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에 끌리는 옷(요한계시록 1:13) -포데레(podērē) ποδήρη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헬라어는 ποδήρη(podērē)로, 문자적으로는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 곧 발목 또는 발까지 닿는 긴 예복을 뜻합니다.
대제사장의 옷과 연결
구약의 대제사장이 입던 에봇 받침 긴 옷과 연상되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28장에서는 대제사장의 옷을 하나님 앞에서 섬기는 거룩한 직분의 옷으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요한계시록 1장의 긴 옷은 그리스도를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서 섬기는 대제사장적 존재로 보여주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왕의 예복
고대 세계에서 발까지 내려오는 장엄한 옷은 권위와 존귀를 나타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긴 옷은
긴 옷 → 존귀와 권위 → 왕적 위엄이라는 의미도 갖습니다.
특히 바로 뒤에 나오는 “가슴에 금띠”와 함께 보면 그리스도의 왕적· 제사장적 위엄이 더욱 강조됩니다.
요한계시록 1장의 전체 모습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한 가지 직분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구약적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 모습 | 상징적으로 연결되는 역할 |
|---|---|
| 발에 끌리는 긴 옷 | 대제사장 |
| 가슴의 금띠 | 왕·존귀한 통치자 |
| 흰 머리 | 영원하신 분·지혜 |
| 불꽃 같은 눈 | 심판자 |
| 빛난 주석 같은 발 | 강력한 심판과 권세 |
|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 하나님의 장엄한 권위 |
| 오른손의 일곱 별 | 교회의 주권자 |
| 입에서 나오는 좌우의 날선 검 |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주님 |
| 해같이 빛나는 얼굴 | 신적 영광 |
따라서 “발에 끌리는 옷”은 단순히 옷의 길이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이 본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직분과 권위와 위엄을 보여주는 첫 번째 이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설교에서는 이렇게 정리하면 좋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시는 대제사장이시며,
동시에 금띠를 두르신 왕이시고,
불꽃 같은 눈으로 교회를 살피시는 심판의 주님이십니다.”
“발에 끌리는 옷”은 보통 다음처럼 표현할 수 있습니다.
- 긴 옷 — 가장 일반적인 표현
- 발목까지 내려오는 옷 — 길이를 정확하게 표현
- 바닥에 끌리는 옷 — 옷자락이 바닥에 닿는 경우
- 끌리는 옷자락 / 긴 옷자락 — 옷의 끝부분을 강조
- 롱드레스(long dress), 맥시 드레스(maxi dress) — 여성 의상의 경우
- 성경적 표현으로는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한”(사 6:1)처럼 **“옷자락”**이라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혹시 요한계시록 1장의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계 1:13)의 의미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헬라어 원문과 대제사장·왕의 예복과 연결하여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13의 “발에 끌리는 옷”은 단순히 긴 옷을 묘사하는 표현이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을 보여 주는 상징적 묘사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제사장적 권위와 왕적 권위를 함께 생각하면 매우 풍성해집니다.
헬라어 원문
요한계시록 1:13 / περιβεβλημένον ποδήρη
peribeblēmenon podērē
직역하면 “발까지 내려오는 옷을 입고 있는”이라는 뜻입니다.
-
περιβεβλημένον (peribeblēmenon)
→ περιβάλλω, “두르다, 입다”에서 온 완료 수동분사
→ 이미 옷을 입고 있으며 그 상태가 계속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
ποδήρης (podērēs)
→ πούς(발) + ἔριον/관련 어근에서 나온 말로, 문자적으로 “발까지 닿는 긴 옷”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발에 끌리는 옷”이라는 한국어 표현은 단순히 옷자락이 바닥에 끌린다는 뜻보다,
발까지 내려오는 장엄한 긴 예복이라는 의미가 더 정확합니다.
왜 예수님이 이런 옷을 입으셨을까?
요한은 예수님을 단순한 인간으로 묘사하지 않습니다.
계시록 1:13–16에는
발까지 내려오는 옷 → 가슴의 금띠 → 흰 머리 → 불꽃 같은 눈 → 빛난 주석 같은 발 →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 오른손의 일곱 별 → 입에서 나오는 좌우의 날선 검 → 해같이 빛나는 얼굴
이라는 장엄한 모습이 연속해서 나타납니다.
