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기록입니다.
계시록의 핵심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선언은 전 우주적인 선언이고, 역사적 생명적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은 세상의 윤리나 도덕 정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어야 하는 이유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첫째는 이단 세력들의 확장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새 언약의 결론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마지막 때를 준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1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라고 먼저 밝히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사를 통하여 사도 요한에게 보여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계시다.
요한계시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관계성에서 이해된다.

교회의 그리스도

예수는 교회의 그리스도이시다(계 1:10-18). 

예수는 "인자같은 이"의 신분을 가지시고 (1:13).
그의 외모는 상징적으로 설명된다(1:13-16).
또 (1:17-18)을 보면 예수는 처음과 나중이시며(17),
산 자이시며(18), 전에 죽었으나 이제 영원히 살아계시면서 사망과 음부를 지배하신다(18).
이와 같은 예수의 모습은 일곱교회에서 다시 소개된다 (2-3장). 

에베소 - 일곱 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서머나 - 처음과 나중, 죽었다가 다시 사신 이 

버가모 -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 

두아디라 - 눈이 불꽃같고 발이 빛난 주석같은 이 

사데 -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빌라델비아 - 다윗의 열쇠를 가진 이 

라오디게아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천상(우주)의 그리스도       

우리는 요한계시록에서 천상(우주)의 그리스도를 보게 된다. 천상(우주)은 무지개에 둘러싸인 하나님의 보좌 (4:3) 우편에는 어린 양이 있고 그 앞에 일곱 영이 있으며 그곳으로 부터 생명의 강이 흐른다 (7:17; 22:1-2).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계신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 일곱 인으로 봉해진 책이 들려있지만 이 봉인된 두루마리를 펼 자가 없다. 이때 유대지파, 다윗의 뿌리이신 어린 양 예수께서 이 책을 취하게 되자.네 생물과 24 장로와 많은 천사들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경배한다(5:1-13).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이 천상의 보좌를 중심으로 네 생물과 24장로, 그리고 14만4천의 성도(= 흰 옷을 입은 허다한 무리)와 천사들이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있다 (7: 9-12; 14:1-5). 

예수께서는 또한 시온산에 서있는 승리의 그리스도이시다 14:1-3).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심판의 그리스도이시다(14:14-16). 그는 흰 구름에 앉으시고, 금면류관을 쓰시고, 예리한 낫을 휘둘러 땅의 추수를 거두신다. 또한 그리스도는 음녀 바벨론 (14:8; 16:19; 17:5; 18:10) 인 이 세상을을 심판하신다. 

전투하는 영계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 세계에서 전투하시는 용사로서 묘사된다.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16:13)와 싸우신다.
이들 세 영이 히브리어로 아마겟돈(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이라 하는 곳에 집결한다(16:16).
마지막 전쟁에서도 음녀 바벨론과 세 더러운 영과 온 왕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일어나지 큰 세력을 얻지만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16:15) 이 대적들을 무찌르실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과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다(19:19-20:10). 

요한 계시록이 쓰여 질 당시는 AD 95년경으로 사도 요한은 죄수형에 처해져서 외딴 섬인 페트모스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로마의 11대 황제인 도미티안은 기독교인들을 대대적으로 핍박하면서 교회들은 큰 위기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아갔고, 때로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말할 수 없는 고난과 핍박을 겪어야만 했고 순교의 길을 가야만 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계시함으로서 믿음이 연약해진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격력하면서 참된 소망과 믿음을 갖도록 그래서 교회가 인내하고 승리할 수 있도록 주신 성경이 바로 요한 계시록입 것입니다.
그래서 1장 3절의 말씀대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기록된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시록을 통하여 만왕의 왕이신 영광스런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의 축복이 더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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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가하면 주님의 오심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로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믿지 않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이며 언제까지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것이며 언제가 되면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영접하게 될 것이며 그 때가 되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방인들을 일정기간 동안 구원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사야 시대의 남유다인들의 강퍅함과 우상숭배와 죄에서 돌이키지 않은 그 상태를 하나님의 인류구속에 사용하신 것입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게 하여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사야서 6장에서 말씀하시는 이 말씀은 예수님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사야서 6장의 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3:13, 14마가복음4:12, 누가복음 8:12요한복음 12:40절입니다.

14.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귀를 막으며 마음을 둔하게 하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야로 오셨는데도 메시야로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죽으려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영접하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바울 사도는 사도행전 28:26-28절에서 이사야서의 이 말씀을 인용합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했습니다.

 

바울사도가 사도행전 28:26-28에서 이사야서 6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들로 귀머거리, 당달봉사로 만든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라 했습니다. 또한 로마서 11: 7-13, ...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믿지 않게 하신 것은 그들로 믿지 않게 하는 동안 이방인의 정한 숫자가 차기 까지 유대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로마서 11: 25-26에서,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하지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언제 돌아 올 것인가?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기를 언제까지 이스라엘백성들의 눈이 감기게 될 것인가하고 묻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사야서 6: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AD 70년에 유다가 로마군대에 예루살렘이 훼파되고 사람들이 죽고 포로로 잡혀 갈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훼파되면서 로마군대에 의해 이스라엘백성들은 나라에서 쫓겨나 수 천년 동안 지나는 동안에 이스라엘 땅은 황폐하고 집들은 사람이 없고 토지는 황폐하게 될 때까지 그들의 눈이 감기게 되리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쫓겨 났던 자들이 돌아와 1948년에 나라를 재건하고 이방인들에게 짓밟혔던 예루살렘이 다시 유대인들에게 돌아오고 들에 다시 곡식들이 자라고 집들이 다시 들어서게 되고 쫓겨났던 자들이 다시 돌아오고 주민이 다시 살게 될 때는 그들의 눈이 다시 밝혀 질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 성경말씀들이 오늘날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대에 유대인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죽였던 예수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였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을 그들의 메시야로 인정해 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제 이사야서 6:10마태복음 13:14-16의 저주가 풀렸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의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 예수님이 그들의 메시야이심을 깨닫는 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사야 6: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마태복음 13:14-16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그러므로 우리 세대에 수 없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것을 확신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차기까지라 했는데 복음을 듣지 못한 미전도 종족이 수년내로 종결될 것입니다.
지구 상에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지상명령이 성취 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미전도 종족들은 복음을 잘 받아 들이는데 비해서 이미 복음을 받아 들인 지역에서의 복음사역은 거의 제로 상태입니다.
전도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개척이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죽는 그 순간까지 그리고 주님께서 오시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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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기록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기록입니다.

계시록의 핵심은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선언은 전 우주적인 선언이고, 역사적 생명적 선언입니다.
 
요한계시록 1:7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예수님의 재림의 약속은 세상의 윤리나 도덕 정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사상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시대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재림 신앙은 생명이 있기에 결코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의 복음 증거 때문에 유배되어 있던 밧모 섬에서 본 환상을 기록한 계시록의 초반부입니다.
요한은 주의 날(일요일)에 성령에 감동하여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주님은 매우 엄중한 목소리로 요한이 보는 것을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써서 보내라고 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의 주인공을 알아보려고 뒤로 돌이켰고, 거기 일곱 금 촛대를 보았고, 촛대 사이로 부활하신 예수님 즉 이제 곧 재림하실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여기 ‘일곱 금 촛대’는 구약 스가랴서에서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반면에(슥 4:2), 본문에서는 수신자들인 소아시아 일곱 교회와 나아가 전세계의 보편적인 모든 교회들을 나타냅니다. 

오늘 말씀은 요한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재림 예수님의 모습에 관한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은혜와 사랑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촛대 사이에 계심(종말교회에 임재, 교회 사랑하심)

13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요한이 일곱 금 촛대를 보았을 때 그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매우 의도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이를 ‘인자 같은 이’(호모이운 휘온 안드로푸)라고 묘사했는데, 이 표현의 출처는 구약 다니엘 7:13절이 분명합니다. 
 
단 7: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요한은 다니엘서의 환상으로부터 ‘인자 같은 이’란 표현을 차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인자 같은 이’를 장차 오실 메시야를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으나, 사도 요한은 이미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을 거쳐 승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18에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 라고 언급한 것을 보면 이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분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요한의 눈에 들어온 예수님의 모습은 ‘촛대 사이에’ 운행하고 계시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예수님이 종말 교회에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촛대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장식용입니까? 고풍스런 자태를 뽐내면서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촛대 본연의 역할입니까? 아닙니다. 
 
촛대는 빛을 비추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러느로 교회의 사명은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어떤 빛입니까?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입니다(요 8:12, 빌 2:15). 

성경은 본문의 의도가 중요합니다. 촛대 사이에 예수님이 거니신다는 것은 재림 예수께서 이처럼 귀한 사명을 가진 종말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건지시고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재림 예수께서 그토록 사랑하시고 중히 여기시는 교회는 과연 어떤 존재입니까? 사도 바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자기피로 사신 교회’ 라고 했습니다. 재림 예수님은 이 귀한 교회를 붙들고 계시고 교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우리는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영광스러운가를 가슴으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또한 교회가 예수님의 몸이고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라고 말씀합니다.  
 
엡 1: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이처럼 교회는 예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고 함께 하시는 곳입니다. 제자 베드로에게 예수님은 천국 열쇠를 주시며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16:18-19=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며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직 주님의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곳을 통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오를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는 말씀입니다. 구원은 오직 천국 열쇠를 쥐고 있는 교회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재림 예수님은 교회 촛대 가운데 서 계십니다. 자신의 피를 뿌려 세운 교회, 그 교회를 지키시며 키워오시는 예수님, 그리고 그 교회를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는 주의 종들을 붙들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성도는 행복한 분입니다. 할렐루야!

발에 끌리는 옷을 착용하심(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권위와 위엄 상징)

13절=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

‘발에 끌리는 옷’은 ‘발에까지 치렁치렁 끌리는 긴 옷’을 의미합니다. 신약성경에는 이곳에서만 사용되었는데, 구약의 여러 용법을 보면(출 28:4, 29:5, 겔 9:2, 단 10:5 등) 이것은 제사장들이 착용한 예복으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과 그의 권위와 위엄을 시사합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은 1년에 한번 대속죄일에 백성들의 죄를 사하는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만나러 지성소에 나아갑니다. 그가 만일 허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그 즉시 목숨을 잃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의 모습은 예수께서 구원받은 모든 사람들을 이끌고 하나님 앞에 나갈 것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재림 예수님은 발에 끌리는 대제사장의 옷을 입고 계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나같이 흉측한 죄인을 대속하여 주실 대제사장으로 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실패자이지만 주님이 대제사장 되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사하시고 천국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다는 사실은 특히 당시 극심한 박해 가운데 있던 성도들에게 더 큰 위안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 신앙의 위기에서 느끼는 가장 큰 고통이 무엇이겠습니까? 두려움과 고독이 아니겠습니까? 

죄인의 신분으로 유배된 요한에게 예수님이 보이셨듯이, 주님은 일곱 교회 곧 모든 교회와 성도들의 대제사장이란 사실입니다.  
 
위기의 상황이 와서 ‘나는 혼자다’라고 느낄 때도 성도 곁에는 대제사장이 계신다는 것이며 그 대제사장은 그를 위해 중보기도를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흑인 인권을 위해 목숨을 바친 마틴 루터 킹 목사가 1967년 11월 5일 에버니저 교회에서 전한 말씀을 되새기는 것은 의미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필요하다면 감옥에 갈 때도 있겠지만 그곳에서도 혼자가 아닙니다. 옳은 것을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오해하고 비난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혼자는 아닙니다 ··· 저는 번개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천둥 소리도 들었습니다. 범법자들이 위세당당하게 걸어다니면서 제 영혼을 정복하려 들때마다 저는 계속해서 싸우라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주님은 절대로, 절대로, 저를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절대로 혼자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그로부터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의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을 만날 때 영혼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주님을 알게 될 때 산보다 높은 파도가 몰아치고 폭풍우와 같은 은혜와 감격이 여러분의 영혼을 휘감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심(권세를 가지신 메시야)


 
13절=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촛대 사이에 있는 인자 같은 이는 가슴에 금띠를 띠고 계셨습니다. 이 묘사는 다니엘 10:5절과 연관된 듯 보입니다.
  
단 10:5= “그 때에 내가 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순금 띠를 띠었더라” 

가슴에 금띠를 띠었다는 것은 왕의 예복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권세를 가지신 메시야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초림 예수님은 가장 낮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 예수님은 가슴에 금띠를 띤 통치자로 오십니다. 

왕은 백성들을 지키고 보호하며 먹이고, 적군과의 전투에 총책임자입니다. 이것은 재림 예수님이 새하늘과 새땅에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악한 마귀의 모든 세력을 심판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마지막 종말의 때 재림 예수님은 어떤 환난과 마귀의 미혹 가운데서도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우리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왕으로 오실 예수님, 우리를 보호해 주실 예수님 생각만 하여도 심장이 뜁니다. 주님이 계신데 내가 무슨 걱정을 하겠습니까? 주님이 이제 왕으로 속히 오실텐데, 내가 어찌 주님을 배반하거나 주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수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성경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십시오. 특히 계시록에서 재림 예수님의 왕적인 모습을 만나보십시오. 만왕의 왕이신 재림 예수님이 모든 악의 세력을 물리치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그분에게 지금 여러분의 삶을 모두 맡겨보십시오. 그분만을 여러분의 유일한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하십시오.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음(거룩한 승리자)

 
14절=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본문 이하 16절에서는 요한의 눈에 비친 예수 그리스도의 인상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머리에 대한 묘사에 집중됩니다.  
 
여기 ‘그 머리와 털’이란 말은 ‘머리와 털’로 양분된 대상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머리 곧 그의 털’이란 의미로서 다니엘 7:9절에서 인용한 표현입니다. 

거기서 다니엘은 옛적부터 계신 이의 머리털이 ‘깨끗한 양의 털 같고’ 옷은 ‘희기가 눈 같다‘ 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 곧 그의 털‘을 묘사하는 데에 적용되었습니다. 이로써 요한은 자신이 목도한 승귀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나님이심을 드러냅니다. 

머리털이 흰 것은 상징적으로 지혜와 위엄을 의미하며(레 19:32), 이것은 그리스도의 성결과 영원성 혹은 그의 영원하신 신성을 나타냅니다(사 1:18). 즉 재림 예수님은 거룩한 승리자로 우리 곁으로 오십니다. 다시는 눈물이 없고 다시는 곡하는 것이 없는 영원한 승리를 우리에게 안겨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얼마나 죄와 싸우고 허물로 인하여 고통받고 살아 왔습니까? 그러나 주님 재림하시면 더 이상 죄악으로 인하여 고통받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의 성결로 우리의 죄악도 감추어지고 거룩한 몸으로 변하여질 것을 생각하면 그저 두 볼에 뜨거운 눈물만 흘러내릴 뿐입니다. 

‘거룩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닮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들이 밤낮 쉬지 않고 노래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계 4:8=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 

재림 예수님의 거룩은 단순히 악한 세상과 구별되는 차원 정도가 아닙니다. 주님의 거룩은 세상의 어느 것도 비견할 수 없는 완전한 의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한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이것은 마치 구약시대에 성막과 거기에 사용되던 모든 기구들이 다른 물건과 뚜렷하게 구별되던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든 세속적인 관습으로부터의 분리요 영원한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은 거룩한 분리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세상의 탐심과 욕정의 쓰레게 더미 속에서 딩굴고 있다면 어찌하겠습니까? 우리는 속히 죄악의 동굴에서 빠져 나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성경은 거룩하신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주님은 이제 곧 다시 오십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흠도 티도 없는 순결한 모습으로 그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이런 주님을 기다리는 소망을 가진 우리는 행복한 자입니다!.

눈이 불꽃 같음(공의의 눈, 그리스도의 심판)


 
14절=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요한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에 대한 묘사로부터 그의 눈에 대한 묘사로 옮겨 갑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습니다. 이것은 다니엘 10:6을 반영한 것으로 그분의 전지성을 나타냅니다. “···그의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의 눈은 횃불 같고··· ”

불꽃 같은 주님의 눈은 모든 악을 꿰뚫어 아시는 날카로운 공의 눈을 상징하며 아울러 승리로 재림하실 그리스도의 심판을 보여줍니다. 불의에 대하여는 남김없이 심판하시고 구원받는 자들은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보호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나타납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재림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심판하실 그 불꽃 같은 눈으로 바라보십니다.

주님은 지금 예배하러 나오신 여러분의 얼굴을 불꽃같은 눈으로 보고 계십니다. 예배드릴 때는 주님이 여러분의 얼굴 표정 하나까지도 살피신다고 생각하고 마음 자세 뿐 아니라 얼굴 표정을 갖추어야 합니다. 목사나 주위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보여야 합니다.  

예수 진리의 말씀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은 다 일시적인 것이요 언젠가는 사라질 것들입니다. 사랑하는 남편도 떠나고 자식도 떠나고 친구도 떠나지만 예수님만은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해 주십니다.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지켜주시는 예수님을 붙들고 승리하십시오. 우리는 이미 악의 권세를 이긴 자들입니다. 재림 예수님은 반드시 악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불꽃같은 눈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성경은 오직 예수님을 발견하는 보물 창고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사상을 가지고 예수님을 천 번 이야기 한다 해도 어떤 영적인 생명과 감동을 줄 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본문의 의도가 파헤쳐질 때 생명이요 진리요 구속의 세계가 열립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재림하실 예수님은 교회에 임재하시고 교회를 목숨처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사하시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금띠를 띠고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은 마귀와 적그리스도,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모든 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아마겟돈의 승리자이십니다.
  
거룩한 승리자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계시록은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을 이 예수님을 소망하는 자리로 인도합니다. 계시록의 말씀은 구절구절이 재림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본문의 의도를 찾는 자들로 하여금 재림 예수님을 사모하게 만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교회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붙듭시다. 우리는 죽더라도 교회에 나와 죽을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교회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떠나면 물을 떠난 물고기처럼 영혼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불 속에서 끄집어 낸 장작은 이내 불이 꺼져버리고 맙니다. 주님이 임재하시는 교회를 통하여 이 어두운 시대에 생명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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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품격(The Person of Christ) :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동일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다음의 네 가지 방향으로 표현합니다.

1) 이름의 공유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선언들과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들의 패턴이 있습니다.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
• 그리스도: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7b-18).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21:6).
• 그리스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이를 좀 더 분석해 보면, 1:8의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 신적 주권을 통하여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을 진술하고 있는데 반해, 1:17-18의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게 된 사망과 음부에 대한 권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는 신적 명칭의 본질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공유가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패턴으로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종말론적 만물 완성 모두에 신적 행위자로서 그리스도를 포함시킬 뿐 아니라, 이름의 공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신 것을 매우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 “처음과 나중”이라는 명칭은 배타적인 유일신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사 44:6).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정체를 선언하는 데 이 명칭을 쓴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름의 공유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시고 목적이 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
계시록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의식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드려져야 합니다. 19:10과 22:8-9에서 요한은 자기에게 계시를 전하는 천사에게 엎드려 절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천사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며 단지 계시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계시의 근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2:16).

계시록 전체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명백히 하나님과 함께 예배를 받는 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천의 천사들과 온 세상이 예수를 예배합니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은 유일신적 예배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하나뿐인 하나님의 존재에 예수가 포함된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4:11). 5장에서는 어린 양, 즉 그리스도가 신적 보좌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5:6, 7:17). 어린 양은 하늘에서 예배 무리의 중심이 되면서, 동시에 생물들과 장로들의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5:8). 그런 다음, 그 무리는 무수한 천사들이 참가하면서 확대되는데 그 예배의 형태(5:12)가 분명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4:11).

마지막으로 예배의 무리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기까지 확대되면서 하나님과 어린양께 영광송을 부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보여 주는 장면에서 어린양의 예배(5:8-12)가 하나님과 어린양을 함께 예배하는 것으로(5:13)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이러한 일련의 장면 묘사를 통해,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함께 나누는 존재로서 나타내려 한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적인 예배를 받으실 만합니다. 그에게 드리는 예배는 하나뿐인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cf. 빌 2:11).

3) 특이한 문법 사용
계시록에서 사용된 특이한 문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같이 언급될 때 단수 동사(11:15) 또는 단수 대명사(22:3f, 6:17)가 쓰입니다. 요한은 그런 경우 절대로 복수 대명사를 주어로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지칭할 때에도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언급할 때 단수 동사 및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한 분이심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러한 문법 사용의 일관성은 그가 기독론의 유일신 사상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연구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유일의 신적 존재에 포함함에 있어, 요한은 후대의 기독교 신학자들처럼 추상적인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의 철학을 사용한다든지, 다른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개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학적인 숙어는 매우 독특하게 달랐는데, 그는 묵시적인 신적 보좌, 예배의 이미지, 문법의 조심스러운 사용, 문학적인 연결과 구조 등을 통하여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적 예술가로서 신학적 표현을 많이 한 것입니다.

4)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동일시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1:4, 4:8). 하나님께서 종말에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오심”은 그의 창조에 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의 오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의 소망과 경고가 계시록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1:7, 2:5,16, 3:3,11, 16:15, 22:7,12,20). “나는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이 총7회에 걸쳐 반복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는 심판은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22:12, 사 40:10, 62:11).

만약 재림 때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심판이 신적 심판이라면, 계시록 신학의 중심 주제인 그의 희생적 죽음에 관해서도 같은 말이 쓰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도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행위라고 보야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하늘의 보좌 가운데 있는 것”이 보일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고통당함으로써 정복하신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거와 희생적 죽음은 사실 하나님의 악의 정복과 그의 왕국을 땅위에 구현하는 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심판들 이상으로 하나님의 땅위의 통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증거와 희생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촛대 사이를 걸어 다니는, 1:13, 2:1)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와 교회의 메시아적 전쟁과 승리

1) 그리스도 이름 사용의 통계
(A) 예수: 우선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이 강조됩니다. 계시록에는 “에수”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이 14회 등장합니다. 그 중에 일곱 번은 “예수의 증거”(1:2, 12:17, 17:6, 19:10/2회, 20:4)와 관련된 구절에 나타납니다. 예수가 증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의 인성과 관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증거하셨고 또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도 이 증거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B) 그리스도: 한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7회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로의 문자적 번역으로서,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예수께서 다윗 왕국의 메시아에 대한 유대적 희망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셈입니다.
(C) 어린양: 또한, “어린양”이라는 말이 28회(7x4) 나옵니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수이며, 넷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서 일곱 번이 하나님과 어린양이 나란히 병행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5:13, 6:16, 7:10, 14:4, 21:22, 22:1,3). “4”는 요한계시록에서 “7”다음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일관성있게 사용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7”이 완전수인 것처럼, “4”는 온 세상을 뜻하는 숫자입니다(땅, 네 모퉁이, 네 구역-5:13, 7:1, 14:7, 20:8). 세 심판 시리즈 중 일곱 재앙들 가운데 처음 네 가지의 심판들은 이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28회(7x4) 나타나는 것은 그의 승리 및 구속 사역이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만국의 열방을 4중적으로 표현하며 이것을 일곱 번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가지 중요한 모티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역할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지배 하에 있는 이 세상 나라를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는 것입니다(11:15). 이것은 구원 사역인 동시에 심판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으로 시작되었다가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의 연속적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는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성취한 승리는 결정적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승리는 현재 그를 따르는 무리들(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장차 있을 그의 재림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재림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3단계(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모두에 적용된 세 가지 중요한 상징적 주제들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메시아 전쟁, 출애굽, 증인들의 싸움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 합성되어 나타나는 중요한 그림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단계 모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A) 메시아 전쟁-유다 지파의 시작
이것은 유대적 다윗 왕국의 메시아주의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합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는 군사적인 정복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그의 승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민족적 개념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여전히 악에 대한 승리인데, 영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상의 권력들에 맞서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구현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구약의 핵심 본문은 시편 2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와 그가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공모하는 “민족들”과 “세상의 군왕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1-2절). 그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인데(7절),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한 산 시온에 왕으로 세우시고(6절), 그곳에서 대적하는 열방들을 무찌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왕적 메시아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8절), 철장으로 대적들을 깨뜨리게 하십니다(9절).

요한계시록에서는 열방에 대한 메시아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빈번하게 나옵니다(2:18, 11:15, 12:5, 14:1, 16:14, 19:15). 또한 요한은 메시아의 승리를 함께 나눌 메시아의 군대에 관해서도 부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시 2편으로부터 “세상의 군왕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며 종국에 가서는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될 정치적 권력을 지칭하는 표준적인 용어로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적인 메시아 사상을 위하여 요한계시록은 “정복”이라는 주요한 개념을 메시아(3:21, 5:5, 17:14)에게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도 확대하여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전쟁 또는 싸움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기게 하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단계에 공히 사용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승리하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 전쟁의 표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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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A. 기록자와 수신자
사도 요한(1:1, 4, 9, 22:8)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교회들)에게 보내는 회람 서신.

B. 기록 연대
A.D. 90-96년 경. 도미티안 황제의 통치 말기에 쓰여진 서신으로 이때는 이미 네로의 박해(A.D. 64년)로 인하여 기독교인들이 로마에서 쫓겨나고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하였으며, A.D. 70년에 로마의 장군 디도(티투스)에 의하여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었고, 예루살렘 교회도 핍박을 받아서 요단 강 건너편 필라로 이전되었으며, 요한을 제외한 예수님의 직제자가 모두 순교 당한 후로서 도미티안 황제가 황제 숭배를 강요하여 기독교인들이 극심한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C. 주제,‘그리스도인의 승리의 찬가’
본서는 예언의 말씀을 기록한 책으로, 이 땅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실현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단의 시도(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재앙)가 반복되고 그 수위가 증가할 것이나 결국 악의 세력(로마 제국 등)이 진멸되고,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 믿음을 지킨 성도(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서 신부로 불리움을 받은 성도)들은 구원받게 되며,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국(새 예루살렘)이 성취될 것을 선언하는, 위로와 소망으로 가득 찬 메시지.

D. 기록 목적
핍박을 받는 성도(교회)에게 모든 환란과 재앙이 지나고 새 하늘과 새 땅인 하나님의 나라(새 예루살렘, 천상적 교회의 정체성)를 보여 주기 위함입니다.

E. 특징
1) 기록자가 사도 요한임을 알려 주는 본서와 요한의 다른 성경과의 유사성.
(1) 로고스라는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적용시킵니다(계 19:13, 요 1:1이하, 요일 1:1).
(2) 어린 양이란 용어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합니다(계 5:6,12, 13:8, 21:22, 요 1:29).
(3) 그리스도께서 태초 이전에도 존재하신 분(요 1:1 이하)이라는 것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계 22:13)는 것은 동일한 사상적 흐름을 보여 줍니다(참고, 계 1:8, 17).
(4) 구원의 원리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한 것임을 강조합니다(계 7:14, 12:11, 21:6, 22:17, 요 1:29, 3:3, 5:24, 10:10-11).

2) 수신자가 교회 전체(모든 세대의 신자들)임을 가리키는 사실들
(1) 사도 요한 당시의 교회가 받은 환란은 모든 세대의 교회들이 당하고 이겨내야 할 환란의 예표이며(딤후 3:12), 환란의 절정은 그리스도 재림 직전에 있을 것입니다(마 24:29-31).
(2) 본서의 인 재앙, 나팔 재앙, 대접 재앙은 특정 기간에만 일어날 것이 아니고 오랫동안 실현될 광범위한 사건들입니다.
(3) 본서의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전체 교회를 대표하며, 일곱 교회에 주신 말씀은 모든 세대의 성도들에게 주는 교훈과 책망과 위로입니다.
(4) 본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1:3)라고 선언하고 있으며,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22:18상)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3) 상징, 묵시문학, 서신, 예언서를 특성으로 하는 계시록은 문학적으로 읽어야 하며, 예언의 책으로서 미래적인 예언(豫言)으로서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는 선지자적 예언(預言)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이필찬,『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4) 계시록은 구약에 배경을 두고 있으므로 다니엘, 이사야, 예레미야, 스가랴, 요엘 등의 선지서를 잘 살펴보아야 하며, 계시록 404구절 중에 278구절이 구약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F. 요한계시록을 여는 Key Word
1) 요한계시록의 문자적 의미의 오용 방지
요한계시록은 초대 교회 시대에 핍박 받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믿음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요한에 의하여 쓰인 편지입니다. 이러한 서간문의 특징에서 주는 사람과 받는 대상을 제하여 버리고 본문의 내용을 확대 해석하여 영적이나 사회적으로 적용해선 안 됩니다. 예를 들어, 7년 환란을 잘못 적용한다든지, 144,000이나 666의 숫자를 잘못 해석해서 오용해서는 안 되며, 짐승의 표를 받은 자도(19:20)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성도(7:4)의 반대 개념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2) 요한 계시록의 숫자 이해
‘1’ 절대를 상징하고 분열되지 아니한 온전한 수로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심을 의미합니다.
‘3 1/2’ 삼 일 반, 한때 두때 반때와 같이 완전 수 일곱의 반을 의미할 경우에는 불완전과 짧은 기간을 나타내기도 하며, 42개월(11:2, 13:5), 1,260일(11:3, 12:6)과 동일시하여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이 세상에서의 삶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4’ 수량을 나타내는 땅의 수로서 네 생물(6:8, 7:11 등), 땅의 네 모퉁이(7:1) 등 가시적인 피조물을 상징합니다.
‘7’ 완전을 상징하는 수이며 일곱 교회(1:11, 1;20 등), 일곱 금 촛대(1:20, 2:1), 일곱 별(1:16, 1:20, 2:1, 3:1), 일곱 영(3:1, 4:5), 일곱 등불(4:5), 일곱 눈(5:6), 일곱 천사, 일곱 재앙, 일곱 인, 일곱 대접, 일곱 나팔 등, 7은 3+4. 즉 천지의 합수로 신적인 세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일곱 뿔(5:6)은 어린 양의 위용을 나타내고, 일곱 머리(12:3, 13:1, 17:3, 17:9), 일곱 산(17:9)과 일곱 면류관(12:3)은 사단의 왕으로서의 용을 나타내며 그 권세가 큰 것을 의미합니다.
‘10’ 세상의 만수로서 세상에서는 10을 한 주기의 끝으로 보며 제한된 완벽함을 상징합니다.
예, 열흘 동안의 환란(2:10), 열 뿔(12:3, 13:1, 17:12, 17:16), 열 왕(17:12), 열 면류관(13:1) 등.
‘12’ 천지의 승수로서(3X4) 완전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백성의 숫자, 전체 혹은 완전함을 상징하고, 구약에서는 12지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12사도로 대별됩니다. 예, 여자가 쓴 열두 별의 면류관(12:1), 열두 문(21:12), 열두 천사(21:12), 열두 기초석(21:14), 열두 가지 실과(22:2).
‘24’ 24는 12의 배수로 완전수를 강조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 24 장로(5:8 등)
‘666’ 13:18에 한번만 나오는데 상징일 경우에는 인간의 수, 세상적인 수, 마귀적인 수이며, 암호일 경우에는 네로를 상징한다고 합니다(참고, 13:16-18).
‘1,260’ 3년 반 혹은 42개월을 날수로 계산한 것이며 교회의 증거 기간이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하고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시간을 가리킵니다.
‘144,000’ 12 X 12 X 1,000으로 구원 받은 자의 숫자가 많음을 나타냅니다. 이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능히 아무라도 셀 수 없는 큰 무리라고도 표시되었습니다(참고 7:1-17, 14:1-5).

3) 하나님의 언약입니다(계 21-22장, 언약을 지킨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
성경은 하나님의 언약을 주제로 흘러가는데, 이 언약의 결론 부분으로 이 세상의 종말 시대에 믿는 자들(교회)이 여러 환란을 당한 후에, 십사만 사천 명, 흰옷을 입은 사람들, 두 증인, 주 안에서 죽은 성도(복 있는 자), 어린 양의 신부들로 표현되고 믿음을 잃지 않은 자들에게 새 하늘, 새 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믿는 자들과 함께 계시며(21:3), 구체적으로 우리들이 거하게 되는 새 예루살렘의 정경(21:9-21)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활(21:22-27)이 펼쳐집니다. 또한 이들에게 생명의 근원인 생명수의 강과 생명나무(22:1-5)가 보여지며 그곳에는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가 있을 것(계 22:3)입니다. 이는 믿는 자들을 위한 약속이며(계 22:6), 창세기 3:18에 표현된 훼손된 자연의 회복이고, 창세기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로 회복된, 백성이 회복된 땅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는, 창조시의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것(완성)에 대한 약속이며, 창 17:7과 계 21:7은 성경 전체의 수미쌍관으로 시작과 끝이 하나님의 언약으로 귀결되고 있습니다.

G. 요한 계시록의 해석 방법
1) 과거적 해석법 : 본서의 내용을 사도 요한 당시의 초대교회와 로마 정권과의 투쟁을 묘사한 것으로 보며, 이미 다 성취되었다고 보는 견해로 그리스도를 포함한 미래에 대한 예언을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2) 미래적 해석법 : 네 본 것(1장),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 일(4-22장)로 나누어 대부분의 내용이 미래에 성취될 것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3) 상징적 해석법 : 고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우화적 해석법에서 시작한 것으로 본서의 내용은 선악의 투쟁사이며 결국 선이 승리하는 영적 원리를 제시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4) 역사적 해석법 : 본서의 내용을 사도 요한의 시대로부터 세계의 종말에 이르기까지 계속될 모든 역사의 축도로 보는 견해로서, 본서의 내용을 교회사에만 적용할 것인가, 또는 일반 역사에 까지 확대할 것인가에 따라 두 견해로 나뉘며, 본서의 내용을 연대기적으로 해석하려는 위험이 따릅니다.

상기의 해석들은 어느 것도 완전하게 만족스럽지 않은데, 이 책의 묵시적 환상들은 최후의 심판과 승리가 여러 번에 걸쳐서 극적으로 소개되므로, 연속적인 사건들을 순서에 따라 묘사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심판과 승리의 모든 역사를 그 환상 속에서 여러 번 요약한 것으로, 어린 양과 용 사이의 전투로 보는 것입니다.

참고, 김세윤 교수는 요한계시록을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는 복음의 선포 양식”으로 설명합니다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에 도미티아누스(도미티안) 황제의 통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계시록의 중심장인 4장과 5장에는 하나님께서 어좌에 등극해 계시고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예배하고, 이어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좌에 함께 앉아 계시고(하나님 우편)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모든 천사들과 온 세상으로부터 예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사자로서 새 이스라엘의 십이지파에서 12,000명씩 모은 144,000명의 군대 그리고 순교자들과 함께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사탄의 삼위일체 군대와 싸워 결국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를 완성한다는 복음 선포 양식을 사용합니다(『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131-132쪽).

본 요한계시록은 김세윤 교수의『요한계시록』과 이필찬 교수의『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그리고 존 스토트 목사의 『그리스도의 십자가』469-478쪽, 요한계시록’을 참고했습니다.

내용 요약

1. 1:1-8, 머리말
1) 1:1-2,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

* 싹난 지팡이, 신약 성경의 책들 중에서 그리스도의 승리를 가장 명확하고 힘있게 증거하는 책은 요한 계시록입니다. 이 책은 도미티안 황제(81-96년) 치하에서 조직적으로 행하여진 교회에 대한 박해와 황제 숭배의 관행이 극심해 가는 시기에 묵시적인 형식(환상)에 따라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실체를 보여줌으로써 가시적인 세상의 무대에서의 영적 싸움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1:1의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와 22:6의 “보여 주시려고”는 수미쌍관으로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주려고 쓴 글이지 감추려고 쓴 글이 아닙니다.

2) 1:3, 복이 있는 자(참고, 14:13, 16:15, 19:9, 20:6, 22:7, 14)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3) 1:4-7,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시며 그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과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 싹난 지팡이, 장차 오실 이는 성부 하나님, 일곱 영(슥 4:1-14)은 성령 하나님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성자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의 삼위일체 하나님의 특징을 설명하는 것이며 이 특징들이 서로 교차되어 예수님이 하나님되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일곱 영은 성령의 완전성을 말하며 성령이 충만하게 역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4) 1:8,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참고, 하나님, 2:8 상, 예수님, 1:5, 1:17-18).

* 싹난 지팡이, 창세기가 모든 만물의 시작(근원)을 말한다면 계시록은 이 세상 모든 것의 종말(끝)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작이시고 끝이시며 예수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종말에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하나님의 오심’ 은 그의 창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예수의 오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의 소망과 경고가 계시록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1:7, 2:5, 16, 3:3, 11, 16:15, 22:7, 12, 20). 그리고 “나는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이 모두 7회에 걸쳐 반복된 것을 주목해 보십시요(2:5, 16, 16, 3:11, 16:15, 22:7, 12, 20). 그리스도가 오실 때에 있을 심판, 곧 하나님은 심판입니다(22:12, 사 40:10, 62:11). –김세윤,『신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245-246쪽-

2. 1:9-3:22, 예수 그리스도(1:9-20)과 일곱 교회(2-3장)에 대하여
1) 1:9-20, 부활, 승귀하신 예수님
(1) 1:11, 이르되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등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2) 1:13-16,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2:1 하)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 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2:18)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2:12)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 싹난 지팡이,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구약의 제사장으로 형상화한 것입니다(참고, 4:3).

(3) 1:20,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 싹난 지팡이, 일곱 교회의 사자는 목사나 교역자를 가리킵니다.
이 책은 부활하시고 영화되셔서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하기 위하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 땅의 임금들의 머리(1:5), 처음이요 나중인 자, 산 자”(1:17-18) 등의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로마의 관할(사탄의 세력)에 있는 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가 등장합니다.

2) 2:1-3:22, 교회에 말씀하심
(1) 2:1-7, 에베소 교회 - 첫 사랑을 버린 교회
예수님의 호칭 : 2:1,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의 칭찬 : 2:2-3,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예수님의 책망 :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예수님의 권면 : 2:5상,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예수님의 경고 : 2:5하,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예수님의 약속 : 2: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2) 2:8-11, 서머나 교회 - 궁핍하지만 부요한 교회
예수님의 호칭 : 2:8,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히 13:8).
예수님의 칭찬 : 2:9상,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예수님의 책망 : 없음.
예수님의 권면 : 2;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예수님의 경고 : 없음.
예수님의 약속 : 2:10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영생의 부활).
2:11,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영벌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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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사망, 천년왕국 후에 악인들이 부활하여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계 20:10, 21:8). 이는 인간의 육체적인 죽음, 즉 이 땅에서의 삶의 끝을 말하는 첫 번째 사망과 구별됩니다. 둘째 사망 때에는 무저갱에서 놓여 나온 사탄이 최후 발악을 하여 하나님께 대항한 후 영원한 불못으로 던지우게 될 것이며 거룩한 자들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여 둘째 사망을 겪지 않게 됩니다(계 20:6). 요한계시록 20:14은 둘째 사망을 ‘불못’이라고 했는데 악의 세력의 종결을 의미하고, 이것을 랍비의 글들과 신약에서는 '영원한 형벌' 또는 '영원한 지옥'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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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12-17, 버가모 교회 - 이단을 용납한 교회
예수님의 호칭 : 2;12,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의 칭찬 : 2:13,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님의 책망 : 2:14-15,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예수님의 권면 : 2:16상, 회개하라.
예수님의 경고 : 2:16하,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예수님의 약속 : 2;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4) 2:18-29, 두아디라 교회, -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한 교회
예수님의 호칭 : 2;18,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예수님의 칭찬 ;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예수님의 책망 : 2:20,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예수님의 권면 : 2;25,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예수님의 경고 : 2:22-23, 27,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예수님의 약속 : 2;26, 28,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5) 3:1-6, 사데 교회 –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
예수님의 호칭 : 3: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
예수님의 칭찬 : 3: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예수님의 책망; 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님의 권면 : 3:2, 3,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예수님의 경고 : 3:3, 내가 도둑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약속 :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3:7-18, 빌라델피아 교회 - 연약하나 말씀을 지킨 교회
예수님의 호칭 : 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 (추상적인 표현).
예수님의 칭찬 : 3:8, 10,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예수님의 책망 : 없음.
예수님의 권면 : 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예수님의 경고 : 없음.
예수님의 약속 : 3: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 위에 기록하리라.

(7) 3:14-22, 라오디게아 교회 - 부요하지만 가난한 교회
예수님의 호칭 : 3:14,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추상적인 표현).
예수님의 칭찬 : 없음.
예수님의 책망 ; 3:15,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예수님의 권면 : 3:18,19,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의 경고 : 3;16,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예수님의 약속 : 3:20, 21,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 싹난 지팡이, 구약과 신약에서 공히 사용된 아멘(3:14)은 ‘그렇게 되소서, 정말로 그렇습니다, 진실로’ 라고 번역되는 동의와 인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계 22:21).

일곱 교회에게 말씀하심, 소아시아 일곱 개의 교회들에게 예수님께서 약속으로 부탁하신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천상 교회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 동안에 지상의 교회들이 당면한 과제입니다(참고 12장, 영적 전투). 구체적으로 각 각의 편지는 “이기는 그”에 대한 약속으로 끝나는데 이는 땅 위의 교회들을 순회하는 그리스도의 사역이 하나님의 보좌에 함께 좌정하여 사역하는 천상 사역으로 옮겨졌음을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4장은 보좌가 중심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자와 어린 양으로 묘사됩니다.

3. 4:1-16:21, 재앙과 영적 전투
1) 4:1-5:13, 하늘의 성전 환상(성도들이 보게 될 천국의 모습을 먼저 제시합니다).

1-1) 4장, 하늘의 보좌
하나님과 이십사 장로 그리고 네 생물을 묘사하여 하늘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지고하신 존엄성과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의 음침한 사건들도 여전히 어린 양의 지배하에 일어나는 사건들이며 어린 양이 이미 통치하고 있으며 그의 완전한 나라가 절정에 이를 것입니다(11:15-18).

4:1,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4:2-3, 하늘의 보좌,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5, 하나님의 일곱 영(완전한 성령), 보좌 앞의 일곱 등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 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1:4-6 참고).

* 싹난 지팡이, 4절과 5절의 순서를 바꾸면, 먼저 하나님에 대한 설명이 되고 하나님 주위에 24 장로가 앉아 있으며 네 생물과 더불어 24장로가 하나님께 경배하는 모습이 좀 더 쉽게 설명됩니다.

4:4, 이십사 보좌와 이십사 장로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4:10-11).
4:6-9,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네 생물 :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 싹난 지팡이, 이 동물의 형상들은 에스겔이 환상 중에 하나님의 네 가지 형상을 보았던 것(겔 1:10)을 근거로 하고,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길을 행진할 때 들었던 네 개의 깃발에서 연유하며, 세상 모든 민족의 대표성을 말합니다. 다른 해석으로는 스랍(사 6:2)이나 그룹(겔 1:5-25, 10:1-22)으로 24장로나 천사들처럼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하늘의 존재들로 봅니다.

4:10-11,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십사 장로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1-2) 5장, 일곱 인으로 인봉한 책
십자가의 사건으로 성취된 하나님 나라의 도래 그리고 일곱 인의 재앙(6장)을 받지 않은 십사만 사천과 흰 옷을 입은 백성들(7장)과 죄에서 회복된 만물이(참고, 창 3:18) 어린 양을 찬양하며 복음의 승리를 노래하는 것을 미리 보여 줍니다.

(1) 5:1-7, 어린 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취함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한 책(겔 2:9-10).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슥 4:10).
5:7, 어린 양이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책을 취하심.

* 싹난 지팡이, 책의 봉인이 떼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하나님 나라의 통치)이 펼쳐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책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환란과 핍박을 받는 성도가 보호받을 수 없으며 악인들에 대한 심판도 없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전개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 봉인을 떼게 되며 모두들 어린 양을 찬양합니다(5:12).

(2) 5:8-14, 어린 양을 찬양함(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함)
5:9-10,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자기 희생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5:12, 네 생물, 이십사 장로, 많은 천사들이 찬양함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5:13, 모든 만물들이 찬양함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2) 6:1-7:17, 첫번째 전개될 일곱 인의 재앙과 환란
2-1) 6장, 어린 양이 떼는 일곱 인의 재앙
인 심판의 시리즈에서 처음 네 개와 나머지 세 개가 구별되는데, 처음 네 개는 5:8-14의 네 생물에 의하여 도입되고 있으며 각기 색깔이 다른 말이 등장합니다. 그 이유는 네 생물이 피조물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보고 네 마리의 말은 슥1:8-11과 슥 6:1-8에서 기인합니다. 이 네 마리의 말은 하나님의 전령으로 열방의 심판을 상징합니다.

(1) 6:1-2, 처음 인을 뗌
6:2, 이에 내가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 싹난 지팡이, 그 당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자들은 로마에 대항하는 파르티아인들로서 대단히 용감하고 위협적인 존재임을 비유한 것으로, 흰말은 열방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2) 6:3-4, 둘째 인을 뗌
6:4, 이에 다른 붉은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 싹난 지팡이, 붉은 말은 전쟁과 살육을 상징하며, 전쟁은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쓰여졌습니다

(3) 6:5-6, 셋째 인을 뗌
6:5하-6,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내가 네 생물 사이로부터 나는 듯한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 하더라.

* 싹난 지팡이, 검은 말은 가난과 기근을 상징합니다.‘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는 평상시보다 여덟 배 비싼 가격이라고 하며 ‘감람유와 포도주를 해치 말라’고 한 것은 이러한 식용작물이 모자라므로 감람나무와 포도나무를 없애고 그곳에 밀 보리를 심는 것을 말합니다. 실제로 A.D. 92년 도미티안 황제가 곡식의 기경을 위하여 포도원의 반을 철거하도록 칙령을 내린 바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건을 심판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4) 6:7-8, 넷째 인을 뗌(참고, 사분의 일)
6: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그들이 땅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이더라.

* 싹난 지팡이, 청황색 말은 사망을 가리키며, 검(전쟁)과 흉년과 사망(역병)에 의한 땅의 짐승들에 대한 죽음이 언급되고 있는데 이는 언약적 저주의 결과를 의미하며, 이에 반대되는 개념은 사 11:6-9의 종말론적 축복으로 사람과 짐승 그리고 짐승과 짐승간의 화목한 상황을 말합니다.

(5) 6:9-11, 다섯째 인을 뗌
하나님의 공의와 주권을 위하여 순교자들을 죽인 자들을 처벌해 달라는 간구.
6:9하-11,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 싹난 지팡이, 다섯번째는 심판의 내용이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한 성도들의 신원을 위한 간구이며,‘죽임 당한 수가 차기까지’라는 것은 마지막 시대의 종말론적 심판이 바로 쌓여진 순교자들의 신원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날 것을 의미합니다.

(6) 6:12-17, 여섯째 인을 뗌
진노의 큰 날이 임할 때에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이 이 땅에 가득 차게 됩니다.
6:12-17,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 같이 되며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며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구원 받으리요) 하더라.

* 싹난 지팡이, 여섯째 심판의 영역은 땅과 우주로 확대되는데 큰 지진이 나고 해와 달과 별의 기능이 약화되는 것으로 이는 묵시적 심판의 표현(막 13:24-25, 나 24:29)이며,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우주적 질서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2-2) 7장,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삽입구, 첫번째 환란을 통과한 구원받은 백성)
7장은 첫째 재앙인 일곱 인의 재앙 중에 여섯째 인까지 뗀 후(6장), 일곱째인 사이에 삽입되어 있는 광경으로(8-9장의 나팔의 재앙도 여섯째 나팔 후에 10장이 오는 같은 구조입니다). 이는 이제껏 재앙으로 멸망 당한 자들과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서 중생한 성도들은 용과 짐승(악의 세력)들과 영적 전투를 하게 되는데, 이 전투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표현됩니다. 여섯번째 인의 심판이 마무리되면서 이 싸움에서 이긴 성도들이 하나님의 인 치심을 받은 사람들(십사만 사천 명과 흰옷을 입은 무리)입니다.

(1) 7:1-8, 하나님의 백성, 인침을 받은 십사만 사천 명(계 14:1-5, 참고)
7:1-8, 땅의 네 모퉁이에 네 천사가 섰는데 그들은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가진 자들이라 그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다른 천사가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이르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하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침을 받은 자들이 열두 지파에 각각 만이천 명씩을 십사만 사천 명이더라(참고로 단 지파는 빠져 있는데 그 이유는 특별히 설명되어 있지 않습니다).

* 싹난 지팡이, 십사만 사천 명에 대한 해석(십사만 사천 명은 6:17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대답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은 12지파의 12,000명씩 이스라엘 자손의 구약교회와 이방인의 교회를 포함하는 완전수(충만성)의 구원받은 성도를 의미하고 1,000은 구약시대의 군대 편재를 위한 한 부대의 최대 인원을 말합니다(참고, 숫자 풀이). 또한 이는 7:9-17의 수많은 무리(신약교회의 보편성)와 대비하여 구약교회의 특정성(선민으로서의 유대민족)을 말합니다.

