땅을 발견하여 세워진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힌트인 것이다.

왜 두 뿔이 있다고 표현했을까? 그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나의 뿔인 독재주의가 아니고 종교와 국가가 분리 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 즉 종교와 국가가 각각 분리되어 있는 국가를 상징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미국이 기독교의 정신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지마는, 결국에는 천주교 국가처럼 되어 버리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양처럼 올라왔지만 용처럼 말하게 된다고 예언되어 있기 때문이다. 곧 마지막 때에 성도들을 죽이려고 따라온 사단의 도구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먼저 나온 짐승인 교황권과 협력하여 마지막 성도들을 핍박하는 법을 만들게 되는 세력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 대한 성경의 예언이다.

 

 계시록 13:12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교황권은 1798년도에 죽게되는 상처를 받았지만 예언을 따라 곧 낫게 되었다. 바로 이 교황권의 세력에게 온 세상이 경배하도록 촉구하며 짐승의 우상을 세워주는 국가가 미국이다. 그러므로 6째 왕은 미국이다.

 

 그렇다면 일곱째 왕은 누구인가? 7째 왕은 세계연합을 말한다. 이 일곱째 왕과 열뿔 세력에 대한 표현이 똑같은 것을 알 수가 있다.

 

 계 17:10,12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일곱째 왕이 이르면 잠깐동안 그 세력을 유지 할 것이요, 열뿔도 일시 동안만 세력을 받는다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일곱째 왕의 세력과 열뿔의 세력은 같은 세력임을 알려 주는 언어들이다. 미국의 세력이 결국은 세계 연합인 유엔의 힘을 북돋아서 온 세계가, 로마 나라가 열뿔로 갈라졌었던 것처럼 (그러나 로마 나라 당시의 분열은 아닌 것이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다고 말하기 때문에 미래에 이르러 오는 세력을 말하는 것이다) 각 나라로 갈라져 있던 국가들이 “유엔”이라는 이름 하에 다시 연합하여 한 세력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일곱번째 왕이요, 이 연합 세력은 교황, 즉 다시 부활하여 올라오는 여덟번째 왕인 교황권에게 과거 중세기 때와 같은 세력과 권세를 주게 되는 것이다.

 

 이 여덟번째 왕은 지나간 일곱 왕들 가운데 하나였었으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 올라오는 세력이라고 예언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이 세력은 마지막 시대에 그 힘이 다시 부활된 교황권을 말하는 것이다. 일곱째 왕인 세계연합은 교황권을 지지하고 있다.

 

 계 17: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그러나 교황권은 나중에 또 망하게 될 것이다.

 

 계 17:16,17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일곱째 왕들 즉 세계연합이 결국에가서는 지금까지 교황권에게 속임을 당해 왔다는 사실과 오류들에 농락당하여 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분노하여 교황권의 기만을 벗기고 태워 죽여 버리게 될 것이라고 성경 예언을 설명하고 있다.

 

 계시록 17장 끝절인 18절은“또 내가 본바 여자는 땅에 임금들을 다스리는 성(도시)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참으로 바티칸은 한 작은 성(도시)으로서 세계의 왕들과 나라들을 다스려 온 세력인 것을 알 수 가 있다. 그러므로 로마 교황이야 말로 계시록 17장이 예언하여 주고 있는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바벨론 - 음녀의 어미”인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디쯤에 와 있는가?

 

 계 17: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 동안 받으리라”

 

 지금 우리는, 미국이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였고 세계 연합이 교황과 연합하여 잠깐 동안 그들의 권세를 누리기 시작하려고 하는 즈음에 와 있다. 지금 우리는 여섯째 왕인 미국의 세력을 지나 7째 왕인 세계 연합의 세력이 도래 하려고 하는 시기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하나님의 남은 교회인,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여 죽이려 하는 사단의 최후의 분노의 시대가 이르러 오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짐승의 표의 환란인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성도들과 싸우는 것 보다는 그들의 주님이신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과 싸우는 것이 될 것이다.

 

 계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다니엘 12:1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지금은 세상의 인기있는 종교를 따라 갈 때가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대로 살아야 할 시기이다. 지금은 정말 죄와 세속에서 벗어나 정결케 함을 입어야 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심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택함을 받고 진실하게 끝까지 주님을 따라 사는 자들을 보호하실 것이다. 지금 이 시기는,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넓은 길을 따라 쉽게 살아 가려고 방종할 때가 아니요, 참된 진리대로, 주께서 말씀하신 좁은 길대로 따라 살아야 할 때이다.



바벨론이란 무엇인가?

 

5부:남은 백성이 되는 길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자비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께서는, 계시록 17장에 바벨론에 다가올 심판에 대해서 경고하신 후, 그분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그 심판과 재앙을 받지 않고 살아남는 길을 제시하시며 호소하고 계시는 것을 위의 성경구절에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초청은 다름이 아니고, “거기(바벨론)”서 나오라는 초청이다. 그(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재앙들을 받지 말라는 사랑의 호소이다.

 

1) 구약시대의 바벨론

 예레미야 51:5~9
5절“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 
6절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예레미야 51장에 나와있는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은 그대로 빌려서 계시록 17장과 18장에 “거기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말고...”라고 하고 있다. 계시록에 나와있는 예언은 구약에 나와 있는 말을 전부 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인 배경을 이해해야 계시록에 있는 영적인 상징을 이해하게 된다. 옛날에 실제적으로 있었던 일이 영적으로 반복되는 것이다.


7절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위의 성경절을 읽어보면, 구약에도 바벨론은 포도주로 열방을 취하게 한다고 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영적으로도 이 바벨론 때문에 세상이 취한다. 바벨론 때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이교의 잘못된 가르침과 오류가 세상에 퍼졌다.

 

 렘 51:10-13
 “여호와께서 우리 의를 드러내셨으니 오라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일을 선포하자. 화살을 갈며 방패를 굳게 잡으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격발하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곧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이라.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기를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군을 세우며 복병을 베풀어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거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경영하시고 행하심이로다.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네 탐람의 한정, 네 결국이 이르렀도다.”

 

 위의 성경절에서 이 바벨론에 대해 설명하기를, “많은 물가에 거하여 재물이 많은 자여” 라고 했는데, 계시록 17장도 “많은 물위에 앉아 있는 여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물위에 앉아 있는 여인이 무엇을 뜻하고 있는가?

 

 옛날에 바벨론 성이 아름다웠다. 그 밑에 유브라데스 강이 흐르고 있는데, 예언으로 볼 때 마지막 시대의 여섯째 재앙을 보면 “유브라데스 강이 마르매 동방으로 부터는 왕들이 오는 길을 예비하더라” 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그대로 옛날 역사를 가져다 상징적으로, 영적으로 전세계적으로 풀어서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바벨론의 벨사살 왕이 1000명의 귀족들과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일곱 금 촛대와 하나님의 성전에서 쓰는 귀한 그릇들을 가져다가 포도주를 부어 마시며 연회를 베풀고 취했을 때, 한 손이 나타나서 벽에 글을 썼다. 그 글에 의미는 “달아보니 부족하다”, “내가 네 나라를 페르시아에게 주리라”는 뜻이었다. 그날 밤에 고레스 왕이 유브라데스 강을 마르게 하여 그 바벨론 성을 함락하였다. 이것이 성경에 “유브라데스 강이 마른다”라는 표현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고레스 왕, 곧 동방에서 온 이 왕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그 안에 포로 잡혀 있는 유대인들을 해방시켜서 성전을 지으라라고 예루살렘으로 돌려 보냈다. 이것은 오늘 날의 바벨론 같은 교회들의 무리 가운데 사로 잡혀있는 주의 백성들을 주님께서 오셔서 해방 시킬 것을 상징한다.

 

2)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천사

 계시록 18장 1절에는 그의 영광으로 온 땅을 환하게 만드는 “천사’가 등장한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이 천사는 힘센 음성으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

 

 1부에서 공부했듯이 “천사”는 하늘에 날아다니는 진짜 천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참된 진리와 기별을 전하는 사람들, 곧 “기별자”들이다. 이 천사는 바벨론의 비밀을 알고 있으며, 또 바벨론의 음모 - 모든 사람들을 “음행의 포도주”, 곧 “바벨론의 취하는 포도주”인 거짓복음으로 취하게 만들어 구원을 얻지 못하도록 하려는 음모 - 를 알아 내어, 그 비밀을 알리고 세상 사람들을 멸망에서 구원해내려고 외치는 사람들이다.

 

 이 천사들은 마지막 때, 곧 이 세상과 바벨론에 하나님의 심판이 내리기 바로 전, 아직도 참된 복음을 모르고 바벨론에 묶여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죽음을 무릅쓰고 용감하게 외치는 사람들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하나님을 위해 외칠 증인들을 지금 찾고 계신 것이다. 마지막 늦은 비 성령을 충만히 받고, 이 세상을 향하여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그 가운데서 나오라고 외칠, 하나님의 증인인 천사들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 남은 백성이 되는 조건

1.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즈음 기독교 안에는 거짓 복음이 침투하여 “십자가에서 구원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는, “칭의”만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값싼 복음이 활개를 치고 있다. 매일 우리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감화하시어 우리를 죄 짓지 않도록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 또한 자아의 완전한 굴복과 거듭남, 그리고 새 생명으로 매일 부활하여 사는 “성화”의 생활을 강조하지 않는 반쪽의 복음은 위험한 것이며, 많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올바른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이끈다. 이 거짓 복음의 원조는 “바벨론”인 것을 우리는 앞에서 배워 알고 있다.