즉, 이것은 예수님의 영광과 권위에 대한 계시입니다.
대제사장과 연결되는 이유
“발까지 내려오는 옷”은 구약의 제사장적 복장을 연상시킵니다.
특히 출애굽기 28장과 39장에는 대제사장의 옷이 자세히 묘사됩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대제사장과 연결해서 보면,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하나님 앞에 세우시는 참되고 궁극적인 대제사장
이라는 의미가 드러납니다.
히브리서가 이 신학을 더욱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 히브리서 4:14
그리고 히브리서 7장에서는 예수님을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설명합니다.
4. 왕의 예복과 연결하면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의 예수님은 제사장만이 아니라 왕이십니다.
계시록 1:5: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따라서 긴 옷은 위엄과 권위의 옷이라는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긴 예복은 높은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특히 이사야 6:1의 장면이 중요합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이사야가 본 하나님은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장의 장면은 이사야 6장과도 연결해서 볼 수 있습니다.
이사야 6장
→ 높이 들린 주님
→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함
요한계시록 1장
→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 발까지 내려오는 장엄한 옷
→ 교회 가운데 서 계심
5. 더욱 중요한 것은 “가슴의 금띠”입니다
계 1:13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가슴에 금띠를 띠고”
헬라어:
ζώνην χρυσᾶν
zōnēn chrysān
→ “금으로 된 띠”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그림이 만들어집니다.
긴 예복 + 금띠
이것은 단순한 평상복이 아니라 왕적·제사장적 권위를 가진 인물의 복장을 연상시킵니다.
따라서 설교에서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신 그리스도는 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을 품으시고, 왕으로서 자기 교회를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6. 그런데 요한계시록의 독특한 점
여기서 매우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의 역할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계시록 1장의 그리스도는
제사장 → 왕 → 심판자 → 교회의 주님
이라는 여러 모습을 동시에 나타냅니다.
특히 계 1:13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계십니다.
그리고 1:20에서 그 촛대의 의미를 직접 설명합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그러므로 장면 전체를 연결하면:
“발에 끌리는 옷”
→ 제사장적 위엄
“가슴의 금띠”
→ 왕적 권위와 영광
“일곱 금 촛대 사이”
→ 교회 가운데 임재하시는 주님
“일곱 별”
→ 교회의 사자들을 붙드시는 주님
“불꽃 같은 눈”
→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심판자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
→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주님
이렇게 됩니다.
7. 설교적으로 아주 중요한 메시지
따라서 “발에 끌리는 옷”만 따로 해석하기보다는 계시록 1:13–16 전체를 하나의 그리스도론적 초상화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교회론과 연결하면 매우 강력합니다.
예수님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라,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제사장으로 교회를 섬기시고,
왕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며,
심판자로 교회를 살피시고,
주님으로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대한 칭찬과 책망이 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발에 끌리는 옷(ποδήρης)은 그리스도의 장엄한 신적·제사장적 권위를 나타내며, 가슴의 금띠와 함께 볼 때 왕적 권위까지 드러낸다. 그리고 그분이 일곱 금촛대 사이에 서 계신다는 사실은, 영광의 대제사장이요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교회의 한가운데서 교회를 살피고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발에 끌리는 옷 → 금띠 → 흰 머리 → 불꽃 같은 눈 → 빛난 주석 발 → 많은 물소리 → 일곱 별 → 좌우의 날선 검 → 해같이 빛나는 얼굴”**을 각각 대제사장·왕·심판자·교회의 주님과 연결한 요한계시록 1장 15~20분 설교 원고로 만들 수 있습니다.
아래 원고는 요한계시록 1:12–20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대제사장 → 왕 → 심판자 → 교회의 주님이라는 네 가지 사역으로 연결하여 15–20분 정도 설교할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설교 제목
“교회 가운데 서 계신 영광의 그리스도”
본문: 요한계시록 1:12–20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 요한계시록 1:13
핵심 메시지
요한계시록 1장의 예수님은 단순히 하늘에 계신 예수님이 아닙니다.
교회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
교회를 섬기시는 대제사장이시며,
교회를 다스리시는 왕이시며,
교회를 심판하시는 심판자이시며,
교회의 생명과 운명을 붙들고 계시는 교회의 주님이십니다.