(2) 7:9-17, 흰 옷을 입은 큰 무리
7:9-10,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7:11-12,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하더라).
7:13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7:14-17,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 싹난 지팡이, 흰옷을 입은 큰 무리,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9-14절)
이는 아브라함의 약속의 성취로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백성이며(창 13:16, 15:5, 32:12) 승리한 자들로서 구원을 노래합니다. 이들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민족의 언어)으로 구성된 예수님의 피로 씻은 흰옷을 입은 셀 수 없는 무리(신약교회)들로서 하나님의 장막 안(지속적인 임재, 요 1:14)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15절), 세상의 광야에서 양육을 받은 진정한 출애굽을 성취한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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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침을 받는다는 의미는
첫째, 봉한다는 의미로 내용물이 변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을 말한다.
둘째, 소유권을 말한다.
셋째, 그 내용이 진실하다는 것을 확증한다.
위와 같은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도들에게 인을 치시고 구원하셔서 환난 중에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자녀이심을 확증하십니다.
그리고,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던 자들을 표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19:20)는 반대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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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8:1-11:19, 두번째 전개될 일곱 나팔의 재앙과 환란
8-9장, 일곱 나팔의 재앙(일곱 인의 재앙과 일곱 나팔의 재앙은 자연계와 악인에게 심판이 집중됩니다)

3-1) 8:1-5, 일곱 나팔의 재앙의 전조
일곱 째 인을 떼실 때에, 일곱 천사가 일곱 나팔을 받았고, 다른 천사가 금향로(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향연을 올립니다. 그리고 천사가 향로에 단위의 불을 담아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납니다. 그리고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모아져서 하나님께 상달되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본격적인 나팔의 재앙이 시작됩니다.
8:2-3,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일곱 천사가 서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이더라.
8: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3-2) 8:6-9:21, 일곱 나팔의 재앙
8:6, 일곱 나팔을 가진 일곱 천사가 나팔 불기를 준비하더라.
(1) 8:7.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에 쏟아지매 땅의 삼분의 일이 타 버리고 수목의 삼분의 일도 타 버리고 각종 푸른 풀도 타 버렸더라.

(2) 8:8-9.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매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고 바다 가운데 생명 가진 피조물들의 삼분의 일이 죽고 배들의 삼분의 일이 깨지더라.

(3) 8:10-11. 셋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횃불 같이 타는 큰 별이 하늘에서 떨어져 강들의 삼분의 일과 여러 물 샘에 떨어지니 이 별 이름은 쓴 쑥이라 물의 삼분의 일이 쓴 쑥이 되매 그 물이 쓴 물이 되므로 많은 사람이 죽더라.

(4) 8:12-13, 넷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해 삼분의 일과 달 삼분의 일과 별들의 삼분의 일이 타격을 받아 그 삼분의 일이 어두워지니 낮 삼분의 일은 비추임이 없고 밤도 그러하더라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사는 자들에게 화, 화, 화가 있으리니 이는 세 천사들이 불어야 할 나팔소리가 남아 있음이로다 하더라(8:13).

* 싹난 지팡이, 이 같은 독수리의 외침은 처음 네 가지 나팔의 재앙보다 앞으로 남은 세 가지 나팔의 재앙이 더욱 가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5) 9:1-12,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9:1-3,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사단, 참고, 12:7-9)가 무저갱의 열쇠(지옥)를 받아서 저가 무저갱을 여니(참고, 20:3) 큰 화덕의 연기가 올라오고, 황충(참고, 9:7-11)이 전갈의 권세(지독한 고통을 주는 힘)를 가지고 나와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사람들을 해합니다.
9:4-6,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
9:12,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 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첫째 화, 다섯째 나팔, 9:1-12 / 둘째 화, 여섯째 나팔, 9:13-21 / 셋째 화, 일곱째 나팔, 11:15-19)

(6) 9:13-21.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9:15, 네 천사가 놓였으니 그들은 그 년 월 일 시에 이르러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기로 준비된 자들이더라.
9:16-19, 마병대의 환상(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인하여 사람이 삼분의 일이 죽임을 당합니다).
9:20-21, 여섯 번째 나팔로 인한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손으로 행한 일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고 또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둑질을 회개하지 아니하더라.

3-3) 10-11장, 천사와 두 증인(삽입구, 계시의 말씀과 교회)
여섯째 나팔이 끝나고 일곱째 나팔의 재앙 사이에 삽입된 내용(참고, 7:1-12)으로 10:1의 작은 책은 5:2의 책과 동일합니다. 이 책들이 인봉되어 열 수 없다는 것은 그 책이 열릴 때 밝혀질 구원 계획과 같은 신적 목적이나 비밀의 측면이 있음을 의미하고 요한이 그 책을 먹는 것(해석하고 깨닫게 되어)으로 연결되어 그 책(계시의 말씀)이 두 증인(세상의 모든 교회)에게 넘겨질 것을 의미합니다.

(1) 10:1-11, 천사
(1-1) 10:1-4, 힘센 다른 천사(참고, 5:2, 18:21)가 작은 책을 들고 외침.
4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레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고 하더라.

* 싹난 지팡이, 종말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는 본서에 기록한 내용이 일부분에 지나지 않다는 것과 인봉한 부분에 대해서는 지나친 상상을 삼가고 신 29:29와 롬 11:33의 말씀을 깊이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신 29:29,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참고, 병행관계, 계 5:19 (겔 2:9-10), 계 10:9-10 (겔 3:1-3)

(1-2) 10:5-7, 일곱째 나팔의 재앙이 임할 때에 복음이 성취될 것을 천사가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함.
10:8-11, 요한이 천사의 손에 있었던 작은 책을 먹고 온 세상에 예언을 시작함(겔 3:1).

* 싹난 지팡이, 10:1-11에서 힘센 천사가 일곱째 나팔의 재앙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없으며 그 전하는 소식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을 말하고(2, 5절), 말씀을 받는 선지자와 사도의 사명감(11절)을 새롭게 하여 그 책(말씀)을 깊숙이 받아들이고 깨달으라는 의미의 환상을 보여 줍니다.

(2) 11:1-14, 성전 측량과 두 증인
11장은 10장과 함께 여섯 번째 나팔과 일곱 번째 나팔 심판 사이에 끼어 있는 계시로 이 세상의 교회는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입니다.

(2-1) 11:1-2, 지팡이 같은 갈대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되(영적인 해나 모든 재난으로 보호하여 주심), 성전 밖은 측량(보호)하지 말라고 하심(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 싹난 지팡이, 성전의 두 부분의 설명은 교회 공동체가 예언(말씀)의 사역을 감당할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있지만 동시에 사단의 핍박으로 인한 고난이 주어질 것을 말합니다.

(2-2) 11:3-14, 두 증인
(2-2-1) 3-4절, 두 증인,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선지자와 부르심을 받은 성도, 교회 공동체)
나의 두 증인(슥 4:11-14)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 싹난 지팡이, 두 증인은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둘이라는 숫자는 증거가 성립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동체 단위이며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둘씩 짝지어 전도하러 보내셨습니다(눅 10:10).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에서 재림까지 존재할 것을 말합니다.

(2-2-2) 5-14절, 부활과 심판(예수님과 같은 길을 가고 있음)
5절, 누구든지 그들을 해하고자 하면 반드시 그와 같이 죽임을 당하리라.
6절, 그 예언을 하는 날 동안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아무 때든지 원하는 대로 여러 가지 재앙으로 땅을 치리로다.
7절, 무저갱으로부터 오는 짐승과의 전쟁으로 두 증인(교회 공동체)이 죽음을 당함.
8-9절,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하고 그 시체는 삼일 반 동안 방치됩니다.

* 싹난 지팡이, 저들의 시체가 삼일 반 동안을 장사 지내지 아니한 채로 있다(8-9절)는 말은 교회 공동체가 예수님께서 당하신 고난보다 더 심한 고난을 당할 수 있다는 말이나. 삼년 반 동안 왕적 제사장적인 사역을 감당하는 것으로 미루어(3-4절), 고난은 짧으나 영광은 길다는 것을 보여 주며, 이는 당시의 소아시아 교회에 가해졌던 박해와 고난에 대한 격려와 위로입니다.

11절, 삼일 반 후에 하나님께로부터 생기가 그들 속에 들어가매 그들이 발로 일어서니(부활하니).
12절, 하늘로부터 큰 음성이 있어 이리로 올라오라 함을 그들이 듣고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니.
13절,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의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에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 그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여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더라.
14절, '둘째 화는 지나갔으나' 여섯째 나팔 재앙이 지나갔다 함입니다.
'셋째 화가 속히 이르는도다' 일곱째 나팔 불 때에 환란이 연발될 것을 예고하여 성도들에게 깨어 연속적인 준비를 하라고 권고하는 계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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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이야기, 이 세상의 교회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하여야 하는가?
1. 배경
여섯 번째 나팔로 인한 재앙에 죽지 않고 남은 사람들은 회개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여러 귀신과 또는 보거나 듣거나 다니거나 하지 못하는 금, 은, 동과 목석의 우상에게 절하며(9:20-21) 그리고 이러한 환경 하에서 고난을 당하는 교회 공동체를 말합니다.

2. 본론
1) 두 증인은 땅에 주님을 향하여 서 있는 두 촛대, 즉 교회 공동체를 의미합니다(11:1-6).
(1)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2) 두 증인은 1,260일 동안 증거하는 삶을 통해 예언하게 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3) 두 증인은 두 감람나무(슥 3-4장,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왕적이며 제사장적인 특성을 가집니다.
(4) 두 증인은 구약의 엘리야와 모세의 사역을 감당하므로 선지자적 특성을 가집니다.

2) 두 증인의 죽음(영적 전쟁에서 사단은 교회 공동체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습니다(7-9절).
두 증인이 증거를 다 마칠 때에(1,260일이 다 지나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전쟁을 일으켜서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는 곳(예루살렘)에서 두 증인을 죽입니다. 그리고 저들의 시체는 큰 길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3) 두 증인의 부활과 승천(9-12절)
모든 나라와 온 누리의 안 믿는 사람들은 두 증인을 장사 지내지 못하게 하지만 두 증인은 죽은 지 삼일 반 후에 부활하여 구름을 타고 승천합니다(예수님과 같은 방법).

4) 두 증인의 승천 후(13-15절)
(1) 세상 사람들은 회개하게 됩니다.
(2) 성의 십 분의 일이 무너지고 지진으로 죽은 사람은 칠천입니다(13절, 겔 39:9, 12,14, 완벽한 심판).
(3) 세상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된 것을 찬양합니다(14-15절).
(4) 믿는 자들을 대표하는 이십사 장로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며 일곱째 나팔의 재앙이 시작됩니다(16-19절). (이필찬 교수의 『요한 계시록 강의』두 증인 이야기)

참고, 계속되는 일곱 인의 재앙(사분의 일)과 일곱 대접의 재앙(삼분의 일)과는 대조적으로‘두 증인이 승천 후’에는 세상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므로 심판의 대상은 상대적으로 적습니다(성의 십분의 일). 죽은 사람이 칠천이라는 말씀은 인치심을 받은 십사만 사천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은 수이나 칠천이라는 의미는 7이라는 완전수에 1,000이라는 많은 수가 곱해져서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완벽한 심판을 나타냅니다(『싹난 지팡이 신약』3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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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1:15-19, 일곱 째 나팔
11: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나라 - 천년 왕국과 새 하늘 과 새 땅, 21-22장)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시리로다 하니(계 10:7, 하나님의 비밀, 『싹난 지팡이』사복음서 23쪽, 요한복음의 구원 참고).
11:16-17,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1:8, 4:8, ‘장차 오실 자’에서 바뀐 칭호)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1: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 싹난 지팡이, 일곱째 나팔을 불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나라가 되어 그리스도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라고 선포되며,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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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의 핵심은 십자가 복음"

“요한계시록 12장은 ‘하늘에서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그 주제는 ‘전투하는 교회’ 혹은 ‘영적인 전투의 판도를 읽자’이다. 그만큼 12장은 우리가 영적 전투에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를 보여 준다. 지금 시대는 ‘영적으로 둔감한 시대’이다. 자본주의 때문에 물질주의가 만연했기 때문이다. 물질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물질을 추구하고 물질 중심의 사고 구조가 형성되면서 성경적 진리와 영적인 판도에 무관심해졌다. 12장은 영적으로 둔감해진 시대에 대한 성경의 답변이다”라고 강의를 시작했다.

이 박사는 “요한계시록의 중심 주제가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가 어떻게 존재했으며, 지금 어떻게 존재하고 있고, 장차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단순히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시간적 순서로 나열한 재림 중심의 시나리오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교회의 그림은 ‘승리하는 교회’와 ‘전투하는 교회’이며, 이 둘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본래 하나이다. 그러나 두 모습에는 시간적인 차이가 있다. 전투하는 교회는 현재의 모습이고, 승리하는 교회는 미래의 모습이다. 이 세상에 현존하는, 전투하는 교회의 본질은 승리하는 교회이다”라고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교회를 정의했다.

이 박사는 12장을 주해하면서 “12장 초반에는 두 가지 표적이 등장한다. 여기서 표적은 일어났거나 혹은 일어날 사건이나 사실을 이해하고 통찰력을 갖도록 도와 주는 지시자 역할을 한다. 1-2절에서 여인이 아들을 낳는 표적과 3절 이하에서 여인이 낳으려는 아들과 여인을 용이 쫓는 표적이 나온다. 두 표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표적에서 여인은 해를 입고, 달이 그 발 아래 있으며 열두 면류관을 쓰고 있다. 이 구절은 창세기 37장 9-10절을 그 배경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인은 교회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해와 달과 별은 영광의 빛을 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인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가리킨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2절에 등장하는 아들은 ‘만국을 철장의 권세로 목자가 양을 치듯이 다스리실 것’(5절)이라는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여인이 아들을 낳았다는 말은 구약의 교회(이스라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가 나셨다는 뜻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박사는 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용의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이라는 표현은 다니엘서 7장 6-24절을 배경으로 한다. 다니엘서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 백성을 핍박하는 사단의 세력을 네 짐승으로 표현한다. 네 짐승의 머리를 합하면 일곱이며, 뿔이 열이다. 그러므로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용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 혹은 사단의 세력이다”라고 말했다.

5-6절에 대해서 이 박사는 “’아들이 보좌 앞으로 올라가자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여 1,260일을 있었다’는 말은 그리스도가 승천하신 후에 교회가 사단의 핍박을 피하여 하나님이 예비하신 양육의 처소에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본문은 출애굽 후의 광야 생활을 연상케 한다. 광야는 종말의 시대가 고난의 시대임을 암시한다. 성도들은 인생 광야에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양육을 받는다. 다니엘서 7장 25절과 다니엘서 12장 7절에 따르면, 1,260일은 초림에서 재림까지의 기간을 뜻한다. 즉 종말 시대 전체를 뜻한다”라고 강조했다.

하늘에서 일어난 전쟁을 소개하는 7-12절에 대해 이 박사는 “다니엘서 10장 20-21절과 다니엘서 12장 1절에 따르면, 미가엘은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원 사역을 대행하는 자로 메시야의 예표이다. 용과 그 사자들이 하늘에서 쫓겨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참소하던 사단이 그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이후, 사단은 죄에 대한 권세를 상실하였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11절,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를 설명하면서 이 박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어린양의 피)와 복음(증거의 말씀)은 성도들이 사단의 세력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궁극적인 원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승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황제를 숭배하면, 즉 사단의 세력에 굴복한다면 승리는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생명을 걸고 순교하는 각오로 사단의 세력과 싸워야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된다. 그러므로 황제를 숭배하면, 즉 죄악에 굴복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 ‘예수님이 문 밖에서 두드린다’(계 3:20)는 말씀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메시지다.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미지근한 자를 토하여 내치리라’(계 3:16)는 메시지가 주어졌다. 교회가 복음을 너무나 쉽고 편안한 내용으로 전하고 있다. 복음은 하나님의 통치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3-14절을 주해하면서 이 박사는 “ ‘땅으로 내어쫓긴 용이 여자를 핍박하고, 여자는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로 날아가 양육을 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사단이 교회를 핍박하지만, 교회가 하나님의 독수리 같은 구원의 능력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우리를 죄로부터 해방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독수리같이 비상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15-17절에 대하여 이 박사는 “하늘에서 쭃겨난 용이 교회를 핍박하지만, 하나님은 교회를 철저하게 보호하신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요한계시록의 핵심 사상이다. 교회는 현재 땅에 있으면서 사단의 공격을 받지만, 동시에 하늘에 속하고 하늘에 존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 가운데 있다. 마지막으로 17절은 미래에 하나님의 나라와 사단의 세력 사이의 치열한 전쟁이 있을 것임을 예고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 영적 전투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이구동성으로 “8주 과정이 너무 짧고 아쉽다. 12주 과정으로 늘렸으면 좋겠다. 6월에도 시카고에서 다시 강의를 해달라.” 는 등 아쉬움을 표했다.


다음은 이필찬 박사와의 인터뷰 요약이다.
-요한계시록연구소 사역은 언제 시작했는가?
2012년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원 대학을 그만두면서 시작했고,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요한계시록학교를 열게 된 계기는?
<요한 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를 출간한 후 한국교회의 현장을 접하게 되었고, 한국교회가 요한계시록에 대한 오해로 인해 열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자각 증세도 없이 심각한 열병을 앓고 있다는 점이 걱정스러웠다. 한편에서는 많은 거짓 선생들이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내용이나 이미 잘못된 것으로 판명된 내용을 가르치면서 수많은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었다.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인 성도들은 비뚜러진 세계관과 종말관을 지니게 되어 정상적인 영적 성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연구소와 요한계시록학교를 준비하게 되었다.

-신학교 교수로 재직하던 때와 현재가 어떻게 다른가?
연구소 사역과 강연활 동을 하면서 나의 지평이 확대되었다. 수많은 지역 교회의 성도들을 만나면서 한국교회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되었다. 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저서와 강연이 한국교회에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1999년 출간된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와 2006년에 출간된 <내가 속히 오리라>가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꾸준하게 읽히고 있다. 특히 <내가 속히 오리라>를 통해 요한계시록 설교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목회자들을 많이 만났다.

-‘신천지’나 이단적 종말론에 취약한 한국교회의 신학적 토양 덕분에 유명해진 것은 아닌가?
그런 측면도 있겠지만 내 책이 요한계시록에 대한 새로운 시도이기 때문에 널리 알려진 것 같다. 잘못된 선입관으로 요한계시록을 해석하고 설교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한편에서는 요한계시록을 재림에 대한 시나리오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요한계시록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리스도의 성육신, 십자가, 부활, 승천을 모두 포괄하는 복음)을 중심으로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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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는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며, 문자적인 묘사에 압도당하기보다 그 속에서 메시지를 읽을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징들, 그림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것은 구약 체계에서 나오고, 근동의 신화에서 나오기도 하고, 헬라 신화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배경을 알아야 하고, 당시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하며, 특히 요한 계시록 내의 구조적인 특징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Chapter 1. 역사적 배경

요한계시록은 주후 90년대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의 황제 숭배 강요와 핍박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상황화하여 선포한 것입니다. 계시록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선 계시록의 신학이 괸장히 상황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계시록에서 선포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 역시 당시 로마 제국의 상황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그 근저에는 로마 권력에 대한 비판의 정신이 깔려 있습니다.
당시 로마제국은 한편으로는 군사적인 정복으로 확립된 황제의 강력한 정치적 독재를, 또 한편으로는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풍요라는 Pax Romana(로마의 평화)를 통치 이데올로기의 두 기둥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두 상징들인 ‘짐승’과 ‘바벨론의 음녀’는 그러한 로마의 양면을 묘사합니다.

     1. Pax Romana의 유혹
계시록에는 음녀가 짐승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17:3). 왜냐하면 로마시의 번영과 영향력은 제국군대의 힘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음녀는 동시에 많은 물 위에 앉아 있으며 땅의 왕들과 음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17:1,2). 이는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다스리되, 분봉왕들을 비롯한 지배계급의 협조를 받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제국내의 백성들은 로마의 통치를 받아들이도록 제국의 이념에 의해 설득되었습니다.
즉 제국의 백성들이 로마의 통치에 잘 복종하면서 세금 잘 내고 법을 잘 지키고 살면, 로마는 강력한 힘으로 제국 백성들의 안녕을 지킬 것이고, 제국 내의 시민들에게 자유로운 무역을 통한 경제적 번영과 평화를 약속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가 제국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선전하였던 Pax Romana입니다. 마치 2차대전 당시 일본 제국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창했던 것과 흡사합니다. 계시록은 이 팍스 로마나의 이념을 기만적인 환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2. 황제 숭배의 강요
요한계시록에서 짐승(로마 황제)은 거의 불사의 존재로 묘사됩니다. 짐승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서도 다시 회복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외칩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며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13:4). 이는 구약의 모세의 노래에 나오는 하나님의 힘에 대한 송축을 빗댄 것으로(출 15:11), 로마가 무적의 힘을 가진 듯한 인상을 갖게 합니다. 당시 로마는 네로의 자살 이후 혼란스러운 네 황제의 시대를 거치면서 힘이 약화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플라비우스(Flavius) 왕조와 함께 제국의 권력은 붕괴 직전에서 회복되었습니다.
이 짐승이 하나님을 모독하며, 자기를 절대화하고,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종교적인 숭배와 충성을 요구합니다(13장).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의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주와 하나님’(dominus et deus)으로 부를 것을 강요하였으며, 그것으로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려 했습니다. 요한이 사역했던 아시아의 여러 곳에서도 황제 숭배를 위한 신전들이 세워졌습니다. 황제 숭배는 종종 피지배자들의 자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16장과 19장에서 거짓 선지자로 불리는 두 번째 짐승이자 땅의 짐승이 첫 번째 짐승인 바다 짐승의 형상을 세우고 그것에 예배를 강요함으로써 황제 숭배를 고무하는데, 이 두 번째 짐승은 아시아 지방 도시들의 지배자들로서 “제국 제사장” 노릇을 했던 자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황제를 ‘주’로 숭배하도록 하는 조치는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과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 사도적 복음의 깊고 절실한 상황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요한은 로마 권력에 대해 철저한 선지자적 비판을 가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요한계시록은 가장 강력한 정치적 항거의 문학입니다. 단지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해서 그리스도인들이 로마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이 악한 로마의 체제에서 스스로의 신앙적 정체성을 지켜야 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에 대한 전면적인 핍박은 아직 일어나고 있지 않았습니다.
비록 순교들이 있었지만 핍박은 산발적이었고 지역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로마권력의 본질을 볼 때, 만약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증거에 신실하다면, 로마의 신적 기만과 그들의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증거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충돌을 겪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에 항거하는 힘은 오직 한 분이신 진정한 하나님에 대한 신앙에서 나옵니다. 요한에게서 하나님께 대한 비전은 어느 무엇에도 비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속적인 권력 위에 계신 분입니다. 요한은 하나님과 하늘에 대한 환상에 비추어, 로마의 권력을 상대화시키고, 황제를 신격화하려는 로마의 기만을 폭로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의에 비추어 볼 때 로마의 압제와 착취는 정죄를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주권에 비추어 볼 때, 로마의 절대 권력 주장은 신성모독이며 그 독재적이고 불의한 통치도 망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Chapter 2. 책의 성격


1. 서신 형태로 보내진 묵시적 예언(1)
“계시록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의 저자는 이에 대해 세 가지로 정의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책을 ‘계시’라고 합니다(1:1). ‘아포칼립시스’(apocalypsis)란 말은 ‘하늘에 감추어진 비밀’이란 말입니다. 비밀이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말합니다. 바울도 이런 의미로 비밀이란 말을 쓰지요?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롬 11:25).
바울이 말한 비밀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곧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기까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악하게 된 것인데,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면 하나님의 심판이 풀려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구원의 계획을 비밀이라고 합니다.

Chapter 2. 책의 성격

1. 서신 형태로 보내어진 묵시적 예언(2)
하늘에는 이 구원의 계획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지자나 묵시자에게 미리 보여 줍니다. ‘눈으로’, 혹은 ‘귀로’ 보여 줍니다. 그렇게 보여 준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 계시가 앞으로 땅 위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것을 미리 선포하는 것을 묵시, 곧 ‘아포칼립시스’라고 합니다.
두번째로,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합니다(1:3). 예언이라는 말은 공예배 때에 크게 읽혀지도록 교회에 주어지는 하나님 구원 계획의 계시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하나님의 이 구원 계획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예언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습니까? 서신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발신자는 요한이고,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묵시적 예언 (apocalyptic prophecy)으로서, 로마 제국의 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들에 보내진 순회서신의 형태로 기록된 책입니다.

2. 정교한 문학작품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공부하면, 이 책이 놀라운 기술과 엄청난 정성으로 기록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주 정교하게 조직된 문학 작품입니다. 요한이 엄청난 환상을 경험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술술 풀기만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양의 구약 본문들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책 내에 무수한 상호참조 등의 문학적 장치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환상의 경험들을 오랜 기간 묵상하면서 구약성경의 예언의 틀과, 예수 전승과, 당시 로마 제국의 상황과, 당시 로마 제국 내의 아시아 교회들이 처한 문제들에 비추어 신중하게 해석하여 완전한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들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계시들의 의미들까지 함께 전달하기 위해 구약, 예수 전승, 사도적 케리그마, 로마 제국의 상황, 당시 교회들의 당면 문제들을 서로 연관시켜 해석하여 마침내 정교한 문학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1) 풍부하고 다양한 이미지들
요한계시록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사용되었으므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의 형상들과 이방종교의 화려한 형상들이 복합된 표상들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반대표상들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 문명을 의인화한 여신 로마의 상이 아시아의 여러 신전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로마라는 여신을 로마의 창녀 곧 바벨론의 음녀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구약의 이세벨과 같은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로마 제국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합니다.
로마라는 여신은 모든 백성들의 어머니로서 로마 제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풍요와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을 표방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로마 여신을 이세벨 같은 음녀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제로는 제국의 백성들을 속이고 착취하는 마녀라고 폭로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비즐리 머레이라는 사람은 계시록의 이미지를 오늘날의 정치적인 만화에 비유하였습니다. 냉전 시대의 서양 신문들을 보면 러시아를 무지막지한 곰으로 표현하고, 미국은 바짝 마르고 링컨같이 생긴 엉클 샘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 막강할 때에는 수사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정치 풍자만화와 같이 로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로마를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무자비한 짐승이고 또 하나는 음녀입니다. 로마 제국의 양면을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모든 민족들을 제압해서 짓밟는 저항할 수 없는 막강한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가진 존재로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 복종해서 세금내고 법을 잘 지키면 지중해 공영권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무역하면서 함께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팍스 로마나의 선전자로서의 모습입니다.

2) 이미지들의 해석: 문학적 장치, 구약과 고대 근동의 신화, 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의 이해
우리가 계시록의 이미지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시록은 주도면밀한 문학적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선 책 속에서 해석의 실마리들을 얻어야 합니다. 상호참조의 구조를 풀어내고, 평행들과 대조점들과 암시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또 하나, 계시록의 이미지들을 풀어내려면 구약과 더불어 고대 근동의 신화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뱀 또는 용은 악의 근원으로서 리워야단의 신화 즉 카오스(Chaos)의 바다에서 나오는 사탄의 전형을 상징하는데, 이는 곧 창세기 3:14의 뱀이기도 하고 이사야 27:1의 리워야단이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로마 제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풀어야 합니다.
한 예로, 9장과 16장에서 동쪽으로부터의 침략 사상이 나타납니다. 동쪽으로부터 침략군이 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1세기 당시에 로마 제국이 파르티아 제국의 침략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파르티아 기병대가 로마 제국을 침략해서 잔인하게 파괴하리라는 두려움이 펴져 있었는데, 그 참략군의 선봉 장군이 누구냐 하면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짐승’입니다.
이는 곧 네로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네로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네로가 다시 올 거라고 여겼습니다. ‘환생하는 네로’에 대한 신화입니다. 즉 네로가 환생해서 파르티아의 기병대를 몰고 로마 제국으로 와서 복수하고 파괴하리라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요한은 그 신화를 사용해서 당시에 만연한 재앙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이미지들을 이해하려면 구약 및 근동의 신화 곧 사용된 이미지들의 뿌리를 알아야 하며, 로마 제국의 표상들,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 책 속의 복잡한 문학적 구조 등을 살핌으로써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1. 서신 형태로 보내어진 묵시적 예언(2)
하늘에는 이 구원의 계획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지자나 묵시자에게 미리 보여 줍니다. ‘눈으로’, 혹은 ‘귀로’ 보여 줍니다. 그렇게 보여 준 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그 계시가 앞으로 땅 위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앞으로 전개될 것을 미리 선포하는 것을 묵시, 곧 ‘아포칼립시스’라고 합니다.
두번째로, 저자는 이 책을 가리켜 ‘예언’이라고 합니다(1:3). 예언이라는 말은 공예배 때에 크게 읽혀지도록 교회에 주어지는 하나님 구원 계획의 계시이면서, 동시에 교회가 하나님의 이 구원 계획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이 예언이 어떤 형태를 띠고 있습니까? 서신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발신자는 요한이고, 수신자는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은 묵시적 예언 (apocalyptic prophecy)으로서, 로마 제국의 아시아 지방의 일곱 교회들에 보내진 순회서신의 형태로 기록된 책입니다.

2. 정교한 문학작품
요한계시록을 자세히 공부하면, 이 책이 놀라운 기술과 엄청난 정성으로 기록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주 정교하게 조직된 문학 작품입니다. 요한이 엄청난 환상을 경험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가 경험한 것을 그대로 술술 풀기만 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엄청난 양의 구약 본문들에 대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책 내에 무수한 상호참조 등의 문학적 장치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자기가 받은 환상의 경험들을 오랜 기간 묵상하면서 구약성경의 예언의 틀과, 예수 전승과, 당시 로마 제국의 상황과, 당시 로마 제국 내의 아시아 교회들이 처한 문제들에 비추어 신중하게 해석하여 완전한 문학 작품을 창작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들을 그대로 전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계시들의 의미들까지 함께 전달하기 위해 구약, 예수 전승, 사도적 케리그마, 로마 제국의 상황, 당시 교회들의 당면 문제들을 서로 연관시켜 해석하여 마침내 정교한 문학작품으로 만든 것입니다.

1) 풍부하고 다양한 이미지들
요한계시록에는 많은 이미지들이 사용되었으므로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로마 제국의 권력의 형상들과 이방종교의 화려한 형상들이 복합된 표상들에 대하여 기독교적인 반대표상들이 대립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로마 문명을 의인화한 여신 로마의 상이 아시아의 여러 신전에 모셔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로마라는 여신을 로마의 창녀 곧 바벨론의 음녀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를 구약의 이세벨과 같은 그림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로마 제국의 진정한 모습을 깨닫게 합니다.
로마라는 여신은 모든 백성들의 어머니로서 로마 제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풍요와 평화를 가져다 주는 것을 표방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로마 여신을 이세벨 같은 음녀의 모습으로 묘사함으로써 실제로는 제국의 백성들을 속이고 착취하는 마녀라고 폭로하는 것입니다.
계시록에는 독자들의 상상력을 유발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비즐리 머레이라는 사람은 계시록의 이미지를 오늘날의 정치적인 만화에 비유하였습니다. 냉전 시대의 서양 신문들을 보면 러시아를 무지막지한 곰으로 표현하고, 미국은 바짝 마르고 링컨같이 생긴 엉클 샘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영국이 대영제국으로서 막강할 때에는 수사자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런 정치 풍자만화와 같이 로마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계시록에서는 로마를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무자비한 짐승이고 또 하나는 음녀입니다. 로마 제국의 양면을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무력으로 모든 민족들을 제압해서 짓밟는 저항할 수 없는 막강한 정치적, 군사적 힘을 가진 존재로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에 복종해서 세금내고 법을 잘 지키면 지중해 공영권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무역하면서 함께 번영을 누리게 된다는 팍스 로마나의 선전자로서의 모습입니다.

2) 이미지들의 해석: 문학적 장치, 구약과 고대 근동의 신화, 로마제국의 정치적 상황 등의 이해
우리가 계시록의 이미지들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계시록은 주도면밀한 문학적 구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우선 책 속에서 해석의 실마리들을 얻어야 합니다. 상호참조의 구조를 풀어내고, 평행들과 대조점들과 암시들을 면밀히 검토해야 합니다.
또 하나, 계시록의 이미지들을 풀어내려면 구약과 더불어 고대 근동의 신화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뱀 또는 용은 악의 근원으로서 리워야단의 신화 즉 카오스(Chaos)의 바다에서 나오는 사탄의 전형을 상징하는데, 이는 곧 창세기 3:14의 뱀이기도 하고 이사야 27:1의 리워야단이기도 합니다. 또한 당시 로마 제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풀어야 합니다.
한 예로, 9장과 16장에서 동쪽으로부터의 침략 사상이 나타납니다. 동쪽으로부터 침략군이 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는 실제로 1세기 당시에 로마 제국이 파르티아 제국의 침략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파르티아 기병대가 로마 제국을 침략해서 잔인하게 파괴하리라는 두려움이 펴져 있었는데, 그 참략군의 선봉 장군이 누구냐 하면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올 짐승’입니다.
이는 곧 네로를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네로는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당시 많은 사람들이 네로가 다시 올 거라고 여겼습니다. ‘환생하는 네로’에 대한 신화입니다. 즉 네로가 환생해서 파르티아의 기병대를 몰고 로마 제국으로 와서 복수하고 파괴하리라는 두려움이 널리 퍼져 있었는데, 요한은 그 신화를 사용해서 당시에 만연한 재앙과 불안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의 이미지들을 이해하려면 구약 및 근동의 신화 곧 사용된 이미지들의 뿌리를 알아야 하며, 로마 제국의 표상들,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 책 속의 복잡한 문학적 구조 등을 살핌으로써 해석의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3) 피해야 할 실수 두 가지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실수를 피해야 합니다. 첫째로, 계시록의 이미지들을 시공을 초월한 상징들로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피해야 합니다. 계시록의 이미지들은 당시 일곱 교회가 처한 상황성에 합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선은 당시의 상황성 속에서 이미지들을 해석해야지, 시간 및 공간과 관계없는 초월적인 차원에서 해석하려고 시도해서는 안 됩니다. 1세기 말 당시의 원래 독자들의 사회, 정치,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둘째는 그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지나치게 문자적인 해석을 시도해서도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의 예언들을 너무 문자적으로 이해하여, 마치 그것이 실제의 역사 속에서 일어날 구체적인 사건의 그림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예컨대, 일곱 나팔과 일곱 대접의 재앙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이 역사 속에서 그런 순서대로 일어난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과 이미지 속에서 전달하려는 신학적인 의미를 헤아려야지, 역사 속에서 그런 순서대로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Chapter 3. 구조상의 특징들

1. 서론(1-3장)
요한계시록은 1-3장까지가 서론이고, 그 중에서 2-3장은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각기 짤막한 편지들입니다. 계시록 전체가 하나의 편지인데, 그 안에는 일곱 교회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들이 있습니다. 간략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들입니다. 그 메시지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시 일곱 교회들이 처한 구체적인 상황들입니다.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일곱 메시지들은 사도가 갖고 있던 각 지방의 상세한 지식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달리 말하면, 사도 요한이 그 지역에서 사역하던 사람이었으며, 일곱 교회들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일곱 메시지들은 그 자체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각 메시지가 나머지 4-22장까지 내용의 서론 역할을 합니다. 각 메시지를 끝내는 부분에서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이 포함된 것을 주목하십시오. 책의 뒷부분에서 이기는 자들이 등장하고, 그들이 무엇에 대해 이기는지가 밝혀집니다.
이기는 자들에 대한 약속의 형태는 이 책의 절정 부분에서, 곧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일곱 교회들에 주어진 “이기라”는 명령은 책 중심부에 묘사된 종말의 전쟁을 싸우라는 명령이며, 그럼으로써 책의 마지막에 있는 종말의 영광에 이르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결국 일곱의 메시지는 책의 나머지 부분에 대한 일곱의 다른 서론들입니다. 비록 넓은 관점에서는 일곱 교회가 로마 제국의 독재라는 공통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지만, 동시에 계시록은 일곱 개의 다른 관점에서 읽혀져야 합니다. 요한은 일곱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악에 대한 하나님의 우주적인 싸움과 하나님의 나라를 구현하는 종말론적 목적에 각 지역 교회의 문제들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보여 주며, 그리하여 그 문제들이 그런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2. 기본장(4-5장)
4-5장이 중심장 혹은 기본장입니다. 4장에서 요한은 하늘로 들림받아 하늘에서 하나님의 어전회의를 봅니다. 거기에서 온 세상을 대표한 네 생물들과 이십 사 장로들이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중요한 숫자로서 넷은 온 세상, 즉 족속과 방언과 민족과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일곱은 충만을 의미하며, 열둘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과 이십사(12x2) 장로들은 온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 모두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예배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5장에서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어좌에 등극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모습으로 등극해 있습니까?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모습으로 등극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온 세상을 사탄의 통치로부터 속량하시는 방법이 죽임당한 어린양의 방법이란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속죄제를 통해 사랑의 방법으로 그 일을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온 세상을 대표하는 네 생물들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대표하는 이십 사 장로들과, 천천의 천사들이 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4-5장은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이는 앞으로 지상에서 역사적 사건으로 성취되도록 결정되어 있습니다. 요한은 바로 그것을 계시받아서 선포합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하나님의 “비밀”이 일곱 겹으로 봉인된 책 속에 쓰여 있습니다.
6-16장까지는 그 책의 봉인들을 뗄 때에 일어나는 하나님의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인봉들을 뗌, 나팔 붐, 대접들을 쏟아 부음 등 세 개의 시리즈로 계시되어 있습니다.

3. 심판/재앙의 세 시리즈들
요한계시록을 피상적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요한계시록을 읽고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으면, 무시무시한 세 개의 심판 시리즈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요한계시록의 중심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는 단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것에 대한 경고의 차원입니다. 당시 로마의 선전 이데올로기인 팍스 로마나의 달콤한 술에 도취되어 황제를 숭배하고 살면, 그것은 곧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거짓 삼위일체의 통치를 따르는 것으로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처음에 여섯 개의 인봉들을 떼는 부분이 6:1-17까지입니다. 각 인을 뗄 때마다 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일곱째를 떼야 하는데, 일곱째 인을 떼는 것은 8:1-3 사이입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7장이 삽입장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삽입장인 7장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유다의 사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새 하나님의 백성 열두 지파로부터, 각 지파에서 12,000명씩 총 144,000명의 군대를 동원해서 메시아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용과 짐승과 땅 짐승(거짓 선지자)과의 메시아 전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전쟁이 무엇입니까? 여기서 12지파는 교회이며, 144,000은 군대인데, 동시에 순교자가 될 숙명으로 인침을 받습니다. 순교자가 되어서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메시아 전쟁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중세 시대의 십자군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슬람식의 성전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메시아 전쟁의 내용은 복음 선포입니다. 죽임당한 어린 양의 투쟁을 계승하는 것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용어로 말하면 “예수의 증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하신 증거입니다. 예수가 무엇을 증거하였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하심입니다.
지금 사탄의 거짓 삼위일체 통치는 성부와 예수와 성령의 삼위일체의 패러디에 불과합니다. 그러한 허위를 폭로하고 참 하나님과 참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거룩한 전쟁의 내용입니다. 메시아의 군대가 수행하는 싸움입니다. 그리하여 그들 역시 예수와 마찬가지로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좌 앞에서 구원하십니다. 그들이 보좌 앞에서 “우리의 피를 신원해 달라”고 부르짖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동료의 수가 찰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일곱째 인봉이 떼어졌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일곱 개의 나팔을 부는 또 하나의 심판들이 벌어집니다. 여기에서도 꼭 같은 구조입니다. 일곱 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8:1-9:13까지 하나에서 여섯째까지 나팔을 불 때마다 대재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일곱 인봉을 뗌으로 인해서는 땅의 1/4이 멸망하고, 일곱 나팔 붐을 인해서는 땅의 1/3이 멸망합니다. 그런데 일곱째 나팔이 불어져야 하는데, 일곱째 나팔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습니까? 11:15에 가서야 비로소 일곱째 나팔이 불어집니다. 다시 말하면, 10:1-11:13까지가 삽입장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의 구조를 보면 7장의 삽입장의 경우와 똑같습니다. 교회가 거룩한 전쟁을 하고, 순교를 당하고, 그러나 결국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경고의 심판과 교회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 선포, 예수의 증거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치 않은 자들에게는 일곱 번째 나팔이 불려집니다. 그들에게는 일곱 대접이 쏟아 부어지는 심판이 거행됩니다. 여기에서는 보다시피 삽입장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됩니까? 일곱 대접이 쏟아 부어지는 재앙만이 있을 뿐입니다.

4. Program statement(11장)
그런데 이 삽입장 중에서 11장은 요한계시록의 본론 전체에 대한 program이 제시된 장입니다. 11장이 요한계시록 전체의, 그러니까 본론의 내용을 설명하는 program statement입니다. 여기서 11:1-3절은 교회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증언을 통한 짐승과의 전쟁, 곧 성전(The Holy War)입니다. 그 성전의 과정이 12-14장에 걸쳐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승리합니다. 역설적으로, 죽임을 당함으로써 승리를 얻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임 당함으로 승리했듯이, 성전을 수행하는 교회의 군대도 순교의 죽임을 당함으로써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 승리가 15장에 전개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승리한 순교자들이 하늘나라의 유리 바다 앞에서 출애굽한 백성이 홍해를 건너고 모세의 노래를 했듯이 하나님을 칭송하는 노래를 합니다. 순교자들이 짐승과의 거룩한 전쟁을 통해서 승리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온 세상이 회개하는 것입니다. 소수 7천을 제외하고는 온 세상이 회개합니다. 이 7천은 온 세상의, 온 인류의 1/10이라는 것입니다. 이 7천에게는 일곱째 나팔이 불려집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해도 이들은 끝내 듣지 않았으므로, 이들에게는 일곱째 나팔이 불려집니다.
그렇게 일곱째 나팔을 부는 것이 16장에서 일곱 대접들을 쏟아 붓는 재앙으로 전개되고, 그것이 17-18장에서 바벨론의 멸망으로 설명됩니다. 그러나 그 7천을 제외하고는 다 회개하여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그것이 19-22장에서 전개됩니다.
이상에서 벌써 여러 차례 암시를 했지만, 이런 숫자들은 다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 땅의 1/3이 멸망하고, 1/4이 멸망했는데, 어떻게 나중에는 1/10만 멸망한다는 것입니까? 이런 것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구약의 엘리야 이야기를 뒤집은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에는 하나님께 신실했던 오직 7천의 수만이 남겨지고 구원을 받습니다. 나머지는 다 바알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종말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온 세계, 온 인류가 사탄에게 가버리고 7천의 수만이 구원받는다면 하나님이 지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그것을 뒤집고 있습니다. 아주 소수만이, 7천의 수만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거역하므로 멸망을 당하고, 그 외에 온 세상은 회개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자세히 읽으면 얼마나 긍정적인 책인지 모릅니다. 7천이란 숫자는 충만한 숫자 일곱에, 많은 수를 상징하는 천이라는 숫자가 겸해 있으니 아주 많은 수를 나타냅니다. 그래도 전체에 비하면 1/10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한국 교회는 근본주의적이고 문자적인 해석의 분위기가 만연된 가운데, 전혀 신학적인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계시록의 해석이 왜곡되어 왔습니다. 산속에 가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깨달았다고 하는 자들이 출현하기도 하고, 특히 미국의 근본주의 세대주의자들의 종말론 영향을 받은 자들이 예수께서 재림하여 순교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통치하다가 종말의 7년 환난이 어떻고 하는 식으로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종말에 어떤 사건들이 드러날 것이라고 하는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책이 아니며, 문자적인 묘사에 압도당하기보다 그 속에서 메시지를 읽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징들, 그림들을 해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것은 구약 체계에서 나오고, 근동의 신화에서 나오기도 하고, 헬라 신화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런 배경을 알아야 하고, 당시 로마 제국의 정치적 상황을 알아야 하며, 특히 요한계시록 내의 구조적인 특징들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1. 신론

1) 특유의 신적 명칭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에 관한 특유의 명칭을 사용합니다.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 “전능자 주 하나님,” “보좌에 앉으신 이”와 같은 하나님에 관한 특유의 명칭을 도입하여, 이 중에서 두 번째 것이 다섯 번 언급되었으며, 나머지 세 개의 명칭들은 각각 일곱 번씩 언급되고 있습니다.
7이란 완전수, 충만의 수를 의미합니다. 이 책 전체에는 일곱 개의 축복들이 또한 언급되어 있기도 한데(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이것이 신실한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복의 충만을 가리키듯이, 일곱 번에 걸쳐 언급된 하나님의 명칭은 신적 존재의 충만함을 가리킵니다. 이처럼 이 책에는 요한의 신학적 의미가 주도면밀하게 문학적 구조 속에 녹아있으며, 이로써 묵시의 이해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맞물려서 확장되도록 만들어 줍니다.

(1) 알파와 오메가(1:7, 1:17, 21:6, 22:13): ‘시작과 나중,’ ‘처음과 끝’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처음과 나중”이란 이사야에서 따온 말입니다(44:6, 48:12). 이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말하는데, 특히 바벨론의 우상과 대적하여 논쟁적으로 사용된 하나님의 칭호입니다. 계시록에서는, 당시 로마의 우상숭배에 대항해서 하나님만이 참된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나타내려는 칭호입니다.
(2)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1:8, 4:8, 11:17, 15:3, 16:7): 이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출 3:14)의 해석입니다. 여기서 세 번째 단어인 “장차 오실 이”는 be동사의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분사형인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도래를 단순히 미래에 있을 사건으로 본 것이 아니라, 환상 속에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도래가 현재적으로도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3) 전능하신 주 하나님(1:8, 4:8, 11:17, 15:3, 16:7, 19:6, 21:22): 구약의 ‘만군의 여호와’를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대적할 수 없는 분, 만물보다 뛰어난 힘과 역사를 주관하시는 그의 주권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4) 보좌에 앉으신 이(4:9, 5:1,7,13, 6:16, 7:15, 21:5): ‘보좌’는 계시록의 중심적인 상징 중 하나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며, 그와 더불어 예배의 이미지가 통합된 것입니다. 예배와 통치의 이미지가 통합된 것은 구약과 유대 묵시주의 전통에 따른 것이면서, 또 한편으로 계시록의 상황과도 상통합니다. 로마 제국은 그 막강한 권력을 황제숭배라고 하는 종교적인 형태로 시위하였습니다. 로마의 신적 통치의 찬탈은 짐승에 대한 세상적인 숭배로 나타나고 있습니다(13:4, 8, 12). 그러나 요한 계시록은 하나님을 보좌에서 예배받으시고 통치하시는 분으로 제시함으로써, 로마의 권력과 황제 숭배를 하늘보좌의 패러디일 뿐임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2) 심판하는 하나님의 거룩성
계시록 전체는 주기도의 세 간청의 성취의 비전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위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9-10). 4장에서 네 생물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사야 6:3에서의 환상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이사야가 본 환상에서 빠진 것이 있습니다.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도다”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왜 이것이 빠져 있을까요? 지금 온 세상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땅 위에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땅 위에서 지금 로마 황제가 하나님 노륵하면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고,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찬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땅 위에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주기도문의 세 간청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입니다.
계시록에서 4장을 그 기독론적 연속인 5장과 더불어 계시록 본론의 기본장이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6장 이후의 인봉들과 나팔들과 대접들의 세 연속적인 재앙의 시리즈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침해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탈한 자에게 심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인봉들과 나팔들의 재앙은 회개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경고적 성격의 두 연속적인 심판의 시리즈들이며, 대접들의 재앙은 마지막 최후의 징벌을 보여 줍니다. 단, 여기에서 고도로 조직화된 심판과 재앙의 묘사는 신학적인 중요성 때문이며, 묘사된 재앙의 순서 그대로 역사 속에서 진행된다는 문자적인 예상들은 아닙니다.