 

 성경이 요구하는 하나님의 남은 백성이 되는 조건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계 14:12)이다. 그런데,계명을 지키려면 예수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 계명은 우리의 힘으로는 지킬 수 없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 세상에 사실 때 가지셨던 믿음, 곧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온전히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가 되어 사신 믿음을 가져야 지킬 수 있다.

 

 계명을 지킨다는 뜻은, 자아가 완전히 죽고 온전히 거듭난 상태를 매일 유지하는 성화의 생애를 사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매일 성령으로 예수님의 사랑이 부어지는 경험을 하는 것이며, 또 마음 속에 하나님의 법이 쓰여지는 새언약의 경험, 곧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애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완전한 종교 개혁을 통해 회복된 “완전한 복음”을 알 필요가 있고, 그 완전한 복음을 알므로 그 온전한 진리로 성화되는 경험을 반드시 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증인이 될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그리고 매 순간 우리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의 감화를 통해, 자신의 타락된 본성에 따르지 않고 죄를 이기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그리고 자기를 구원하시려고 생명을 바치신 예수님을 너무도 사랑하므로 죄를 이기는 것이 생애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사람들, 마음이 완전히 거듭난 사람들, 곧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2. 바벨론의 관습과 사상에서 나온 사람들이어야 한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고 외칠 사람들은 자신이 바벨론에서 구속된 경험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 구속이란 흑암의 학교, 이 세상에서 배운 세속적인 정신과 관습과 생활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난 하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한다.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먼저 마음과 정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정신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그것은 곧 사도 바울의 경험이 우리의 매일의 경험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자신을 예수그리스도께 완전히 바친 사람들은 하루의 매 순간들을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인데, 곧 그분의 마음으로 느끼고, 그분의 생각으로 생각하고, 그분의 눈으로 보고, 그분의 성품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사랑스럽고 거룩한 성품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성품의 성숙과 장성에는 단계가 있지만 말이다. 예수님과 함께 24시간 연결되어 살아가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분의 뜻과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 입는것, 사는 환경, 생활 방식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모든 가족이 예수님을 중심으로 하는 영적인 유대관계를 가지며, 특히 자녀들을 하나님 안에서 거듭나는 아이들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영적으로 심각한 시대에 살고 있다. 성경이 말하는 마지막 시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시대에 살고 있다. 요즈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점점 하나님의 성품으로 꼴지워져 가고, 흑암의 권세를 따르는 사람들은 마음과 정신이 점점 더 악하게 꼴지워져 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하고 있는가? 시대의 징조를 바라보며 영적으로 깨어나, 세상을 버리고 마지막 하나님의 증인으로 쓰임을 받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바벨론에 남아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내릴 심판을 피하도록, 그리하여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외칠 수 있는 하나님의 용감한 군사가 되기 위하여 준비되어 가고 있는가?

 

 머지 않아 온 세상을 환하게 할 큰 성령의 운동(계 18:1)이 있을 것인데, 모든 죄를 회개하고 마음의 성전을 깨끗하게 한 사람들은 성령의 충만하심을 받고 나아가 바벨론의 정체와 음모를 밝히며, 바벨론에 있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에게 그 죄에 참예하지 말고 거기서 나오라고 외칠 것이다. 그것을 큰 소리 외침, 늦은비 성령 운동이라고 부르는데, 그 일은 짐승의 표의 환란과 핍박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무장된 하나님의 증인들은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온 세상과 우주에 증거할 것이다.

 

 지금은 성령을 받기 위하여 회개하고 모든 바벨론의 습관들을 버리고 개혁할 때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남은 백성이 되도록 하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그 사랑이 우리로 바벨론을 향하여 크게 외칠 하나님의 용감한 군사로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 모두 그 외침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증인들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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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 종말론, 기독론, 교회론


요한계시록 - 종말론, 기독론, 교회론


종말론(終末論) eschatology

종말론(終末論, ἔσχατος, eschatology)
인류의 역사에서 최종적으로 일어날 사건이나 우주의 마지막에 대한 신학적 이론.


마태복음 24:14-15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신약성서의 마태복음서 24장에서는 예수가 세상의 마지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을 통해 상세하게 나타나 있으며,
조직신학의 한 부분으로 개인의 죽음과 인류의 최후의 심판에 대한 내용을 다룬다.
부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때에 다시 재림하는 것이 기독교에서 종말론의 중심이다.

구약에서 내세사상(來世思想)은 신약처럼 충분하게 계시되지 않았지만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기원전 3세기 이후의 세레우코스가(家) 통치시대에 이르러 강압적인 헬레니즘화 정책으로 신전조차 그리스 사람들의 약탈 대상이 되는 등 역경에 처하게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페르시아와 그리스로부터 온 사상의 영향으로 부활·천사·사탄 등의 새로운 사상이 도입되면서 욥기 전도서 등에 보이는 회의사상(懷疑思想)과 페시미즘(비관주의, pessimism) 시편에 나오는 여러 탄식의 노래, 처세술을 가르친 잠언 등의 지혜문학(智慧文學)과 함께 종말사상(終末思想)이 등장하였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불우한 처지에 놓이게 된 유태교도의 현실에 외래사상의 영향을 받아 내세사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이는 현세에 대한 신의 최후의 심판이 내리고 유태의 구세주 메시아가 나타나 하느님이 지배하는 세계가 오리라는 사상이다.

이러한 메시아관(觀)은 실제에 있어 메시아 운동으로 나타나서 반(反) 그리스 전쟁을 일으키게 하였다.
기원전 168년에 마카비가(家)의 반 그리스 전쟁이 일어나 기원전 141년에 독립을 이루고 하스몬 왕조가 성립되었으나 히르카누스(재위 BC 135 ~ BC 104)를 제외하고는 모두 약체를 면치 못하고 기원전 63년 로마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 후에도 메시아 운동은 종종 일어났으나 기원후 66년에 있었던 반란은 로마에 의하여 진압되고 이때에 예루살렘의 신전이 파괴되었으며 유태인들은 세계 각지로 분산되었다.

종말론이 예언한 연도

2032년 종말론

  • 화성 충돌설 : 세차 운동의 의해 화성이 가까워 지면서 달과 충돌한다는 설

2060년경 종말론

  • 아이작 뉴턴의 예언을 해석해보면 종말의 해는 2060년

2100년 종말론

  • 해수면이 올라와서 지구가 물에 잠겨서 종말한다는 내용
역사적 전천년주의(Historical Pre Millenialism)
세대주의적 전천년주의(Dispensational Millenialism)
무천년주의(Amillenialism)
후천년주의(Post Millenialism)

천년왕국(Millenial Kingdom)을 어떻게 이해 하는가?

문자적으로 천년 왕국을 믿는 것 : 역사적 전 천년주의, 세대주의적 전 천년주의자들이 신봉한다.
- 문자적 해석
- 지상 재림 후 천년이 실재한다.

- 들림의 시기에 따라
환난 전 들림(휴거) 7년 환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공중 재림에 의한 것(Pre tribulation)
환난 중반 들림(휴거) 전 3년 반 끝나고(Mid tribulation)
환난 후 들림(휴거) 7년 환난 후(Post  tribulation)

상징적, 영적, 은유적으로 천년 왕국을 믿는 것 : 긴 시대 및 긴 기간 / 무천년주의, 후천년주의자들이 신봉한다.
- 영적, 은유적
- 초림 후 이미 천년 왕국이 시작되었다. 이것이 계속적으로 긴 세월이 된다.

- 7년 환난이 없다고 주장한다.
- 세상 끝날 때를 공중 재림과 지상 재림을 동시에 성취된다.
- 성도들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비그리스도인들은 불못으로 던져진다(요한복음 5:29, 요한계시록  20:11-12)

요한복음 5:29


요한계시록  20:11-12
  1.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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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계시(啓示)
아포칼룹시스(ἀποκάλυψις)
602.
ἀποκάλυψις, εως, ἡ

1. 드러냄,  2. 누가 2:32,  3. 갈라디아서 1:12
발음 /  아포칼룹시스(apŏkalüp- sis)
어원 / 601에서 유래
관련 성경 / 빛, 비췸(눅 2:32), 계시(고전 14:6, 고후 12:7, 갈 1:12, 엡 3:3), 나타냄(롬 16:25, 벧전 4:13)
신약 성경 / 18회 사용

* 601. ἀποκαλύπτω

1. 드러내다,  2. 폭로하다,  3. ἀ. τινί τι: ~을 ~에게 계시하다
발음 / 아포칼룹토( apŏkalüptō)
어원 / 미래 ἀποκαλύψω,  제1부정과거 ἀ- πεκάλυψα,  제1부정과거 수동태 ἀπε- καλύφθην,
미래수동태 ἀποκαλυφ- θήσομαι, 575와 2572에서 유래
  • 관련 성경 / 드러나다(마 10:26, 눅 12:2), 나타내다(마 11:25, 고전 3:13, 갈 1:16), 나타나다(눅 17:30, 롬 1:17, 살후 2:6),
    드러내다(눅 2:35), 계시를 받다(눅 10:22), 알게 하다(마 16:17), 보이다 (고전 2:10), 계시되다(갈 3:23)
  • 신약 성경 /  26회 사용
  • 언제 봉하셨을까?

    다니엘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대략 2,500년 동안 다니엘서를 봉해버렸기 때문에 이것을 열어 볼 길이 없었다.

