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언제 다시 오실까?
예수님은 정말로 악을 정복하고 승리의 주로 오실까?
왜 속히 오시지 않고 이 세상에 악이 횡행하고 핍박이 가중되도록 놔두실까?
요한계시록은 바로 이러한 환경 속의 그리스도인에게 ‘하늘 문’의 열쇠를 제공한다.
요한계시록은 입체적인 사건을 평면으로 그린 그림이면서도 평면이 입체로 보이도록 문자와 상징을 융합해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이 파악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인간이 가늠할 수 있는 시공간적 표현 기법으로 묘사하기 위해 그림 언어 같은 묵시문학 형태를 사용한다. 비유하자면 예언이 말로 전해지는 것이라면 묵시는 그림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비밀스러운 책이 아니며, 어떤 면에서는 가장 쉬운 책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계 1:1)
여기서 ‘계시’는 ‘뚜껑을 열어서 보여 준다’는 의미인데 우리는 요한을 통해 하늘의 비밀을 문자로 접하는 은총을 누린다.
요한계시록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 계시와 환상(1~5장)
2. 환난과 전쟁(6~16장)
3. 심판과 구원(17~22장)
구분해 보면 그 지향점이 분명하다.
현재 상황과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성격과 방향, 종국에 이르기 전 겪게 될 상황, 역사의 끝을 보여주는 구조다.
이 세 부분은 지상의 교회, 환난의 교회, 천상의 교회로 나눌 수 있다. 넓었다가 점점 좁아지는 ‘나선형 구조’같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집중돼 전개된다. 요한계시록은 특정한 지역이나 민족이 아닌, 우주적 대격변을 제시하면서 복음의 대상 범위를 무한대로 확장한다. 복음이 지구촌 구석구석 전파돼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하면서, 마지막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로 귀결된다는 강력한 메시지로 신약성서 전체를 마무리한다.
요한계시록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역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표현과 전달 방법을 사용했다. 비유적 상징과 문자적 실체를 결합하는데 문자적 의미를 상징으로, 상징적 의미를 문자로 잘못 판단해 그릇된 해석을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이단들의 종말론은 주로 이러한 곡해에서 출발한다. 그중 ‘14만 4000’ 해석이 기승을 부리는데, 문자와 상징을 넘나들며 비뚤어진 해석으로 사람들을 미혹한다.
이 수는 셀 수 없이 ‘많으면서’도 구원받은 ‘제한된’(선택된) 사람들의 범위를 말한다. 선택된 모든 사람을 의미하는 구약의 열두 지파(12)와 신약의 열두 지파(12), 그리고 무한대를 의미하는 숫자인 1000을 결합하면 14만 4000이다.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계층적 구별이나 장벽을 초월하는 구원의 개념을 그 속에 내포하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제한된 범위’와 ‘그 범위 안의 수는 제한이 없다’는 두 가지 사실을 반영하는 표현인 것이다. 요한계시록은 ‘14만 4000’이라는 숫자 상징을 통해 박해 상황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변함없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선택’과 ‘변치 않는 그리스도인들의 굳건한 믿음’을 동시에 강조하면서 승리를 보증한다.
요한계시록은 첩첩산중의 수많은 산봉우리가 안개 속에서 펼쳐지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여준다. 저 멀리 있는 어떤 산봉우리가 앞에 있는지 뒤에 있는지 그 시간적인 선후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존재 자체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시간적 순서보다는 승리로 오시는 주님의 심판을 다양하게 강조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특징이다.
요한계시록은 또 일곱 인봉, 일곱 나팔, 일곱 대접 등 여러 방법으로 악을 물리치고 승리하는 주님의 모습을 반복해서 묘사한다. 이처럼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일정한 목표 지점으로 역사를 이끄시며 모든 악을 물리치는 장면을 전개하면서 생활 속의 어떤 박해나 환난도 우리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확증을 그림처럼 보여준다.
요한계시록은 복음 전파의 최종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복음이 온 세계에 미치는 승리의 소식임을 일깨워 준다. 지구를 돌아 땅 끝까지 가면 결국 내가 서 있는 지점으로 되돌아온다. 땅 끝까지 가는 사명(행 1:8)은 ‘지금 여기서’ 이루어진다. 확정된 미래를 보여주면서 그리스도인에게 힘을 주는 요한계시록은 우주적인 종말의 렌즈로 ‘지금 여기’에 있는 바로 ‘나’에게 초점을 맞춘다. 악은 패망하고 주님은 승리하신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이를 지향하는 공동체가 교회이며 이 소망을 실천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라는 분명한 가르침이 바로 요한계시록이다.
다양성과 통일성의 보고인 신약성경의 올레길을 완주했다. 굽이굽이 여러 갈래 길을 체험하면서 발견한 보물 같은 은혜와 만나고 나서 비로소 보이는 길! 바로 그 길이다. 역사로 표출된 구속사의 길, 한 개인의 삶 속에 피어난 길, 지금 우리의 길이며 승리의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