3) 하나님의 주권과 초월
성경적 신관에 대해서 최근에 두 가지 비평이 있는데, 둘 다 잘못된 것입니다. 첫째,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의 이미지가 인간 사회에서 전제적인 권력 구조와 지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 속에서 전제 군주들이 하나님을 빙자해서 권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목사들이 하나님을 빙자하여, 즉 하나님과 자신을 은연 중 동일시함으로써 독선에 빠지고 교회 내에서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절대적인 통치자시라는 것은 실상 세상의 모든 통치를 상대화하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 독재정치를 합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법화시킵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언어들을 주목하십시오. 하나님의 초월성을 표현하는 보좌의 이미지, 알파와 오메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고 장차 오실 이, 예배의 환상 등은 절대 권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며, 그럼으로써 인간의 모든 권력을 상대적인 것에 불과함을 보여 줍니다.
둘째, 추월적인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이미지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멀리 떨어진 존재인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피조물들과 함께 있지 않으며 그들의 삶에 관계하고 있지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는 것입니다. 초월을 너무 강조하다보니 우리 삶에 들어와 함께 하시는 내재적인 하나님을 인식하기가 어렵다고 하는 것입니다.
1960년대에 폴 틸리히(Paul Tillich)같은 사람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너무 초월해 계시는 분으로 그리기보다 우리와 함께 아래에 내재해 계시는 분으로 그리자는 운동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하나님에 대한 오해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초월하시기에, 진정으로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공간적으로 제약을 받으시는 분이라면 어디에나 계실 수가 없습니다. 무소부재하실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초월해 계시기에, 모두에게 언제나 가까이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종말의 완성 때에 인간들과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비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21, 22장). 어떤 의미에서 현재는 하나님이 땅 위에 ‘안 계시는’ 것 같으며 사탄이 하나님처럼 거짓행세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세상에 진정으로 임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을 통해서 세상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구원하시며, 특히 성령은 진리를 위한 교회의 희생적 증거 안에 임재하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4) 창조자 하나님
하나님을 창조자로 이해하는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종말론의 발전에 본질적인 요인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초월적인 만물의 근원이시라면, 또한 미래에 자신의 피조물을 위한 아주 새로운 가능성의 근원이 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뒤틀리고 썩어진 만물을 종말에 바로잡을 수 있다는 소망이 어디에서 나오겠습니까?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근본적인 신앙에서 나옵니다. 그분이 무에서 유를 만드신 분이시기에, 또한 죽음에서 생명을 일으키신 분이기에, 새로운 창조 역시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습니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신 하나님, 죽은 자를 살리신 하나님입니다(롬 4:17). 결국, 종말에 하나님이 죄와 죽음을 다 몰아내고 온 세상에 생명을 풍성하게 하리라는 소망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소망이 가능한 것도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한 형태입니다. 거꾸로 말하면, 부활신앙은 창조주에 대한 신앙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한 세상을 사탄에게 완전히 넘겨줄 수가 없습니다. 죄와 죽음이 창조세계를 완전히 석권하도록 내버려두실 수가 없습니다. 비록 사탄이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망가뜨려 놓았지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힘으로, 생명의 힘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뒤집어 놓으십니다. 그것이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창조주에 대한 믿음의 종말론적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신앙은 본래 창조신앙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1) 새 창조와 창조 회복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약과 유대 묵시문학에 나타난 “새 창조” 및 “창조 회복”의 사상이 모두 나타나 있습니다. 이 둘은 결국은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그 강조점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 세상과 오는 세상의 불연속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 즉 이 세상의 타락의 심각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에는 종말의 구원 세상을 새창조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지금의 세상을 불에 태워버리고 지금 세상과 질적으로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창조 회복이라고 할 때는 언제입니까? 설령 사탄이 하나님의 통치권을 찬탈해서 이 세상을 통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여전히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사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우주를 사탄이 카오스로 완전히 뒤집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능력의 손으로 세상을 꽉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이만큼의 질서가 있고, 이만큼의 진리와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사의 연속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에는, 종말의 구원의 상태를 칭조 회복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영향 아래 죄와 죽음으로 물들고 타락한 부분을 깨끗이 소재하고 소생시키고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창조의 갱신입니다.
(2) 창조주의 신실함
요한계시록은 창조주로서 하나님에 대해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측면은, 피조물에 대한 그분의 신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에 대해 끝까지 신실하신 분입니다. 비록 피로물이 사탄의 속임수에 빠져 죄를 짓고 죽음에 처해도, 그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끝까지 그들을 포기하지 않고 구해내시려는 분입니다. 만일 창조자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새 창조에 대한 가능성을 을으킨다면, 그의 피조물에 대한 신실하심에 대한 신뢰는 새 창조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해 줍니다.
피조물에 대한 창조주의 신실하심은 창세기 홍수 이야기의 신학적 주제입니다. 죄가 관영하여 세상을 다 멸해야 했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노아를 비롯하여 모든 생물들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창 9:11-17). 그 노아 언약의 암시가 계시록 4:3에 나옵니다. 홍수 때에 땅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주목하십시오. 창조 시에 홍수의 물들, 즉 원시적 혼돈의 물들이 제어되어 한 곳에 갖혀 있었습니다(창 1:2, 7:11).
그것은 창조를 취소할 수 있는 무(nothingness)의 힘을 상징하는데, 창조된 우주를 혼돈으로 되돌리려고 위협하는 파괴적인 잠재력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혼돈의 물들은 짐승이 일어나는 바다입니다(13:1).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짐승이 제거되며(19:20),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이 망하며(20:10, 14), 그리고 바다가 다시 보이지 않습니다(21:1). 곧 파괴적인 안의 근원과 창조를 혼든으로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마침내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새창조에서는, 하나님은 자신의 창조를 어떠한 파괴적 악의 세력으로부터도 침범당하지 않게 영원히 안전하게 만드십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나님은 노아의 언약에 신실하심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피조물에 대한 신실하심에 있어서 자신의 피조물들을 파멸의 물로부터 보호하시겠다는 노야연약의 성취를 넘어 첫 창조보다 더 완벽한 새창조를 이룬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품격(The Person of Christ):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동일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다음의 네 가지 방향으로 표현합니다.

1) 이름의 공유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선언들과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들의 패턴이 있습니다.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
• 그리스도: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7b-18).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21:6).
• 그리스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이를 좀 더 분석해 보면, 1:8의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 신적 주권을 통하여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을 진술하고 있는데 반해, 1:17-18의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게 된 사망과 음부에 대한 권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는 신적 명칭의 본질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공유가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패턴으로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종말론적 만물 완성 모두에 신적 행위자로서 그리스도를 포함시킬 뿐 아니라, 이름의 공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신 것을 매우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 “처음과 나중”이라는 명칭은 배타적인 유일신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사 44:6).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정체를 선언하는 데 이 명칭을 쓴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름의 공유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시고 목적이 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
계시록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의식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드려져야 합니다. 19:10과 22:8-9에서 요한은 자기에게 계시를 전하는 천사에게 엎드려 절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천사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며 단지 계시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계시의 근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2:16).

계시록 전체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명백히 하나님과 함께 예배를 받는 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천의 천사들과 온 세상이 예수를 예배합니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은 유일신적 예배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하나뿐인 하나님의 존재에 예수가 포함된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4:11). 5장에서는 어린 양, 즉 그리스도가 신적 보좌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5:6, 7:17). 어린 양은 하늘에서 예배 무리의 중심이 되면서, 동시에 생물들과 장로들의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5:8). 그런 다음, 그 무리는 무수한 천사들이 참가하면서 확대되는데 그 예배의 형태(5:12)가 분명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4:11).

마지막으로 예배의 무리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기까지 확대되면서 하나님과 어린양께 영광송을 부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보여 주는 장면에서 어린양의 예배(5:8-12)가 하나님과 어린양을 함께 예배하는 것으로(5:13)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이러한 일련의 장면 묘사를 통해,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함께 나누는 존재로서 나타내려 한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적인 예배를 받으실 만합니다. 그에게 드리는 예배는 하나뿐인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cf. 빌 2:11).

3) 특이한 문법 사용
계시록에서 사용된 특이한 문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같이 언급될 때 단수 동사(11:15) 또는 단수 대명사(22:3f, 6:17)가 쓰입니다. 요한은 그런 경우 절대로 복수 대명사를 주어로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지칭할 때에도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언급할 때 단수 동사 및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한 분이심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러한 문법 사용의 일관성은 그가 기독론의 유일신 사상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연구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유일의 신적 존재에 포함함에 있어, 요한은 후대의 기독교 신학자들처럼 추상적인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의 철학을 사용한다든지, 다른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개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학적인 숙어는 매우 독특하게 달랐는데, 그는 묵시적인 신적 보좌, 예배의 이미지, 문법의 조심스러운 사용, 문학적인 연결과 구조 등을 통하여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적 예술가로서 신학적 표현을 많이 한 것입니다.

4)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동일시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1:4, 4:8). 하나님께서 종말에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오심”은 그의 창조에 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의 오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의 소망과 경고가 계시록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1:7, 2:5,16, 3:3,11, 16:15, 22:7,12,20). “나는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이 총7회에 걸쳐 반복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는 심판은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22:12, 사 40:10, 62:11).

만약 재림 때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심판이 신적 심판이라면, 계시록 신학의 중심 주제인 그의 희생적 죽음에 관해서도 같은 말이 쓰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도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행위라고 보야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하늘의 보좌 가운데 있는 것”이 보일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고통당함으로써 정복하신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거와 희생적 죽음은 사실 하나님의 악의 정복과 그의 왕국을 땅위에 구현하는 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심판들 이상으로 하나님의 땅위의 통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증거와 희생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촛대 사이를 걸어 다니는, 1:13, 2:1)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역: 그리스도와 교회의 메시아적 전쟁과 승리

1) 그리스도 이름 사용의 통계
(A) 예수: 우선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이 강조됩니다. 계시록에는 “에수”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이 14회 등장합니다. 그 중에 일곱 번은 “예수의 증거”(1:2, 12:17, 17:6, 19:10/2회, 20:4)와 관련된 구절에 나타납니다. 예수가 증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요한 계시록에서 예수의 인성과 관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증거하셨고 또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도 이 증거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B) 그리스도: 한편,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7회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로의 문자적 번역으로서,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예수께서 다윗 왕국의 메시아에 대한 유대적 희망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셈입니다.
(C) 어린양: 또한, “어린양”이라는 말이 28회(7x4) 나옵니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수이며, 넷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서 일곱 번이 하나님과 어린양이 나란히 병행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5:13, 6:16, 7:10, 14:4, 21:22, 22:1,3). “4”는 요한계시록에서 “7”다음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일관성있게 사용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7”이 완전수인 것처럼, “4”는 온 세상을 뜻하는 숫자입니다(땅, 네 모퉁이, 네 구역-5:13, 7:1, 14:7, 20:8). 세 심판 시리즈 중 일곱 재앙들 가운데 처음 네 가지의 심판들은 이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28회(7x4) 나타나는 것은 그의 승리 및 구속 사역이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만국의 열방을 4중적으로 표현하며 이것을 일곱 번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가지 중요한 모티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역할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지배 하에 있는 이 세상 나라를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는 것입니다(11:15). 이것은 구원 사역인 동시에 심판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으로 시작되었다가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의 연속적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는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성취한 승리는 결정적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승리는 현재 그를 따르는 무리들(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장차 있을 그의 재림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재림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3단계(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모두에 적용된 세 가지 중요한 상징적 주제들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메시아 전쟁, 출애굽, 증인들의 싸움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 합성되어 나타나는 중요한 그림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단계 모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A) 메시아 전쟁-유다 지파의 시작
이것은 유대적 다윗 왕국의 메시아주의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합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는 군사적인 정복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그의 승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민족적 개념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여전히 악에 대한 승리인데, 영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상의 권력들에 맞서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구현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구약의 핵심 본문은 시편 2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와 그가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공모하는 “민족들”과 “세상의 군왕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1-2절). 그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인데(7절),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한 산 시온에 왕으로 세우시고(6절), 그곳에서 대적하는 열방들을 무찌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왕적 메시아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8절), 철장으로 대적들을 깨뜨리게 하십니다(9절).

요한계시록에서는 열방에 대한 메시아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빈번하게 나옵니다(2:18, 11:15, 12:5, 14:1, 16:14, 19:15). 또한 요한은 메시아의 승리를 함께 나눌 메시아의 군대에 관해서도 부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시 2편으로부터 “세상의 군왕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며 종국에 가서는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될 정치적 권력을 지칭하는 표준적인 용어로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적인 메시아 사상을 위하여 요한계시록은 “정복”이라는 주요한 개념을 메시아(3:21, 5:5, 17:14)에게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도 확대하여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전쟁 또는 싸움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기게 하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단계에 공히 사용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승리하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 전쟁의 표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품격(The Person of Christ): 그리스도와 하나님과의 동일시

요한계시록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다음의 네 가지 방향으로 표현합니다.

1) 이름의 공유
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두 가지 선언들과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들의 패턴이 있습니다.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1:8).
• 그리스도: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1:17b-18).
• 하나님: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21:6).
• 그리스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22:13).

이를 좀 더 분석해 보면, 1:8의 하나님의 자기 선언이 신적 주권을 통하여 만물을 지배하는 권능을 진술하고 있는데 반해, 1:17-18의 그리스도의 자기 선언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얻게 된 사망과 음부에 대한 권세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라는 신적 명칭의 본질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공유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름의 공유가 계시록 21장과 22장에서 패턴으로 교차되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만물 창조와 종말론적 만물 완성 모두에 신적 행위자로서 그리스도를 포함시킬 뿐 아니라, 이름의 공유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일한 분이신 것을 매우 분명하게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에서 “처음과 나중”이라는 명칭은 배타적인 유일신 사상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사 44:6). 그러므로 계시록에서 그리스도가 자기의 정체를 선언하는 데 이 명칭을 쓴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입니다. 이름의 공유를 통해 그리스도를 만물의 유일한 근원이시고 목적이 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영원한 존재 안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
계시록에서 예배의 중요성을 의식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만 예배드려져야 합니다. 19:10과 22:8-9에서 요한은 자기에게 계시를 전하는 천사에게 엎드려 절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천사가 강력하게 만류합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예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천사는 예배의 대상이 아니며 단지 계시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계시의 근원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2:16).

계시록 전체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명백히 하나님과 함께 예배를 받는 분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과 천천의 천사들과 온 세상이 예수를 예배합니다. 예수를 예배하는 것은 유일신적 예배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은 하나뿐인 하나님의 존재에 예수가 포함된 것을 함축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하나님을 만물의 창조자로 인정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4:11). 5장에서는 어린 양, 즉 그리스도가 신적 보좌 위에 서 있는 것이 보입니다(5:6, 7:17). 어린 양은 하늘에서 예배 무리의 중심이 되면서, 동시에 생물들과 장로들의 경배를 받고 있습니다(5:8). 그런 다음, 그 무리는 무수한 천사들이 참가하면서 확대되는데 그 예배의 형태(5:12)가 분명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과 평행을 이루고 있습니다(4:11).

마지막으로 예배의 무리는 모든 피조물을 포함하기까지 확대되면서 하나님과 어린양께 영광송을 부릅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보여 주는 장면에서 어린양의 예배(5:8-12)가 하나님과 어린양을 함께 예배하는 것으로(5:13) 이어지도록 구성되어 있음을 주목하십시오. 이러한 일련의 장면 묘사를 통해, 요한이 예수를 하나님께서 받으실 영광을 함께 나누는 존재로서 나타내려 한 것은 명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신적인 예배를 받으실 만합니다. 그에게 드리는 예배는 하나뿐인 하나님에 대한 예배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cf. 빌 2:11).

3) 특이한 문법 사용
계시록에서 사용된 특이한 문법을 주목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같이 언급될 때 단수 동사(11:15) 또는 단수 대명사(22:3f, 6:17)가 쓰입니다. 요한은 그런 경우 절대로 복수 대명사를 주어로 사용하지 않으며,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지칭할 때에도 복수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함께 언급할 때 단수 동사 및 단수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한 분이심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요한의 이러한 문법 사용의 일관성은 그가 기독론의 유일신 사상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연구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유일의 신적 존재에 포함함에 있어, 요한은 후대의 기독교 신학자들처럼 추상적인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헬라의 철학을 사용한다든지, 다른 유대 기독교인들처럼 하나님의 지혜의 개념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신학적인 숙어는 매우 독특하게 달랐는데, 그는 묵시적인 신적 보좌, 예배의 이미지, 문법의 조심스러운 사용, 문학적인 연결과 구조 등을 통하여 철학자라기보다는 문학적 예술가로서 신학적 표현을 많이 한 것입니다.

4)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동일시
계시록에서 하나님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오실”분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1:4, 4:8). 하나님께서 종말에 이 세상에 오시는 것은 구원과 심판을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오심”은 그의 창조에 대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한 예수의 오심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임박한 오심의 소망과 경고가 계시록 전체를 지배하고 있습니다(1:7, 2:5,16, 3:3,11, 16:15, 22:7,12,20). “나는 오리라”는 그리스도의 선언이 총7회에 걸쳐 반복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그리스도가 오실 때 하는 심판은 곧 하나님의 심판입니다(22:12, 사 40:10, 62:11).

만약 재림 때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심판이 신적 심판이라면, 계시록 신학의 중심 주제인 그의 희생적 죽음에 관해서도 같은 말이 쓰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하는 일이 곧 하나님이 하는 일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도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행위라고 보야야 합니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하늘의 보좌 가운데 있는 것”이 보일 때, 그 의미는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 하나님이 이 세상을 통치하는 방법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신 이”로서 이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는 고통당함으로써 정복하신 어린양으로서 이 세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거와 희생적 죽음은 사실 하나님의 악의 정복과 그의 왕국을 땅위에 구현하는 데 있어서 열쇠가 되는 사건입니다. 그것은 하늘의 보좌로부터 나오는 심판들 이상으로 하나님의 땅위의 통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그리스도께서 그의 증거와 희생을 계속 수행하고 있는 자기 백성과 함께하심(촛대 사이를 걸어 다니는, 1:13, 2:1)은 또한 하나님의 임재인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사역 : 그리스도와 교회의 메시아적 전쟁과 승리

1) 그리스도 이름 사용의 통계

(A) 예수 :

우선 그리스도가 메시아이심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도의 인성이 강조됩니다.
계시록에는 “에수”라고 하는 인간으로서의 이름이 14회 등장합니다.
그 중에 일곱 번은 “예수의 증거”(1:2, 12:17, 17:6, 19:10/2회, 20:4)와 관련된 구절에 나타납니다.
예수가 증거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의 인성과 관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 곧 하나님의 통치에 대해 증거하셨고 또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도 이 증거를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B) 그리스도 :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7회 나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아의 헬라어로의 문자적 번역으로서, 이 말이 나올 때마다 예수께서 다윗 왕국의 메시아에 대한 유대적 희망을 성취하셨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셈입니다.

(C) 어린양 :

“어린양”이라는 말이 28회(7x4) 나옵니다.
여기서 일곱은 완전수이며, 넷은 온 세상을 의미합니다.
그 중에서 일곱 번이 하나님과 어린양이 나란히 병행하여 나타나고 있습니다(5:13, 6:16, 7:10, 14:4, 21:22, 22:1,3).

“4”는 요한계시록에서 “7”다음으로 가장 보편적이고 일관성있게 사용되는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7”이 완전수인 것처럼, “4”는 온 세상을 뜻하는 숫자입니다(땅, 네 모퉁이, 네 구역 - 5:13, 7:1, 14:7, 20:8).

세 심판 시리즈 중 일곱 재앙들 가운데 처음 네 가지의 심판들은 이 세상에 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린양”이 28회(7x4) 나타나는 것은 그의 승리 및 구속 사역이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이루어진 완전한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요한이 만국의 열방을 4중적으로 표현하며 이것을 일곱 번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과도 일치하고 있습니다.

2)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가지 중요한 모티브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역할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즉, 사탄의 지배 하에 있는 이 세상 나라를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로 바꾸는 것입니다(11:15).
이것은 구원 사역인 동시에 심판 사역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삶과 죽음으로 시작되었다가 그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나의 연속적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승리는 결정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인 승리의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성취한 승리는 결정적인 것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승리는 현재 그를 따르는 무리들(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되고 장차 있을 그의 재림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재림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3단계(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 모두에 적용된 세 가지 중요한 상징적 주제들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곧 메시아 전쟁, 출애굽, 증인들의 싸움입니다.
이 세 가지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요한계시록에서 합성되어 나타나는 중요한 그림으로서, 그리스도의 사역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3단계 모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A) 메시아 전쟁 - 유다 지파의 시작

이것은 유대적 다윗 왕국의 메시아주의를 이어받은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스라엘의 적들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의 군대를 지휘합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는 군사적인 정복으로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그의 승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민족적 개념으로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범세계적인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는 여전히 악에 대한 승리인데, 영적인 영역에서뿐 아니라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세상의 권력들에 맞서 정치적인 영역에서도 구현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구약의 핵심 본문은 시편 2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와 그가 기름부은 자”를 대적하기 위해 공모하는 “민족들”과 “세상의 군왕들”을 묘사하고 있습니다(1-2절). 그 메시아는 하나님의 아들인데(7절), 하나님께서는 그를 거룩한 산 시온에 왕으로 세우시고(6절), 그곳에서 대적하는 열방들을 무찌르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제왕적 메시아에게 열방을 유업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시며(8절), 철장으로 대적들을 깨뜨리게 하십니다(9절).

요한계시록에서는 열방에 대한 메시아의 승리를 언급하고 있는 구절들이 빈번하게 나옵니다(2:18, 11:15, 12:5, 14:1, 16:14, 19:15). 또한 요한은 메시아의 승리를 함께 나눌 메시아의 군대에 관해서도 부연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시 2편으로부터 “세상의 군왕들”을 하나님을 대적하며 종국에 가서는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될 정치적 권력을 지칭하는 표준적인 용어로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투적인 메시아 사상을 위하여 요한계시록은 “정복”이라는 주요한 개념을 메시아(3:21, 5:5, 17:14)에게뿐 아니라 그의 백성들에게도 확대하여 적용시키고 있습니다. 전쟁 또는 싸움과 관련된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기게 하리라”는 말은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단계에 공히 사용되고 있음을 유의해야 합니다. 그는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승리하셨고, 그를 따르는 무리들도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승리하며,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메시아 전쟁의 표상은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묘사하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종말적 출애굽 - 죽임 당한 유월절 양

유대교의 묵시 전통은 하나님의 종말적 개입을 ‘종말적 출애굽’이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물론 신약 성서의 여러 곳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이러한 표현으로 해석하고 있기는 하지만,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많이 발전되었습니다. 이 사상 체계에 있어서 중심 표상은 바로 예수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이라는 것입니다.
어린 양은 그의 피로 백성들을 속량하여 그들을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이 되게 하셨습니다(5:6, 9). 이것은 시내산 언약을 연상시킵니다(출 19:5). 시내산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백성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언약입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종말의 구원을 제2의 출애굽으로 생각할 때, 그 구도에서 유월절 양의 역할은 별로 다루지 않습니다. 생략되어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유월절 양에는 원래 제사의 성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하거나(요 1:29, 36)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유월절 양’이라 할 때는, 이사야 53:7의 양과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그 양은 어떤 양입니까? 자기 목숨을 대속의 제사로 내어 주는 양입니다.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은 어조나 사고방식이 많이 다르고,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 요한복음은 현재적 종말론이 강하고 요한계시록은 미래적 종말론의 성격이 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점이 상당히 발견되기도 합니다. 가령 요한복음과 요한 계시록에서만 예수를 로고스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예수를 유월절 양과 이사야에서의 종의 예언을 합성해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원래 유월절 양은 죄를 씻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면 죽음의 사자가 장자를 죽이지 않고 지나갔다(pass over)는 차원에서 구원의 표상이지, 죄를 씻어서 구원을 이룬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한복음과 계시록에서는 예수를 이사야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역할을 감당하는 유월절 양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이 두 가지를 합쳐서 예수께서 속죄의 제사로서 자기를 드린 유월절 양이 되시고, 하나님의 백성을 제사장 나라(출 19:5-6)로 속량해 내는 출애굽의 구원을 종말론적으로 이루었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계시록 15:2-4의 노래는 출애굽기 15장의 모세의 노래입니다. 그런데 이 노래를 여기서 누가 부르고 있습니까? 짐승을 이긴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닷가에서 찬송했듯이 짐승을 이긴 하나님의 백성들이 유리 바닷가에서 찬송하고 있습니다. 이로써 모세의 첫 출애굽과 그리스도의 구원을 관련시키고 있습니다. 곧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이 종말론적인 출애굽인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3) 증인 : 복음은 선포

그러면, 짐승을 이긴 하나님의 백성들, 순교당한 144,000명 양을 따르는 무리들은 어떤 싸움을 합니까? 양과 똑같은 종류의 싸움을 합니다. 메시아 전쟁의 내용은 곧 증거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의 증거로 인해 죽임을 당하였으나 그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을 속량하고 승리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교회도 똑같이 예수와 마찬가지로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사탄의 세력과 거룩한 전쟁을 합니다. 그들은 성전의 전사들입니다.
증인들에게는 순교가 요구됩니다. 예수 자신이 이 땅에 사실 때 하나님께 대하여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되고 참된 증인’(3:14)이셨듯이, 충성된 예수의 증인은 박해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순교를 당할 수 있습니다(2:13, 11:7, 12:17). 예수의 증거 사역은 이들에 의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증인들이며(17:6), 또한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입니다. 예수의 증거는 그들 자신의 증거와 동일한 것입니다.
예수의 증거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증거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과 짐승 숭배자들의 악행을 드러냅니다. 누가 과연 참 신인가 하는 문제와 진리와 거짓의 문제가 증거의 주제로 다루어지며, 또한 그 증거가 짐승과 짐승 숭배자들에게 심판을 내리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역의 세 번째 단계인 재림 때에 이르면 그의 증거가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요 12:48).

천년 왕국의 메시지

1. 본문의 묘사

먼저 19:11-21을 읽어보십시오. 그리스도 사역의 세 가지 중요한 모티브를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메시아 전쟁의 모티브를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가 하늘로부터 백마를 타고 신적 전사로 내려옵니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백성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하늘의 군대로서 그와 함께 내려옵니다. 여기에서 증거의 모티브를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이름은 ‘신실함과 진실함(Faithful and True)’이며,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또 그는 피에 빤 옷을 입었습니다. 죽임당한 출애굽 어린 양의 모티브입니다. 그의 입에서는 예리한 검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가 포도주 틀을 밟습니다. 끝까지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해서 총체적인 심판을 수행합니다. 짐승이 잡히고, 짐승을 숭배하도록 미혹하던 거짓 선지자(요한 당시의 상황에서는 황제 숭배를 권장하며 제국의 이념을 선전하던 로마의 지방 분봉왕들)도 함께 잡힙니다. 그리고 이들이 유황불 못에 던져집니다.
그런 후 20장에서는 짐승 및 거짓 선지자와 더불어 삼위일체를 구성하는 악의 원조 사탄 마귀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이 제시됩니다. 20:1-3을 보면, 마귀는 두 단계로 처리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무저갱에 천 년 동안 감금시킵니다.
그 다음에 순교자들이 부활하여 보좌들에 앉아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합니다(20:4-6). 그리고 천 년이 지나고 나면, 마귀가 풀려 나와 곡과 마곡의 군대를 동원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쟁을 벌입니다(20:7-10). 그러나 마귀 역시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이미 던져졌던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20:10).
여기서 보이는 광경을 정리해 봅시다. 19:11-21에서, 짐승과 짐승을 따르던 자들을 모두 심판했습니다. 끝내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모두 멸망당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마귀의 삼위일체 중 짐승과 거짓 선지자가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19:20). 그리고 모든 악의 시원인 마귀는 천 년 동안 감금되었다가, 천 년 후 풀려나서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싸움을 시도해 보았으나 결국 실패하고 역시 유황 불 못에 던져졌다는 것이 제시되고 있습니다(20:7-10).

2. 신학적 메시지

일부 유대 묵시 문학에는, 최후의 심판과 새로운 창조 이전에 메시아가 천 년 동안 통치한다는 사상이 있습니다.
요한은 메시아의 천년 왕국이라는 이 사상을 도입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비록 그 사상을 도입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상을 다른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19:11-21의 장면과 20장의 장면은 무엇을 대조하여 보여 줍니까?
전자가 심판의 부정적인 양상을 보여 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심판의 긍정적인 양상을 보여 줍니다.
요한은 천년 왕국의 사상을 악의 세력의 철저한 파멸과 대비하여, 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극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을 통치한 사탄의 세력과 그를 추종한 자들은 심판을 받아 다 멸망하고, 그들에 의해 핍박받고 순교까지 당한 하나님의 백성은 부활되어 메시아의 영광된 통치에 참예하게 됩니다-“천 년’간이나, 즉 오랜 세월 동안이나 지금의 사탄의 세력이 통치하는 기간, 즉 그 통치하에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당한 기간보다 훨씬 긴 세월 동안이나!-이 메시지가 “천년 왕국” 그림의 첫째 뜻입니다.

마귀는 천 년 후에 풀려나 다시 곡과 마곡을 미혹하여 하나님의 백성에게 싸움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합니다(20:7-10).
이것이 보여 주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의 왕국 안에서 순교자들의 승리를 마귀가 결코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이 여기 “천년 왕국” 그림의 둘째 뜻입니다.

첫 창조 때에는 바다에서 나온 용 마귀가 온 세상을 덮치고 인간을 미혹하여 자신의 통치 아래 두는 데 성공하였으나, 새 창조 때에는 성공하지 못합니다.

새 창조는 첫 창조보다 더욱 완벽한 것으로서, 다시는 사탄에 의해 미혹되고 정복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무저갱에서 풀려난 마귀가 다시 한 번 이 세상과 하나님의 백성을 정복하려 하나,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스스로 최후의 파멸을 맞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종말의 구원의 세상(새 창조)은 마귀의 위협이 더 이상 없는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더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20:14에 사탄/마귀의 삼위일체와 함께 “죽음”과 “하데스” 자체까지도 불못에 던져져 없어진다고 말할 뿐 아니라, 21:1에서는 새 창조에는 모든 악의 시원인 용의 파멸과 함께 용이 나오는 “바다”도 없어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천년 왕국의 신학적 요점은 하나님의 새 창조(구원)의 완벽함과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백성의 영원한 승리를 강조하는 것에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천년 왕국의 이미지를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즉 미래 세계사에 실존하는 특정한 시기를 예언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계시록이 답하지 않는 수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부활한 성도들은 누구를 다스릴 것인가?
그들은 하늘에서 다스리는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다스리는 것인가?
부활의 종말론적인 삶이 어떻게 갱신되지 않은 지상에서 가능할 수 있을까?
사탄마귀의 삼위일체를 따랐던 무리들이 최후의 심판으로 다 멸망된 상황에서 천년 왕국이 끝날 무렵 사탄이 미혹할 곡과 마곡 족속들은 어디서 나오는 누구들인가? 등.’

천년 왕국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우리는 이와 같은 문제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는 모순에 빠지고 맙니다.

앞서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 재앙의 예언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 심판의 시리즈들은 역사 속에서 순서대로 발생할 일들을 예고한 시간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헛된 것을 숭배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경고적 메시지일 뿐입니다.
문자 그대로의 이해보다, 그 속에서 신학적인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천년 왕국의 이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자적으로 이해하려하지 말고 그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신학적 메시지를 얻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신실하게 따른 하나님의 백성(순교자들)의 최종적인 승리, 첫 창조보다 나은 새 창조의 완벽함. 이 두 가지가 요한이 천년 왕국의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자 했던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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밈메누(mimmenu)



창세기 2-3장에는 일곱 차례 ‘밈메누(mimmenu)’라는 전치사가 등장한다. ‘밈메누’는 ‘민(min)’이라는 전치사에 인칭대명사 접미형어미가 결합되어 있는 단어다.
히브리어 전치사는 인칭대명사 접미어와 결합하면서 형태변화를 일으킨다.

그런데, 민(from)이라는 전치사는 1인칭공성복수(our)와 결합할 때에도 '밈메누'가 되고 3인칭 남성 단수(his)와 결합할 때에도 '밈메누'가 된다. 창세기 2장17절에 '밈메누'가 2회 등장하고 3장(3, 4, 11, 17, 22절)에는 5회 등장한다. 문법적으로만 보면 '밈메누'는 '우리로 부터' 혹은 '그로부터, 그것으로 부터'라고 새겨도 된다. 다만, 문맥에서 그것이 1인칭 공성복수로 새길 것인지, 혹은 3인칭 남성단수로 쓰였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창세기 2-3장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우는 3장 22절의 경우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로 번역된 것이 과연 타당한가하는 문제 제기다.
나머지 여섯 번의 사례에서 보듯, 문맥에서 지시하는 것은 '밈메누'는 '그것(나무)으로 부터' 이다.
22절에서도 당연히 그렇게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선악을 아는 일에 그것으로부터 하나가 되었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선악을 아는 일에 선악을 아는 나무로부터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즉, 선악 나무로부터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조금 의역을 하면 선악의 나무 중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번역과 해석의 치명적인 실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성경 왜곡의 뿌리는 깊고 깊다.
뱀의 신관이 거기서 등장한다.
즉, 하나님은 선악의 하나님이라는 신관이 등장하고, 이에 동조하여, 번역하는 사람들도 역시 하나님은 선악의 하나님이라는 신관을 설정해놓고 성서를 읽고 있다.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중 하나'라고 하므로 치명적인 곡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이다.
거기서 각종 이설신학이 난무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추측성 신학이 무수히 생성된다.
  
성경을 번역하면서도 번역에 이 같은 신학적 관점이 반영된다.
신관이 뱀의 입에서 나오는 것에 의지하고 있고 그것이 번역에도 철저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다. 뱀은 하나님이 선악의 하나님이라고 이미 규정하고 있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말속에는 하나님은 선악의 신이라는 전제가 담겨 있다.
즉,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 신에 대한 뱀의 신관이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뱀의 말이다.
이것은 신에 대한 뱀이 규정한 뱀의 신론(神論) 이다.
뱀의 신론에 온 인류, 성서를 읽는 수많은 사람이 현혹되어 있다.
한 걸음도 뱀이 규정한 신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예수는 유대 교리의 전통에 목매어 있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일컬어 ‘독사의 새끼들아!’ 라고 하므로 뱀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한다. 교조주의는 뱀의 속성이다. 교리는 뱀의 이빨이다. 단순한 교조주의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선한 것은 상을 주시고, 악한 것은 벌을 주신다는 것에 뿌리를 두고 신개념을 확장해간다. 그리고 ‘선’이라고 하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종교마다 자기의 교리에 충실한 것을 ‘선’이라고 하고 그에 반하는 것을 ‘악’으로 규정한다. 기독교는 예수 믿는 것만이 ‘선’이고 그에 반하는 것은 지옥을 예약한 자로 규정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창세기 2-3장의 6번의 사례는 창세기 3장 22절이 잘못 번역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오역의 역사는 깊다. 그것은 70인 역에서부터 번역의 오류를 일으키고 있다. 물론 단순한 문법으로만 말한다면 '우리 중 하나'로 번역한다 해도 틀린 것은 아닐 테지만, 이곳은 문맥을 섬세히 살펴보아야 할 부분이다. 이것은 도리어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그것(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창 3:22)

성서는 사람을 나무로 비유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 중에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었으니 당연히 자기가 갖고 있는(따먹은) 지식에 견주어 선악을 판별할 테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에 따라 옳고 그름을 좇아 살게 된다.
선악의 열매를 맺게 되는 선악의 나무 중 하나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인생의 귀결이며 성서는 이 같은 인생의 존재적 한계를 드러내주는 책이라 하겠다.
동시에 이를 극복하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책이다.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른다는 것은, 신의 이름을 헛되이 부른다는 말에 다름 아니며, 뱀의 신관에 서서, 즉 선악을 아는 하나님으로 부르는 동안 그것은 신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는 것일 따름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고 한다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과 요한계시록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

고정관념의 사전적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마음속에 굳어 있어 변하지 않는 생각.
둘째, 어떤 사람이나 집단의 마음속에 굳게 자리 잡고 있어서 늘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어떠한 상황의 변화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각.
셋째, 표제 음악에서 어떤 고정된 관념을 나타내는 선율.

   
엑토르 베를리오즈(Hector Berlioz, 1803. 12. 11~1869. 3. 8)는 프랑스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로 유명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작곡가로 유명합니다.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작곡가로 그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는 고정관념을 깨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를리오즈의 작품 ‘환상교향곡’은 그의 대표작입니다.
베를리오즈는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가 본 악기라고는 작은 피리 한 개가 전부였습니다.
온 마을에 피아노 한 대가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17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한 후 다양한 악기를 접할 수 있게 됐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작곡을 시작했고 좋은 작품을 쓰면서 점점 유명해졌습니다.
성공하고 큰 집도 장만한 베를리오즈는 피아노를 샀습니다.
그러나 그 피아노는 간단한 화음을 확인하는 정도로만 사용됐을 뿐입니다.

제자들이 베를리오즈에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피아노를 배우지 않고 작곡가가 될 수 있었습니까?
우리가 아는 작곡가 가운데 피아노를 전혀 못 치는 분은 선생님뿐입니다.”

“나는 피아노를 안 배우면 작곡을 못 한다는 것을 몰랐네.
나는 파리에 와서 처음 피아노를 봤으니 그런 말을 들어본 적조차 없었지!”

때로는 불가능에 대한 지식이 고정관념을 만들고 존재하는 가능성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다수의 교인들은 요한계시록은 너무 어렵기 때문에 읽을 수 없고 더구나 해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이 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 입니다.
요한계시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계시하셨을 때 어렵기 때문에 아무나 읽는 것이 아니라 어느 특별한 계시를 받은 몇몇 교주들에게만 읽고 해석하도록 계시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너무 오랫동안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인하여 잘못된 해석을 믿고 따르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요한계시록 22:7).

* 09-14-2019 아침 묵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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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固定觀念, a fixed idea)을 깨트리자!

요한계시록에 대한 고정관념은 읽어도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을 읽어도 알 수 없도록 계시하셨을까요?
물론 대답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요한계시록을 읽지도 못했고 심지어 교회에서 가르치지 않았을까?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르면서도 교회의 오랜 전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너무 깊숙이 자리를 잡고 말았습니다.

고정관념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알려주는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어떤 사람이 정기 건강 검진을 마치고 그 결과를 확인하려고 담당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담당 의사 책상 위에 자신의 정기 검진 결과를 알려주는 진단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얼핏 살펴보니 진단서에 “소부암” 이라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소부암” 이란 단어를 본 순간 “내가 암에 걸렸구나! 암이 너무 심각해 의사가 내게 아무 말도 못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 사람은 절망하고 낙심하여 사람도 만나지 않고 마음을 정리한 후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몇 달이 지나자 얼굴이 초췌해지더니 몸이 급격히 쇠약해져 자리에 눕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후에 알려진 사실은 “소부암”이란 암의 일종이 아니라 담당 의사의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암에 걸리면 반드시 죽는다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정확한 내용도 모르면서 비극적인 결과의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종교개혁자 칼빈(칼뱅)도 주석을 하지 못했다!”

이런 이야기가 오랫동안 교회 안에 거룩한 전통으로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정말 개혁자 칼빈(칼뱅)이 요한계시록이 너무 어렵기 때문에 주석을 할 수 없었을까요?

칼빈(칼뱅)이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요한계시록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너무 많이 소개되어 교회마다 혼란을 겪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런 환경에 칼빈(칼뱅)은 또 다른 해석을 제시하므로 더 어지럽고 혼돈케 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요한계시록에 대한 주석서를 발표하지 않았다는 것이 최근 요한계시록을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입니다.

진실이 감추어진 이야기가 잘못 전달되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바르게 읽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복(福)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복(福)이란 개념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복(福)은 영생(永生)이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복은 영생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성경의 결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구약의 예언은 “오실 메시아”라고 합니다. 신약의 예언은 “오신 메시아”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은 “다시 오실 메시아”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2: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찌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목적은 심판(審判)이 아니라 구원(救援)이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이란 영생의 자리로 완전히 옮겨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도적같이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이 언제 어디에 오실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날과 그 시와 그 장소에 대해서 계시를 받았다는 거짓된 가르침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성경에 계시한 말씀대로 믿고 성경대로 주님을 기다리며 이 세상에서 영생의 복을 누리며 증거 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당당하게 일어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09-16-2019 아침 묵상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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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의 말씀 #.1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요한계시록 1:3)

예언이란 한자어는 두 가지로 표현합니다.
첫째는 맡기는 예언(預言)
둘째는 미리 아는 예언(豫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미래에 대해서 미리 알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궁금증을 알려주는 것을 “예언(豫言)” 이라고 합니다. 또한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언자(豫言者)” 라고 합니다.

반면에 “예언(預言)”이란 하나님이 맡겨주신 말씀을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을 “예언자(預言者)” 라고 합니다. 또는 선지자(先知者)라고도 합니다.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헬라어 성경에서 살펴보면 “예언(豫言)” 이란 의미 보다는 오히려 “예언(預言)” 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언의 말씀이란 앞으로 일어날 미래에 대한 것을 알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비록 지금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로마 정부로부터 핍박과 심지어 순교의 현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말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과 바르게 소통하며 진리에 대한 내용을 더 강렬하게 믿고 따르게 하는 깨우침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밧모 섬에 갇혀 언제 순교의 현장으로 끌려 나갈지 알 수 없었던 사도 요한에게 진리의 말씀을 계시(啓示)하여 보여주고 들려주므로 현재의 고통스런 상황을 믿음으로 넉넉하게 이길 수 있는 힘과 용기와 인내를 갖게 하는 소망의 메시지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위로와 소망의 메시지로 함께 읽어가며 중요한 말씀을 함께 암송해 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예언(προφητείας) ; προφητεία(prophéteia, 4394).
prophecy, prophecy, prophesying.
the gift of communicating and enforcing revealed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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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제주도에 가면 세계적으로 아름답기로 유명한 정원인 ‘분재예술원’이 있습니다. 분재한 나무는 보통 나무보다 3∼4배 더 오래 산다고 합니다. 그 비결은 분갈이에 있습니다. 2년에 한 번씩 분갈이를 하면서 뿌리를 잘라주면 나무는 자기 몸의 진액을

짜내어 또 뿌리를 내립니다.
그 뿌리가 분 안에 가득 채워지는데 2년이 걸린다고 합니다. 그러면 또 인정사정 보지 않고 뿌리를 잘라줍니다. 이 뿌리를 ‘고정관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2년 정도 반복된 생활을 하면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힌다고 합니다. 고정관념 속에 빠져들면 새로운 것을 보거나 듣기가 어렵습니다. 고정관념은 자기 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넘어야 할 벽과 같습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트리는 사람만이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복(福)이란 주제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하면 두 개의 문자로 구분합니다.
“볼 시(示)”와 “부요할 부(富)” 라고 하겠습니다.
복(福)이란 한자를 분석한 의미는 “부(富)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입니다.

부(富)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강조하는 부(富)는 “영생(永生)”입니다.
왜냐하면 영생은 최고의 복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영원하지 못한 것은 부(富)의 범주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중에서 영원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영원한 생명뿐입니다. 영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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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 주석 장쩌민이 30분을 머물려고 그곳에 왔다가 1시간 30분 동안 머물며 “성범영원장의 분재 철학”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그 후 중국 고위 관리들을 그곳에 보냈습니다. 일본 총리를 지낸 나카소네가 다녀가기도 했습니다.

탈무드에 소개된 또 다른 예를 살펴봅시다.
어떤 사람이 강에서 낚시로 큰 고기를 잡으면 버리고 작은 고기가 잡히면 바구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낚시꾼을 지켜보던 행인이 “작은 고기를 잡으면 놓아주고 큰 고기를 잡아 가는데 당신은 왜 반대로 하십니까?” 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낚시꾼은  “우리 집 프라이팬이 작아 큰 물고기를 구울 수 없어 그렇습니다.”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큰 물고기를 잘라서 프라이팬에 넣으면 됩니다. 그런데 작은 프라이팬에는 반드시 작은 물고기만 사용할 수 있다는 고정관념 때문에 엉뚱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고정된 생각은 바꾸기가 어렵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들을 괴롭히는 고정관념은 착각(錯覺), 편견(偏見), 선입견(先入見), 고집(固執), 아집(我執), 흑백논리(黑白論理), 습관(習慣), 전통(傳統)과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부정적 사고에 사로잡혀 삶의 질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유명한 화가 피카소가 어느 날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옆 자리에 앉았던 사람이 피카소에게 “당신의 그림은 너무 난해하여 알아볼 수가 없소. 실제를 너무 왜곡하는 것이 아닌가요?” 라고 질문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피카소는 “그러면 실제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지요?” 피카소에게 질문했던 사람이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며 “이것이 실제 제 아내의 모습이요” 라고 말하자 피카소가 그 사진을 받아 이리저리 살피더니 “당신 부인은 끔찍하게 작군요, 게다가 납작 하구요! 이 사진은 종이지 실제 당신 부인이 아니잖소!”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일반인들은 외면만 보려했지만 피카소는 사람이나 사물의 외면과 내면을 함께 보고 표현하랴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생각을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시작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할머니 발명가’로 알려진 모기업 대표 이씨는 일흔을 넘긴 팔십을 바라보심에도 “견사염색 방법”, “다시마차및 제조방법”을 특허 받았다는 기사가 났었다. 요즘은 “다시마 레몬과자”, “다시마 초코렛과자”, “다시마 엿” 등 여러 식품 아이디어 특허 진행중이시란다. 그녀는 남편과 사별하고 4남매를 홀로 키우며 사셨다. 우연히 비단실로 일본옷을 하청받아 짜는 일을 시작하고부터 수백개 아이디어 발명품을 고안해 냈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낼 수 있었느냐’란 질문에 ‘지속해서 모든 일에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고정관념 틀을 깨는 사고법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고정관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방법은 무수하다.


첫째, 다양한 정보를 체험하라!

먼저 폭 넓은 지식 혹은 정보를 얻는 것이다. 독서이든 여행이든 많은 직 간접 경험을 쌓아야 한다. 요즘은 많은 지식과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지 못했다. 책은 물론 만화책도 돌려가며 읽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배추는 파랗고, 무는 길고 하얗고, 고추는 익으면 빨간 것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지금 배추, 무, 고추, 쌀, 콩 등은 그 모양, 크기, 색, 맛도 다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서양인은 ‘사랑하는 자식은 여행을 시키라’, 우리 조상들은 ‘말이 나면 제주도로 자식이 태어나면 서울로 보내라’ 하지 않았을까?


둘째 사고와 사고법을 전환하라!

그것이 창조적이든 역 사고 혹은 유연한 사고든 말이다. ‘왜’ 혹은 ‘그러면 타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것이 맞을까? 이대로 좋은가?’ 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셋째 시각에 변화를 주라!

다양한 각도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역 시각을 가져 보는 것이다. 낚시대에 연을 매어 날리는 그림을 보았다. 사람에 따라 “이상한 사람 혹은 기발한 발상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넷째 유사한 것을 따라 시도해 보라!
수영에는 자유영, 배영, 평영, 접영이 있다. 살펴보면 동물들이 물속에서 움직이는 방법을 흉내 낸 것이다. 흉내 내다 보면 새 착상을 얻을 수 있다.

다섯째, 또 다른 새로움에 도전하라!

제19회 멕시코 세계 올림픽 육상대회에서 미국 선수 ‘딕 포스버리’는 높이 뛰기에서 최초로 배면뛰기를 시도하여 정면뛰기 2m의 벽을 훌쩍넘어 2.38m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했었다. 그때까지 정면뛰기가 정석이었지만 그 후 배면뛰기가 정석이 되었다. 새로운 도전이 육상계의 한계를 넘어섰던 것이다. 이 외에 믿음으로 사고하고 행동하기 등이 있다. 더 이상 여군, 여경, 남스타일리스트, 남간호원이란 말이 어색하지가 않다. 고체잉크, 휘는 휴대폰이 나왔다. ‘남자는 강하다. 여자는 약하다’ ’가벼운 것은 약하고 무거운 것은 강하다’란 통념이 못된다. 옛 중국 사마광이 소년 시절 한 아이가 큰 물독에 빠져 익사할 직전이었다. 어른들도 올라가기 힘든 큰 독이라 사람들은 발만 동동 굴렀다. 이때 사마광이 큰 돌을 가져다가 항아리 밑 부분을 깨서 아이는 구사일생으로 살았다. 누가 큰 독을 기어올라 들어갈 것이냐를 생각할 때 사마광은 독을 깰 생각을 했다. 깨고 벗어나려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잘못된 고정관념은 자타를 망하게 한다.

“목이 곧은 자를 향해 회개하고 고침을 받으라” 하나님은 명하신다. 빗나간 고정관념의 아집과 고집을 벗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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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곳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털끝만큼도 상상하지 못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이야기만 듣고 신문 기사만 읽어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어.
너희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어.”- 네티바 벤예후다(Netiva Ben-Yehuda)

중세 전쟁사를 전공한 유발 하라리는 전쟁을 통해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어떻게 변하는지 추적하여 ‘극한의 경험’을 썼다.
“피를 뒤집어쓰고 사지를 늘어뜨린 채 이미 죽음이 목을 조여 오는 듯 쉰 목소리로 살려 달라 외치는 형체를 바라볼 때 비현실적인 느낌이 나를 옥죄었다.” 1914년 일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던 에른스트 윙거(Ernst Junger)는 고백했다. 전쟁은 인간을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고, 인간의 성격을 완전히 바꾸며, 세상에 대한 이해도 변화시킨다(Harari, 41/555).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J.R.R. Tolkien)도 1차 세계대전을 참전하였다. 수많은 젊은이가 무의미하게 목숨을 d잃고 가장 친한 친구들이 눈앞에서 죽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는 전장에서 얻은 전염병으로 18개월 동안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갔다. 그는 고백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얼마나 암울한 공포에 뒤덮여 있으며 얼마나 슬픔에 빠져 있는지.”(고명섭, 207)

1세기 교인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전쟁의 경험은 아니겠지만, 그와 버금갈 정도로 끔찍한 경험들을 하였다. 로마 검투사의 칼날에 살점이 찢겨나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 형틀에 묶여서 갈고리 채찍으로 수도 없이 맞아 뼈가 허옇게 노출된 사람, 십자가에 매달려 일주일 내내 신음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 그들은 현대인이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 속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그들은 어떻게 신앙을 지켰을까? 유발 하라리는 ‘극한의 경험’이 종교적 계시 경험과 맞닿아 있다고 하였다. 최악의 상황에서 사람은 현실을 뛰어넘는 신비한 경험을 하고, 평생 그것이 가슴에 남아 때로는 트라우마로 고생하고, 때로는 현실을 초월하는 경건을 배운다.