    기원전 600년 경에 다니엘에게 계시하시기를 이 예언을 봉함하라고 하셨다.

    종교개혁의 주체자들이었던 칼빈, 루터가 요한계시록의 주석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봉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 봉함한 것을 언제 열어야 하는가?
    마지막 때 까지 - 예수님의 재림의 때

    사도 요한을 통하여(AD 95년) 계시하신 것이다.

    언제 예정하셨는가?
    창세 전에

    그리스도의 신비 - 영세 전부터(로마서 16:25, 디도서 1:2)

    로마서 16:25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전부터 감취었다가 .

    디도서 1:2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세상에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에베소서 1:4, 베드로전서 1:20)

    에베소서 1:4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베드로전서 1: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기독론

    요한계시록 1:8


    요한계시록 2:1

    요한계시록 2:8



    요한계시록 21:9


    요한계시록 21:22-23

    요한계시록 21:6


    요한계시록 22:13


    요한계시록 22:20




    교회론

    요한계시록 22:16





    요한계시록 강해 자료(시작일 02-07-2024 / 수


    요한계시록 강해 #. 1

    요한계시록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문제 제기)
    이단 교회에서는 계시록에 대한 관심이 너무 열정적이어서 성경의 범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립니다.
    그 좋은 예가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 21일 자정에 예수님께 공중 재림을 한다고 모두 모여 기다리고 있었지요.
    그런데 아무런 반응이 없어진 후에 다시 어떻게 주장합니까?
    영적인 것으로 영적으로 주님은 공중 재림 하셨다고 합니다.
    아직도 그 여파가 또다시 계시록을 사용하여 교회와 신앙을 흔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편지(서신서)라고 합니다.
    밧모섬에서 환상으로 계시를 받은 계시록을 편지로 일곱 교회에 보낼 때 당시 교회와 성도들이 알 수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다만 로마 정부의 가혹한 핍박과 탄압이 극에 달한 때에 구약을 인용하여 초대교회 성도들만 알 수 있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계시록이 어렵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전에 먼저 요한일서, 요한이서, 요한삼서를 기록했습니다.
    요한일서와 이서 그리고 삼서의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다!
    하나님은 생명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의 진리를 생명을 빛을 사랑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

          샬롬(shâlôwm) שָׁלוֹם
          - 평화, 일치, 조화, 친교, 안전함, 온전함, 안전한, 온전한

        마라나타(Maranatha) מרנא תא
         Μαραναθα. Our Lord has come,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린도전서 16:22.  요한계시록 22:20


    카타콤(catacomb) : 지하묘지, 동굴 




    *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다니엘 7:13을 반영한 것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나타낸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하나님의 심판(11, 12절)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구절로 인자 곧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하나님 나라의 임재가 예시된다.

    인자 같은 이(케바르 에나쉬. כְּבַר אֱנָשׁ)(1247. 바르,  606 에나쉬
    - '벤 아담'()과 동일어인 이 말이 구약에서 인간이 아닌 신적 존재에 쓰여진 용례는 이곳밖에는 없다.
    곧 본 구절의 '인자'는 '구름을 타고'(계 1:7)란 말과 결합해 메시야적 호칭으로 쓰여졌는 바, 메시야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본 구절을 자신에 대한 예언으로 인정하신 바 있다(마 24:30; 26:64; 막 13:26).
    이에 따라 14절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으로 임하셨고 그의 재림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나라에서 인자는 전우주적 통치적(권세와 영광과 나라)을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위탁은 그의 흠없음(사 53:9)과 속죄 사역(사 53:5, 6), 그리고 부활을 통한 인류의 심판자의 자격을 입증하셨던(행 17:31; 롬 2:16) 사실에 의거한 것이다.

    one like the son of
    1247. 바르(bar) בַּר 스트롱번호 1247

    1. 아들. 2. 손자
    발음 [ bar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4회 사용

    뜻풀이부

    1. 명사, 남성 아들, 잠 31:2, 시 2:12
    2. 명사, 남성 손자, 스 5:1.


    man
    606. 에나쉬( ’ĕnâsh) אֱנָשׁ 스트롱번호 606
    발음 [ ’ĕnâsh ]
    어원 / 아람어
    구약 성경 / 5회 사용

    참고 정보 / 문법설명
    582와 동일, 강조형 אָנָשָׁא, 단 2:38, אֱנָשָׁא, 단 5:21, אֱנוֹשָׁא, 단 4:13, 복수, בְּנֵי אֱנָשָׁא, 단 4:14, 사람, 사람들, 단 4:29, 30.

    이것은 예수께서 친히 확증하신 바며(마 24:30; 26:64) 사도 바울에 의해 입증된 재림의 모습이다(살전 4:17).
    여기서 재림과 연결되어 나타나는 구름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의 위엄을 나타내는 초자연적 현상인 듯하다(Morris, Lenski, Johnson).

    *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 스가랴 12:10의 예언을 반영한 것이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공개성을 나타낸다.
    현재는 오직 그리스도인만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실로 인식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리스도의 재림 때는 그리스도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눈으로 확연히 보게 될 것이다(Ladd).

    한편 '그를 찌른 자들'은 역사적으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Moffatt, Plummer, Johnson, Ladd).

    그리스도는 이런한 자들에게도 자신의 재림을 분명하게 드러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박해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에게까지 자신의 재림을 드러낸다는 사실은 그리스도 자신이 우주적 주권을 소유한 분으로서 온 세상을 공의롭게 심판하실 심판주이심을 시사한다(Mounce, Lenski).

    *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 본문은 심판의 보편성을 나타낸다.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는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이루어질 회개치 못한 다들의 비참한 상태를 나타낸다.
    본문은 종말에 이르기까지 회개치 않은 불신자들이 당할 두려움을 극명하게 시사한다(Morris, Mounce, Ironside).

    * 그러하리라 아멘

    - '그러하리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나이'(ναί )는 동의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아멘'(אָמֵן )과 같다.
    요한은 동의어인 '그러하리라'와 '아멘'을 이중적으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종말적인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한다(Greijdanus, Morris, Mounce).

    אָמֵן 스트롱번호 543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뜻풀이부

    1. 형용사 확고한, 성실한[비유적으로 사용될 경우].
    2. 부사 참으로, 진실로.
    3. 부사 아멘, 렘 28:6, 시 41:14(13).


    * 그러하리라(나이)  ναί 스트롱번호 3483

    1. 예.   2. 옳습니다. 3. 맞습니다
    발음 [ nai ]

    * 아멘  ἀμήν 스트롱번호 281

    1. ‘굳건한’. 2. 고전 14:16. 3. 마 5:18
    발음 [ amēn ]
    어원 / 히브리어 543에서 유래

    * 히브리어 543. אָמֵן

    1. 확고한.   2. 참으로
    발음 [ ’âmên ]
    어원 / 539에서 유래
    구약 성경 / 30회 사용

    재림(再臨) / 두 재, 임할 림


     1. 다시 옴
     2. 기독교(基督敎)에서 때가 이르면 다시 인간(人間)을 심판(審判)하러 예수(Jesus)가 이 세상(世上)에 나타난다고 하는 말.

    * 인터넷 한글 성경에서 "재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단 한 구절도 나타나지 않았다.
      반면에 "강림"이란 단어를 검색한 결과 39구절로 나타났다.
      (구약에서는 23회, 신약에서는 16회)

    강림(降臨) / 내릴 강, 임할 림

     1. 신(神)이 하늘에서 속세(俗世)로 내려옴.

    "강림"이란 말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의미이고 "재림"은 두번째 다시 오신다는 뜻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모든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이 두번째 다시 오시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신학적인 표현이나 또 목사님들의 설교에 강림이란 말을 잘 사용하지 않고 재림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강림이란 말은 예수님의 초림과 구분하기 어려운 면이 있어서입니다.
    즉 예수님의 초림도 강림이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림이라 하면 다른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일로 이해하게 되며 또 그렇게 받아드립니다.

    히브리서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성경에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란 말로 표현하였으며 이 같은 주님의 강림은 주님이 이 세상에 두번째 나타나시는 일, 즉 재림이 되시기 때문에 강림이란 이 낱말은 주님의 두번째 나타나시는 사건을 의미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일을 "강림"이라고 표현하나 "재림"이라고 표현하나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 개역 성경에서 "강림"이라고 번역된 말은 모두 헬라어 "파루시아"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보통 "주의 강림"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파루시아"라는 말은 "출현, 임재, 나타남, 현존, 도래"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주의 강림이란 말은 "주님께서 나타나심(오심)"을 의미합니다.

    παρουσία, ας, ἡ 스트롱번호 3952

    1. 현존.  2. 오심.  3. 고후 7:6, 7
    발음 [ parŏusia ]
    어원  / 3918의 현재분사에서 유래

    뜻풀이부

    1. 현존, 임재, 고후 10:10.
    2. 오심, 강림, 내림.
      a. [인간에 대해서] 고후 7:6, 7, 빌 1:26.
      b. [특수한 전문 술어로서 그리스도가 세상 마지막에 임하시는 일을 가리킴] 재림, 마 24:3, 살전 4:15, 약 5:7.
      c. [적그리스도의 출현] 살후 2:9.


    * 그러나 때로 다른 성경(표준새번역-고전 15:23, 벧후 1:16)성경에서 이 말은 "재림"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의 탄생을 주님의 첫 번째 강림으로 보고, 마지막에 오시는 것을 주님의 두 번째 강림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주의 강림과, 주의 재림은 그 의미가 아무런 차이가 없으며, 같은 뜻을 가진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새번역) 그러나 각각 제 차례대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 다음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후서 1: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새번역) 우리가 여러분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권능재림을 알려 드린 것은, 교묘하게 꾸민 신화를 따라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의 위엄을 눈으로 본 사람들입니다.