교회 가운데 서 계신 영광의 그리스도
본문: 요한계시록 1:1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 1장은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만났던 예수님은 갈릴리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어린아이를 품으셨고, 병자를 고치셨고, 죄인을 용서하셨습니다.
그런데 밧모 섬의 요한이 다시 만난 예수님은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으셨습니다.
가슴에는 금띠를 띠셨습니다.
머리는 흰 양털과 같고 눈은 불꽃 같습니다.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습니다.
오른손에는 일곱 별을 붙드시고
입에서는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며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외모 묘사가 아닙니다.
요한은 이 모습을 통하여
**“교회가 누구의 손에 있는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 밖에 계신 분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촛대 사이에 서 계십니다.
1. 발에 끌리는 옷 —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13절입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여기서 “발에 끌리는 옷”은 헬라어 **ποδήρης (podērēs)**라는 표현입니다.
긴 예복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성경의 제사장적 이미지와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대제사장 복장을 생각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교회 가운데 서 계십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라
긴 예복을 입고 계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사장적 사역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대표했습니다.
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백성의 이름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교회 가운데 서 계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를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섬기시기 위해서입니다.
히브리서 4:15는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교회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우리의 눈물도 아십니다.
우리의 실패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의 첫 번째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대제사장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금띠 — 왕이신 그리스도
13절 후반부를 보면,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습니다.
금은 성경에서 자주 영광, 존귀, 왕권과 연결됩니다.
특히 가슴에 띠를 두른 모습은 권위와 존귀를 나타내는 이미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의 왕 되심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손님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교회가 사람의 소유가 아닙니다.
목사의 소유도 아닙니다.
장로의 소유도 아닙니다.
어떤 특정한 가문의 소유도 아닙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인간의 눈으로 교회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교회를 평가합니다.
에베소 교회를 보십니다.
서머나 교회를 보십니다.
버가모 교회를 보십니다.
두아디라를 보십니다.
사데를 보십니다.
빌라델비아를 보십니다.
라오디게아를 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기 교회를 살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흰 머리 — 영원한 심판자이신 그리스도
14절입니다.
“그의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이 모습은 다니엘 7장을 떠올리게 합니다.
다니엘 7장에는 하나님께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로 나타나시며 흰 옷과 흰 머리털의 모습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예수님에게 적용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신학적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한 인간 교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영원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심판 권세를 가지신 분입니다.
흰색은 여기에서 단순히 나이가 많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성, 순결, 지혜, 거룩한 권위를 상징합니다.
세상의 역사는 인간이 결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치가가 결정하는 것 같고,
경제가 결정하는 것 같고,
강한 나라가 결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역사의 마지막 판단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평가보다
예수님의 평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4. 불꽃 같은 눈 — 모든 것을 아시는 심판자
14절 후반입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불꽃 같은 눈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눈은 교회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사람은 숫자를 봅니다.
사람은 건물의 크기를 봅니다.
사람은 출석 인원을 봅니다.
사람은 헌금 액수를 봅니다.
사람은 유명세를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엇을 보십니까?
마음을 보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수고가 있었습니다.
인내가 있었습니다.
거짓 사도를 분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사람은 에베소 교회를 훌륭한 교회라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불꽃 같은 눈은
그 교회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 교회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교회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입니다.
5. 빛난 주석 같은 발 — 악을 밟으시는 승리의 주님
15절입니다.
“그의 발은 풀무불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여기서 헬라어는 **χαλκολίβανον (chalkolibanōn)**입니다.
정확한 현대 광물 이름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빛나고 정련된 금속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불을 통과하여 정련된 금속이라는 이미지입니다.
그리고 발은 성경에서 종종 정복과 통치의 이미지를 갖습니다.
예수님의 발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교회가 흔들려도
예수님의 발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이 흔들려도
예수님의 발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탄이 공격해도
예수님의 발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패배자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승리하신 그리스도께 속한 공동체입니다.
6. 많은 물소리 — 권위 있는 말씀을 가지신 주님
15절 후반부입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에스겔 1장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이 큰 물소리와 같은 이미지로 표현됩니다.
많은 물소리는
작은 속삭임이 아닙니다.
압도적인 소리입니다.
바다와 폭포처럼 모든 소리를 압도합니다.
오늘 세상에는 수많은 목소리가 있습니다.