톨킨은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인간의 모든 노력은 헛된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고명섭, 208). 이러한 경험과 생각에서 톨킨은 판타지 문학에 빠져들었다. 반면 현대인은 실용주의자이다. 계산적이고 합리적이며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한다. 복음주의자들 역시 실용주의의 함정에 빠져들어, 성경에서 이론(교리)을 도출하여 ‘해야 한다’든지 ‘필요가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어떤 설교자들은 이야기를 경멸하고 신학과 교리를 설명하는 가르침만 추구한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의 가슴을 뛰게 하고 생명을 바쳐 헌신하게 하는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은 위대한 이야기꾼이다. 최고의 설득을 쓴 카민 갤로(Carmine Gallo)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최고의 방법은 ‘이야기’라고 하였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존 스컬리(John Scully)에게 했던 말로 책을 시작한다. 스컬리는 37살 나이에 펩시콜라의 사장이 되었다. 8년이 지나고, '마케팅의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스컬리는 최고로 촉망받는 CEO가 되었다. 그때, 26살 청년 스티브 잡스는 45살 대기업 회장에게 신생기업 애플을 맡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스컬리는 당연히 거절하였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실망하지 않았다. 1983년 3월 마침내 스티브 잡스는 스컬리를 설득하였다. 스티브 잡스의 메시지는 간단하지만 힘이 있었다. “남은 평생 설탕물을 팔 건가요. 아니면 저와 함께 세상을 바꿀 건가요?”

오늘날 설교자들의 문제 중 하나는 뻔한 이야기를 뻔한 방법으로 전한다. 어느 교회를 가도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아무런 감동 없이 전한다. 대개 교인들은 졸거나 딴생각하기 일쑤이다. 그나마 귀를 기울여 듣는 성도들도 다음 주가 되면 지난주 설교를 다 잊어버린다. 말씀을 실천하는 교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신학교에서는 감동과 열정을 쏙 빼버린 이론(신학과 교리)만 열심히 가르친다. 마치 회사에서 세일즈맨에게 물건 사용설명서만 열심히 외우게 한 뒤, 물건을 팔라고 내보내는 것과 같다. 그 물건을 사용할 때 누릴 수 있는 행복(설령 그것이 가짜일지라도)을 열성적으로 전달해도 살둥말둥한데 말이다. 이런 회사와 신학교는 매우 유사하다. 신학교는 차갑게 식어버린 교리나 죽어있는 신학만 가르친다. 영혼을 살리는 말씀의 능력, 감동, 흥분, 기쁨은 가르치지 못한다. 그러니 목회 현장의 설교는 언제나 고만고만하고, 비슷비슷하다. 그렇게 기독교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성경은 다양한 이야기 모음집이다. 시, 잠언, 사랑 노래, 역사 이야기, 편지, 묵시 문학 등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들이 있다. 그중에도 묵시 문학인 요한계시록은 이야기 중의 최고다. 처음 요한계시록을 읽는 사람은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현대 유행하는 판타지 문학을 생각하면,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반지의 제왕’, ‘나니아 연대기’, ‘해리 포터’ 등은 상상의 세계를 묘사하지만, 누구도 어렵다고 하지 않는다. 요한계시록은 초대교회의 판타지 문학과 같다.

판타지 문학이나 묵시 문학은 현실 도피적 성향이 있다. 끔찍한 전쟁 경험이나 박해 경험은 현실 세상에 환멸을 느끼게 만든다. 1차 세계대전의 끔찍한 경험을 통해 판타지 문학에 심취했던 톨킨은 기독교 신앙 자체가 “도피가 영혼에 유익하다”는 믿음에 근거한 모험 인지도 모른다고 하였다(Yancey, 154).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사람은 도피를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옥 밖의 자유로운 세상을 그린다고 해서 죄수를 경멸해야 하는가(Yancey, 153)? 얀시는 되묻는다. 톨킨은 ‘판타지라는 도피적인 매체를 이용하여 현실을 넘어선 영혼의 여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 성경의 묵시 이야기를 한번 생각해 보자.

에스겔은 예루살렘 성전의 부패와 쇠락을 보고 괴로웠다. 어떻게 하면 예루살렘 성전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잠자는 하나님의 백성을 깨울 수 있을까? 시스템을 바꾸고, 성전 관리와 경영을 잘하면 될까? 성전(교회)을 고치고, 개혁하고, 갱신하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계획과 전략을 짜면 될까? 온갖 인간의 방법과 생각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그러다 포로로 끌려간 후 (성전이 아니라) 그발 강가에서 놀라운 환상(해답)을 본다. 그는 아주 기괴하게 생긴 네 생물의 형상을 본다. 그 형상은 밧모 섬에 있던 요한이 보았던 형상과 비슷하다. 네 생물은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의 형상이었다(계 4:7, 겔 1:10) 그 후 에스겔은 마른 뼈들만 가득한 골짜기로 간다(겔 37:1-14). 뼈들만 가득한 그곳은 끔찍한 장소다. 죽음과 절망으로 가득한 곳이지만, 에스겔은 환상 속에서 놀라운 희망을 발견한다(Roxburgh, 90-91).

에스겔이나 요한이 보았던 환상은 톨킨이나 C.S. 루이스의 판타지 문학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감동적이고 흥미 있다. 불행한 사실은 '우리는 요한계시록이 담고 있는 이야기에서 감동과 흥분과 열정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도 요한은 절망의 환경 속에서 끔찍한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을 환상의 이야기로 이끈다. 그리고 말한다. 세상이 아무리 절망적이고, 끔찍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역사를 이끌어 가신다. 나는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묵시 이야기에서 초대 교인들이 느꼈을 감동과 흥분을 맛보게 된다.

비록 지금 교회의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천상 보좌에 앉아 왕 노릇 할 것이라는 놀라운 환상을 듣는 초대교인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묵시로 전달하는 사도 요한의 뛰는 가슴을 상상해 본다. 나는 점점 소망을 잃어가는 현대 교인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묵시 문학이 가지는 복음과 희망과 영감을 발견하고 맛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배경락 목사는 기독교 인문학 연구소 강연자로, '곧게 난 길은 하나도 없더라' '성경 속 왕조실록' 등의 저자이다.
그는 일상의 여백 속에 담아내는 묵상들을 기록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인문학의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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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미래의 사건



성경에 나타나 있는 미래의 사건들

몇 년 전에 고대 마야인이 예언했다는 ‘지구 최후의 날’(2012년 12월 21일)을 앞두고 전 세계가 들썩거린 적이 있었다. 당시 그날의 종말론은 고대 마야 문명의 달력과 성경의 요한계시록,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뒤섞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날인 12월 21일에 지구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과거에 일반인들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아주 정확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전문가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의 예언의 98%는 잘못된 것이며, 나머지 2%도 실상 억지로 끼워 맞춘 해석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인류 최후의 날이 1999년 7월이라고 예언했지만, 실상 그때에도 별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 외에도 국내외를 막론하고 각종 예언 관련 서적과 온갖 예언가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미혹하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도 상기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전혀 믿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것들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이와 같이 엉터리 예언가들인 인간들과는 전혀 차원을 달리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예언들이 나타나 있는데,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내적인 증거 중의 하나는 예언들의 성취에 있으며, 이러한 성취가 하나님의 전지(全知)에 대한 증거이다. 다시 말하면 전지하신 하나님만이 미래의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예언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바톤 페인(Barton Payne)의 성경예언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구약성경에는 1239개, 신약성경에는 578개 도합 1817개의 예언이 있다. 이 가운데 68%의 예언은 과거에 이미 성취되었다. 예컨대, 구약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들의 약 300가지가 그분 자신에 의해 성취되었다. 또 예수님의 예언대로 A.D. 70년에는 예루살렘성과 성전이 완전히 파괴되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뜨려졌다(막 13:2).

그리고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멸망했다가, 마지막 때인 예수님의 재림 전에 다시 한 국가로서 회복된다는 놀라운 예언들이 있다(예레미야 31장, 에스겔 37장). 이스라엘은 그 예언대로 A.D. 70년에 로마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여, 약 1800년 동안 땅과 나라가 없이 전 세계에 흩어져 떠돌다가 1948년 5월에 나라를 되찾고 독립 국가를 이루었는데, 이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며 역사상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예언인 것이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에 대한 예언들이 모두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루어졌듯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예언들도 모두 다 문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 세상에 인류의 미래의 장면을 확실하게 나타내 보여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인 성경밖에 없다.

그럼 여기서는 미래에 펼쳐질 중요한 사건들을 성경에 나타나 있는 순서대로, 즉 예수님의 공중 재림, 그리스도의 심판대, 7년 환난기, 어린 양의 혼인잔치, 예수님의 지상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과 영원 미래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성도들을 위해 오시는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휴거)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과 함께 하늘로부터 친히 내려오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살아서 남아있는 우리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려가 공중에서 주를 만나리라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6~17)

이 말씀처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성도들을 맞이하러 오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던 교회의 성도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도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가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흔히 ‘휴거’라고 부른다. 그때 모든 성도들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화할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고전 15:51).

2. 그리스도의 심판대

고린도후서 5장에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고 했다.

여기 그리스도의 심판대란, 교회시대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공중 재림과 휴거 이후에 있을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는 것을 말한다. 이 심판은 교회가 휴거된 후에 바로 시작될 것인데, 이것은 구원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가려내는 심판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보상을 받든지 받지 못하든지 하는 성격의 심판이다.

이 심판은 성도들의 도덕적인 선악을 판단하는 심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행위가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를 가려내기 위한 심판이다. 이 심판은 불로써 행해지는데 성도 각자가 행한 일이 불에 타지 않고 남으면 보상을 받고, 불에 타 없어지면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게 된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고전 3:14~15).

3. 7년 환난기

마태복음 24장에 “그때에 큰 환난이 있으리니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이때까지 그런 환난이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마 24:21)”고 했다.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직접 예언하신 말씀인데, 구원받은 성도들이 휴거된 이후에는 이 땅에 큰 환난의 시기가 있으며, 그때 이 세상에 남은 자들은 큰 고통과 슬픔을 겪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에 그리스도를 불신했던 유대인들은 모두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때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크고 악한 통치자가 나타나서 유대인들에게 자신을 경배할 것을 강요할 것이다.

이러한 환난기의 주된 목적은 첫째로,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유대인들이 이러한 극심한 환난을 통해 자신들의 불신앙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왕으로 다스리실 천년왕국의 백성이 될 준비를 하게 된다. 둘째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과 열방들을 심판하기 위함이다. 다시 말해 이 기간 동안 하나님을 불신한 이방인들과 열방들을 심판하고,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한 자들만이 천년왕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4. 어린 양의 혼인잔치(요한계시록 19:7)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어린 양의 혼인잔치’란, 7년 환난기가 끝나고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직전에 하늘에서 펼쳐지는 혼인예식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신랑이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신부인 교회가 혼인예식을 갖는 것을 말한다. 이때 혼인잔치에 초대받은 손님들은, 일반적으로 구약시대의 성도들과 대환난기 때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와 구원받은 성도들의 무리인 교회가 우주적인 축하 속에서 혼인 잔치가 열린다. 교회를 사랑하신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사모하던 교회가 이렇게 완전한 연합과 일치와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혼인 예식이 끝나면,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위에 신부와 함께 오셔서 천년왕국을 세우시고 다스릴 것이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계 20:4).

5. 만왕의 왕으로 오시는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요한계시록 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것을 탄 자(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는, 많은 천군과 함께 백마를 타고 심판하러 오신다. 이러한 심판은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에게 시행되는데, 그것은 천년왕국에 들어갈 백성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골로새서 3장에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골 3:4)”고 했다.

이 말씀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7년 환난기가 끝날 무렵에, 만왕의 왕으로서 구원받은 교회의 성도들과 함께 지상에 재림하신다. 이때 그분은 적그리스도를 포함한 그의 원수들을 멸하시고, 또 신실한 유대인들을 박해한 열방의 이방 민족들을 심판하신다. 그리고 사탄은 천 년 동안 무저갱 속에 갇힌다.

6.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함께 다스릴 천년왕국(요한계시록 20:6)

그들(성도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분과 함께 통치하리로다.

7년 환난기를 거치고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 때의 심판이 끝나면,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은 모두 천년왕국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만왕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여 성도들과 더불어 지상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하시는데, 이 기간을 ‘천년왕국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사탄은 결박당하여 무저갱에 갇혀있게 된다. 이 시대는 인류에게 평화와 행복의 시대가 될 것이다. 또 대자연은 완전히 변화를 받아 사막에는 장미와 같은 꽃이 피고, 사자는 어린 양과 함께 뛰놀며, 사람들은 장수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기간은 대번영의 시대가 될 것이다.

한편, 천년왕국의 끝에 사탄은 잠시 풀려나 천하만국을 미혹하여 최후의 반란을 일으킬 것이다. 천년왕국시대에 출생한 인간들도 죄의 성품과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그들 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만왕의 왕이신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잠시 풀려난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 사탄과 함께 최후의 반란을 일으킨다. 이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반란자들을 심판하고 사탄은 불못에 던져지게 된다(계 20:10).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7. 크고 흰 보좌의 심판(백보좌 심판)(요한계시록 20:11-12)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았는데 그분의 얼굴로부터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을 위한 처소도 보이지 아니하니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예수 그리스도)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곧 생명책이라.

요한복음 5장에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 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예수님)에게 맡기셨다(요 5:22)”고 했다. 그러므로 크고 흰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다름 아닌 예수님을 가리킨다. 헬라어 원어성경(데오스, 하나님)과 흠정역 영어성경(God, 하나님), 그리고 흠정역 번역 한글성경들은 모두다 ‘하나님’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변개시킨 성경들(천주교 계통의 성경들과 한글성경들)은 모두다 ‘보좌(the throne)’로 기록하여, 예수님(성자 하나님)이 심판주 이심을 가리고 있다.

인류 역사상 구원받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반드시 심판을 받도록 되어있다. 이것이 바로 ‘크고 흰 보좌의 심판’인 것이다. 이 심판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인 새 예루살렘 도시가 세워지기 전에 행해지는 최후의 심판이 될 것이다. 이 심판의 크고 흰 보좌 앞에는 각 사람의 행위를 기록한 책들이 놓여 있는데, 각 사람은 자기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고 지옥 불못(게헨나)에 던져질 것이다(계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8.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1)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으니 이는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사라졌고 바다도 다시는 있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 마귀로 인하여 죄악으로 가득찼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것들을 정화시킬 목적으로 만물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시고, 또 만물을 새롭게 하는 과정에서(계 21:5),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한 왕국의 공간이 될 것이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9. 새 예루살렘과 영원 미래(요한계시록 21:2)

나 요한이 보니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이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같이 예비한 채 하늘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오더라.

요한복음 14: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처소가 바로 새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이 도시는 네모반듯하며 그 크기는 길이와 폭과 높이가 각각 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이라고 합니다(계 21:16).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새 예루살렘 도시가 새 하늘과 새 땅이 자리를 잡고 난 다음 새 땅에 영원히 정착하려고 내려오는 것이다. 그 내려오는 것이 마치 신부가 자기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이 예비 되었다고 말씀했다(계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여기서 남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신부는 구원받은 모든 성도를 말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모든 성도들은 새 땅에 정착할 새 예루살렘 도시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무궁토록 거하게 될 것이다(계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이 도시에서의 삶이 인류 역사의 최후의 목적지이며, 또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 미래를 향한 것이다.

지금까지 성경에 나타나 있는 미래의 중대한 사건들, 즉 예수님의 공중 재림, 그리스도의 심판대, 7년 환난기, 어린 양의 혼인잔치, 예수님의 지상 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과 영원 미래 등에 대해 여러 사항들을 살펴보았다.

성도들이 믿음과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미래에 다가올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누리게 될 소망을 성경을 통해 올바로 알고 배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들은 미래에 일어날 중요한 사건들을 성경을 통해 올바로 이해하고 복된 소망과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려야 한다(딛 2: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뿐만 아니라 이러한 미래의 사건들에 대해 잘 모르거나 혹은 그릇되게 이해하고 있는 자들에게는 성경적으로 올바른 지식을 갖고 알려주어야 한다.

권영문 / 전 경성대 교직원, 현 기독교 칼럼니스트 / (한국 개신교회와 천주교회의 문제점들) 저자


생명책(生命冊)Ⅰ(시편 69:28)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15, 21:27


생명책  βιβλίο της ζωής

ספר החיים



생명(2222)

ζωή, ῆς, ἡ 스트롱번호2222

1.

생명.

2.

θάνατος

3.

ἐν τῇ ζωῇ σου: 네가 살아있는 동안

발음 [ zōē ]
어원
2198에서 유래
관련 성경
생명(마7:14), 이 세상의 삶(고전15:19), 생 기(계11:11).
신약 성경
135회 사용



책(976)

βίβλος, ου, ἡ 스트롱번호976

1.

책.

2.

‘성경’

3.

생명의 책

발음 [ biblŏs ]
어원
본래 의미는 파피루스 식물의 내부 ‘껍질’[즉, 종이 또는 책의 두루마리를 가리킴]
관련 성경
계보(마1:1), 책(막12:26, 행7:42, 계20:15), 시편(눅20:42, 행1:20).
신약 성경
10회 사용



주후 2020년 6월 6일(토)

어린 양 ; 요한계시록에 28회(p. 170, 내가 닮고 싶은 예수)
- 대한성서공회 26회
- 다국어 성경 27회

어린 양이란 “예수께서 온유하신 모습에 대한 표현”

요한복음 1:29,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침묵의 온유와 비난의 교만
- 십자가의 강도는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마 27:11, 막 15:2, 눅 23:3, 요 18:33) 빌라도의 질문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침묵의 권위, 침묵의 온유(절제된 힘)
- 죄인으로서 양은 각기 제 길로 가는 약한 모습(이사야 53:6)
 
오 주님
나의 무엇 됨이 아닌 당신이 누구신지가
그것만이 네 영의 진정한 안식
나의 사랑 아닌
당신의 사랑이 두려움과 의심을 떠나게 하고
내 상처 입은 마음의 아픔 잠잠케 하시네

당신의 이름은 사랑
십자가에서 들리네

당신의 이름은 생명
빈 무덤에서 보이네

모든 덜한 사랑은 소멸될 찌꺼기
이것만이 삶의 가장 짙은
어둠 지나는 내 빛 되리니
주 하나님
내 영을 평안으로
내 삶을 노래로 채우는 분은
내가 아는 당신 뿐
당신은 내 건강
당신은 내 기쁨
당신은 내 지팡이
당신은 내 막대기
당신께 의존하여 약함 속에 강하네.

* 자료출처 / p. 183(내가 닮고 싶은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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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20년 5월 7일(목)
어린 양 생명책

어린 양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되었나?

첫째, 이스라엘 자손 12지파의 이름(요한계시록 21:12)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둘째, 어린 양의 12사도의 이름(요한계시록 21:14)

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셋째, 새 예루살렘에 기록된 이름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칠십 인을 두 사람씩 각 고을로 보내셨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이름이 하늘 어디에 기록될까요?
예, 물론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가?
- 성도들의 이름은 새 예루살렘에 새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의 날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3:10∼12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생명책(生命冊)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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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의 생명책(生命冊)(요한계시록 21:27)

                                             


  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2019-11-10)

요한계시록은 구원의 완결판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유는 세 단계로 발전 계시되었습니다.

첫째는 구약은 오실 메시아
메시아를 통한 구원을 예언합니다.

둘째는 신약은 오신 메시아
메시아를 통한 속죄를 통한 구원을 완성합니다.

셋째는 요한계시록은 심판의 주로 오실 메시아
심판주로 오실 것을 약속합니다.

요한계시록 1:4 - 장차 오실이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요한계시록 1:7 -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요한계시록 1:8 - 장차 올 전능한 자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어린 양으로 구원의 완성을 이루신 후에 하늘로 오르셨던 부활의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마지막 날 펼쳐야 할 책을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성경 전체에서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용어를 요한계시록 13장 8절과 21장 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τῷ βιβλίῳ τῆς ζωῆς τοῦ Ἀρνίου
the book      of life of the Lamb

* ζωή(2222. zóé)
Definition : life

Usage : life, both of physical (present) and of spiritual (particularly future) existence. 

* ἀρνίον(721. arnion) 
Definition : lamb

Usage : (originally: a little lamb, but diminutive force was lost), a lamb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용어가 사용된 요한계시록의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 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짐승의 정체를 드러낸 말씀으로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 이외에는 상거래에 참여할 수 없어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없게 하여 고립된 상태로 굶어 죽이려는 짐승의 계획을 공개하는 내용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은 아무리 짐승의 계획이 두려울지라도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은 짐승에게 경배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이란 로마를 말합니다. 특히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로마의 황제 즉 카이사를 하나님으로 숭배하라는 로마 황제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니엘서 2장과 7장을 읽어보면 이 짐승이 무엇인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서 2장은 거대한 우상에 관한 말씀으로 느부갓네살 왕이 즉위 후 2년이 지났을 무렵 꿈을 꾸었으나 꿈의 내용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바벨론 나라의 모든 술객들에게 왕이 꾼 꿈을 설명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나 모든 술객들은 어떤 신도 왕이 꾼 꿈을 말하지 않으면 그 꿈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할 때 벨드사살 이라고 개명된 다니엘은 세 친구들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에게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부탁하고 희한한 일을 알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꿈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거대한 우상은 머리는 정금(正金), 가슴과 팔은 은(銀), 배와 넓적다리는 놋(銅), 종아리는 철(鐵)이며 발은 진흙(土)이었습니다. 얼마 후 뜨인 돌이 나타나 신상의 철로 된 종아리와 진흙으로 된 발을 내리치자 거대한 신상은 산산조각이 되고 뜨인 돌이 부서져 태산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다니엘 7장은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꿈을 꾼 것을 설명합니다.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불어와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습니다.
둘째 짐승은 곰과 같으며 입의 이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습니다.
셋째 짐승은 표범 같은데 등에는 새의 날게 넷이 있습니다.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아주 강하고 큰 철 이가 있습니다.

다니엘의 환상은 짐승은 세상 모든 나라들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세상 모든 나라들은 그 나라의 특징에 따라 짐승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니엘 2장과 7장은 같은 내용을 보여주신 것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머리는 정금(正金)으로 바벨론 제국을 상징합니다.
가슴과 팔은 은(銀)으로 메대 바사 제국을 상징합니다.
배와 넓적다리는 놋(銅)으로 헬라 제국을 상징합니다.
종아리는 철(鐵)이며 발의 일부분은 진흙(土)으로 종아리와 발은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로마 즉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을 상징합니다.

뜨인 돌이 나타나 거대한 신상의 발을 내리쳐 무너트리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제국들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며 뜨인 돌은 장차 도래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어린 양 생명의 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둘째 사망의 심판을 받아 불못에 던져질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들의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었다고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하셨을까요?
죄(罪)에서 해방(解放)하신 은혜(恩惠)

요한계시록 1:5b,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요한계시록 5:9b,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요한계시록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요한계시록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간증) 최영준장로님의 임종 예배와 꽃가마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9:1∼2,
이 일 후에 내가 들으니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가로되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간증) 이은희 목사님은 목사의 딸로 태어났지만 아버지 목사의 목회가 전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없는데 왜 하나님이 있다고 가르치는가? 이것은 거짓이므로 전단지를 만들어 교회에 나오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있다고 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이렇게 전단지를 돌렸다고 합니다.

확신했다며 대학에 입학 한 후 아버지에게 이제부터 나는 독립할 것이므로 더 이상 아버지와 함께 살 수 없다며 교회 앞에서 "하나님은 없다!"는 교회를 찾아오는 교인들에게 전단지를 돌렸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없는 하나님을 믿지 말고 목사의 가르침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외쳤다고 합니다. 그러면 장로님들이 붙잡아 가두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특수한 암이 발견되어 대략 3개월 정도 살 수 밖에 없는데 의사들이 너무 특수한 암이어서 암의 조직을 떼어내 연구용으로 보관하겠다며 암 조각을 떼어내는 조건으로 3백만 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돈을 받고 죽기 전에 그 돈을 탕진하는데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 아버지의 집에 누웠는데 교회 권사님들이 모여서 "이렇게 은희가 죽으면 더 이상 교회가 세워질 수 없습니다."며 결사의 기도를 하는데 영이 몸에서 빠져나가 위로 올라가더랍니다.

천사가 영을 데리고 위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결사각오로 기도하던 권사님들의 간구 때문에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멈추었다고 합니다. 그 순간 영이 혼과 하나 되어 집에 누워 있는 육신 안에 들어가 살아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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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2019-11-17)

어린 양의 생명책(生命冊)(요한계시록 21:27)


요한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 내용의 구조를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동차의 구조를 아는 정비사는 고장 난 것을 수리할 수 있지만 아무리 운전을 잘한다고 고장 난 자동차를 정비할 수 없습니다.

아주 오래 전 부산 동광교회에 김정민장로님이 오토바이 부속품을 제조하는 공장을 운영하셨는데 처음에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셨는데 사업이 확장되면서 물건을 옮기려면 자동차를 운전해야 하는데 필기시험에 매번 불합격하여 실기시험을 치룰 수 없자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하루는 경찰이 지켜보는데 “도둑이 제 발이 저리다”는 속담처럼 운전면허증이 없는 것 때문에 경찰을 피하여 가려고 방향을 갑자기 바꾸자 경찰은 이상하게 생각하여 장로님을 쫓아왔다고 합니다. 부산의 도로를 훤히 알고 있는지라 요리조리 피하여 도망하다가 결국은 경찰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경찰이 “운전면허증을 보여 달라!”고 하자 “면허증이 없다!”고 하였더니 “면허증도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운전을 잘 하느냐?” 하며 추궁을 하므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운전을 잘할지라도 고장 난 자동차는 수리할 수 없는 것처럼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었어도 또한 신앙생활을 오래 하였을지라도 요한계시록의 구조를 모르면 요한계시록은 어렵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Ⅰ. 공간적 구조

1∼3장 : 밧모 섬에서(1:9)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 밧모(Patmos) ; 뜻은 “송진”, 남북이 약 16km, 동서 10km 주위 약 60km.
현재 “파티노”  
 
4∼11장 : 하늘에서(4: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12∼22장 : 땅에서(12:13)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Ⅱ. 조직신학적 구조

1장 : 기독론(예수 그리스도)
2∼3장 : 교회론
4∼22장 : 종말론
- 말세(末世)는 마지막 시대 즉 마지막 때
- 종말(終末)은 마지막 날 즉 심판의 때

지난주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이 기록될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불못에 던져질 것입니다.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둘째 사망” 이라고 합니다. “첫째 사망”은 세상에 살면서 “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죽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둘째 사망”은 첫째 사망의 상태로 머물다가 마지막 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심판대 앞에서 “육체”와 “영혼”이 다시 연합된 후에 “불못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진리를 세상에서 학문적으로 배울 수 없기 때문에 믿음으로 받아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어떤 지식을 얻게 되는 과정을 이 세상에서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는 배움의 과정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경험의 과정입니다. 그런데 배움의 과정과 경험의 과정으로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지식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다시 살아나서 분명하게 증거 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기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 배울 수 없고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경우에 믿음이란 과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요한계시록 20:6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요한계시록 20:14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개역한글

본문

공동번역

새번역

헬라어

1

속된 것

21:27

더러운 것

속된 것

κοινός

2

가증한 일

21:27

흉측한 것

가증한 일

ποιέω

3

거짓말 하는 자

21:27, 8

거짓

거짓을 행하는 자

ψευδής

4

두려워하는 자

21:8

비겁한 자

비겁한 자

δειλός

5

믿지 않는 자

21:8

믿음이 없는 자

신실하지 못한 자

ἄπιστος

6

흉악자

21:8

흉측스러운 자

가증한 자

βδελύσσομαι

7

살인자

21:8

살인자

살인자

φονεύς

8

행음자

21:8

간음한 자

음행자

πόρνος

9

술객

21:8

마술쟁이

마술쟁이

φάρμακος

10

우상숭배자

21:8

우상숭배자

우상숭배자

εἰδωλολάτρης


1. 속(俗)된 것 ↔ 거룩한 것
- 풍속 속(俗) ; 사람 인(亻) + 골 곡(谷)(우묵한 골짜기, 계곡, 골짜기)

사람이 골짜기에 있는 상태를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편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어려서부터 “속된 것”과 “거룩한 것”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신앙을 가르쳐야 합니다.

레위기 10:10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에스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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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로마서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분별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신앙을 로마서 12장 1절에서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영적 예배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 예배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예배는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이 되었습니다. 사람 중심의 예배가 되었기 때문에 교회 수는 많이 증가되었지만 교회가 수가 증가된 만큼 세상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어느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던 선교사에게 다른 지역에 거주하던 교인들이 찾아와서 
“우리는 예수님은 사랑하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사랑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선교사는 깜짝 놀라서 “왜 그렇게 말을 하느냐?” 하고 되물었을 때 원주민들의 대답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로부터 예수님을 볼 수 없기 때문” 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이 어느 선교지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분명한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이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직장에서 일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할까요? 내가 받는 주급만큼 일을 할까요? 아니면 주급의 2/3 정도만큼 일을 할까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내가 받는 주급만큼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급보다 훨씬 더 적게 일을 합니다. 이와 같은 삶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It is God's will that you should be sanctified.)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할 수 있습니다(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성 베네딕투스(Saint Benedictus)는 영적인 활동과 세속적인 활동 간의 인위적 담을 허물기 위하여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이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잘 분별하고 속된 것을 거룩하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적 지혜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것 세 가지는 “빛”과 “바다”와 “소금”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순결한 것은 “소금” 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금이란 순결한 바다와 순결한 빛이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소금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하셨습니다(마태 10:16). 왜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둘기(페리스테라)는 집비둘기를 말합니다. 이때 순결 하라는 단어는 “섞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집비둘기가 어디를 날아다니든 반드시 주인을 찾아오기 때문에 옛날에는 편지를 전달할 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순결하라는 것은 세상에 속해있지만 세상에 동화되지 않고 주인을 찾아오는 것처럼 신앙이란 주인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거룩한 주의 백성으로 어지러운 이 세상을 믿음으로 살아가려면 다윗과 같이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시편 51:10).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비둘기(περιστεραί)
- περιστερά(4058. peristera) 
Definition : a dove

Usage : a dove, pigeon.    

* 순결하라(ἀκέραιοι) 
-  ἀκέραιος(185. akeraios)
Definition : unmixed, pure

Usage : (lit: unmixed) simple, unsophisticated, sincere, blameless.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민수기 14:25, 아말렉인과 가나안인이 골짜기에 거하나니 너희는 내일 돌이켜 홍해 길로 하여 광야로 들어갈찌니라. 

에스겔 22:26,
그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였으며 나의 성물을 더럽혔으며 거룩함과 속된 것을 분변치 아니하였으며 부정함과 정한 것을 사람으로 분변하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눈을 가리워 나의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았느니라.

에스겔 42:20,
그가 이와 같이 그 사방을 척량하니 그 사방 담 안 마당의 장과 광이 오백척씩이라 그 담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는 것이더라. 

로마서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 속된 것(κοινὸν) unclean 
- κοινός(2839. koinos)
Definition : common
Usage : (a) common, shared,
        (b) Hebraistic use : profane; dirty, unclean, unwashed. 

“속된 것”이란 일반적인 의미는 “공통, 공유” 라는 뜻으로 사용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적 의미는 “불결한, 더러운, 부정한, 씻지 않은” 이란 뜻입니다.  


거룩이란 거룩한 삶에서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하지 못한 삶이 결국 사람들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성경적인 거룩함은 나를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내가 속한 공동체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를 경험하고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는 것” 입니다. 거룩이란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을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속된 것이란 본질에서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갖게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사람 냄새가 진동합니다. 이제는 예수 향기로 채워야 합니다. 예수 향기로 채우려면 먼저 내가 거룩한 사람으로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거룩해질 때 하늘나라 시민권을 갖고 세상에 나갈 수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자들이란 “하나님의 도성”과 “사람의 도성” 두 개의 시민권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페리그리니’(perigrini) 즉 지상에 거주하는 이방인이고 두 세계에 대한 충성이 서로 상충되지 않는지 주의 깊게 따져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는 것은 저 나라를 위하여 이 나라를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두 세계가 끄는 힘을 동시에 느낍니다. 인간은 그 두 가지의 기묘한 배합으로 이루어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운데 끼여 있습니다. 진창에서 뒹구는 천사요, 날기를 시도하는 포유동물입니다. 플라톤은 인간의 이러한 특성을 반대쪽으로 서로 끌어당기는 두 마리 말로 묘사했습니다.


성경에는 미묘하고 통합적인 실재를 성과 속, 자연과 초자연으로 구분하지 않고 한가지로 제시합니다. 속된 것과 거룩한 것, 자연과 초자연은 구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 베네딕투스는 영적인 활동과 세속적인 활동 간의 인위적 담을 허물기 위하여 베네딕투스 수도회를 설립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노동이고, 노동은 기도이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잘 분별하고 속된 것을 거룩하게 하는 믿음을 가지고 성경적 지혜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첫째,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은 구별해야 합니다.


에스겔 44:23,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가르치며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별하게 할 것이며” 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근본 생각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단어는 “잘라서 떼어 놓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베어내다’라는 의미를 가진 고대어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거룩해진다는 것은 표준적인 것들로부터 따로 떨어져 구별되는 것이며, 탁월하고 비범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살기를 원하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왕따를 당합니다. 세상들이 가는 길과는 반대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나는 거룩한 하나님이다”고 하십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6장에는 이사야가 새롭게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천사들이 나타났고 천사들은 여섯 날개를 가지고 찬양합니다. 6:3입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이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4:8에는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어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그 생물들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하나님의 거룩성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십니다. 예수님이 거룩하신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거룩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시기에 마태복음 7:6에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15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합니다. 우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런 말씀이 레위기 전체에 흐르고 있는 사상입니다. 거룩한 백성이 거룩한 곳에서 거룩한 하나님께 거룩한 제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학개 2:12에는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이나 사물이나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다 거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유대인에게는 ‘코셔’(Kosher)라는 말이 있습니다. 구별하여 만든 것들을 말합니다. 채소나 과일 그리고 모든 제품에 코셔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처음 재배할 때부터 특별하게 성별하여 만들어 하나님께 바치는 제품들입니다. 이런 마음의 준비와 자세가 모든 성도들에게는 필요한 것입니다.

참된 거룩의 뿌리는 규범이나 원칙이나 기준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참되고 거룩한 하나님을 향한 넘치는 열정입니다. 거룩은 우리의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행위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어떤 목사가 다른 교회를 찾아가다가 찾지 못하여 길을 물어보려고 복덕방에 들어갔습니다. 복덕방 주인은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얼마나 친절하게 또박또박 잘 가르쳐주는지 목사는 나오다가 다시 들어가서 그 주인을 교회만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전도하였습니다. “당신은 친절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꼭 예수만 믿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전도를 다 하고 목사가 복덕방을 나오자 다시 따라 나와서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복덕방 주인은 혼자 이렇게 중얼거리더랍니다. “교회 가는 길도 모르면서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준다고?” 우리 그리스도인들 스스로가 천국에 가는 길을 제시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이 거룩하게 살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거룩이 성장하면서 유혹은 점점 줄어듭니다. 그 누구도 유혹받지 않을 만큼 성숙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유혹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조심하고 거룩하게 사는 삶을 연습해야 합니다. 우리 속에 거룩성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거룩한 생각, 거룩한 묵상, 거룩한 생활을 지향하는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경건한 거룩은 관계의 거룩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입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게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죄는 달콤하지만 뱃속에 들어가서는 쓴 것으로 변합니다. 반면에 거룩은 처음에는 쓰지만 나중에는 단 것으로 변합니다.


출애굽기 20:11에는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날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저의 모친의 엄격한 신앙 훈련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은 생활의 철칙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일은 거룩한 날이니 절대로 공부하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일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공부를 조금 오랫동안 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후 15년을 더 공부했으니 제법 했지요. 그러나 단 하루도 주일에 공부한 적 없습니다. 주일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하나님 보다 어머니 얼굴이 아른 거려 못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시험치고 논문 쓸 때는 정말 바빴지만 그래도 주일은 공부하지 않았습니다. 토요일에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12시가 넘으면 그냥 책을 덮어놓고 잤습니다. 주일 밤에 공부할 일이 있으면 12시까지는 성경을 보다가 12시가 되면 책을 펴고 공부했습니다. 문자적인 성수주일을 하느라고 고생했고 주일에 공부를 안 했으니 다른 사람보다 공부할 시간도 적었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들보다 공부 못하지 않고 박사학위 공부할 때도 12명 중에 두 번째로 일찍 학위를 받았습니다. 거룩의 연습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하게 합니다. 거룩의 연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삶에 축복이 됩니다.


둘째, 속된 것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15에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속된 짐승을 잡아먹으라고 하셨을 때에 먹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속되다고 한 것은 절대로 먹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 먹지 말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먹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구별하셨습니다. 속된 것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더러운 것을 깨끗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레위기 10:10에는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라고 하십니다. 선민으로 거룩한 것만 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에서 복음으로 옮겼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먹을 것과 먹지 못할 것을 구분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7:18에는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느니라”고 합니다.

이제 하나님은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십니다. 속된 것을 거룩하게 만들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었나, 무엇을 했느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한 목적이 무엇이냐가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한 것이 거룩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선입니다.


특이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거룩함은 아닙니다. 거룩함은 오직 하나님과 같이 되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일하면 거룩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사초’에는 “마음을 쉬고 보면 새들이 날아간 자국까지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보면 맑고 거룩한 것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하시면 사람이 속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거룩의 기준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디모데전서 4:4∼5,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 짐이라.

모든 것이 선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거룩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경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하면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거룩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천사들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타락하여 속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원래 사람은 거룩한 존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타락하고 범죄하여 속된 존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세속적인 것을 거룩하게 만드는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의 음식이 거룩한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의복이 거룩한 것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잠이 거룩한 잠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일이 거룩한 일이 되게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일의 목적이 하나님이 되므로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직장을 거룩하게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거룩하게 만들어가는 거룩한 무리,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순간이 거룩한 순간이며 우리의 삶 자체가 은혜입니다. 묵상주의자들 간혹 성과 속의 이분법에 빠지는 우를 범합니다. 그래서 이것은 거룩하고 저것은 속되다고 하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속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할 수 있습니다.



  간디는 “만일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교적 삶을 충만하게 산다면 인도에는 힌두교도는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거룩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그래서 중요한 말씀입니다.


  존 웨슬리는 “사회의 거룩함 외에 거룩함이란 없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개인의 종교로 만드는 것은 곧 기독교를 파괴하는 일입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현세에 가장 많은 일을 한 그리스도인들은 내세를 가장 많이 생각했던 이들입니다.


비행기를 탄 독실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불신자가 비아냥거리기 시작합니다.
“그 책에 적힌 이야기를 다 믿습니까?”
“예, 다 믿습니다.”
“고래 뱃속에 들어간 사람 이야기도 아시나요?”
“알지요. 요나라고 합니다”.
“사람이 고기 뱃속에서 살 수 있다고 보시오?”
“천당에 가서 물어보면 알겠지요.”
“그 사람이 천당에 없다면 어떡할꺼요?”
“그럼 아저씨가 물어보면 되겠네요”.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거룩하지 못한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 없이 보는 성경이 거룩할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하는 일이 거룩할 리가 없습니다. 거룩은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임재를 맛보는 삶입니다.


  “I am a gentleman”을 한국말로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요즘 아이들은 ‘신사임당’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신사가 무엇입니까? 신사는 양복이나 구두를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사는 마음의 포용력입니다. 수용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아멘’하는 마음이 신사입니다. 신사는 모든 속된 것을 거룩하게 수용하는 자세입니다. 세상의 더러운 것들이 우리 속에 들어와 우리 속의 거룩함으로 거룩하게 변하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신사이고, 참 신사의 자세입니다.


결론


영화 ‘불의 전차’의 실제 주인공인 에릭 리들(Eric Liddell,  1902. 1. 16∼1945. 2. 21)은 중국 천진에서 스콧틀랜드 선교사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924년 제8회 파리 올림픽에 영국대표 100미터 단거리 선수로 출전하였으나 100미터 예선 경기가 7월 6일 주일 오후 3시와 5시였다. 에릭은 일정표를 본 후 “나는 주일에는 안 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다. 에릭의 그와 같은 결정은 그의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정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자 에릭 리들의 100m 출전 포기를 들은 영국 전체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또는 “신앙을 소매 끝에 달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척 하는 위선자” 아니면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에릭 리들은 100m 예선 경기를 하던 7월 6일 주일에는 스콧츠 커크(Scats kirk) 장로교회에서 간증 설교를 했습니다. 그 날 에릭 리들은 경기장에 나가 동료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도 하지 않고,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성도들을 위해서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다. 

100m 경기에서는 영국의 헤롤드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의 기록은 에릭 리들보다 약간 뒤졌었다. 에릭 리들은 기쁜 마음으로 헤롤드의 우승을 축하해 주었다. 하나님은 에릭 리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에릭 리들은 자신의 주 종목이 아닌 200 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 에도 출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실 400m 에서는 다른 선수들의 들러리였다. 예선에서만도 스위스의 “임바흐”, 미국의 “피치”와 같은 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서 우승후보로 각광을 받았었다. 


드디어 결승의 날이 왔다. 에릭 리들은 신들린 사람처럼 첫 코너를 돌았다. 경기를 지켜보던 전문가들은 “에릭이 저런 속도를 유지하다가는 도중에 쓰러져 죽을지도 모른다.” 고 불안함을 표현하였다. 에릭 리들은 임바흐, 피치 등 우승후보를 제치고 47초 6이라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가 응답되었던 것이다. 


In the old book it says, “He who honours me-I will honour” Best wishes always.
 

구약에 이런 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하리라”, 최선의 영광이 있기를 빌면서. 


사무엘상 2:30,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그는 처음 400m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다. 

“처음 200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주일은 자기를 위한 날이 아니고 주님을 위한 날이라는 사실을 삶으로 설교한

위대한 신앙인이었다. 


올림픽 경기로 국가적 영웅이 되었지만, 에릭 리들은 하나님과의 헌신 약속을 지키기 위해 모든 영광을 버리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갔다. 그 이듬해 그는 영웅으로서의 모든 영광을 내던진 채 그는 아버지와 형의 뒤를 이어 24세의 젊은 나이로 중국 선교사로 떠났다. 그는 운동선수의 화려한 명성이 중국의 무지한 농부 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비할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리들은 12년 간 톈진에서 교사로 봉사하며 복음을 전했으며 그 후 7년 동안 산둥 반도의 곳곳을 다니며 농촌 지역에서 전도를 했다. 마지막으로 2차 세계대전 이 끝나기 전 몇 년 간 1,800명의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일본군 치하 웨이시엔의 수용소에 갇혀 지내며 타인들을 격려하는 삶을 살다가 그의 나이 44세 때인 1945년 뇌출혈으로 사망했다. 


2012년 여류 국수 타이틀 보유자인 조혜연(趙惠連, 1985. 6. 7∼)씨는 세계 여자 바둑 최강전이 주일에 열릴 예정이었으므로 출전 포기를 선언하였습니다. 그 때 많은 비난도 있었지만 최강의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거룩함을 잃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잘 되게 하십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하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속된 것을 물리치는 용기와 속된 것을 거룩하게 하는 믿음을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5,
지혜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승리하는 지혜가 아니라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기도해야 합니다.

거룩한 것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기도합시다.

우리 모두가 속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사는 성도, 거룩한 무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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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증한 일 ↔ 하나님의 계명에 어긋난 것
- 가증하다는 것은 입으로는 믿음을 말하고 행위로는 믿음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디도서 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레위기 18:26
그러므로 너희 곧 너희의 동족이나 혹시 너희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이나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고 이런 가증한 일의 하나도 행하지 말라. 

3. 거짓말 하는 자 ↔
-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거짓의 영에 지배 받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22:22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4. 두려워하는 자 ↔

- 두려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56:3∼4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찌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에게는 육체의 질병 암과 같은 것이 두려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뉴욕과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며 비싼 렌트비로 인한 주거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정말 내가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암이란 질병이 두렵게 할지라도 주거의 문제가 힘들게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런 것은 잠간 내 삶을 스치고 지나갈 잠시 잠간의 염려일 뿐입니다. 정말 두려운 것은 내 이름이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된 그대로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는가에 있습니다.

5. 믿지 않는 자 ↔

6. 흉악자 ↔

- 흉악(凶惡)이란 귀신에 붙잡힌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잠언 13:5
의인은 거짓말을 미워하나 악인은 행위가 흉악하여 부끄러운데 이르느니라. 



7. 살인자 ↔

8. 행음자 ↔

행음(行淫)을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육체적인 행음
둘째는 영적인 행음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우리 몸에 대해 짓는 죄를 언급한 후에(갈 5:17 이하) 종교적 죄인 우상숭배와 마술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 두가지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상과 방법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으나 없어지지 않고 있다.

먼저 우상이란 말은 아이돌로라트리아(eidololatria)란 헬라어에서 유래했다. 이 말은 우상이란 말과 숭배란 두 말이 합쳐진 합성어다. 구약시대에는 우상숭배가 주변의 이방세계에서 많이 행해져 이스라엘의 유일신 신앙을 위협할 정도였다.

가장 무서운 것이 바알 숭배였다. 바알신은 풍년신이다. 비가 오게 하는 방법으로 바알신이 성행위를 하도록 하면 비가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밤이면 창녀들이 바알 신전에 바글바글 모여서 주위 사람들과 성행위를 했으며 바알신이 성행위를 보고 흥분해 비를 내린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는 만나를 먹었기 때문에 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착해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비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 방법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바알신을 섬기는 것을 배웠던 것이다.

우상숭배는 신약시대에도 계속됐다. 공통점은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음행과 함께 일어난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우상숭배란 영적 음행(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육적 음행과 연결됐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증하게 여기는 것은 하나님 여호와의 존재를 부인할 뿐만 아니라 그의 영광을 작은 모양 속에 가두어놓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이다.

우상 다음으로 두번째 영적 전쟁은 마술(성경에서는 때로 복술이라고 번역)이다. 마술이란 말은 팔마케이야(Pharmakeia)란 헬라어에서 왔는데 이 말에서 유래된 영어 단어가 약국의 조제(Pharmacy)란 말이다. 약을 조제하고 섞는다는 뜻이다. 고대에 약을 사용하여 복술을 행한 데서 유래했다.

마술이라고 하면 보통 마술사들의 눈속임과 환상을 통한 대중적 마술을 연상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마술은 그런 마술이 아니다. 마술로 유명한 것은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에베소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바울이 여기서 마술책들을 태워 사회적 소요를 일으킨 것이다. 이 마술은 마약과 연결되는 것은 물론이고 더욱 무서운 것은 악령의 역사라는 점이다. 



9. 술객(術客) ↔
- 술객이란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것 또는 하나님의 응답이 아닌 것들을 말합니다.

미가 3:7
선견자가 부끄러워하며 술객이 수치를 당하여 다 입술을 가리울 것은 하나님이 응답지 아니하심이어니와.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었으나 꿈의 내용을 알 수 없어 나라 안에 있는 모든 마법사들과 술객들에게 지난 밤 왕이 꾼 꿈을 말하라고 명령합니다. 만일 왕이 꾼 꿈을 말하지 않는다면 모든 술객들과 마법사들은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때 유대 나라에서 붙잡혀 왔던 다니엘도 함께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다니엘은 함께 붙잡혀 왔던 세 친구들 아벳느고와 사드락과 메삭에게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부탁하고 아리옥 장관에게 며칠만 기다리면 반드시 왕의 꿈을 알려드릴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드디어 다니엘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앞에서 왕이 꾼 꿈을 이야기 합니다. 다니엘의 이야기를 듣고 왕은 네가 섬기는 하나님이 참 신이라고 말합니다.

술객들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이 애급에서 나오려 할 때 모세가 지팡이를 던졌을 때 애급 왕의 술객들도 지팡이를 던져 뱀으로 나타나게 했습니다. 그때 모세의 지팡이가 애급의 술객들이 던져 똑같이  뱀이 된 지팡이를 삼켜버렸습니다.

술객들이 행하는 기적은 단순한 기적입니다. 이러한 기적을 성경에서는 “이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놀라운 사건을 통하여 감추어진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기적을 “세메이온” 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과 요한복음에서 사용된 이적이란 단어는 모두 “세메이온” 이라고 합니다.