    공중 강림과 지상 재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예수님의 재림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를 바울의 종말론이라 부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면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입니다.

    ​교회시대 - 공중강림(휴거) - 7년 환난 - 지상재림

    예수님의 재림을 구분하여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를 볼 때 공중재림은 공중강림이라 불러야 맞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를 읽어 보면 주의 강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강림과 재림은 구분되어 불러야 할 것입니다.
    대게 재림이라 부르지만 데살로니가전서에는 재림이라는 단어 보다 강림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데살로니가전서1:10)"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데살로니가전서2:19)"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3:13)"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4:16)"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5:23)"

    데살로니가전서는 5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1장부터 5장까지 예수님의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입니다.

    강림과 재림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강림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것입니다.

    재림은 예수께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이란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강림하시어 믿는 자들을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을 성도들에게는 휴거가 되은 것입니다.

    휴거는 구원받는 사람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뜻합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지상으로 임하시는 것입니다.

    ​공중강림과 지상재림의 차이가 있습니다.

    ​공중강림은 예수께서 강림하실 때 믿는 자들에게 보이는 것입니다.

    믿는 자들 외에는 볼 수 없습니다.

    ​지상재림은 예수께서 이스라엘 감람산으로 임하실 때

    ​예수께서 공개적으로 각인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마태복음 24:30)"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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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부, 성령, 성자를 우리는 삼위일체로 고백을 합니다.
    사도요한만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나 사도 바울도 이런 내용으로 인사말을 합니다.

    베드로전서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성부와 성령과 성자의 일하심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복음 때문에 인하여 흩어진 나그네들에게는 은혜와 평강이 소식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여기서는 성자와 성부와 성령의 차례대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사말을 다른 말로는 송영이라고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찬송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서신에서 이런 삼위일체의 내용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교회에는 은혜와 평강의 소식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일하심이 어떠한지를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자들은 삼위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고 믿게 됩니다.
    이 말씀을 믿게 된 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기쁨의 소식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수님을 믿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핍박 중에 이런 인사는 은혜와 평강이 주어질 뿐 아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속히 오시리라는 말씀이 설렘이 됩니다.

    설렘이라고 하니 어떤 정리전문가가 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집안의 오래된 물건들을 정리할 때에 설렘이 없는 물건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에서 해방된 사람이라면 오늘 읽은 말씀으로도 충분히 감사가 되고 설렘이 되며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면서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겁니다.

    믿음으로 살아간다는 말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자들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함을 믿는 사람들입니다(고후 4:18).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위로부터 다시 태어났기에 위에 있는 것을 찾게 됩니다(골 3:1~5).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4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알파와 오메가와 전능한 자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알파와 오메가란 처음과 끝이라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6과 22:13절에서도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과 끝이란 이 역사 속에서만 있는 말입니다.
    영원에는 시작과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영원에서 영원의 세계가 영원하신 하나님의 세계입니다(시 90:2).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라는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창 1:1, 유 1:25).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장차 오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장차 오실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입니까? 성령 하나님입니까? 성자 하나님입니까?
    이렇게 질문을 드리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의 인사말이 삼위 하나님의 사역을 다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타락한 이후의 인간이라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두 사람만 모여도 의견의 일치가 안 됩니다.
    일치가 되는 경우는 공동의 적이 나타났을 때에 잠시 일치가 됩니다.
    그런데 공동의 적이 한 편을 들어버리면 한 때 같은 편이었던 자가 또 원수가 됩니다.
    이런 우리가 삼위일체의 뜻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역사로 말씀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종교와 철학에서 신을 말합니다.
    그런 신을 크게 대별해 보면 내재론 적인 신과 초월적인 신이 있습니다.
    만유에 내재하는 신이라면 범신론이 됩니다.
    초월적이라고만 하면 세상과 관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만이 관계하시고 소통하시는 하나님으로서 내재하시고 초월하십니다.

    “성부이신 하나님은 성자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이 세상과 이 세상의 ‘안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 속에 ‘내주’하시며, 동시에 성령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이 세상의 ‘밖을 향하여’ 관계하시어 이 세상을 ‘초월’해 계신다(송영의 삼위일체론 69P).”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은 따로 일하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함께 일하십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4절과 8절에서 하나님이 오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시 오시는 그 하나님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데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시 오시는 그 분은 사람들에게 찔리신 그 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4절과 8절의 표현은 다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시는 하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의 손에 찔리신 하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그 예수님은 지금 영광 중에 계십니다.

    우선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과 각인의 눈이 그를 찌른다는 말씀을 먼저 찾아보겠습니다. 계시록의 거의 모든 내용이 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성취되었다는 말씀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시내산에 오심도 강림이며 이 땅에 아기로 오심도 강림입니다. 십자가로 하나님의 약속을 다 이루시고 보내신다는 성령님의 오심도 강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이 역사를 마감하시면서 다시 오신다는 말씀도 강림이지만 구별하기 위하여 재림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에도 오셨고 지금도 오시고 앞으로도 오시는 하나님입니다.

    다니엘 7:13~14절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다니엘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중에 이 환상을 봅니다. 이 예언의 성취는 언제 이루어지는 겁니까? 예수님의 초림으로 이 땅에 이루어집니다. 인가 같은 이가 하나님께 인도되어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얻게 됩니다. 그 나라는 예수님의 초림으로 시작이 되고 재림으로 완성이 됩니다.

    누가복음 1:31~33절입니다.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천사가 마리아에게 알려준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세상의 힘과 권력으로 만들어내는 나라가 아니라 그 아들의 피로 세우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 아들의 피로 자기 백성을 해방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겁니다(계1:4~6).

    지난주에도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사도요한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도 핍박을 받고 이방인들에게도 핍박을 받습니다. 요한 자신도 지금 밧모섬에 유배 중에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내용이 요한 계시록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 만왕의 왕으로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고 계심을 보여주십니다. 십자가로 무엇을 승리하셨는지 밝히 보여주심으로 지금 환난과 핍박 중에 있는 성도들로 하여금 위로와 소망으로 믿음을 더욱 굳건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 다시 오신다는 소식이 이들에게는 기쁨의 소식입니다.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죄인인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 보고는 살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를 가리는 모습으로 구름가운데 임하시는 겁니다. 그러므로 이 구름이 하늘에 있는 구름과 같은 모습으로 보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를 나타내는 표현이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4:15~18절입니다. “15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가리더니 일곱째 날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시니라 17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18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모세가 사십 일 사십 야를 산에 있으니라”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시는데 그곳은 구름이 가리고 있습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과 같이 보였다고 합니다. 구름이 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견디지 못합니다(출19장).

    마태복음 17:1~8절입니다. “1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2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3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 4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6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7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8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받는 장면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는 장면과 겹쳐집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시내 산에서 들어서 전한 여호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누구를 증거 하기 위한 말씀입니까?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말씀입니다. 또한 선지자 엘리야도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합니다. 이때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리는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제자들이 두려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눈을 들어보니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출애굽기 19장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나타나실 때에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매우 크게 들리니 진중에 있는 모든 백성이 다 떨었다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경계를 정하라고 합니다. 경계를 뚫고 여호와에게로 와서 보려고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 시내산의 강림을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 손을 대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두려운 여호와 하나님의 강림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내십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종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한 아기로 강림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셨다고 하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십니다.

    사도행전 1:8~11절입니다.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여기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정명석이라는 이단의 교주를 추종하는 어떤 사람이 그가 구름을 타고 온자라고 합니다. 성추행으로 감옥살이 하고 작년인가 나온 사람인데 왜 그렇게 말하는가 하니 구름을 해석하기를 구름 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라는 말을 합니다. 히브리서 12:1절의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란 히브리서 11장에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단 교주 주변에 구름 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을 보고 그가 재림의 주라고 믿는 겁니다. 그래서 이단들의 집단 모임을 보면 교주를 중심으로 그들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중앙 집중화 합니다. 히틀러의 집회나 북한의 집회나 다를 바 없는 모습들이 이단들의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구름을 타고 올라가신 주님께서 다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우리가 보는 하늘의 구름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래서 구약과 신약을 찾아보니 빽빽한 구름으로 불과 연기로 표현하며 빛나는 구름으로 말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의 임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에 그 영광의 나타남 속에서 각인이 그를 볼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 1장의 말씀처럼 재림 하실 것이지만 그 전에 성령의 강림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함으로 성령의 보증을 받은 자들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을 전하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죽어갔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다시 봅니다.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은 다니엘서와 출애굽기와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 보았습니다. 그런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그 분을 각인이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들을 볼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펴봐야 합니다.

    스가랴 12:10절입니다.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1)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오늘 본문 7절과 스가랴 본문의 차이점을 보아야합니다. 스가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초림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고서 마음에 찔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찔리신 그 예수를 보고서 애통을 하는데 독자를 잃고 애통하듯이 애통한다고 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에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전합니다. 이 복음을 전하자 그들이 찔림을 받아 ‘어찌할꼬!’ 합니다. 그때 예수님을 믿으라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묵시적으로는 십자가에서 완성된 일입니다. 구약의 모든 믿는 자들은 십자가로 완성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죽은 자들 곧 옥에 있는 영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승리가 선포되었을 때에 그들은 애곡함이 마땅합니다(벧전3:19).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창으로 찌른 자는 로마 병사 한명입니다. 그런데 그 찌른 자들도 본다는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들이나 신약의 사도들이 증거 한 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찌른 자들이 됩니다. 대제사장도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을 듣고 신성모독이라고 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합니다(마26:64~68, 막14:62~65).