언론의 소리,
SNS의 소리,
정치의 소리,
돈의 소리,
사람들의 소리,
그리고 우리의 내면에서 들리는 두려움의 소리까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마지막으로 들어야 할 음성은 하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반복되는 말씀이 무엇입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교회는 말이 많아지는 곳이 아니라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7. 일곱 별 — 교회의 사자를 붙드시는 주님
16절입니다.
“그의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20절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설명해 주십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오른손입니다.
예수님의 오른손에 별이 있습니다.
교회의 사자들이 예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목회자는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 지도자는 자기 교회를 만드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자기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도들도 목회자를 우상화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별은 스스로 빛의 근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손에 붙들려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8. 좌우에 날선 검 — 말씀으로 판단하시는 주님
16절입니다.
“그의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검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입에서 나옵니다.
예수님의 무기는 말씀이십니다.
히브리서 4:12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 예리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위로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를 찌릅니다.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우리의 교만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거짓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를 죽이기 위한 검이 아니라
회복시키기 위한 말씀의 검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예수님은 교회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책망하십니다.
“회개하라.”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깨어라.”
“굳게 하라.”
“열심을 내라.”
이 말씀은 심판의 말씀이면서 동시에
회복을 부르는 사랑의 말씀입니다.
9. 해같이 빛나는 얼굴 — 교회의 영광이신 그리스도
16절 마지막입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 같더라.”
요한은 예수님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너무 영광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변화산의 예수님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은 태양처럼 빛납니다.
왜입니까?
예수님 자신이 빛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것입니다.
금촛대가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촛대의 본질은 빛을 담고 비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장의 구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 → 일곱 별 → 일곱 금촛대
예수님께서 중심에 계십니다.
별은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촛대는 그분 앞에 있습니다.
그리고 20절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따라서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교회 자체를 빛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10. 결국 일곱 가지 모습은 한 분 예수님을 보여 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보십시오.
발에 끌리는 옷 — 대제사장이신 예수님
우리의 연약함을 품으십니다.
금띠 — 왕이신 예수님
교회의 주권자가 되십니다.
흰 머리 — 영원하신 심판자
마지막 판단의 권세를 가지십니다.
불꽃 같은 눈 — 마음을 살피시는 심판자
교회의 중심을 보십니다.
빛난 주석 같은 발 — 승리하신 주님
모든 악을 밟으십니다.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 말씀의 주님
교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곱 별 — 교회를 붙드시는 주님
교회의 지도자들을 붙드십니다.
좌우의 날선 검 — 말씀으로 심판하시는 주님
교회를 깨우십니다.
해같이 빛나는 얼굴 — 영광의 주님
교회의 모든 영광의 근원이 되십니다.
결론 — “두려워하지 말라”
그런데 요한은 이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17절입니다.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은 예수님의 영광 앞에 쓰러졌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오른손을 요한에게 얹으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얼마나 놀라운 말씀입니까?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분이 요한을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날선 검을 가지신 분이 요한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해처럼 빛나는 얼굴을 가지신 분이 요한에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까?
18절입니다.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이것이 요한계시록의 복음입니다.
죽으셨지만 살아나신 예수님.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
교회 가운데 서 계신 예수님.
교회를 붙들고 계신 예수님.
교회를 책망하시지만 버리지 않으시는 예수님.
교회를 마지막까지 인도하시는 예수님.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어려워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작아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교회를 공격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아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의 주님은
촛대 사이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오른손에는
일곱 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건물의 크기도 아닙니다.
프로그램의 숫자도 아닙니다.
교회 가운데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교회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교회는 다시 살아납니다.
교회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교회는 다시 거룩해집니다.
교회가 주님의 손에 붙들릴 때
교회는 다시 빛을 발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기도가 이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우리 교회의 중심에 서 주십시오.”
“주님, 우리의 촛대가 꺼지지 않게 하십시오.”
“주님, 우리의 별을 주님의 손에 붙들어 주십시오.”
“주님,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 우리 교회가 사람의 영광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금촛대가 되게 하소서.”
설교의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요한계시록 1장의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 교회를 섬기시고,
왕으로 교회를 다스리시며,
심판자로 교회를 살피시고,
주님으로 교회의 별과 촛대를 붙드시는 분이다.”