10. 우상숭배자 ↔

- 우상(偶像)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 우상(偶像) ; 짝 우(偶), 형상 상(像), 모양 상(像)
짝 우(偶) : 사람 인(亻), 원숭이 우(禺)
형상 상(像) : 사람 인(亻), 코끼리 상(象)
우상이란 한자어는 사람이 힘이 강한 것을 흉내 내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무지하여 강한 바람을 또는 불을 때로는 물을 신이라고 믿었습니다. 태풍과 산불과 홍수를 통하여 경험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시하시므로 강한 것은 바람과 불과 물이 아니라 "여호와" 라고 계시하셨습니다.

여호와를 직접 체험하고 여호와의 도움으로 애급에서 나왔고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던 히브리 민족은 광야 생활을 시작하며 백성들을 인도할 모세가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 그들의 금을 모아 눈으로 볼 수 있는 힘이 강한 황소를 만들고 그 황소가 이제부터 광야에서 인도할 신이라고 함께 춤을 추며 즐거워했습니다. 인생이란 이런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눈으로 보는 믿음이 아니라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보배로운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토테미즘이 성행하며 소, 고양이, 악어, 매 등의 동물이 신성시되었는데, 이를 미라로 만들었다. 특히 유명한 것은 '아비스의 암소'라고 불리는 므네비스 신의 성수(聖獸)로 전 국민으로부터 숭배를 받았다. 그들은 이 암소가 죽으면 미라로 만들어 매장하고 새끼소를 구하여 다음 '아비스의 암소'로 인정되면 그것을 수도인 멤피스로 옮겼다. 선별 기분은 검은 암소로 이마에는 삼각형 보양의 흰 반점이, 옆구리에는 달 모양의 반점이 있어야 했다.

한편 파라오는 자주 암소로 상징되는데, 유명한 메네스 왕의 화장터에서 암소는 모습을 한 왕이 적을 격파시키는 그림이 발견되었다. 암소의 힘과 번식력은 오리엔트 각 지방의 농경민족 사이에서 널리 숭배되었다. 당시 이집트의 신앙의 중심지는 멤피스, 헤리오 폴리스, 테베 등이었다.

* 참조: 출32:1-6, 신9:16, 느9:18 

시편 135:15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멸망 재촉하는 우상숭배


1938년 9월9일 평양 서문밖교회. 188명의 총대들이 모여 제27회 장로회 총회를 열고 있었다. 방청이 금지된 이날 각 총대 곁에는 일본 형사가 붙어 앉아 삼엄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결국 신사는 종교가 아니므로 참배는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당시 선교사 블레어는 “불법이오”라며 이의를 제기했으나 묵살당한 채 신사참배가 결의됐다. 사전에 일경(日警)은 총대들에게 총회에 참석하면 신사참배는 죄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 신사참배 문제가 상정되면 침묵할 것,그렇지 않으면 총대를 사퇴하고 출석하지 말 것을 강요했다. 1938년 9월10일 오전 10시30분. 평양 경찰서장의 각본대로 신사참배는 가결됐다. 총회가 우상숭배를 가결한 것이다. 그로부터 63년이 지난 오늘 일본 총리는 신사참배에 나섰고, 우익단체들도 때를 기다렸다는 듯 신사참배를 들고 나섰다. 우상숭배로 망한 일본이 한 세기도 지나기 전 같은 전철을 다시 밟고 있다. 단 다른 것이 있다면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발로 걸어가 참배하고 있다는 것이다.형태와 형식이 어떻든 우상숭배는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신다. 그리고 멸망의 원인이 된다. 일본은 이 점을 두려워하라. 

바알(Baal)은 '주인' , '소유주', '남편'이라는 뜻으로 페니키아와 가나안의 농업 신이다. 성경에 의하면 산당에서 음란한 예식을 거행하고 자해행위를 하며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는 일 등을 하였다고 한다.

이 바알 신앙으로 인해 점차 야훼 신앙이 혼란해지자 예언자들로부터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배격되었다. 일반적으로 바알은 천둥과 번개를 나타내는 창으로 땅을 짚고 암소에 올라탄 모습으로 표현된다. 

▣ 석가모니의 신격화


석가모니는 임종 직전 제자들에게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아무도 의지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무상하다 해탈을 위해 정진하라고 마지막 교훈을 하였다. 석가모니는 80세에 배탈로 돌아가셨다. 공양받은 음식이 상했던 모양이다. 인간으로서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제자들은 스승이 돌아가시자 스승의 귀한 가르침이 잊혀지지 않고 또 변질되지 않도록 스승의 말씀들을 결집하였다. 이를 위하여 500 제자들이 모여 다문제일의 아난다와 다른 제자들이 자신들이 스승으로부터 들어 기억하고 있는 것을 전체 앞에서 여시아문, "나는 이렇게 들었다"로 시작하여 그 내용을 말하였다.

스승이 돌아가신 후 500년 경 불교 교단은 보수파와 진보파로 크게 둘로 갈라졌다. 보수파는 스승의 가르침을 글자 그대로 따르려 하였다. 그들은 출가하여 자신을 윤회에서 구원하려 정진하였다. 진보파는 대자대비하신 스승의 가르침의 뜻을 살려 전 인류의 구원에 뜻을 두었다. 그들은 역사적인 석가모니는 영원 절대하신 부처님의 화신이라 하여 석가모니를 신격화 시켰고 그를 의지하고 믿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다.

진보파는 자신들을 큰 수레, 대승이라 칭하면서 보수파를 소승, 다시말해 자기자신만 구원하려는 작은 수레라고 깍아내렸다. 보수파는 진보파를 스승의 가르침을 저버린 자들이라 비난하였다.

석가모니는 유훈으로 구원은 자기자신이 이루는 것이니 아무도 의지하지 말라고 하여 자력문을 말씀하셨는데 진보파는 부처님을 의지하여 구원을 얻는다고 타력문을 말하였다. 그 뿐 아니라 스승님은 늘 제행무상 제법무아라고 영원히 실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셨는데 진보파는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책들을 펴내며 스승을 영원히 실재하는 부처님이라 말하니 이것은 "비불"이라는 것이다. "비불"이란 석가모니 스승의 말씀이 아니어서 불교의 경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진보파에서는 스승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만 경이 아니다. 스승의 뜻을 따른 것도 경이라고 응수하였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실재하는 "범"과 "아"를 말하며 카스트제도를 성립시킨 브라만교와 대립되는 혁신 사상가들 중 하나로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소승불교는 자신의 구원 중심이다. 그것도 자기 자신이 자기를 구원하려 하고 있다. 구원받아야 할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 구원은 하나님께만 있다. 대승불교는 인간 자력 구원보다 신에 의한 타력 구원 중심으로 나아간 것은 진 일보한 것이나 배탈로 돌아가신 인간 석가모니를 영원한 부처님으로 신격화시킨 것은 스승의 가르침과 다른 것이다.

예수님은 정말 대승이시다. 그는 흠도 티도 없으신 성자로 저주의 십자가를 지실 아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십자가상에서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희생제물로 죽으셨다. 온 인류가 탈 수 있는 큰 수레이시다. 예수님은 정말 신이시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셨고 성령으로 잉태되어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셨고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셨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는 신이시다.


▣ 맘몬


맘몬(Mommom)은 어느 사이에 현대인들의 거대한 우상으로 탈바꿈했다. 고대는 ‘현인’(Wise Man)이 이상적 모델이었다. 중세는 ‘성자’(Saint)가 이상적 모델이었고, 현대는 ‘부자’(Rich Man)가 이상적 모델이다. 그래서 오늘을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금주의 사상을 생활 철학으로 삼고 있다. 황금은 인생의 지고한 행복의 얼굴이며 삶의 목표이다. 또한 성공의 심벌로 착각하기도 한다.

영어에서 돈은 ‘머니’(money)로 사용되고 있다. 이 말은 라틴어 ‘모네타’(moneta)에서 유래되었다. 이는 인류의 재산 분배를 감독하는 신을 모신 사원의 이름으로 ‘신께 의뢰하는 것’이라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미국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벌었던 부자는 록 펠러이다. 그는 자신의 재산 관리 철학을 “나는 돈의 창고를 맡은 청지기이다. 따라서 이 돈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권리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돈을 옳게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번 돈을 옳게 쓰는 것의 중요성을 잘 알고 시행한 사람이었다. 성경은 말한다. “재물은 날개를 내어 하늘에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느니라”(잠 23:5).

성경에는 돈(재물)에 관한 구절이 대략 2천 개 이상이나 된다. 또한 38개의 비유 가운데 16개가 재물과 소유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재물의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해 주고 있다.

미국 가정의 80%가 자신의 수입 100% 이상을 소비한다고 한다. 이것은 전체 미국인 50% 이상이 물질과 금전의 노예로 전락했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런 함정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성경적인 청지기 원리를 무시하고 세속적인 생활 원리를 따랐기 때문이다.

- 21세기 리더십 에세이 / 배수영


▣ 현대인의 우상


우상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에 이르기를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115:4-8)하였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이와 같이 사람이 만든 것이나, 자연물과 짐승에게 절하고 섬기는 것만이 아니라,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3:5)하신 말씀 그대로 하나님 외에 탐욕으로 더 사랑하고 숭배하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이 곧 우상입니다. 만일 하나님보다 자녀를 더 사랑한다면 자녀도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가장 귀한 애정을 빼앗거나 하나님 대신으로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곧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최고의 지위를 차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상에서 멀리하라 하심은 우상숭배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일보 나아가 하나님만을 섬기라는 절대적인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경배하고 그만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없고, 만약 다른 신을 두고 섬기면 이는 두 주인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자기의 아내, 자녀 혹은 돈, 명예, 권력, 사업을 우상으로 삼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말은 아내나 그들을 너무 사랑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내나 그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도 아닙니다. 아내나 그들의 지위를 잘못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 아내나 그들을 하나님 보다 더 중하게 여겨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보다 아내나 그들을 더 기쁘게 하려고 애쓴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아내나 자식이나 부모나 사업을 첫째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둘째로 생각하는 사람은 곧 재물이나 아내나 가족을 우상으로 삼는 사람들입니다. 우상숭배자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고 정죄함을 받습니다.(겔14:3-8)

따라서 모든 사람은 누군가를 섬기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상들’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마약이라는 우상, 개인 숭배의 우상, 성공이라는 우상, 과학 기술이라는 우상 등에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한태완 목사 설교중에서


▣ 현대적 우상의 재앙


넓게 생각해서 2030세대까지를 N세대로 본다면 인구의 절반에 육박하는 N세대를 빼놓고 21세기 한국교회 부흥을 말하긴 힘들 겁니다. 그 옛날 영국에서 죄수들을 보냈던 호주에는 끔찍한 백호주의가 생겨났지만 선교사들이 희망의 복음을 들고 찾아갔던 뉴질랜드는 원주민과 사랑의 관계로 어우러지면서 세계적인 기독교 국가로 칭송이 자자했었지요. 그러나 얼마 전 ‘뉴질랜드 청소년 자살률 OECD 국가중 1위’란 보도를 접했습니다. 왜 이렇게 슬픈 일이 벌어진 걸까요? 천국 다음 동네같이 아름다운 그곳에서 청소년들이 마약에 중독되고 낙태를 가볍게 여기며 자살이나 꿈꾸리라는 걸 그들의 조상들은 생각이나 했을까요? 또 독일 코스테에 참석하러 함부르크에 가보니 웅장하고 멋진 교회당은 많은데 대부분 문이 잠겨 있거나 주일에도 텅텅 빈다고 하더군요. 유럽 전역에서 기독교가 젊은이들에게 외면당해온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 심각성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지경입니다. 한국의 N세대가 정치계의 전면에 등장해 개혁을 유도하고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내는 위대한 과업의 주인공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기독교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냉소적인데다 위험한 성의식,대안 없는 비판, 변질된 페미니즘 수용, 요가나 기(氣) 수련 등을 통한 뉴에이지와의 교합 등은 빈 자리가 늘어나는 청년부나 교회학교 현실과 맞물려 대부분이 1세대인 교회 리더십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구약성경 사사기에는 여호수아와 그 세대 사람들이 열조에게로 돌아가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악을 행하였는데 그것이 대부분 우상숭배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섹스라는 우상, 술이라는 우상, 스타라는 우상, 게임이라는 우상, 돈이라는 우상, 마약이라는 우상에 이 땅의 N세대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라면 사사기 2장 14∼15절의 재앙이 남의 얘기처럼 들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에서 그 후 세대가 계속해서 우상을 숭배하자 하나님은 진노하셨지요.

/신상언(낮은울타리 대표)


▣ 박제 하나님


중국의 한 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중책을 맡길만한 인재를 찾았다. 그러던 중 깊은 산에 은거하는 지혜로운 은자에 대해서 듣게 되었다. 황제는 이 은자를 재상으로 세우기로 하고 은자를 모셔 오라고 신하들을 보냈다. 신하들이 은자를 찾아갔을 때 그는 남루하게 옷을 입고 낚시질을 하고 있었다. 신하들의 이야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하던 은자가 이렇게 물었다. “내가 듣기에 대궐에서는 황제님과 백관들이 날마다 아침에 모여 일하기 전에 황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박제 거북이를 경배한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신하들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은자가 이렇게 말했다. “내 뒤에 흐르는 강에는 거북이가 살고 있지요. 그런데 이 거북이에게 온 몸에 금칠을 하고 박제가 되어 궁궐에 있으라고 하면 거북이가 좋다고 하겠어요?”

하나님을 박제로 만들어서 방안에 고이 모셔 놓는 사람들이 있다. 교회는 나오지만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고 그 능력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매달리는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살아계신 우리의 아버지요, 나를 통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프로포즈 / 박상훈


▣ 하나님은 왜 그렇게 우상숭배를 싫어하실까?


십계명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고 명하고 있다(출 20:4-5).

우상숭배가 근본적으로 나쁜 이유는

첫째, 우상숭배는 하나님에 대해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물질적인 모양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려는 모든 시도는 하나님의 본성을 왜곡하는 것이다.

둘째, 우상숭배는 인간의 오만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계시보다는 인간의 종교성에 의존하고 있다. 사람이 판단의 기준이 되고 신들이 인간의 이미지로 만들어지고 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인류를 창조하신 분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사람의 형상으로 신들을 끌어내리는 순전히 오만한 행위인 것이다.

셋째, 우상숭배는 사람을 부도덕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호 9:10). 고대 종교들은 자연의 순환에 초점을 맞추었다. 남신과 여신들이 출산을 조정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의식은 신과 성적으로 접촉하는 내용을 포함했다. 우상숭배자는 참된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버렸고(롬 1:18-23) 그것은 역으로 자신의 도덕적인 본성을 상실하게 했으며 또한 인간의 악한 욕망을 드러내는 '부도덕'으로 인도하였다.

넷째, 우상숭배는 귀신과의 접촉점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상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상을 매개로 귀신이 역사할 수 있는 것이다. 우상을 통해 연결된 어떤 초자연적인 능력도 본래는 마귀적이다.

- 비전성경사전 중에서 -


▣ 우상 숭배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은누군가를 섬기고 있다. 만약 하나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면, 다른 무엇인가를 섬기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섬기는 그 ‘다른 무엇’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우상들’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우상’, ‘조각한 신상’, ‘산당’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이스라엘의 죄악은 언제나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에게로 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우상 숭배를 단지 다른 죄악들과 동급으로 분류될 수 있는 또 하나의 죄가 아니라, 모든 죄를 일컫는 특별한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까닭은 모든 죄가 우상 숭배, 즉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을 가져다 놓는 기본적인 죄악의 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상 숭배를 함으로써, 피조물에 하나님의 지위를 부여한다.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을 우리 문제의 중심이나 해답으로 삼을 때, 우리는 그것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니코틴이나 코카인 같은 마약은 단순히 책상에 놓여 있을 때는 무해하다. 그것들이 손을 뻗어서 우리의 목을 죌 수는 없다. 사실상 마약이 행사하는 힘은, 우리가 자신을 마약에게 내어 줄 때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일 따름이다. 우리가 손을 뻗어서 마약에 손을 대면, 그 마약이 우리를 완전히 장악할 때까지 점차 그 힘이 마약으로 이전된다. 이것이 우상 숭배의 구조다. 그 자체로는 아무 힘 없는 어떤 것에 인간이 집착에 가까울 만큼 헌신할 때, 그것은 우리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신이 아닌 것들이 신처럼 행세하게 되는 것이다.

-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 폴 마샬


▣ 다니엘의 신앙의 자세


본문: 시편 135 장 5 절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께서는 광대하시며 우리 주는 모든 신보다 높으시도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당시 세계 최강국 바벨론에서 사회적 지위를 착실히 쌓아나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른바 출세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보여 주는 그들의 삶은 한 순간도 하나님 섬기기를 멈추지 않은 지극히 신앙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바벨론에서는 벨 신 등 여러 신을 섬기는 일이 공식적으로 강요되었습니다. 또한 왕의 명령은 절대적이므로 그것을 거부한다는 것은 죽음을 담보로 해야만 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네 사람은 하나님 섬기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돈, 인기, 첨단기술, 섹스, 인생의 성공 등 세상 사람들이 ‘신’으로 여기며 추구하는 것들을 함께 섬기자는 유혹을 받으며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니엘이 가졌던 신앙의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앞장설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 1:8-9).

* 기도: 상대적인 가치가 절대화되는 세상에서 하나님만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게 하옵소서.


▣ 생명을 빼앗아가는 가증한 물건


아프리카 선교사의 간증입니다. 의사로서 선교사가 되어 아프리카에 병원을 세웠습니다. 수많은 흑인들을 치료하던 어느 날 아내가 병이 들었습니다. 도무지 무슨 병인지 병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미국으로 돌아와서 큰 병원을 다 돌아 다녔습니다.역시 병명을 찾지 못 하였습니다. 아내는 점점 생명이 꺼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이왕 죽을 바에는 아프리카로 돌아가서 선교하다가 사명속에 죽겠고 결심하고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 왔습니다. 그 때 영적으로 깊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선교사 부인 팔목에 걸려 있는 팔거리를 유심히 보고 물었습니다. 형형색색의 줄로 꼰 팔찌였습니다. 어디에서 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병원을 세운 마을에 살고 있는 마술사가 준 장신구였습니다. 그는 그 것이 병의 원인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 마을에 살고 있는 마술사는 예수믿는 이들을 싫어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이들에게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그것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늘 마술을 걸어 왔던 것이었습니다. 선교사 부인은 그 팔찌를 빼냈습니다. 그리고 산산조각을 잘라 버렸습니다. 거짓말처럼 병이 나았습니다.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지금부터 약 5년전 아내가 직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 후 아내는 가구를 보다가 장롱에 용이 조각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제법 비싼 장이었지만 과감하게 바꾸어 버렸습니다. 지난 주간 수술한 의사에게 정밀검사를 받았습니다. 중앙병원 유창식 박사가 말했습니다. "이제는 의사를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건강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집에 가면 술병들이 구구 색색 놓여져 있는 것을 봅니다. 가증한 물건들입니다. 결코 복을 주지 못 합니다. 자식들이 이렇게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술종류가 이렇게 많고, 술병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것을 알아서 유익될 것 없습니다. 다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 당할 것이 될까 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신7:26)

/강문호 목사(갈보리선교교회)


▣ 우상에 관한 성경 말씀


0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은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

0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레 19:4)

0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레 26:1)

0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柱像)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木像)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偶像)들을 불사를 것이니라(신 7:5)

0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4-8)

0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이사야 44:6)

0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

0 이 세상에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전 5:10)

0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전 10:7)

0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고전 12:2)

0 ...탐심은 우상숭배니라(골 3:5)


▣ 우상에 관한 금언


* 나는 어느 종교인 치고 자기 종교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유교의 공자에 대해여 자부심을 갖는 사람을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으며, 마호메트 교인치고 자기가 마호메트의 추종자인 사실에 자부심을 갖는 사람도 없다.(드와이트 라마틴 무디)


* 세계 제 2차 대전은 아마테라스 신과 여호와의 싸움이다.(일본 천왕)

* 집이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심지어는 가족에 이르기까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가 된다.(한경직)


*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음란이요, 우상 숭배는 신앙적으로 음란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한경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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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1. 속된 것(πᾶν κοινὸν) anything defiling (더러운 것)
* πᾶς(3956. pas)
Definition : all, every

Usage : all, the whole, every kind of.      
* κοινός(2839. koinos)
Definition : common

Usage : (a) common, shared,
(b) Hebraistic use : profane; dirty, unclean, unwashed.       

2. 가증한 일(ποιῶν βδέλυγμα) practicing abomination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흉측한 짓)  
* ποιέω(4160. poieó)
Definition : to make, do

Usage : (a) I make, manufacture, construct, (b) I do, act, cause     
* βδέλυγμα(946. bdelugma)
Definition : a detestable thing

Usage : an abominable thing, an accursed thing. 

3. 거짓말 하는 자(ψεῦδος) a lie (거짓말쟁이)(거짓을 일삼는 사람)
* ψεῦδος(5579. pseudos)   
Definition : a falsehood, untruth, lie

Usage : a lie, falsehood, untruth; false religion.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현대인 번역)(공동번역)  
1. 두려워하는 자(δειλοῖς) to the cowardly (비겁한 사람)
* δειλός(1169. deilos)
Definition : cowardly, fearful

Usage : cowardly, timid, fearful
    
2. 믿지 아니하는 자(ἀπίστοις) unbelieving (불신자)(믿음이 없는 자)
* ἄπιστος(571. apistos)
Definition : incredible, unbelieving

Usage : unbelieving, incredulous, unchristian; sometimes subst: unbeliever.  
3. 흉악한 자(ἐβδελυγμένοις) having become abominable (흉악한 사람)(흉측스러운 자)
* βδελύσσομαι(948. bdelussomai)    
Definition : to detest

Usage : I abhor, detest, loathe

4. 살인자(φονεῦσιν) murderers (살인자)
* φονεύς(5406. phoneus)  
Definition : a murderer

Usage : a murderer. 

5. 행음자(πόρνοις) the sexually immoral (음란한 사람)(간음한 자) 
* πόρνος(4205. pornos)
Definition : a fornicator

Usage : a fornicator, man who prostitutes himself.   

6. 술객(φαρμάκοις) sorcerers (마술사)
* φάρμακος(5333. pharmakos)
Definition : a poisoner, sorcerer, magician

Usage : a magician, sorcerer.     

7. 우상숭배 자(εἰδωλολάτραις) idolaters (우상숭배자) 
* εἰδωλολάτρης(1496. eidólolatrés)
Definition : an image worshiper

Usage : a server (worshipper) of an image (an idol).   

8. 거짓말하는 자(ψευδέσιν) liars (모든 거짓말 하는 자)(모든 거짓말쟁이들)
* ψευδής(5571. pseudés)
Definition : lying, false

Usage : false, deceitful, lying, un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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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2장
느부갓네살 왕(Nebuchadnezzar, B.C. 605∼562)이 꿈을 꾸었는데, 박사들을 불러 그 내용과 해석을 요청하나 답하는 이가 없었다. 진노한 왕이 박사들을 모두 죽이라고 명령할 때, 다니엘은 왕의 경호실장인 “아리옥”에게 기한을 주시면 답하겠다고 요청한다. 다니엘은 세 친구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하고 기도하는 중에 하느님의 응답을 받는다. 이에 다니엘은 왕 앞에 나아가서 그의 꿈과 의미를 제시하는데, 꿈의 내용은 왕이 광채가 나는 큰 신상을 보았다는 것인데, 그 신상의 머리는 금, 가슴과 팔들은 은, 배와 넓적다리는 놋, 그 종아리는 철, 그 발은 일부 철, 일부 진흙이었다. 여기 네 부분은 각기 바벨론, 페르시아 또는 메대, 그리스, 로마의 네 제국들을 지시한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꿈 가운데 뜨인 돌이 갑자기 공중으로 날아올라, 그 신상의 발을 쳐서 모든 부분을 박살내고 그 뜨인 돌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상 제국의 근본을 쳐서 멸하고 온 세상을 정복한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신상의 발만 쳤는데, 어찌하여 모든 부분들이 박살났던가? 이는 어떤 우상을 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문제는 역사상 다른 시대에 존재했던 네 제국 중에서 마지막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발을 칠 때 그 이전의 세 제국들까지 박살났다는 영적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영적으로 보건대, 네 제국은 사실 본질상 하나이다. 그 관습과 문화나 형태는 다르게 변했을지라도, 세상 나라는 어디까지나 사단의 지배 하에서 지탱되는 점에서 성격이 동일하다. 그러므로 로마 시대에 전파된 복음이 로마를 치는 것은 사단의 권세를 꺾고 사단의 문화를 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로마가 앞의 세 제국과 같은 영적 원리로 지배당했다면, 로마를 쳤지만, 결국 로마에 내려온 이전 제국들의 그 모든 영적 원리도 함께 절단되는 셈이다. 2장의 꿈에 나타난 세상 나라들은 7장에서도 나타나는데, 거기서는 짐승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니엘 7장

다니엘은 네 짐승들이 바다에서 올라오는 것을 본다.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고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잇 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다. 셋째는 표범과 같은 데 등에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다. 마지막으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셔 버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다니엘이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다니엘이 다시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여 있었다. 또 다니엘이 이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다.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환상은 다니엘 2장에 제시된 왕의 꿈과 내용상 동일한 것이다. 세상 나라들은 성도 다니엘이 보기에 약육강식의 야수. 네 짐승은 다니엘 2장의 그 네 제국들을 가리킨다(바벨론, 페르시아와 메대, 헬라, 로마). 이런 짐승들과 달리 “사람 같은 이”는 바로 2장에서 “뜨인 돌”로 언급된 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에게 영광과 권세와 나라가 주어진 것은 신약에서 십자가 수난과 부활, 승천 이후에 그가 보좌에 좌정하심으로 성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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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21장은 요한계시록의 결론이며 성경 전체의 결론이라고도 하겠습니다. 성경의 결론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수 있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지 못할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말씀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될 수 없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1. 속된 것(πᾶν κοινὸν) anything defiling (더러운 것)
* πᾶς(3956. pas)
Definition : all, every

Usage : all, the whole, every kind of.      
* κοινός(2839. koinos)
Definition : common

Usage : (a) common, shared,
(b) Hebraistic use : profane; dirty, unclean, unwashed.       

2. 가증한 일(ποιῶν βδέλυγμα) practicing abomination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흉측한 짓)  
* ποιέω(4160. poieó)
Definition : to make, do

Usage : (a) I make, manufacture, construct, (b) I do, act, cause     
* βδέλυγμα(946. bdelugma)
Definition : a detestable thing

Usage : an abominable thing, an accursed thing. 

3. 거짓말 하는 자(ψεῦδος) a lie (거짓말쟁이)(거짓을 일삼는 사람)
* ψεῦδος(5579. pseudos)   
Definition : a falsehood, untruth, lie

Usage : a lie, falsehood, untruth; false religion.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현대인 번역)(공동번역)  
1. 두려워하는 자(δειλοῖς) to the cowardly (비겁한 사람)
* δειλός(1169. deilos)
Definition : cowardly, fearful

Usage : cowardly, timid, fearful
    
2. 믿지 아니하는 자(ἀπίστοις) unbelieving (불신자)(믿음이 없는 자)
* ἄπιστος(571. apistos)
Definition : incredible, unbelieving

Usage : unbelieving, incredulous, unchristian; sometimes subst: unbeliever.  
3. 흉악한 자(ἐβδελυγμένοις) having become abominable (흉악한 사람)(흉측스러운 자)
* βδελύσσομαι(948. bdelussomai)    
Definition : to detest

Usage : I abhor, detest, loathe

4. 살인자(φονεῦσιν) murderers (살인자)
* φονεύς(5406. phoneus)  
Definition : a murderer

Usage : a murderer. 

5. 행음자(πόρνοις) the sexually immoral (음란한 사람)(간음한 자) 
* πόρνος(4205. pornos)
Definition : a fornicator

Usage : a fornicator, man who prostitutes himself.   

6. 술객(φαρμάκοις) sorcerers (마술사)
* φάρμακος(5333. pharmakos)
Definition : a poisoner, sorcerer, magician

Usage : a magician, sorcerer.     

7. 우상숭배 자(εἰδωλολάτραις) idolaters (우상숭배자) 
* εἰδωλολάτρης(1496. eidólolatrés)
Definition : an image worshiper

Usage : a server (worshipper) of an image (an idol).   

8. 거짓말하는 자(ψευδέσιν) liars (모든 거짓말 하는 자)(모든 거짓말쟁이들)
* ψευδής(5571. pseudés)
Definition : lying, false

Usage : false, deceitful, lying, untrue.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불못에 던지우는 것은 “둘째 사망” 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0:14∼15,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Ⅲ. 왜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하는가?
-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생명책의 결론입니다(계 13:8, 21:27).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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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장과 2장은 낙원에서 쫓겨난 사건을 기록한 “실락원(失樂園)”에 관한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낙원을 회복한 “복락원(福樂園)”에 관한 말씀입니다.


미국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공항에서 입국 심사장을 지나야 합니다. 입국 심사장에 들어가면 내국인을 위한 줄과 외국인을 위한 줄로 구분하여 심사를 받게 됩니다. 내국인의 경우 심사 과정이 아주 간단합니다. 미국 여권만 보여주면 됩니다. 그러나 외국인의 경우 반드시 입국할 수 있는 비자를 확인합니다. 심지어 비자를 확인한 후에도 몇 가지 질문을 합니다. 얼마동안 머물 것인가? 어디에서 머물 것인가?  방문 목적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받습니다.

말라기 3:16~18 :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A scroll of remembrance)에 기록하셨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나는 내가 정한 날에 그들을 나의 특별한 소유(my treasured possession)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아들을 아낌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요한계시록 13:4~8 : 
용(사탄)이 짐승(적그리스도)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1차, 2차 휴거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제목 : 어린 양의 생명책

본문 : 계 21:27 빌 4:2 요 3:16 행 16:31

어느 날 밤 어린 에디는 천국에 관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천국 문 밖에 모여 있는 많은 군중들 가운데 서 있었다. 그의 곁에는 아빠, 엄마, 두 누이들과 형이 서 있었다. 천사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이름들을 부르고 있었다. 곧 천사가 “윌리엄 웹스터 네이버”라는 이름을 불렀다.
에디의 아빠는 힘차게 대답했다. “네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는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앞으로 나갔다. 어린 에디는 아빠의 손을 잡으면서 “아빠, 나도 데려가 주세요.”라고 말했다. 아빠가 대답했다. “안된단다, 에디야! 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면 우린 곧 만날 수 있을거야. 내 이름으로는 네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단다.” 잠시 후에 천사가 “줄리아 마리아 네이버”라는 이름을 불렀다. 에디의 엄마가 “네,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엄마가 천국문을 향해 떠나려 하자 어린 에디는 엄마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엄마, 나도 엄마랑 함께 가게 해주세요.” 엄마가 대답했다. “안된단다, 에디야! 너는 엄마와 함께 갈 수 없단다. 너는 네 이름이불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단다.” 곧이어 에디의 큰 누이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대답하고 천국문으로 들어갔다. 에디는 자기의 이름이 불리기를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서 있는동안 얼마나 슬프고 외롭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곧 에디의 작은 누이 헬렌이 천사의 부름에 대답했다. 바로 그 다음 에디는 에디는 “로버트 에드워드 네이버!” 라고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어린 에디는 기뻐 소리쳤다. “네, 여기 있어요.” 에디가 너무 큰 소리로 대답해서 그 바람에 잠을 깼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아래층 침실에서 잠자고 있던 엄마와 아빠도 잠을 깨고 말았다. 어린 에디는 그 꿈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예수님이 자기의 구주라는 것과 자기 이름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이란 심판을 위한 책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심판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반면에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하셨습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상징합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할 자들은 누구인가?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Ⅲ. 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하는가?

Ⅰ.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할 자들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1. 속된 것(πᾶν κοινὸν) anything defiling (더러운 것)
* πᾶς(3956. pas)
Definition : all, every

Usage : all, the whole, every kind of.      
* κοινός(2839. koinos)
Definition : common

Usage : (a) common, shared,
(b) Hebraistic use : profane; dirty, unclean, unwashed.       

2. 가증한 일(ποιῶν βδέλυγμα) practicing abomination (역겨운 짓을 하는 사람)(흉측한 짓)  
* ποιέω(4160. poieó)
Definition : to make, do

Usage : (a) I make, manufacture, construct, (b) I do, act, cause     
* βδέλυγμα(946. bdelugma)
Definition : a detestable thing

Usage : an abominable thing, an accursed thing. 

3. 거짓말 하는 자(ψεῦδος) a lie (거짓말쟁이)(거짓을 일삼는 사람)
* ψεῦδος(5579. pseudos)   
Definition : a falsehood, untruth, lie

Usage : a lie, falsehood, untruth; false religion.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현대인 번역)(공동번역)  
1. 두려워하는 자(δειλοῖς) to the cowardly (비겁한 사람)
* δειλός(1169. deilos)
Definition : cowardly, fearful

Usage : cowardly, timid, fearful
    
2. 믿지 아니하는 자(ἀπίστοις) unbelieving (불신자)(믿음이 없는 자)
* ἄπιστος(571. apistos)
Definition : incredible, unbelieving

Usage : unbelieving, incredulous, unchristian; sometimes subst: unbeliever.  
3. 흉악한 자(ἐβδελυγμένοις) having become abominable (흉악한 사람)(흉측스러운 자)
* βδελύσσομαι(948. bdelussomai)    
Definition : to detest

Usage : I abhor, detest, loathe
4. 살인자(φονεῦσιν) murderers (살인자)
* φονεύς(5406. phoneus)  
Definition : a murderer

Usage : a murderer. 

5. 행음자(πόρνοις) the sexually immoral (음란한 사람)(간음한 자) 
* πόρνος(4205. pornos)
Definition : a fornicator

Usage : a fornicator, man who prostitutes himself.   

6. 술객(φαρμάκοις) sorcerers (마술사)
* φάρμακος(5333. pharmakos)
Definition : a poisoner, sorcerer, magician

Usage : a magician, sorcerer.     

7. 우상숭배 자(εἰδωλολάτραις) idolaters (우상숭배자) 
* εἰδωλολάτρης(1496. eidólolatrés)
Definition : an image worshiper

Usage : a server (worshipper) of an image (an idol).   

8. 거짓말하는 자(ψευδέσιν) liars (모든 거짓말 하는 자)(모든 거짓말쟁이들)
* ψευδής(5571. pseudés)
Definition : lying, false

Usage : false, deceitful, lying, untrue.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은 어떻게 될 것인가?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불못에 던지우는 것은 “둘째 사망” 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0:14∼15,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Ⅲ. 왜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하는가?
- 생명책이란 어린 양의 생명책을 말합니다(계 13:8, 21:27).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어린 양을 믿은 사람의 이름만 기록됩니다. 어린 양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계시록 1:5b,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어린 양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요한계시록 14:5∼6,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4:8b,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어린 양의 생명책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5,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5: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7: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7:14,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이사야 43:11,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런 배타적인 표현은 포스트모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귀에는 거슬리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통해서 얻는 구원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도 친히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많은 길들 중에 하나의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유일하고 하나뿐인 길이 되십니다. 명성, 업적, 전문지식 또는 개인적인 경건을 막론하고 그 누구도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 이유가 여러 가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구세주로서 “하나님께 택함”을 받으셨습니다(벧전 2:4).
2.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고 다시 올라가신 유일한 분입니다(요 3:13).
3.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의 삶을 사셨던 유일한 분입니다(히 4:15).
4. 예수님은 죄에 대한 유일한 희생 제물입니다(요일 2:2; 히 10:26).
5. 예수님만이 율법과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마 5:17).
6. 예수님은 죽음을 영원히 정복하신 유일한 인간입니다(히 2:14-15).
7.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입니다(딤전 2:5).
8. 예수님은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신”(빌 2:9) 유일한 인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 외에도 예수님은 다른 여러 구절에서 자신만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27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말씀이 생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요 6:63).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요 3:14-15). 예수님은 양의 문이고(요 10:7),
생명의 떡이며(요 6:35),
부활입니다(요 11:25).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이런 명칭들을 주장함이 온당치 않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는 주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산헤드린 공회를 향해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라고 분명히 선포했습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바울은 안디옥에 있는 회당에서 설교할 때,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명백히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행 13:38∼39).
모든 교회에게 쓴 글에서 요한은 우리의 죄 사함의 근거로 그리스도의 이름을 명시합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요일 2:12). 예수님 외에는 그 누구도 죄를 사할 수 없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생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거저 주시는 구원의 선물을 받으려면 우리는 예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로마서 3장 22절).


예수님 사역의 한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등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다른 구원자를 찾으려는 희망을 안고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 6:67). 베드로의 대답은 그야말로 옳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요 6:68∼69).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베드로의 믿음을 우리도 확신하며 신앙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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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이전의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하실까?

잠언 28:18,
성실히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나 사곡히 행하는 자는 곧 넘어지리라.

잠언 28:26,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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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돌 위에 기록한 새 이름(요한계시록 2:12~17)

요한계시록은 박해를 받아 밧모 섬에서 강제노동을 하고 있던 요한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성경입니다. 주님은 요한에게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그 편지들의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편지들은 그 형식이 통일되어 있습니다. 먼저 교회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 다음에 그 교회가 한 일에 따라 칭찬, 또는 책망, 또는 칭찬과 책망을 함께 받는 것이 나옵니다.
이어서 ‘이기는 자에게는 ‘이런 것을 주겠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하셨습니까?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리라“(계 2:8)라고 하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자에게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계 2:11)라고 하셨습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을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계 2:26~28)고 하셨습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 3:5)라고 하셨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계 3:12)라고 하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하리라”(계 3:21)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이 되어 이와 같은 상들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가운데는 주님께 꾸지람은 듣지 않고 칭찬만 받은 교회들이 있습니다. 칭찬은 듣지 못하고, 꾸지람만 받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칭찬도 받고 동시에 꾸지람도 받은 교회들도 있습니다. 아까 각 교회의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상을 말할 때 버가모 교회를 빼놓았는데 버가모 교회는 칭찬도 받고 꾸지람도 받은 교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이 주위 환경이 나쁜 가운데 굳건한 믿음을 가진 것은 칭찬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람이나 니골라 당 같이 잘못된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용납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은 버가모 교회에게 하신 말씀 가운데, 이기는 자에게는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는 것을 가지고 은혜와 교훈을 얻기 원합니다. 주님께서는 이기는 자에게는 흰 돌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흰 돌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흰 돌은 먼저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서 1장 18절을 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사죄를 약속하는 말씀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주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눈과 같이, 양털 같이 희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의 말씀을 보세요.
거기에는 인침을 받은 십사만사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님은 이들에 대해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상합니다. 피에 그 옷을 씻었으면 그 옷이 붉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희게 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흰색이 우리의 사죄를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흰 돌이 나오는 것은 당시의 재판제도 때문일 것입니다. 당시에도 배심원 제도가 있었습니다. 배심원들이 피고와 증인의 진술을 듣고 유죄이냐, 무죄이냐를 판단해서 의사를 표시합니다. 이 때 피고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은 검은 돌을 던졌습니다. 피고가 무죄라고 생각하는 배심원은 흰 돌을 던졌습니다. 주님은 최후 심판에서 우리에게 흰 돌을 주십니다. ‘너는 무죄이다!’ 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이 되어 흰 돌을 받아 ‘너는 사죄함 받은 존재이다.’ ‘너는 이 흰 돌과 같이 깨끗한 존재이다.’ 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이 사실이 주님을 통해 선포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흰 돌은 또 가장 귀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가지 색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에서 흰 것은 가장 귀한 것을 말할 때 사용되는 일이 많습니다. 특히 옷의 경우에 그런 일이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셨을 때 그 옷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마태복음 17장 2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이 되려는 새벽에 무덤을 보려고 갔는데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부터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과 같이 희었다고 마태복음 28장 1절에서 3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제자들 곁에 서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10).

요한계시록에서는 특히 흰 옷을, 이기는 자, 순교자, 구원 받은 자, 주님, 그리고 하늘 군대들이 입는 것으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까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상을 말씀드렸는데 그 가운데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는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6장 11절에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에게, 줄여 말해서 순교자들에게 각각 흰 두루마기를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4절에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께서 백마를 탔는데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옷만 흰 것이 귀한 것이 아닙니다. 14장 14절에는 머리에 금 면류관이 있고 손에 예리한 낫을 가진 인자와 같은 이가 흰 구름 위에 앉아있는 것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절에는 심판주가 크고 흰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교회력에 따라 강단 덮개와 목사님들의 가운 위에 걸치는 스톨의 색을 각각 다르게 씁니다. 이것을 예전색(禮典色)이라고 부르는데 다섯 가지 색을 씁니다. 주현절과 사순절 사이인 지금은 녹색을 쓰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에서는 올해 주보를 만들 때 표지색깔을 교회력의 예전색과 꼭 일치시키지는 못하지만 참고는 하려고 합니다. 삼월 첫째 주일부터 사순절이 시작되는데 그 때는 주보 표지가 보라색이 될 것입니다. 부활절과 성탄절 당일, 그리고 그 뒤 얼마동안은 어떤 색을 씁니까? 흰 색을 씁니다. 이것 역시 흰색이 가장 고귀한 색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들에게 흰 돌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청주에 가면 흰 돌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그 지역의 대표적 교회 가운데 하나입니다. 흰 돌이 이렇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교회 이름을 이렇게 정한 것 같습니다. 그 교회는 교회당도 흰 색으로 단장했습니다. 찬안 안서동에 백석대학교가 있습니다. 원래 이름은 천안외국어대학인데 재작년(2004년)에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문득 ‘흰 돌을 한자로 바꾸면 백석(白石)인데 이 학교도 그 때문에 이름을 바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나가는 생각으로 가져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흰 돌을 주겠다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을 주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으로 이기셔서 흰 돌을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돌 위에, 흰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이기는 자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도 새 이름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까 읽어드린 요한계시록 3장 12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드립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또 어떤 사람이 새 이름을 받습니까? 하나님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사야서는 뒷부분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들에 대해 말하면서 62장 2절에서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사 62:2)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일꾼들에게, 종들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사야서 65장에는 패역한 자들, 여호와를 버리며 하나님의 성산을 잊고 우상에게 예배하는 자들과 하나님의 종들을 대조하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패역한 자들은 여러 가지 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서 65장 15절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이름은 저줏거리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부르겠다고 하셨습니다. 새 이름으로 부르겠다는 뜻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그의 종들에게, 그가 크게 쓰시는 일꾼들에게는 새 이름을 주신 일이 여럿 있습니다. 아브람에게는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래에게는 사라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발꿈치를 잡았다.’는 매우 이상한 뜻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야곱에게는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바요나 시몬, 또는 게바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던 제자에게는 ‘반석’이라는 뜻을 가진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바울이 되게 했습니다. 권사취임예배를 드리는 오늘, 우리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새 이름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그를 바나바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행4: 16)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전 성경에는 권위자(勸慰者)라고 되어 있습니다.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 권사님들이 해야 할 일을 잘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취임하는 스물다섯 분 권사님들, 그리고 모든 권사님들, 바나바라는 새 이름을 받을 수 있도록 권면과 위로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제가 올해 상반기에 하려는 일 가운데 하나가 성도들의 교적부를 정리하는 것입니다. 교적부 새 양식을 만들어 성도들의 교적을 정확하게 올리려고 합니다.

이기는 자들이 되어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서,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되어서 새 이름을 받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 바랍니다. 내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기쁜 일입니다. 예수님은 70인이 돌아와 보고할 때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딘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10: 20) 하셨습니다. 우리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 꼭 그래야 되는 일입니다. 안 그러면 정말 큰 일 나는 일입니다.

찬송가 532장 가사를 생각해 보세요.
구름 같은 이 세상 모든 부귀영화 나는 분토와 같이 내버리고
오직 천국의 복만 사모하며 사니 주여 내 작은 이름 기억하옵소서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
주여 보배피로써 모든 죄 씻으사 나의 부정한 것을 씻어 맑히소서
흰눈보다 더 희게 죄를 씻었으니 지금 내 작은 이름 기록하옵소서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
죄가 하나도 없고 아무 병도 없는 영화롭고도 밝은 천국 올라가서
주와 같이 그 곳에 길이 살리로다 이런 소망이 삶은 참된 행복이라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기록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이 찬송을 작사한 분은 “주가 나의 이름 보좌 앞에 놓인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하셨을까”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반복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영어 원문으로 이 찬송의 가사를 보면 이 말이 더 자주, 더 간절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절 후반부의 영문 가사입니다.

In the book of Thy kingdom, With it's pages so fair Tell me, Jesus, my Saviour, Is my name written there

1절과 2절의 영문 가사입니다.

Is my name written there Oh the page white and fair? Is the book of Thy kingdom. Is my name written there?

찬송가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 진동할 때에” 이 찬송도 후렴에서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 하겠네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불러 주셔야 천국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합격자 명단에 이름이 있어야 그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하늘나라에 기록되기 바랍니다.

기록되는데 저 끝에 조그맣게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사죄함 받고, 귀한 존재가 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일을 해서 새로운 이름을 갖고 그 이름이 흰 돌에 큼직하게 기록되기 바랍니다.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고 새 이름을 기록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기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에베소서 6장 10절에서 17절까지 말씀은 믿음으로 이기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습니다.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악한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여러 가지 구체적인 무장이 나오는데 ‘믿음으로 무장한다.’ 이렇게 기억하시면 됩니다. 우리는 대장이신 예수님께 충성하는 것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이제 말씀을 정리합니다. 믿음으로 이겨서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 취임하는 권사님들 꼭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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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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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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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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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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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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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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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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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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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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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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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Ⅰ(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May they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life and not be listed with the righteous.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도말(塗抹) be blotted out of
- 진흙 도(塗), 칠할 도,(塗) 길 도(塗)
- 자를 말(抹), 지울 말(抹)
1.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함
2. 이리저리 임시로 둘러맞춰서 처리하거나 꾸며댐

* 의인(義人) the righteous


성경의 가르침은 의인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의인이 얼마나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증거 하셨던 사건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불의 심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로운 사람 몇 명이 없었기 때문에 끔직한 심판을 받았을까요?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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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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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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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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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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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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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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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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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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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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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Ⅰ(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May they be blotted out of the book of life and not be listed with the righteous.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도말(塗抹) be blotted out of
- 진흙 도(塗), 칠할 도,(塗) 길 도(塗)
- 자를 말(抹), 지울 말(抹)
1. 발라서 드러나지 않게 함
2. 이리저리 임시로 둘러맞춰서 처리하거나 꾸며댐

* 의인(義人) the righteous


성경의 가르침은 의인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서 7:20,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

로마서 3:10,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의인이 얼마나 없었는지를 정확하게 증거 하셨던 사건이 소돔과 고모라 성에 대한 불의 심판이라고 하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의로운 사람 몇 명이 없었기 때문에 끔직한 심판을 받았을까요?



하박국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의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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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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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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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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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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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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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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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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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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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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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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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 Ⅱ(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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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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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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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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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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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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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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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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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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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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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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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 Ⅲ(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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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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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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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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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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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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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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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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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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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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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생명책(生命冊) Ⅳ(요한계시록 20:12)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 죽은 자들(οἱ νεκροὶ) ; the dead
-  νεκρός(3498, nekros)
Definition : dead

Usage : (a) adj, dead, lifeless, subject to death, mortal.
(b) noun: a dead body, a corpse.

* 펴 있고(ἠνοίχθησαν)
* 펴졌으니(ἠνοίχθη)
-  ἀνοίγω(455, anoigó)
Definition : to open,
Usage : I open.  
    
* 행위(ἔργα) ; deeds
- ἔργον(2041. ergon) 
Definition : work.

Usage : work, task, employment; a deed, action; that which is wrought or made, a work. 

마태복음 5:16. 착한 행실
마태복음 11:2, 하신 일
마태복음 11:19, 그 행한 일
마태복음 23:3, 행위는 본 받지 말라
마태복음 23:5, 저희 모든 행위
마태복음 26:10,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cf. 마태복음 16: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 행한대로(πρᾶξιν) ; deeds
- πρᾶξις(4234. praxis)
Definition : a deed, function

Usage : (a) a doing, action, mode of action; (Plur) deeds, acts,
        (b) function, business    
    
* 심판(ἐκρίθησαν) ; were judged
- κρίνω( 2919. krinó)
Definition : to judge, decide

Usage : (a) I judge, whether in a law-court or privately: sometimes with cognate nouns emphasizing the notion of the verb.
(b) I decide, I think (it) good.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씀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무너질 것들에 대한 환상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17장 : 바벨론의 몰락
18장 : 짐승의 몰락
19장 : 거짓 선지자의 몰락
20장 : 용의 몰락

20장의 구조
1∼3, 용의 결박
4∼6, 천년 동안 왕 노릇
7∼10,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11∼15, 최후의 심판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에서 관심을 갖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의 대답을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는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는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는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신앙적인 특히 성경적인 이해와 믿음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생물학적(生物學的)인 죽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영적(靈的)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돈 때문에 성도들이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분명한 믿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복음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죽은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책들”은 “심판을 위한 책” 이라고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묵시문학에서 “불”이란 심판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그 보좌는 불꽃,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이렇게 예언된 다니엘서의 말씀은 철저하게 심판을 위한 책들을 펴서 불로 심판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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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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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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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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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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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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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생명책(生命冊) Ⅳ(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들의 대답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말씀의 맥을 이어가려면 어떤 내용으로 소개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무너질 것들에 대한 환상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17장은 바벨론의 몰락
18장은 짐승의 몰락
19장은 거짓 선지자의 몰락
20장은 용의 몰락

20장의 구조
1∼3절, 용의 결박
4∼6절, 천년 동안 왕 노릇
7∼10절,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11∼15절, 최후의 심판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신앙적인 특히 성경적인 이해와 믿음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죽은 자들에 대한 해석을 크게 두 가지로 소개됩니다. 첫째는 ‘생물학적(生物學的)인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둘째는 ‘영적(靈的)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합니다. 두 가지 해석이 사용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아야 합니까?