    사울이 예수님을 믿는 자를 잡으려고 가다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 시에 누가 애곡을 하겠습니까? 그를 찌른 자들이란 땅에 있는 모든 족속입니다.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란 하늘에 속한 자들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땅의 말만 듣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신 분의 말씀을 듣는 자는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만 듣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의 땅의 말이 들립니까? 하늘의 말이 들립니까?

    요한복음 3:31~36절입니다. “31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32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 33 그의 증언을 받는 자는 하나님이 참되시다는 것을 인쳤느니라 34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십자가 지신 그 아들의 말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아들의 말을 믿지 않는 자는 진노가 임하는데 이들이 바로 땅에 속한 자라는 말입니다.

    고린도전서 15:47~54절입니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 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ㄷ)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일어날 일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리면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그 주님께서 재림하셔 자기 백성을 하늘로 이끌어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입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2)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8 그러므로 이러한 말로 서로 위로하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곧 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령님만 오셨고 예수님은 재림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중에 죽는 자들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들이 부활을 얻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자들이 나옵니다.
    또는 부활이 지나갔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심지어 고린도교회에서는 부활이 없다는 자들도 나옵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마지막 나팔 소리와 함께 주 안에서 자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주께 붙은 자들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됩니다.
    휴거되어 항상 주와 함께 거하게 됩니다.
    그런데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휴거되어 7년 어린 양의 혼인 잔치를 하는 동안 지상에서는 대 환난이 있고 그곳에서 순교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 환난이 끝난 후에 공중에 휴거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서 천년왕국이 시작이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게 된 이유는 우리가 시간과 공간 안에 갇혀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 안에서 해석을 합니다.
    시간과 공간도 늘어났다가 줄어들었다가 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깁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질 피조물입니다.
    창조주가 자기 뜻을 다 이루시고 마감하실 때에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나팔이 불리고 주님의 재림의 순간은 시공간을 초월합니다.
    성경의 기록이 본 순서대로 기록되어 있다고 수평적인 차례대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시간을 빼 버리면 수직으로 세워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일곱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이 수평적 순서가 아니라 수직적으로 십자가에서 단번에 일어난 일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전하여지고 그 복음을 믿는 자들은 이미 묵시적으로 그리스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자들이 됩니다.
    이들이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순서상 먼저 나타나는 것이며 그 때에 땅에서 살아있는 예수 믿는 자들은 몇 사람 안 되지만 홀연히 변화되어 구름 속에 이끌려 갑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못한 자들 곧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이들이 그 찌른 자를 보고 애곡하는 겁니다.
    이때 애곡하는 자들은 믿지 않은 모든 자들이 애곡합니다.
    십자가에 죽은 그 예수를 거리끼고 어리석다고 믿지 않았는데 그 분이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심이 드러나기에 믿는 자들은 구름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가서 그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애곡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애통하며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는 이 말씀에 아멘으로 화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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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그럼 예수재림 두 번?
    이단들에 의해 오용되는 성경구절 / 데살로니가전서 4:16~17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 즉 재림은 모든 믿는 자들의 공통된 소망이다.
    주의 다시 오심을 사모하는 성경구절은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구절이 아마도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하)일 것이다.
    ‘마라나타’(μαράνα θά,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고전 16:22)란 용어도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는 의미로 잘 알려졌다.

    문제는 일부 이단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으로 분류해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 일어난다는 말이다.
    어떤 이단측에서는 ‘공중재림과 지상강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재림과 강림은 다르다고 주장한다.
    ‘재림 두 번’이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고자 헬라어까지 사용하여 자신들의 교리를 강조하지만 용어상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에 불과하다.

    ‘공중재림과 지상재림’을 구분하는 이들의 주장은 대체로 이렇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먼저 공중에 재림하여 7년을 머물게 된다고 한다.
    그 때의 공중의 장소를 대기권 시작점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예수님께서 공중재림할 때 예수님을 믿었던 이들이 그곳으로 끌어올려(흔히 ‘휴거’라고 말한다)가 예수님을 맞이한다고 한다.
    예수님과 함께 7년을 공중에서 머물게 되는데 그 때 지상에서는 소위 ‘7년 대환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인들은 지상에 남겨지게 된다.
    그들은 7년 대환란의 극심한 고통의 때를 참고 견디어야 한다.
    7년 후 예수님의 지상재림 때까지다.
    배도하면 끝장이다.

    지난 1992년 한국사회는 시한부종말설로 몸살을 앓았다.
    ‘92년 10월 28일 예수재림’설 때문이다.
    이 때 대부분의 시한부종말설의 기본 스토리(story)가 위와 같은 내용이다.
    당시 시한부종말론자들은 ‘미련하게 7년 대환란을 겪지 말고, 10월 28일 재림을 믿자’고 설득하기도 했다.

    과연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일까?
    소위 ‘이중재림’을 주장하는 이들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성경구절이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이다.
    그 구절이 이중재림을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개역개정).




    위 본문을 있는 그대로 보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믿음을 가지고 죽은 이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남아 있는 자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려짐을 당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이다.
    헬라어 원문에 충실하게 번역한 NASB 성경도 크게 다르지 않게 기록해 놓았다.
    의역에 좀 더 많이 기울어진 공동번역이나 그 중간적인 번역 원칙을 가지고 있는 NIV도 비슷하다. 참고해 보면 아래와 같다.

    “For the Lord Himself will descend from heaven with a shout,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shall rise first. Then we who are alive and remain sha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thus we shall always be with the Lord”(살전 4:16~17, NASB).

    “명령이 떨어지고,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를 믿다가 죽은 사람들이 먼저 살아날 것이고, 다음으로는 그 때에 살아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공중으로 들리어 올라 가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항상 주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살전 4:16~17, 공동번역).

    “For the Lord himself will come down from heaven, with a loud command, with the voice of the archangel and with the trumpet call of God, and the dead in Christ will rise first. After that, we who are still alive and are left will be caught up together with them in the clouds to meet the Lord in the air. And so we will be with the Lord forever”(살전 4:16~17, NIV).

    문제는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난다는 말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곳에서 7년 동안 머무른다는 의미가 전혀 없다. 만약 위 성경구절(특히 밑줄 친 부분)에 ‘공중 머무름’의 의미를 넣으려고 하는 순간에 보다 심각한 문제가 발생된다. 그 다음 문장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7 하).

    영문 표현을 보면 ‘always’나 ‘forever’가 들어있다. 계속해서 또는 영원히 그 공중에서 머물러 있겠다는 의미와 곧바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어 공중에서 ‘항상’, ‘언제나’, ‘영원히’ 머물러 계신다는 것은 다른 성경구절들의 내용과 상충된다.

    공중재림을 입증하려고 몇몇 성경구절을 더 제시하는 이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도행전 1:11과 요 14:3이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개역성경).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3).

    위 두 구절이 공중재림, 특히 공중 머무름을 입증하는 것이라면 다음과 같이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승천을 언급하고 있는 사도행전 1:11은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공중에서 7년 동안 머물다가 감을 본 것이라 해야 한다. 그래야 ‘본 그대로 오시시라’는 구절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또한 요한복음 14:3은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을 위해 마련할 처소가 공중에서 7년간 머무를 장소라고 해석되어져야 한다. 과연 위 두 구절을 그렇게 이해해도 되는가.

    살전 4:16~17은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지상재림, 즉 이중재림을 말해주는 구절로 사용될 수 없다. 이는 같은 성경인 살전 5:2의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이라는 내용과 어긋난다. 예수님의 재림이 ‘갑자기’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말이다. 골 3:4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는 예수님 재림 때 그의 자녀들이 ‘모두 함께’ 영광 안에서 나타나게 된다는 구절과 연결을 지을 수 있다.

    이필찬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는 이를 정리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 본문(살전 4:16-17)에서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한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지 공중으로 끌어올림을 받은 후 어느 일정 기간 동안 공중에 존재한다는 것을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이필찬,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리스도인의 삶 - <그 말씀> 2000년 8월호, 도서출판 두란노, p.87).



     

    다시 말해 예수님이 재림할 때 그의 자녀들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는 것은 맞지만, 그곳에 머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공중에서 영접한 후에 곧바로 이 땅으로 강림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것이 ‘도적과 같이 이른다’(살전 5:2)는 것과 ‘모두 함께 영접’(골 3:4)한다는 구절 등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다.

    F.F 부르스는 살전 4:16~17의 강조점을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4:17 하)에 두었다(F.F 부르스, 데살로니가전후서 - <WBC>, 솔로몬, 2000, 194).
    ‘공중’이라는 의미가 그 구절에서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한다.
    ‘함께 있음’을 축복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이라 강조했다.
    즉, 이중재림이라는 없는 의미를 집어넣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존 스토트도 ‘공중’을 어느 특정한 ‘지역’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존 스토트,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 - BST 시리즈, IVP, 2007, p. 140).