성경적인 믿음 특히 예수님께서 심판에 대하여 가르친 말씀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적인 심판관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예수 밖에 있던 사람들로서 영적인 죽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영적으로 죽은 자들만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이 세상에서 매일같이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과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었고 심지어 그의 육체는 헌데를 앓고 있었는데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아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부자와 같은 삶이 좋습니까? 아니면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삶이 좋습니까? 당연히 부자와 같은 삶이 좋습니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부자와 거지가 모두 죽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의 삶을 즐기던 인생들을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서 어디로 갔습니까? “음부(陰府)”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음부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에게 “네 손가락으로 물 한 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데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 사이는 무엇을 주고받을 수 없었기에 부자는 마지막으로 거지 나사로에게 “아직 세상에는 내 형제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 가서 제발 죽은 후에 나처럼 이런 세상에 오지 않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성경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선지가가 누구입니까? 선지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죽은 자들을 장사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란 생물학적인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합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다고 합니다. “책들”이란 “심판을 위한 책”입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빌립보서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은 심판이 아니라 상을 기다리며 믿음의 경주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성경적인 신앙생활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2∼24,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믿음의 기초는 반석과 모래 두 종류뿐입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기초는 반석입니다. 반석과 모래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비와 바람이 몰아 칠 때에 반석위에 세운 신앙의 집은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래위에 세워진 신앙의 집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건강해야 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철저하게 섬김과 희생의 삶이었습니다.

거지 나사로의 삶은 이 세상사람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거지 나사로는 비록 세상에서는 거지로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부자가 영원토록 부러워하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누려볼 수 없었던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삶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살아볼 수 있는 믿음의 축복을 즐기는 은혜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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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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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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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 믿음이 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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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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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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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

요한계시록 10:2,

요한계시록 10:9∼10,

요한계시록 13:16,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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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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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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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생명책(生命冊) Ⅳ(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씀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무너질 것들에 대한 환상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17장 : 바벨론의 몰락
18장 : 짐승의 몰락
19장 : 거짓 선지자의 몰락
20장 : 용의 몰락

20장의 구조
1∼3, 용의 결박
4∼6, 천년 동안 왕 노릇
7∼10,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11∼15, 최후의 심판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에서 관심을 갖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의 대답을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는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는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는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신앙적인 특히 성경적인 이해와 믿음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생물학적(生物學的)인 죽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영적(靈的)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돈 때문에 성도들이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분명한 믿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복음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죽은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책들”은 “심판을 위한 책” 이라고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묵시문학에서 “불”이란 심판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그 보좌는 불꽃,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이렇게 예언된 다니엘서의 말씀은 철저하게 심판을 위한 책들을 펴서 불로 심판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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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 믿음이 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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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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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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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어 장로님은 병상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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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記憶)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과 같은 기억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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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확정되었을 때 그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한국의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됩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됩니. 이와 같은 주민등록번호와 사회보장번호는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망신고를 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그 번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명책은 구원받은 백성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생명책이 펼쳐지는 그 날이 곧 주님의 재림의 날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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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0

생명책(生命冊)Ⅴ(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짐승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짐승은 “우상(偶像)”이라고 합니다(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다니엘 7장에서는 짐승은 “왕(王)”이라고 합니다(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이란 “우상과 같은 왕”을 상징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 여덟째 왕(11절)

⑪a.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 멸망으로 들어가리라(11절)

⑪b.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우상과 같은 왕이란 막강한 권력을 갖고 백성들을 탄압하는 강력한 힘을 자랑합니다. 만일 강력한 힘에 복종하지 않을 때는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제압하려고 할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미국의 대통령, 불란서의 수상, 영국의 총리가 취임할 때에 제일 먼저 하는 취임사는 “나는 나를 지지한 사람들이나 나를 반대한 사람들을 위한 대통령으로 수상으로 총리고 내 직임을 다하겠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문재인 정권의 취임사는 “적폐 세력을 청산하겠습니다.” 라고 시작한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시작이 잘못되었을 때에 그 과정과 결과는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강력한 힘은 로마 황제의 보좌를 말합니다. 로마 황제의 보좌에 앉아서 로마 황제는 대를 이어가며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생명책(生命冊)”이란 용어를 “어린 양의 생명책” 으로 기억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왜냐하면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할 때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에 대한 확실한 근거를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 양이 누구입니까?
구약 시대에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 활동이 끝나고 무려 40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혀 들을 수 없었던 영적으로 암흑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 광야에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지난 주일에 요한계시록에서 “짐승” 이란 “우상”이라고 정의하셨고, 다니엘서에서 “짐승”이란 “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따라서 짐승이란 세상 권력을 상징합니다.

요한계시록은 로마 황제의 권력이 세상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던 시대에 기독교인들은 인간은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죽음을 각오하고 오직 예수님만 섬길 것을 결단한 교회와 성도들을 향하여 계시하신 말씀입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성도들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성도는 장작더미 위에 올려져 화형을 당했습니다. 때로는 원형경기장에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놓고 오직 예수님만이 주가 되신다는 신앙을 주장하는 성도들을 원형경기장에 던짐으로 굶주린 사자의 먹이로 갈기갈기 찢어져 죽어갔습니다. 어떤 때는 관속에 눕히고 관 뚜껑을 덮은 후에 톱으로 관을 잘라내는 고통을 받으며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순교한 성도도 있었지만 많은 성도들이 로마 황제를 가리켜 “황제가 주님!” 이라고 인정하며 세속의 가치를 얻기 위해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기도 했습니다.

지난 주일에 소개한 짐승은 요한계시록 13장에 나타났던 짐승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공간적 구조를 살펴보겠습니다.
1장부터 3장은 “밧모 섬”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4장부터 11장은 “하늘”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12장부터 21장은 “땅”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따라서 13장의 짐승은 땅에서 나타날 권력을 말합니다.
그리고 17장도 땅에서 나타날 권력입니다.
세상 권력은 한 사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구약에서 대표적인 우상은 “바알”입니다.

“바알”의 뜻은 “나의 주인(My Lord)”라고 합니다.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인은 누구입니까?
정말 하나님입니까?
아니면 내 만족을 채워주는 주님을 도구로 사용하는 것입니까?
대부분의 신앙은 자기만족을 위하여 교회에 출석하고 기도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수세주로 믿는다는 고백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nERVHob3cI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

11:7, 저희가 그 증거를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저희로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저희를 이기고 저희를 죽일 터인즉.

20:1∼3,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짐승이란?
요한계시록에서는 우상(偶像)이라고 정의 했습니다(13: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다니엘서에서는 왕(王)이라고 정의 했습니다(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따라서 짐승이란 절대 권력을 잡고 있는 당시의 로마 황제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절대 권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세상 재물(財物)이 우상입니다.
성경에는 영생을 사모하면서도 소유한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선 부자 청년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건강(健康)이 우상입니다.
성경에는 건강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시편 39:13).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知識)이 우상입니다.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무저갱이란


이사야 53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메시아 수난 장” 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사야 53장에서 “그는” 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기독교인들은 “그는” 이란 인칭 대명사를 “예수님”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는” 이란 인칭 대명사를 “유대민족” 이라고 해석합니다.
왜 이런 해석이 소개되었을까요?
이사야 42장, 49장, 50장, 52장, 53장
53장은 52장 13절부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히브리 성경에서 장과 절이 없기 때문입니다.
42, 49, 50장 - 주님의 종을 이스라엘 민족으로 볼 수 있는 구절이 있다.
종 된 어떤 사람과 종 된 어떤 민족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말씀을 읽을 때 민족을 가리키는가 아니면 사람을 가리키는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이사야 53:8에서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메시아닉 쥬이쉬 “미치 글레이저 박사”
https://www.youtube.com/watch?v=EhNPqfPA-58  바시


서론

요한계시록 17장의 해석은 다양하다. W. E. Read가 Frank L. Chaney에게 보낸 私信에서 재림교회 성경주석 준비하는 대총회에 115 가지의 상이한 해석 자료가 제출된바 있다는 점을 지적한 일이 있었다. 요한계시록 17장과 관련하여 특히 다음과 같은 이슈들에 있어서 재림교회 내에서 해석상의 난맥상을 보여주고 있다.

1. 요한계시록 13장의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17장의 짐승은 동일한가? 아니면 제17장의 짐승은 다른 실체인가?

2. 제17장의 예언 시간대에 있어서 요한은 AD 1세기부터 관련된 사건으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요한이 영적으로 훨씬 후대의 사건들을 보고 있는가?

3. 제 17:8의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란 구절이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계 17:10)의 뿔에 관련된 구절과 평행적인 묘사인가? 아니면 짐승의 각기 다른 단계들로서 머리의 뿔들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없는 (불일치하는) 묘사인가?

4. 머리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재림교회 성경 주석은 거론되어 온 몇 가지 해석 구도를 요약 소개하고 있다.

'전에 있었다가(was)' 국면--> pagan Rome

'시방 없으나(is not)' 국면--> pagan Rome과 papal Rome 사이의 중간시기

‘장차... 올라와(will come)' 국면-->papal Rome

 '전에 있었다가(was)' 期 -->짐승과 7머리로 대표된 것

'시방 없으나(is not)' 期 -->일곱째 머리의 상처와 부활한 여덟째 짐승 사이의 중간기

‘아직 이르지 아니한’ (yet is )' 期 -->여덟째인 부활한 짐승

 요한계시록 17:8의 예언 구도를 두고 시도한 이런 해석들은 본문을 일탈하여 설득력이 약하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들을 하나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모든 정치적 반대로 이해하고 있다. 또 다른 사람들은 5頭를 다니엘 7장의 짐승에 작은 뿔을 더하여 바벨론에서 교황권에 이르기까지의 세력으로, 여섯째 머리를 무저갱에서 나온 짐승(계 11장), 즉 프랑스혁명으로, 일곱 번째 머리를 땅에서 올라온 짐승(계 13장), 곧 미국으로 본다. 이에 반대하여 5頭를 이집트, 앗시리아, 바벨론, 메데 파사, 그리스로, 제6頭를 로마제국으로, 제7頭를 교황로마로 보는 시각도 있다. Strand는 이런 입장을 선호한다. 1949년 제4기 안식일학교 교과는 제7두를 미국으로 보았다. LaRondelle은 제6頭 의 기산점을 프랑스 혁명 때인 1798년에 두고, Stefanovic와 Mueller는 제1세기 요한이 살고 있는 시대로 본다. 이런 난맥상을 어떻게 정리하여 나갈 것인가? 먼저 본문 이해를 철저하게 하면서 예언 구도를 설정하여 성서적 풀이가 되어야 할 것이다.

 II. 요한계시록 13장과 17장의 상위점들

요한계시록 제 13장의 짐승과 제 17장의 짐승은 공통점도 있지만 중요한 차이점도 나타나 있다.

A. 공통점

1. 7頭 10角을 지녔다(13:1; 17:7).

2. 13장의 바다짐승은 “큰 말과 참람된 말 하는 입을 받”았다(계 13:5). 17장의 짐승은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다(계 17:3).

3. 13장과 17장의 짐승은 모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및 성도들을 대적하는 세력들이다 (13:6-8; 17:14).

B. 차이점

1. 13장 바다 짐승은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지만(계 13:1), 17장 짐승에는 이 면류관 이 나오지 않는다.

2. 13장 바다짐승의 색상이 안 나오지만 제17장 짐승에서는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계 17:3)고 그 색상을 묘사하고 있다.

3. 제13장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오지만(13:1), 제 17장의 바벨론이 타고 있는 짐승은 “무 저갱으로부터 올라”온다 (계 17:8). 즉, 두 짐승의 출처가 다른 것이다.

 이런 점들에 비추어 보아 두 짐승들은 각기 다른 실체들이다. 그러나 몇 특성과 추구하는 목표가 같다고 볼 수 있다.

III. 무저갱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사단

무저갱 abussosis (abussos)는 구약과 신약성경에서 여러 가지 뜻을 함축한 용례로 나온다. LXX 은 창세기 1:2의 히브리어 tehom을 abussos로 번역하여 원시 대양을 나타내고 있다. 욥기 41:31에서는 일반적인 바다를 나타내고 있다. 시편 71:20에는 “땅 깊은 곳”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아부소시스는 레비아단의 거처도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무저갱 용례가 일곱 번이나 나온다.

1. 9:1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 하나가... 무저갱의 열쇠를 받았더라.”

2. 9:2 땅에 떨어진 별이 무저갱을 연다.

3. 9:11 “저희(황충)에게 임금이 있으니 무저갱의 사자라 ... 아볼루온이더라”

4. 11:7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두 증인을 죽인다.

5. 17:8 큰 음녀가 앉고 있는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 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계 17:8)

5. 20:1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계 20:1)

6. 20:3 천사가 사단을 천년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한다.

 위 용례 중 4회는 요한계시록의 역사적 부분에서 그것도 나팔의 계시에서 나온다(8:2-11:18).

.욥기 38:7의 천적 존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은 새벽 별들이다. 타락한 새벽별은 이사야 14:12에 나온다. 바벨론 왕 배후에는 그 왕보다 더 우월한 타락한 천사 새벽별이 도사리고 있다. 누가복음 10:18은 예수께서는 사단이 하늘로부터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별들에 관한 용례들이 나온다. 특히 천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별에 대하여 유의할 필요가 있다.

 

(1) 7교회에 보내는 사자들로 종교적 지도자들과 교사들을 상징하는 “일곱 별”(계 1:20)

(2) 천적인 존재인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광명한 새벽별”(계 22:16)

(3) 타락한 천사들을 나타내는 “하늘 별 삼분의 일”(계 12:4, 9)

(4) 사단을 가리키는 별

위 네 번째에 나오는 별에는 “하늘에서 땅에 떨어진 별”(계 9:1-2)이 있다. 이 별은 무저갱을 열어 그 구멍에서 재난, 고난, 및 고문을 일으킨다. 즉, “땅에 떨어진 별”의 정체는 사단이다. 이 별은 세상에 파멸을 일으키는 “큰 별”(계 8:10)과 같은 맥락에 있다. 즉, 이 별을 요한계시록 12:7-9의 하늘에서 쫓겨나 떨어진 사단으로 봄이 마땅하다. 요한계시록 9:11의 황충의 임금과 무저갱의 사자, 즉 아볼루온(파멸자)은 땅에 떨어진 별로 사단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사단의 부하 군대 악귀들은 인간을 공격한다.

요한계시록 11:7의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프랑스 혁명 때 신구약 두 증인을 일시적으로 죽이는 짐승도 사단이다. 요한계시록 11장의 무저갱은 같은 나팔 이상의 일부가 된 이상 다른 인격에 적용시킬 이유가 없다.

그러나 20:1-3에서는 대 반전이 일어난다. 무저갱을 여는 사단의 권세를 더 이상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전에는 그 권세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있다(9:1).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천사가 사단을 기속하여 천년동안 무저갱에 던져 잠근다. 17:8의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구절은 이런 맥락과 연계되어 읽어야 한다. 즉, 계 17:8은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붉은 용, 즉, 사단의 마지막 활동 및 그 운명과 연계되어 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무저갱 기사는 사단과 연계된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신약성경 다른 책에도 이 무저갱이 두 번 언급되어 있다. 로마서 10:7에서는 무저갱이 죽은 자의 영역을 두고 사용되어 있고, 누가복음 8:1(“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에서는 더러운 귀신이 “무저갱으로 들어가라 하지 마시기를 간구”한다(눅 8:31). 무저갱은 사단의 기관들이나 앞잡이들과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바벨론 큰 음녀가 타고있는 짐승은 정치적 권세들을 통하여 일하는 사단이다.

 IV. 요한계시록 17장의 문맥과 시간 구조

요한계시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철 부분 1-14장에는 요한 시대로부터 최종적 완성에 이르기 까지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나오고, 둘째 부분인 15-22장에는 종말론적 사건들이 마지막 때와 맥락을 함께 하면서 전개되고 있다. 용(12:13-17)과 바다 짐승(13:1)은 역사적 부분에 나온다. 그러나 17장의 짐승은 종말적 부분에서 나온다. 여기에 두 짐승들의 차이점도 인정하면서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요한계시록 17장의 시간적 장르는 무엇인가? 마지막 7재앙은 요한계시록 종말적 사건으로 15과 16장에 나온다. 여섯째 재앙 때 바벨론의 강인 유프라테스강이 마르고 동방왕,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적인 무리와 함께 오며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난다. 일곱째 재앙 때 바벨론에 대한 심판이 내리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진다. 요한계시록 17장은 이 심판을 더욱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재앙들과 이어지는 장들의 연계성은 명약관화하다. 17:1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음녀 바벨론이 받을 심판을 소개하고 이어서 그 내용이 17-18은 바벨론의 몰락을, 19장은 짐승과 거짓 선지자의 멸망을, 그리고 20장은 17장에서 시작된 심판 주제를 마무리 지으면서 악인들 및 사단 자신의 멸망과 심판을 완결한다. 이어서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계 21:9)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계 21:9)고 하면서 그 자세한 내용을 21:9-22:6에 묘사하고 있다. 17:8-12은 이런 문맥과 함께 이해되어야만 한다.

 V. 요한계시록 17장의 개요

A. 서술(내레이션);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요한에게 다가온다(1a)

천사의 스피치1: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 라”(1b).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 의 포도주에 취하였다”(2).

B. 서술: 성령께서 요한을 광야로 데려감(3a)

異像 1 (3b-5): 7頭 10角을 지닌 짐승을 탄 음녀, 땅의 음녀들의 어미인 큰 바벨론

異像 2 (6a): 성도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음녀

C. 서술: 요한이 기이하게 여김(6b)

천사의 스피치 2(7-14): 짐승, 7頭, 10角 및 이들이 벌인 미래 어린양과 진실한 자들과 의 투쟁

천사의 스피치 3(15-18): 물의 의미, 10뿔들과 짐승이 큰성 바벨론과의 투쟁을 벌임.

 묵시문학에서는 異像과 그에 관한 해설이 뒤 따라 나오는 문학적 패턴이 종종 나온다. 예컨대, 다니엘 7:1-15 이상에 대하여 7:16-28의 해설이 나오고, 요한계시록 1:16의 이상에 대하여 1;20의 해설이 나오는 용례를 들 수 있다. 요한계시록 17장의 시작에서 천사의 스피치가 나오고 두 개의 짧은 이상이 나온 후 천사의 긴 스피치가 나온다. 17장 벽두에서 천사는 요한에게 음녀에 대한 심판을 보여 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에 두 번의 짧은 이상 (17:3b-5과 17:6a)은 심판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7두 10각을 지닌 짐승을 소개한다. 그 다음에 오는 천사의 두 스피치에서는 이전에 언급한 세력들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천사의 첫번째 스피치에서 언급한 심판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는 두 이상에 나오지 않는 정보를 추가하기까지 한다. 그러므로 천사의 두 스피치는 두 이상을 단순히 설명만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17:3b-6a에 나오는 두 이상은 역사적 시간대에서의 음녀와 그의 활동상을 묘사하고 있다(17:4과 14:8의 비교). 다른 한편으로 천사의 스피치에서는 짐승을 예외로 하면서 17장 처음에 나오는 다른 세력들을 규명하고 있다. 그리고 짐승과 뿔들이 최후적으로 어린양과의 투쟁을, 그리고 음녀와의 투쟁, 곧 음녀에 대한 그의 동맹군들의 심판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심판으로 본 것은 음녀의 동맹군들이 음녀를 대항하면서 음녀를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짐승 또한 멸망당한다. 전체적으로 세 개의 스피치 모두가 심판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종말 때와 관하여 머리들 보다는 뿔과 짐승의 활동에 더 강력한 강조점이 놓여 있다. 머리들이 최후의 투쟁에 참여한다는 직접적인 진술은 나오지 않는다. 이는 머리들이 역사의 흐름에 더 관련되어 있어 음녀 자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에 반하여 짐승과 협력하는 이 뿔들은 종말론적으로 예수를 반대하고 음녀를 반대하는 일에 있어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 그 때까지 이 뿔들은 앞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짐승과 “잠시 동안”(17:10) 함께 일한다.

 VI. 천사의 둘째 번 스피치와 셋째 번 스피치

문맥 검토 요약에서 유심이 차례에 따라 자세하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즉, 천사의 스피치 2개를 좀 더 집어 볼 필요가 있다.

A. 둘째 천사의 스피치

서론 (7)

a. 짐승 (8-9a)-- "네가 본 짐승“

b. 머리들 (9b-11)--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또 일곱 왕이라”(are).

c. 뿔들 (12-14)--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are).

B. 셋째 천사의 스피치(15-18)

a. 물(15)--“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들)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are).”

b. 10 뿔과 짐승(16-17)--“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

c. 음녀 (18) “네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is).”

 이렇게 하여 음녀, 물, 머리들, 뿔들의 정체가 규명되어 있는 것이다. 각 경우마다 현재 be 동사의 복수동사나 단수 동사가 사용되어 있다. 정체가 규명되지 않은 유일한 대상은 짐승뿐이다(계 17:8-9a). 17:16-17에도 짐승과 뿔들을 다룬 셋째 천사의 스피치에도 뿔들은 이미 이전 스피치에서 규명되어 있어 문제가 안된다. 이 스피치에는 짐승의 활동은 나오지만 그 정체가 규명되어 있지 않다.

짐승을 거론 선택하면서도 해설되어 있지 않는 반면에 머리들은 또 다른 방식으로 선택되어 나온다. 둘째 번 스피치는 짐승, 머리들, 뿔들을 다루고 있고, 세 번째 스피치는 물, 뿔들, 짐승 및 음녀/여자를 다루고 있다. 17:8 이하에서 “네가 본바(which you have seen)”가 5회나 나오고 있다. 이 句는 머리 이외의 모든 대상들에 수반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우연한 수반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경우가 됐던지 요한계시록 17장의 권세들을 특수한 용어로 규명하고자 할 때 그 출발점은 머리들이 된다. 다섯 머리들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다(계 17:10). “하나는 있다”는 어구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요한과 관련이 있는 표현이다. 일곱 머리 중 하나는 존속하고 있는데, 그 시간대가 요한이 살고 있던 제 1세기인지 아니면 계시 중에 그에게 보인 사건의 시간대인지 여부가 문제시 된다.

“하나는 있다”는 어구가 머리들과 함께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방 없으나(is not)"의 어구는 짐승과 함께 나온다.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계 17:8). 17:8과 11절에서는 짐승이 세 번 비슷하게 나온다.

(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계 17:8a)

(2)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17:8b)

(3)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계 17:11)

“하나는 있다”(머리)는 어구는 제1세기 요한 당대를 의미할 수도 있거나 계시 중에 후대일 수도 있다. “시방 없으나(is not)"(짐승) 어구는 요한과 연관될 수 있어 역사적 연관성을 지닐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추정은 문제점들을 수반하고 있어 주의를 요한다.

(1) 두 어구가 현재 시제로 표현되어 있지만 짐승이 시방 없는 것과 머리 중 하나가 있는 것을 동시에 상정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2) 짐승의 정체가 아직 규명되어 있지 않다. 짐승과 관련된 진술들은 종말 시점을 전망하는 것이어서 미래적 심판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방 없으나(is not)"의 어구는 요한 당대와 맥락을 함께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3) “시방 없으나(is not)" 국면은 미래에 발전할 대상으로 봄이 합당하다. 더구나 현재 시제란 자주 미래를 지칭하여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계 17:11-13; 16:15). 더 나가서 같은 절 안에서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라는 짐승의 종말을 시사하는 미래적 의미를 현재로 대용하고 있는 점을 간과하여서는 안 된다. 머리들을 선택하여 거론하면서 짐승의 정체를 규명하지 않는 것은 짐승을 미래적 관점에서 투시하도록 하는 어법이 된다. 물론 머리들은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을 이해하는 일에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4) 요한계시록 17:8의 둘째 부분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어구는 지상 거민들에 대한 짐승의 국면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여기서 짐승의 미래적 발전은 이 세상의 마지막 시간대에 관련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문맥에 자연스럽게 조화된다.

(5)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의 미래를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요한계시록 20장에서는 천녀기가 시작될 때 묶였던 사단이 천년기 끝에 “ 잠깐 무저갱 감옥으로부터 놓임을 받는다(계 20:3). 따라서 “시방 없으나”는 천년기 동안을 상정하여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에 있었다가” 국면은 역사적 시대의 짐승을 묘사한 것으로 보이며 그 기간은 천년기 시작으로 끝난다. “전에 있었다가”의 시간대는 사단이 그리스도의 재림 때 까지 인간 역사를 통하여 활동하여 온 시간대를 시사하고 있다. 머리들은 기본적으로 이 시간대에 등장하는 것으로 맞아 떨어진다. 그러나 뿔들은 그 시간대의 끝 장면에서만 나타난다. 여기서 요한은 심판과 그리스도의 재림과 더불어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날 사건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일곱 머리는 몇 부분으로 나뉜다. 즉, (a) “다섯은 망하였고" (b) "하나는 있고" (c)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계 17:10). (d) 여덟째는 짐승으로 “일곱 중에 속한 자”(계 17:11)이다. 여기에서 짐승의 국면과 머리 구분을 평행적으로 볼 수 없다.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깐 동안 계속하리라”(계 17:10). 이 본문을 순리대로 이해한다면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기록할 때 다섯 왕국은 이미 망하였고 여섯째 왕국이 통치 중이라는 점을 포착할 수 있다. 요한이 다른 시대로 옮겨졌는지 여부에 관한 정보는 나와 있지 않는 반면에 분명한 점은 요한이 여섯째 머리 동안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만일에 요한이 AD 1세기가 아닌 중세, 또는 1798년이나 그 뒤 어느 다른 시간대로 옮겨졌다면 요한계시록 17장에 대한 명료한 해석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한 연대기적 진술이 내포된 예언도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Jon Paulien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예언자가 하늘과 땅을 여행할 수도 있고 과거로 거슬려 올라가기도 하고 종말 때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 이상은 예언자가 살고 있는 시대와 장소에 꼭 머물러 있을 필 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후에 예언자에게 설명이 되고 있다. 동 설명은 항상 이상이 주어진 시간, 장소, 및 환경에 들어간다.

  이 원칙에 따른다면 머리 설명은 결정적이다. 여섯째 머리는 AD 1세기에 올 수 밖에 없다. Kenneth A. Strand는 짐승과 머리들을 두고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예컨대, 17장의 짐승에 대한 “시방 없으나” 국면을 역사적 성취로 추구하는 일은, 그 국 면이 분명히 심판임에 비추어 볼 때 논리적이지 못하다. 또는 17장 전체를 종말론적 성취 에서보다 역사적 성취로 다루는 일은 同 章의 핵심과 특히 종말론적으로 일어날 17장의 둘째 부분의 핵심을 일탈하게 된다.

그렇다고 17장에 절대적으로 역사적 반영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 대, 7頭와 10角은 요한이 저술을 하는 시대적 견지에서 설명이 되어야 한다...요한은 이상 을 ‘시방 없으나“국면(심판)으로부터 보고 있다할지라도, 머리들과 뿔들은 “전에 있었으 나” 국면에 속한 역사적 실체들인 것이다.

  IV. 시안적 해석

A. 짐승

이미 위에서 짐승의 “전에 있었으나” 국면은 역사적 시간대 속한 사건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역사적 시간대 기간에 사단은 각각 다른 대행자들을 통하여 과거에 활동하였으며 현재도 활동하고 있다. 이 시간대는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끝난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사단은 무저갱에 던져져 갇힌다. 그리하여 사단은 “시방은 없으나”국면으로 진입하게 된다. 천년기 끝에 사단은 무저갱에서 놓인다. 그리하여 사단은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온 대로 활동한다. 이 단계에 사단은 여덟째가 되며 일곱 중에 속한 자가 된다(17:11). 그 후 사단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한다.

  B. 머리들

요한 당시 다섯 머리들, 즉 세계적 대 제국들은 망하였고 하나는 로마 대 제국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5 제국은 이집트로부터 시작하여 앗시리아, 바벨론, 메데 파사, 그리스가 된다. 요한계시록에서 이집트에 관한 언급은 11:8에서부터 나온다. 여기서 이집트는 상징적인 이집트이지만,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기 때문에(계 11:8) 고대 파라오의 제국을 기억나게 한다. 더 나가서 스트랜드가 지적한 것처럼 첫 다섯 나팔과 첫 다섯 재앙은 이집트에 내린 재앙 모델을 따르고 있다. 그래서 스트랜드는 요한계시록에서 이집트 모티프에서 나온 것이다.

세계 제국 이집트 다음에 아시리아 제국이 뒤를 잇고 있다. 그 다음에는 다니엘 2장, 7장, 및 8장에 나오는 강대국들이 등장한다. 여섯 째 머리는 로마 제국이 되고 일곱 째 머리는 교황권이 된다.

  C. 여섯째 머리와 “잠깐 동안”

일곱째 머리가 임하면 “잠깐 동안” 남아 있게 된다. 혹자는 이 일곱째 머리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속하여 온 교황권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잠간동안”의 희랍어 “oligos"는 신약성경 전체에서 8회 나오는 바 그 중 5회가 시간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용례들이다. 이 용례들의 시간의 길이는 문맥에 따라 결정된다. “oligos"가 요한계시록에 는 4회 나오는 바, ‘작은,’ ‘적은’ ‘두어 가지,’ ‘짧은’의 뜻을 지녔다. 이 뜻은 문맥에 따라서 그 의미가 달라진다. 7교회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사물의 양 ‘두어 가지’(계 2:14)와 ‘몇 명’을 가리키는 인간의 양(계 3:4)을 나타내는 용례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 12:12에서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과 17:10의 ‘잠깐 동안’은 시간적 관점에서 사용되는 용례들이다. 12:12에 나오는 oligos 용례는 미가엘과의 싸움에서 사단이 십자가에서 패배당한 때부터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점을 알고 크게 분 내어 인간위에 폭군으로 군림하며 교회를 박해한지 2,000년이 계속되는 기간을 포괄하고 있다. 사단이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쫓기니라”(계 12:9)로부터 십자가까지는 4000년이 넘는 기간이 된다.

그러므로 일곱째 머리의 “잠깐 동안”은 일곱째 머리 예언의 성취가 되는 교황권 기간을 배제하지 않게 된다.

 VII. 요약

요한계시록 17장의 해석은 성경 그 자체에 토대를 두어야 한다. 문맥을 등진 해석은 자의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위험한 해석이 된다.

철저하게 성경에 토대를 둔 본 연구에서 살펴 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1. 짐승의 일곱 머리들은 개별적인 왕들보다는 왕국들을 대표한다. 이 왕국들은 이집트, 아시리아, 바벨론, 메데 파사, 그리스, 로마 및 교황권이다.

 2. 요한계시록 12장, 13장 및 17장의 짐승들은 정확하게 동일한 권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요한계시록 17장의 짐승은 정치적 권세들을 통하여 일하는 사단을 가리킨다. 사단은 전 역사를 통하여 활동하여 왔다.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계 17:11)에서 여덟째에는 정관사가 결여되어 있다. 이는 다른 7頭 표현에서 정관사를 사용하고 있는 점과는 차이가 있는 점을 근거로 재림교회 성경주석이 소개한 것처럼 7頭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배후의 진정한 권세가 되기 때문에 다른 머리들 중 하나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3. 짐승과 그 하부 구분이 되는 머리들은 정확하게 평행적인 기사가 아니다. 짐승의 국면은 역사적 시간대, 천년기 시간대, 및 천년기 끝의 시간대에 걸쳐 등장하지만, 머리들은 모두 역사적 시간대에 국한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머리는 요한 시대, 즉 제 1세기를 언급하고 있다. 머리들의 배후 추진 권세는 짐승이다. 이런 구도는 첨부된 스트랜드의 도해에 요약되어 있다.

  악의 세력이 맹활약을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아직도 관장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원수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을 곤경과 박해로부터 구원하신다.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계 17:14).

 



출처: https://ockam.kr/5 [순례자의 여로에서]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https://m.cafe.daum.net/ybs21/EV5X/22 
베드로전서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아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를 위하여"라 함은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심을 가리킨다(Selwyn).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주'가 되시기 위해서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다. '죽은 자'에 대해서 혹자는 영적으로 죽은 자를 의미한다고 주장하나(Augustine, Frasmus, Luther) 이 견해는 문맥상 타당성이 없다. 왜냐 하면 앞 절에서 육체적으로 죽은 자에 대해 이미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Stibbs). 따라서 본절의 '죽은 자'는 살아있을 동안에 복음을 듣고 회개하였으나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하기전에 죽은 그리스도인을 의미 한다(Dalton, Kelly, Moffat, Selwyn,

Cranfield).

*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베드로는 '육체로'와 '영으로'를, '심판을 받으나'와 '살게 하려 함이니라' 대조시켜

서 본절이 '죽은 자'에게도 복음이 전파된 목적임을 나타내고 있다. '심판을 받으나'

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리도시(κριθῶσι, 2919)는 부정 과거로 육체로는 세상에서 이미 심판을 당하였음을 시사한다. 반면에 '살게 하려 함이니라'의 헬라어 '조시'(ζῶσι, 2198)는 현재형으로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아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였을지라도 하나님과 더불어 영으로는 영원히 살고 있음을 시사한다. 복음은 영원한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는 죄인들을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능력으로(요일 3:14) 그리스도인들은 육체로는 죽임을 당할 수 있으나 영적으로는 복음이 제공하는 생명력으

로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다. 



 


예수 이전의 사람들과 구원

여러 성도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질문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또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살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습니까?"

구약 시대에 구원을 받을 사람들은 율법을 준수한 사람들입니다.

질문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그리스도가 오시지 않았던 구약 시대에는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은 그리스도의 모형인 제사를 통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합니다. 또 어떤 분은 오실 예수님을 소망할 때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두 가지 대답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답변

구약 구원에 관한 두 가지 애매한 해석


두 가지 답변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우선 구약 성도들 중 누가 구원 받았다고 생각합니까?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위인들만 구원 받았습니까? 그럼 숫자가 너무 적지 않습니까? 그들의 믿음은 물론 대단했지만 자칫 성경에 기록될 정도로 하나님의 일에 크게 쓰임 받았기 때문에 구원 받은 것으로 오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들은 그렇다 치고  구약 시대의 평범했던 일반 백성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리스도의 모형인 제사를 통해 구원 받았습니까? 그럼 구약 이스라엘 백성 전부가 다 구원 받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원치 않고 순종과 자비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제사 드리는 백성 중에 그 중심이 하나님을 향해 바로 선자를 구원했다면 모를까 단순하게 율법의 제사 제도가 구원의 통로였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적 의미와는 다릅니다. 그리고 구약 백성들이 과연 제사 드릴 때에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확신 아래 드렸는지도 의심스러운 것 아닙니까?


나아가 주전 622년경 남쪽 유다 왕국의 요시아 왕 때에 “대제사상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왕하22:8)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완전한 모세 오경 즉 율법을 갖고 있지 못해 제대로 된 제사를 아주 오랫동안 드리지 못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초막절의 경우 여호수아 시대를 제외하고는 바벨론 포로 귀한 후에야 처음으로 율법대로 지켰습니다.(느8:14) 그런데 그 포로기 이후의 제사마저도 말라기 선지자가 한탄한 대로 더러운 떡, 저는 것, 병든 제물을 바쳤습니다.(말1:7,8) 따라서 율법의 제사 제도의 의미가 그리스도의 모형이라는 설명은 맞지만 그 제도를 통해 구원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포로 귀한 시절 훨씬 이전에 사역했던 엘리야 선지자가 탈진해 있을 때에 하나님이 어떻게 말했습니까?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19:18) 아합과 이세벨 같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폭정을 펼 때에 엘리야처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오직 여호와만을 믿어 바알에게 절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이 칠천 명은 제사와 상관 없이 하나님이 구원해 준 자들이었습니다. 이 때  칠천 명은 당시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가 자기 뿐이라고 생각했던 엘리야에겐 아주 큰 숫자이지만 전체 인구 수로 따지면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의 위인들 정도로 극히 제한된 사람만 구원 받은 것은 아닙니다.  


또 예수님을 소망한 자가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것도 너무 불분명합니다. 구약 백성들이 메시야에 대한 소망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믿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진리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또 메시야에 대한 소망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발전되어 가다가 바벨론 포로기 시절 이후에 완전히 견고하게 형성되었습니다. 따라서 구약 백성들은 예수님이라는 역사적 개인에 대한 소망은 가지지 못했습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이 복음의 핵심은 잘 모르고 “예수님이 우리 죄를 다 감당하시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의 문자적 의미에만 너무 집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구약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기는커녕 알 수도 없었는데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심이 당연히 생기게 마련입니다. 또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에서도 여전히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 얻는다는 명제를 가능한 건드리지 않으려다 보니까 질문자님이 지적한대로 자꾸만 뭔가 석연치 않게 됩니다.

    

그럼에도 성경에는 분명히 예수를 소망해서 구원 받는다는 명시적 기록이 있습니다. 또 실제로 예수를 믿은 자만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를 일반 신자들이 실존했던 인물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차원을 넘어 더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고는 이 문제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성경이 구약 백성의 구원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는 대표적인 세 부분을 차례로 살펴 본 후에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본질적인 의미를 다시 따져 보고 결론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율법 없이 망한 자 - 로마서에서 말하는 구약 백성의 구원(로마서 2:12∼1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예수님 오시기 전 구약 백성들의 구원 문제란 그리스도를 몰랐다는 측면에서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포함해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당신의 섭리로만 운행하시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은 민족이 유대인들을 제외하고 과연 있었겠는가 하는 논란의 소지는 있습니다. 만약 우상 숭배, 범신론, 다신론, 자연주의 신관 등을 가졌을 때는 원론적으로 구원에서 제외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일신 창조주 신관을 가졌던 유대인들 가운데도 하나님 앞에 배도하여 구원을 받지 못한 자가 있는 반면에 이방민족 중에라도 아무리 그 확률은 아주 낮지만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들어간 자가 단 한명도 없다고는 함부로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바울 사도가 로마서 초반부 특별히 1:18∼3:18까지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서 1장은 이방인의 죄
로마서 2:1∼3:18, 유대인의 죄

그 논쟁 중에 위에 예를 든 구절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원칙을 밝혀 놓은 부분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 혈통에 관계없이 즉 율법을 소유하여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드렸든 아니면 율법을 전혀 몰랐던 누구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면 죄가 없는 자는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구원을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을 제대로 지키고 이방인들도 선행을 하면 죄가 없어져 구원을 얻게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어지는 2:14∼15에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고 했습니다. 이방인이 본성과 양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인정한 것뿐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율법을 받은 것만으로 구원이 자동적으로 보장된다고 오해하지 말라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오히려 이 단락의 결론인 3:9∼18에서 바울 사도는 시편 14:2를 인용하여 “기록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으로는 율법을 받고 지키려 노력한 유대인이든 양심과 본성으로 선을 행한 이방인이든 하나님의 의에 만족할만한 의인은 도저히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아무에게도 구원을 베풀지 않고 몽땅 심판하셨다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앞에서도 살펴보았습니다. 도덕적 죄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단 한 명도 구원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죄의 본질이 일차적으로 도덕적 죄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기준도 당연히 선행이 아니게 됩니다.


로마서의 이 구약 백성의 구원에 관해 토론한 부분(1:18∼3:18)의 바로 앞과 뒤의 구절을 살펴보면 흥미롭습니다. 먼저 앞부분 1:16∼17에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고 합니다.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자만 그것도 인간의 공로 하나 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구원을 준다고 했습니다.


바로 뒷부분 3:19∼22은 무엇이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도는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해서 구약 백성의 죄를 논의한 이유는 구원이 왜 예수를 믿는 믿음이 아니고는 이루어질 수 없는가에 관한 근거와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마서에서 말하는 구약 백성에 대한 구원의 원리는  모두가 죄인이기 때문에 도덕적 죄와 상관없이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 당신의 주권으로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문제는 그 믿음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으로 가보기로 합시다.


믿음으로 인한 구원 – 히브리서 11장이 말하는 구약 백성의 구원


본장은 구원의 기준보다는 구약의 대표적인 신앙 위인들이 가졌던 믿음의 본질을 나타내 보인 내용입니다. 이장에 등장한 인물들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셨던 이스라엘의 남겨진 자 7천명 같이 구원 받은 일반인들과는 다릅니다. 미국 프로 스포츠에선 대기록을 남긴 자들이 은퇴하면 본인의 사진과 기념품들을 보관 전시하는 ‘명예의 전당(Hall of Fame)’ 제도가 있습니다. 이들도 일종의 천국의 명예의 전당에 이름이 올라 간 자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인물 앞에 ‘믿음으로’가 일률적으로 따라 나오듯이 구원 받은 기준은 오직 믿음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들이 가졌던 믿음의 공통점을 분석해 낸다면 구약 백성이 어떻게 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가에 관한 기준을 추출해 낼 수 있습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의 부모(23절), 모세,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30절, 유일하게 개인적 구원의 기준과 별개의 구절임), 기생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이 가졌던 믿음의 본질이 무엇이겠습니까?  


한 마디로 순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자신의 전 생애를 걸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믿음과 자기 생명을 맞바꾼 자들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설명한 그대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11:1)로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11:3)을 확신하였고 평생을 두고 그 믿은 바대로 실천한 자들입니다.


아벨은 죽음으로 말했고, 에녹은 죽지 않고 천국으로 들리워졌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자(5절)였습니다. 노아도 백년 후의 일에 평생을 걸고 순종했으며, 아브라함은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도 못했지만 순종했으며 자기 생명보다 더 귀중한 외아들 이삭도 아무 주저 없이 바쳤고, 사라도 자신에게 득남의 약속을 주신이가 미쁘신 줄 알았고(11절), 모세의 부모마저 바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23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도 도저히 상식으로는 말도 안 되는 행위를 오직 믿음으로 결행했으며(30절) 마찬가지로 기생 라합은 동족을 배신하여 들키면 바로 사형을 당할 일도 하나님만 믿고 순종했습니다.(31절) 라합을 설명하면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순종이 심판과 구원의 기준이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순종한다는 것이 어떤 율법의 계명을 종교적, 도덕적, 의무적으로 따른다는 뜻이 아닙니다. 11:32이하 38절까지 설명되어 있는 대로 희롱과 채찍질 뿐만 아니라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을 겁내지 않고 자기 생명을 하나님의 일과 맞바꿨다는 의미에서 순종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었기”(11:6)때문이었습니다.


또다시 이 말씀에 대한 오해가 없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존재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그 분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정도로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언젠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당신만의 뜻을 당신의 방법과 때에 따라 이룰 것을 믿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조류와 풍조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과는 정반대로 나아가기 때문에 보이는 것에 의존하여 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전에 이 땅에서 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천국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음을 확신하여 자기 목숨마저 아끼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바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벨은 죽음으로 믿음을 드러냈고 아브라함의 경우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10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이 신앙 위인들의 공통점을 어떻게 정의 하고 있습니까?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을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3-16절) 모두가 이 땅의 나온바 본향보다 천국에 있는 본향을 더 사모하였기에 죽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히브리서에 열거된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하나님으로 일컬음을 받는데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증거하면서 “복음을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노니”(롬1:16)라고 했지 않습니까?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절하지 않는 자 칠천 명을 하나님이 남겨 두셨다고 했습니다. 천국의 본향을 사모하여 이 땅에서 평안을 포기한 자들이었기에 그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셨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구약 백성의 구원의 기준은 현실의 평안에 목표를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평생을 살았는가 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이 구약 시대의 믿음의 위인들을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며 환영하며”(11:13)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39절에서도 같은 내용을 되풀이해서 강조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가나안 입성 이전의 사람들에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기업으로 차지할 것이라는 약속은 받았지만 직접 차지하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입성 이후의 사람들도 많이 포함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는 구약 백성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소망은 있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구체적인 약속과 그 실현을 눈으로 보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의 장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40절)는 말씀으로 결론지어졌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선 신약 성도들에게는 더 좋은 것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 성취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구약 성도들이 구원 받은 것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베풀어주신 구원의 원리와 계획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신약 성도가 믿음으로 십자가 구원에 참여하듯이 구약 성도도 구체적 약속은 받지 못하였지만 믿음으로 동일한 성격의 구원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결과적으로 구약 성도도 예수 그리스도를 구체적으로 몰랐지만 예수를 믿은 것과 같습니다.


예수를 믿은 아브라함 – 예수님이 말하는 구약 백성의 구원    


그런데 성경은 놀랍게도 구약 성도가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 받았다고 명시적으로 그것도 예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통해 밝혀 놓았습니다.


요한복음 8:52∼56, 유대인들이 가로되 지금 네가 귀신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것도 아니어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이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말씀하시자 그 말을 들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왜 우리가 자유케 될 필요가 있느냐고 반발하면서 시작된 논쟁의 결론 부분입니다. 이 논쟁의 초점은 결국 누가 진정한 아브라함의 후손 즉 하나님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자인가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혈통적 후손이므로 더 이상 구원의 절차가 따로 필요 없다는 것인데 반해 예수님은 “내 말에 거하면-예수를 믿으면- 참 내 제자가 된다”(8:31)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아예 너희의 선조 아브라함(주님 오시기 2천 년 전 인물)도 당신을 믿었고 보았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의 뜻이 아브라함이 메시아 되신 당신을 실존 인물로 직접 보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도 구체적인 복음의 진리를 신약 서신에 나오는 식으로 정리된 내용으로는 알지 못했으며 알 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볼 것이라고 하지 않고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그 때를 보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자신의 후손을 통해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고 실제로 그 약속이 외아들 이삭을 통해 이뤄질 것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22:16∼18,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은 백 살에 자기 몸에서 난 외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라는 명령에 전혀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며 바쳤습니다. 그가 칼을 들고 이삭을 죽이려는 순간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번제할 제물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해놓으셨고 그 후 바로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당신의 때를 기다리다가 보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약속을 먼저 받고 그 약속이 실현되는 것도 나중에 보았다는 것입니다. 약속을 받은 것과 실현된 것 사이에 시차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2:17에 따르면 이삭을 바쳤더니 처음으로 메시야 약속을 받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불려 나왔을 때에 벌써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세기 12:2∼3)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 즉 하나님의 인류 구속사의 시발점으로 믿음의 조상이 되며 그가 이루는 큰 민족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된다는 약속은 이 때에 이미 받았습니다. 그는 이 때부터 믿음으로 자기 후손을 통해 어떤 큰 구원의 역사가 이뤄질 것이라고 소망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때를 볼 것을 즐거워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이삭을 바친 후에는 하나님은 분명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창22;16,17)라고 ‘네 씨’라고 구체적으로 밝혀주었습니다. 바로 이삭을 통해 메시야가 반드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자기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이삭을 바쳤더니 하나님이 이삭 대신 어린양 제물을 이미 준비해 놓으신 뜻을 구체적으로 명확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먼 훗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 구세주가 이삭의 씨를 통해 나올 것이라는 것을 이미 자기 눈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브라함은 예수님을 믿은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을 믿은 것은 아니지만 이삭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때가 되면 나타나 전인류를 구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을 믿은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에 드러난 구원의 진리


흔히들 예수를 믿어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을 자꾸 선행과 공적과 대비한 개념만 강조해서 인간이 아무 하는 일 없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 받는다는 식으로 소개하고 이해되고 있습니다. 이 교리의 문자적인 의미만 수긍하고 동의하여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따라 믿는 것과 예수님을 개인적인 구주로 영접하는 것은 그 본질에서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 교리를 수긍하여 믿기로 한 것은 여전히 행위에 속합니다. 사고 활동이라고 말하듯이 인간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도 몸이 행동(action)한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정신이 활동(mental activity)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근본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구원의 진리를 믿고 실제로 자기의 전존재를 걸어 그 진리에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구원의 진리란 간단합니다. 우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의의 기준에 합당한 자 한 사람도 없는 죄인인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어느 누구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놈 없지 다 죄인이지 그래서 종교가 필요하고 하나님께 회개하고 반성하고 기도해야지” 식의 상대적인 죄의 비교가 아닙니다. 절대적이고도 개인적인 고백이어야 합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도저히 어떠한 선행, 공적, 자격, 능력과 심지어 회개나 믿음으로도 바로 설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자각하는 것입니다. 자기야말로 천하 죄인 중의 괴수로 죽음 말고는 그 죄를 하나님 앞에 갚을 길이 도저히 없기에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에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기를 대신해서(단순하게 자기를 위해서가 아님) 죽으신 것 말고는 자신이 하나님과 화목 하는 길은 전혀 불가능했다는 것을 온전히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십자가에서 자기 옛사람은 완전히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지금껏 나는 무엇이든 내 힘으로 할 수 있고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인간 중심의 사고체계와 모든 가치관을 완전히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철저하게 확신하고 그렇게 살아 가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이 말씀하시는 대로 전존재 전삶 전인생을 걸어야 합니다. 오직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만 나오며 자기 스스로 뜻하고 게획하고 실현하는 것에는 하나도 유익하고 거룩한 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엄격하게 말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하고 그 분의 계명대로 따른다고 구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죄인 되었을 때 그것도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은 자기를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기고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죽이시기까지 한 그 자비와 긍휼 앞에 완전히 벌거벗고 나와 항복하는 것입니다. 전인격적으로 자신의 속이 그분의 보혈로 깨끗이 씻기어 완전히 뒤집히는 역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나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3-15)고 고백했습니다. 분명히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말이라고 했습니다. 이 고백이 모든 구원 받은 자의 입술에서 저절로 동일한 강도와 열심과 진정으로 나와야 합니다. 사도라 우리보다 믿음이 더 좋아 할 수 있고 일반 신자는 안 해도 되는 고백이 아닙니다.  


그래서 모든 신자는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롬6;3,4)된 자들입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새사람으로 거듭나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와는 전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꼭 선행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이제 하나님만을 주인으로 삼아 그 분의 뜻에 생명을 걸고 자신의 뜻과 계획으로는 살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 어떤 이유입니까? 물론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불러내었고 하나님이 세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 쪽에서 보면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인생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살았습니다. 이삭을 바치는 자리에 이르기까지 그 믿음이 온전함을 보였습니다. 그가 한 어떤 선행이나 인간적 의로 하나님께 구원 받은 것 하나 없습니다. 세상에선 오히려 실패가 많았고 죄도 많이 지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을 하나님 다우심 그대로 믿고 따르고 반응했습니다.


로마서에서도 아브라함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아니할찌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롬4:1-5)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믿음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어야 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믿고 기독교라는 종교를 택하고 예수를 믿기로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가 자신이 경건치 아니함에도 오직 하나님이 당신의 영원한 긍휼로 의롭다고 해 주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가장 먼저 자신은 죄인이라고 인정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께 나아가는 자는 그분이 모든 인생을 인도해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특별히 이 땅에선 형통치 않더라도 이 땅의 장막이 아닌 돌아 가야 할 본향이 있음을 믿었기에 자기 생명마저 내어 맡기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예수를 믿는 믿음의 본질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숱한 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의 큰 일을 한 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이미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에 자신의 전존재를 걸 수 있었기에 그런 큰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그 순종함을 보시고 당신의 능력으로 그 일을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신념을 가지고 큰 일을 했더니 하나님이 그 담대함을 보시고 구원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먼저이며 하나님의 일을 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더 정확하게는 엘리야 때의 칠천 명도 하나님이 남겨 두신 자들이었듯이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믿음을 심어 준 것입니다.


따라서 구약 성도도 오직 예수를 믿은 자만이 구원 받았습니다. 역사적 실존 인물 예수가 아니라 십자가에 드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원리를 인정한 자들입니다. 즉 자신의 의로는 절대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없으며 하나님이 전적으로 자비를 베풀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다는 것을 믿은 자입니다.


이방인의 경우 그 확률은 아주 낮지만 완전히 자신이 죄인임을 철저하게 자복하고 믿음으로만 하나님과 동행한 자들은 구원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예수가 전파되기 전에 누가 구원 받았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오직 당사자 본인과 하나님 만이 아십니다.


사실은 예수님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교회 나가 로마서의 복음의 원리를 배워 수긍하고 믿기로 했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서 자기의 전존재와 삶과 인생을 예수님께 내어 맡긴 자만 구원 받습니다. 누가 구원 받았는지 목사도 모를 수 있습니다. 당사자도 어쩌면 자신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만은 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구원 주시기로 작정한 자는 다 믿게 되며 구원 받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겠습니다. 구약 백성의 구원의 원리도 신약 시대의 구원의 원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 드러난 바로 그 원리입니다. 그러나 구약시대에는 그 구속의 원리가 점진적으로 조금씩 계시 되다가 때가 차매 십자가에서 완전히 실현되었습니다. 신약 시대에 살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나도 큰 축복입니다. 구약시대에 누가 어떻게 구원 받았을까에 관심 갖기 보다는 지금 과연 내가 주님 안에서 이 십자가 은혜를 제대로 누리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 보셔야 합니다. 나아가 이제는 구원의 진리가 십자가 상에서 분명하게 눈에 보이도록 계시되었는데도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을 더욱 불쌍히 여기셔야 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 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그분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어느 시대의 누구라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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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받나요?

로마서 3: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공동번역)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과거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를 참고 눈감아주심으로 당신의 정의를 나타내셨고.

십자가가 구원의 분수령이 된다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럼 십자가 이전의 사람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나요? 여러분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고 또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7:30,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

그럼에도 십자가 이전에든 이후이든 죄인의 구원은 십자가에 그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아담을 위한 죄를 대신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모든 자손들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十字架)

기원이 시작되기 전 오래 전부터 여러 형태의 십자가가 그 특징을 이루고 있는 각가지 상징물들이 고대 세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인도, 시리아, 페르시아, 이집트에서 수없이 많이 발견되었으며 ··· 그리스도교 시대 이전에 비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종교적 상징물로 사용한 예는 거의 전세계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것은 얼마의 자연 숭배와 관련되어 있었다.”—「브리태니커 백과사전」(1946년판), 6권, 753면.

그러므로 예수가 오기 전 부터 십자가 숭배는 성행하고 있었다.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은 십자가로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숭배하는 사람들이다.

요한복음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이전에 죽은 사람들도 대속의 원칙이 적용됩니다. 인간과 하나님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담이 범죄 한 이후에 최초의 예언을 보면 아담의 죄를 없앨 일을 예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에 말씀하셨을 때 그것은 성취되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대속은 예수 이전 사람들에게도 소급 적용됩니다,

창세기 3:15, 그리고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너의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적의를 둘 것이다. 그는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고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예수님은 영의 세계에서 복음을 전하시고 계십니다.

베드로전서 3:18∼19,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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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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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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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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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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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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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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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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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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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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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  Ⅵ(요한계시록 20:12)

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이 말씀에서 관심을 갖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의 대답을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는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는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는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질문에 답을 살펴보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에 대한 정의를 소개합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생물학적인 죽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영적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돈 때문에 성도들이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습니까?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분명한 믿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복음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죽은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책들”은 “심판을 위한 책” 이라고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묵시문학에서 “불”이란 심판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그 보좌는 불꽃,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이렇게 예언된 다니엘서의 말씀은 철저하게 심판을 위한 책들을 펴서 불로 심판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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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1:27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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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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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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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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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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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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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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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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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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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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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Ⅶ (요한계시록 20:15)

                                            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 던져질까요?
또한 불못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생명책이란 어린 양의 생명책을 말합니다(계 13:8, 21:27).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어린 양을 믿은 사람의 이름만 기록됩니다. 어린 양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계시록 1:5b,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어린 양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요한계시록 14:5∼6,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4:8b,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생명책이란 심판을 위한 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심판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생명책을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어린 양을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 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5,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 

5:9, 새 노래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5:12,

7:10,

7:14,

 

요한계시록 5:9,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번역비교] [유사말씀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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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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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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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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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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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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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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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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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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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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Ⅷ 

생명책(生命冊)Ⅶ (요한계시록 20:15)


21:27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번역비교] [유사말씀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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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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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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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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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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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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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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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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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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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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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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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Ⅶ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왜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은 불못에 던져질까요?
또한 불못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요한계시록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 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생명책이란 어린 양의 생명책을 말합니다(계 13:8, 21:27).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는 어린 양을 믿은 사람의 이름만 기록됩니다. 어린 양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요한계시록 1:5b,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어린 양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해방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즉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하신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요한계시록 14: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요한계시록 14:5∼6,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요한계시록 4:8b,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생명책이란 심판을 위한 책입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은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심판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생명책을 어린 양의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어린 양의 생명책”이란 “어린 양을 믿는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 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요한계시록 5:5,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5:6,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것 같더 

5:9, 새 노래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5:12,

7:10,

7:14,

 

요한계시록 5:9,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번역비교] [유사말씀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 생명책(生命冊) the book of life

지난 9월 29일 주일 예배 때 생명책에 누구의 이름이 기록될 수 있는 세 종류의 사람을 소개했습니다.

첫째는 의로운 사람(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로운 사람이란 누구일까요?
세상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의롭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의로운 사람이란 구원의 하나님으로부터 의를 얻은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시편 24:3∼5,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기 때문에 얻게 된 의를 힘입어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동역자(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복음이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말합니다. 복음의 동역자란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복음을 전하다가 함께 감옥에 갇힌 것을 말합니다.

셋째는 영적 싸움에 이긴 사람(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자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구원은 하나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는 세상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세상 방법을 따라 살아갈 때 살아있으나 실상은 죽은 신앙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가르치고 깨우쳐야 할 교회가 교양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배움의 터전으로 타락했을 때 그것이 죽은 신앙입니다.

제가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자료를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지난 주간에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법질서를 파괴한 사람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했기 때문에 이런 일은 교회가 앞장서서 막아야 하겠기에 성도들을 깨우치려고 공산주의에 대하여 소개했는데 어떤 교인은 이런 정치적인 것은 보내지 말라고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일부분입니다. 그러나 일부분이라도 이런 생각을 갖는다는 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동안 교인들을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절대로 공산주의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무너트리려고 “조선인민민주의”라고 마치 민주주의 정치를 하는 것처럼 위장전술을 사용합니다.  

오늘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네 번째 이름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신앙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을 “유대 묵시문학” 이라고 합니다. 구약에서 유대 묵시문학의 장르에 속한 대표적인 성경은 “다니엘서” 라고 하겠습니다.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니엘 7장의 예언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예언을 비교하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1∼2,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한 짐승)
3. 짐승의 모습? (짐승은 뿔이 10개, 머리가 7개, 뿔에는 10개의 면류관,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 ↦ 2절에서 짐승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합니다. 표범 비슷하고,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고, 용이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주었다.

다니엘 7: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1. 짐승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바다)
2. 짐승은 몇인가? (짐승 넷)
3. 짐승의 모습?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다) ↦ 모양이 각각 다른 네 짐승의 모습을 다니엘 7:4∼8의 말씀에서 찾아보겠습니다.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7.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4절,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볼 사이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입었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으며 

첫째 짐승은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 날개가 있다. 날개가 뽑혔고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섰으며 사람의 마음을 가졌다.

5절,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의 이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에게 말하는 자가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으며

둘째 짐승은 곰과 같은데 몸 한편을 들었고 그 입에 세 갈빗대가 물렸고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다.

6절,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셋째 짐승은 표범과 같은데 등에 새의 날개가 넷, 머리가 넷, 권세를 받았다.

7절, 내가 밤 이상 가운데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며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으므로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극히 강하고 또 큰 철 이가 있어서 먹고 부숴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다.

8절.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먼저 뿔 중에 셋이 그 앞에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느니라.   
   
작은 뿔이 뿔 사이에서 나오다 먼저 뿔 중에서 세 개의 뿔이 뿌리까지 뽑혔다. 그렇다면 나머지 뿔은 7개,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이 있고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다.


그렇다면 짐승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다니엘 7:17,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 세상에 일어날 것이로되.  

네 짐승은 네 왕(王)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예언한 네 왕은 4개 제국을 상징합니다.
역사적으로 성경에 계시되었던 4개의 제국은 바벨론, 바사(페르샤), 헬라, 로마라는 제국이었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네 번째 로마 제국은 무려 1천년 동안 강성한 힘을 자랑했던 제국이었습니다.

다니엘 7:19∼25,
19. 이에 내가 넷째 짐승의 진상을 알고자 하였으니 곧 그것은 모든 짐승과 달라서 심히 무섭고 그 이는 철이요 그 발톱은 놋이며 먹고 부숴뜨리고 나머지는 발로 밟았으며 

20. 또 그것의 머리에는 열 뿔이 있고 그 외에 또 다른 뿔이 나오매 세 뿔이 그 앞에 빠졌으며 그 뿔에는 눈도 있고 큰 말하는 입도 있고 그 모양이 동류보다 강하여 보인 것이라
21. 내가 본즉 이 뿔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2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23. 모신 자가 이처럼 이르되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 이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며 
24. 그 열 뿔은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왕이요 그 후에 또 하나가 일어나리니 그는 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고 또 세 왕을 복종시킬 것이며 
25.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23절에 넷째 짐승은 넷째 나라라고 합니다. 이 나라는 모든 나라보다 달라서 천하를 삼키고 밟아 부숴뜨릴 것이라고 합니다. 열 뿔은 열 왕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 짐승은 로마제국이었습니다.
오늘날 짐승은 무엇을 상징할까요?
요한계시록 13:14∼15,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오늘날 짐승은 “우상 숭배(偶像 崇拜)”를 말합니다.
로마 제국이 지배할 때에 로마 황제는 하나님으로 부르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각오한 기독교인들은 로마 황제를 결코 하나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권력이 힘이기 때문에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상은 두려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현대인을 속박하는 4가지 M이 있다.


첫째 M은 머쉰(machine, 기계)

기계가 삶을 편리하게 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친 기계화는 인간성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 개의 기계가 있다면 휴대전화와 컴퓨터라고 하겠다.

둘째 M은 매스(mass, 대량)

크기와 숫자의 신에 농락당하면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모두 큰 손해를 입는다.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다수에 휩쓸린 자신의 의미가 지극히 왜소해졌음을 깨닫지만 그렇게 깨달을 때는 대개 늦는다.

셋째 M은 마잇(might, 힘)

사람들은 힘을 숭상한다.

힘으로 세운 것은 결국 힘으로 무너진다.


넷째 M은 머니(money, 돈)이다.

인간의 거의 모든 문제가 돈과 관련이 있다.

사람의 평가 기준과 성공 기준이 다 돈이다.

강력한 돈에 속박되면 돈이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도리와 윤리와 의리를 팽개치지만 돈으로 못하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돈이 자유를 준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욕망과 쾌락의 자유를 주면서 참된 자유를 빼앗는다.

돈은 영혼을 노예로 만드는 강한 마력이 있다.

 


요한계시록 13장과 다니엘 7장의 짐승을 비교해 봅니다.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첫째

②. 표범

④. 사자

둘째

②. 곰

⑤. 곰

셋째

②. 사자

⑥. 표범

넷째

 

⑦. 무섭고 놀라우며 극히 강하며 큰 철이 열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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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양과 짐승 모두 동물을 상징합니다.
어린 양은 매우 약하고 힘이 없는 동물이라면 짐승은 너무 무섭고 사나운 힘을 갖는 동물입니다. 그런데 어린 양과 사나운 짐승이 광에서 싸운다면 반드시 사나운 짐승이 이길 것입니다. 이것은 자연적인 이치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특히 요한계시록은 자연의 원리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 원리를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영적 원리는 약한 자를 세워서 강한 자를 이기게 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를 세워서 많이 배운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대표적인 그 예가 이스라엘 전쟁터에서 가장 약한 다윗과 블레셋 진영에서 가장 강한 장군 골리앗의 대결이었습니다. 다윗이 이긴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왜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겼습니까? 다윗이 이긴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 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힘으로 이겼습니다.

어린 양과 짐승의 영적 싸움에서 어린 양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짐승은 어떤 존재일까요?

요한계시록 13장에서 짐승이 나오는 곳을 “바다”와 “땅” 이라고 말씀합니다(1절, 11절).

바다(13:1)와 땅(13:11)은 당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던 로마 제국 특히 로마 황제를 상징합니다.

짐승은 어느 날 역사의 무대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구약 묵시문학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다니엘서에서 예언된 짐승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은 다니엘서 7장과 더불어 읽어야 합니다. 이미 다니엘 7장에서 짐승에 대한 예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목동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왔다.

양들이 모여 있는 초원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다.

양들이 엄청나게 불어있었다.

목동은 어찌 된 일인지 자세히 살펴보니 근처 있는 산양들이 내려와 양들 틈에 섞여 있었던 것이다.

순간 목동은 욕심이 생겼다.

산양들을 모두 끌고 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어떻게 이 산양들을 모두 차지할까 궁리를 했다.

때 마침 우기가 겹쳐 몇 일간 비가 내렸다.

목동은 비가 와서 나가지 못하는 양들에게 집에 쌓아둔 건초를 나누어주었다.

그런데 목동은 건초를 구별하여 나누어 주었다.

자신이 기르던 양들에게는 허기를 겨우 면할 정도로 적은 양을 주었고 산양들에게는 넉넉하게 주었다.

목동은 산양들의 환심을 사서 우리에 머무르게 할 작정이었다.

풍족하게 먹이를 먹은 산양들은 우리에서 잘 적응했다.

지루하게 내리던 비가 그치고 목동은 양들을 끌고 초원으로 나왔다.

초원에 도착하자 몇 일간 주린 양들은 고픈 배를 채웠지만 산양의 무리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본 목동은 화가 나서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그러자 달아나던 산양의 우두머리가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네 양들에게 하는 모양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2절, - 다니엘 7:6 표범
머리 표범
발 곰
입 사자
입 용

다니엘서 - 계시록에서는 각각의 짐승이 아니라 한 몸으로 등장
* 계시록에서는 한 덩어리로 표현 - 전체가 한 존재라는 것으로 이해
* 다니엘서 세 번째 짐승 머리가 4

사자

표범
뿔이 10 어떤 짐승

다니엘 7:1∼,

요한계시록 13: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짐승은 “바다”와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12:13∼16,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 - 1. 메시아를 낳은 마리아
                           2. 교회

구분

요한계시록 13장

다니엘 7장

 

 

머리

 

 

 

 

 

 

 

 

 

 

 



요한계시록 13장 : 다니엘 7장


여자가 독수리 날개의 보호 - (구약에서) 하나님의 보호

광야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 양육 - 광야에서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 지는 것

뱀이 물을 토하여 여자를 떠내려가게 하려 할 때 - 땅이 물을 삼키다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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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브루클린 연합감리교회 가족 수련회(2019-08-31)


생명책(生命冊)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Ⅰ. 생명책에 기록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첫째, 의인(義人) - 시편 69:28
저희를 생명책에서 도말하사 의인과 함께 기록되게 마소서.

의인은 누구일까요?
의인은 믿음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로마서 5:17).

로마서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성경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증거 합니다. 그러므로 시편에서도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은 “의인(義人)” 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복음을 위한 동역자 - 빌립보서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 한 자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부녀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 생명책(βίβλῳ ζωῆς) the book of life

복음이란 무엇일까요?
복음이란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빌립보서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바울의 동역자들 즉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을 의인이라고 합니다. 복음이란 주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의인들과 복음을 위한 동역자들에게 흰 옷을 입혀주실 뿐만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의인들 그리고 복음을 위한 동역하는 일에 승리한 사람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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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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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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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경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던 중 저녁 기도 후에 잠이 들었는데 “생명책에 기록된 네 이름을 보겠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네”라고 크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제 눈앞에 옛날 서책 같이 제본 되어진 책이 놓여 있었는데 책이 저절로 열리더니 책장이 빠르게 넘겨 중간 정도에서 멈추고, 주변에 내가 아는 사람의 이름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책 가운데 첫 번 줄 중앙에 ‘강성봉’이 세로로 쓰여 져 있는 부분이 돋보기로 본 듯이 크고 볼록하게 돌출 되어 보였습니다. 제 이름을 보는 순간의 감격은 십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성경이 다음과 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바울이 기록한 성경에서 생명책을 말하고 있습니다.

“(빌 4:3)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 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둘째는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서 생명책에 대해 들은 음성 속에서도 있습니다.

“(계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사도요한이 밧모 섬에서 환상으로 본 생명책입니다.

“(계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라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사도요한은 생명책에 기록된 자만 천국에 간다고 합니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하였습니다.

다섯째-말라기 선지자가 말한 기념생명책입니다.

“(말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라고 한 말씀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고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 이름을 존중히 여기는 자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로 산다는 것이 축복 중에 축복인줄로 믿습니다.

애독자 여러분!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우리들의 이름이 천국호적에 등록되어 집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책입니다. 이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이 생명책에 기록 된 자들만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얻게 됩니다. 여러분들도 예수 구주로 믿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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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生命冊)"을 다른 용어로 '생명의 두루마리' 또는 '기념책' 이라고도 합니다. 생명책에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선물을 받을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것입니다(계 3:5, 20:12, 말 3:16)

요한계시록 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하느님께서는 그분께 충실히 순종했는지에 근거하여 그 이름들을 결정하십니다.—요한 3:16; 요한 첫째 5:3.

하느님께서는 인류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충성스러운 종들 각자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해 오셨습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이름을 책에 기록해 놓는 것과 같았습니다. (계시 17:8) 생명책에 처음으로 이름이 기록된 사람은 충실한 사람 아벨이었던 것 같습니다. (히브리 11:4) 이 책은 이름만 열거된 무미건조한 목록에 불과하지 않습니다. 생명책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아시”는 사랑 많은 하느님임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디모데 둘째 2:19; 요한 첫째 4:8.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의 불순종한 백성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내가 그를 나의 책에서 지워 버릴 것이다.” (탈출 32:33) 하지만 우리가 충실을 유지한다면 우리의 이름은 “생명의 두루마리”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계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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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디를 향해 갈 것인지를 그린 로드 맵으로 시작합시다. 경치 좋은 정류장–개중에는 아름다운 곳도, 끔찍한 곳도 있는–을 보여드리고 이 여행을 고려하건대 종착지, 즉 여러분 인생의 목적으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영원-과거로 거슬러 가서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창세로부터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이고, 그런 다음 영원-미래로 가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인류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가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판결로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 속에서 실제로 죽임 당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그 뒤에 우리는 이 여행을 다시 떠나서 다녀간 곳들을 이전과 다른 순서로 방문할 텐데, 그때는 어린양이 아닌 어린양의 백성들에게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먼저 영원-과거에 들러서 하나님께서 어린양의 백성으로 지명하신 또는 예정하신 사람들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지명하신 사람들을 죽임 당한 어린양의 피 값으로 사신 역사의 중심부로 갈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우주의 왕으로 찬양하는 것을 보게 될 영원-미래를 향해서 갈 것입니다.

끝으로 아틀란타와 휴스턴의 이 강연장으로 돌아와서 여러분 인생의 세 가지 목적을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목적은 하나님의 영원한 생각 가운데, 역사의 중심 가운데, 우주의 노래 가운데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에서 수반되는 것들로–여러분을 창세 때부터 지명하셨고, 2천년 전에 값 주고 사셨으며, 이것을 영원히 노래하도록 예정하셨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영적인 손을 여러분 생각의 운전대에 놓은 채로 저와 함께 가기를 바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방향전환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멋진 여행이고 가장 행복한 결말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그린 로드 맵입니다. 이제 여행을 떠납시다.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

성경에서 가장 기이한 책인 요한계시록을 봅시다. 우리는 아주 괴이하고 대다수가 예상 못한, 험악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오늘날 시리아나 이라크에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요즈음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일을 이야기해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을 것입니다.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죽거나 집에서 내쫓김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장차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가 어떻게 될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하지만 시대가 괴이하고 험악할수록 이 책–온통 기이함으로 가득한 성경의 마지막 책–이 그만큼 적절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한계시록 13장. 여러분은 13장 본문에 나오는 짐승이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 짐승이 언제 있을 것인지 몰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짐승이나 짐승 비슷한 이들을 경배할 것인가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여러분의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자신이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가를 몰라서는 안됩니다.

먼저 계시록 13장의 아주 기이한 열 구절을 읽어봅시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 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계시록 12:9 –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요한계시록 14:12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 참된 그리스도인, 복음을 믿는 사람들)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요한계시록 13:1–10)

영원-과거로부터의 중심계획

8절에서 우리는 흘끗 영원-과거를 봅니다. 여러분은 “창세 이후로”로 시작되는 구절에서 그것을 보게 됩니다.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창세 이후로, 다시 말해서 영원-과거에 책이 있었고 그 책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름은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입니다.

이것은 이 책을 쓴 저자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생각에서–하나님의 어린양이 이미 죽임을 당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은 우주가 존재하기도 전–인간이 존재하기 전, 역사가 존재하기 전, 죄가 존재하기 전–부터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할 계획은 구원받을 죄인들이 존재하기 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역사를, 불신자들이 보는 방식으로 뉴스를 보지 마십시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있는 그대로의 실제를 보지 못합니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말이지요. 사단이 아담과 하와와 더불어 죄를 세상에 들여올 때, 그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켰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바보입니다. 세상이 존재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며, 그 어린양은 자신의 발로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한 역사의 중심이십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계획을 좌절시키기는커녕 그 계획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영원-미래에서 흘러나온 중심 노래

돌아와서 요한계시록 13:8를 볼 터이지만 지금은 영원-미래로 떠나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의 죽임 당하신 어린양을 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 5:9–10 – 이 구절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의 위대한 사역이 완성될 때 부를 천상의 노래입니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또 12절에서 수많은 피조물이 외치기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또 요한계시록 7:10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은 영원히 우주의 중심노래인 것입니다.

영원-과거에서 계획은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이는 영원-미래에서 죽임 당하였으나 승리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이 우주의 중심노래로 불려지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어린양은 하나님의 생각에서 과거에 영원히 죽임을 당했고 미래에 구속을 받은 이들의 입으로 영원히 노래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중심행위

이제 역사의 중심부–그저 역사의 한 시점이 아닌 역사의 의미심장한 중심부–로 되돌아갑시다. 우리는 예루살렘 밖에서 실제로 죽임을 당한 하나님의 어린양을 볼 것입니다.

계시록 외에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중요한 책–요한복음–에서,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35–3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 10:18에서 하나님의 계획을 완수하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결의를 드러냅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그런 뒤에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생의 가장 끔찍한 순간에서까지 성경대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완수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한복음 19:28–30):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께서 숨을 거두셨습니다! 예정대로 하나님의 어린양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영원-과거로부터 우주에 대한 중심 계획과 영원-미래를 향한 우주의 중심 노래와 2천년 전 예루살렘 밖에서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central act, 하나님께서 가장 중대하게 하신 일은 바로 하나님의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입니다.

머리만 영리할 뿐, 우주의 중심 목적에 대해 실로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겁먹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이 세 가지–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하나님의 영원한 노래 그리고 모든 것의 본질을 밝히는 역사상 하나님의 중심행위–를 이해하고 알고 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이야기 속에 우리자신을 두기

그러나 세 정류장 각각에서 볼 것이 더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가 그 정류장들을 다시 방문할 때, 여러분이 등장합니다. 이들 장면에서 여러분이 있는지 찾아보십시오. 참으로 이제라도 자신을 그 정류장들 – 영원-과거에서 지명된 사람들, 역사의 중심에서 값을 치르고 사신 사람들 그리고 영원-미래에서 어린양을 찬양하는 사람들 속 – 에서 발견하게 되기를 기도하십시오.

영원부터 지명됨

영원-과거, 다시 말해서 요한계시록 13장으로 돌아갑시다. 7절에서 시작해서 역사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거쳐 영원-과거로 이동하겠습니다: “또 (짐승이)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에서 “이기다”가 무슨 뜻일까요? 요한계시록 11:7은 그 의미를 분명하게 해줍니다: “그들이 그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그들을 죽일 터인즉.” 그 의미는 ‘그들을 죽이다’입니다. 이 환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죽음은 전세계적에서 일어나는 일인–“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 7절).

이런 일은 사도 요한의 시대에 이미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계시록 2:10에서 예수님은 서머나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그러므로 사단, 본문의 용은 그의 대리자들을 시켜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런 일은 사도 요한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시리아와 이라크와 리비아와 다른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6–“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누가복음 23: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그래서 여기서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내 일생 동안 순복해야 할 하나님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힘센 경쟁자를 경배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어린양을 경배할 것인가? 나는 초자연적인 속임의 능력으로 지금 내 캠퍼스를 내리덮고 있는 우상숭배의 세력으로부터 어떤 능력을 힘입어 구원받을 것인지 알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 수 있는 답을 드립니다. 본문 7절에서 8절을 보면,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생명책에 이름이 없는 사람은 다 짐승–우리 시대에 여러분의 충성과 사랑을 차지하려고 다투는 사단에게 속한 자들–에게 경배하리라. 그런데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그 이유는 그 책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 것입니다. 어린양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은, 참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경배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힘으로 여러분을 지키실 것이라는 보장을 받습니다.

이 모두가 영원-과거에 뿌리박고 있습니다. 그 이름들은 창세 때부터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3:8). 요한계시록 17:8에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땅에 사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지금은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놀랍게 여기리라.”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습니까? 이것은 슬쩍 들여다보는 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슬쩍 들여다보는 것 따위는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0:12이 말씀하듯이 이 생명책은 최후 심판 때가 되어서 비로소 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는지 여부를,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자들을 경배하지 않도록 여러분을 지키실 것임을 알 수 있을까요? 네,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생명책에 있는 사람들이 7절에 나온 성도들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고 요한계시록 14:12이 성도를 어떻게 정의하는지를 잊지 마십시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지금 이 강연장에서–아틀란타와 휴스턴, 두 지역 모두에서–여러분 중 그 이름이 창세전부터 생명책에 기록된 이들과 하나님의 어린양을 생명 보다 더 귀한 분으로 여기고 그렇게 믿는 이들, 죽음을 맞기 전 어느 때 그 어린양을 받아들일 이들 간에 아주 밀접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 책에 이름이 있는 것과 신자가 되는 것, 이 둘은 똑같은 말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어린양을 믿을 때, 여러분은 이를 위해 창세전부터 사랑을 입고 지명된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값을 치르고 사심

이제 우리는 한 번 더 역사의 중심부–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사건이 벌어진 곳–로 갑니다. 영원-과거에서 어린양의 백성들이 지명되었습니다. 그 어린양이 실제로 죽임 당한 역사의 중심부에서 어린양의 지명된 사람들은 값을 치르고 사신 바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5:25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그리스도는 교회–자신의 신부–를 위하여 어떻게 자신을 주셨습니까?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그것을 구체적으로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사도행전 20:28).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방식입니다: 그리스도는 죽임을 당하셨고, 자기 피로 신부를 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6:20에서 말씀합니다. “너희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오 치르신 값이 얼마나 큰지요! 죽임 당하신 어린양.

역사의 중심부에서 하나님의 어린양은 교회, 곧 어린양을 믿는 사람들인 동시에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의 생명책에 쓰인 사람들을 값을 치르고 사셨습니다.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함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영원-미래로 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명하셨고 값 주고 사신 사람들이 어린양을 영원히 찬송하는 것을 봅니다. 그들이 어린양을 찬양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분이 죽임을 당하셨고 죽임 당하심으로써 값을 치르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로부터 그 책에 있는 사람들을 사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5:9).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

그러므로 우리가 떠나온 여행 첫 대목에서 우리는 창세전부터 하나님의 생각 가운데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영원-미래에서 우주의 중심노래로서 죽임 당한 어린양을 보았고, 역사의 중심부에서 실제로 예루살렘 밖에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여행을 다시 떠나서 우리는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영원부터 지명하신 사람들을 보았는데, 이들은 역사에서 실제로 어린양의 죽임 당하심으로 말미암아 얻은 사람들이며 영원-미래에서 죽임을 당하고 승리하신 어린양을 영원히 기뻐하며 찬송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 아틀란타와 휴스턴 여기서 우리의 여행을 마치겠습니다. 이 여행은 여러분 인생에 예상되는 세 가지 결과로 끝이 납니다. 그것은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기록되는 데서 비롯된 세 가지 결과입니다.

1)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게 되는 것은 여러분으로 어린양의 영광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본다는 것은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인생에서 경건한 모든 것의 원천–그 어린양을 지극히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는 것–다른 무엇보다 훌륭하며 다른 무엇보다 만족을 주시는 모든 것의 원천입니다. 마귀도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4에서, 사단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라고 사도 바울이 말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어린양의 영광을 보는 것이야말로 여러분 인생의 첫째가는, 인생 전체를 결말짓는 목적인 것입니다–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말이지요.

부활하신 어린양이 우리에게–우리 모두에게–요한계시록 1:18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리고 요한계시록 5:5에서 장로 중 한 사람이 사도 요한에게 다시 말씀합니다.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가 이겼으니.” 요한계시록 22:7에서 다시 어린양이 말씀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것이 우리의 위대한 부르심–그 어린양이 어떤 분인지를 보라는–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요한계시록 첫 장에서 그가 부활하신 어린양을 뵈었을 때 본 것을 말씀합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3–16)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위대하고 첫째가는 부르심은, 그 어린양의 영광(요한복음 1:14; 17:24을 보십시오)–세상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귀중하며, 강렬하게 끌리는–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계시를 주시하는 그것입니다.

2) 그리고 둘째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으므로, 여러분이 예수님이 생명보다 나음을 드러내도록 겸손히 행복을 누리며 살다 죽을 것임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그 책에 있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하루하루를 그저 이어가는 생이 아니라 사랑으로 살아가는 생인 것입니다. 계시록의 짐승은 수천명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의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있습니다. 짐승은 1세기에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세와 다투는 짐승과 비슷한 자들은 오늘날에도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어린양의 영광을 생명보다 귀한 것으로 보는 이 성도들에 대해 하늘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할까요?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요한계시록 12:11). 그렇습니다. 그들은 죽기까지 예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죽임을 당하였으나 이긴 것입니다!

생명이 다하기까지, 겸손히 기꺼이 죽음으로써 그들은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이심을 드러내었습니다.

어린양은 그러한 죽음을 맞이할 이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요한계시록 2:10)?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 말 듣고 있느냐?” “내가 네게 생명의 관을 주리라. 그렇게 하겠다, 수만명의 사자들을 보내어 수만명의 순교자들에게 관을 씌우도록 하지 않겠다! 내가 친히 네게 올 것이다. 내가 너를 내 집으로 데리고 가서, 내가 친히 네게 관을 씌울 것이다. 네가 나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겨 나를 믿고 의지했으니.”

여러분의 이름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부르심은 그분을 만물보다 아름다우신 분으로 보고 겸손히 행복하게 살고 죽음으로써 그 어린양이 생명보다 귀한 분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3) 끝으로 이름이 생명책에 있는 데서 오는 한 가지 위대한 특권–어린양의 영광에 참여함

여러분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7). 승리를 거둔 어린양이 도무지 상상하지도 못할 일을 여러분에게 말씀합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요한계시록 3:21). 하나님의 보좌에 있는 하나님의 어린양과 함께 앉는다는 의미는, 궁극에 가서 그 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들어있다는 뜻입니다.

사도 요한이 보기를,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계시록 1:16)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보좌에 있는 어린양과 함께 앉은 우리, 우리 얼굴은 어떻겠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답하십니다: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마태복음 13:43). 그 어린양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3:21). 그리하여 여러분은 온갖 죄짓는 데서, 온갖 슬픔에서, 그리고 온갖 질병과 수치에서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어린양 앞에서 여러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두렵다면,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있는지 몰라 걱정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이것은 성경 맨 마지막에 있는 이 기이한 책의 마지막 장에서 가져온 것–성경과 이 설교에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22:17). 그 어린양께서 값을 치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그 어린양을 여러분의 가장 귀한 보배Treasure로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생명책에 여러분의 이름이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분의 권세와 더불어 다투는 다른 경쟁자들을 경배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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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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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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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1-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시편 139:16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Your eyes saw my unformed body. All the days ordained for me were written in your book before one of them came to be.

시편 139:23∼24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Search me, O God, and know my heart; test me and know my anxious thoughts. See if there is any offensive way in me, and lead me in the way everlas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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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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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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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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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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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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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생명책(生命冊) Ⅳ(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위해서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 질문에 대한 여러분들의 대답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말씀의 맥을 이어가려면 어떤 내용으로 소개되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무너질 것들에 대한 환상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17장은 바벨론의 몰락
18장은 짐승의 몰락
19장은 거짓 선지자의 몰락
20장은 용의 몰락

20장의 구조
1∼3절, 용의 결박
4∼6절, 천년 동안 왕 노릇
7∼10절,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11∼15절, 최후의 심판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신앙적인 특히 성경적인 이해와 믿음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죽은 자들에 대한 해석을 크게 두 가지로 소개됩니다. 첫째는 ‘생물학적(生物學的)인 죽음’이라고 해석합니다. 둘째는 ‘영적(靈的)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합니다. 두 가지 해석이 사용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아야 합니까?

성경적인 믿음 특히 예수님께서 심판에 대하여 가르친 말씀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적인 심판관이라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예수 밖에 있던 사람들로서 영적인 죽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영적으로 죽은 자들만이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이 세상에서 매일같이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과 많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성대한 연회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반면에 거지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을 먹었고 심지어 그의 육체는 헌데를 앓고 있었는데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아주는 것으로 만족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부자와 같은 삶이 좋습니까? 아니면 거지 나사로와 같은 삶이 좋습니까? 당연히 부자와 같은 삶이 좋습니다. 그런데 심판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이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이후의 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부자와 거지가 모두 죽었습니다. 세상에서 부자의 삶을 즐기던 인생들을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죽어서 어디로 갔습니까? “음부(陰府)”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겼습니다. 음부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거지 나사로에게 “네 손가락으로 물 한 방울만 떨어트려 달라”고 애원합니다. 그런데 음부와 아브라함의 품 사이는 무엇을 주고받을 수 없었기에 부자는 마지막으로 거지 나사로에게 “아직 세상에는 내 형제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에게 가서 제발 죽은 후에 나처럼 이런 세상에 오지 않도록 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때 성경은 “선지자들에게 들어야 한다.”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선지가가 누구입니까? 선지자는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말합니다.

또 한 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떻게 죽은 자가 죽은 자들을 장사할 수 있을까요? 죽은 자란 생물학적인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것을 말합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다고 합니다. “책들”이란 “심판을 위한 책”입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로서 구원을 받지 못한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빌립보서 4:6∼8,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구원받은 성도들은 심판이 아니라 상을 기다리며 믿음의 경주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1: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임하여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무론대소하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우리들은 심판을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상을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성경적인 신앙생활의 원리를 소개합니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2∼24,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믿음의 기초는 반석과 모래 두 종류뿐입니다. 상을 받을 수 있는 믿음의 기초는 반석입니다. 반석과 모래를 어떻게 구분합니까?

비와 바람이 몰아 칠 때에 반석위에 세운 신앙의 집은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모래위에 세워진 신앙의 집은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때문에 건강해야 하고,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려야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철저하게 섬김과 희생의 삶이었습니다.

거지 나사로의 삶은 이 세상사람 어느 누구도 원하지 않는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거지 나사로는 비록 세상에서는 거지로 살았지만 죽은 후에는 부자가 영원토록 부러워하는 아브라함의 품에서 세상에서 어느 누구도 누려볼 수 없었던 최고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와 같은 삶을 위하여 예수님처럼 살아볼 수 있는 믿음의 축복을 즐기는 은혜의 한 주간이 되시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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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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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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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 믿음이 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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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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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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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책

요한계시록 10:2,

요한계시록 10:9∼10,

요한계시록 13:16,












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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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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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은 우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특정 장소나 국가에 법적으로 우리의 존재를 기록한 두꺼운 공문서이다. 주민등록번호, 여권 번호 또는 공적인 모든 거래에 필요한 VAT 번호와 같은 번호는 관련 공문서에 기록으로 남는다. 마지막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 우리의 존재유무에 관계없이 우리 이름은 그 기록에 남아있게 된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이 있다. 하나님 말씀에서 이 책은 생명책으로 부른다.


책이 펼쳐지는 날까지 기다렸다가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사도 바울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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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9-10-27

생명책(生命冊) Ⅳ(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씀의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요한계시록 17장부터 20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무너질 것들에 대한 환상 계시라고 하겠습니다.
17장 : 바벨론의 몰락
18장 : 짐승의 몰락
19장 : 거짓 선지자의 몰락
20장 : 용의 몰락

20장의 구조
1∼3, 용의 결박
4∼6, 천년 동안 왕 노릇
7∼10, 천년이 찰 때 일어날 일
11∼15, 최후의 심판


오늘 본문으로 선택한 말씀에서 관심을 갖고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므로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합니다. 이 질문에 여러분들의 대답을 생각하고 정리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는 “죽은 자들”은 누구인가?
둘째는 “책들”이란 무엇인가?
셋째는 “다른 책”은 무엇인가?
넷째는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질문에 대한 대답을 확인하기 전에 “성도들이 심판의 날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까요? 아니면 받지 않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중간은 없습니다.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심판에 대한 신앙적인 특히 성경적인 이해와 믿음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각 질문에 대한 대답을 살펴보겠습니다.

“죽은 자들”이란 누구인가?

‘생물학적(生物學的)인 죽음’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고 ‘영적(靈的)인 죽음’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돈 때문에 성도들이 심판에 대한 이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성도들의 이름은 어디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이름은 어린 양 생명책에 기록되었습니다. 따라서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합니까? 아니면 심판을 받지 않습니까?

분명한 믿음은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 심판 때에도 불 못에 던져지는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9:4,
저희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 맞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7:3,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요한복음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니. 

죽은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따라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공의로운 하나님이 되실 것입니다. 비록 세상에서 거짓으로 세상의 복을 즐기며 살았을지라도 마지막에는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책들”이란 무엇인가?

책들의 의미를 성경적으로 이해하려면 다니엘 7장을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7:10,
불이 강처럼 흘러 그 앞에서 나오며 그에게 수종하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 시위한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

구약에서 묵시문학의 대표적인 다니엘서에서 “책들”은 “심판을 위한 책” 이라고 분명하게 예언했습니다.

묵시문학에서 “불”이란 심판을 상징합니다.
다니엘서 7장 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보았는데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이가 좌정하셨는데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그 보좌는 불꽃, 그 바퀴는 붙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이렇게 예언된 다니엘서의 말씀은 철저하게 심판을 위한 책들을 펴서 불로 심판하실 것을 강조했습니다.

“다른 책”은 무엇인가?

다른 책은 “생명책”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성도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을 위한 책은 생명책이 아니라 “책들” 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심판을 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란 예수 밖의 사람들이라고 하겠습니다. 생물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영적으로 죽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어떻게 이 세상에서 믿음을 지켜야 할까요?

마태복음 7:16∼27,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21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는 말씀에서 “뜻”이란 “델레마”라는 헬라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절대불변의 뜻을 의미합니다. “불래”라는 뜻은 “상황에 따라 변경할 수 있는 뜻”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강조하는 “델레마”라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둘째는 거룩한 삶(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셋째는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심판(審判)은 의사 결정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 대해 증거에 대해 근거하여 평가하는 것을 말한다. 분야에 따라 세 가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일상적 또는 심리학적 용어의 심판
특정 개인의 판결 능력과 인식력의 자질에 대한 의미로 사용되며 지혜 또는 안목이라고도 한다.
법률적 심판
증거 진술 원칙을 바탕으로 한 법적인 재판으로서의 의미로 사용되며 판결이라고도 한다.
종교적 심판 은 모든 인간이 천국 또는 지옥 중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해 결정하는 신의 심판으로 사용되며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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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을 회유한 목동의 실수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어느 목동이 양떼를 푸른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게 한 후 잠깐 잠깐 볼 일을 보러 갔다 돌아왔습니다.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목동은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근처에서 풀을 뜯던 산양들이 양떼들과 어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간 목동은 산양들도 모두 자기 소유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목동은 산양을 포함한 모든 양떼들을 몰고 우리로 돌아왔습니다. 목동은 산양들을 어떻게 하면 완전히 내 소유로 만들 수 있을까 궁리하던 중 마침 며칠 동안 비가 내려 우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어 창고에 쌓아둔 건초를 양떼에게 나눠주면서 산양에게는 넉넉하게 건초를 나눠주고 자기 양들에게는 약간의 건초를 나눠주었습니다. 목동의 계획은 산양들에게 넉넉한 먹이를 주면 산양들이 목동을 잘 따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며칠 동안 산양들은 우리 안에서 배부르게 먹으며 잘 적응하는 듯했습니다. 비가 멈추었을 때 목동은 양들을 이끌고 초원으로 나왔습니다. 초원에 도착하자 며칠간 굶주렸던 양들은 열심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산양들은 산을 향하여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달아나는 산양들을 향하여 목동은 "이 배은망덕한 놈들아! 특별히 먹이도 많이 주었는데 날 배신하다니!" 소리쳤다고 합니다. 그러자 산양의 우두머리가 소리치는 목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네 양들에게 하는 것을 보니 나중에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겠어!"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목동이 산양을 자기 소유로 만들기 위해서 먹을 것을 넉넉하게 제공한 것은 사랑이 아니라 소유를 위한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진실하고 바르게 살아가려고 할 때 세상은 진실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 즉 사탄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한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신앙은 환경에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던 유대의 유능한 젊은이들은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들을 도와주실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만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만을 섬길 것이라고 당당하게 고백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주를 믿는 성도들이 로마 황제로부터 말할 수 없는 핍박과 고통을 받고 있지만 끝까지 인내하고 믿음을 지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위로와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갖게 될 것이라는 성도들을 위한 구원의 약속을 환상 계시로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내가 원하는 환경과 조건이 내게 닥쳐오지 않을지라도 무너지지 말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송 / 믿음이 이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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Ⅳ.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구원 받은 사람이 잘못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율법주의자들은 구원받은 자도 죄를 범하면 하늘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고 주장하면서 출애굽기 32:33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근거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구원받은 자도 범죄 하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다고 하는 성경의 근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출애굽기 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라는 말씀만 읽어보면 마치 책에서 지워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려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첫째는 말씀을 중심으로 전후 문맥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둘째는 말씀을 기준으로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는 방법입니다.

먼저 첫 번째 방법에 따라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을 중심으로 문맥 전후를 살펴야 합니다. 전후 문맥을 살펴보면 구속받은 자의 이름은 절대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는 말씀의 뜻을 알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지워버리는 경우가 두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아브라함 자손이 범죄 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약 교인이 범죄 하면 구원에서 끊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문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선민으로 선택 하셨습니다.

이사야 51:2, 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 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케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민으로 선택하사 그를 통해서 천하 만민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그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약속하셨으며 그 후손에게서 예수가 탄생하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손이 먼저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다가 큰 재물을 이끌고 거기서 나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15: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예언대로 애급에서 430년 동안 노예 생활 하다가 가나안으로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면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 끊어지는 이유
-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끊어지는 근거가 되는 말씀(출애굽기 32:32∼33)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어떤 죄를 범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질 것인가?  

1. 피를 먹을 때(레위기 17:10)

무릇 이스라엘 집 사람이나 그들 중에 우거하는 타국인 중에 어떤 피든지 먹는 자가 있으면 내가 그 피 먹는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2. 자식을 몰렉에게 바칠 때(레위기 20: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 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3. 동성연애 할 때(레위기 20:13)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일찌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4. 할례를 받지 않을 때(창세기 17: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구약에서 끊어버리신다는 것은 구원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회중에서 끊어버린다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신약에서 구원받은 자리에서 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한 그 말씀을 바로 알게 되면 그것은 구원과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씀을 하게 된 동기는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산에 올라갔을 때 빨리 내려오지 못하자 백성들이 아론을 통해 금송아지를 만들고 그것을 백성들이 음란하게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백성이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너희를 인도한 신이라 하고 있으니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모세는 “어찌하여 애급 사람으로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 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 백성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후 모세는 산에서 내려와 송아지를 불살라 가루를 만들어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그에게로 오는지라 모세가 이르되 너희는 칼로 그 형제들을 죽이라 하였더니 레위 자손이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그 후에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고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 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고 했습니다(출 32:30).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백성의 죄를 사하여 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자기의 이름들 책에서 지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죄를 범하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말씀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다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지고 구원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성경 해석이요 무지에서 나온 그릇된 판단이다.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겠다고 하는 그 책을 사람들은 “생명책”과 동일한 책으로 알고 있으나 성경에는 책의 종류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가지다.

1. 생명책  
2. 기념책 
3. 행위책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10) 

다니엘은 최후 심판 때 책들이 펴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책의 종류가  하나가아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계시록에는 심판할 때 책들이 펴있고 또 다른 책이 있으니 생명책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 심판을 받는다고 했으니 생명책이 있고 행위가 기록된 책들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기념책(말라기 3: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말라기 선지자는 서로 주고받는 말을 “여호와 앞이 있는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하였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슨 책일까? - 비망록 

표준새번역성경을 참조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주께서는 주를 경외한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똑똑히 들으셨다. 그 가운데서도 주를 경외하며 주의 이름을 존중하는 사람들을 당신 앞에 있는 비망록에 기록하셨다. 

본 성경에 기념책이라 한 것을 새번역성경에는 비망록이라고 했다. 