    예수님의 재림은 이중적인 게 아니다.
    한 번에 이루어지는 사건이다.
    살전 4:16-17 역시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계 1:7과 연결시켜 보면, 예수님의 재림 시에 모든 이들이 그 사건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뿐 아니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에서는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의 소망 중 소망의 표현이다.
    어느 것 하나도 이중재림을 의미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 한영 / 22장 404절 / 성경 1189장 31102절 / 구약 929장 23145절, 신약 260장 7957절

    성경 1,189장 31,102절 / 구약 929장 23,145절, 신약 260장 7,95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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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 22장, 404절

    요한계시록 개론

       1. 서론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 1장
       2. 일곱 교회 : 2∼3장
       3. 보좌에 앉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 4∼5장
       4. 일곱 인의 심판 : 6∼7장
       5. 일곱 나팔의 심판 : 8∼9장
       6. 열린 책과 두 증인 : 10∼11장
       7. 영적 전투 : 12∼14장
       8. 일곱 대접 심판 : 15∼16장
       9. 큰 성 바벨론의 멸망 : 17∼20장
     10.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완성과 결론 : 21∼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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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한계시록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The revelation of Jesus Christ, which God gave him to show his servants what must soon take place.
    He made it known by sending his angel to his servant John.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who testifies to everything he saw--that is, the word of God and the testimony of Jesus Christ.

    3. 이 예언의 말씀읽는 자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Blessed is the one who reads the words of this prophecy, and blessed are those who hear it and take to heart what is written in it, because the time is near.








    1. 계시록 4장: 하늘 문이 열리다. 천상의 보좌 광경과 스랍들과 24장로들을 소개하다.
    2. 계시록 5장: 어린 양 예수님께서 7인봉한 책을 가지신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인을 떼실 준비를 하다.
    3. 계시록 6장: 일곱 인을 떼심 실행
    4. 계시록 7장: 전 3년반에 특별한 활약을 할 14만 4천의 주의 종들에게 인을 치심
    5. 계시록 8장: 일곱 나팔이 실행되다. 그 중 첫째 나팔에서 넷째 나팔까지 불려짐
    6. 계시록 9장: 다섯 째, 여섯째 나팔이 불려짐( 세계 3차전쟁이 일어남)
    7. 계시록 10장: 예수님의 공중강림 예고(계10:1), 일곱 째 나팔 준비예고(계10:7)
    8. 계시록 11장: 전 3년반 동안의 성도들의 신앙자세 보여줌, 14만 4천의 주의 종들의 사역활동을 두 증인으로 나타냄(계11:1-10), 성도        들의 휴거(계11:11-14), 일곱째 나팔 불려짐(계11:15), 하늘 성전문이 열리고 성도들의 하늘보좌 앞으로 나갈 준비 끝
    9. 계시록 12장(삽경):후 3년반이 시작될 상황을 설명, 하늘에서 전쟁이 있겠고, 하늘 권세 잡았던 사탄과 그 졸개들이 지구로 내쫓김,  
        이  일로 후 3년반이 시작됨, 후 3년반 지상에 남김음 받은 자들을 위한 예비처 보여줌
    10.  계시록 13장(삽경): 후 3년반에 활약할 두 인물 등장, 첫째 짐승 적그리스도,   둘째 짐승 거짓 선지자
    11.  계시록 14장(삽경): 공중휴거해서 천상에 올라온 14만 4천로 대표되는 성도들에 대한 언급, 지상에 있는 자들에 대한 세 천사들의 경고, 첫째 천사는 땅에 남은 성도들에게 신앙지조 강조
              둘째 천사는 큰 성 바벨론으로 묘사되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
              셋째 천사는 지상에 남겨진 사람들에게 우상에게 경배하지말고 이마와 손에 표를 받지 말라고 경고
    12.  계시록 15장: 일곱대접 재앙 준비
    13.  계시록 16장: 일곱대접 재앙 실시. 첫째재앙에서 일곱째 까지
                     여섯째 대접재앙은 지상군의 아마겟돈전쟁 준비(계16:12-16),
                     계시록 19:11-16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천상 군대의 아마겟돈 전쟁 준비
                     일곱째 대접재앙은 아마겟돈 전쟁과 연결,  계19:17-21
    14.  계시록 17장(삽경): 후 3년 반의 음녀 즉 종교통합청의 멸절,    후 3년 반에 일어날 적그리스도의 뿌리와 정체와 활동
    15.  계시록 18장(삽경): 후 3년반의 기간에 주도할 정치 권력을 큰 성바벨론으로   묘사한 세력들에 대한 심판(계16:17-21의 일곱째 대접                            재앙과도 연결(계16:17-21)), 일곱째 대접 재앙의 결과는 아마겟돈 전쟁의 결과(계19:17-21)이기도 함
    16.  계시록 19장: 휴거성도들이 하나님 보좌 앞에서 모두 재회(계19:1-10)
                         어린 양의 혼인잔치(계19:7-8) 후 3년 반 동안 계속
                         성도들에 대한 상급(계19:8)
                         천상에서의 아마겟돈 전쟁준비(계19:11-16)
                         우주전쟁 아마겟돈 전쟁실시, 지구군대와 천상군대의
                         대졀(계19:17-21)
          아마겟돈 전쟁은 여섯째 대접재앙과 연결, 여섯째 대접재앙은 지상군의     
          아마겟돈전쟁 준비(계16:12-16)
    17.   계시록 20장: 사탄과 그 무리들이 잡혀 무저갱에 천년동안 갇힘(계20:1-3)
                          지상에 천년왕국 설립(계20:4-6)
                       천년왕국이 끝나고 사탄이 잠시 놓여나 세상을 다시 미혹 그 결과로 곡과 마곡전쟁이 일어남(계20:7-10) 사탄과                                          그 무리들이 불못에 갇힘
                       백보좌 심판: 이것은 불신자들의 심판부활과 심판을 받고 불못에 빠짐
    18.  계시록 21장: 하늘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지상으로 내려옴.
                         어린 양의 신부인 부활한 성도들
    19. 새 하늘과 새 땅인 영원 세계로 들어감(계21:1-8)     새 예루살렘의 모습 묘사(계21:9-27)
    20. 계시록 22장: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환경과 생활(계20:(계22:1-5)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이 온 우주를 통치함(계22:   
                                 5)  요한계시록의 결론부분(계22:6-21)
           파루시아! 내가 속히 오리라(계22:20)
           마라나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요한계시록 서론

    요한계시록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을 선언하기 위함입니다. 이 부분은 요한계시록 전체에 스며 있지만 특히 1장에 서론적으로 집약되어 있습니다. 요한 서신과 요한계시록의 차이를 강조하는 분들도 있지만 제가 보기에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은 너무나 닮아 있습니다. 장르상 서신인지 묵시적인지가 다를 뿐 너무 닮아 있습니다. 저는 요한 서신의 저자와 요한계시록의 저자를 동일시하는 보수적 관점을 지지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장은 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소개한다. 이 책의 목적이다. 요한을 통해 요한이 본 것을 증언하는 것임을 말한다. 요한은 자신을 소개한다.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고, 일곱 교회에 편지하도록 했다.

    요한계시록 2장

    2장에서는  에베소교회, 서머나교회, 버가모교회,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낸다.

    요한계시록 3장

    사데교회,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에 편지를 보낸다. 사데 교회는  행위가 없는 교회로 죽은 교회이다. 빌라델비아는 유일하게 책망을 받지 않은 교회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미지근한 교회이다.

    요한계시록 4장

    4장은 일곱교회의 편지가 끝나고 하늘에 열린 문에서 하늘로 올라오라는 소리를 듣는다. 하늘 보좌에서는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 주위에 앉아있고, 천사들이 찬양한다.

    요한계시록 5장

    하늘 보좌 환상이 이어진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안팎으로 글씨가 쓰여있고, 일곱인으로 인봉 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6장

    드디어 두루마기의 인을 떼기 시작한다. 첫 번째부터 여섯째 인을 뗀다.

    요한계시록 7장

    십사만 사천 명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흰 옷을 입고 있었고,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어 희게 했다.

    요한계시록 8장

    드디어 6장에서 여섯 번째 인을 떼고 나머지 한 개인 일곱 번째 인을 뗀다.(1절) 천사가 제단 곁에서 금향로를 받아 온다. 성도들의 기도와 함께 금 제단에 드려진다. 다시 일곱 개의 나팔 소리가 시작된다. 8장에는 네 번째 나팔까지 소개된다.

    요한계시록 9장

    9장에는 다섯번째 나팔과 여섯 번째 나팔을 분다. 다섯 번째 나팔을 불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진다. 별은 천사나 영적인 존재이다. 곧이어 별을 향해 '그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다'(1절)고 소개한다. 무저갱의 사자인 아바돈, 아볼루온이 등장한다. 여섯 번째 나팔은 금 제단에서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온다.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가 놓임을 받고 사람의 삼분의 일을 죽인다.

    요한계시록 10장

    여섯째 나팔 이후 일곱째 나팔로 이어지지 않고 힘센 다른 천사가 구름을 입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를 특징하는 무지개, 해 같은 얼굴, 불기둥 같은 발은 전형적인 인자의 모습이며 1장에 소개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다. 이후 하늘에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려할 때 천사가 가지고 있던 두루마기를 먹으라 말한다. 두루마기를 먹자 입에는 쓰나 배에는 쓰다.

    요한계시록 11장

    지팡이 같은 갈대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게 한다. 이 대 두 증인이 등장한다. 이들은 증언을 하다 죽임을 당하지만 죽었다고 살아나고, 다시 하늘로 승천한다. 그리고 일곱째 천사가를 마지막 나팔을 분다.