하나님 앞에는 생명책, 행위책, 기념책(비망록) 여러 종류의 책들이 있다. 그러면 기념책이란 무엇하는 책일까? 

그것은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들으셨다가. 그 말을 “비망록에 기록”한다는 것이다. 구원받은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을 하나님께서 무엇 하려고 비망록에 기록 할까? 그것은 상을 주려고 기록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생명책과는 전혀 다른 책이다. 생명책은 생명에 관한 책이요 기념 책(비망록)은 말 그대로 기념될만한 사건들을 기록해 두었다가 상을 주는 책이다 그러므로 상주기 위하여 기록한 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 하여도 구원과는 상관이 없다. 

그와 같이 출애굽기 32장 30절에 기록된 책도 역시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는 생명책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단순히 책이라고만 썼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버리리라.

만약 위의 책이 생명책이었다면 성경에 생명책이라고 기록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을 쓰지 않았다. 그러므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책은 생명책이 아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 책에서는 이름이 지워진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거나 멸망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 하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 그것은 육적 선민으로서의 단절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 끊어진 사람들 가운데는 모세를 공격하다 죽은 고라나, 아비람, 다단, 온, 아간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범죄 하면 내가 내 책에서 지우리라 한 사람들 중에는 첫째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다가 죽임을 당한 3천명이 해당됩니다. 그들은 모두 백성 중에서 끊어진 자들로 하나님의 책에서 지워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아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은 결코 그 책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성경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하면 불 못에 들어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만 기록 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예수를 영접하여 거듭나야만 한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하였는데 영접이란 그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즉 나의 죄가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100% 다 사했다는 것을 믿는 것이 곧 영접인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믿을 때 우리의 속에는 새로운 새 생명이 탄생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육적인 생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생명이 탄생 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우리의 이름이 하늘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구원이 보장 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게 된다(계 20:15). 그러므로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계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계시록 21장에는 하늘에 있는 열두 보석으로 꾸며진 금 도성 예루살렘이 있는데 그곳에는 속되고 가증한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고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갈 수 있다. 

 

 또한 생명책에 이름이 있는 자들은 짐승의 표도 받지 않는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13:8)

 

생명책에서 이름을 흐리지 않음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3:5)

구속받은 자가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도 있는가? 아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왜냐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구속함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기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우리의 힘이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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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4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죄를 이긴 자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를 이기는 것이 우리의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린 피의 공로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확실히 믿기만 한다면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진리를 확실하게 믿습니까? 

예수 예수 믿는 것은 받은 증거 많도다.
예수 예수 귀한 예수 믿음 더욱 주소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속죄 받은 증거와 구원 받은 증거가 확실 합니다.

요한일서 5:7, 증거 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 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일서 5:9,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이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 증거 하셨습니까? 그 증거란 곧 십자가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를 100% 용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 피로 속죄함을 받아 죄가 없습니다.

우리가 죄가 없다면 어떻게 생명책에서 우리의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질 수 있다고 하는 자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자요 믿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다. 그러나 속죄를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아들에 관하여 증거 하신 증거를 확실히 믿으라. 그리하면 당신에게도 영생이 주어진다. 

요한일서 5:11∼13,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쓴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당신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100% 믿는가? 그러면 당신도 구원을 받았고 영생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으며 그 이름은 어떤 것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출애굽기의 말씀과 신약의 말씀 
-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씀한 책은 다른 책입니다.
출애굽에서 말씀한 책이란

의 예수님의 피로 구속받은 자들의 생명책과 출애굽기에서 말하는 책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범죄 하면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신 것은 그때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선택 받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분배해 주기 위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라 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계수 중에 드는 자들은 모두가 다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을 수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선민의 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 하게 되자 하나님은 그들을 나의 책에서 지우겠다고 하였으며 말씀대로 범죄 한 백성들을 제거해 버리셨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출 2:35)  

하나님은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 백성들을 오래두지 않으시고 바로 치셨으며 그들은  선택한 이스라엘 선민이었으나 책에서 완전히 지우셨다. 즉 이스라엘의 족보 책에서 지우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꼭 생각해야 할 중요한 것은 생명책과 이스라엘의 명단이 기록된 책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책은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은 사람들의 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요 모세가 말한 일반 적인 책은 육적인 이스라엘의명단이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범죄 하여 죽는 것은 구원문제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나 그 백성 중에서는 끊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말한 책과 신약에서 말한 생명책은 전혀 다른 것이며 하나는 육적인 것이요 하나는 영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혼동하지 말라.

또한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 있다는 말은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100% 다 사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말이며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전체는 책임질 수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피는 아무런 조건이 없다. 다만 믿는 것뿐이다.  

예수님의 피를 약화 시키지 말라 속죄하는데 있어서 어떤 것으로라도 조건을 붙이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이 만드는 것이다. 

내가하나님의 은혜를 폐하지 아니하노니 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갈 2:21). 십자가의 피는 인류의 죄 값을 다 지불하다가도 남음이 있다. 그러므로 죄를 범하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예수를 안 믿는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꼭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반듯이 징계하신다. 그렇지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그로인해 지옥 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생을 얻은 자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망하도록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한 하나님의 손이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자들을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사람들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착각 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교인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만 그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끝까지 붙잡아 주십니다.

좀 더 쉬운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사형수가 저질렀던 죄악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사형수에 대하여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 사형수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그런데 사형수의 부모는 누가 무슨 말을 하든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그 아들을 찾아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아들의 죄악이 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없다면 하물며 영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를 끊어버릴 수 있을까요?

그러므로 먼저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죄악은 회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위로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구세로 믿고 영접하여 구원받은 성도라면 자기의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지지나 않을까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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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책이란 단어가 한글개역 성경에서 사용된 구절은 모두 8구절입니다. 구약에서 1구절 시편 69:28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 7구절 사용했는데 빌립보서 4:3, 요한계시록 3:5, 13:8, 17:8, 20:12, 20:15, 21:27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생명책(τῆς βίβλου τῆς ζωῆς)

흰 옷이란 - ἐν ἱματίοις λευκοῖς,(in garments white) 

* 옷(ἱμάτιον, 2440. himation) ; an outer garment, a cloak, robe, a long flowing outer garment, tunic. 

* 흰(λευκός, 3022. leukos) ;  bright, white, white, bright, brilliant.  

이기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Ⅱ.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사람들의 최후의 모습

요한계시록 13: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입니다. 짐승이란 우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상숭배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요한계시록 20: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Ⅲ. 생명책은 심판을 위한 행위 기록
요한계시록 20:12,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 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 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생명책(生命冊)

영락교회 교회묘지 조성을 위한 책임을 맡았던 최영준장로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 입원했던 장로님이 임종할 때가 가깝다는 담당 의사의 말을 듣고 가족들은 즉시 한경직목사님에게 연락을 하였고 한목사님께서 병실을 찾아오셔서 임종을 위한 예배를 마치고 병실에서 떠난 후에 장로님은 꿈을 꾸셨다고 합니다.

저 높은 하늘 위에서부터 화려한 꽃가마가 장로님을 태우려고 내려와서 그 꽃가마에 올라탔다고 합니다. 그런데 꽃가마는 하늘 위로 올라가는데 장로님의 몸은 병실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장로님께서 너무 이상하여 꽃가마를 바라보니 꽃가마의 바닥이 없어 장로님은 병상 침대에 그대로 누워있었다고 합니다. 꽃가마의 바닥이 없으니 사람이 올라타면 꽃가마만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간 장로님께서 깨달은 것은 “아직 내가 할 일이 남아 있구나! 과연 그 일이 무엇인가?” 생각하며 “아직 하나님께서 나를 데려 가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결국 건강하게 퇴원한 후 당시 영락동산을 조성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일을 맡아 완전히 마무리 짓고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생명책이란 주 예수를 믿는 성도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합니다.

이제 그 증거를 성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서 증거를 찾아 읽으면서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믿음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과 영벌(마태복음 25:46)
저희는 영벌(永罰)에 의인들은 영생(永生)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요한계시록 20:12, 15

⑫.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⑮.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 생명책(the book of life) 

요한계시록 21:27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

* 그리로 - 새로운 예루살렘으로

다니엘 12:1∼2

그 때에 네 백성 중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받을 것이라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서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 자도 있을 것이며.

빌립보서 4:2∼3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

누가복음 10:20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누구든지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되어 미국에 거주할 수 있는 자격을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처럼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 기록되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3:16∼1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로마서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면 우리가 고백한 대로 삶에 적용하고 우리의 이름은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며, 이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시며, 사랑하시기 때문에 여러분과 이 세상에 사는 모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라는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디모데전서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도 구원받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주임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 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살리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사실을 믿는가? 예전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물었다.

사도행전 16:30∼32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간수는 믿었다. 여러분도 믿는가? 여러분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베드로후서 3:9∼10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주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주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 날은 도둑처럼 갑자기 찾아옵니다. 주의 날을 맞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과연 내 이름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 확신하십니까? 생명책을 열었을 때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책에 없으면 때는 이미 늦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바로 그 때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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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記憶)
- 비서술 기억(몸에 익히는 것은 어렵지만 한 번 익히면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자전거 타기, 수영 등과 같은 기억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을 시험하사
- “아브라함의 믿음을(시험) 시험하사”

아브라함의 시험을 시험하사 라는 번역이 원문에 가깝다. 과연 아브라함은 어떤 시험에 있었을까?

창세기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그 일 후에∼

창세기 21:33∼34,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내었더라.  

- 영생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살고 있었던 환경은 블레셋 족속의 땅이었다. 블레셋 족속들의 믿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노아의 세 아들 - 셈, 함, 야벳
창세기 10:2∼5, 야벳의 아들(2. 고멜, 마곡, 마대, 야완, 두발, 메섹, 디라스)
창세기 10:6∼20, 함의 아들(6. 구스, 미스라임, 부스 가나안)
창세기 10:21∼31, 셈의 아들(22. 엘람, 앗수르, 아르박삿,룻, 아람)

창세기 10:13∼14,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님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블레셋이 가슬루힘에게서 나왔더라).

* 미스라임(Mizraim) - (히브리어) 미츠라임, 애급을 의미
* 블레셋(Philistines) -  블레셋 사람의 종교는 이스라엘 사람과는 달리 가나안의 종교를 혼합하여 셈계의 신 다곤을 섬겼다(사사기 16:23).
→ 팔레스타인

*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은 것은 “과연 내가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믿어도 되는 것일까?”

창세기 21:11, 아브라함이 그 아들을 위하여 그 일이 깊이 근심이 되었더니.
- 육신적인 근심에 붙잡혔던 믿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므로 그 말씀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믿음이었다.

⑫.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을 위하여 근심치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칭할 것임이니라.
⑬.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베드로후서 3:12∼14,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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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영생을 얻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것

예전에 아이들이 출생하여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을 때에 아이가 출생한 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란 후에 호적에 이름을 올렸던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생명책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백성으로 확정되었을 때 그 이름이 기록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나면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한국의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발급됩니다. 미국의 경우 사회보장번호가 발급됩니. 이와 같은 주민등록번호와 사회보장번호는 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만일 그 사람이 세상을 떠난 후에 사망신고를 하면 더 이상 이 세상에 그 번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생명책은 구원받은 백성의 이름이 기록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지상의 국가에서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일어난다. 즉, 하나님 왕국의 시민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생명책이라고 합니다.

생명책이 펼쳐지는 그 날이 곧 주님의 재림의 날이며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름이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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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파트리스교회 2019-7-21(주일)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Ⅱ(요한계시록 1:3)


요한계시록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성경에서 강조하는 최고의 복은 ‘영생(永生)’입니다.
영생이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생이란 죽어도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포기할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 2. 7~1535. 7. 6)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왕에게 항복하라고 그를 졸랐다고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오랫동안 함께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왜 당신은 꽃 같은 나이에 당신과 우리 가족에게 가장 비극적인 불행을 가져오려 하십니까?” 이 말을 들은 모어는 이렇게 되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은 내가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하오?” “최소한 20년은 사실 거예요.” 그러자 그는 소리쳤습니다. “이 땅에서의 20년밖에 안 되는 삶을 위하여, 내가 영원한 삶을 포기하고 고통에 나를 내어 준다면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오! 영혼을 잃는 것보다는 그 밖의 다른 모든 것을 잃는 편이 오히려 더 좋은 일이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소?”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이란 제목으로 두 번째 설교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소개했던 설교의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경을 산(山)에 비유할 때 구약이란 산에는 39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고, 신약이란 산에는 27종류의 나무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나무들이 많이 우거진 곳을 삼림(森林)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다양한 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삼림(森林)과 같습니다. 삼림(森林)이란 한자어의 훈은 ‘수풀 삼(森)’, ‘수풀 림(林)’이라고 합니다. 삼림(森林)이란 한에는 나무(木)만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은 삼림의 나무들 중에서 66번째 종류의 나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까지 요한계시록을 삼림 속에 있는 나무라고 해석하지 않고 많은 높은 산들이 줄지어 있는 산맥(山脈)으로 이해했습니다. 그 결과 산맥(山脈)은 쉽게 올라갈 수 없는 아주 높고 험준한 곳이기에 요한계시록을 특별한 은사를 받은 교주만이 해석할 수 있다고 강조되었으며 심지어 특정한 교파에 가입해야만 된다는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삼림(山脈)의 한 나무처럼 성경의 줄기에 따라 한 주제로 읽을 때 요한계시록은 어렵고 난해한 말씀이 아니라 누구든지 읽을 수 있는 약속의 말씀이 될 것입니다.

이러한 주제로 읽는 첫 번째 방법은 ‘복(福)’이란 주제로 읽는 것입니다.

복(福)이란 한자는 볼 시(示)와 부요할 부(富)가 결합한 단어로 "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또는 '부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라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부(富)'의 기준을 '돈' '자동차' '집'과 같은 외형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세속적인 복'과 '내적인 것'에 초점을 맞추는 '신령한 복'으로 구분합니다.

구약에서 복이란 두 단어 '베라카(신명기 28:1∼2)'와 '에제르(시편 23:1∼3)'를 소개합니다. 베라카와 에제르는 순종의 복을 말합니다. 순종하는 약속의 백성들은 뛰어난 민족이 될 것이며 마치 마르지 않는 시냇가(복수)에 심어진 나무처럼 항상 물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복은 영생(永生)입니다(시편 133:3, 요한복음 3:16, 17:3).

예언의 말씀이란 그 예언의 그 말씀(요한계시록 1:3, 22:7, 10, 18, 19)을 말합니다.

예언의 말씀의 내용은 '속히 오리라! 가감하지 말라!' 라고 합니다. 속히(1:1, 2:16, 3:11, 11:14, 22:6, 7, 12, 20)라는 말은 시간적인 의미보다는 영적 의미로 '반드시 오실 것'을 말합니다.

오늘은 복으로 읽는 요한계시록 두 번째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요한계시록 1장 3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예언의 말씀으로 소개된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특징을 세 가지 모습 즉 읽는 자와 듣는 자와 지키는 자라고 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이란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을 누리기 위해서 예언의 말씀 속히 오시리라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위한 세 가지 자세가 필요합니다. 첫째는 읽는 자, 둘째는 듣는 자들, 셋째는 지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첫째, 읽는 자(아나기노스콘, ἀναγινώσκων)

본문에서 ‘읽는 자’는 두루마리의 말씀을 회당에서 회중을 대표하여 전문적으로 읽는 낭독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성경을 읽는 자를 말합니다. 성경을 문자로만 읽는 것이 아닙니다.

1. 확실하게 아는 것(to know certainly)
2. 다시 아는 것(know again)
3. 인식하는 것(recognize), 알아차리는 것(discern)

요한계시록에 사용된 각종 상징과 숫자들의 의미를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결론입니다. 만일 상징과 숫자들과 인과 나팔과 대접의 의미는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결론을 모르거나 지나쳐 버린다면 큰 실수를 범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해외여행이 한창일 때 가이드가 신신당부하기를 많은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항상 가이드가 들고 있는 깃발을 보고 따라와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사람에게 이번 여행이 어떠했느냐? 하고 물었을 때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외국 땅에서 가이드가 들고 다니는 깃발만 보도 따라다녔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억이 없다고 했다는 우스개 이야기처럼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가 상징과 숫자와 인과 나팔과 대접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고 성경의 가장 중요한 핵심을 잃어버린다면 그 결과는 잘못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며(창 1:1), 창조한 세상을 심판으로 다스리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계 22:20).

이것들을 증거 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에서 예언의 결론은 '마라나타' 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믿음으로 읽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복으로 읽는다는 것은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믿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 듣는 자(아쿠온테스, ἀκούοντες)

본문에서 듣는 자는 문법적으로 복수형입니다. 읽는 자는 한 사람이지만 듣는 사람은 여러 사람입니다. 회당의 예배는 성인 남자 10명 이상이 모였을 때에 예배가 시작되었으므로 최소한 10명 이상이 듣습니다.

듣는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갖습니다.

1. 이해하는 것(to understanding)
2. 가르칠 수 있는 것(to teaching)

교육심리학에서는 죄(罪)에 대한 정의가 아주 새롭습니다.

첫째는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 것

모르면서 배우지 않는다는 것은 성경을 모르면서 특히 요한계시록을 모르면서 읽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는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 것

알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구원의 진리를 알았으면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말씀 처럼 다시 오실 심판의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깨우쳐야 하는 것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는 알면서 행하지 않는 것

알면서 행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는 것은 내 안에 머물지만 행하는 것은 내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랑을 안다고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겠습니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깨달은 후에는 아직도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소식을 알지 못하는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4장에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길을 걷다가 날이 저물 무렵 함께 유하려고 어느 집에 들어가서 음식을 먹으려고 할 때 주님께서 떡을 가지고 축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떼어 주셨습니다. 그때에 제자들은 그 분이 주님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 순간을 눈이 밝아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주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주님이 보이기 시작하면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실천을 위하여 들어야 한다.

예수님은 많은 말씀들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비유로 가르치실 때 사용하셨던 ‘들으라’ 또는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고 하셨습니다. 들으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는 말씀은 이미 증거 된 가르침들 즉 구약의 말씀에 대해서 실천하기 위해서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마가복음 4:3∼9).


셋째, 지키는 자(테룬테스, τηροῦντες) 


테룬테스(τηροῦντες)는 테레오(τηρέω)의 복수형으로 ‘지키는 것’ 그리고 ‘감시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키는 자는 물론 예언의 말씀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을 감시해야 합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잘못 전달되거나 가르치는 것을 감시하고 그와 같은 가르침에 미혹되지 않도록 생명을 사랑하고 영혼을 감시하는 책임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한국에 무당(巫堂)의 수가 대략 30만 명이라고 하며 무당에 의해서 창출되는 년 간 금액이 무려 6조원이라고 합니다. 교인의 수가 1,200만 목사의 수가 6만이라고 하는데 교인들이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였다면 어떻게 한국사회가 이렇게 무당의 수가 점점 더 늘어가고 있을까요? 이러한 사회현상에 대한 책임을 교회가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1:28,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약속하신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요한복음 8: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죽음을 영원히 보지 아니하리라.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한계시록은 읽고 듣고 지키므로 복을 누립니다. 해석하는 것이 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해가 될 때까지 읽고 들어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2:7에서 지키는 것에 대한 복을 강조합니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지킨다는 말은 실천한다는 뜻도 있지만 그 말씀을 변질되지 않도록 없어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지킨다는 뜻이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영생의 복을 누리기 위하여 그 예언의 그 말씀 곧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켜야 합니다.

티벳 사람들의 종교는 라마 불교라고 합니다. 티벳 사람들은 라마 불교의 경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라마 불교를 모른다고 합니다. 티벳의 불자들이 경전을 읽지 않기 때문에 라마 불교 사원 주위에 ‘마니차(摩尼車་)’ 라는 불교 도구를 만들어 놓습니다. ‘마니차’란 원통형 모양으로 표면에는 ‘만트라’가 새겨져 있고, 내부에는 롤로 경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니차의 크기는 다양하여 손에 쥘 수 있는 크기부터 큰 것은 몇 미터에 달하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경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둥근 원통 마니차를 손으로 돌리면 한 번 읽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라는 마니차를 한번 돌리면 창세기를 한 번 읽는 것입니다. 두 번 돌리면 두 번 읽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이렇게 마니차를 돌리기만 하기 때문에 경전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도로에서 자동차 뒤에 성경 찬송을 얹어놓고 다니는 운전자를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찬송을 마치 교통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소원하는 부적과 같이 사용한다면 이런 것도 기독교식 마니차라고 하겠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지 않고 듣지도 않으므로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영생(永生)의 복(福)을 누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복이란 주제로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지킴으로 영원한 삶의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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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


칭찬만 들었던 교회 

 1. 빌라델비아교회

 - 작은 능력으로 주의 명령을 지킨 것,  주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것,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

 2. 서머나교회

책망만 들었던 교회

 1. 사데교회
 2. 라오디게아교회

칭찬과 책망을 겸하여 들었던 교회

 1. 에베소교회
 2. 버가모교회
 3. 두아디라교회


10월 8일(토)

요한계시록에서 일곱 교회에 관한 말씀을 생각해 봅니다(2-3장)
칭찬만 들었던 교회는 '빌라델비아교회'와 '서머나교회'
책망만 들었던 교회는 '사데교회'와 라오디게아교회'
칭찬과 책망을 겸하여 들었던 교회는 '에베소교회'와 '버가모교회' 그리고 '두아디라교회' 라고 합니다.

팬데믹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칭찬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요소를 영어의 알파벳(A-Z)의 순서에 따라 하나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A

A는 '아멘(Amen)'을 말합니다.

로마서 1:25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아멘'이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에 대해서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누군가 예배 중에 대표 기도할 때에 아멘으로 함께 기도할 수 있는 신앙입니다.
때로는 간구하는 기도로 구하며 아멘하며 기도자의 중심을 표현하는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멘의 신앙을 적용했던 최권능목사
최권능목사의 본명은 최봉석입니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해야 할 때 학점이 부족하여 졸업을 할 수 없었을 때 당시 학장이었던 마포삼열 선교사의 사무실을 찾았다고 합니다.
학장이었던 마포삼열 선교사는 '최조사, 다음에는 열심히 공부하여 졸업하도록 하시오'라는 위로의 말을 듣고 '기도합시다' 하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최조사의 기도는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간에 전도하느라고 공부하지 못하여 졸업을 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해야 할텐데 졸업을 하지 못하여 전도하는 일을 멈출 수밖에 없사오니 학장 선교사의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오늘 졸업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학장이셨던 마포삼열 선교사도 최조사의 기도에 '아멘'아고 화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감사합니다. 졸업을 시켜주셔서......" 라고 말을 하였을 때  학장은 '내가 언제 졸업 시켜준다고 했습니까?' 하고 반문하므로 '아니 방금 졸업할 수 있도록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자 아멘하고 화답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하여 최권능목사님은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고 그 시대에 복음 전도자로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팬데믹 시대에 움츠렸던 믿음의 날개를 아멘으로 편 후에 온 세상을 향하여 주신 사명과 소명을 바르게 감당하는 믿음의 현장을 든든하게 지키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월 16일(토)

둘째는 B

지난번에는 영어의 알파벳 A(아멘)에 대하여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알파벳 B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B는 믿음(Belief)을 말합니다.

믿음이란 한자는 "신(信)"입니다.
한문자 '신(信)'을 해자(解字)하면 '사람(人)'자와 '말씀(言)'이 합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결국 믿음이란 '말을 믿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한 주간 교육을 받았을 때 식사 시간마다 암송해야 하는 농군학교 십계명이 있었는데 그 계명 중에
"한 마디의 말이 약속어음이 되는 사람이 되자!" 라는 말을 떠 올려 봅니다.

나의 언어를 주위에서 모든 사람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성경에서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faith)이라는 단어가 26번이나 나오고 있으며 히브리서 저자인 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열거하면서 시간이 부족하여 말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왜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징계하지 않으시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종말이 정녕 임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응답합니다(합 2:4).

사도 바울도 이 구절을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로마서의 핵심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언행심사(言行心思)가 나의 삶과 일치되는 믿음으로 나를 바르게 세워가야 합니다(언행일치, 言行一致)

야고보서 1:26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잠언 13:3
입에 재갈을 물리면 목숨을 지키지만 입을 함부로 놀리면 목숨을 잃는다.

10월 23일(주일)

영어의 알파벳을 이용하여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A는 아멘(Amen)
B는 믿음(Belief)
C는 고백(Confess)

오늘은 "고백"에 대하여 묵상합니다.

시편 51편 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의 어머니가 죄 가운데 우리를 잉태하였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있었으며."

사도 바울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자연인(natural man)은 죄인이라고 합니다(로마서 3:9-10).

내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다 입으로 토설(吐舌)하는 죄의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첫걸음이 됩니다.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입어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잠언 28장 13절에서 지혜를 상징하는 솔로몬 왕은 죄의 고백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선지자 이사야는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고 선포했습니다."(이사야 1:18)

거룩하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먼저 자기의 죄를 회개(repentance)하라고 재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 대해서도 회개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죄를 고백하고 죄의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신앙 고백은 구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로마서 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사랑하는 믿음의 동지들이여,
인생의 삶을 연극 무대로 비유합니다.
제 경우는 지금 7막 3장의 무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지난 줄거리 보다는 앞으로 남은 내용이 더 중요합니다.
오늘 밤에 내가 너를 부를 것이다.
그러면 네 것이 모두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시며 어느 부자의 어리석음을 깨우쳤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어리석은 길을 따라가는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길 즉 죄를 고백하고 믿음을 고백하는 일에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31-2022(월)

영어의 알파벳을 이용하여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을 함께 찾아보려고 합니다.

A는 아멘(Amen)
B는 믿음(Belief)
C는 고백(Confess)
D는 근면(Diligence)

D(Diligence : 근면)

구약의 지혜서 잠언 11장 16절 말씀에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심지어 게으른 사람을 향하여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고 합니다(잠 6:6)

요한계시록에 소개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함을 칭찬"하셨습니다(계 2:3).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먹고산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라는 속담처럼 세상 일을 할 때에도 부지런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솔로몬 왕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고 말씀합니다(잠 13:3)"

옛날에 어느 젊은이가 "당신은 장차 이 나라의 왕이 될 사람이오!" 라는 유명한 예언자의 말을 듣고 그 날부터 "나는 왕이 될 사람이다" 이렇게 자부하며 날마다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 누워 지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내오던 삶에 익숙해져서 어느 덧 나이 많은 노인이 되었습니다.
그 날도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언제 이 왕을 모시로 올 것인가? 하며 잡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데 갑자기 바람이 거세게 불며 잘 익은 감이 그 사람의 얼굴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의 교훈은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왕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요?

기독교를 새벽의 종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새벽 기도회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기도로 삶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날마다 새벽을 깨우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Nov-06-2022(SUN)

영어의 알파벳(Alphabet)의 순서에 따라 오늘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묵상합니다.

A는 아멘(Amen)
B는 믿음(Belief)
C는 고백(Confess)
D는 근면(Diligence)
E는 인내(Endurance)

E(Endurance : 인내. 忍耐)

인내라는 한자의 훈(訓)은 "참을 인(忍)" "견딜 내(耐)"라고 합니다.
그 뜻은 "참고 견딤"이라고 하지요.
다른 단어로는 "감인(堪忍)" 또는 "내인(耐忍)" 이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인내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은 "욥(Jop)" 이라고 하겠습니다.
'욥'이란 이름의 뜻은 "원한다"라고 합니다.

왜 인내해야 할까요?
오래 참고 기다려야 생명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누가복음 21:19).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자기 이름을 인하여 인내한 것(계 2:3)과 두아디라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을 칭찬합니다(계 2:19, 3:10).

그리스도인들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시험과 시련을 당할 때 낙심하지 않고 주 안에서 인내할 때 복되다고 약속합니다.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성도의 인격이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합니다(야고보서 1:4).

베드로는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합니다(베드로전서 1:7).

어떻게 인내의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베드로전서 1:5-7).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욥과 같은 인내의 신앙으로 세워지려면 믿음으로 시작하여 덕과 지식과 절제와 인내와 경건과 형제우애와 더불어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은 죄와 허물을 그리스도의 보혈로 덮어주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그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들도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용서하며 믿음으로 하나되어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 내 구주!
예수 내 생명!
예수 내 권세!

그리스도인의 섬김과 삶을 영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소개합니다.
그동안 소개한 것을 정리하여 봅니다.

A는 아멘(Amen)
B는 믿음(Belief)
C는 고백(Confess)
D는 근면(Diligence)
E는 인내(Endurance)

오늘은 F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F는 충성(忠誠, Faithful)을 의미합니다.

충성(忠誠)이란 한자의 훈(訓)은 "충성 충(忠)" "정성 성(誠)"이며 그 의미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이라고 합니다.
'충성(忠誠)'이란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충(忠)"자는 '가운데 중(中)" "마음 심(心)" 으로 마음의 중심을 말합니다.
"성(誠)"자는 "말씀 언(言)" "이룰 성(成)"으로 말씀을 이루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충성이란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깨우칩니다(고전 4:2).

밧모 섬에 갇혀 있었던 사도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고 가르쳤습니다(계 2:10).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마 25:14-30).

당신이 교회에서 맡은 일이 무엇입니까?
그 일에는 전문가처럼 섬겨야 합니다.
내가 맡은 일에 전문가로 무장하여 섬길 때 그 일을 통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조지 휫필트 목사님 (George Whitefield,1714년∼1770년)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공부하면서 존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의 모태인 홀리 클럽 운동에 참여하였습니다.

성공회 사제가 된 그는 1736년 6월 27일 자신이 세례를 받은 글로스터 교회에서 3년간 사역을 하였고, 복음주의적 감리교 운동과 함께 1739년부터 옥외 설교를 시작했으며, 감성적인 설교로 많은 젊은이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도 활동하였는데 교단과 관계 없이 복음 전도에 힘을 썼습니다.
1740년 2차 미국 방문 시 조지아에 보육원을 설립하고, 순회 설교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도하였습니다.

그는 존 웨슬리를 '앞으로 죽어서 하나님 나라에 가면 주님 곁에 가까이 있을 사람'이라고 부를 정도로 존경하였지만 하지만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은 서로 달랐다고 합니다.

존 웨슬리는 노예해방 문제에, 조지 휫필드는 아동복지 문제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존 웨슬리는 신자인 윌리엄 윌버포스의 노예해방 운동을 격려하였고, 조지 휫필드는 미국에서의 순회 설교 시 보육원 기금 마련을 위한 설교를 하였다고 합니다.   

18세기에 혜성처럼 나타나서 영국의 대부흥 운동을 주도했던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목사님.
얼마나 열심히 복음을 전했는지 30년 동안 매 주일 설교를 평균 50시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깐 하루 7시간씩 설교한 것입니다.
하루에 7시간 30년을 쉬지 않고 설교했다는 것은 같은 목사로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설교 할 때마다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고,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이 쇠약해지니까 주변 사람들이 ‘좀 쉬어가면서 하세요.’
이렇게 권면했지만 이 조지 휫필드 목사님은 듣질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녹슬어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지 않고,
닳아서 없어지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11-27-2022

G(Godliness : 경건)

그리스도인의 삶을 영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라 그 의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소개했던 것들은 A(Amen : 아멘) ,  B(Belief : 믿음),  C(Confession : 고백),  D(Diligence : 근면),  E(Endurance : 인내),  F(Faithful : 충성)이었습니다.

오늘은 순서에 따라 G(Godliness : 경건)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경건하셨던 삶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이란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예수님처럼 말하고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대해서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계 3:1).
죽었다는 의미는 물리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영적으로 죽은 상태라고 하겠습니다.

주일이면 많은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이 모여 예배합니다.
그렇게 예배를 하였으면 성도들이 흩어진 거리에서 경건한 성도들을 만날 수 있어야 하건만 여전히 거리는 주일과 다름이 없습니다.
예배와 삶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살아나야 합니다.
생명이 넘치는 예배가 활기찬 생명으로 거리를 덮을 때 세상은 경건이 무엇인지 느끼게 될 것입니다.

참된 경건이란 절제된 언행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보살핌 그리고 세속에 물들지 않은 구별된 삶이라고 합니다(약 1:26-27).

은총의 계절을 맞이하며 내 삶의 주위에서 도움의 손길을 갈망하는 사람이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유가 있으면 범위를 넓혀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저희들은 20년 동안 북한의 결핵 환자를 돕기 위하여 매월 $270씩 유진벨재단으로 보냅니다.
그 외에도 여러 곳에 도움의 손길을 매월 정기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보여주기 식의 일회성 경건이 아니라 주님 앞에 가는 그 날까지 지속적으로 경건의 손을 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나비효과를 일으킬 수 있는 감사와 은총이 춤을 추는 계절로 장식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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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4-2022(주일)

영어의 알파벳 문자의 순서에 따라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H자에 대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소개합니다.
그동안 소개했던 각 문자별 의미를 먼저 정리하여 봅니다.

A(Amen : 아멘) ,  B(Belief : 믿음),  C(Confession : 고백),  D(Diligence : 근면),  E(Endurance : 인내),  F(Faithful : 충성), G(Godliness : 경건)이었습니다.

H(Hope : 소망)

이 세상은 이미 원수 사탄에 의해서 지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를 믿는 분명한 믿음이 없는 지도자가 세워지면 반드시 그 사회는 잘못된 방향으로 던져질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내게 주어진 선택의 주권을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 제도에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수가 옳바른 결정을 할 수 없을 때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라도 소수의 자리를 빼앗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참으로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시 39:7).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권면했습니다(히 12:2).

소망은 이 세상의 가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 기준을 이 세상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팬데믹의 긴 고통과 불편한 삶이 지속될지라도 심지어 심각한 독감으로 많은 사람이 시달릴지라도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온갖 시련과 고통을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마치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 남은 한 가지 그것이 소망(所望, ἐλπίς)이라는 것을 잊지 말고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험한 풍랑속에서도 임마누엘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므로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굳게 자리 잡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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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1-2022(주일)

영어의 알파벳 문자의 순서에 따라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I자에 대한 삶의 자세가 무엇인가를 소개합니다.
그동안 소개했던 각 문자별 의미를 먼저 정리하여 봅니다.

A(Amen : 아멘)  
 B(Belief : 믿음),  C(Confession : 고백),  D(Diligence : 근면),  E(Endurance : 인내),  F(Faithful : 충성)G(Godliness : 경건), H(Hope : 소망) 

I(Imploration : 간구) 

간구(懇求)라는 한자는 "간절할 간(懇)" "구할 구(求)" 라는 훈으로 "간절히 바람"이란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또한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하셨습니다(야고보서 5:16).

디모데전서 2장 1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라는 말씀에서 기도에 대한 용어 네 단어를 살펴보겠습니다.

기도(prayer)는 일상적으로 행하는 모든 기도를 의미합니다.  
간구(request)는 특별한 사정과 문제가 있을 때 집중적으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도고(intercession)는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마치 나의 일처럼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thanksgiving)는 모든 일에 대해서 즉 때로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지만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에게 감사로 아뢰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하는 기도가 참 어렵습니다.
불행한 일을 당할 때는 사람은 누구나 마음이 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극한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신앙은 가장 바람직한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간구하는 기도는 응답이 있을 때까지 지속해야 합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

혼돈과 어지러운 세상에서 요즈음 무엇을 위하여 간구하십니까?
나의 간구가 주님의 보좌에 상달하여 응답되는 기쁨을 생각하며 간구하는 무릎에 새 힘이 넘쳐나기를 기대합니다.
강건한 간구의 무릎에 하늘의 은총이 임하여 더욱 강한 무릎으로 사용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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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08 - 2023(주일)

영어의 알파벳은 모두 26개 입니다.
26개의 알파벳을 시작으로 하는 단어를 중심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소개합니다.
그동안 소개했던 문자들을 정리해 봅니다.
A(Amen : 아멘),  B(Belief : 믿음),  C(Confession : 고백),  D(Diligence : 근면),  E(Endurance : 인내),  F(Faithful : 충성), G(Godliness : 경건), H(Hope : 소망), I(Imploration : 간구)

오늘은 J로 시작하는 단어를 소개합니다.

Jesus(예수)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JESUS)"입니다.
따라서 삶의 중심은 언제나 예수님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그 자리를 사람이 차지하고 눌러 앉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삶의 중심을 차지할 때 놀라운 권세를 받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받습니다(요 1:12). 지금까지 살아 왔던 나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 예수 안에 우리가 거하고 우리 안에 예수가 거하는(요 6:56, 갈 2:20)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렸던 우리의 삶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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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 책망 및 권면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오늘 우리 교회가 어떠한 상태에 있는 지 알 수 있으며 또한 우리 개인들의 신앙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 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기 위해서 교회나 개인들이 가지고 있어야 할 요소들을 A부터 Z까지 순서대로 나열해 보면서 그 성경적인 근거를 한 번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A(Amen : 아멘)

아멘은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니 선포되는 하나님 말씀은 아멘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아멘으로 화답하고, 간구하는 기도는 아멘으로 함께 간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실 것입니다.

B(Belief : 믿음)

성경에서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faith)이라는 단어가 26번이나 나오고 있으며 히브리서 저자인 바울은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에 대해서 열거하면서 시간이 부족하여 말 할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왜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악한 자들을 징계하지 않으시는지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종말이 정녕 임하리라고 말씀하시면서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라고 응답하시고 계십니다. 사도 바울도 이 구절을 로마서 1장 17절에서 인용하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이신칭의(以信稱義)라는 로마서의 핵심 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C(Confession : 고백)

우리의 어머니가 죄 가운데 우리를 잉태하였고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를 가지고 있었으며(시 51:5), 모든 자연인(natural man)은 죄인이라고 바울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롬 3:9-10). 먼저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그 죄를 다 입으로 토설하는 죄의 고백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첫걸음일 것입니다. 죄를 고백해야 하나님의 죄사하심을 입어 죄문제가 해결됩니다. 솔로몬은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고 말씀하시며, 여호와께서는 이사야를 통해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 1:18)"라고 우리들에게 회개(repentance)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 대해서도 회개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입으로 주를 시인하는 신앙 고백이야말로 구원을 얻는 일이라고 바울은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롬 10:10).

D(Diligence : 근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함을 칭찬하고 있습니다(계 2:3). '부지런한 사람이라야 먹고산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라는 속담이 있듯이 세상일을 함에 있어서도 우리는 부지런해야 합니다. 솔로몬도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 10:4)"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 13: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라는 말씀을 생각해 볼 때 세상일도 부지런해야 할진대 하물며 하나님 나라의 일이겠습니까?

E(Endurance : 인내)

예수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자기 이름을 인하여 인내한 것(계 2:3)과 두아디라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계 2:19, 3:10)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천들도 이 땅을 살아 가면서는 시험과 시련을 당할 수 있는데 그럴 때일수록 낙심하지 아니하고 주 안에서 인내하는 자는 복되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성도의 인격이 온전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으며(약 1:4), 베드로 사도는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 1:7).

F(Faithful : 충성)

직분을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으며(고전 4:2), 요한은 에베소 교회에 대해서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달란트 비유(마 25:14-30)를 통하여 작은 일에 충성된 자가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G(Godliness : 경건)

예수님께서는 사데 교회에 대해서 살았다 하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계 3:1).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딤후3:5) 즉, 외적으로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 같으나 내적으로는 복종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바울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참된 경건이란 절제된 언행, 소외계층에 대한 보살핌, 세속에 물들지 아니한 구별된 삶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약 1:26-27).

H(Hope : 소망)

크리스천들에게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세상 사람들이 누리는 온갖 종류의 쾌락을 즐기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참으로 불행한 삶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7)"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바울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I(Imploration : 간구)

여호와께서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십니다. 또한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했으니(약 5:16) 우리가 의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해주며 요한이 그의 사랑하는 자의 영혼과 건강을 간구했던 것처럼(요3 1:2) 성도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는 개인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도 큰 도움이 됩니다.

J(Jesus : 예수)

우리 삶에 있어서 예수님보다 더 중요한 분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권세를 받습니다(요 1:12). 지금까지 살아 왔던 나의 삶의 방식을 완전히 포기하고 예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모시면 예수 안에 우리가 거하고 우리 안에 예수가 거하는(요 6:56, 갈 2:20)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적인 가치관에 의해 의사결정을 내렸던 우리의 삶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라는 생각으로 가득 찬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K(Keep : 말씀을 지킴)

알고도 행치 않는 것이 죄라고(약 4:17) 야고보가 지적하셨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이해할 것이 아니라 온 마음을 다해 그것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며 우리를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하여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한다고 하였습니다(딤후 3:15-17). 하나님 말씀을 읽으면 우리가 죄인이므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면 거룩한 하나님의 속성을 우리도 닮아가게 되고(聖化)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갈 5:22-23).

L(Love : 사랑)

사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의 장으로 알려진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의 필요성, 특성, 영원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13절에서는 믿음, 소망 사람 중 사랑을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14)"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 즉,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행함이 있고 진실함이 있습니다(요1 3:18). 바울도 피차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되 사랑의 빚은 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처럼(롬 13:8) 진실한 마음으로 형제간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M(Mercy : 긍휼)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마 5:7). 야고보도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약 2:13). 바울은 그의 서신의 인사말에서 은혜, 긍휼, 평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서(딤전 1:2, 딤후 1:2) 긍휼은 하나님의 은혜의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는 아무 대가도 치루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거져 받았으니(엡 2:8) 우리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N(New-born : 중생)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의 회원으로 정치인이었으며, 학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선생이었던 니고데모는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요 3:1-21).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다는 것은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와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말하며(엡 4:22-24) 바울은 이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셨습니다(고후 5:17). 거듭난 사람의 생활은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엡 4:25-32, 골 3:12-17).

O(Obedience : 순종)

순종이란 우리의 생각이나 의지를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진멸하도록 명령을 받은 사울은 이에 순종하지 않고 좋은 것들을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가져 왔을 때 사무엘로부터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라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순종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요 14:23)"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으로부터 큰 축복을 받습니다(신 28:1-14).

P(Prayer : 기도)

기도는 크리스천들의 영적 호흡이며 마귀를 대적하는 영적 무기입니다. 또한 영육간의 필요를 하나님으로부터 얻기 위한 수단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기도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으며(눅 6:12) 성경은 항상 기도에 힘쓰고(골 4:2)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살전 5:17) 말씀하고 있습니다.

Q(Quiet Time : 묵상)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수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만 우리의 죄를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며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적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전에는 우리가 죄인인 지를 깨닫기가 어렵고 하나님 말씀을 읽어야만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의 역할입니다(롬 3:20).

R(Resurrection : 부활)

부활은 기독교가 존재하는 근거가 됩니다. 초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않음에 대하여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을 통하여 부활의 확실성과 성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시지 못하셨다면 복음 전파와 믿음이 헛것이며(14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거짓 증인이 될 것이고(15절), 우리가 여전히 죄중에 있을 것이고(17절), 주 안에서 죽은 자도 멸망할 것이고(18절), 그리고 믿는 자가 가장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19절)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을 눈으로 직접 목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10명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자기들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S(Sacred : 거룩함) 

거룩함(holiness)은 하나님과 인간이 공유하는 하나님의 보편적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창 1:26-27).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자연인)의 그러한 속성은 불완전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연인과 구별하여 거룩하기를 명령하고 계십니다(레 20:26). 바울은 우리의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릴 때 거룩함에 이른다고 말씀하시면서(롬 6:19)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실인의 서원 제도(민 6:1-21)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함을 닮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나실인이 되어 하나님의 거룩함을 날마다 연습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T(Tolerance : 관용)

관용이란 남에게 자진해서 주는 넓은 마음입니다. 저와 우리 가족의 삶의 원칙 중의 하나는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남에게는 관대하게(Strict to yourself, but generous to others)'입니다. 바울은 교회 감독의 자격으로 관용(gentle)을 들고 있으며(딤전 3:3),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도 관용(considerate)을 선행의 하나로 들고 있습니다(딛 3:2).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않음에 대해서 칭찬을 받은 것처럼 악과 거짓 가르침에 대해서는 일체 관용을 베풀지 말아야 하지만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18)"는 바울의 말씀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최대한 관용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U(Unafraid : 담대함)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듯이 달려드는 마귀(벧전 5:8)를 생각하면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 27:1)"라고 노래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당신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고, 굳세게 하고, 도와주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실 것이니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사 41:10). 예수님께서도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V(Victory : 승리)

바울은 우리의 싸움은 육적인 것이 아니고 영적인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엡 6:10-20). 또한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라고 말씀하셨으며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믿음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 5:4). 우리가 믿음을 지켜 세상을 승리하면 우리는 의의 면류관을 그 상급으로 받을 것입니다(딤후 4:7-8).

W(Wisdom : 지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지혜의 대표적인 인물은 솔로몬입니다. 그가 하나님께 장수나 부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에 맞아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부와 영광도 주셨습니다(왕상 3:3-15). 그러한 솔로몬은 지혜를 얻은 자는 복이 있으며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낫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잠 3:13-14). 야고보는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 1: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고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고전 14:20).

X(Cross : 십자가)

십자가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믿는 자들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히 9:11-22).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십자가는 죄인들을 죽이는 형틀의 상징에서 죄인들을 죽음에서 건져낸 생명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눅 9:23). 바울도 죄의 법을 섬기려는 육신의 생각과 하나님의 법을 섬기려는 영의 생각이 그의 속에서 투쟁함을 보고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롬 7:13-24).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인 육신의 소욕을 능히 감당하고 이겨내면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갈 6:8).

Y(Youth : 젊음)

저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아버님께서 제게 주신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라는 말씀을 붙들고 유혹 많은 청년의 때를 하나님의 은혜로 잘 지낼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도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고 하면서 청년에 대한 권면의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전 11:9-12:7).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젊은이들은 환상(vision)을 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행 2:17). 비전(vision)이 없는 청년은 무늬만 청년일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는 나이가 들어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믿음은 비전으로 가득한 활기를 항상 유지해야 할 것입니다.

Z(Zeal : 열심)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열심을 낼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면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계 3:15-19). 바울도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고 권면하고 있으며 좋은 일을 열심히 사모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갈 4:18). 세상적인 기준으로 볼 때도 가장 뛰어났던 사람 중의 하나였던 바울이 세상적인 것들을 배설물로 여기고 하나님의 일에 보여 주셨던 그 열심을 우리도 가져야 하겠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고후 13:5)"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mine and test yourselves! 우리 교회 안에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위와 같은 요소들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확신하는 요소들은 더욱 굳게 붙잡고, 가지고 있지 않은 요소들은 가지도록 해야겠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과 노력으로 가질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가질 수 있으니 우리는 매일 매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한국 교회가 양적으로 큰 성장을 하다가 이제는 양적으로 감소하는 시대를 맞았습니다.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진단이 나오고 있지만 저는 내적(영적) 성숙이 외적 성장에 크게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숫자놀음에서 벗어나 우리 개인이나 교회가 진정으로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오늘날 개인이나 한국 교회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참된 경건을 회복해야 합니다.
의인 10명이 없어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해 볼 때 오늘 우리 사회를 구원하기 위해서 크리스천 한사람 한사람이 경건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며 축복 받은 일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버가모교회(요한계시록 2:12∼17)
- 사단의 위가 있는데라.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I know where you live where Satan has his throne. 

“사단의 위”란 “사단의 왕좌”를 의미합니다.

영계의 거장이 마지막 임종의 자리에서 제자들 50여명이 둘러 앉아 지켜볼 때 영적 지도자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에서 생각해 봅니다.

“목사님, 들려요? 마지막으로 알려 줄 영적 비밀을 알려주십시오!”
“들려 줄 말이 있는데 요한계시록 2장 12절 이하 버가모 교회에 나타나 있다.”
“아무리 읽어도 영적 비밀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이때 영적 거장의 마지막 말을 소개합니다.

“사단의 위”란 사역자가 사역하는 지역의 영적 구조를 알아야 한다.
사단이 그 지역에 사단의 보좌를 차지하고 있다.
피터 와그너는 “지역 영계”라고 한다.
지역의 영적 상태와 구조를 알아야 한다.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으로 갈 때 갑자기 풍랑이 일어났다.
자연적 풍랑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바람아 잔잔하라! 풍랑아 멈추어라!
예수께서 거라사 지방에 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미 사단이 알고 있으므로 풍랑을 일으켜 예수께서 오지 못하게 역사한다.

사탄의 저항을 막아내야 한다.

토마스 선교사가 대동강에 올라갈 때 순교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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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예배 관련 요한계시록 2장, 3장의 초대 일곱 교회에 대한 발췌 말씀입니다. 내일 예배 때 참고하세요.

생명책에서 이름 지워지지 않을 초대 일곱 교회의 ‘이기는 자’
ὁ νικῶν (호 니콘) : THE one-CONQUERING / that overcometh

에베소 교회(2:1-6)

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6.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서머나 교회(2: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버가모 교회(2:12-17)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16.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두아디라 교회(2:18-29)

18.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자기의 음행을 회개하고자 하지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에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28.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29.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사데 교회(3:1-6)

1.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2. 너는 일깨어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건하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3.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켜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둑 같이 이르리니 어느 때에 네게 이를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4.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6.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빌라델비아 교회(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3:14-22)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