    요한계시록 12장

    일곱째 나팔이 불린 후 하늘의 성전이 열린다.(19:19) 하늘에서 다시 큰 이적이 보인다.(12:1)해를 옷 입은 한 여자가 보인다. 그녀의 발에는 달이 있다. 여자는 해산하여 아이를 낳을 할 때 부르짖는다. 이때 하늘에서 또 다른 이적이 보인다. 붉은 용이 등장한다. 그 용이 여인을 삼키려 한다. 하늘에서 전쟁이 일어나 용이 쫓겨난다.(7절) 큰 용은 '옛 뱀 곧 마귀'(9절)다.

    요한계시록 13장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한 마리가 등장한다. 뿔이 열이고, 머리가 일곱니다. 뿔은 힘과 권세를 상징한다. 절대권력을 말한다.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되지가 가까스로 살아난다. 그 후 사람들이 그를 경배한다. 짐승을 경배하지 않은 사람들을 모두 죽인다. 다른 짐승에 땅에서 올라온다. 큰 이적을 행한다. 그를 따르는 자들은 이마에 표를 받게 한다. 이마는 신분을 드러내는 표시가 찍는 곳으로 요한계시록 안에서 사용된다. 이마에 무엇이 찍히느냐 그가 결정된다.

    • 요한계시록 9:4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 요한계시록 14:1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

    요한계시록 14장

    십사만 사천 명의 노래가 들려온다. 이들의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어린 양이 서있는 시온 산은 시편 2절을 연상시킨다. 그는 하늘 아버지의 대리인이다.  세 천사의 말이 이어지고, 마지막 수확이 이루어진다. 구름 위의 인자(14절)는 다니엘서 이후 전해오는 인자의 다른 표현이다. 수확은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곡식이고, 다른 하나는 포도주 수확이다. 포도주 수확은 하나님의 진노를 뜻한다. 즉 심판은 구원인 동시에 심판이다.

    요한계시록 15장

    하늘에서 다른 이적이 보인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온다. '마지막 재앙'(1절)이라 소개한다. 일곱 대접 재앙의 전조이다.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소개된다.(3-4절) 이후 '하늘에 증거 장막의 성전'(5절) 열린다. 11:19에서는 하늘의 성전이었지만 이제는 '증거장막의 성전'이 열린다고 표현한다. 

    요한계시록 16장

    일곱 대접 재앙이 한 장에 다 들어가 있다. 인이나 나팔 재앙에 비하며 짧고 간소하다. 소개되는 내용은 출애굽 때의 열 재앙과 많이 닮아 있다. 구원의 때가 이르렀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16장 후반부에서는 바벨론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받으며, 하늘에서 내리는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이 내린다.

    요한계시록 17장

    드디어 음녀의 이야기 등장한다. 음녀는 물 위에 앉아 있다. 땅의 임금들이 그와 음행했다. 그의 이마에 이름이 있다. 글은 '큰 바벨론,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5절)이라 적혀있다. 많은 주석가들은 17장이 당시 로마를 음녀 바벨론으로 표시고 있다고 확신한다. 짐승에 대한 경배는 곧 로마 황제 숭배와 맞닿아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요한계시록 18장

    바벨론이 패망한다. 하늘에서 음성이 나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고 외친다.(4절) 바벨론 망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이 열거된다.

    요한계시록 19장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기록된다. 4장의 보좌위의 찬양이 이어지는 인상을 받는다. 어린양의 아내가 입는 옷은 빛나고 깨끗한 세포포 옷이다.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다.(8절) 곧 하늘이 열리고 백마를 탄 이가 나온다. 12절의 표현은 교회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지막 부분 등장하는 소개문이 조합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0장

    천년왕국이 소개된다. 천사 무저갱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온다. 용을 잡아 천 년동안 결박한다. 당시의 언어로 천년은 로마의 통치 기간을 의미한다. 하지만 천년 동안 갇힌다는 표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다시 용이 풀려나지만 다시 천년이 차자 성도들을 핍박한다. 하지만 결국 하늘의 흰 보좌에 앉으신 이가 등장하고 모든 것이 결정된다. 성도들은 부활하고,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부활한다.

    요한계시록 21장

    새 하늘과 새 땅이 등장한다. 그런데 새로운 세상은 하늘과 땅은 있지만 바다는 없다. 다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신혼집처럼 소개된다. 그때 보좌에서 음성이 들려온다.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이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3-4절)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과 요한계시록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

    고정관념의 사전적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마음속에 굳어 있어 변하지 않는 생각.
    둘째, 어떤 사람이나 집단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어떠한 상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각.
    셋째, 표제 음악에서 어떤 고정된 관념을 나타내는 선율.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 12. 11~1869. 3. 8)는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작곡가로 유명합니다.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작곡가로 그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고정관념을 깨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를리오즈의 작품 ‘환상교향곡’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베를리오즈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가 본 악기라고는 작은 피리 한 개가 전부였습니다.
    온 마을에 피아노 한 대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17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악기를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작곡을 시작했고 좋은 작품을 쓰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성공하고 큰 집도 장만한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러나 그 피아노는 간단한 화음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됐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베를리오즈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피아노를 배우지 않고 작곡가가 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아는 작곡가 가운데 피아노를 전혀 못 치는 분은 선생님뿐입니다.”

    “나는 피아노를 안 배우면 작곡을 못 한다는 것을 몰랐네.
    나는 파리에 와서 처음 피아노를 봤으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지!”

    때로는 불가능에 대한 지식이 고정관념을 만들고 존재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다수의 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읽을 수 없고 더구나 해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 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하셨을 때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별한 계시를 받은 몇몇 교주들에게만 읽고 해석하도록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잘못된 해석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22:7).

    * 09-14-2019 아침 묵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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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을 깨트리자!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정관념은 읽어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도 알 수 없도록 계시하셨을까요?
    물론 대답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계시록을 읽지도 못했고 심지어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교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깊숙이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정기 건강 검진을 마치고 그 결과를 확인하려고 담당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담당 의사 책상 위에 자신의 정기 검진 결과를 알려주는 진단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핏 살펴보니 진단서에 “소부암” 이라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소부암” 이란 단어를 본 순간 “내가 암에 걸렸구나! 암이 너무 심각해 의사가 내게 아무 말도 못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 사람은 절망하고 낙심하여 사람도 만나지 않고 마음을 정리한 후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몇 달이 지나자 얼굴이 초췌해지더니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려진 사실은 “소부암”이란 암의 일종이 아니라 담당 의사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암에 걸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비극적인 결과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종교개혁자 칼빈(칼뱅)도 주석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교회 안에 거룩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정말 개혁자 칼빈(칼뱅)이 요한계시록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주석을 할 수 없었을까요?

    칼빈(칼뱅)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너무 많이 소개되어 교회마다 혼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 칼빈(칼뱅)은 또 다른 해석을 제시하므로 더 어지럽고 혼돈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서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 요한계시록을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진실이 감추어진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복(福)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복(福)이란 개념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복(福)은 영생(永生)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복은 영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구약의 예언은 “오실 메시아”라고 합니다. 신약의 예언은 “오신 메시아”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다시 오실 메시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심판(審判)이 아니라 구원(救援)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영생의 자리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언제 어디에 오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날과 그 시와 그 장소에 대해서 계시를 받았다는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성경에 계시한 말씀대로 믿고 성경대로 주님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며 증거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09-16-2019 아침 묵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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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언의 말씀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예언이란 한자어는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맡기는 예언(預言)
    둘째는 미리 아는 예언(豫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알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궁금증을 알려주는 것을 “예언(豫言)” 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언자(豫言者)” 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언(預言)”이란 하나님이 맡겨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언자(預言者)” 라고 합니다. 또는 선지자(先知者)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헬라어 성경에서 살펴보면 “예언(豫言)” 이란 의미 보다는 오히려 “예언(預言)” 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의 말씀이란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핍박과 심지어 순교의 현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말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바르게 소통하며 진리에 대한 내용을 더 강렬하게 믿고 따르게 하는 깨우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밧모 섬에 갇혀 언제 순교의 현장으로 끌려 나갈지 알 수 없었던 사도 요한에게 진리의 말씀을 계시(啓示)하여 보여주고 들려주므로 현재의 고통스런 상황을 믿음으로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인내를 갖게 하는 소망의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로 함께 읽어가며 중요한 말씀을 함께 암송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예언(προφητείας) ; προφητεία(prophéteia, 4394).
    prophecy, prophecy, prophesying.
    the gift of communicating and enforcing reveale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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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제주도에 가면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인 ‘분재예술원’이 있습니다. 분재한 나무는 보통 나무보다 3∼4배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분갈이에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분갈이를 하면서 뿌리를 잘라주면 나무는 자기 몸의 진액을

    짜내어 또 뿌리를 내립니다.
    그 뿌리가 분 안에 가득 채워지는데 2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또 인정사정 보지 않고 뿌리를 잘라줍니다. 이 뿌리를 ‘고정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2년 정도 반복된 생활을 하면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힌다고 합니다. 고정관념 속에 빠져들면 새로운 것을 보거나 듣기가 어렵습니다. 고정관념은 자기 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넘어야 할 벽과 같습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트리는 사람만이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복(福)이란 주제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하면 두 개의 문자로 구분합니다.
    “볼 시(示)”와 “부요할 부(富)” 라고 하겠습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한 의미는 “부(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부(富)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부(富)는 “영생(永生)”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영원하지 못한 것은 부(富)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영원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뿐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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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전 주석 장쩌민이 30분을 머물려고 그곳에 왔다가 1시간 30분 동안 머물며 “성범영원장의 분재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중국 고위 관리들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일본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가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탈무드에 소개된 또 다른 예를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낚시로 큰 고기를 잡으면 버리고 작은 고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을 지켜보던 행인이 “작은 고기를 잡으면 놓아주고 큰 고기를 잡아 가는데 당신은 왜 반대로 하십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낚시꾼은  “우리 집 프라이팬이 작아 큰 물고기를 구울 수 없어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큰 물고기를 잘라서 프라이팬에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작은 프라이팬에는 반드시 작은 물고기만 사용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고정된 생각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을 괴롭히는 고정관념은 착각(錯覺), 편견(偏見), 선입견(先入見), 고집(固執), 아집(我執), 흑백논리(黑白論理), 습관(習慣), 전통(傳統)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혀 삶의 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유명한 화가 피카소가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피카소에게 “당신의 그림은 너무 난해하여 알아볼 수가 없소. 실제를 너무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요?” 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피카소는 “그러면 실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지요?” 피카소에게 질문했던 사람이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며 “이것이 실제 제 아내의 모습이요” 라고 말하자 피카소가 그 사진을 받아 이리저리 살피더니 “당신 부인은 끔찍하게 작군요, 게다가 납작 하구요! 이 사진은 종이지 실제 당신 부인이 아니잖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외면만 보려했지만 피카소는 사람이나 사물의 외면과 내면을 함께 보고 표현하랴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시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할머니 발명가’로 알려진 모기업 대표 이씨는 일흔을 넘긴 팔십을 바라보심에도 “견사염색 방법”, “다시마차및 제조방법”을 특허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다. 요즘은 “다시마 레몬과자”, “다시마 초코렛과자”, “다시마 엿” 등 여러 식품 아이디어 특허 진행중이시란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4남매를 홀로 키우며 사셨다. 우연히 비단실로 일본옷을 하청받아 짜는 일을 시작하고부터 수백개 아이디어 발명품을 고안해 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느냐’란 질문에 ‘지속해서 모든 일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고정관념 틀을 깨는 사고법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은 무수하다.


    첫째, 다양한 정보를 체험하라!

    먼저 폭 넓은 지식 혹은 정보를 얻는 것이다. 독서이든 여행이든 많은 직 간접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요즘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책은 물론 만화책도 돌려가며 읽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배추는 파랗고, 무는 길고 하얗고, 고추는 익으면 빨간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배추, 무, 고추, 쌀, 콩 등은 그 모양, 크기, 색, 맛도 다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서양인은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시키라’, 우리 조상들은 ‘말이 나면 제주도로 자식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지 않았을까?


    둘째 사고와 사고법을 전환하라!

    그것이 창조적이든 역 사고 혹은 유연한 사고든 말이다. ‘왜’ 혹은 ‘그러면 타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이 맞을까? 이대로 좋은가?’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시각에 변화를 주라!

    다양한 각도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역 시각을 가져 보는 것이다. 낚시대에 연을 매어 날리는 그림을 보았다. 사람에 따라 “이상한 사람 혹은 기발한 발상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넷째 유사한 것을 따라 시도해 보라!
    수영에는 자유영, 배영, 평영, 접영이 있다. 살펴보면 동물들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흉내 낸 것이다. 흉내 내다 보면 새 착상을 얻을 수 있다.

    다섯째, 또 다른 새로움에 도전하라!

    제19회 멕시코 세계 올림픽 육상대회에서 미국 선수 ‘딕 포스버리’는 높이 뛰기에서 최초로 배면뛰기를 시도하여 정면뛰기 2m의 벽을 훌쩍넘어 2.38m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했었다. 그때까지 정면뛰기가 정석이었지만 그 후 배면뛰기가 정석이 되었다. 새로운 도전이 육상계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이 외에 믿음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등이 있다. 더 이상 여군, 여경, 남스타일리스트, 남간호원이란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고체잉크, 휘는 휴대폰이 나왔다. ‘남자는 강하다. 여자는 약하다’ ’가벼운 것은 약하고 무거운 것은 강하다’란 통념이 못된다. 옛 중국 사마광이 소년 시절 한 아이가 큰 물독에 빠져 익사할 직전이었다. 어른들도 올라가기 힘든 큰 독이라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이때 사마광이 큰 돌을 가져다가 항아리 밑 부분을 깨서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누가 큰 독을 기어올라 들어갈 것이냐를 생각할 때 사마광은 독을 깰 생각을 했다. 깨고 벗어나려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자타를 망하게 한다.

    “목이 곧은 자를 향해 회개하고 고침을 받으라” 하나님은 명하신다. 빗나간 고정관념의 아집과 고집을 벗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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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는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털끝만큼도 상상하지 못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이야기만 듣고 신문 기사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너희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네티바 벤예후다(Netiva Ben-Yehuda)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여 ‘극한의 경험’을 썼다.
    “피를 뒤집어쓰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이미 죽음이 목을 조여 오는 듯 쉰 목소리로 살려 달라 외치는 형체를 바라볼 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옥죄었다.” 1914년 일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는 고백했다. 전쟁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Harari, 41/555).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 Tolkien)도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였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의미하게 목숨을 d잃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전장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18개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그는 고백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얼마나 암울한 공포에 뒤덮여 있으며 얼마나 슬픔에 빠져 있는지.”(고명섭, 207)

    1세기 교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였다. 로마 검투사의 칼날에 살점이 찢겨나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형틀에 묶여서 갈고리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아 뼈가 허옇게 노출된 사람, 십자가에 매달려 일주일 내내 신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들은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켰을까?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이 종교적 계시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은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평생 그것이 가슴에 남아 때로는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때로는 현실을 초월하는 경건을 배운다.

    톨킨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고명섭, 208). 이러한 경험과 생각에서 톨킨은 판타지 문학에 빠져들었다. 반면 현대인은 실용주의자이다.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한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어, 성경에서 이론(교리)을 도출하여 ‘해야 한다’든지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야기를 경멸하고 신학과 교리를 설명하는 가르침만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생명을 바쳐 헌신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최고의 설득을 쓴 카민 갤로(Carmine Gallo)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John Scully)에게 했던 말로 책을 시작한다. 스컬리는 37살 나이에 펩시콜라의 사장이 되었다. 8년이 지나고, '마케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스컬리는 최고로 촉망받는 CEO가 되었다. 그때, 26살 청년 스티브 잡스는 45살 대기업 회장에게 신생기업 애플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컬리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1983년 3월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를 설득하였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힘이 있었다. “남은 평생 설탕물을 팔 건가요. 아니면 저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요?”

    오늘날 설교자들의 문제 중 하나는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법으로 전한다. 어느 교회를 가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런 감동 없이 전한다. 대개 교인들은 졸거나 딴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귀를 기울여 듣는 성도들도 다음 주가 되면 지난주 설교를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실천하는 교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학교에서는 감동과 열정을 쏙 빼버린 이론(신학과 교리)만 열심히 가르친다. 마치 회사에서 세일즈맨에게 물건 사용설명서만 열심히 외우게 한 뒤, 물건을 팔라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 그 물건을 사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설령 그것이 가짜일지라도)을 열성적으로 전달해도 살둥말둥한데 말이다. 이런 회사와 신학교는 매우 유사하다. 신학교는 차갑게 식어버린 교리나 죽어있는 신학만 가르친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 감동, 흥분, 기쁨은 가르치지 못한다. 그러니 목회 현장의 설교는 언제나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기독교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시, 잠언, 사랑 노래, 역사 이야기, 편지, 묵시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도 묵시 문학인 요한계시록은 이야기 중의 최고다. 처음 요한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현대 유행하는 판타지 문학을 생각하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등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지만, 누구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의 판타지 문학과 같다.

    판타지 문학이나 묵시 문학은 현실 도피적 성향이 있다. 끔찍한 전쟁 경험이나 박해 경험은 현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판타지 문학에 심취했던 톨킨은 기독교 신앙 자체가 “도피가 영혼에 유익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모험 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Yancey, 154).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은 도피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린다고 해서 죄수를 경멸해야 하는가(Yancey, 153)? 얀시는 되묻는다. 톨킨은 ‘판타지라는 도피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을 넘어선 영혼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의 묵시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부패와 쇠락을 보고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잠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깨울 수 있을까? 시스템을 바꾸고, 성전 관리와 경영을 잘하면 될까? 성전(교회)을 고치고, 개혁하고, 갱신하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계획과 전략을 짜면 될까? 온갖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러다 포로로 끌려간 후 (성전이 아니라) 그발 강가에서 놀라운 환상(해답)을 본다. 그는 아주 기괴하게 생긴 네 생물의 형상을 본다. 그 형상은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보았던 형상과 비슷하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형상이었다(계 4:7, 겔 1:10) 그 후 에스겔은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간다(겔 37:1-14). 뼈들만 가득한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놀라운 희망을 발견한다(Roxburgh, 90-91).

    에스겔이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톨킨이나 C.S.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감동적이고 흥미 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서 감동과 흥분과 열정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도 요한은 절망의 환경 속에서 끔찍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환상의 이야기로 이끈다. 그리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끔찍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묵시 이야기에서 초대 교인들이 느꼈을 감동과 흥분을 맛보게 된다.

    비록 지금 교회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상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듣는 초대교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묵시로 전달하는 사도 요한의 뛰는 가슴을 상상해 본다. 나는 점점 소망을 잃어가는 현대 교인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묵시 문학이 가지는 복음과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고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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